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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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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ROCK 다시 부르기
1999.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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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Prom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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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B
윤도현밴드
<nopad> 파일:YB 10집 프로필 사진.jpg
<nopad> ▲ 왼쪽부터 : 박태희( Ba) 허준( Gu) 윤도현( Vo, Gu, Pi) 김진원( Dr)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활동 1995년 ~ 현재
소속사 디컴퍼니
공식 사이트 파일:ffan.svg (공식 아티스트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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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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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링크
2.1. 공식 아티스트 페이지2.2. 공식 팬 커뮤니티(팬카페)
3. 역사
3.1. 결성과 해체3.2. 재결성 이후3.3. 스캇 할로웰 영입 이후
4. 멤버 소개
4.1. 현 멤버4.2. 이전 멤버
5. 기타6. 음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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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5천만의 국민 록밴드
Mnet 레전드 100 아티스트
대한민국 록 밴드. 멤버로는 베이스 박태희, 기타 허준[2], 보컬 겸 리더 윤도현, 드럼 김진원, 기타 스캇 할로웰,(Scott Hellowell) [3]이 있다.

2. 링크

2.1. 공식 아티스트 페이지

파일:yb_아티스트페이지.jpg

공식 팬 커뮤니티(팬카페), 프로필, 소셜 정보 등 YB의 모든 정보를 담은 공식 아티스트 페이지.
공식 아티스트 페이지 보기
공식 프로필 보기

2.2. 공식 팬 커뮤니티(팬카페)

팬덤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위해 개설된 YB 공식 팬 커뮤니티.
공식 팬 커뮤니티(팬카페) 바로가기

3. 역사

3.1. 결성과 해체

원래 윤도현은 밴드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90년대 시장 환경상 소속사 입장에서 밴드는 어려웠고[4][5] 활동 소속사 사장은 윤도현의 1집이 성공하면 밴드를 시켜주겠다는 약속을 하게 된다. 결국 1994년 말 윤도현의 1집 < 가을 우체국 앞에서>가 발매되었으나, 대중적인 인기를 끌지 못하여 밴드 데뷔는 한참이나 늦어지게 된다. 이후 1995년, 윤도현의 첫 공연을 위해 모인 밴드 멤버들이 YB의 시발점이 되었고, 1997년 2집 < 윤도현 and Band>를 통해 데뷔하게 된다. 1996년 개봉된 영화 정글 스토리에 구성원 4명 모두가 출연한 적이 있다.
파일:97년 YB.jpg
1997년 2집 발매 이후 나온 기사. 장발이었던 김진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1집의 거칠지만 방향성이 적었던 패기가 2집에서 드러난 후, 3집 <소외>에서 진보적이고 반항적인 메시지로 정돈되며 YB는 하드록의 대들보로 부상한다. 이때 YB는 민중가요 록그룹 '메이데이'의 음반에 객원 세션으로 참여하는 등 한국의 대표적인 진보주의 록그룹이었다.[6] 이 당시의 대표적인 곡으로는 '철문을 열어', '가리지 좀 마', '이 땅에 살기 위하여' 등을 꼽을 수 있다. 한편 '먼 훗날' 등의 록 발라드도 인기를 끌었다.

1999년에는 4집이자 리메이크 음반인 < 한국 ROCK 다시 부르기>를 냈는데, 들국화의 리메이크 ' 그것만이 내 세상', '돌고 돌고 돌고', 송창식의 '담배가게 아가씨', 빅토르 최의 ' 혈액형' 등등 모든 트랙이 평균 이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단순한 상업적 리메이크를 넘어 한국 록을 집대성했다는 호평을 받게 된다. 그러나 4집을 내고 얼마 안 가 2000년 정동문화회관에서 정식으로 해체 공연을 하며 밴드는 해체되고 만다.[7] 이유는 밴드의 노선[8]을 두고 생긴 윤도현과 유병열의 갈등[9]와 경제적 문제.

3.2. 재결성 이후

파일:yb An Urbanite.jpg
5집 앨범 커버 사진
해체 후 보컬이었던 윤도현은 파주에 가서 개를 키우는 등 멤버들은 각자의 길을 갔다. 그러다가 4집에 수록되어 있던 너를 보내고라는 곡이 입소문을 타고 뒤늦게 인기를 끌게 되면서 윤도현은 사장의 권유로 봉천동 기타 허준을 새로운 기타리스트로 맞이하여[10] 밴드를 재결성하게 된다. 하지만 YB는 재결성 이후 얼마동안 음악에 있어 정체, 혹은 퇴보했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왜냐하면 흡입력 있는 기타 리프를 짜던 유병열이나, 포크록적인 감수성을 갖고 있던 엄태환, 그리고 프로듀서 강호정이 모두 탈퇴해 YB 음악의 주축이 윤도현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많이 흐른 상태에서 다시 돌아보면, 허준의 영입은 YB만의 독특한 록 스타일을 만드는 데 큰 일조를 했다고 볼 수 있다.

2001년 6월 발표한 5집은 모던 록으로의 전환을 꾀했는데, 윤도현의 표현을 인용하면 유병열의 힘이 넘치는 기타와 전혀 다른 허준의 '달콤한' 기타 연주로 인해 그동안 만들어 오던 YB의 곡과 성향이 매우 다르게 느껴졌고, 대중적이라고 하기엔 모자라고 기존 팬들이 보기에는 너무 약하게 느껴지는 곡들이 나오게 되었다. 그로 인해 일반 대중들에게 어필하지 못함과 동시에 기존 팬들마저 고개를 돌려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한 평론가는 유병열의 색이 지워지고, 아직 허준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던 이 시기를 가리켜 윤도현 '밴드'에서 '윤도현' 밴드로의 변화라고 평했다.

이후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 오 필승 코리아>가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누리면서 '국민 밴드'라고 불리는 등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11] 아닌 게 아니라 당시 월드컵 열기로 인해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윤도현이 부른 '오 필승 코리아' 밖에 없으며 이것은 그냥 단순한 YB의 히트곡이 아닌 우리 축구 대표팀이 경기를 할 때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다 함께 부르는 대국민 응원가가 된다.
파일:YB 평양 1차 공연.jpg
2002년 평양 공연 당시
또한 2002년 9월에는 MBC가 주최한 2002 MBC 평양 특별공연에 참석했었다. 당시 YB는 '윤도현 악단'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고 무대에서 아침 이슬, 너를 보내고, 탈춤, 아리랑, 오 필승 코리아를 불렀다. 특히 윤도현은 아리랑 도입부를 부르다가 눈물을 보였는데 이게 북한 전역에 생방송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탈북자들에 의하면 이 공연 이후 YB의 북한 내 인기가 높아져 지금도 너를 보내고가 인기 순위에 있다고 한다.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10대 가수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기 지나치게 큰 성공은 YB가 한동안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월드컵 밴드, 발라드 가수라고 폄하하며 안티가 급격히 증가한 것도 이 시점이다. 그때 당시의 붕 뜨고 혼란스러운 상태는 YB 멤버들 모두가 동의하는 바이고, 철없는 행동을 많이 했다고 회상하곤 한다.[12] 여담이지만 월드컵 시절과 이후 6집의 행보로 인해 많은 상업 논란에 시달렸는데, 무릎팍도사에서 말하길 상업 논란에 대해서 '원래 상업적으로 가려 했다'고 반박했다. 지금이야 많이 쿨해진(?) 시기인지라 록그룹이나 락커가 예능 나오고, 심지어 연기하는 것에 대해서도 별로 반응하지 않는 분위기지만 당시만 해도 락부심이 힙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였다. 당연히 오버에서 가장 유명하고, 노골적으로까지 상업적인 행보를 이어가는 YB의 행보는 그야말로 먹잇감이었던 셈. 여담으로 윤도현과 유병열의 갈등도 상업성 문제였다고 한다. # 윤도현은 밴드가 어렵고 먹고 살기 힘드니 상업적으로 갈 필요가 있다 생각했고, 유병열은 록그룹은 그래서는 안된다는 입장이었다고. 물론 유병열도 시대가 흐르면서 이해하게 된 모양.당장 그 김종서의 행보를 봐도 역설적으로 이러한 상업 노선 덕에 경제적 여유를 갖게 된 YB가 나중에는 본연의 하드록 중심의, 하고 싶은 음악을 하게 된 면도 있다.

그리고 덕분에 이 당시 생애 처음으로 가요프로에서 1위를 한 같은 나가수 출연자가 훨씬 큰 대박을 칠 수 있었음에도 다소 묻혀버린 감이 없잖아 있다.

아무튼 이 시기를 계기로 윤도현의 솔로곡인 '가을 우체국 앞에서'와 '사랑 Two'는 나온 지 8년 만에 제대로 알려지게 된다. 또한 평양시에서 공연을 갖기도 했으며. 보컬 윤도현의 목소리로 녹음된 '아리랑' 역시 '오 필승 코리아' 못지않게 대중들에게 각인시키게 된다. 평단에서도 이를 아쉬워하기도 했는데, 소위 한국 록의 '정통파'가 된 YB를 주류로 만든 것이 이전 4집에서 보여주었던 번뜩이는 창의력과 음악성이 아니라 월드컵 행사였다는 점 때문.

다음 해(2003년) 발표한 6집까지도 대중적인 면에서는 성공했으나 록 페스티벌에서 대놓고 욕을 하는 관중이 생겨날 정도로[13] 록 매니아들에게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멤버들도 이 앨범에 대해 아쉬운 점이 많다고 하는데, 6집의 앨범 수록곡을 보면 월드컵 시절의 빅히트로 인해 이 당시 YB가 얼마나 혼란스러워했는지를 알 수 있다. 여중생 사망 사건에 대해 노래하는 '꽃잎'이나 '죽든지 말든지' 등 강렬하면서도 사회 비판의식이 수록된 트랙이 있는가 하면 타이틀곡은 대중적인 발라드 '사랑할거야'나 유명 작곡가 윤일상에게 곡을 받아 작사만 맡은 '잊을게'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심지어 음악 웹진 weiv에서는 2003년 최악의 음반 중 하나로 꼽히는 수모를 당하기도 하였다.
파일:YB 8집 당시.jpg
8집 발매 당시

이후 심기일전하여 3년 만에 발표한 7집 <Why Be?>와 8집 <공존>은 다시 좋은 평가를 얻는데 성공한다. 8집 타이틀 곡인 '아직도 널'의 뮤비가 방송 불가 판정을 받았는데 그 이유가 디씨를 뒤집어지게 할 정도로의 유머다. 아쉽게도 링크가 사라져서 지금은 디씨의 반응을 볼 수 없다.[14] 특히 8집의 경우 촛불 시위를 응원한 '후회없어' 용산 철거사건을 비판한 '깃발' 88만원 세대를 표현한 '88만원의 Losing Game' 등 사회비판 의식을 드러낸 탓인지 윤도현의 방송 출연이 족족 무산당하며 앨범 홍보의 기회를 놓치기까지 했다.

2010년에는 RRM(Risque Rhythm Machine)과 협업하여 록 음악 일렉트로니카를 접목하는 시도를 보여주기도 했다.

2011년 '나는 가수다'의 출연으로 한국 록의 부활을 보여주기도 했다. 첫 번째 경연곡으로 자신들의 곡인 It Burns로 당당히 4위를 차지했으며, 1차 경연에서는 이선희의 <나 항상 그대를>을 불러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하였다. 그 이후로도 YB만의 색깔로 여러 곡들을 리메이크 했는데 더 클래식의 마법의 성, 소녀시대 Run Devil Run, 마그마의 해야, 다섯손가락의 새벽기차, 나미의 빙글빙글, 이문세의 빗속에서, 시나위 크게 라디오를 켜고, 강산에의 삐딱하게, 이동원 내 사람이여를 리메이크 하며 청중들과 대중들의 록에 대한 음악성과 대중성을 모두 얻게 되는 결과를 이룬다. YB의 나는 가수다 경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윤도현 항목 참조.[15]

3.3. 스캇 할로웰 영입 이후

파일:YB 9집 프로필.jpg
파일:YB 스무살 공연.jpg
9집 발매 당시 20주년 공연 당시
나가수에서 하차한 이후, 영국인 기타리스트 스캇 할로웰[16]을 정식 멤버로 맞이하여 미니앨범 흰수염고래를 발매하게 된다. 현재 YB의 대표곡 중 하나인 동명의 곡이 이때 처음 나오게 된다. 이외에도 대표곡인 나는 나비와 'It Burns'를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3년 대망의 9집 앨범인 REEL IMPULSE를 발매한다. 스캇 영입 이후 첫 정규 앨범이었다.
스타일은 1집부터 4집까지의 정통 하드 록, 헤비 메탈 스타일이지만 그 당시의 스타일보다 발전된 사운드와 퀄리티로 팬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재밌는 점은 스캇 할로웰의 지분이 많다는 점. 보통 다른 밴드들을 보면 새로운 멤버가 들어오더라도 기존의 멤버들의 방식을 많이 고수하기 마련이고 사운드나 퀄리티의 변화가 그리 크지 않은 경우가 빈번한데 그 틀을 깨고 YB는 본인들의 하드 록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2019년 장장 6년만에 10집이자 새로운 정규 앨범인 ' Twilight State'를 발매한다. 이번 앨범은 YB의 뿌리인 하드 록 색깔이 드러난 곡들과 싸이키델릭 록과 전자음악의 융합이었다. 기존의 YB의 음악과는 많이 다른 느낌이라 전작들의 음악을 듣고 이 앨범의 음악들을 듣는다면 똑같은 팀에서 나온 음악이 맞나 싶으면서도 신선한 충격을 주는 앨범이라고 느껴질 앨범이다.

4. 멤버 소개

4.1. 현 멤버

박태희 김진원 윤도현 허준
베이스, 보컬[17] 드럼 리더, 보컬, 기타, 건반 기타

4.2. 이전 멤버

5. 기타


6. 음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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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래 윤도현 갤러리였으나 갤러들과 윤도현 본인의 신청으로 YB 갤러리로 변경되었다. [2] 前 기타리스트는 유병열. [3] 24년 10월13일을 마지막 공연으로 하차하였다. [4] 90년대 록 음악을 했던 신성우, 김경호 모두 솔로로 데뷔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박완규 역시 생활고로 인하여 솔로로 전향. [5] 90년대 록밴드로서 큰 성공을 거둔 팀은 '걸' 이 있으나 이마저도, 2집까지 나오고 멤버 간 불화로 김세헌이 탈퇴하였다. 그러나 김세헌 역시 밴드에 강한 애착이 있었기에, 이브(EVE) 를 결성하였고, 역시 사정상 밴드는 어려웠기에, 자신을 보컬로 내세운 후, 나머지는 객원 멤버 및 연주자 형식으로 하려 하였다. 이후, 2집에서 G고릴라를 정식 멤버로 들이고, 3집에서 박웅, 김건을 정식 멤버로 들였는데 이 황금라인업으로 나온 3,4집이 걸 못지않은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참고로 이 시기가 YB가 월드컵으로 인해 대중적 인지도가 확 늘어난 시기. [6] 그리고 베이시스트 박태희, 드러머 김진원 모두 이 메이데이 출신이었다. [7] 이 날 멤버들과 관객들 모두 울었다고. [8] 대중성을 좇을 것인가, 하드 록 음악을 고집할 것인가 [9] 물론 지금은 화해해서 윤도현이 유병열의 음반에 참여하기도 하고, 나는 가수다에서 같이 공연을 하기도 했다. [10] 원래 재즈 기타리스트였다고 한다. 때문에 처음에 적응하는데 고생을 많이 했다고. 허준이 오디션에 합격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착해 보여서'. 의견 충돌로 인해 한 번 밴드가 해체했던 만큼 싸움을 일으키지 않을 인물로 뽑고 싶었다고. [11]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YB를 월드컵 밴드라고 비난하기도 하나 그 이전에도 YB는 충분한 인지도를 쌓아올린 밴드였다. 보컬 윤도현은 월드컵 전에 이미 SBS에서 일요일에 진행하는 쇼 일요천하의 '라스트 스테이지'에서 고정 나레이션을 맡은 바가 있으며, KBS에서는 윤도현의 러브레터를 진행하고 있었다. 윤도현이 월드컵으로 전 국민적인 인지도를 끌어올린 것뿐이지 마치 이전에는 듣보잡이었는데 갑자기 떴다고 폄하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물론, 이런 소리가 나올 정도면 월드컵 때 확 떴다는 것도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다. 비교하자면 자우림과 같은 밴드가 대중성 면에서는 앞서 있거나 YB와 비슷한 위치에 있었는데, 이 시기를 계기로 국민 밴드라는 이름을 얻을 정도로 YB가 치고 올라가면서 유명세를 타게 된 셈이다. [12] 나가수 시절 인터뷰를 보면 공연 일정이 너무 많아서 구급차까지 타고 다니며 신호를 무시하고 간 적도 있다고 한다. 또한 어딜 가나 월드컵에 대한 이야기만 하다 보니 멤버들도 스트레스가 많았으며, 오히려 월드컵을 부인하고 우리 오 필승 코리아 안 했어도 됐다고 짜증을 냈었다고 한다. 다만 지금은 그 당시를 감사함을 모르고 어리광과 투정을 부렸던 시기라고 생각한다고. [13] YB F...가 쓰여진 피켓을 든 관객에게 영어를 전혀 못하던 박태희가 생글생글 웃으며 손을 흔들고 엄지손가락을 세웠다는 일화가 있다. 그 사람은 조용히 피켓을 접어들고 돌아갔다고... [14] 이를 보고 어떤 막장 집단을 욕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심의는 KBS에서 했다(...). 그 집단이 떠오를 정도의 막장이란 소리. 러브레터와 라디오 하차로는 분이 안풀렸나... [15] 처음에 YB로 섭외가 된게 아니라 '가수' 윤도현으로 섭외가 되었기 때문에 경연 내용은 모두 여기 있다. [16] 그 이전에 나가수에서도 객원 멤버로 참여하는 등 밴드와 함께 몇 차례 공연을 하기도 했다. [17] 흰수염고래 뒷부분, 나는나비 떼창 부분을 부르기도 한다. [18] 정식명칭이 YB로 바뀌기 전 [19] 당시 공연 전에 서로 또 얼굴을 봐야 하냐며 짜증낼 정도였다. [20] 특히 임재범은 MBC 스페셜 나는 록의 전설이다에서 "네(=윤도현)가 록을 열심히 하고 지지하고 꿋꿋이 버티고 있는 거에 대해 사랑하고 좋아한다."고 하면서 안아줬다는 이야기를 했다. [21] 크레딧에 확실히 명기됐고 목소리, 창법도 본인의 것이 맞으며, 본인 스스로도 방송에서 인증한 바 있다. [22] 밴드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를 설명하면서 '윤도현'이라는 표현을 계속 쓸 수밖에 없을 정도로 '밴드'로서의 인지도는 약했다. [23] 단 이것은 정규 음반이 아닌 윤도현이 댓글 2000개 기념으로 맴버들과 같이 한 것이다 [24] 아무래도 개인 수익까지 똑같이 나누게 되면 세금 문제도 있고 해서 여러모로 복잡해진다. [25] 스캇은 2002년에는 YB 멤버가 아니었다. [26] 스캇이 별 문제 없이 북한에 갈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영국인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북한은 영국과의 외교 관계를 무척 중요시 여기기 때문에, 영국인 방문객에 대한 대우가 상당히 좋고 별 다른 태클을 걸지 않는다. 실제로 툭하면 반공화국적대혐의로 씌워 억류하던 미국, 캐나다 인과 달리 영국인은 북한에 장기 거주하는 사람들도 많고 한번도 억류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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