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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4 14:23:13

플랫 에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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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플랫 에러와 실제 역사3. 관련 문서

1. 개요

플랫 에러 또는 플랫 어스 에러(flat earth error, 평평한 지구 오류)는 콜럼버스 이전의 유럽 사람들은 지구 평면설을 믿었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통념을 말한다. 주로 북미에서 대중적으로 널리 퍼진 오류이며, 미국의 역사학자 제프리 버튼 러셀이 저서 《날조된 역사- 콜럼버스와 현대 역사가들》에서 이러한 인식을 지적하면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콜럼버스 이전에도 이미 많은 사람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았고, (많은 미국인이 착각하는 것과 달리) 콜럼버스는 대지가 구형이라고 증명하려고 탐험을 떠나지도 않았다. 당대 유럽인들이나 콜럼버스 본인들 역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었다. 콜럼버스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닌, 인도로 닿는 신항로를 찾기 위해 떠났다.

당시 사람들이 콜럼버스의 계획을 비웃고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것은, 지구가 너무 거대하기 때문에 반대편으로 돌아가서는 인도에 도달할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사실은 틀리지 않았다. 콜럼버스는 인도까지 갈 수준의 배가 아니었음에도 운좋게 아메리카 대륙에 도달하여 생환에 성공했고, 뒤이어 더 큰 함대로 도전한 페르디난드 마젤란도 본인은 죽고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후에야 겨우 세계일주에 성공했다.

한국에서는 신항로 개척을 포함한 근대 세계사 과정이 의무교육에 포함되어 있어, 콜럼버스의 항해 목적 자체는 명확히 아는 사람이 많다. 물론, 한국에서도 '콜럼버스의 도전을 비웃은 당대 귀족들'과 같은 일화는 그 진위여부와 관계없이 널리 알려져 있다.

2. 플랫 에러와 실제 역사

사람들이 '옛날 조상은 땅이 평평한 줄 알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원인은 천동설 지동설, 즉 태양이 중심이냐 지구가 중심이냐 하는 논쟁을 지구가 동그랗냐 평평하냐 하는 논쟁과 혼동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1] 물론 아주 고대에는 지구가 평평했다고 믿은 적이 있긴 있었다. 대서양 너머로 계속 항해하면 아래로 떨어진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사실 기원전 수백 년대 이야기다. 당장 고대 아테네 시절에 대지가 둥근 형상임을 전제로 지구의 원주를 계산하려고 했고, 에라토스테네스가 상당한 정확도로 성공하기도 했다. 에라토스테네스가 지구의 둘레 계산까지 성공한 시점은 예수가 태어나기 200여 년 전이다.
파일:에라토스테네스의 지구 둘레 측정.png
에라토스테네스는 기원전 3세기 시에네 알렉산드리아 사이 각도를 이용해 지구의 둘레를 계산했다.
천동설 지동설은 우주 밖으로 나가지 않고서는 지구와 태양, 누가 중심인지 눈으로 관측할 수 없기 때문에 당시 모든 천문학자들이 누구의 계산이 더 그럴듯 한가를 두고 논쟁을 벌여야했지만, 지구가 구형이라는 것은 배타고 여기저기 다니며 매일같이 해도를 그리다 보면 알 수밖에 없는 사실이었다. 평면 지도상에서 최단 경로인 직선 경로를 따라 항해해 보면 실제 목적지가 나오지 않는다. 바로 지구가 곡면(구)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중세시대라고 해도 선원들은 지구가 구라는 사실을 모를 수가 없었다. 곡면상에서 최단 거리는 측지선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고대로부터 구면삼각법이 발달하여 항해와 천문학 등에 응용되었다.

또한 굳이 바다까지 나가지 않아도, 당대 제작된 수많은 지도를 통해서도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당대 지도들이 정확도가 좀 떨어지긴 했지만 그것은 세부적인 정확도의 문제였지, 측량을 해보면 '땅'이 평평하지 않다는 사실 정도는 금세 알 수 있었다.
파일:800px-Denmark_globus_cruciger2.jpg
로마 제국 이후부터 황제의 권력을 상징했던 대관보기 중 하나인 보주(globus cruciger). 둥근 지구를 형상화했는데, 이미 지구 구형론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포르투갈이 콜럼버스의 항해를 지원하지 않은 이유는 콜럼버스가 계산을 지지리도 못해서 지구의 반경을 너무 작게 잡았다는 것 때문이었다. 콜럼버스가 인도[2]가 있다고 생각한 위치에는 훗날 아메리카 대륙이라 불리게 되는 다른 땅덩이가 있었다. 만약 그 자리에 마침 정박하기 좋은 육지가 없었다면 콜럼버스와 선원들은 바다 한가운데서 사망했을 것이다. 즉, 당시 콜럼버스는 운이 좋았던 것이고, 반대한 사람들은 주어진 정보 안에서 매우 합리적인 선택을 했던 것이다.

실제 지구에서 포르투갈의 대척점(Antipode)은 뉴질랜드이고, 이 경도는 극동의 캄차카 반도 근처다. 하지만 콜럼버스는 지구 반지름을 너무 작게 설정해서 인도까지 거리를 실제보다 훨씬 작게 계산했다. 이런 잘못된 데이터를 근거로 그는 대서양을 통해 인도로 가는 여정을 계획하고야 말았다. 불과 몇 년 전 1488년 바르톨로메우가 아프리카 희망봉을 발견했기 때문에 인도로 가는 우회루트를 생각해볼 수 있었지만 서쪽으로 가는 직선 항로를 계획했고, 스페인을 출발한 지 한 달 후 아메리카에 도착했다. 본인은 인도라고 생각했지만.

물론 세런디피티(우연하게 얻어낸 중대한 성과)도 발견이라면 발견이고,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와 유럽을 잇는 초석을 놓은 것도 부정 못 할 사실이다. 그러나 위인전에서 곧잘 등장하는, '사악한 귀족들과 무식한 국왕들이 현명한 콜럼버스를 비웃자, 콜럼버스가 달걀 깨서 세우는 퍼포먼스를 벌이며 통쾌하게 복수[3]했다.'는 일화는 잘못되었다. 당시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콜럼버스를 비난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콜럼버스의 제안이야말로 허황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콜럼버스 신화 대부분은 당대 콜럼버스의 조국이었던 스페인 제국보다는 신생 국가인 미국을 통해 윤색, 과장되었는데, 이는 미국이 독립 이후 연방으로서의 통일된 국가색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많은 미국의 문학자, 화가, 음악가들이 콜럼버스를 우상으로 삼아 미국의 위대함과 명백한 운명을 투영하려 했다. 현대에 와서는 콜럼버스 신화 대부분이 과대평가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플랫 에러도 조금씩 알려지고 있지만, 수백 년 넘게 내려온 콜럼버스 신화가 너무 확고해서 플랫 에러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도 아직 많다.

3. 관련 문서



[1] 천동설이든 지동설이든 대지가 구체라는 사실은 기본적으로 깔고 간다. [2] 콜럼버스는 인도를 가는게 목적이었기 때문에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을때 원주민들을 보고 인도 사람들로 생각했고 이게 아메리카 원주민을 인디언이라고 부르게 된 원인이 되었다. 최근에는 정치적 올바름과 인디언이라는 호칭의 정확성을 위해 아메리카 원주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인디언은 인도인을 일컫는 말로 사용하라고 권장한다. [3] 사실 이는 콜럼버스의 일화조차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문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