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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F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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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드슨 NEC 홈 일렉트로닉스가 공동 개발한 게임기 목록
파일:PC 엔진 로고.png 파일:NEC_PC-FX_logo.svg
파일:NEC_PC-FX_logo.svg
파일:PC-FX-Console-Set.png
<colbgcolor=#000><colcolor=white> 개발사 허드슨 소프트, NEC 홈 일렉트로닉스
제조사 NEC
출시 1994년 12월 23일
단종 1998년[1]
가격 ¥49,800 → ¥29,800 → 오픈프라이스[2]
판매량 11만 1천대
출하량 40만 대

1. 개요2. 사양 및 성능3. 역사
3.1. 개발 경위3.2. 상품화 발표3.3. 발매까지3.4. 발매 이후3.5. 문제점3.6. 몰락 및 사업 철수
4. 기타
4.1. 롤피
5. 게임 목록6. 대한민국에서

[clearfix]

1. 개요

허드슨 소프트 NEC 홈 일렉트로닉스에서 공동 개발한 PC 엔진의 후속 거치형 게임기. 코드명은 철인(鐵人)으로, "FX"의 "F"는 "Future"의 약칭이며 X는 미지수 X로 미지의 세계를 가리킨다고 한다. 1994년 현대 디자인 협회에서 "세울 수 있는 게임기"로 상을 받았다.

게임기 전쟁의 전국시대를 다시 한 번 재현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기대는 시대착오적인 하드웨어와 킬러타이틀의 부재로 전세계 누계출하 1천만대 이상을 달성했던 전작과 달리 최종 11만대 판매라는 비참한 성적으로 마감한다.

2. 사양 및 성능


세가 새턴 플레이스테이션과 같은 시대에 나왔음에도 사양이 뒤떨어지며, 3D 폴리곤 그래픽을 구현하지 못한다는 점이 큰 단점이다. 게다가 크기는 데스크탑 컴퓨터만 하면서 값은 더 비싸다.[3] 이러한 이유는 이 게임기가 1992년 무렵 프로토타입이 설계되었다가 취소된 후, 다시 그 사양대로 CPU만 바꿔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꽤 괜찮은 스프라이트 표시 기능과 3D 렌더링 기능이 있는 HuC6273 그래픽 프로세서를 개발해 넣을 예정이었으나 늦어진 것이 원인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그러나 PC 엔진을 상세히 알고 있는 게임 프로그래머인 이와사키 히로마사의 블로그에 따르면 NEC 허드슨의 PC-FX 개발진은 3D 게임 트렌드를 보지 못하고 PC 엔진의 연장선상에서 개발하다가 플레이스테이션을 발표하자(대충 1993년 9월 즈음) 그 때야 뒤늦게 개발을 시작했다고 했다. 잡지와의 인터뷰[4]에서도 폴리곤은 필요한가에 대한 질문에 허드슨의 창업 멤버이자 프로그래머인 나카모토 신이치는 "지금은 모두 폴리곤으로 바라보고 있군요. 폴리곤이 지금 주목받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PC-FX는 동영상 기능이라는 다른 관점이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일까 싶습니다."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이는 당시 공동 개발자인 NEC도 트립 호킨스의 3DO와 같이, 실시간으로 사용할 수 있는 폴리곤의 양이 적어 3D 그래픽이 조악하기 때문에 차라리 3D 워크스테이션으로 생성한 3D 그래픽으로 만든 게임이 더 나을 거라는 판단을 했다고 한다. 실제로도 동영상 처리를 위해 전용 처리 프로세서 HuC6271 Motion JPEG 디코더를 달아 동영상만큼은 타 기종을 압도한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그 기능은 같은 세대 기기인 플레이스테이션의 CPU에도 내장한 기능이다. HuC6273 그래픽 프로세서는 나중에 <PC-FXGA>라는 기기에 겨우 들어갔는데 이에 자세한 것은 아래 내용 참조.

PC-FX에 탑재한 CD-ROM 드라이브는 초기형은 1배속이고, 말기형은 2배속이다. NEC PC-9801 컴퓨터와 연결하여 PC98용 CD-ROM 드라이브로 활용할 수 있다. 다만 직접 사용한 경험상 당시의 같은 금액으로는 4배속 Teac CD-ROM 드라이브를 구매할 수 있었고, 성능의 차이도 당연히 확연하며, 일부 CD는 제대로 읽지 못하는 등의 문제가 다수 있다(예: 필립스 골드 540 MB/640 MB 1X).

하위 호환 기능은 없다.[5]

3. 역사

3.1. 개발 경위

1992년-1993년경, NEC 홈 일렉트로닉스는 PC 엔진 SUPER CD-ROM2의 후계기로 32비트기 개발을 시작했다. 공동 개발자인 허드슨은 1992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CES에서 JPEG 디코더 칩을 공개했다. 한편 아케이드 게임 업계에서는, 세가·엔터프라이즈(현:세가)의 MODEL2 기판, 남코(현:반다이 남코 엔터테인먼트)의 SYSTEM22 기판 등의 3DCG 대응 아케이드 게임 기판이 치열 성능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닌텐도나 세가·엔터프라이즈, 소니·컴퓨터 엔터테인먼트(현: 소니·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도 차세대기 개발을 진행하고 있었다.

3.2. 상품화 발표

1993년 11월 1일, 일본경제신문사가 발행하는 '일본경제신문' 및 '닛케이 뉴미디어'에서 NEC 홈 일렉트로닉스가 32비트 CD-ROM 게임기를 1994년 말에 상품화한다고 보도하였다.[6]

같은 해 11월 30일 발매된 'PC Engine FAN' 1994년 1월호, '월간 PC 엔진' 1994년 1월호, '마루카쓰 PC 엔진' 1994년 1월호에서, 개발 코드 'FX'라고 이름 붙여진 차세대기의 특집 기사 가 게재되어, 'FX는 CD-ROM 전용기' 'PC 엔진과의 호환성 없음' '메인 CPU는 NEC제 V810을 채용하고, 그 외에 (허드슨의) 테츠진의 일부 칩을 약간 변경하여 채용' '초간 30프레임의 풀 컬러/풀 애니메이션이 가능'이라고 보도되었다. 덧붙여 1994년 1월 17일자 '닛케이 뉴미디어'에는 '32비트 CD-ROM 게임기의 CPU를, 허드슨이 제안한 허드슨 독자 CPU가 아닌, NEC의 V810으로 변경'한다고 보도되고 있어, 개발 초기에는 허드슨으로부터 독자적인 CPU(HuC62030)의 채용이 제안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같은 시기,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의 신규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이나 세가 엔터프라이즈 세가 새턴도 발표되었다.

3.3. 발매까지

1994년 5월 13일 'NEC 전국 소프트 메이커회' 회장에서 FX의 상세 사양이 공개되었다. 또한, FX를 PC-9801 시리즈의 CD-ROM 드라이브로 사용하는 전용 어댑터도 참고 출품으로 전시되었다. 이 밖에 본체 모형 전시 및 동시 발매 예정인 소프트로 ' 배틀 히트', 'FX 파이터', ' 팀 이노센트'가 나왔다.

1994년 6월 4~5일 일정으로 지바현·마쿠하리 멧세에서 개최된 ''94 도쿄 장난감 쇼' NEC 부스에서, FX의 목업이 일반용으로 공개됨과 동시에 대응 소프트웨어도 동시 출전되어, 회장에서 실제로 플레이해볼 수 있었다. 그 후, 정식 명칭을 'PC-FX'로 결정하고, 대응 소프트웨어의 참가 메이커로서 NEC 애비뉴, NEC 홈 일렉트로닉스, 데이터웨스트, 허드슨, 휴넥스, 마이크로캐빈, 리버힐 소프트, 레이포스의 8사가 참가하는 것도 아울러 발표되어, '배틀 히트'와 '팀 이노센트'의 2타이틀이 정식으로 발매하는 것도 공표되었다. 같은 해 7월에 PC-FX의 아이 캐치와 로고가 공개되었고 8월 상순에는 정식 발매의 2개의 타이틀에 더해 11개의 타이틀이 추가로 공표되어, '배틀 히트' 'TEAM INNOCENT -The Point Of No Return-' '졸업 II ~Neo Generation~' 3편이 PC-FX와 동시 발매되는 것이 발표되었다. 같은 해 10월 29일 발매된 'PC Engine FAN' 1994년 12월호에서 양산 시제품의 사진 및 최종 스펙이 공개되었지만, 이 시점에서는 발매일은 미정이었다.

1994년 10월 31일, PC-FX를 같은 해 12월 9일에 발매한다고 정식 발표. 희망 소매 가격은 49,800엔으로 보도되었다. 같은 해 11월 30일 발매된 'PC Engine FAN' 1995년 1월호에 PC-FX 광고도 게재되었지만, 본체 첨부 인쇄물에 기재 오류가 발견되었기 때문에 발매일을 연기하여 당초 예정인 1994년 12월 9일부터 2주 늦게 같은 해 12월 23일에 PC-FX가 발매되었다. 또한, 연말연시 판매전에서 출하된 대수는 7만대로 보도되었다.

3.4. 발매 이후


PC-FX 발매 당시의 TV 광고. PC-FX의 특징을 소비자들에게 호소하기 위해 동시 발매 게임 3개를 개략적으로 보여준 것이 특징.

NEC의 게임들은 거의 NEC 홈 일렉트로닉스에서 판매했는데, 당시 NEC의 자회사로서 정작 게임 제작과 판매를 겸한 NEC 인터채널을 통하는 게임 발매는 거의 안 해서 사람들을 의아해하게 했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NEC 홈 일렉트로닉스는 게임 개발보다는 주로 게임기와 게임들의 유통 판매를 맡았고, NEC 인터채널은 NEC 그룹이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NEC 애버뉴 등 각 그룹내에 흩어진 소프트웨어 사업 부문을 통합해 1995년 10월에 설립한 자회사이므로 기억이 뒤엉킨 의견으로 보인다.[7]

1995년 3월 17일, NEC 홈 일렉트로닉스는 PC-FX의 하드, 소프트웨어를 NEC의 PC-98 시리즈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주변기기로 PC-FX SCSI 어댑터(모델 번호: FX-SCSI)와 98 CanBe 전용 PC-FX 보드(모델 번호: FX-98IF)를 발매하였다. 5월에는 NEC 홈 일렉트로닉스는 PC-FX용으로 애니메이션과 게임을 융합한 '애니메이션 전략'을 전개한다고 발표한뒤 이미지 캐릭터로 후술할 '롤피'를 발표했다.

1995년 7월, NEC 홈 일렉트로닉스는 PC-FX의 사양을 일반에 공개하고, 연말에 PC-98 시리즈 등에서 게임이나 영상 소프트웨어를 간단하게 제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발매한다고 발표했고. 같은 해 12월 8일, 기업용에 비해 저렴한 개발 툴을 제공하는, PC-FX 상위 호환 PC-98시리즈용 게임 가속기 보드 PC-FXGA를 판매했다(DOS/V용은 1996년 6월 발매). 이것은 본체 부속 도구만으로도 3DCG를 만들 수 있다는 것으로, 첫회 1만개 한정으로 별매 개발 도구(GMAKER 스타터 키트)를 동봉한 'PC-FXGA 캠페인 세트'도 판매되었다. 게다가 추가 개발 키트(GMAKER 스타터 키트 플러스)도 발매되어, 보다 고도의 개발 환경도 제공되었다. 당시는 게임 전문 학교도 호황이며, 동인 시장이나 게임 업계에 흥미가 있는 사람을 시야에 둔 접근도 행해져,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인 휴먼이 운영하는 휴먼 크리에이티브 스쿨과 공동으로 게임 소프트 제작 자의 육성도 시도되었다.

덧붙여 'PC Engine FAN'의 발행원인 도쿠마 서점 인터미디어도, PC 엔진 소프트웨어 개발 환경을 스스로 개발하여, '데베로 BOX'라고 칭하는 하드웨어를 지상 판매함과 동시에(1996년 2월 발매), PC엔진 유저 개발 시스템(개발 툴) '데베로 스타터 키트·어셈블러 편' '데베로 스타터 키트·BASIC편'을 출판하고, 후에는 '데베로 스타터 키트·어셈블러 편'과 '데베로 BOX'를 세트로 한 '데베로 스타터 세트'를 지상 판매하였다.
또한, 상점 소프맵과 협력해 '여신천국 II'를 동봉한 'Sofmap 특제 PC-FX 한정 Version 여신천국 II 포함'도 발매되었다.

3.5. 문제점

문제는 동영상의 품질은 자본과 역량이 결정하는지라 게임마다 품질이 균일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허드슨에서 내놓은 작품들은 당시 기준으로는 우월한 화질의 동영상을 보여주지만, 다른 중소 제작사의 게임들은 그러지 못하는 등 들쭉날쭉한 모습을 보인다. 소비자들에게 동영상 재생 능력으로 호소하기 위해 NEC 홈 일렉트로닉스를 필두로 모에를 노린 애니메이션 풍의 게임들을 잔뜩 발매했다. (대표적으로 퍼스트 키스 시리즈.) 이 때 NEC에서 뭔가 착각했는지 게임기 마케팅을 애니메이션의 유려함으로 강조하였고, 이를 PC-FX의 장점으로 부각시켰다. 그래서 상당히 많은 게임회사에서 게임과 상관없는 애니메이션에 들어가는 비용 때문에 손들기도 했다.

미소녀가 잔뜩 등장하거나 마치 한 편의 애니를 감상하게 하는 듯한 콘셉트의 게임은 일부 계층에게서 열렬한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당시 게임의 주류는 3D 기술을 십분 활용한 게임들이었다. 이 때문에 하드웨어의 장점은 물론 변변히 내세울 만한 게임조차 없었고, 도키메키 메모리얼도 이식을 고려했으나 애니메이션 때문에 중단했다.

그래서 나온 타이틀들은 만화인지 게임인지 구별이 어려울 정도[8]가 되어 오타쿠 하드로 완전히 낙인 찍혀 일반적인 게이머들에게서 외면당했고, NEC는 그렇게 고전을 계속했다.

초기 타이틀들에는 그나마 화려한 동영상 연출이 있어 독자적인 무언가를 갖고 있으나, 말기로 갈수록 동영상의 질조차 세가 새턴과 플레이스테이션보다 낮은 작품도 나왔다. 오프닝 영상은 그나마 선전했더라도, 게임으로 들어가면 심지어 슈퍼 패미컴급 이하의 그래픽을 보여주는 게임들도 있었다.[9]

더욱이 게임 발매의 한 축을 담당했어야 한 허드슨조차 PC 엔진 시절과 달리 런칭 타이틀 2개를 야심차게 발매한 후에는 뒤로 빠지고 시장을 관망한 상태로 이어졌고, 거의 말기에는 애니메이션 게임들과 칵테일 소프트 같은 성인용 PC 게임을 주로 제작하던 회사들에서 기존에 PC로 발매한 게임들의 마이너 이식판에 목을 맸다.

NEC 관계자와의 인터뷰에서 담당자는 허드슨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여 주길 바라면서 천외마경 3 같은 대작 RPG 타이틀의 개발 재개와 발매를 빙 둘러서 재촉한 듯한 말도 했지만, 허드슨에서는 당시에 세가 새턴 플레이스테이션, 슈퍼 패미컴 그리고 닌텐도 64 같은 타사 게임기에 게임을 발매하기에 바쁜 모습을 보였다.[10]

게다가 NEC도 또한 1995년에 MIPS Technologies 사에서 R4300i 기술을 허가받아 1996년부터 경쟁 게임기였던 닌텐도의 닌텐도 64에 훨씬 높은 성능의 64비트 CPU인 VR4300을 납품하기 시작하면서 거리를 두었다.

게다가 발매 예정 게임들은 언제 발매할지도 몰랐던 데다가, 미소녀 게임으로 편향하면서 지친 유저들이 등을 돌리면서 대중적인 지지를 얻는데 실패했다.

3.6. 몰락 및 사업 철수

결국 몰락이 발매 4개월 후부터 시작되었다. 도내의 가전 양판점에서 PC-FX의 매장 가격이 29,800엔으로 대폭 하락하였다. 다만 플레이스테이션과는 다르게 FX는 틈새 시장을 공략한 것이기에 경쟁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었지만 NEC에 지장이 간 건 사실.

이후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와 세가 엔터프라이즈에 의한 차세대기의 패권 다툼에서, 플레이스테이션이나 세가 새턴이 염가판을 차례차례로 발매됨에 따라, PC-FX도 1997년 1월에 오픈프라이스로(…) 가서 같은 해 6월에는 실매 가격이 14,800엔까지 대폭 가격 인하하여 판매되었다.

1998년 6월, 결국 NEC에서 드림캐스트 개발 참가 및 PC-FX 사업 철수를 발표하면서 끝났다. 그 때까지 출시한 게임 수는 고작 62개, 출하 대수는 40만 대, 판매 대수는 11만 1천 대[11]를 기록하고선 완전히 단종했다.

전작 PC 엔진이 누계 600만대 정도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너무나 참담한 패배를 기록함으로서 묻혀버렸고, 아울러 1953년부터 라디오 사업으로 시작해 텔레비전, VCR 사업을 통해 전성기였던 NEC 홈 일렉트로닉스는 PC-FX 사업을 마지막으로 2000년 3월 31일에 문을 닫았다. 그리고 NEC 인터채널은 2004년에 NEC 그룹에서 <인덱스>라는 일본 IT기업에 30억 엔에 매각하면서 최종적으로 게임 업계에서 철수했다.

4. 기타


PC-FXGA DOS/V 버전을 리뷰한 영상.

상술한 PC-FXGA는 PC-9801용(C버스)과 DOS/V용(IBM PC 호환 기종 ISA 버스) 두 가지가 있는데[12], 전자는 그나마 구하기 쉽지만 후자는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고배속 CD-ROM 드라이브로 빠르게 읽어들일 수 있고, 하드 디스크를 저장소로 사용할 수 있어 저장 용량의 압박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컴퓨터 모니터로는 출력을 못하고 컴포지트나 S-Video 단자 입력을 받는 별개의 모니터를 필요로 하고, 별도의 전원 어댑터까지 요구한다. 유사한 케이스로 3DO 게임을 PC에서 플레이할 수 있게 하는 확장 카드인 3DO Blaster가 있는데 이쪽은 그래도 윈도우 기반이며 화면을 모니터에 띄울 수도 있다.

이 PC-FXGA의 특징이라면 상술 내용처럼 개발이 늦어져 본체에 탑재하지 못한 그래픽 프로세서를 탑재했다는 점. 3D 성능은 대략 플레이스테이션과 비슷하거나 그 이하급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개발 환경을 저렴하게 구축할 수 있는 것도 특징.

인디게임 FX 유니트 유키의 오프닝에서 JEC사에서 만든 FX 엔진이라는 게임기가 언급되는데, 실제로 PC 엔진 및 PC-FX를 만든 NEC사 및 두 게임기 이름의 패러디.

4.1. 롤피

파일:Rolfee.jpg

롤피(ロルフィー, Rolfee)는 소위 PC-FX의 "애니메이션 전략"을 대표하는 이미지 캐릭터로서 1995년 5월에 NEC에서 발표하였다. 디자인 역시 애니메이터인 타다노 카즈코가 담당하고, 성우는 당시 신인이었던 오오노 마리나[13]가 담당. 이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게임을 발매하기도 했는데, 게임 속에서의 나이는 12~13살이다. 풀네임은 'ロルフィー・リリアン'(롤피 릴리언).

이름으로 알 수 있듯이 로리 계통 캐릭터로서 광고에서 다음과 같은 대사를 날리고 다녔다.

5. 게임 목록

발매일(1994년 12월 23일)에 동시 발매 게임 3개(배틀 히트, 팀 이노센트, 졸업 Ⅱ)가 나온 지 3개월 동안(!) 신작 게임이 없다가 이듬해 3월에 드디어 발매한 게임이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 Queen of Queen」[14]이라는 괴이한 라인업을 보여준다. 게임 발매 목록을 보면 1996, 1997년에 더 많은 미소녀 게임들을 발매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시기의 미소녀 게임은 세가 새턴에도 동시에 출시했기 때문에 이 게임을 하기 위해 굳이 세가 새턴이 아닌 PC-FX에 손을 대는 사람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상술 내용대로 후기로 갈수록 허드슨의 작품이 줄어든 현상이 발생한 것도 특징. 가장 많은 게임을 발매한 해가 1996년으로서 24개이다. 이 밖에도 괴작으로 여겨지는 게임이 또 있는데, 바로 버블보블 시리즈의 미소녀 모에 버전 액션 게임 "칩짱 킥!(チップちゃんキック!/Chip Chan Kick!)"이다.

아래는 발매일자에 따라 정렬한 대표작들. ANIME FREAK 시리즈를 휴넥스에서 6판까지 내놓았지만 게임이 아니며, 칵테일 팩은 피아캐롯과 캉캉바니의 합본판이므로 제외. "18세 이상 추천 게임"은 기울임체로, "18금" 게임은 볼드체로 표기.

6. 대한민국에서

모국인 일본에서조차도 고전한 게임기인지라 인접국가인 한국에서의 취급은 더 처참했는데, 게임라인( 대한민국 게임잡지)의 독자 가운데 한 명이 "PC-FX 관련 정보는 왜 맨날 2 페이지? 페이지 좀 늘려주세요."라고 요청하자, 기자가 "저도 가슴이 아프지만 나오는 정보가 없어서 늘릴 수가 없습니다."라고 답변하였다. 그나마 이 게임기를 적극적으로 홍보한 한국의 잡지는 슈퍼게임이 유일하다. 더욱이 슈퍼게임에서 PC-FX 관련 정보를 자주 가지고 다룬 이유는 18금과 18추 게임들을 발매한 하드이기 때문에 널널한 복장(?)의 미소녀들이 나오는 게임 화면을 싣는 거만으로도 애들의 코묻은 돈을 뜯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 편집부의 오산에 기인한 바가 크다고 하겠다.
한국에서는 그다지 써 보진 못했지만 말은 많이 들어 주야장천 까인 게임기라 할 수 있다.
[1] 마지막 게임은 98년 4월 발매 [2] 1995년 4월 → 1997년 1월. [3] 그 당시 49,800엔이면 플레이스테이션에 돈 조금만 더 들여 게임 2개를 살 수 있었다! [4] PC 엔진팬 1994년 8월호 12 페이지 [5] 게임기의 하위호환을 확보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메가드라이브가 마스터 시스템과 손쉽게 하위호환이 되는 것은 마스터 시스템의 CPU인 Z80이 메가드라이브의 음원용 보조CPU로 활용되며 구조도 단순했기에 가능한 일종의 기적이었던 것. 플레이스테이션 1-2-3의 하위호환도 비슷한 사정이다. [6] "32비트 RISC CPU를 채용, 영상 처리용 칩셋에 허드슨제를 채용, 게임 매체는 CD-ROM을 채용하여 실사 영상이나 애니메이션을 가져와 재생 가능" [7] PC-FX 자체는 후술한 것처럼 모에 게임 위주로 유명하지긴 했는데, 좀 다른 측면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드림캐스트 말기에 쏟아진 에로게들의 게임기 전연령 버전 이식은 상당수가 NEC 자회사인 NEC 인터채널의 손을 거쳤다. [8] 허언이 아닌 것이 사실 3DO도 반쯤은 거의 영화를 보고 하는 인터랙티브 무비 장르가 절반가량을 차지했다. [9] 일부 게임은 정말로 PC 엔진 정도로도 표현할 수 있는 그래픽으로 만들어놨다. 명색이 32비트인데 8비트 게임기랑 다를 바가 별로 없는 것은 큰 문제. 대표적으로 칩짱 킥이 있다. [10] 이미 FX의 저조한 보급률을 파악하여 결국 3탄의 개발을 취소하였고, 새턴으로 제4의 묵시록을 제작 발매하여 높은 완성도를 선보였다. [11] 아사히 신문 2001년 12월 1일 석간, 위크엔드 경제 제765호 "그 실패가 이렇게 태어났다." [12] 당초에는 PCI용도 발매 예정이었지만 개발 취소된 모양. [13] 이후로는 주로 에로게 위주의 커리어로 활동하는 성우가 되었다. [14] 실사 여자 레슬러들이 나오는 게임. [15] 상술했듯이, 그나마 수작으로 분류한 위의 3개를 발매하고 3달 만에 발매한 게임인데, 실사 여자 레슬러들이 나와서 싸우는 작품이다. 콘셉트도 그렇지만 게임 영상을 보면 괴작 냄새가 풀풀 풍기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FX 유저들에게 이런 게 먹혔을 리 없는데,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FX 유저들의 반응을 아직도 볼 수 있다(...). [16] 이게 허드슨에서 PC-FX용으로 낸 마지막 작품이다. [17] FX 게임 소프트 중 가장 많이 팔렸다. 약 4만장 판매. 다만 이식도는 썩 좋지 못한 편. [18] 해당 링크 열람 시 일본어 주의. 플레이 영상을 보시면 알겠지만 이 게임은 상술했듯이 괴작(?)답게 온갖 서비스신이 난무하는 미소녀 버전 스노우 브라더스이다(...). 성우진만큼은 화려한데, 칩(チップ)은 혼다 치에코이고, 챕(チャップ)은 코오로기 사토미이며, 아리나(アリーナ)는 마츠이 나오코, 와루비트(ワルビット)와 그 일당인 마론(マロン), 미리(ミリー), 무나(ムーナ), 메루(メル), 몰리(モーリー)는 각각 마츠모토 야스노리, 미즈타니 유코, 오리카사 아이, 야지마 아키코, 타카하시 미키, 아사미 준코로 포진했다. [19] 분명 광고는 FX 런칭 시절부터 했는데, 나오기는 1998년이 다 되고 PC-FX가 철수할 때가 되어서야 나왔다(...). 성우 미즈하시 카오리의 명목상 데뷔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