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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4 12:25:24

IBM PS/2

IBM PC 제품 역사
PC XT jr AT P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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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모델3. 하드웨어
3.1. 마이크로 채널 아키텍처(MCA)3.2. 그래픽3.3. 사운드
4. 운영체제5. PS/2의 유산

1. 개요

IBM이 IBM PC(5150), IBM PC XT, IBM PC AT에 이어 1987년에 발표한 제 3세대[1] IBM PC 규격 컴퓨터이다. PS/2는 Personal System/2의 약자.

IBM은 1981년에 IBM PC를 발표하면서 개방 아키텍처 정책을 적용했고 이에 따라 시장에는 IBM PC의 호환 기종이 성공적으로 보급되었다. 그러나 개방 아키텍처의 특성상 호환 기종이 넘쳐난다고 해도 IBM에게 돌아오는 이익은 그다지 없었고 컴팩이 1986년, IBM보다 앞서서 인텔 80386을 채용한 IBM PC 호환 기종인 Deskpro 386을 발표하면서 PC 시장의 주도권이 IBM에서 호환 기종 제조사들로 넘어가는 사건마저 생기자[2] 이에 IBM이 성장하는 PC 시장에 대한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후속 기기로 PS/2를 만들었다. PS/2의 특징은 개방 아키텍처 정책을 폐쇄형으로 전환한 것이다.

PS/2는 MCA(Micro Channel Architecture) 같은 32비트 확장 슬롯, VGA 등의 새로운 기술을 선보였지만 PC 시장의 주도권은 이미 완전히 IBM PC 호환 기종 제조 기업들에게 넘어간 뒤였고, 폐쇄 아키텍처라는 점과 비싼 가격[3] 때문에 시장의 반향은 얻지 못했다. 다만 IBM 브랜드의 신뢰성 덕분인지 기업 시장에서는 꽤 팔렸다고 한다. 결국 IBM은 PS/2 시리즈를 마지막으로 새로운 아키텍처 규격의 컴퓨터를 내놓지 않았다. IBM PC 호환 기종 아키텍처의 주도권은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호환 기종 제조 기업들 일명 윈텔 진영으로 넘어갔다. 여담으로 IBM PC는 애플 II와 똑같은 수순을 밟았다. 애플 II 역시 처음에는 개방 아키텍처로 만들어서 수많은 호환 기종이 나왔고 1984년 애플 IIc에서 폐쇄 아키텍처로 전환했으나 별 재미를 못보고 애플 II 시리즈 자체를 접었다. 다른 점이라면 IBM PC는 IBM이 PS/2에서 손뗀 뒤로도 계속해서 IBM PC 호환 기종 기업들을 중심으로 발전해서 결국 개인용 컴퓨터 시장의 지배자가 되었다는 것 정도.

2. 모델

1987년 4월 발표 당시의 모델은 다음과 같다. (단, 모델 25는 1987년 4월 당시에는 없었고 수개월 후에 추가한 저가형 제품군이다.)
모델 25, 30은 기존의 IBM PC XT(5160)를, 모델 50, 60은 IBM PC AT(5170)를 대체하는 기종이었고 모델 80은 PC AT의 상위 모델이자 IBM제 386 PC로서 처음 나온 기종이었다. 초기 제품군으 저랬으나 이듬해인 1988년에 모델 25, 30도 인텔 80286 모델이 나왔고 후기로 가면 하위 모델인 모델 25, 30에 인텔 80386SX를 달기도 하고 모델 80은 80486 탑재 모델도 나왔다. 당연히 인텔 8087, 인텔 80287 등의 부동소수점 연산용 보조 프로세서를 설치할 수 있었고 하드디스크가 없는 일부 모델은 옵션으로 하드를 장비할 수도 있었다.

3. 하드웨어

3.1. 마이크로 채널 아키텍처(MCA)

PS/2는 기존의 AT 버스(ISA)를 내다버리고 새로운 시스템 버스로 MCA를 채택했다. 당시 ISA는 16비트 채널의 한계로 인해 느린 속도와 제한된 접근 자원, x86 CPU 하드웨어 의존성(즉, x86 이외의 다른 아키텍처에서의 사용이 어렵다) 등으로 한계를 드러내고 있던 시점이었다. MCA는 IBM의 메인프레임, 워크스테이션에서 사용하던 버스 구조를 기반으로 만든 32비트 버스로 ISA를 월등히 능가하는 성능을 지니고 있었지만 문제는 IBM이 이 규격을 IBM PC 호환 기종 기업에 개방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결국 PS/2에 사용하는 주변 기기는 모두 PS/2 전용으로 만들 수 밖에 없었다. PS/2의 폐쇄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바로 이 MCA였다.

여담으로 IBM의 이런 정책 때문에 IBM PC 호환 기종 진영에서는 이에 대항해 EISA(Extened Industry Standard Architecture) 규격을 만들었다. 1988년 컴팩, HP, NEC 등을 비롯한 IBM PC 호환 기종 기업[5]이 주도하여 ISA를 대체할 32비트 버스 개방 규격으로 만들었다. EISA는 이론적으로는 MCA에 필적하는 성능을 지니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기존의 ISA와의 호환성을 중시하다보니 최적화가 어려워 성능이 MCA에 비해 좀 떨어졌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EISA도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386이 IBM PC 호환 기종 가정용 시장으로 내려왔을 때인 1990년대 초반에도 여전히 ISA가 지배적으로 쓰이고 있었다. 32비트를 요구할 만한 대역폭을 가진 확장 카드가 특수한 용도가 아니고서는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ISA의 대역폭으로 부족해진 시기는 486 시대였고, 그래픽 카드들이 그러했다. 그래서 32비트 확장 슬롯이 필요했지만 이때 EISA나 MCA 같이 완전히 새로운 슬롯이 아닌, ISA 옆에 추가로 슬롯을 붙인 형태의 VESA 로컬 버스를 사용했다. ISA 규격은 1993년에 와서야 PCI의 등장으로 인해 서서히 쇠퇴되어, 펜티엄 4 시대 쯤에 완전히 도태되었다.

3.2. 그래픽

모델 25와 30은 MCGA(Multi Color Graphics Array), 모델 50부터는 VGA(Video Graphics Array)를 채용했다. 양쪽 다 그래픽 카드의 형태가 아닌 메인보드에 내장한 회로의 형태였다. 'Array'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도 그래서이다.

당시의 VGA의 성능은 256KB의 비디오 메모리를 갖추고 320×200 해상도에서 262,144색 팔레트 중 256색, 640×480 해상도에서 262,144색 팔레트 중 16색을 표현할 수 있었으며 CGA(PCjr의 CGA plus 포함), EGA와도 상위 호환성을 갖추고 있었다. 동시대의 개인용 컴퓨터 중에서 해상도는 몰라도 색상 표현이 떨어진다는 이미지가 있던 IBM PC지만 VGA의 등장으로 그 격차를 따라잡을 수 있었고 PS/2 전용이었던 VGA를 사용하고 싶었던 IBM PC 호환 기종 사용자들을 위해 그래픽 카드 제조사들은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통해 IBM의 VGA와 호환성이 있는 그래픽 카드를 만들어 시장에 내놓았다. 그리고 VGA는 IBM PC 호환 기종 시장의 표준 그래픽 카드가 되었다. 그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VGA가 ' 그래픽 카드'와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을 정도. 기타 VGA에 대해 상세한 내용은 VGA 문서를 참조하기 바란다.

MCGA는 저가형 그래픽 어댑터로 320×200 해상도에서 262,144색 팔레트 중 256색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640×480 해상도에서는 흑백만 출력할 수 있었다. VGA의 320×200 해상도로 만들어진 소프트웨어는 MCGA에서도 똑같이 실행할 수 있었다. 텍스트 모드는 VGA, EGA에 준하는 고해상도 컬러 텍스트 모드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CGA와의 호환성은 있었지만 EGA와의 호환성은 없었다. 그래서 VGA는 비디오 카드의 형태로도 만들어져 시장에서 대성공했지만 MCGA는 여러 이유로 굳이 비디오 카드 형태로 만드는 기업이 없었다.

또한 IBM은 옵션으로 MCA 슬롯에 장착할 수 있는 8514/A[6]라는 비디오 카드를 제공했는데, 1024×768 해상도에서 256색을 표현할 수 있었는데 당시에는 굉장했다. 뿐만 아니라 전용 이미지 처리 프로세서를 탑재해서 이미지 출력 속도도 VGA보다 훨씬 빨랐다. IBM이 8514/A를 제공한 것은 GUI 운영 체제인 OS/2를 원활하게 사용하기 위해서였는데 문제는 이 작자들이 8514/A의 기술 규격을 꽁꽁 숨겨 놓는 바람에 VGA처럼 호환 카드가 나오지 않았다. 덕분에 이후의 서드파티 비디오 카드는 VGA를 확장한 SVGA로 독자적인 발전을 하면서 PS/2에서만 쓸 수 있던 8514/A는 역사의 그늘에 묻혔다. 엄청 나중에 호환 카드가 나오긴 나왔다지만 이 때는 이미 SVGA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 8514/A는 나중에 XGA로 발전하지만 SVGA의 아성을 넘을 수 없었다.

3.3. 사운드

끝까지 업무용 컴퓨터를 지향했던 IBM은 아미가, 애플 IIGS 같은 시대의 흐름을 무시하고 PS/2에도 PC 스피커만 넣었다.

폐쇄 규격인 MCA를 사용한 덕분에 사운드 카드를 달기도 힘들었다. 시장에 나와 있는 사운드 카드는 죄다 ISA용이었기 때문이었다. 애드리브 사운드 블라스터가 MCA로 나오긴 했지만 한국에선 구하기 엄청 힘들었던 터라 당시에 PS/2를 썼던 극소수의 한국 유저들은 대부분 눈물을 머금고 PC 스피커로 게임을 할 수밖에 없었다.

4. 운영체제

컴퓨터에 같이 포함했던 운영 체제는 PC-DOS 3.30였다. 그리고 OS/2를 PS/2와 함께 발매했다. 이름부터 짝을 맞춰 지었고 원활한 구동을 위해 전용 그래픽 카드인 8514/A를 만들었을 정도로 OS/2를 PS/2의 운영 체제로 의식하고 만들었지만, PS/2에서만 구동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각 운영 체제의 상세한 내용은 각각의 항목을 참조하자.

5. PS/2의 유산

PS/2 자체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지만 PS/2에서 처음 도입한 규격이 IBM PC 호환 기종에 영향을 끼친 게 상당히 많다.
[1] 5150과 XT는 사실상 마이너체인지 수준으로 거의 비슷한 구조라서 같은 세대로 본다. [2] 심지어 당시만 해도 개발도상국에 속했던 대한민국의 금성반도체도 IBM보다 앞서서 1986년에 386 기종을 내놓았다. [3] PS/2만의 문제는 아니고 원래 이전 모델들도 오리지널 IBM PC들은 IBM PC 호환 기종 컴퓨터들보다 많이 비쌌다. [4] 인텔 8088이 아니라 인텔 8086을 채용했다. [5] 9개의 업체가 컨소시엄을 이루었기 때문에 이들을 4인방(Gang of Four)에 빗대 'Gang of Nine'이라고 불렀다. [6] VGA와 달리 이름이 숫자와 로마자로만 되어 있는 이유는 이 제품이 IBM 8514 모니터와 짝이었기 때문이다. 8514 모니터는 1987년 당시에는 드문 1024×768 해상도를 지원하는 16인치 크기의 모니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