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히트곡 | ||||
1980년대 | 1990년대 | 2000년대 | 2010년대 | 2020년대 |
1. 19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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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 창밖의 여자
작사: 배명숙 / 작곡: 조용필
1980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 최고 인기 가요상 수상곡, 조용필이 10대 가수 가요제 최고 인기 가수상과 TBC 방송가요대상 남자가수상을 수상할수 있게 해준 3관왕 히트곡
2. 198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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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 &
작사: 백기완, 황석영 / 작곡: 김종률 - 민주화운동가, 노동운동가였던 윤상원 열사와 박기순 열사의 영혼 결혼식을 극화한 음악극에 삽입된 노래. 백기완의 시 묏비나리에 곡을 붙였다. 5.18 민주화운동을 추모하는 곡으로 전국적으로 알려졌고, 결국 대한민국의 시민 운동을 상징하는 노래가 되었다. 1980년대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밖에 없는, 시대를 논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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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 고추잠자리
작사: 김순곤 / 작곡: 조용필
1980년에 이어 MBC 10대 가수 가요제 최고 인기 가요로 선정, 조용필에게 최고 인기 가수상을 다시 한번 안겨준 노래이자 당 해 다른 노래로 KBS 가요대상까지 석권한 전무후무한 조용필의 열기를 상징하는 노래
3. 198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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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골매 -
어쩌다 마주친 그대, 모두 다 사랑하리
어쩌다 마주친 그대 작사/작곡: 구창모
모두 다 사랑하리 작사: 김정선 / 작곡: 김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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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 -
잊혀진 계절
작사: 박건호 / 작곡: 이범희
당대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던 조용필의 '비련'을 제치고 1982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 최고 인기 가요상 수상, 이용에게 최고 인기 가수상을 안겨준 히트곡
- 조용필 - 못찾겠다 꾀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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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일밴드 -
아파트
작사/작곡: 윤수일
1980년대 대표적인 국민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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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 - 잡초
작사/작곡: 나훈아 - 1982년 발표되어 2000년대까지 나훈아 모창하면 무수히 불리던 나훈아의 대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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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숙 - 포장마차
작사: 김미선 / 작곡: 김재일 - 현숙의 히트곡 중 하나로, 1982년 10월 라디오 방송횟수 단일곡 순위 1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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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록 - 종이학, 지나간 시절의 연가
종이학 작사: 이건우 / 작곡: 이범희
지나간 시절의 연가 작사: 이건우 / 작곡: 이범희 - 전영록은 군복무 시기 2년 가량의 공백기가 있었다. 연예인으로서는 상당한 위기인데, 1982년의 이 앨범으로 어느 정도 재기에 성공하였다. 특히 종이학은 전영록의 군복무 시절 정아라는 소녀팬이 자신의 시한부 생명을 고백하며 종이학을 접어 매주 편지를 보내다가 끊어졌는데, 그 소녀의 친구가 자기가 대신 보낸다는 편지와 함께 이어졌다. 이 사연은 전영록의 팬클럽 천학클럽이 결성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방송국에는 신청곡과 함께 엄청난 종이학이 쏟아들어졌다. 이 문서에 등재될 정도의 히트라고는 보기 어려우나, 전영록의 이 노래로부터 종이학을 접는 풍습이 널리 퍼졌음을 감안하면 사회현상을 일으킨 노래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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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태 -
독도는 우리땅 #, 코끼리 아저씨 #
독도는 우리땅 작사/작곡: 박인호
코끼리 아저씨 작사/작곡: 변규만 - 위의 두 노래는 웃기는 노래와 웃기지 않는 노래라는 음반에서 발표되었다. 이 노래는 당시 언더그라운드라 부를 수도 있을, 아직 데뷔하지 않은 젊은 대학생 아마추어들을 매의 눈으로 노린 서희덕이 대성기획에서 발표한 음반에 수록되었다. 그런데 재기 넘치는 대학생 신인들을 발굴하고자 한 이 음반에서는 의외로 개그맨 출신인 정광태의 노래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였다. 박인호는 작곡가이면서도 방송 작가로 일하고 있었는데, 일본의 독도 관련 망언을 접하고 극대노 상태에 돌입해 1주일 만에 노래의 작사 작곡을 마치고, 자신이 작가로 일하던 유머 1번지를 통해 노래를 소개하고자 하였다. 임하룡과 정광태 외 2인이 포졸 모습으로 부른 이 노래의 반향이 있어 한가하던 정광태가 제작사를 돌아다니다 서희덕이 웃기는 노래와 웃기지 않는 노래에 넣어주기로 했다. 원래는 개그 프로그램에서 불렀던 개그맨 4명이 같이 녹음을 하려고 했으나 서희덕이 지각을 하면서, 인기개그맨인 임하룡을 3명이 스케쥴 때문에 자리를 뜨고 말았다. 덕분에 그냥 한가해서 기다릴 시간이 있었던 정광태가 이 노래를 통해 히트 가수로 거듭나게 된다. 사실상 82년 노래 중 가장 널리, 오래 불리는 히트곡. 정광태의 수많은 노래가 시대의 흐름에 촌스러움과 함께 퇴색되고 잊혀지고 있지만 독도는 우리땅만큼은 끈질기게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당시 전두환 정부는 엄청난 인기를 끌던 이 노래가 혹시라도 일본을 자극할까 한 때 금지를 때린 적이 있으나, 그딴 것쯤은 무시하고 되살아난 이 곡은 한일관계의 근본이 달라지기 전까지는 그 수명을 유지할 듯 싶다. 또한 코끼리 아저씨는 화창한 봄날에 코끼리 아저씨가 가랑잎 타고 태평양 건너갈 적에 고래 아가씨~ 하는 노래다. 재미있게도 이 노래의 원래 타이틀곡 가수는 신형원이고, 작사 작곡가는 한돌이다. 둘의 결합물은 87년에 커다란 흔적을 남기게 된다.
4. 1983년
- 현철 - 사랑은 나비인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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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운도 - 잃어버린 30년 &
작사: 박건호 / 작곡: 남국인 -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대표하는 노래며 최단시간 히트곡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되었다. 원래 그리운 나의 아버지라는 노래였으나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란 프로그램을 보고 난 이후 소속사 사장이 바로 꽂혀서 개사 후 설운도를 프로그램에 투입했다. 또, 당시 소속가수 중 스케쥴이 비어 있는 가수는 설운도 밖에 없었다. 그 뒤 프로그램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 노래로 설운도는 최초로 KBS 가요대상 본상[3] 후보에 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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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라 - 아 대한민국 &
작사: 박건호 / 작곡: 김재일 - 정수라는 어려서부터 cm송 녹음 등으로 잔뼈가 굵었으나 성인이 되고 나서 발표한 두 장의 음반 중 한 장은 신통한 결과를 얻지 못하고 두 번째 음반은 그저 그런 결과로 남는 등 생각보다 고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이 때 정수라는 건전가요 모음집에 한 다리 끼게 되는데, 장재현이란 남자 가수와 함께 듀오로 아 대한민국을 부르게 된다. 본래 건전가요는 앨범에 최소 1곡씩 억지로 넣게 되어 있는 거라 에라 처먹어라 하는 식으로 앨범 제일 마지막에 아무렇게나 넣는 노래가 많았으나 의외로 작사가와 작곡가가 성의를 다해 만든 이 노래는 거대한 히트를 치게 되었다. 정수라는 정규 1집으로 불리는 두 번째 음반을 새로 취입하면서 이 노래를 끼워넣었다. 83년은 북한 땅굴 아웅산 테러 여객기 테러 등 흉흉한 사건들이 많이 터졌는데, 이렇게 위축되었던 당대의 민심을 달래주는 듯했던 데다가 관에서도 이 노래를 주야장천 틀면서 더더욱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80년대를 지나 90년대에서도 초등학교 운동회나 각종 방송에서도 많이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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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록 -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작사: 유명진 / 작곡: 남국인 - 원래 주현미의 데뷔곡으로 발표하려다 전영록이 노래와 가수가 안 어울린다고 하여 본인이 가져가 락으로 편곡하여 발표한 노래. 그러나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한창 활동을 해야할 시기에 방송 출연을 금지당했기 때문에 당시 가요 톱텐에서 1위를 많이 했다거나 그러진 않았으나 유쾌한 가사와 멜로디로 인해 전영록의 노래 중 가장 오래 사랑받고 있다.
5. 198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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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철 -
젊은 그대, 못다핀 꽃 한송이
1984년 KBS 가요대상 남자가수상 수상
작사: 안양자 / 작곡: 김수철 - 못다핀 꽃 한송이는 김수철이 '작은 거인'으로 있을 때 발매하여 이미 1983년 KBS 가요대상 록그룹상 후보에 들었었지만 솔로로 발매하고 많은 사랑을 받으며 1984년 KBS 가요대상에서 같은 노래로 남자가수부문 후보에 들었고, 이 노래들로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 처음 10대 가수로 참가했다. 김수철을 조용필이 한창 대상을 휩쓸던 시기에 대상을 받은 셋뿐인 가수로 만들어준 노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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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봉 -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작사/작곡: 심수봉 - 외항선원 남편을 둔 친구가 남편과 인천부두에서 헤어지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울었던 실화를 본인이 노래로 표현한 심수봉의 히트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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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희 -
J에게
작사/작곡: 이세건
1984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 최고인기가요 수상곡 - 강변 가요제 에서 그당시 인천 대학교 재학 중 이었던 이선희가 같은 써클에 있던 선배 임성균과 써클 이름 이었던 4막 5장 을 팀명으로 하여 대상을 수상한 노래. 가수들이 부르기를 거부하여 작곡가가 장욱조 음악 사무실 쓰레기통에 버렸던 악보 뭉치속에 있던 노래를 발견하여 작곡가를 유명하게 만든 노래라 한다. 가요제 대상 수상 이후 같이 참가한 임성균과 4막 5장 이라는 팀 그대로 쇼 2000에 한번 출연하고 난후 임성균이 군대를 간 이후 이선희 혼자 불러 알려진 곡. MBC 강변가요제하면 이상은의 담다디와 함께 떠올리는 곡으로, 교과서에 실렸을 정도로 히트했다. 다만 국민가요 수준의 히트곡이라는 것은 과장으로, 이 문서에 수록된 다른 1980년대 노래들과 비교하면 중~중하 정도에 속한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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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하 - 사랑도 못해본 사람은
작사/작곡: 김창완
1984년 KBS 가요대상 여자가수상, 1985년 가요톱텐 골든컵 수상곡 - 이은하가 변화를 꾀하던 시기에 김창완에게 받은 노래이기도 하다. 당시 이은하는 '바람에 구름 가듯'으로 1983년을 보낸 상황이었는데, 새로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김창완에게 의뢰해서 받은 곡이 '사랑도 못해본 사람은'이다. 이은하는 이 노래로 1984년 KBS 가요대상 여자가수상[5]을 수상하며 다시 한번 정상에 돌입하게 된 노래이다. 또한 1985년 1월에는 가요톱텐에서 정상까지 치고 올라와 5주 연속 1위를 기록하며 골든컵을 수상했다.
- 조용필 7집에 수록된 2곡이다. 어제 오늘 그리고로 조용필은 가요톱텐 골든컵을 수상했다. 작사가인 하지영은 일반 주부이지만 조용필의 대부분곡을 작사 했으며 벗님들의 <사랑의 슬픔>을 작사 하기도 했다. 여행을 떠나요는 80, 90년대 대표 피서곡으로 유명하다.
6. 19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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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룡 - 바람 바람 바람
작사: 김범룡 / 작곡: 김범룡 - 김범룡의 데뷔 곡으로, 1985년 대단한 인기를 끌며 KBS 가요톱10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해 골든컵을 수상했고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조용필, 이은하, 전영록 등 쟁쟁한 가수들의 노래를 제치고 최고 인기 가요상을 수상했다.[6]
1985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 최고 인기 가요상, KBS 가요대상 남자 신인상 수상, 가요톱텐 골든컵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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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태 - 김치 주제가 #, 짜라빠빠 #, 힘내라 힘
작사 / 작곡: 박인호 - 거의 말을 멎게 할 정도로 불후의 명곡들이 가득 담긴 음반이 1985년 6월 30일에 발매되었다. 독도는 우리땅으로 거대한 선풍을 일으켰던 개그맨 출신 가수 정광태와 작사 및 작곡의 박인호가 다시 한 번 뭉쳤던 것이다. 당시 독도는 우리땅에 대한 일본 반응을 두려워한 썩어빠진 정치권의 탄압과 더불어 비웃음거리 혹은 가사 수정 등으로 울분을 삼키던 박인호가 자신의 페르소나인 정광호를 기용해 불의부당한 탄압에도 굴치 않고 다시금 이 땅에 우리말로 된 활기찬 개그송의 열풍을 불러일으키겠다는 거대한 포부를 토하며 앨범 전곡을 작사, 작곡하는 노고를 감수했다. 딱 봐도 알 수 있듯이 전곡 모두 그 당시를 살았던 사람이면 J에게 같은 유행가는 몰라도 짜라빠빠, 힘내라 힘, 만약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등의 노래는 알고 있다. 메가히트곡이 3곡이나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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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은이 - 열정, 파란 나라 #
열정 작사: 양인자 / 작곡: 김희갑 / 편곡: 김명갑
파란 나라 작사: 지명길 / 작곡: 김명곤 / 편곡: 김명곤 - 열정도 어느 정도 반향을 얻은 곡이고, 후에 코요태가 리메이크하기도 하지만, 파란 나라 때문에 등재하였다. 열정은 혜은이 혼자서 불렀고, 파란 나라는 당시 어린이었던 최문정과 함께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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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국화 -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
세계로 가는 기차
행진 작사: 전인권 / 작곡: 전인권
그것만이 내 세상 작사: 최성원 / 작곡: 최성원
세계로 가는 기차 작사: 조덕환 / 작곡: 조덕환 - 간단히 얘기해서 한국 대중가요의 역사를 얘기하면서 들국화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대마초 파동 이후 한국 대중가요계에서 작가주의적 색채가 짙은 음반을 내는 가수는 김창완 정도뿐이었다. 하지만 들국화가 나온 이후, 혹은 들국화가 가장 먼저 나왔을 뿐? 어쨌건 들국화 이후 갑자기 한국 가요에 작가주의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앨범 자체로의 평가도 사실 말이 필요없다. 대중적인 히트 면에서도, 음반도 80만장 정도로 당시 최고의 대중 가수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는 이선희가 40~60만장 정도를 팔아치웠던 것을 생각해 보면 대단히 준수하게 팔렸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워낙 만듦새가 뛰어나고 칭송이 자자하니 젊은 세대들도 비교적 많이 아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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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창모 - 희나리
작사/작곡: 추세호
가요톱텐 골든컵 - 구창모의 솔로 데뷔곡이다. 이 노래로 구창모 개인이 최초로 KBS 가요대상 남자가수상 후보와 MBC 10대 가수 가요제 10대 가수로 선정되었고 가요톱텐 골든컵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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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 허공,
킬리만자로의 표범
허공 작사 / 작곡: 정풍송
킬리만자로의 표범 작사: 양인자 / 작곡: 김희갑
1986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 최고 인기 가요상, 최고 인기 가수상, 골든디스크어워즈 대상 수상곡 - 조용필 8집에 수록된 2곡이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그 시대 그 시절의 감성으로 충만한 조용필의 대표곡이라고 할 수 있다. 허공의 경우 타이틀곡으로 킬리만자로의 표범보다 당대 더 큰 인기를 끌었지만 더 길게 살아남았다.
7. 198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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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록 - 내 사랑 울보
작사: 장민규 / 작곡: 장민규
1986년 KBS 가요대상 남자가수상 수상곡 - 이 노래로 1986년 KBS 가요대상에서 남자가수상을 수상하면서 최종적으로 가요계 역사에서 조용필을 제치고 대상을 받은 셋뿐인 가수로 남게 되었다. 1986년 DJ들이 선정한 1위 곡에 선정되었고, 1987년 KBS 가요톱텐에서 2주 연속 1위를 기록했다.
8. 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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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은이, 최문정, 송영은 - 피노키오 #
작사: 지명길 / 작곡: 김남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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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원 -
개똥벌레
작사 / 작곡: 한돌 - 한돌과 신형원 콤비는 1982년 웃기는 노래와 웃기지 않는 노래라는 프로젝트 음반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아마추어 대학생 유망주들을 건지려던 이 음반에서 한돌과 신형원 콤비는 타이틀곡을 차지했으나, 이게 웬걸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괴상한 노래가 히트를 차지하며 둘의 노래 불씨 역시 라디오 신청곡 1위를 차지하는 등 상당한 반향이 있었음에도 스르르 묻히고 말았다. 이는 신형원이 얼굴 없는 가수로 활동할 정도로 숫기없는 성격이었던 것에도 기인한다. 그러나 1987년 발매한 2집 앨범에서 개똥벌레가 터지면서 신형원은 얼굴 없는 가수 신세를 벗어나 방송국에 진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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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리 -
립스틱 짙게 바르고
작사: 양인자 / 작곡: 김희갑 - 작곡가는 이은하를 주려고 만든 곡이었으나 임주리가 작곡가 집에 놀러갔다 악보를 발견해 2소절을 부르고는 전율이 왔다고 하여 취입하게 된다. 본래 별다른 반응이 없던 노래였고 임주리는 1993년 발매한 노래마저 실패하자 도미하여 사실상 가수 은퇴한 상태였으나 드라마 엄마의 바다에 삽입되며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임주리는 귀국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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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 -
땡벌
작사/작곡: 나훈아 - 본디 1987년 이 노래가 발표되었을 때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으나 2000년 강진이 다시 리메이크하며 입소문을 타더니, 2006년 조인성이 비열한 거리에서 부르고 2007년 소문난 칠공주에서 이승기가 부르며 2007년 kbs 뮤직뱅크에서 2000년에 발표한 트로트곡이 1위를 하는 기염을 토했다. 참고로 원곡이 후렴구를 한번 반복하는 것으로 끝났다면 강진의 리메이크 버전은 나훈아가 후렴구를 한번더 반복하는 것으로 하여 멜로디 일부를 다시 수정해 주고 가사도 일부분 고쳐준 것으로 유명하다. 강진이 나훈아에게 신곡을 써달라고 하지 않고 이곡을 달라고 해서 나훈아를 당황시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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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찾는 사람들 -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사계 &
작사/작곡: 안치환 - 6월 항쟁과 급격히 찾아온 사회 변혁의 물결 속에서, 투쟁의 현장에서, 진리의 상아탑에서 그리고 넥타이 부대들의 모임에서 안치환의 노래는 엄청난 파급력을 지니며 사회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후일 MC 스나이퍼, 거북이 등에 의해 리메이크되기도 한 이 노래들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최초로 정식 레코딩된 민중가요이며, 그 시대의 슬픔과 열정을 간직하고 있는 곡이다.
9. 19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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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나 -
손에 손잡고,
The Victory &
작사: 톰 휘틀록, 김문환 / 작곡: 조르조 모로더 - 한민족의 절반이 기나긴 고통에서 벗어나 세계 속에 합류함을, 세계적 제전을 개최하며 세계의 화합과 평화를 추구함을 외부에게 그리고 내부에 당당히 선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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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라 -
환희
작사: 박건호 / 작곡: 김명근
가요톱텐 통산 8주 1위[7] - 1980년대 후반 대형 여가수 중 트로트 가수인 주현미를 제외한 여가수 트로이카 정수라, 나미, 이선희 중 정수라의 대표곡이다. 싸이의 리메이크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정수라가 유일하게 골든디스크어워즈 본상을 수상한 곡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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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미 - 신사동 그 사람
작사: 정은이 / 작곡: 남국인/ 편곡: 김용년
1988년 KBS 가요대상, MBC 가요대제전 최고 인기 가요상, 최고 인기 가수상, 골든디스크어워즈 대상 수상곡 - 유례 없는 수상 기록을 남긴 히트곡이다. 당대 존재하던 3개의 가요 시상식의 대상을 전부 석권했다. KBS 가요대상도 기존 남녀가수상을 대상 하나만 주는것으로 바꿨기 때문에 이 해엔 주현미를 제외한 누구도 대상을 받지 않은것이 된다. 이 노래로 주현미가 정상에 오르면서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을 트로트 전성기로 만드는게 기여했다고 해도 될 정도다.
- 이문세 -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광화문 연가, 붉은 노을
88년 골든디스크어워즈 본상
88년 MBC 10대 가수 본상
* 이문세는 분명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린 가수는 아니었다. KBS 가요 톱텐 등 인기 차트에서도 정상을 차지하는 것은 힘겨웠다. 이문세의 지지층은 감성적인 여대생, 여고생들이 대다수였다. 반면 높은 작품성을 지닌 이문세의 노래들은 세월이 지나도 다른 히트곡들에 비해 바래지 않는 힘을 가지고 있었고, 세월이 흘러 한국형 발라드의 효시로 그 영향력을 인정받게 되었다. 본래 거대한 히트를 치지 않았고 1990년대 댄스지옥을 지나가며 조용히 잊혀지던 이문세의 노래들은, 인터넷의 발달과 더불어 오디션 프로그램의 등장으로 인해 갑자기 젊은 층에게로 재림해 버렸다. 이문세는 3, 4, 5집에 걸쳐 골든디스크 본상을 수상했지만 4집은 3집과 더불어 한국 100대 명반에서 순위권 안에 꼽혔을 뿐만 아니라. 5집의 세 노래들은 수많은 후배 가수들의 리메이크, 경연 프로그램에서 선정 등으로 많은 영향력을 발휘했다.
88년 MBC 10대 가수 본상
* 이문세는 분명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린 가수는 아니었다. KBS 가요 톱텐 등 인기 차트에서도 정상을 차지하는 것은 힘겨웠다. 이문세의 지지층은 감성적인 여대생, 여고생들이 대다수였다. 반면 높은 작품성을 지닌 이문세의 노래들은 세월이 지나도 다른 히트곡들에 비해 바래지 않는 힘을 가지고 있었고, 세월이 흘러 한국형 발라드의 효시로 그 영향력을 인정받게 되었다. 본래 거대한 히트를 치지 않았고 1990년대 댄스지옥을 지나가며 조용히 잊혀지던 이문세의 노래들은, 인터넷의 발달과 더불어 오디션 프로그램의 등장으로 인해 갑자기 젊은 층에게로 재림해 버렸다. 이문세는 3, 4, 5집에 걸쳐 골든디스크 본상을 수상했지만 4집은 3집과 더불어 한국 100대 명반에서 순위권 안에 꼽혔을 뿐만 아니라. 5집의 세 노래들은 수많은 후배 가수들의 리메이크, 경연 프로그램에서 선정 등으로 많은 영향력을 발휘했다.
- 이상은 - 담다디
- 1988년 MBC 강변가요제 대상곡으로 담다디 담다디 담다디 담~ 하는 멜로디는 누구나 들어 봤을듯. 이상은의 담다디 춤과 함께 보이시한 스타일도 화제를 모았고, 동명의 영화까지 만들어졌을 정도로 엄청나게 히트했으며 전 세대를 아우른 곡이다. 이상은이 제목을 후렴의 담다디로 바꾸고 댄스 곡으로 편곡했으며, 후에 태국에서 번안하기도 했다.
- MBC 대학가요제 역사상 최고의 명곡&히트곡으로 평가 받는 곡으로 지금도 응원가 & 치어리딩 단골 곡으로 사랑 받고 있다. 사실 이 곡은 목록의 다른 곡들처럼 당대에 엄청난 히트를 했던 것은 아니고 오랜시간 꾸준히 응원가로 쓰이면서 히트곡 반열에 오른 곡이라고 볼 수 있다.
- 당시 악기는 어느 정도 연주할 줄 알았지만 작곡에 대한 지식 및 경험이 전무했던 신해철이 집안의 반대가 심해 밤중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기타 한 대와 멜로디언을 불며 만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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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철 - 봉선화 연정
작사: 김동찬 / 작곡: 박현진
1989년 KBS 가요대상 수상곡 - 트로트의 전성기이던 1980년대 후반을 상징하는 노래 중 하나로써, KBS 가요대상에서 대상을, MBC에선 10대 가수에 들고 골든디스크어워즈에서도 본상 수상자에 들었다.
사랑의 불시착 작사: 이호섭 / 작곡: 김기표
한 앨범에서 가요톱텐 골든컵 2개 수상
* 이 시기 ㄱㄴ춤은 초등학생들도 장기자랑에서 모조리 따라할 정도로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한편 이 때 박남정의 백댄서 중에는 이주노와 양현석도 있었다. 훗날 전설이 될 문나이트 출신들이었으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 이 시기 ㄱㄴ춤은 초등학생들도 장기자랑에서 모조리 따라할 정도로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한편 이 때 박남정의 백댄서 중에는 이주노와 양현석도 있었다. 훗날 전설이 될 문나이트 출신들이었으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 동물원 - 거리에서,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 동물원은 당시 음악을 좋아하던 대학생들끼리 뭉친 아마추어 그룹으로 이후에 솔로로 독립하는 김광석이 소속되어 있었다.
동물원은 1집의 소소한 성공 이후로 곧바로 2집을 발매하게 된다.
10. 1989년
- 주현미 - 짝사랑
MBC 10대 가수 가요제 대상, 최고 인기 가요 수상곡
골든디스크어워즈 본상
작사/작곡: 이혜민골든디스크어워즈 본상
- 센세이션한 곡[8]으로 무명 듣보잡가수 김흥국이 이 곡 하나로 10대 가수에 선정되었으며, 이 곡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냐면 남녀노소 전국 방방곡곡 동네 애들까지 다 호랑나비 춤을 출 정도였고 비록 예능인 김흥국의 캐릭터에 기댄 것이긴 하지만 요즘 중·고등학생도 알 정도니, 엄청난 히트곡이다. 참고로 이 곡은 리메이크 곡으로 원곡자는 1985년의 이동기며, 2년 뒤에 김홍경이라는 가수가 리메이크한 적이 있다.
너에게로 또다시 작사: 박주연 / 작곡: 하광훈
1990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 대상 수상곡
1990년 골든 디스크 대상
* 1980년대 방송가 대상은 소위 말하는 기성가요와 기성가수들이 휩쓸었지 결코 신인으로 불리는 가수들이 수상한 적이 없었다. 1990년대로 접어들고 나서 반대가 되는 이 현상의 이유는 주로 판매량과 행사를 비롯한 실질적인 인기에 있다. 당시 소위 신인으로 분류되던 가수들이 비록 가요톱텐과 같은 텔레비전 차트나 방송 프로그램이나 라디오 등에서 활약을 하더라도 실질적인 판매량과 밤무대 행사 등 수입과 체감과 직결되는 인기는 기성가요들을 따라잡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청소년 가수인 이선희의 판매량이 50만장이 되지 않았으나, 변진섭의 2집 앨범은 190~198만장이라는, 거의 200만장에 가까울 정도로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며 MBC 대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 1990년대 가요계 황금기와 더불어 청소년 위주로 재편되는 가요계 판도에 대한 암시였다.너에게로 또다시는 이 앨범의 대표적인 발라드이며, 희망사항은 쉬운 멜로디와 재미 있는 가사로 남녀노소 큰 인기를 거두었다. 판매량으로도 알 수 있듯이 당시의 변진섭은 이문세의 뒤를 잇는 발라드 황제였는데, 희망사항은 당시 청년들의 감성을 멜로디와 가사 양면으로 솔직하면서도 부담없이, 재기발랄하면서도 야 저런 여자가 있다는 게/저런 여자를 좋아한다는 게 말이 되냐는 등의 재미난 논란, 가십, 그리고 1980년대의 거대담론 속에 침잠해 있던 시시콜콜함을 놀랍게 표현함을 통해 변진섭의 노래 중에서도 인기로는 정점을 찍었던 곡이다.
1990년 골든 디스크 대상
* 1980년대 방송가 대상은 소위 말하는 기성가요와 기성가수들이 휩쓸었지 결코 신인으로 불리는 가수들이 수상한 적이 없었다. 1990년대로 접어들고 나서 반대가 되는 이 현상의 이유는 주로 판매량과 행사를 비롯한 실질적인 인기에 있다. 당시 소위 신인으로 분류되던 가수들이 비록 가요톱텐과 같은 텔레비전 차트나 방송 프로그램이나 라디오 등에서 활약을 하더라도 실질적인 판매량과 밤무대 행사 등 수입과 체감과 직결되는 인기는 기성가요들을 따라잡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청소년 가수인 이선희의 판매량이 50만장이 되지 않았으나, 변진섭의 2집 앨범은 190~198만장이라는, 거의 200만장에 가까울 정도로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며 MBC 대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 1990년대 가요계 황금기와 더불어 청소년 위주로 재편되는 가요계 판도에 대한 암시였다.너에게로 또다시는 이 앨범의 대표적인 발라드이며, 희망사항은 쉬운 멜로디와 재미 있는 가사로 남녀노소 큰 인기를 거두었다. 판매량으로도 알 수 있듯이 당시의 변진섭은 이문세의 뒤를 잇는 발라드 황제였는데, 희망사항은 당시 청년들의 감성을 멜로디와 가사 양면으로 솔직하면서도 부담없이, 재기발랄하면서도 야 저런 여자가 있다는 게/저런 여자를 좋아한다는 게 말이 되냐는 등의 재미난 논란, 가십, 그리고 1980년대의 거대담론 속에 침잠해 있던 시시콜콜함을 놀랍게 표현함을 통해 변진섭의 노래 중에서도 인기로는 정점을 찍었던 곡이다.
- 태진아 - 옥경이
1989년 150만장 이상 판매 추산, 골든 디스크 본상
* 본디 나훈아를 위해 준비된 노래로, 조운파 일행이 맥주집에 처음 들어가서 쭈뼛거리고 있을 때 여급도 쭈뼛거리다 울음을 터트렸다는 일화로부터 탄생한 노래. 알고 보니 여급이 조운파의 어릴 적 소꿉친구였는데 두 사람의 처지가 너무나 극적으로 변모해 알아보고도 다가갈 수 없었던 것.
원래 고향 여자라는 제목의 정통 트로트 곡으로 만들어져 나훈아가 일본에 가서 편곡을 해서 취입을 하겠다고 했으나 8년동안 소식이 없다가 태진아가 작곡가 임종수를 찾아가면서 받아낸 곡으로 이곡은 원래 끝부분이 올라가지 않았으나 태진아가 끝부분을 올려서 끝내자고 해서 그렇게 바뀌었고 기타치는 친구와 함께 그 친구가 부른 <사찌코>라는 일본 노래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본인의 아내 이름을 발음하기 쉬운 <옥경이> 라는 제목으로 바꾸고 끝의 가사를 본인이 <고개숙인 옥경이...>로 바꾸고 정통 트로트에서 도입을 스윙으로 갔다가 후렴을 펑키로 바꾸어서 기타치는 친구와 편곡해서 유명해진 노래.* 본디 나훈아를 위해 준비된 노래로, 조운파 일행이 맥주집에 처음 들어가서 쭈뼛거리고 있을 때 여급도 쭈뼛거리다 울음을 터트렸다는 일화로부터 탄생한 노래. 알고 보니 여급이 조운파의 어릴 적 소꿉친구였는데 두 사람의 처지가 너무나 극적으로 변모해 알아보고도 다가갈 수 없었던 것.
- 나훈아 -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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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연 - 만남
작사: 박신 / 작곡: 최대석
1991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 대상 수상곡 - 히트 자체는 1990년대인 1991년에 쳤다. 히트 칠 때 각종 지표에서 중년 부인들과 외국인 등 각계각층에서 애창곡으로 인기를 끈 국민가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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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애 - 얄미운 사람
작사/작곡: 전영록
가요톱텐 골든컵 수상곡 - 1990년까지 연이어 히트친 히트곡이다. 김지애가 정상 가도로 달려가는데 큰 공여를 했으며, 트로트 전성기를 상징하는 노래 중 하나이다. 1989년 가요톱텐에서 1위에 올라 해를 넘기고 골든컵을 수상했다. 1990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10대 가수상을 수상하는것은 물론, 골든디스크어워즈와 서울가요대상에서도 본상에 들어갔다.
- 1989년 여름에 나온 곡이지만 1990년대 느낌이 나는 곡이고 그 아픔까지 사랑한거야, 슬픈 바다가 히트하면서 그 당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1]
정풍송의 필명이다.
[2]
최고 인기 가요는 이선희의 'J에게'가 받았다.
[3]
남자가수상과 여자가수상
[4]
조용필을 눌렀다고는 하나 조용필의 히트곡 중에서는 존재감이 미미한 축에 속하는 눈물의 파티를 눌렀을 뿐이다. 국민가요라기엔 조용필의 1980년대 초반 히트곡 행진에는 상대가 안 된다. 더더군다나, 해바라기의 사랑으로, 윤수일의 아파트, 김수희의 남행열차, 주현미의 잠깐만, 짝사랑, 신사동 그 사람, 200만장을 팔아제낀 변진섭의 전성기에 비교해도 끗발이 밀린다고 할 수밖에 없다. 서울 올림픽 분위기를 타고 미친 듯이 국뽕을 빨아제낀 환희, 똑같이 미친 듯이 국뽕을 빨아제꼈으며 아시안게임에서도 질리도록 틀어준 아! 대한민국 등 국뽕 전문 동시대 여가수 정수라의 두 노래에 비해서도 밀리는 편이다. 이선희는 현재의 아이돌을 향유하는 계층과 비슷한 계층에서 소비되는, 한정된 가수로서 국민가요라고 부르기엔 부족한데, 단지 그 세대가 2010년대쯤 들어 기성세대가 되고 나서 국민가수라고 지나치게 후광을 불어넣는 정도다.
[5]
당시엔 대상이 남자, 여자 2개였다. 여자가수상도 대상에 속한다.
[6]
최고 인기 가수상은 조용필이 가져갔다.
[7]
중간에 주현미의 '신사동 그 사람'과 조용필의 'Q'에게 1위를 뺏겨 골든컵을 수상하지 못했다. 참고로 최장 1위 기록은 총 4주다.
[8]
라디오 스타에서 김태원은 이 곡을 코리안 프로그레시브라 칭하며 매우 진보적인 곡이라고 평가했다. 김흥국: 난 보순데?
[9]
1990년의 KBS 파업으로 5주를 날려먹지 않았다면 골든컵도 가능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