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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이슬러 선빔

파일:1962-93 크라이슬러 로고.png
파일:external/racem.org/Chrysler-sunbeam-2.jpg
Sunbeam
Put a Chrysler Sunbeam in Your Life.
당신의 삶 속에 크라이슬러 선빔을 들여 놓으세요.
- 런칭 광고, 1977년

1. 개요2. 역사
2.1. 배경2.2. 개발2.3. 생산 및 판매
2.3.1. 탈보 선빔 로터스
3. 관련 문서4. 둘러보기


Chrylser Sunbeam
Talbot Sunbeam

1. 개요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 PSA 그룹 영국 자동차 회사인 루츠 그룹 탈보를 통해 1977년부터 1981년까지 생산한 소형차이다.

당시 성장중이던 슈퍼미니급 소형차 시장에 참여하고 영국 현지공장을 유지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급하게 개발한 차량이었으나, 스포츠카 업체인 로터스와 손을 잡으면서 월드 랠리 챔피언십(WRC)를 재패한 랠리카로도 알려지게 되었다.

참고 자료1 참고 자료2 참고 자료 3

2. 역사

2.1. 배경

1970년대 들어, 영국의 자동차 산업은 파탄에 다다른 노사관계와 끝없는 파업, 이에 따라 추락하는 품질 및 신뢰성 문제, 그리고 해외에서 수입되는 쟁쟁한 수입차들로 인해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당시 영국의 자동차산업을 대표하던 영국 최대의 자동차 업체인 브리티시 레일랜드도 이때 파산했고, 따라서 정부에서는 "라이더 리포트(Ryder Report)"라는 보고서를 통해 1975년에 브리티시 레일랜드를 인수하는 등으로 자국의 주요 산업기반들을 국유화하는 등, 자동차산업을 포함한 자국 산업을 재건하기 위해 국가가 직접적으로 나서고 있었다.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 산하의 루츠 그룹 역시 당시 영국의 제조업 및 자동차산업의 어수선한 분위기가 반영되어 썩 좋지 못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루츠 그룹과 마찬가지로 당시 크라이슬러의 자회사였던 프랑스 심카 역시 영국에서는 자사 라인업이 그닥 잘 팔리지 않았으며, 루츠 그룹과 심카가 크라이슬러 브랜드로 공동 개발하던 신차들은 아직 개발 단계에 놓여 있었다. 특히 루츠 그룹의 엔트리급 모델인 힐만 임프를 생산하던 스코틀랜드 렌푸르셔의 린우드(Linwood) 공장은 가면 갈수록 손해만 쌓여 가고 있었기 때문에, 크라이슬러와 루츠 그룹은 어떻게든 린우드 공장의 인력을 유지할 신차가 급히 필요했다. 그러던 와중에 영국 정부가 "라이더 리포트"를 통해 브리티시 레일랜드를 국유화하자, 크라이슬러는 영국 정부의 지원을 유치해 신차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의 당시 회장 존 리카르도(John Riccardo)를 포함한 크라이슬러의 경영진들은 1975년 10월 29일에 기자회견을 열어 '영국 정부를 상대로 5천 5백만 파운드의 지원금을 요구하며 영국 지부(루츠 그룹)를 지원해주지 않는다면 영국 지부를 폐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영국 정부는 브리티시 레일랜드 건을 수습하느라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나 "신뢰의 제휴선언(joint declaration of faith)"이라는 명분 하에 크라이슬러에 신차 개발비를 지원해주기로 결정, 1976년 1월 6일에 정부로부터 승인을 받았다.[1]

2.2. 개발

파일:external/www.rootes-chrysler.co.uk/devsunbeam_02.jpg 파일:external/www.rootes-chrysler.co.uk/devsunbeam_03.jpg
영국 정부의 지원을 토대로, 1976년 1월 7일부터 루츠 그룹의 제품개발팀은 "R424"라는 코드명 하에 새 소형차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정부지원 5천 5백만 파운드 + 크라이슬러 본사 지원 1천 2백만 파운드[2]의 개발비가 책정되어 예산이 많지 않은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가급적 단순한 설계에 기존의 부품들을 최대한 활용해야 했다. 따라서 당시 루츠 그룹이 생산, 판매하고 있었던 앞엔진 뒷바퀴굴림 준중형차 힐만 어벤저의 플랫폼을 기반으로 차량을 설계했다. 따라서 엔진도 힐만 임프의 928cc 4기통 엔진을 제외한 1,295cc와 1,598cc OHV 엔진을 어벤저와 공용했으며 문은 어벤저 2도어, 대시보드는 어벤저의 페이스리프트 사양과 공유해 R424는 상당히 빠르게 개발이 진행되었다.

디자인은 로이든 액스(Roy Axe)[3]의 디자인팀이 담당했고, 휘하의 시니어 디자이너 노먼 테리와 밥 매튜(Norman Terry, Bob Matthews)는 젊은 노동자 가족을 목표고객으로 삼아 현대적이되 훨씬 보수적인 선에서 신속하게 스타일링을 잡았다. 이 과정에서 다른 차량들과 부품을 돌려쓰면서도 차기 신차들과 맥을 같이할 것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을 진행했다. 가령 본래 디자인 과정에서는 바디라인과 매끈하게 이어지는 직사각형 헤드램프를 고려해보았으나, 비용절감을 이유로 어벤저의 중저가 사양에서 쓰는 정사각형 헤드램프와 움푹 파인 헤드램프 베젤 조합이 쓰였다. 차체 라인업은 차기 준중형차였던 심카 호라이즌을 고려해 3도어 해치백만 제공하기로 했으며, 제대로 된 해치게이트를 적용할 시간과 비용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 대신에 뒷유리만이 열리도록 설계했다.[4]

차량 명칭은 루츠 그룹의 옛 스포츠카 브랜드인 선빔(Sunbeam)[5]을 사용했는데, 영국 지사에서는 선빔 브랜드로 판매하고 싶어했지만 본사에서는 유럽 시장의 신차들을 모두 크라이슬러(승용)와 닷지(상용) 브랜드로 통합하려고 했다. 따라서 소형차인 힐만 임프나 " 루츠 애로우" 계열의 중형차를 뱃지 엔지니어링해서 겨우 숨이 붙어 있었던 대중차 브랜드 힐만, 고급 브랜드 험버, 스포츠카 전문 선빔과 상용차 전문의 커머(Commer)같은 브랜드들이 모두 폐기되었고, 힐만 어벤저도 크라이슬러 브랜드로 편입되며 새 소형차의 이름은 "크라이슬러 선빔"이 되었다.

또한 이 시기에는 린우드에서 생산하던 힐만 임프가 1976년 3월에 단종됨에 따라, 린우드에서 차체를 만들어 코번트리의 라이튼-온-던스모어 공장에서 완성하는 방식으로 생산하던 어벤저의 생산 라인이 모두 린우드 공장으로 옮겨졌다. 따라서 선빔은 주요 자원을 공용하는 형제차 어벤저와 린우드 공장에서 혼류생산이 이루어졌다.

1976년 6월 6일에는 선빔의 최종 디자인이 확정되었으며 자잘한 기술적 문제들을 발견해 해소하는 과정을 거쳤다. 동년 10월 11일에는 주행 가능한 프로토타입 6대가 공도주행을 시작했으며, 1977년 1월 6일부터는 린우드 공장에서 시험생산을 진행하며 직원들의 훈련을 겸했다. 4월 8일부터는 양산용 설비로 첫 사전생산차를 만들었다. #

2.3. 생산 및 판매

파일:external/www.simoncars.co.uk/Chrysler%20Sunbeam%2016%20GLS%20front.jpg 파일:external/www.simoncars.co.uk/Chrysler%20Sunbeam%2016%20GLS%20rear.jpg
1979년식 크라이슬러 선빔 1.6 GLS
파일:external/www.curbsideclassic.com/chrysler-sunbeam-1978.2.jpg 파일:external/c3.staticflickr.com/7462719554_07c897fe61_b.jpg
1978년식 크라이슬러 선빔 1.3 GL
1977년 7월 18일[6]에 공개되어 8월 8일부터 린우드 공장에서 생산을 시작, 크라이슬러와 루츠 그룹에서는 개발을 발표한 지 19개월 만에 선빔을 출시했다. 기존의 어벤저 2도어 세단을 대체하는 3도어 해치백 전용에 LS와 GL, GLS의 3개 트림이 준비되었다. GL 트림은 자동차 최초로 프린팅 구성의 혼합직물[7]을 시트 마감으로 사용했고 GLS 트림에는 비닐로 마감된 지붕을 고를 수 있었다. 전륜 디스크브레이크와 4단 수동변속기가 기본 사양에 1,295cc와 1,598cc 사양에는 보그워너의 4단 자동변속기가 옵션으로 제공되었으며 부품수급 문제로 인해 생략된 몇몇 초기 생산분을 제외하면 전자점화장치가 기본 적용되었다. TV 광고는 영국의 영화배우 겸 배우인 페툴라 클락(Petula Clark)을 기용해 CM송[8]를 부르도록 했다.

당시 영국의 자동차 매체들은 긴급한 상황 속에서 성급하게 개발한 차종임을 고려해 실용성 떨어지는 트렁크를 단점으로 지목하는 반면 외관 디자인과 핸들링, 고배기량 사양의 성능에 대해 호의적인 평을 내렸다.[9] 초반 판매량이 상당히 많았던 덕분에 루츠 그룹은 1976년 수준의 시장 점유율을 회복할 수 있었으며 당시 소형~준중형 해치백 시장에는 복스홀 셰베트/ 오펠 카데트 시티 토요타 스타렛, 마쓰다 패밀리아처럼 뒷바퀴굴림 설계를 고수하던 차들이 여전히 주류로 판매중이라 완전히 뒤쳐진 것도 아니었다.
파일:external/c5.staticflickr.com/3708269988_0cb18b3978_b.jpg 파일:external/c3.staticflickr.com/15467676514_43220292c6_b.jpg
1979년식 크라이슬러 선빔 Ti 1981년식 탈보 선빔 1.3 LS
1979년에는 핫해치 버전인 선빔 Ti[10]를 출시했다. GLS 트림의 1598cc 엔진에 2배럴 웨버(Weber) 카뷰레터를 장착해 100마력으로 출력을 끌어올리고, 디자인도 훨씬 스포티하게 바꾸었다. 그렇게 해서 0-96km/h까지 9.9초에 최고시속 178.6km/h를 기록했는데, 정숙성이 떨어지고 변덕과 소음이 심해 시내 운전에 애로사항이 꽃핀다는 평가를 들었으며,[11]

선빔은 그럭저럭 팔리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큰 히트를 치진 못했고, 크라이슬러는 영국과 유럽 지역에서 계속 손해를 보고 있었고, 파산 직전까지 가자 크라이슬러에서는 1978년에 푸조- 시트로엥 그룹에다가 루츠 그룹을 넘겨 버렸고, 1979년 8월 1일부터 탈보(Talbot)[12] 브랜드로 바뀌어 "탈보 선빔"으로 개명했다. 다만 크라이슬러의 5각형 로고와 그릴은 페이스리프트 때까지 한동안 유지되었고, 1981년에는 호라이즌의 헤드램프를 이식하고 새 범퍼를 추가하는 페이스리프트를 했다. 또한 이 시기에 로터스와 같이 개발한 랠리카 사양인 선빔 로터스가 라인업에 합류했다.

하지만 1980년대가 다가오면서 해치백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가로배치 전륜구동 레이아웃이 주류가 되자 판매량도 감소했고, 푸조-시트로엥 그룹이 경영난에 처하자 1981년 중순에 린우드 공장을 폐쇄하는 동시에 어벤저와 함께 단종되었다. 이때까지 약 20만대가 단종 때까지 생산되었으며 푸조 104, 시트로엥 비자, 시트로엥 LN과 같은 플랫폼으로 개발한 신차인 탈보 삼바가 대신 자리를 매꾸었다.[13] 루츠 그룹과 크라이슬러가 영국 전용으로 설계, 생산한 마지막 차종이라는 의의가 있다.

2015년 12월 기준으로 147대의 선빔이 영국에 등록되어 있으며, 로터스 버전과 그에 기반하는 랠리카 버전의 인지도가 있기 때문에 레플리카도 같이 만들어졌다.

2.3.1. 탈보 선빔 로터스

파일:external/www.sherwoodrestorations.co.uk/lotus%20tal%20001.jpg 파일:external/www.silverstoneauctions.com/3.png
1977년, 영국 크라이슬러(루츠 그룹)의 경쟁 부서 부장(Competitions Manager)이었던 디 오델(Des O'Dell)은 어벤져 타이거와 BRM의 대안이 될 차를 모색하고 있었다. 당시 랠리카 경기에서는 포드 에스코트 RS가 복스홀 셰베트 HS의 비결을 따라 2.3리터 16밸브 엔진과 짧고 견고한 3도어 차체, 뒷바퀴굴림 등의 갖추고 경기를 쥐락펴락하기 시작했으며, 어벤져 타이거가 선빔 Ti에 의해 공백이 매꿔질 때쯤 어벤져 BRM은 대안을 준비하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오델을 비롯한 경쟁 부서의 임원들은 로터스의 16밸브 슬랜트-4 직렬 4기통 엔진을 쓰자는 발상을 떠올려냈고, 로터스와의 접촉을 시작했다.

따라서 1978년에는 로터스와 같이 제작한 프로토타입[14]이 제작되었고, 신뢰성이 썩 좋지 못한 대신 성능은 꽤 괄목할 만한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다음 번에는 엔진 크기를 2174cc(약 2.2리터)[15]로 확장하고 엔진의 신뢰성도 일부 개선했으며, 로터스와 루츠 그룹/탈보에서는 FIA의 랠리카 제작대수 규정에 맞추고자 한정생산을 진행하기로 합의까지 보았다. 1979년 4월에 제네바 모터쇼에서 "탈보 선빔 로터스"[16]라는 이름으로 공개되었으며, 공개 당시에는 검은색 차체에 은색 스트라이프[17]를 추가한 뒤 로터스의 알로이휠을 장착했다. 판매 차량은 단종 때까지 총 2308대가 생산되었으며, 지금도 클래식카로 인정받고 있다.

파일:external/www.volkswagen-motorsport.com/1_1980_GB_1.jpg

탈보 선빔 로터스의 생산은, 린우드에서 생산한 1.6GLS에다가 훨씬 단단한 스프링과 댐퍼 및 서스펜션 마운트, 10퍼센트 크기를 키운 안티롤바, 강화된 변속기 캐이스를 추가한 뒤, 이를 노포크(Norfolk)의 헤델(Hethel)에 위치한 로터스 본사로 보내 엔진과 ZF제 변속기를 추가하고 출고 전 검사를 위해 코번트리의 스토크 웍스(Stoke works)로 배송된 뒤 판매되었다. 1979년 가을에 오토카(Autocar) 지에서 시승한 바에 따르면 0-96km/h까지 7.4초에 160km/h까지 20.4초가 걸렸으며, 평균 연비는 리터당 약 7.4km/l이었고[18] 운전 특성이 대체로 거칠면서 저속 주행에서도 만족할만한 주행 감각을 보여주었다고 밝혔다. 또한 오토카 지에서는 이에 덧붙여 "순수하게 성능만 따지고 보면 탈보 브랜드의 대표라고 할 수 있으며, 다만 핸들링 특성과 정숙성, 낮은 연비가 단점"이라고 평가했다.[19]( evo지의 최근 시승기)

선빔 로터스의 주 무대였던 월드 랠리 챔피언쉽, 정확히는 영국의 롬바드-RAC 랠리(Lombard RAC Rally)[20]의 1980년 시즌에서는 헨리 토이보넨(Henri Toivonen)이 탑승한 선빔 로터스가 우승을 거두었으며, 1981년에는 그룹 2 경기에서 Guy Frequelin과 스티그 블롬크비스트(Stig Blomqvist), 헨리 토이보넨이 탄 선빔 로터스가 주요 경기에서 2등, 아르헨티나 경기에서 1등을 차지해 최종 우승을 차지하면서 탈보가 1981년 WRC 제조사 타이틀을 따내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1982년에는 RAC 랠리에서만 부분적으로 활동하긴 했지만 토이보넨을 제외한 2명이 참여해 우승을 차지했다.

3.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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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에 대해서는 선거가 다가오고 있는 상황인데다가, 잉글랜드 중부에서는 당시 여당이었던 노동당의 입지가 약해져 가고 있었던 배경도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가 있다. [2] 국유화 시절 브리티시 레일랜드가 개발한 오스틴 메트로는 3억 파운드가 개발비로 소요되었다. [3] Royden Axe. 1977년에 미국 본사로 이동했다가 1980년대 초반에 브리티시 레일랜드로 건너가 수석디자이너를 맡았다. 대표작으로는 로버 800 오스틴 몬테고, 크라이슬러 알파인, 힐만 어벤저 등이 있다. [4] 앞엔진 뒷바퀴굴림 플랫폼이라 구동축이 트렁크 밑을 지나가는데다가 제대로 된 해치게이트가 제공되지 않아 트렁크의 턱이 높아졌고, 따라서 짐을 트렁크에 싣고 내리는 데 애로사항이 꽃피기도 했다. 이는 해치백이 단순히 트렁크를 줄이고 해치게이트를 다는 형태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해치게이트가 추가로 들어가는 만큼 보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해치백은 해치게이트를 뚫으면서 이를 지지하는 골격의 면적이 좁아지는만큼 서포트가 약해지고, 약해진 만큼의 보강이 추가로 들어가야 한다. 이렇게 선빔처럼 해치백처럼 생겼으나 시간 및 비용문제로 인해 뒷유리창만 해치게이트로 적용한 사례로는 1970년의 AMC 그렘린이 있었다. [5] 영국 내에서는 루츠 그룹 내의 브랜드를 거의 다 폐기하다시피 했지만,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는 힐만 어벤져가 선빔 브랜드로 판매되고 있었다. [6] 이때 어벤저와의 혼류생산을 엄두해 린우드 공장의 설비 재단장이 진행되었다. [7] Cambrelle에서 남품받았다. [8] 맨 위에 있는 광고 카피가 CM송 가사의 일부이다. [9] 가령 영국의 모터(Motor) 지에의 1.6리터 사양 시승기에서는 사용하기 불편한 트렁크, 장거리 주행 시 정숙성이 떨어지는 엔진, 안전하지만 별볼 일 없는 핸들링 등을 지적했으며 1.0LS 트림을 시승해 본 뒤에도 변속감에 대한 호평과 0-96km/h까지 22초가 걸리는 가속시간에 대한 지적을 빼면 크게 다른 평을 내리지 않았다. 다만 "크라이슬러가 힘든 시기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자면 훨씬 좋은 결과가 향후 나와야 할 것이고, 크라이슬러도 그런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별 5개 중 4개를 주었다. [10] 실질적으로는 힐만 어벤져의 고성능 버전인 타이거(Tiger)의 해치백 버전이었다. 여담으로 'Ti'라는 트림명은 심카 1100에서 핫해치 버전의 트림명으로 쓴 적이 있다. [11] 모터 지에서도 핸들링과 운전 성능(시승 도중에 사고가 날 뻔했다고 한다)이 별로라고 평가하면서 같이 시승했던 폭스바겐 골프 GTI와 복스홀 셰베트 HS에 비해 기대 이하였다고 평가했다. [12] 프랑스의 옛 고급차 브랜드에서 따 온 명칭으로, 영국 업체인 선빔과 같이 손을 잡고 1950년대까지 고급차를 만들어 오다가 파산해, 선빔의 모회사가 된 루츠 그룹에게 같이 인수되었다. 참고 자료1 [13] 한편, 루츠 그룹 시절에는 호라이즌에 기반한 단축형 3도어 모델 C2-Short를 선빔의 후속으로 준비했으나 탈보가 결성되며 푸조 104 기반의 삼바로 변경되었다. # [14] 2리터 엔진을 얹었으며, 토니 폰드(Tony Pond)가 이 차를 타고 경기에 나섰다. [15] 판매용은 150마력, 경기용은 250마력이었다. [16] 이때 루츠 그룹은 푸조-시트로엥 그룹 밑에 있었고, 이름도 탈보로 변경되었다. [17] 후기형은 문스톤 블루(Moonstone Blue. 연청색) 배경과 은색, 혹은 검은색 스트라이프로 마감했다. [18] 모터 지의 시승기에서는 0-96km/h까지 6.8초에 160km/h까지 19.8초가 걸렸으며 평균 연비는 리터당 약 9.3km/l이었다. [19] 모터 지에서는 "이러저러한 부분에서 여전히 선빔이며, 랠리카를 원한다면 더 나은 차를 비슷한 가격에 살 수 있지만, 다른 것보다도 성능을 우선시하는 소비자라면 충분히 값어치를 할 것"이라고 요약했다. [20] Wales Rally GB나 Network Q RAC Rally로도 알려져 있으며, 1932년부터 시작되어 "Wales Rally of Great Britain"이라는 이름으로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