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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延陀勃생몰년도 미상
연타발은 원삼국시대의 인물로, 온조, 비류의 외할아버지이자 소서노의 아버지다. 소서노와 함께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조에 주석으로 인용된 시조 비류설에서 등장한다.
2. 생애
백제(百濟)의 시조 온조왕(溫祚王)은 그 아버지가 추모(鄒牟)인데 혹은 주몽(朱蒙)이라고도 한다. 〔주몽은〕 북부여(北扶餘)에서 난을 피하여 졸본부여(卒本扶餘)에 이르렀다. (졸본) 부여왕은 아들이 없고 딸만 셋이 있었는데, 주몽을 보고는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고 둘째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여왕이 죽자 주몽이 왕위를 이었다.
〔주몽은〕 두 아들을 낳았는데 맏아들은 비류(沸流), 둘째 아들은 온조(溫祚)라고 하였다. <혹은 주몽이 졸본에 이르러서 월군(越郡)의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여 두 아들을 낳았다고도 한다.>
百濟始祖温祚王, 其父鄒牟, 或云朱蒙. 自北扶餘逃難, 至卒本扶餘. 扶餘王無子, 只有三女子, 見朱蒙知非常人, 以弟二女妻之. 未幾扶餘王薨, 朱蒙嗣位. 生二子, 長曰沸流, 次曰温祚 或云朱蒙到卒夲, 娶越郡女, 生二子.
삼국사기 권23 백제본기 제1, 온조왕 조
〔주몽은〕 두 아들을 낳았는데 맏아들은 비류(沸流), 둘째 아들은 온조(溫祚)라고 하였다. <혹은 주몽이 졸본에 이르러서 월군(越郡)의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여 두 아들을 낳았다고도 한다.>
百濟始祖温祚王, 其父鄒牟, 或云朱蒙. 自北扶餘逃難, 至卒本扶餘. 扶餘王無子, 只有三女子, 見朱蒙知非常人, 以弟二女妻之. 未幾扶餘王薨, 朱蒙嗣位. 生二子, 長曰沸流, 次曰温祚 或云朱蒙到卒夲, 娶越郡女, 生二子.
삼국사기 권23 백제본기 제1, 온조왕 조
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시조 비류왕(沸流王)은 그 아버지가 우태(優台)이니 북부여왕(北扶餘王) `해부루(解扶婁)의 서손(庶孫)이다. 어머니는 소서노(召西奴)이니 졸본(卒本) 사람 연타발(延陀勃)의 딸이다. 〔소서노가〕 처음 우태에게 시집가서 두 아들을 낳았으니, 맏이는 비류라 하고, 둘째는 온조라 하였다. 우태가 죽자 졸본에서 과부로 지냈다.
一云, 始祖沸流王, 其父優台, 北扶餘王觧扶婁庻孫, 母召西奴, 卒夲人延陁勃之女. 始歸于優台, 生子二人, 長曰沸流, 次曰温祚. 優台死, 寡居于卒本.
삼국사기 권23 백제본기 제1, 온조왕 조 주석
온조 측 전승에서는 이름이 등장하지 않으며, 졸본부여(卒本扶餘)의 왕이 둘째 딸을 주몽에게 아내로 삼게 했고[1],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망해 주몽이 왕위를 이었다고 적고 있다. 이 왕이 연타발과 동일인물인지는 불명.一云, 始祖沸流王, 其父優台, 北扶餘王觧扶婁庻孫, 母召西奴, 卒夲人延陁勃之女. 始歸于優台, 生子二人, 長曰沸流, 次曰温祚. 優台死, 寡居于卒本.
삼국사기 권23 백제본기 제1, 온조왕 조 주석
반대로 비류 측 전승에서는 졸본부여왕이라는 언급은 없고, 연타발이라는 인명이 나오며 해부루왕의 서손 우태와 딸 소서노를 혼인시켰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태와 소서노 사이에서 비류와 온조가 태어났지만, 이후 우태가 사망하면서 소서노는 졸본에서 과부로 지냈다고 한다.
3. 기타
고고학적으로 고구려의 건국 연대는 사서와 거의 같은 시기인 기원전 1세기 중반으로,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3세기까지 나타나는 부여 포자연 문화권이 기원전 1세기 중반에 압록강 유역 적석총에서 갑자기 출몰한다. 따라서 주몽은 사서와 거의 같은 시기의 인물일 가능성이 높으며, 졸본부여왕 연타발 또한 기원전 1세기 중반 인물임을 유추할 수 있다.기원전 2세기 부여에서 졸본 일대로 남하해 현지 고조선인과 연합해 졸본부여가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기에 졸본부여왕이라 불린 연타발은 이들과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백제 대성팔족 중 하나인 해씨가 부여인을 자처했는데, 고고학적으로는 기원후 2세기 후반 ~ 3세기 초반 압록강 이남 양식의 고구려인이 임진강 일대로 남하해 처음 백제를 세웠고 3세기 중후반에 한강 이남으로 다시 남하해 한성백제를 세운 것으로 추측된다. 해씨가 고구려 출신임에도 부여인으로 불린 점과 부여 왕성(王姓)인 해씨를 사용한 점으로 보아 대성팔족 해씨는 졸본부여계로 추정되는데, 대성팔족 해씨가 졸본부여왕 연타발과 관련된 일족일 수도 있다.
4. 대중매체에서
- 드라마 주몽에서는 김병기가 열연하였다. 여기서는 계루의 부족장으로 묘사되었다.
- 2015년 제6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에 나온 오페라 주몽에서도 등장. 연타발 역은 임철민이 맡았다. 출처
[1]
고구려본기 동명성왕 조의 주석에는 주몽이 졸본에 이르러 월군의 여자를 아내로 맞아서 두 아들을 낳았다는 설이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