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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바위(팔공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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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봉석조여래좌상 #
1. 개요2. 역사3. 불상4. 갓바위와 선본사를 둘러싼 분쟁5. 대구-경산 간 문화재 소재 논쟁6. 관광 및 교통
6.1. DRT
7. 여담8. 외부 링크9. 국가유산청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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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慶山八公山冠峰石造如來坐像), 대중적으로 팔공산 갓바위 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 갓바위로81길 176-64(대한리 산44)에 위치한 석조 불상으로, 불상 머리 위에 넓적한 바위처럼 얹은 모습이 특징적이라 갓바위라고 부른다. 팔공산을 이루는 봉우리 중 하나인 관봉(冠峰, 850m)[1]의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높이는 5.48m, 재질은 화강암이며,[2] 수인은 항마촉지인을 하였다. 석굴암 본존불상처럼 후덕하고 무뚝뚝한 이미지다. 갓은 본디 팔각형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오랜 세월에 걸쳐 훼손되는 바람에 지금의 모양이 되었다. 보통 '갓바위'라고 하면 이곳을 의미한다.

2. 역사

통일신라 시대, 좀 더 정확히는 9세기 초반에 불상의 몸체를 만들었으나 후대에, 아마도 고려 시대쯤에 갓을 따로 만들어 올렸다고 추정한다. 1965년에 보물 제431호로 지정되었다.[3]

3. 불상

갓바위 불상이 현대에 약사여래라고 널리 알려졌지만, 실제로 정확히 어떤 부처인지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학계의 논의야 어떻든, 또한 과거의 진실이 무엇이든, 현대 한국의 불자들은 갓바위가 약사여래라 믿으며 소원을 빌러 찾아온다. 갓바위가 석가모니로 대접받는 날은 4월 초파일 부처님오신날뿐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미륵으로 알려졌으며, 나이든 인근 노인들은 갓바위를 '미륵님', 혹은 '갓바위 미륵님'이라고 불렀다. 그뿐 아니라 1821년에 작성된 선본사 사적기에서도 선덕여왕 7년(638)에 의현대사(義玄大師)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하여 조성한 미륵보살이라고 설명하였다.

학자들은 미륵, 아니면 아미타불이라고 추정한다. 갓바위 불상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취하였는데, 본디 항마촉지인은 석가모니 불상이 취하는 수인이다. 그러나 삼국시대나 고려시대 불상에서는 아미타불이나 약사여래가 항마촉지인을 한 사례가 곳곳에 있으므로, 단지 항마촉지인만으로는 불상의 정체를 밝히기 어렵다. 아미타불이라는 주장에 따르면 갓바위는 원래 9세기 초 통일신라 시대에 아미타불로 조성됐으나, 후대 어느 시점(아마도 고려 시대)에 사람들이 미륵불로 믿어 미륵이 쓴다는 천관을 뜻하는 갓을 올려놓았고, 다시 현대에 들어 약사여래불로 와전됐다고 한다. 실제로 팔공산 갓바위에는 약사여래의 지물인 약합이 없다. 예전에는 불상의 왼손에 약합이 있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조사해보니 불상의 왼손 엄지손가락이었다. 갓바위가 약사여래로 알려진 때는 광복 이후 1960년대부터이고, 그 근거는 약합이라고 착각했던 엄지손가락밖에 없었다. 갓바위가 약사여래라 함은 민간전승도, 불상 고증도 아닌 제3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갓바위를 관할하는 선본사는 증언이나 옛 기록들을 무시하고 홈페이지에 갓바위가 극구 약사여래일 것이라고 써 놓았다. 심지어 선본사에서 발견된 선본사 사적기에서도 갓바위가 미륵보살이라고 설명하는데도, 마치 옛날부터 약사여래로 통했다는 듯이 설명하였다. 또한 과거에 약합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제로는 불상의 엄지손가락임이 확실해졌는데도, 선본사 홈페이지에서는 "약합이 뚜렷하다."라고 하며 사실을 왜곡하고, 이것이 약사여래임을 지지한다고 설명한다. 선본사 홈페이지만 보면 마치 옛날부터 지역 주민들이 갓바위를 약사여래라고 생각한 줄 알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불과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미륵으로 통했다.

조선 후기부터 미륵신앙이 유행하면서 돌부처=미륵불로 인식하는 문화가 많이 퍼지자, 원래는 미륵불이 아닌데도 돌부처라는 것만으로 미륵불이라 불리는 사례들도 있고,[4] 한국의 토속 돌부처 신앙과 미륵신앙을 자신들의 교리에 꿰어맞추면서 추태를 부리는 몰지각한 자칭 민족 종교 집단들과의 마찰 문제도 있어 확실히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마침 갓바위 불상이 처음 만들어진 9세기는 약사여래불이 많이 조성될 때이다. (참조링크), 전국의 불교 신자들에게 갓바위가 약사여래라고 유명해진 판에 이제 와서 아니라고 말하기 어렵기도 하겠고.

그러나 사찰에서 (과거에는 미륵불로 통했다는) 명백한 사실을 왜곡한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다못해 현재 갓바위 불상이 약사여래로 통하지만 과거에는 다르게 생각했고, 원래 어떤 불상이었는지는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식으로만 설명했더라도 훨씬 나았을 것이다.

2009년 대구문화방송에서 창사 46주년을 맞아 제작, 방송한 다큐멘터리 <팔공산 갓바위>에서는 '관암사 백암(柏巖) 스님이 1962년 3월부터 신도들에게 갓바위를 알리고 참배시키면서 약사여래라고 가르쳐 알렸다.'는 주장을 소개하였다. 백암 스님의 제자이자 관암사 주지인 혜공(慧空) 스님이 방송에서 설명한 바에 따르면, 백암 스님은 힘든 이 시대(1960년대)에는 약사여래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약사여래 신앙을 일으키고자, 갓바위를 약사여래라고 부르도록 신도들을 가르쳤고, 제자들을 갓바위로 보내 처음으로 갓바위 불상을 '약사여래'라고 칭하며 불공을 드리게 했다고 한다. 혜공 스님이 직접 언급하지는 않지만, 백암 스님도 갓바위가 원래는 지역민들에게 미륵으로 불린다는 사실을 알았던 듯하다.

4. 갓바위와 선본사를 둘러싼 분쟁

오랫동안 갓바위를 두고 인근 주민들은 '영험한 미륵님'으로 생각해 왔으나, 인근에서만 유명했지 지금과 같이 전국적으로 유명하진 않았다. 그러나 1960년대 초에 학술지에 보고되고, 65년에 동아일보에 보도되었으며 또한 보물로 지정되면서 전국구로 유명해지게 되었다. 처음 유명해질 무렵에는 (훗날 태고종의 14대 종정이 된) 백암(柏巖) 스님[5]이 1962년 팔공산 밑에 관암사(冠岩寺)를 창건하고, 신자들이나 제자 승려들을 갓바위로 올려보내어 불공을 드리게 하였다. 그러다가 갓바위가 유명해지자 1968년 선본사(禪本寺) 주지였던 도수(道秀) 스님이 대구지방법원에 소유권 확인소송을 걸었다. 소송은 대법원까지 이어져 1970년에 선본사 측이 최종승소하였다. 이후로는 선본사에서 갓바위를 관할한다.

과거에 선본사는 (역시 팔공산에 있는) 은해사(銀海寺)의 말사였지만, 1994년 10월부터 대한불교조계종의 직영사찰이 되었다.[6] 막대한 이권이 걸린 갓바위 때문에, 선본사 소유권을 두고 은해사와 다른 교구 간 다툼이 잦았다. 이를 차단하고자 종단에서 아예 직영사찰로 지정하였다.[7]

그러나 선본사로 굴러가는 돈의 액수가 워낙에 커서 직영사찰이 된 뒤에도 분란이 일어났다. 선본사에서는 조계종단에 1994년 12월 수익을 보고하면서 1억 2천만 원이라고 하였다. 조계종단에서는 선본사에 연간 수십억 원, 많게는 1백억 원이 들어온다고 판단하였으므로 이 보고를 믿을 수가 없어서 실사단을 파견하였다. 실사단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1994년 1월 17일부터 2월 8일까지 11일 동안 3억 8500만 원이 들어왔다. 선본사 측의 자체보고대로 12월 한 달 동안 겨우(?) 1억 2천만 원이 들어왔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많았다. ( 1995년 2월 12일 경향신문 보도내용) 비슷한 시기 다른 언론보도에 따르면, 선본사의 수익이 외부로 유출된다는 의혹이 있었다.

선본사가 직영사찰이 된 뒤로 조계종단의 주요 수입처가 되었기 때문에 그에 따른 정치적/물리적 다툼도 있었다. 1999년 조계종 총무원장 자리를 두고 법정 다툼을 벌이는 등 조계종단의 승려들이 두 파로 나뉘자, 총무원의 주요 자금줄인 선본사를 접수하려고 서로 다툼을 벌였던 것. 1999년 10월 26일 새벽에 개혁회의 승려 20여 명이 기습적으로 선본사를 점거하였다. 경찰이 양측의 충돌을 우려하여 4백여 명을 선본사 주변에 배치한 가운데, 그 날 저녁 7시 20분쯤 조계종 총무원 호법부 직원들과 동화사 승려 등 60여 명이 강제로 재접수하였다. 이 와중에 개혁회의 승려 4명이 경찰에 연행되고 나머지 인원들은 자진해산하였다. 갓바위 때문에 선본사에 거금이 흘러들어오니 벌어진 일이다.

2020년 8월 11일부로 직영사찰에서 지정 해제되고 특별분담금사찰(교구본사에서 직접 관리및 분담금 종단에 납부)로 전환되었다. 일각에선 특정 문중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5. 대구-경산 간 문화재 소재 논쟁

파일:갓바위 위치.png
갓바위의 위치와 대구-경산 간 도계선.

경산시 대구광역시가 서로 자기네 불상이라고 여기며 관광지로 소개하지만, 행정구역상으로는 경산시 소재가 맞다. 정확하게는 관봉의 서남쪽 사면을 대구와 경산의 도계선이 교묘하게 지나가기 때문에 약 100m 가량 경산시 쪽으로 들어가 있다. 하지만 대구나 경산이나 생활권이 거기서 거기라, 대구 측에서도 사실상 대구의 랜드마크인 것처럼 활용한다. 관봉의 대구 측 사면 아래에는 갓바위공원 등이 조성되어 있고, 팔공산자연공원 갓바위관리사무소 역시 대구 쪽 경계에 위치해 있으며, 관리사무소 아래에 있는 휴게소 이름도 갓바위 휴게소이다.

2012년 대구에서 개최된 93회 전국체육대회의 선전 포스터에도 대구스타디움, 83타워와 더불어 갓바위가 나왔다.

6. 관광 및 교통

갓바위에는 항상 사람들이 많은데 주말, 공휴일에는 엄청나다. 특히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있는 기간에는 앞선 날보다 더욱 더 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사람들이 갓바위 휴게소부터 정상까지 2km의 계단을 마치 지하철 계단처럼 줄을 서서 올라간다. 그래서 401번 저상버스가 들어갔다가 한 달도 안 되어서 트레이드 됐다.

고속도로를 통해 가려면 대구 방면에서 갓바위로 오려면 팔공산IC를 통해 나가야 하며, 경산 방면으로 가려면 청통와촌IC를 통해 나가야 한다.

등산로가 여러 갈래 있다. 크게는 대구광역시 동구 능성동 중마을 관암사(冠巖寺) 쪽과 경산시 와촌면 대한리 선본사 쪽, 영천시 신녕면 치산관광지와[8] 은해사 방면으로 나뉘는데, 관암사 쪽을 들머리로 하는 등산로가 조금 더 유명하다. 아마 401번과 803번의 배차간격 차이와 대구와 경산, 영천의 인구 수 및 인지도 차이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선본사 쪽 들머리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더 편하고 시간도 덜 걸린다. 영천 방면은 등산 동호인 정도를 제외하고는 거의 간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알려져 있지 않은 코스다.[9] 그 외 갓바위로 가는 등산로는 도학동, 일출지, 금곡사, 지장암, 법륜사, 지경리 등 다양하다.[10][11]

관봉의 남쪽에 있는 관암사 방향을 대개 '앞갓바위'라, 북쪽에 있는 선본사 방향을 '뒷갓바위'라 부른다.[12] 관암사 쪽으로 오르면 1시간 정도[13] 걸리는 데 비해, 선본사 쪽으로 오르면 30분이면 된다. 이 쪽은 빨리 내려오면 803번 버스 정류장까지 20분도 채 안 걸린다. 계단도 선본사 쪽 길이 잘 정비된 반면, 관암사 쪽은 급경사 구간이 많다. 그래서 겨울 내린 뒤에도 선본사 쪽은 금방 제설되어 미끄러질 걱정 없이 갓바위에 올라갈 수 있지만, 관암사 쪽은 눈이 한번 오면 며칠 동안 관암사에서 갓바위 정상까지 있는 돌계단길 등산로는 계단 전체가 얼어서 빙판길이 되어버린다.[14] 겨울에 대구 쪽으로는 올라갈 때야 조심해서 올라가면 된다지만 내려올 때에는 등산화 아이젠이 필수. 아이젠이 없으면 아무리 조심하며 난간을 잡고 내려와도 한 손으로 난간을 잡은 채로 미끄러진다. 절충안으로 관암사 쪽으로 올라가서 선본사 쪽으로 내려가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

관암사 등산로의 이러한 문제점은 2013년에 갓바위 등산로 정비공사를 마침으로써 사라질 줄 알았다. 그러나 정비공사라고 했지만 돌계단은 건드리지 않은 채로 보호난간을 바꾸고 중간중간에 있는 휴식공간을 정비했을 뿐이라 겨울철이면 여전히 빙판길이 된다. 등산로 중 일부 구간은 좁은데 확장하지도 않았고, 보호난간도 부실시공을 했는지 몇몇 곳은 잡으면 흔들거린다. 심하게 흔들거리는 난간에는 '위험' 표시를 붙이기까지 했다.

보호난간은 2013년 정비를 거치며 나무 재질의 손잡이가 설치되었는데, 손잡이를 잡을 때 손에 가시가 박혀 고생하는 사람이 한 둘 있었다. 이후 2017년부터 2018년까지 진행된 2차 보수 공사를 거치며 철제 난간으로 교체되어 이러한 문제는 사라졌다. 다만 극소수 구간의 난간이 흔들거리는 문제는 여전하다.

관암사 쪽으로 올라가려면 401번 또는 팔공2번, 팔공3번을 타면 되고, 선본사 쪽으로 올라가려면 803번을 타면 된다. 단, 팔공2번, 팔공3번 버스는 주말, 공휴일에만 운행하고 12월 초일부터 다음 해 2월 말일까지 운행하지 않으므로[15] 평일과 연말연초라면 대구에서는 401번, 경산에서는 803번을 타야 한다. (참고로 팔공3번 버스를 타면 팔공산 순환도로를 일주할 수 있다.) 803번 버스는 배차간격이 30분을 약간 넘기 때문에 운이 없으면 무료 환승이 안 되었지만, 지금은 무료환승이 하차 기준 30분 이내로 바뀌었기 때문에 상관없다.

관암사 등산로 중간에 있는 관암사 대웅전 앞에 설치된 계수대[16]에서 식수를 구할 수 있다. 이 물은 겨울에도 잘 안 마르는 듯하다. 선본사 등산로에서도 중간에 있는 선본사에서 식수를 구할 수 있다. 또한 캔 음료와 커피 자판기도 대웅전과 대웅전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있는 매점 앞에 각각 한대씩 배치되어 있기에 현금이 있으면 음료를 뽑아 마실 수도 있다.

선본사 쪽으로 803번을 타고 간다면 걷는 거리를 줄일 수 있다. 선본사 쪽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주차장이 3곳 있는데, 가장 위에 있는 제3주차장에서 803번 버스 정류장까지는 700m 정도다. 아예 제3주차장을 지나면 일반 차량은 들어가지 못하도록 차단기로 가로막지만 803번은 이 차단기가 설치된 지점부터 700m를 더 올라간다. 거기다가 걸어가야 할 길은 당연히 오르막이다. 그래서 걷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경산 쪽 뒷갓바위로 간다면 버스를 타는 편이 유리하다.

관암사 쪽 등산로와 선본사 쪽 등산로 사이를 이어줄 대중교통이 전무해서 셔틀버스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가 빗발친다. # 대구 갓바위 종점(갓바위휴게소, 관암사 방면)에서 경산 갓바위 종점(선본사)을 이동하기가 무척 어렵다. 이동하려면 갓바위휴게소에서 401번을 타고 진인동에서 내린 뒤, 길 건너편에서 팔공1번을 타고 능성동 종점까지 이동하고, 거기서 818번(능성동행)이나 하양-와촌1번(능성동행)을 타고 박사리에서 내린 뒤, 길 건너편에서 803번을 타야 한다. 버스 환승하는 횟수도 횟수지만 중간에 타야 하는 팔공1번, 818번[17], 하양-와촌1번의 배차간격이 무척 길다. 버스 기다리기가 싫다면 401번을 타고 아양교역에서 내린 뒤, 하양 가는 버스를 타고 하양에서 내려 803번을 타면 되긴 하는데 엄청 돌아가는 방법인지라... 대구 쪽에서 올라가 경산 쪽으로 내려온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갈 방법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일이 잦다. 그나마 하양-와촌1번 음양리행이 대구 쪽으로 좀 더 연장해서 진인동이나 백안삼거리까지 와 주면 불편이 많이 줄어들 듯 하지만 대구광역시와의 협의 문제도 있고, 경산시 시내버스 쪽이 버스 기사가 많이 부족해서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다.

게다가 위 기사에 나온 대로 셔틀버스나 노선버스를 신설한다면 그 버스는 공기수송 확정이다. 중간에 수요가 날 만한 곳이 하나도 없고, 그나마 있는 대구 갓바위 종점에서 경산 갓바위 종점까지의 수요도 대수롭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수요가 있었다면 진작에 만들었거나 버스 회사들이 시도했을 것이다.

뒷길(선본사 방향)에서 앞길(관암사 방향)로 바로 가고자 한다면 갓바위까지 올라가지 않고, 선본사 주차장(경산 803번 버스 종점)에서 약 80m가량 가다보면 왼쪽에 있는 약사암 방향 등산로로 들어가 약사암, 용덕사, 용주암(가기 전 분기점)를 거쳐 관암사 경내로 갈 수 있다. 이 길은 선본사 주차장~약사암 방향 초입의 가파르지만 짧은 나무데크 계단과 흙길, 용주암 분기점에서 관암사 구간의 짧은 돌길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걷기 편한 흙길이 대부분이므로, 다시 올라가기가 힘들다면 여기를 이용함도 생각해봄직하다.

6.1. DRT

7. 여담

8. 외부 링크

9. 국가유산청 소개글

경상북도 경산시 팔공산 남쪽 관봉(冠峰)의 정상에 병풍처럼 둘러 쳐진 암벽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좌불상이다. 관봉을 ‘갓바위’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것은 이 불상의 머리에 마치 갓을 쓴 듯한 넓적한 돌이 올려져 있어서 유래한 것이다.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뚜렷하다. 얼굴은 둥글고 풍만하며 탄력이 있지만, 눈꼬리가 약간 치켜 올라가 있다. 귀는 어깨까지 길게 내려오고 굵고 짧은 목에는 3줄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표시되어 있다. 다소 올라간 어깨는 넓고 반듯해서 당당하고 건장하지만 가슴은 평판적이고 신체의 형태는 둔중해진 듯하다. 투박하지만 정교한 두 손은 무릎 위에 올려놓았는데, 오른손 끝이 땅을 향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과 유사한 손모양은 석굴암의 본존불과 닮았다. 그러나 불상의 왼손바닥 안에 조그만 약합을 들고 있는 것이 확실해서 약사여래불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는 4각형인데 앞면과 옆면으로 옷자락이 내려와 대좌를 덮고 있다. 불상의 뒷면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암벽이 광배의 구실을 하고 있으나, 뒷면의 바위하고는 떨어져 따로 존재하고 있다.

풍만하지만 경직된 얼굴, 형식화된 옷주름, 평판적인 신체는 탄력성이 배제되어 8세기의 불상과는 구별되는 9세기 불상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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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관봉(冠峰)이라는 지명도 갓바위를 한자로 관암(冠巖)이라고 쓴 데서 유래하였다. [2] 경북 일대는 백악기 후기 화강암질 마그마가 관입하여, 화강암 석재가 주변에 넘쳐난다. [3] 2007년에 국보 승격을 문화재청에 건의했지만 국보로 승격시키기에는 가치가 다소 떨어진다고 유보되었다. 2013년에 다시 국보 승격을 요청하자는 말이 나왔지만 여전히 소식이 없다. [4] 대표적인 예가 은진미륵이란 이름으로 유명한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이다. 민간과 자칭 민족종교들은 미륵이라 부르지만 사실은 관세음보살이다.( 관련기사) 더욱이 선본사 사적기도 미륵신앙이 유행하는 조선 후기 기록. [5] 속명은 우효생(禹孝生), 생몰 1917-1994. 1930년에 출가하여 43년에 비구계를 받았다. 1993년에 태고종의 14대 종정으로 추대되었으나 이듬해 입적하였다. [6] 본사가 동화사라고 하는 주장도 있으나 전후관계를 보면 은해사가 맞다. 은해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 교구의 본사이며, 선본사가 직영사찰이 되기 전에는 은해사의 말사였다. [7] 1994년의 신문기사 등을 참조하면, 조계종 개혁회의에서 94년 5월 3일에 선본사를 직영사찰로 삼자고 결의하였고, 동년 10월에 직영사찰이 된 것으로 보인다. [8] 산불조심기간에는 입산이 통제된다. [9] 애초에 이 쪽은 위험하다. 관암사는 그나마 계단 등산로가 많고 경사가 심해 힘들지만 이쪽은 암릉이 많고 등산로 정비가 잘 안됐을 뿐더러, 전 구간이 돌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보면 된다. 조금만 삐끗하면 추락할만한 환경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10] 당연히 이쪽들은 등산로 정비가 잘 안됐을 뿐더러, 듣보잡이고 사람들도 거의 찾지 않는다. 정상에서 가벼운 복장을 한 사람들 사이로 가끔 중무장을 한 사람이 소수 보이는데, 대부분 이러한 알려지지 않은 등산로를 통해 올라온 사람들이다. [11] 관암사 코스도 등산로가 여러 개 있어 갓바위로 올라가는 경우의 수가 제법 다양하다. [12] 갓바위를 중심으로 선본사가 북북동쪽, 관암사가 남남서쪽으로 거의 정반대에 있다. 갓바위 시선이 남남동쪽을 향하기 때문에, 당연히 관암사 쪽이 갓바위의 앞, 선본사 쪽이 갓바위의 뒤가 된다. [13] 쉬지 않고 빨리 올라가면 40분만에 올라갈 수 있다. 체력이 약한 사람이 중간에 쉬면서 올라가면 1시간 30분까지도 걸린다. 내려오는 시간은 빨리 내려오면 30분 정도 걸린다. [14] 산 속이라 겨울에 한번 눈이 오면 날씨가 추워서 며칠이 지나도 얼음이 잘 녹지 않는다. 더구나 산간지역이라서 평지보다 더 추우니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봄이 될 때까지는 등산로가 빙판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15] 겨울에는 추워서 등산 수요가 적고 눈이 내려 길이 얼어붙으면 등산하기도 힘들다. [16] 401번 종점에서 여기까지 걷는데 20~25분 정도 걸린다. [17] 본선은 배차 간격이 매우 짧지만 능성동행은 배차간격이 매우 길고, 그나마 하양-와촌1번을 위한 지원운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