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의 등장인물에 대한 내용은 코바시 켄타(더 화이팅) 문서 참고하십시오.
전일본 사천왕 | |||
미사와 미츠하루 | 코바시 켄타 | 카와다 토시아키 | 타우에 아키라 |
전일본 오강 | ||||
미사와 미츠하루 | 코바시 켄타 | 카와다 토시아키 | 타우에 아키라 | 아키야마 쥰 |
<BURNING> 小橋建太 / KENTA KOBASHI |
1. 프로필
Fortune KK | |
<colcolor=#ffffff><colbgcolor=#600380> 이름 | 코바시 켄타(小橋建太) |
생년월일 | 1967년 3월 27일 |
출생지 | 일본 교토부 후쿠치야마시 |
신장 | 186cm |
체중 | 115kg |
유형 | 왕도 스타일 + 브롤러 + 테크니션[1] |
시그니처 무브 |
각종
찹[2] 하프 넬슨 수플렉스, 슬리퍼 수플렉스 오랜지 크러쉬 파워밤 슬리퍼 홀드 |
피니쉬 무브 |
버닝 해머 버닝 래리어트 리스트 클러치식 버닝 해머 문설트 프레스 수직낙하식 브레인버스터 탑로프 기요틴 드랍[3] |
테마곡 |
Grand Sword[4] - 스즈키 오사무 Sniper[5] - 마츠바라 마사키 Blazin[6] |
별명 |
Burning Orange Crush 뜨거운 청춘의 불끈 쥔 주먹 철인 절대왕자[7] 춉 코바시[8] Mr. 프로레슬링 |
주요 커리어 |
신춘 배틀 로얄 우승 1회 챔피언 카니발 우승 1회 삼관 헤비급 챔피언 3회 올 아시아 태그팀 챔피언 4회 (w/ 미사와 미츠하루 (1), 쟈니 에이스 (2), 키쿠치 츠요시 (1)) 세계 태그팀 챔피언 6회 (w/ 미사와 미츠하루 (2), 쟈니 에이스 (2), 아키야마 쥰(2)) 세계 최강 태그 결정 리그전 5회 우승 (w/ 미사와 미츠하루 (1993~1995), 아키야마 쥰 (1998, 1999)) GHC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9] GHC 오픈웨이트 하드코어 챔피언 1회 GHC 헤비웨이트 태그팀 챔피언 2회 (w/ 혼다 타몬) |
데뷔 |
1988년
2월 26일 시가현 릿토시 시민 체육관 전일본 '88 익사이팅 시리즈 8일차 vs 오쿠마 모토시 |
은퇴 |
2013년
5월 11일 도쿄도 치요다구 일본 무도관 NOAH FINAL BURNING in Budokan ~ 코바시 켄타 은퇴기념 대회~ vs KENTA & 카네마루 요시노부 & 시오자키 고 & 마이바흐 타니구치 (w/ 아키야마 쥰 & 사사키 켄스케 & 무토 케이지) |
SNS |
Sniper | |
GRAND SWORD | |
Blazin | |
2. 소개
DVD 철인 코바시 켄타 ~절대왕자로 가는 길~ 오프닝 |
いくぞㅡ!!!! (간다ㅡ!!!!)[10]
小橋建太
일본의 유명 프로레슬러. 더 화이팅에 등장하는 동명의 캐릭터는 이 프로레슬러에게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3. 커리어
철 들었을 무렵부터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하여 어머니 밑에서 살던 코바시는 고교 시절, 럭비, 유도를 하다가 1985년 고교를 졸업한 뒤에 교세라에서 평범한 직장인 생활을 했으나 2년 후 1987년 2월 14일 프로레슬링에 입문하기 위해 퇴사해서, 같은 해 12월 16일 코라쿠엔 홀 흥행의 배틀로열 경기에 참가함으로써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데뷔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경기로의 본데뷔는 1988년 2월 26일이다.데뷔 당시 세대교체 시기를 맞이한 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 뛰어난 경기력,[11] 보는 사람을 식겁하게 만드는 불굴의 투혼으로 " 전일본 4천왕"[12]이라 불리며 정상급 프로레슬러로 군림했다. 미사와 미츠하루에 밀려 2인자의 위상이었지만 '닥터 데스' 스티브 윌리암스, '불침함' 스턴 한센, 카와다 토시아키 등과 명경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1998년부터 본격적으로 미사와 미츠하루의 자리를 넘보면서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1998, 1999년 올해의 경기에 이름을 올린다.
이후 전일본 선수 이탈사건이 터지며 프로레슬링 NOAH가 창설될 당시 미사와 미츠하루에 이은 주축 멤버로서 노아의 링에 섰다. 전일본 프로레슬링 때 입던 오렌지색 팬츠 대신 검은색 팬츠를 입고 활동하며 본격적으로 1인자의 자리에 오른다. 2003년 3월 1일에 미사와 미츠하루를 1:1 싱글매치에서 이겼으며, 2004년에는 아키야마 준과 대립했고, 2005년엔 ROH에 원정을 가서 사모아 조와 경기했는데,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2003년, 2004년, 2005년 올해의 경기에 이름을 올린다.
촙 vs 촙 , 래리어트 vs 래리어트 ,강완 vs 강완! |
미국에서도 몇번 경기한 적이 있다. 2005년 10월 1일에 ROH의 링에서 사모아 죠와 경기를 가졌는데, 이 경기는 ROH를 북미 제3단체로 끌어올린 여러 전설급 경기들 중 하나다. 사모아 조가 스티브 오스틴의 팟캐스트에서 밝히길, 코바시 켄타는 미국 관중들이 자기를 모를까봐 비열한 외국인 악역의 역할을 맡으려고 했지만 사모아 조가 평소 스타일로 해도 된다고 만류시켰다. 그래서 코바시 켄타는 평소 스타일로 경기를 하게 되는데, 등장할 때 우렁찬 관중들의 환호를 듣게 되자 코바시는 깜짝 놀랐다고 한다. ROH의 관객들은 상당수가 일본 프로레슬링도 비디오 녹화 등으로 접한 매니아층이었고, 이를 잘 아는 사모아 조의 조언이 맞았다. 경기는 시작부터 힘대결을 거부하며 상대를 디스리스펙트하는 조에게 코바시 켄타가 자신의 레파토리를 피로하며 참교육을 가하는 구도로 나아갔는데, 인디 관중 특유의 열띈 챈트와 무대의 낮은 조명으로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땀이 두 선수가 찹 대결을 벌일 때마다 흥을 돋우며 코바시 켄타가 왕도 프로레슬링 특유의 상대를 부수는 듯한 경기를 그려내는데 한몫했다. 큰 스팟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석을 밟으며 만들어낸 훌륭한 협주곡이었다.
2003년 3월 1일부터 2005년 3월 5일까지 735일 동안 GHC 헤비웨이트 챔피언을 지내는 등 절대왕자로 군림했지만 문설트를 많이 쓰다보니 무릎 상태가 좋지 않아 휴식을 가지기도 하고, 2006년에 신장암에 걸려 선수생활에 위기를 맞았지만 546일만에 복귀해서 많은 팬들에게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팔꿈치 부상을 여러번 당하는 등 몸상태가 성하지 못한 상태에 이르러서, 미사와 미츠하루 사망 사고 같은 사태를 팬들이 우려했다.
2010년 6월 15일에 결혼을 발표해 프로레슬링 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신부는 전 아이돌이자 현 엔카 가수인 미즈키 마이로, 7살 연하라고 한다. 두 사람은 같은해 10월 2일에 결혼식을 올렸으며 2015년에 득녀했다.
그리고 부상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프로레슬러를 그만둘 수밖에 없다면서, 2012년 12월 9일 흥행에서 은퇴를 발표한다. # 예매표가 5분만에 매진될 정도로 성황인 가운데 2013년 5월 11일 무도관에서 은퇴시합 'FINAL BURNING in Budokan'이 열렸다.
FINAL BURNING! |
프로레슬러 출신 국회의원인 하세 히로시가 코바시 켄타를 좋게 보고 있고, 은퇴 파티 때는 무려 전 총리인 간 나오토까지 와서 축배를 들어 정계 진출 루머가 돌기도 했지만
AKB48의 恋するフォーチュンクッキー 뮤직비디오에 케니 오메가와 함께 출연했는데, 쿠라모치 아스카가 광팬이라서 나왔다고 한다. 쿠라모치 아스카 졸업 콘서트에도 방문해 격려를 해주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코바시 켄타/경력 문서 참고하십시오.
4. 사용 기술
봉인기 버닝 해머 | 버닝 래리어트 |
데뷔 초창기엔 문설트를 매 경기마다 쓰다가
그 외의 주력기인 하프넬슨 수플렉스는 하프넬슨 상태에서 그대로 뒤로 던지는 수플렉스로, 고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접수자의 정수리가 바닥에 박히는 흉악한 기술이다. 쵸노 마사히로는 이 기술을 맞은 후 "머리에 혹이 나는 수플렉스는 처음이다"라며 감상을 밝혔다.
사람 죽겠다 싶은 강력한 기술을 몇번씩 얻어맞고도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투혼과, 한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맞은 이상으로 되갚아주는 화끈한 시합 운영 덕분에 현역 때 최고의 인기를 얻었다. 니코니코동화 프로레슬링 덕후들은 그의 테마인 GRAND SWORD를 국가(國歌)라고 할 정도(...)이며, 무한도전 WM7 9월 11일차에 오프닝으로 나왔다.
머신건 찹
머신건 챱은 코바시 켄타의 엄청난 근성을 잘 나타내는 대표적인 기술 중 하나로, 미국에서 춉의 달인이 릭 플레어라면 일본에서는 코바시 켄타가 꼽힌다.
5. 여담
- 어렸을 적 부모님이 이혼하고 나서는 어머니와 같이 지냈으며, 친가에서 쌀 농사를 지었어서 집은 가난했지만 쌀만큼은 많이 보내줘서 잔뜩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어린 코바시를 키우기 위해 저녁밥을 만든 후 당시 시골이었던 후쿠치야마시에 몇 개 없었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밤까지 설거지 이모로 일하고 다시 아침에 일어나 코바시의 밥을 만들어주는 등 헌신을 다했다고 한다.
- 어렸을 때 가난해서 식재료를 많이 접하지 못 했고 코바시 본인도 맛에 민감하지 않아 뭐든지 먹을수 있으면 오케이 같은 느낌이라고 한다. 신인 때 챵코용 야채를 썰거나는 했지만 코바시에게 맛내기까지 맡겨버리면 '뭘 (재료로) 넣어도 괜찮겠지...'라는 느낌으로 대충 먹을 수만 있게 만들어서 맛에 민감한 선배들을 전혀 만족시키지 못 했기 때문에 맛내기 담당은 선배들도 안 시켰다고 한다.
- 그가 톱 프로레슬러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전일본 프로레슬링 입단 당시부터 꾸준했던 엄청난 연습량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 연습생 시절 자이언트 바바의 심부름꾼으로서 하와이에 갔을 때 훈련만 거듭하고 있던 코바시 켄타를 보기가 힘들었던 바바가 '쉬는 것도 연습이니 쉬어라'고 까지 말했다고 하며, 코바시의 경기를 해설하던 도중에 '코바시는 취미가 연습'이라고 말할 정도였다.[18] 코바시 켄타의 과도한 훈련을 보고 한 중견 선수가 비웃었던 적이 있었는데, 당시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간판 스타였던 텐류 겐이치로가 '너는 지금 웃고 있지만 곧 이 녀석(=코바시)에게 먹히는 날이 올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 후배 아키야마 준이나, 제자 KENTA조차 코바시의 과도한 훈련량을 따라가지 못해 병원에 간 적도 있다. 2002년 무릎 부상에서 복귀하기 전에 하와이 훈련에 동행했던 KENTA가 마지막 날에는 '제발 오늘은 쉬게 해주십시오'라고 간청했던 적도 있다.[19]
- 엄청난 훈련량 때문에 근육량도 많아서, 신장암 수술을 받을 때 근육 때문에 평균 수술 시간의 두 배 가량이 걸렸다고 한다. 2005년에 ROH 원정 경기를 뛰었을 때, 사모아 조에게도 전혀 밀리지 않는 어마어마한 덩치를 자랑했다.
- 보통 선수들은 한 번만 당해도 선수생활이 위태로울 몸의 이상(신장암, 무릎 부상, 팔꿈치 부상 2번)을 여러번 극복하고 복귀했으며, 현역으로 활동할 당시 보여줬던 엄청난 파이팅 때문에 철인이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얻었다. 또한 '절대왕자'라는 별칭은 일본 프로레슬링 역사상 '최장기간, 최다횟수 타이틀 방어 기록'(13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붙었다.
- 프로레슬링 관계자나 동료 선수들, 팬들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기를 코바시는 프로레슬링 계에서도 알아주는 인격자라고 한다.
- 일반적으로 레슬러는 욕설, 허세, 도발 등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코바시는 이러한 이미지와는 일절 관계없는 신사적인 성격이다. 코바시와 대전 경험이 있는 스즈키 미노루[20]는 "내가 도발하면 대부분은 발끈해서 똑같이 욕설로 맞받아치지만 그래봤자 상대방 이미지만 나빠질 뿐이고 무엇보다 나한테 말싸움으로 이길 리가 없다. 하지만 코바시는 전혀 그런 적이 없다. 녀석이야말로 진정한 베이비 페이스다"라고 평했다.
- 팬서비스에 대해서도 굉장히 성심껏 임한다. 팬들이 사인을 요청하면 언제나 웃는 얼굴로 정성껏 사인을 해 주며 거절하는 일도 거의 없다고 한다. 경기 후 격하게 지쳤을 때에도 사인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에게는 사양하지 않고 다 해주었는데, 그의 제자였던 시오자키 고의 말에 따르면 한번은 사인을 일일이 다 받아주다보니 100m의 거리를 가는데에 1시간이 걸린 적이 있다고도 한다. 코바시가 팬들의 사인을 100% 다 해주는 소신을 지키는 이유는 어린 시절 신일본 프로레슬링 경기를 보러 갔다가 외국 선수 다이너마이트 키드가 지나가자 사인종이와 펜을 건넸는데 키드가 뚱한 표정으로 이걸 받더니 그냥 바닥에 내던졌다고 한다. 그걸로 인해 코바시가 울음을 터뜨릴때 후지나미 타츠미가 이 광경을 보더니 무슨 일이냐고 묻고는 대신 사인을 해줬다고 한다. 그 이후 코바시는 자신이 프로레슬러가 되면 절대 사인을 거부하는 짓 따윈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사인을 다 해줬다고 한다. 그 후지나미 타츠미와는 나중에 전일본에서 함께 선수로 뛰기도 했다.[21]
- 2006년 6월 24일에 코바시의 오른쪽 신장에 종양이 발생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되었지만, 코바시는 그 다음날에 후쿠시마에서 열린 팬 이벤트에 등장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웃는 얼굴로 팬에게 답해주는 등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참가했지만, 사실 이 때 이미 의사로부터 향후 일절 경기 출전은 무리라는 진단을 받았으며 하루라도 빨리 입원하라는 권고를 받은 상황이었다고 한다.
- 전일본 프로레슬링을 이탈했을 때 코바시 켄타가 미사와 미츠하루를 지지해주지 않았다면 프로레슬링 노아는 미사와의 원래 계획대로 중소 단체가 되었을 것이다.[22] 사내 파벌이나 정치에도 관심이 없어, 미사와 미츠하루가 죽은 후 프로레슬링 NOAH가 내란에 휩싸였을 때도 묵묵히 연습하고 있었다고 한다.
- 인스타그램에서 보이는 그의 사진을 보면 양복에 노란 리본을 꽂은 경우가 많은데, 국제 소아암의 날(2월 15일)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당일에 관련 게시물도 올렸다.
6. 둘러보기
2002년 레슬링 옵저버 명예의 전당 헌액자 |
<colbgcolor=black><colcolor=#000000> | |||||||
엔도 테츠야 | 오카다 유스케 | 코로쿠 유우야 | 이이노 유우키 | ||||
{{{#!folding 【 전 멤버 】 | 코바시 켄타 | 카네마루 요시노부 | KENTA | 리키오 타케시 | |||
시오자키 고 | 혼다 타몬 | 아오키 아츠시 | 키쿠치 츠요시 | ||||
시가 켄타로 | 타니구치 슈헤이 | 이토 아키히코 | 스즈키 코타로 | ||||
아키야마 쥰 |
역대 신춘 배틀로얄 우승자 | ||||
1992 | → | 1993 | → | 1994 |
타우에 아키라 | → | 코바시 켄타 | → | 스탠 핸슨 |
역대 챔피언 카니발 우승자 | ||||
1999 | → | 2000 | → | 2001 |
베이더 | → | 코바시 켄타 | → | 텐류 겐이치로 |
역대 세계 최강 태그 결정 리그전 우승자 | ||||
1992 | → | 1993,1994,1995 | → | 1996,1997 |
초세대군([ruby(超世代軍, ruby=ちょうせ だいぐん)]) 카와다 토시아키 & 미사와 미츠하루 |
→ |
초세대군([ruby(超世代軍, ruby=ちょうせ だいぐん)]) 코바시 켄타 & 미사와 미츠하루 |
→ |
성귀군([ruby(聖鬼軍, ruby=せい き ぐん)]) 카와다 토시아키 & 타우에 아키라 |
1996, 1997 | → | 1998, 1999 | → | 2000 |
성귀군([ruby(聖鬼軍, ruby=せい き ぐん)]) 카와다 토시아키 & 타우에 아키라 |
→ |
BURNING 아키야마 준 & 코바시 켄타 |
→ |
버시티 클럽 21 마이크 로툰다 & 스티브 윌리엄스 |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올해의 레슬러 | ||||
미사와 미츠하루 (1995) |
→ |
코바시 켄타 (1996) |
→ |
미사와 미츠하루 (1997) |
커트 앵글 (2002) |
→ |
코바시 켄타 (2003 ~ 2005) |
→ |
미스티코 (2006) |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올해 가장 탁월한 레슬러 | ||||
수신 선더 라이거 (1992) |
→ |
코바시 켄타 (1993, 1994) |
→ |
토요타 마나미 (1995) |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올해의 태그팀 | ||||
로스 그린고스 로코스 (1994) |
→ |
초세대군([ruby(超世代軍, ruby=ちょうせだいぐん)]) 미사와 미츠하루 코바시 켄타 (1995) |
→ |
초세대군([ruby(超世代軍, ruby=ちょうせだいぐん)]) 미사와 미츠하루 아키야마 준 (1996) |
오오타니 신지로 타카이와 타츠히토 (1998) |
→ |
BURNING 코바시 켄타 아키야마 준 (1999) |
→ |
에지 크리스찬 (2000) |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최고의 흥행 보증 수표 | ||||
밥 샙 (2003) |
→ |
코바시 켄타 (2004, 2005) |
→ |
미스티코 (2006) |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가장 기량이 발전한 선수 | ||||
렉스 루거 (1989) |
→ |
코바시 켄타 (1990) |
→ |
더스틴 로즈 (1991) |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최고의 레슬링 피니셔 | ||||
다이아몬드 댈러스 페이지 다이아몬드 커터 (1997) |
→ |
코바시 켄타 버닝 해머 (1998) |
→ |
드래곤 키드 드래곤라나 (1999 & 2000) |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올해의 경기 [★] |
|||
1992년 5월 25일 |
전일본 프로레슬링 '92 슈퍼 파워 시리즈 8일차 |
올 아시아 태그팀 챔피언십 캔 암 익스프레스(C) (더그 퍼나스 & 댄 크로팻(X)) vs _초세대군_(_[ruby(超世代軍, ruby=ちょうせだいぐん)]_) (_ 키쿠치 츠요시_ & _코바시 켄타_(O)) |
***** |
1998년 10월 31일 |
전일본 프로레슬링 '98 자이언트 시리즈 18일차 |
삼관 헤비급 챔피언십 _ 미사와 미츠하루_ vs 코바시 켄타(C) |
***** |
1999년 6월 11일 |
전일본 프로레슬링 '99 슈퍼 파워 시리즈 14일차 |
삼관 헤비급 챔피언십 _ 미사와 미츠하루_(C) vs 코바시 켄타 |
***** |
2003년 3월 1일 |
프로레슬링 NOAH 내비게이트 포 에볼루션 |
GHC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미사와 미츠하루(C) vs _코바시 켄타_ |
***** |
2004년 7월 10일 |
프로레슬링 NOAH NOAH DEPARTURE |
GHC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아키야마 준 vs _코바시 켄타_(C) |
***** |
2005년 10월 1일 |
ROH 조 Vs. 코바시 |
싱글 매치 사모아 조 vs _코바시 켄타_ |
***** |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5성 경기[★] | ||
1990년 10월 19일 |
전일본 프로레슬링 '90 자이언트 시리즈 16일차 |
6인 태그팀 매치 _츠루타군_(_[ruby(鶴田軍, ruby=つるたぐん)]_) (_ 타우에 아키라_ & _ 점보 츠루타_(O) & _ 후치 마사노부_) vs 초세대군([ruby(超世代軍, ruby=ちょうせだいぐん)]) ( 미사와 미츠하루 & 카와다 토시아키 & 코바시 켄타(X)) |
1991년 4월 20일 |
전일본 프로레슬링 팬 감사의 날 |
6인 태그팀 매치 츠루타군([ruby(鶴田軍, ruby=つるたぐん)]) ( 타우에 아키라(X) & 점보 츠루타 & 후치 마사노부) vs _초세대군_(_[ruby(超世代軍, ruby=ちょうせだいぐん)]_) (_ 미사와 미츠하루_(O) & _ 카와다 토시아키_ & _코바시 켄타_) |
1992년 5월 22일 |
전일본 프로레슬링 '92 슈퍼 파워 시리즈 6일차 |
6인 태그팀 매치 츠루타군([ruby(鶴田軍, ruby=つるたぐん)]) ( 타우에 아키라(X) & 점보 츠루타 & 후치 마사노부) vs _초세대군_(_[ruby(超世代軍, ruby=ちょうせだいぐん)]_) (_ 미사와 미츠하루_ & _ 카와다 토시아키_(O) & _코바시 켄타_) |
1992년 5월 25일 |
전일본 프로레슬링 '92 슈퍼 파워 시리즈 8일차 |
올 아시아 태그팀 챔피언십 캔 암 익스프레스(C) (더그 퍼나스 & 댄 크로팻(X)) vs _초세대군_(_[ruby(超世代軍, ruby=ちょうせだいぐん)]_) (_ 키쿠치 츠요시_ & _코바시 켄타_(O)) |
1992년 7월 5일 |
전일본 프로레슬링 '92 섬머 액션 시리즈 2일차 |
올 아시아 태그팀 챔피언십 츠루타군([ruby(鶴田軍, ruby=つるたぐん)]) ( 후치 마사노부(X)) & 오가와 요시나리) vs _초세대군_(_[ruby(超世代軍, ruby=ちょうせだいぐん)]_)(C) (_ 키쿠치 츠요시_(O) & _코바시 켄타_) |
1993년 4월 12일 |
전일본 프로레슬링 1993년 챔피언 카니발 16일차 |
챔피언 카니발 리그전 _ 카와다 토시아키_ vs 코바시 켄타 |
1993년 7월 2일 |
전일본 프로레슬링 '93 섬머 액션 시리즈 개막전 |
6인 태그팀 매치 성귀군([ruby(聖鬼軍, ruby=せい き ぐん)]) ( 타우에 아키라 & 카와다 토시아키 & 오가와 요시나리(X)) vs _초세대군_(_[ruby(超世代軍, ruby=ちょうせだいぐん)]_) (_ 미사와 미츠하루_ & _ 아키야마 쥰_ & _코바시 켄타_(O)) |
1993년 7월 29일 |
전일본 프로레슬링 '93 섬머 액션 시리즈 22일차 |
싱글 매치 _ 스탠 핸슨_ vs 코바시 켄타 |
1993년 8월 31일 |
전일본 프로레슬링 '93 섬머 액션 시리즈2 10일차 |
삼관 헤비급 챔피언십 도전자 결정전 _ 스티브 윌리엄스_ vs 코바시 켄타 |
1993년 12월 3일 |
전일본 프로레슬링 1993년 세계최강 태그 결정 리그전 18일차 |
세계최강 태그 결정 리그전 결승전 성귀군([ruby(聖鬼軍, ruby=せい き ぐん)]) ( 타우에 아키라 & 카와다 토시아키(X)) vs _초세대군_(_[ruby(超世代軍, ruby=ちょうせだいぐん)]_) (_ 미사와 미츠하루_ & _코바시 켄타_(O)) |
1994년 1월 29일 |
전일본 프로레슬링 '94 뉴 이어 자이언트 시리즈 20일차 |
6인 태그팀 매치 성귀군([ruby(聖鬼軍, ruby=せい き ぐん)]) ( 타우에 아키라 & 후치 마사노부(X) & 카와다 토시아키) vs _ 자이언트 바바_ & _초세대군_(_[ruby(超世代軍, ruby=ちょうせだいぐん)]_) (_ 미사와 미츠하루_ & _코바시 켄타_(O)) |
1994년 5월 21일 |
전일본 프로레슬링 '94 슈퍼 파워 시리즈 6일차 |
세계 태그팀 챔피언십 성귀군([ruby(聖鬼軍, ruby=せい き ぐん)]) ( 타우에 아키라(X) & 카와다 토시아키) vs _초세대군_(_[ruby(超世代軍, ruby=ちょうせだいぐん)]_)(C) (_ 미사와 미츠하루_ & _코바시 켄타_(O)) |
1995년 1월 19일 |
전일본 프로레슬링 '95 뉴 이어 자이언트 시리즈 14일차 |
삼관 헤비급 챔피언십[26] 카와다 토시아키(C) vs 코바시 켄타 |
1995년 1월 24일 |
전일본 프로레슬링 '95 뉴 이어 자이언트 시리즈 17일차 |
세계 태그팀 챔피언십[27] 성귀군([ruby(聖鬼軍, ruby=せい き ぐん)]) ( 타우에 아키라 & 카와다 토시아키) vs 초세대군([ruby(超世代軍, ruby=ちょうせだいぐん)])(C) ( 미사와 미츠하루 & 코바시 켄타) |
1995년 3월 4일 |
전일본 프로레슬링 '95 익사이팅 시리즈 12일차 |
세계 태그팀 챔피언십 쟈니 에이스(X) & 스티브 윌리엄스 vs _초세대군_(_[ruby(超世代軍, ruby=ちょうせだいぐん)]_)(C) (_ 미사와 미츠하루_ & _코바시 켄타_(O)) |
1995년 6월 9일 |
전일본 프로레슬링 '95 섬머 액션 시리즈 15일차 |
세계 태그팀 챔피언십 _성귀군_(_[ruby(聖鬼軍, ruby=せい き ぐん)]_) (_ 타우에 아키라_ & _ 카와다 토시아키_(O)) vs 초세대군([ruby(超世代軍, ruby=ちょうせだいぐん)])(C) ( 미사와 미츠하루(X) & 코바시 켄타) |
1995년 6월 30일 |
전일본 프로레슬링 '95 섬머 액션 시리즈 1일차 |
6인 태그팀 매치 성귀군([ruby(聖鬼軍, ruby=せい き ぐん)]) ( 타우에 아키라 & 카와다 토시아키) & 혼다 타몬(X) vs _초세대군_(_[ruby(超世代軍, ruby=ちょうせだいぐん)]_) (_ 미사와 미츠하루_ & _ 아사코 사토루_ & _코바시 켄타_(O)) |
1998년 10월 31일 |
전일본 프로레슬링 '98 자이언트 시리즈 18일차 |
삼관 헤비급 챔피언십 _ 미사와 미츠하루_ vs 코바시 켄타(C) |
1999년 6월 11일 |
전일본 프로레슬링 '99 슈퍼 파워 시리즈 14일차 |
삼관 헤비급 챔피언십 _ 미사와 미츠하루_(C) vs 코바시 켄타 |
1999년 10월 23일 |
전일본 프로레슬링 '99 자이언트 시리즈 11일차 |
올 아시아 태그팀 챔피언십 언터쳐블(C) ( 미사와 미츠하루(X) & 오가와 요시나리) vs _ BURNING_ (_ 아키야마 쥰_ & _코바시 켄타_(O)) |
2003년 3월 1일 |
프로레슬링 NOAH 내비게이트 포 에볼루션 |
GHC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미사와 미츠하루(C) vs _코바시 켄타_ |
2004년 7월 10일 |
프로레슬링 NOAH NOAH DEPARTURE |
GHC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아키야마 쥰 vs _코바시 켄타_(C) |
2005년 10월 1일 |
ROH 조 Vs. 코바시 |
싱글 매치 사모아 조 vs _코바시 켄타_ |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신인상 | ||||
하세 히로시 (1988) |
→ |
코바시 켄타 (1989) |
→ |
아오야기 마사시 (1990) |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기능상 | ||||
후나키 마사카츠 (1993) |
→ |
코바시 켄타 (1994) |
→ |
안조 요지 (1995) |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수훈상 | ||||
쵸노 마사히로 (1992) |
→ |
코바시 켄타 (1993) |
→ |
수신 선더 라이거 (1994) |
타카야마 요시히로 (2002) |
→ |
코바시 켄타 (2003) |
→ |
카와다 토시아키 (2004) |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최우수 태그팀상 | ||||
반선수회동맹([ruby(反選手会同盟, ruby=はんせんしゅかいどうめい)]) ( 사이토 아키토시, 기무라 켄고, 아오야기 마사시, 코시나카 시로) (1992) |
→ |
초세대군([ruby(超世代軍, ruby=ちょうせ だいぐん)]) ( 코바시 켄타 , 미사와 미츠하루 ) (1993 , 1994) |
→ |
랑군단([ruby(狼, ruby=おおかみ)][ruby(群団, ruby=ぐんだん)]) ( 텐잔 히로요시, 쵸노 마사히로) (1995) |
불침황제([ruby(不沈皇帝, ruby=ふちんこうてい)]) 스탠 핸슨 & 베이더 (1998) |
→ |
BURNING (코바시 켄타 & 아키야마 쥰) (1999) |
→ |
텐코지 텐잔 히로요시 & 코지마 사토시 (2000) |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MVP (최우수 선수상) | ||||
무토 케이지 (1995) |
→ |
코바시 켄타 (1996) |
→ |
쵸노 마사히로 (1997) |
쵸노 마사히로 (1997) |
→ |
코바시 켄타 (1998) |
→ |
무토 케이지 (1999) |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연간 최고 시합상 (베스트 바웃) [★] | ||||
1995년 6월 9일 |
전일본 프로레슬링 '95 슈퍼 파워 시리즈 최종전 |
세계 태그팀 챔피언십 _성귀군_(_[ruby(聖鬼軍, ruby=せい き ぐん)]_) (_ 타우에 아키라_, _ 카와다 토시아키_(O)) vs 초세대군([ruby(超世代軍, ruby=ちょうせ だいぐん)]) (코바시 켄타, 미사와 미츠하루(X)) |
||
1997년 10월 21일 |
전일본 프로레슬링 '97 자이언트 시리즈 최종전 |
삼관 헤비급 챔피언십 코바시 켄타 vs _ 미사와 미츠하루(C)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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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0월 31일 |
전일본 프로레슬링 '98 자이언트 시리즈 최종전 |
삼관 헤비급 챔피언십 코바시 켄타(C) vs _ 미사와 미츠하루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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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3월 1일 |
프로레슬링 NOAH 내비게이트 포 에볼루션 |
GHC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미사와 미츠하루(C) vs _코바시 켄타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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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7월 10일 |
프로레슬링 NOAH DEPARTURE |
GHC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아키야마 쥰 vs _코바시 켄타_(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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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18일 |
프로레슬링 NOAH Destiny |
싱글 매치 사사키 켄스케 vs _코바시 켄타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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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2일 |
프로레슬링 NOAH Winter Navigation '07 최종전 |
코바시 켄타 복귀전[29] 미사와 미츠하루(O) & 아키야마 쥰 vs 타카야마 요시히로 & 코바시 켄타(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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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27일 |
신일본 &
전일본 &
NOAH 합동 흥행[30] 동일본대진재부흥지원 챠리티 프로레스 「ALL TOGETHER」 |
제 9시합 BELIEVE THE POWER OF "Prowrestling!" 이이즈카 타카시(X) & 야노 토루 vs _ 코바시 켄타_(O) & _ 무토 케이지_ |
[1]
사실 순수한 브롤러라고 하기엔 테크니션적인 면도 꽤 컸던 지라 마냥 브롤러로만 취급하기엔 올라운더스러운 면모도 좀 큰 편이었다.
[2]
다양한 엘보 기술을 사용한 미사와 미츠하루와 마찬가지로 가장 흔한 역수평 찹 외에도 다양한 찹을 사용했다.
[3]
1996년
타우에 아키라를 상대로 첫
삼관 헤비급 챔피언십을 얻게 해준 기술이다. 젊은 시절부터 자주 사용했지만 무릎부상으로 인해 현역 말기엔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4]
가장 대표적인 테마곡
[5]
활동 초기에 사용했던 테마곡
[6]
절대왕자 시절 첫
GHC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등극한 이후 사용한 테마곡. 그러나 이후 2005년 7월 18일 노아 Destiny 사사키 켄스케 전때 다시 Grand Sword로 변경했다.
[7]
GHC 헤비웨이트 챔피언 등극 이후 무려 13번이라는 방어 기록에 붇여진 별명.
[8]
하술할 2005년 사사키 켄스케와의 경기에서 뜨거운 무한 춉 대결을 벌인 이후 춉이 코바시의 대명사처럼 되었고, 이후 해외 팬들로부터 종종 '춉 코바시'라고 불리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9]
735일 최장기간 집권 기록. 이 기록은 일본 최장기간 기록으로 2023년 기준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못하였다. 가장 가까이 따라잡은 기록은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이였던
오카다 카즈치카의 720일 기록이다.
[10]
자신의
피니쉬 무브인
버닝 래리어트를 시전하기 직전에 선보이는 퍼포먼스.
[11]
프로레슬링 평론가인
데이브 멜처가 코바시 켄타의 경기에 두 번째로 많은 5성 만점을 줬다. 1위는 미사와 미츠하루.
[12]
미사와 미츠하루,
코바시 켄타,
카와다 토시아키,
타우에 아키라 4명이다. 이후
아키야마 준이 가세하면서 5강(五強)이 되었다.
[13]
수플렉스처럼 들어 올리고 파워밤으로 마무리하는 기술이다.
[14]
아르젠틴 백브레이커(=토처랙) 자세에서 옆으로 몸을 기울여 상대를 머리부터 고각으로 떨어뜨리는 인버티드 데스벨리 드라이버
[15]
버닝 해머는 코바시 켄타의 커리어에서 총 5번 나왔는데, 미사와 미츠하루가 3번, 프로레슬링 NOAH 창단 이후 최고 에이스였던 아키야마 준이 2번 맞았다. 시전하는 데 성공한 경기는 전부 승리했다. 변형 기술인 리스트 클러치식 버닝 해머의 경우 전일본 프로레슬링 최강의 사나이었던 타우에 아키라 및 자기 제자이자 프로레슬링 NOAH의 주니어 헤비급 최강의 자리를 지키던
KENTA를 합처 딱 2번뿐이다. 즉 버닝 해머는 커리어 내내 10번도 안 쓴 기술이다.당시 KENTA에게 시전한 건 결혼하는 게 부러워서(...) 썼다는 소리도 있다.
[16]
펌프핸들 자세에서 그대로 싯다운 파워밤으로 연결한다. 본인은 기술 이름을 짓지 않았으나, 어떤 프로레슬링 기자가 본인의 동의없이 이름을 붙인 것에 격분해 봉인했다.
[17]
파워 밤 자세에서 사이드워크 슬램으로 연결하는 기술. 그러나 첫 시도 때 실수를 저질러 가네마루 요시노부의 늑골이 골절되자 그대로 봉인했다.
[18]
자이언트 바바도 소싯적 연습량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연습을 많이 했는데, 그 바바가 쉬어라 할 정도면...반면에 또다른 사천왕이였던
타우에 아키라는 연습량이 모자란 선수였는데 자이언트 바바는 '연습을 코바시의 반만이라도 했으면'이라는 말을 남겼다.
[19]
그래도 KENTA에게는 도움이 됐는지 전성기땐 몸무게가 50kg 차이 나는
모리시마 타케시에게도 Go 2 Sleep를 깔끔하게 날렸다.
[20]
해당 항목에도 기제되어 있지만 스즈키 미노루는 일본 프로레슬링계 내에서도 플레이 스타일이나 마이크 퍼포먼스가 굉장히 거칠고 성질 더러운 이미지가 강하다. 물론 이는 기믹에 가깝고, 실제 스즈키 미노루 본인은 굉장히 인성이 좋기로 유명하다.
[21]
여담으로 다이너마이트 키드는 이 일화 뿐만 아니라 여건부를 상대로 경기 중 현피를 거는 등문제는 이래놓고 오히려 제압당했다.(...) 인성적으로 절대 좋은 소리는 못 듣는 인물이다.
[22]
물론 미사와 역시 프로레슬링 업계에서 제일 가는 마당발에 인격자라 그에게 신세진 사람도 많았다. 그렇기에 코바시도 미사와를 따라서 전일본을 나왔던 것.
[23]
노아 뿐만 아니라 전일본, DDT, 대일본, 심지어 신일본에서도 해설을 한다.
[★]
밑줄이 승리자. 다자간 매치의 경우 이름 옆 (O)가 핀폴자, (X)가 피핀폴자.
[★]
밑줄이 승리자. 다자간 매치의 경우 이름 옆 (O)가 핀폴자, (X)가 피핀폴자.
[26]
60분 시간초과 무승부.
[27]
60분 시간초과 무승부.
[★]
밑줄이 승리자. 다자간 매치의 경우 이름 옆 (O)가 핀폴자, (X)가 피핀폴자.
[29]
신장암에 걸려 결장 중이던 코바시 켄타의 546일만의 복귀전.
[30]
동일본 대지진 회복을 위한 기금 조성 목적으로 도쿄 스포츠의 주최로 처음으로 일본 프로레슬링계의 메이저 3단체가 함께한 합동 흥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