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55453A, #6A5445 20%, #6A5445 80%, #55453A); color:#fbe673"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rowcolor=#6A5445> 부여 | |||
초대 | 제2대 | 제3대 | 제4대 | |
모수왕 | 부루왕 | 금와왕 | 대소왕 | |
<rowcolor=#6A5445> 해두국 | 갈사국 | |||
말대 | 초대 | 제2대 | 제3대 | |
해두왕 | 갈사왕 1세 | 갈사왕 2세 | 도두왕 | |
<rowcolor=#6A5445> 중국사서 | ||||
초대 | 시조 | 계보 미상 | 칭왕 초대 | |
영품리왕 | 동명왕 | 부여왕 | ||
계보 미상 | 초대 | 제2대 | 제3대 | |
시왕 | 부태왕 | 위구태왕 | ||
제4대 | 제5대 | 제6대 | 제7대 | |
간위거왕 | 마여왕 | 의려왕 | 의라왕 | |
제8대 | 제9대 | 계보 미상 | 말대 | |
현왕 | 울왕 | 잔왕 | ||
<rowcolor=#6A5445> 졸본부여 | ||||
말대 | 말대 | |||
연타발 | 추모성왕 | |||
<rowcolor=#6A5445> 남부여 | 문헌상 언급 | 두막루 | ||
초대 | 왕족 | 수령 | ||
성왕 | 구태 | 우태 | 위거 | 낙개제 | ||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ECECEC, #fff 20%, #fff 80%, #ECECEC); color:#000"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원삼국시대 이전 | |||
<rowcolor=#FFD400> 단군조선 | 위만조선 | 진국 | 삼한연맹 | |
단군 | 역대 군주 | 진왕 | ||
예맥 | ||||
<rowcolor=#fbe673> 부여 | 예맥족장 | 최씨낙랑국 | 비류국 | |
역대 군주 | 남려 | 최리 | 송양 | |
<rowcolor=#fbe673> 고리국 | 졸본부여 | 비류백제 | 온조백제 | |
영품리 | 추모 | 비류 | 온조 | |
마한 | ||||
<rowcolor=#fbe673> 초대 | 제2대 | 제3대 | 제?대 | |
준왕 | 마한왕 2세 | 마한왕 3세 | 마한왕 | |
진한 | ||||
<rowcolor=#fbe673> 실직국 | 감문국 | 골벌국 | 음즙벌국 | |
안일왕 | 금효왕 | 아음부 | 타추간 | |
진한 | 변한 | 탐라 | ||
<rowcolor=#fbe673> 사로국 | 금관국 | 반파국 | 탐라국 | |
거서간 | 김수로 | 이진아시 | 역대 군주 | |
}}}}}}}}}}}} |
해두국 말대 군주
海頭王 | 해두왕 |
|
<colbgcolor=#6A5445><colcolor=#fbe673> 출생 (음력) |
연대 미상 |
해두국 | |
사망 (음력) |
22년 4월 |
해두국 | |
재위기간 (음력) |
말대 군주 |
~ 22년 4월 |
[clearfix]
1. 개요
海頭國王? ~ 서기 22년 음력 4월
해두국의 마지막 군주. 이름은 전해지지 않으며, 삼국사기 원문에는 그냥 해두국의 왕이란 뜻으로 '해두왕(海頭王)'이라고만 쓰여있다.
2. 생애
여름 4월에 부여왕 대소의 아우가 갈사수(曷思水)가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고 왕을 칭하였다. 이 사람은 부여왕 금와의 막내 아들인데 역사책에는 그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다. 전에 대소가 죽임을 당하자 (그는) 나라가 장차 망할 것을 알고, 따르는 자 백여 명과 함께 압록곡에 이르렀다. (그는) 해두국왕(海頭國王)이 사냥 나온 것을 보고 결국 그를 죽이고 그 백성들을 빼앗아 이곳에 와서 비로소 도읍하였는데. 이 사람이 갈사국왕(曷思國王)이 되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22년 4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22년 4월
부여의 대소왕이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전사한 뒤, 부여는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1] 금와왕의 막내아들은 마침 사냥하고 있던 해두왕을 발견해 그를 죽이고 백성들을 빼앗아 갈사수가를 도움으로 삼아 갈사국을 건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