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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레바논 위임통치령 Mandat pour la Syrie et le Liban |
|
국기 | |
지도 | |
위치 | 레반트 |
수도 | 다마스쿠스 |
정치체제 | 국제연맹 위임통치령 |
국가원수 | 프랑스 대통령 |
언어 | 프랑스어, 아랍어 |
성립 이전 | 오스만 제국 |
멸망 이후 |
시리아 공화국 레바논 튀르키예 |
[clearfix]
1. 개요
1920년 부터 1946년까지 존속한 프랑스의 위임통치령이다. 시리아-레바논은 시리아국(État de Syrie), 대레바논(État du Grand Liban), 알라위국(Alaouites), 자발 드루즈국(Djebel Druze) 4개의 나라로 구성되었다.2. 역사
제1차 세계 대전 막바지인 1918년, 파이살(Faisal I of Iraq)[1]이 이끄는 아랍 군대가 영국군의 지원 아래 오스만 제국 군대를 격파하고 시리아 지역을 탈환한다. 이후 프랑스, 영국은 '점령 적지 행정부(Occupied Enemy Territory Administration, OETA)'를 수립하고 구 오스만 제국 영토를 분할하여 군사통치를 시작하였다. 1919년, 프랑스와 영국, 미국은 파리 강화 회의를 개최하고,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한 오스만 제국의 영토 분할에 대해 논의하였다. 또한 파리 강화 회의를 통해 국제연맹이 창설되었다.1920년 3월, 파이살은 시리아 다마스쿠스에 입성, 시리아 아랍 왕국 수립을 선포했으나 시리아를 자국의 권리로 간주한 프랑스의 진압으로 무산되었다. 동년 4월 25일, 국제연맹은 시리아-레바논 지역을 프랑스의 위임통치령으로 설정하였다. 8월 10일에는 세브르 조약(Treaty of Sèvres)이 체결되면서 시리아-레바논 지역은 완전히 프랑스의 위임통치령이 되었다. 프랑스는 시리아를 여러 지역으로 분할하여 통치하였다.
1925년부터 1927년 동안 프랑스의 통치에 대한 반발로 시리아-레바논 지역 드루즈인들과 베두인인들의 봉기가 여러차례 발생하였다. 드루즈인들이 주축이 되어 봉기를 일으켰기 때문에 이를 드루즈 반란이라고 부른다 초반에는 시리아 남부 알 마즈라아 전투에서 500명의 기병대로 편성된 드루즈-베두인 연합이 기관총부대, 포병대, 장갑차부대, 기병대, 식민지군으로 편성된 3500명의 프랑스군을 상대로 대승리를 거두는 전공을 세웠다. 비록 프랑스군의 삽질이 더 컸지만 영국처럼 많은 식민지를 거느렸고 나름 강대국 취급을 받았던 프랑스군을 이겼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하지만 프랑스군이 시리아-레바논 지역의 드루즈인들과 베두인인들보다 압도적으로 우위였기 때문에 봉기는 프랑스의 진압으로 좌절되었고 반란을 일으킨 지도자 중 1명인 하산 알 카랏도 프랑스군에게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이후 전간기에 하타이 지방이 터키에 반환되었고,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1940년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패해 시리아-레바논 지역은 추축국의 영향권이 되었다.
1941년, 샤를 드골이 이끄는 자유 프랑스군과 영국군이 시리아-레바논을 탈환하였다. 그리고 드골은 시리아-레바논 지역에 전쟁 협력을 요청하고 대신 위임통치 종료 및 독립 국가 수립을 약속한다.[2] 1943년 레바논이 독립한 데 이어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이 종전하고 이듬해 4월 17일 시리아가 독립하면서 시리아-레바논은 해체되었다.
3. 관련 문서
4. 둘러보기
프랑스 식민제국의 식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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