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 27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rowcolor=#000,#fff> 성명 | 본적 | 훈격 |
<colcolor=#000> 가네코 후미코 | 일본 | 애국장 | |
강표도르 | 러시아 | 애국장 | |
곽원국 | 중국 | 애족장 | |
곽태기 | 중국 | 독립장 | |
김낙현 | 러시아 | 건국포장 | |
김문순 | 중국 | 애국장 | |
김미하일 | 러시아 | 애족장 | |
김봉환 | 중국 | 애족장 | |
김알렉산드라 | 러시아 | 애국장 | |
김완욱 | 중국 | 애족장 | |
김표돌 | 러시아 | 애족장 | |
당계요 | 중국 | 대통령장 | |
대립 | 중국 | 독립장 | |
더글라스 스토리 | 영국 | 애족장 | |
데이지 호킹 | 호주 | 건국포장 | |
두쥔훼이 | 중국 | 애족장 | |
로버트 그리어슨 | 캐나다 | 독립장 | |
롤랜드 베이컨 | 캐나다 | 애족장 | |
루이 마랭 | 프랑스 | 애국장 | |
마가렛 데이비스 | 호주 | 애족장 | |
마수례 | 중국 | 독립장 | |
막덕혜 | 중국 | 독립장 | |
모리스 윌리엄 | 러시아 | 독립장 | |
미네르바 구타펠 | 미국 | 건국포장 | |
박노순 | 중국 | 건국포장 | |
박병길 | 러시아 | 애족장 | |
박영 | 러시아 | 독립장 | |
사도덕 | 중국 | 독립장 | |
설악 | 중국 | 독립장 | |
셀던 스펜서 | 미국 | 애족장 | |
소경화 | 중국 | 애족장 | |
손과 | 중국 | 대통령장 | |
손문 | 중국 | 대한민국장 | |
송교인 | 중국 | 대통령장 | |
송미령 | 중국 | 대한민국장 | |
스탠리 마틴 | 캐나다 | 독립장 | |
스티븐 백 | 미국 | 애족장 | |
신창희 | 중국 | 애족장 | |
아치볼드 바커 | 캐나다 | 독립장 | |
어거스틴 스위니 | 영국 | 애족장 | |
어니스트 배델 | 영국 | 대통령장 | |
여천민 | 중국 | 대통령장 | |
올리버 애비슨 | 캐나다 | 독립장 | |
왕죽일 | 중국 | 독립장 | |
우빈 | 중국 | 대통령장 | |
윌리엄 린튼 | 미국 | 애족장 | |
유영요 | 중국 | 독립장 | |
이다물 | 러시아 | 애족장 | |
이백초 | 러시아 | 건국포장 | |
이병호 | 멕시코 | 건국포장 | |
이사벨라 멘지스 | 호주 | 건국포장 | |
이숙진 | 중국 | 애족장 | |
이와실리 | 러시아 | 애족장 | |
일라이 모우리 | 미국 | 독립장 | |
임삼 | 중국 | 대통령장 | |
장개석 | 중국 | 대한민국장 | |
장계 | 중국 | 독립장 | |
장군 | 중국 | 독립장 | |
저보성 | 중국 | 독립장 | |
제이 윌리엄스 | 미국 | 독립장 | |
제임스 크롬웰 | 미국 | 건국포장 | |
조지 쇼 | 영국 | 독립장 | |
조지 새넌 맥큔 | 미국 | 독립장 | |
조지 애쉬모어 피치 | 미국 | 독립장 | |
조지 윌리엄 노리스 | 미국 | 애족장 | |
존 스태거즈 | 미국 | 독립장 | |
주가화 | 중국 | 대통령장 | |
주경란 | 중국 | 독립장 | |
지영걸 | 중국 | 애족장 | |
진과부 | 중국 | 대한민국장 | |
진기미 | 중국 | 대한민국장 | |
진성 | 중국 | 대통령장 | |
진입부 | 중국 | 독립장 | |
찰스 토마스 | 미국 | 건국포장 | |
에드워드 러셀 | 미국 | 독립장 | |
최운산 | 중국 | 애족장 | |
토마스 라이언 | 아일랜드 | 애족장 | |
패트릭 도슨 | 아일랜드 | 애국장 | |
프레드릭 더글라스 | 미국 | 독립장 | |
프랭크 윌리엄스 | 미국 | 건국포장 | |
프랭크 스코필드 | 캐나다 | 독립장 | |
프레데릭 해리스 | 영국 | 독립장 | |
프레드 에이 돌프 | 미국 | 독립장 | |
프레더릭 매켄지 | 영국 | 독립장 | |
플로이드 톰킨스 | 미국 | 애국장 | |
하상기 | 중국 | 건국포장 | |
한사빈 | 러시아 | 애국장 | |
한창걸 | 러시아 | 애족장 | |
해리 화이팅 | 미국 | 애족장 | |
허버트 아돌프스 밀러 | 미국 | 독립장 | |
호레이스 뉴튼 알렌 | 미국 | 독립장 | |
호머 헐버트 | 미국 | 독립장 | |
호종남 | 중국 | 독립장 | |
호한민 | 중국 | 대통령장 | |
황각 | 중국 | 독립장 | |
황흥 | 중국 | 대통령장 | |
후세 다쓰지 | 일본 | 애족장 | }}}}}}}}} |
한문 | 黃覺 |
한국식 독음 | 황각 |
영문 | Huang Jue |
호 | 개민(介民) |
생몰년도 | 1883년 ~ 1956년 |
1. 개요
중화민국의 정치가.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황줴는 1883년경 중국 장시성 칭장현(현 중화인민공화국 장시성 이춘(宜春)시 장수(樟樹)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5년 일본 도쿄에서 쑨원이 조직한 중국동맹회에 가입했다. 동맹회는 삼민주의를 강령으로 삼고 무장 봉기를 통한 청나라 타도를 목표로 활동한 단체였다. 그는 이 단체에서 활동하다가 신해혁명 후 귀국하여 중화민국 정치인으로서 활동하는 한편, 신규식이 조직한 신아동제사(新亞同濟社)에 가입하여 한인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했다.1913년 일본으로 유학간 뒤 메이지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을 공부한 그는 미하일 바쿠닌과 표트르 크로포트킨의 저서를 탐독하면서 아나키즘을 자신의 사상으로 신봉했다. 1914년에는 중국공산당 창립 멤버 중 한 명인 리다자오(李大釗)와 함께 을묘학회(乙卯學會)를 조직하고 기관지 <민이(民彝)>를 창간하기도 했다.
황줴는 일본 유학 시절에도 한인 독립운동가들과의 연대를 계속하였다. 제3차 조선공산당 초대 책임비서를 역임하며 한국 공산주의운동의 핵심 인물로 성장하는 김철수 등과 손잡고 신아동맹당(新亞同盟黨)을 결성했다. 1916년 도쿄에서 조직된 신아동맹당은 김철수를 대표로 하는 한인과 황줴를 비롯한 중국인이 주축이 된 단체로, 아시아 민족의 반제민족해방운동을 추진한 비밀결사체였다. 여기에는 한인, 중국인 뿐 아니라 타이완, 베트남, 인도 출신 유학생들도 참여하였다. 신아동맹당 결성식에서 황줴는 모임의 대표로서 “아세아에서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새 아세아를 세우는 데 전력을 다할 것”을 선언하고, “검을 빼어 들고 엄숙히 맹서”했다.
신아동맹당 결성 후, 황줴는 조선을 방문하여 조소앙과 안재홍을 만나 그들과 함께 신아동맹당 조선지부를 만들고 대회를 열었다. 신아동맹당은 일제의 탄압 가능성을 고려하여 1917년 9월 30일 해산하였지만, 여기에 소속되어 있던 재일유학생들은 각자 가담하고 있던 공개조직을 통해 계속해서 반일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신아동맹당은 3.1 운동을 계기로 국내에서 처음 등장한 사회주의 정당인 사회혁명당의 모태가 되었고, 사회혁명당은 상하이에서 열린 고려공산당 창립대회에 참여함으로써 상해파 고려공산당의 국내기관으로 전환되었다.
1916년 하반기 무렵 중국으로 돌아온 황줴는 상하이에 터를 잡고, 일본의 21개조 요구에 반대하는 항일운동단체 구국단(救國團)을 조직하였다. 구국단은 학생들과 연대하여 기관지 <구국일보(救國日報)>를 발행하고 이를 구심점으로 삼아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한편 그는 여러 한인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였다. 우선 그는 1917년 조동호를 구국일보 기자로 채용하였다. 조동호는 구국일보 기자로서 신규식, 안창호를 비롯한 한인 독립운동가들은 물론 중국인들과도 폭넓게 교류하면서 이를 항일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하였다.
이어 황줴는 1918년 김홍일이 구이저우군관학교(貴州軍官學校)에 입학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황줴의 주선으로 구이저우군관학교에 입학한 김홍일은 그의 권유로 흥아사(興亞社)에 가입하였다. 김홍일은 흥아사에 가입한 뒤 여러 차례 황줴를 만났으며, 구이저우군관학교에 입학한 뒤에는 사관들을 흥아사에 가입시켰다.
황줴는 1920년 초 흥아사를 개조하여 대동당을 결성하였다. ‘삼평주의’(三平主義), 즉 민족평등, 국가평등, 인류평등을 종지(宗旨)로 삼은 대동당은 아나키즘적 색채가 농후한 단체였다. 대동당은 한인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인 한인사회당과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1918년 하바로브스크에서 한인사회당을 조직한 이동휘 등은 황줴와 긴밀한 연락을 주고받으며 대동당을 통해 중국인 혁명가들과의 연대를 추구하였다. 황줴 역시 한인사회당의 후원을 받으며 중국의 초기 공산주의 운동을 선도하였다.
황줴는 1925년 조소앙으로부터 <김상옥전>의 서문을 작성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의열단원 김상옥을 추모하는 서문을 집필했다. 이 서문에 따르면, 김상옥이 의거를 실행하기 전 조소앙이 그를 황줴에게 소개해주었으며, 이 자리에서 “인류 평등, 세계 대동”을 함께 실천하자고 약속하였다고 한다. 또한 황줴는 1923년 2월 17일에도 의열단원 오성륜(吳成崙), 김익상, 이종암의 황포탄의거 때 애꿎게 희생당한 영국인 여성 스나이더(Snyder)를 추모하기 위한 집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황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계열의 교민단이 주최한 3.1 운동 기념식에도 자주 모습을 드러냈는데, 현재 전해지는 자료만으로도 1925년, 1928년, 1930년의 세 차례 참석이 확인된다. 황줴는 상하이에서 열린 이들 3.1운동 기념식에 내빈으로 참석하여 한중연대를 강조하고 한국 독립운동을 지지하는 연설을 하였다. 또한 조소앙에게 편지를 보내 그가 끝까지 독립운동을 고수하는 것을 칭찬하고 한중 양국의 단합을 이어갈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1926년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혁명군이 북벌을 단행하던 중 난창을 점령하자, 그는 난창으로 이동하여 장시성 수리국 국장 겸 재무처장을 맡았다. 국민당 장시성 당부 개조 시기에는 감찰위원과 중앙후보위원에 선출되었다. 하지만 그는 반장파 인사였기 때문에 별다른 요직을 맡지 못했고, 다이리가 보낸 회유성 자금을 거절하기도 했다. 중일전쟁 종결 후 국민정부 직책에서 물러나 칭장현으로 돌아갔고, 1956년경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8년 황줴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