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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15:22

네덜란드-포르투갈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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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포르투갈
1. 개요2. 역사적 관계
2.1. 전근대2.2. 현대
3.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현재 두나라는 유럽 연합, 나토에도 가입되어 있으며 우호적인 관계이지만, 근세 대항해시대에는 서로 아시아 식민지를 뺏고 뺏기는 영혼의 라이벌 관계였다.

2. 역사적 관계

2.1. 전근대

레콩키스타 이후 포르투갈에 살던 세파르드 유대인들이 유대인 강제개종이나 탄압을 피해 네덜란드로 이주했는데 이 때문에 네덜란드의 유대인 중에 포르투갈어 구사가 가능한 사람들이 드물지 않았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바뤼흐 스피노자가 있다.

독립 이후 네덜란드 아프리카 아시아를 연결하는 무역에 참여하면서 포르투갈로부터 남아프리카의 케이프 곶, 인도네시아와 믈라카 식민지를 뺏었다. 네덜란드가 포르투갈령 마카오를 침공했을 때 이를 격퇴하는데 성공하는가 했더니... 일본이 포르투갈 대신에 네덜란드하고만 무역하면서 상업망이 축소되었다. 아시아 식민지 쟁탈전에서 포르투갈이 후발 주자였던 네덜란드에게 사실상 완패하다시피 한다. 네덜란드의 경우 주식회사를 통해 해외 식민지 경영과 무역으로 얻는 이익금이 주주들에게 분배되면서 사회 전반의 부가 증대되는 결과를 가져왔지만, 포르투갈의 경우 무역으로 얻은 수익은 왕실이 독점하였고, 선원이나 군인들에게 대가를 보상하는데 매우 인색하였다. 포르투갈에서는 군인과 선원을 징집으로 충당했기 때문에 이들에게 굳이 충분한 임금을 주고 보상할 이유가 없다고 보았다.

또한 대항해시대 당시에는 선원들의 사망률이 매우 높았는데 네덜란드의 경우 이웃 독일에서 빈민들이 암스테르담으로 계속 쏟아져 들어왔고, 네덜란드는 이들을 잡아다가 선원으로 썼기 때문에 별 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포르투갈의 경우 선원이 보충되는 속도가 선원들이 죽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해양 패권 운영에 심각한 차질을 빚었다. 식민지에서 현지인 주민들을 가톨릭으로 개종시켜 징집해서 쓰긴 하는데 문제는 네덜란드가 그걸 모르는게 아니라서... 일부러 네덜란드는 인도 케랄라에서는 인도 현지 도마 기독교인[1]들에게 포르투갈인들이 가톨릭을 강요하면서 생긴 갈등을 이용하여 일부러 인도 도마 기독교인들과 중동 시리아 정교회 네스토리우스파와의 연결을 직접 주선하여 포르투갈과의 관계를 파탄내기도 했다. 이후 케랄라 기독교인들은 다시 네덜란드의 주선에 힘입어 이웃 힌두교도나 무슬림 토후들과 관계를 맺고 포르투갈인들과 손절해버렸다. 케랄라 기독교인들 입장에서는 자기들을 이단 취급하며 괴롭히는 와중에, 무상으로 힘든 선원일에 징집하고 돈도 제대로 안 주는 포르투갈인들이 이웃 무슬림 왕조들보다 더 가증스러운 원수였다. 한 편 네덜란드는 스리랑카에서는 포르투갈인들을 몰아낸 이후 무슬림과 힌두교도, 불교도는 건드리지 않고 친포르투갈파로 의심되는 가톨릭 신도들만 집중적으로 탄압하였다. 아시아에서 포르투갈이 가용 가능한 인적 자원은 계속 축소되었고 이후 포르투갈은 브라질과 아프리카 식민지 경영에 집중하게 되었다.

브라질 식민지에서만큼은 포르투갈이 네덜란드와의 식민지 쟁탈전에서 우위에 섰는데, 네덜란드가 거점으로 삼은 수리남이 매우 척박하고 생산성이 낮은 라테라이트 토양의 땅이라 출발점이 완전히 불리했기 때문이었다. 여담으로 네덜란드는 예멘에서 반출한 커피 나무를 네덜란드령 동인도 인도네시아 식민지에서 재배하는데 성공하면서 한 번 수리남에도 커피 재배를 시도하는데, 수리남은 커피를 재배하기에 해발고도가 낮은데다가 땅이 워낙 척박해서 커피를 재배하기 시원찮았지만... 19세기 초 포르투갈에서 새로 독립한 브라질 북동부 지방에서 커피 농사를 도입하면서 대박이 터졌다.

2.2. 현대

오늘날 포르투갈은 네덜란드인들이 선호하는 인기 관광지 중 하나이다. 21세기 들어서는 일부 네덜란드인들이 네덜란드나 영국 등에 위치한 회사에 취직한 상태에서 포르투갈로 이주정착한 후 원격으로 재택근무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고 한다.

3. 관련 문서



[1] 시로말라바르 가톨릭, 시로말랑카라 가톨릭, 말랑카라 시리아 정교회 등등 문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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