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by(孤高, ruby=こ こう)]のテクニシャン / Rat Boy> [ruby(小川 良成, ruby=お がわ よしなり)] / Yoshinari Ogaw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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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레슬링 NOAH 코치 | |
<colcolor=#009740><colbgcolor=#000000> 본명 |
오가와 요시나리 [ruby(小川 良成, ruby=お がわ よしなり)] |
생년월일 | 1966. 11. 2 ([age(1966-11-02)]세) |
신장 | 171cm |
체중 | 82kg |
출생지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이바라키현 토리데시[1] |
경기 스타일 | 힐 스타일 + 테크니션 + 유로피언 스타일 |
시그니쳐 무브 |
사밍[2] 원 레그드 엔즈이기리 친 크러셔[3] 넥브레이커 드롭 고속 DDT 리버스 하프 보스턴 크랩 싱글암 카멜 클러치 백드롭 |
피니쉬 무브 |
넥브레이커 드롭 백드롭 홀드 피겨 포 레그락 잭 나이프 홀드 그외 각종 핀폴기(오가와 매직)[4] |
별명 |
상룡전사 ([ruby(翔龍, ruby=しょうりゅう)][ruby(戦士, ruby=せん し)])[5] Rat Boy[6] 노아의 잭나이프 (ノアのジャックナイフ) 고고의 테크니션 ([ruby(孤高, ruby=こ こう)]のテクニシャン) |
테마곡 |
Never Give Me Up! - 오가와 미유키[7] (1992 - 2000.7) New Civilization Of Massive Destruction - L.I.V (2006 - 2012) Scum Of The Earth - Rob Zombie (2000.8 - 2006, 2012 - 2024.8)[8] |
데뷔 |
1985년 9월 3일 (18세) 이와테현 미야코시 미야코역 앞 선플라자 주차장 특설 링 전일본 '85 결전! 다이너마이트 워즈 11일차 vs 사사자키 신지 |
은퇴 |
(마지막 경기) 2024년 8월 4일 (57세) 카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요코하마 무도관 NOAH ABEMA presents N-1 VICTORY 2024 개막전 vs AMAKUSA & HAYATA & YO-HEY & 타다스케 (w/ 다가 & 슈퍼 크레이지 & 오오와다 유) (은퇴) 2024년 8월 13일 (57세)[9] |
주요 커리어 |
세계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 3회 세계 태그팀 챔피언 1회 (w/ 미사와 미츠하루) 올 아시아 태그팀 챔피언 1회 (w/ 미사와 미츠하루) 드래곤 게이트 오픈 더 트라이앵글 게이트 챔피언 1회 (w/ 요시오카 세이키, 스스무 유야) GHC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GHC 헤비웨이트 태그팀 챔피언 2회 (w/ 미사와 미츠하루) GHC 주니어 헤비웨이트 태그팀 챔피언 9회 (w/ 잭 세이버 주니어 (2), 타나카 미노루 (1), 스즈키 코타로(1), HAYATA (3), 크리스 릿지웨이 (1), Eita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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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ruby(三沢光晴, ruby=みさわみつはる)]というプロレスラーを、[ruby(忘, ruby=わす)]れないでください "
미사와 미츠하루라는 프로레슬러를, 잊지 말아주십시오.
일본의 前
프로레슬러.미사와 미츠하루라는 프로레슬러를, 잊지 말아주십시오.
프로레슬링 NOAH의 개국 공신이자 NOAH의 상징 중 한 사람으로 꼽히며, NOAH의 창설자 미사와 미츠하루의 진정한 파트너였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2. 커리어
2.1. 전일본 프로레슬링
학생 시절에는 야구를 해오던 오가와는, 고교를 중퇴하고 1983년에 전일본 프로레슬링 입문 시험을 치러 간신히 합격한 후 1984년에 입문하여 1985년 9월 3일 이와테현 미야코역 앞 주차장 특설 링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1987년 텐류 겐이치로의 츠케비토[10]를 맡던 도중 텐류가 만든 스테이블 '텐류 동맹'[11]에 들어갔다.정작 텐류 동맹에 소속된 이후엔 팔꿈치 부상 등 각종 부상에 시달리며 큰 활약은 하지 못하였으나 잦은 부상 경험을 통해 몸을 갈아넣지 않고도 상대와 경기를 만들어내는 테크니션으로 스타일을 변경하는 계기가 되었다.
1990년, 텐류 겐이치로, 삼손 후유키, 타카노 슌지[12], 더 그레이트 카부키, 야츠 요시아키 등 당시 전일본의 메인급 선수들이 SWS로 이적하며(0차 전일본 선수 이탈사건) 단체 내 젊은 선수들의 입지가 올라오는 계기가 되자 데뷔 이후 쭉 언더카드였던 오가와의 입지도 조금씩 나아졌고, 초세대군( 미사와 미츠하루, 카와다 토시아키 등 신진세력)과 츠루타군( 점보 츠루타, 후치 마사노부 등 기존세력)의 항쟁에서는 츠루타군 소속으로 활동하며 후치와 올 아시아 태그팀 챔피언쉽에 도전하는 등 타이틀을 따내지는 못했지만 타이틀전도 치러나갔다.
그렇게 각종 매치에서 구르던 오가와 요시나리가 스타의 반열에 오른 건 건 어느덧 데뷔 10년을 맞이한 1995년이었다.
당시 전일본 주니어 헤비급 전선은 후치 마사노부와 댄 크로팻이 쌍벽을 이뤄 장기 집권을 반복하고 있을 때[13]로, 오가와는 1994년 9월과 1995년 3월 크로팻이 챔피언일 때 크로팻에게 도전했으나 첫번째는 크로팻의 피니셔 타이거 드라이버에, 2번째는 크로팻의 왼무릎을 집중 공격하며 크로팻을 몰아붙였으나 또다시 타이거 드라이버에 패하며 눈물을 삼켜야 했다.
그리고 댄 크로팻에게 3번째로 도전한 9월 10일, 시작도 전에 감정이 격해져 입고 있던 롱 자켓으로 자신을 때리던 크로팻의 자켓을 관중석으로 집어던지며 역으로 크로팻을 당황시킨 오가와는, 뒷발 로 블로, 본부석 바디 슬램 등을 연달아 당하며 열받은 크로팻의 공격에 경기 내내 고전하다 역으로 타이거 드라이버를 작렬하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고, 세컨 로프에서 뛰어내리며 롤링 핀폴을 시전한 크로팻을 역으로 뒤집어 쓰리 카운트를 따내 팬들의 대환성을 받으며 데뷔 첫 타이틀을 들어올렸다.
2.2. 프로레슬링 NOAH
2002년 4월 7일 미사와 미츠하루를 꺾고 GHC 헤비웨이트 챔피언이 된 아키야마 쥰과 GHC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에서 5분 만에 리스트 클러치식 익스플로이더를 기습 롤업으로 반격하면서 제3대 GHC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등극한다.
이후로도 왕도의 산증인으로서 계속 활동하다가 본인의 기믹마냥 데뷔 40주년을 반년 앞두고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경추부상 이후 부상이 잦아지면서 건강한 모습일 때 은퇴하려는 의사가 있지 않았나 추정 중... 팬들은 기량이 녹슬지 않았는데 일찍 떠난 것을 아쉬워 하면서도 기믹을 지키는 것마냥 홀연히 은퇴한 것에 그 답다는 반응.[14]
3. 여담
- 당구가 취미로, 일본 프로레슬링계에서 최고 레벨의 구력을 자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50세를 훌쩍 넘었지만 아직까지 결혼하지 않은 독신이며, 여성에게 인기가 많고 오가와가 일본 프로레슬링계를 대표하는 플레이보이인 것을 감안하면 본인이 결혼할 생각이 별로 없는 것으로 보인다.
- 나이를 먹어도 거의 변하지 않는 얼굴로 유명하다. 구글에 오가와 요시나리(小川良成)를 입력하면 오가와 요시나리 변하지 않는다(小川良成 変わらない)가 연관 검색어에 즉시 뜰 정도로 일본 프로레슬링계에서 유명하며, 2020년 5월 7일 아메토크! 프로레슬링을 좋아하는 게닌 편에서 다루어진 적이 있다.
- 위의 변하지 않는 외모와 더불어 풍성한 머리를 자랑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초창기에는 머리가 방방 뜨는 더벅머리 그 자체였으며, 어느덧 환갑을 바라보는 2024년 현재도 모발이 지나치게 건재하여 머리 양 옆을 투블럭으로 밀은데다 항상 경기 전 머리를 적시고 나오는데도 스무살 넘게 젊은 HAYATA보다 머리숱이 확연히 풍성할 정도. 심지어 Eita와의 대립 과정에서 물을 한 바가지 뒤집어 써서 머리가 흠뻑 젖었는데도 정수리 쪽에 빈 곳조차 보이지 않는 경이로운 모발을 자랑했다.
- 프로필 상 키 변동이 가장 심한 선수. 전일본 시절 중반기까지는 183cm 96kg으로 표기되었으나 아무리 그래도 너무 올려쳤는지 이후에 180cm로 변경되었다. 그리고 2021년까지 약 30년간 180cm 90kg로 소개되었으나 2022년 들어서 171cm 82kg으로 몸무게는 그렇다 치고 키가 무려 9cm 낮게 표기되면서 프로필 상 키차이가 데뷔부터 지금까지 12cm 차이가 나게 되었다.[15]
- 마루후지 나오미치의 증언으로는, 신발 뒤꿈치를 꺾어 신는 버릇이 있어서 걸을 때 마다 특유의 발걸음 소리를 낸다고 한다.
- 졸리 파스타[16]를 좋아한다.
4. 둘러보기
<colbgcolor=black><colcolor=#000000> | ||
미사와 미츠하루 | 오가와 요시나리 | 카키하라 마사히토 |
<colbgcolor=white> 미사와 미츠하루 | <colbgcolor=white> 오가와 요시나리 | <colbgcolor=white> 이케다 다이스케 |
마루후지 나오미치 | 사노 타쿠마 | 스즈키 코타로 |
<colbgcolor=black><colcolor=#000000> | |||||||
다가 | |||||||
{{{#!folding 【 전 멤버 】 | 코토우게 아츠시 | 요시오카 세이키 | YO-HEY | 스즈키 코타로 | |||
HAYATA | 스스무 유우야 | 크리스 릿지웨이 | 오가와 요시나리 |
세계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리그 우승자 | |||||
차보 게레로 시니어 (1983) |
→ |
오가와 요시나리 (1988) |
→ |
칼 콘티니 (2003) |
역대 글로벌 주니어 태그 리그 우승자 | ||||
2018 | → | 2019 | → | 미정 |
RATEL'S YO-HEY & HAYATA |
→ |
STINGER 스즈키 코타로 & 오가와 요시나리 |
→ | - |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5성 경기 [★] | ||||
1992년 7월 5일 |
전일본 프로레슬링 '92 섬머 액션 시리즈 2일차 |
아시아 태그팀 챔피언십 _ 코바시 켄타 & 키쿠치 츠요시(O)_(C) vs 후치 마사노부(X) & 오가와 요시나리 |
||
1993년 7월 2일 |
전일본 프로레슬링 '93 섬머 액션 시리즈 개막전 |
6인 태그팀 매치 _초세대군([ruby(超世代軍, ruby=ちょうせだいぐん)]) ( 미사와 미츠하루 & 코바시 켄타(O) & 아키야마 쥰)_ vs 성귀군([ruby(聖鬼軍, ruby=せい き ぐん)]) ( 카와다 토시아키 & 타우에 아키라) & 오가와 요시나리(X) |
||
1999년 10월 23일 |
전일본 프로레슬링 '99 자이언트 시리즈 11일차 |
아시아 태그팀 챔피언십 _BURNING ( 코바시 켄타(O) & 아키야마 쥰)_ vs 언터쳐블( 미사와 미츠하루(X) & 오가와 요시나리)(C) |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기능상 | ||||
안조 요지 (1995) |
→ |
오가와 요시나리 (1996) |
→ |
콘도 유키 (1997) |
[1]
출생 당시에는 키타소마군(北相馬郡) 토리데마치(取手町)였다. 1970년에 토리데마치가 시로 승격되며 토리데시가 되었다.
[2]
눈 찌르기. 당연히 반칙기이지만 오가와의 둘도 없을 상징과도 같은 기술. 주로 정면 승부를 걸어오는 상대에게 기습적으로 사용하여 타이밍을 뺏고 각종 핀폴기로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3]
서 있는 상태에서 상대 턱에 자신의 정수리를 댄 후 점프하면서 무릎을 꿇으며 떨어져 그 낙차로 상대 턱에 타격을 주는 기술. 단순한 기술이긴 하지만 평소 존경하던
다이너마이트 키드가 은퇴 직전의 전일본에 참전하던 때 그에게 직접 배운 기술이다.
[4]
일명 '오가와 매직'. 종류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로, 이 셀 수 없는 핀폴기들을 상대랑 자신이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건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고속으로 욱여넣어 승리를 순식간에 털어가는 문자 그대로 마술과도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5]
오가와의 전일본 시절을 상징하는 별명.
[6]
영미권에서 알려진 별명으로, 교활하다 싶을 정도로 치밀한 무브들을 쌓아 나가며 상대를 서서히 늪으로 빠트리듯 압박해나가는 오가와의 경기 스타일에 기반한 별명이다.
[7]
프로레슬링 NOAH로 이적 전 '상룡전사' 오가와 요시나리를 상징하던 테마곡. 반짝 떠오르려다 사라진 오가와 미유키의 곡인 Never Give Me Up! 에서 가사를 제거한 버전이다. 미래가 보이지 않던 젊은 시절을 견뎌내고 데뷔 10년만인 1995년 9월 처음으로 세계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을 딴 후 주간 프로레스에 적힌 제목도 'Never Give Me Up'이였다.
[8]
프로레슬링 NOAH 창설 이후부터 쭉 써오는 오가와 요시나리의 상징곡. 중간에 한 번 바뀐 적이 있었지만, 오가와의 상징이었던 만큼 다시 사용하고 있다.
[9]
본인의 의향으로 별도의 은퇴식이나 은퇴 흥행 없이 은퇴를 하였다. 팬들은 내년이 데븨 40주년인데 허무하다면서도 마지막까지 기믹처럼 사라진 것에 대해 리스펙을 보내고 있다.
[10]
신인급 선수가 고참 선수의 생활을 도와주는 일종의 방졸.
[11]
초창기 멤버는 텐류, 텐류의 태그팀 '류겐포(龍源砲)' 파트너인 아슈라 하라,
카와다 토시아키,
삼손 후유키, 그리고 텐류의 츠케비토인 오가와였다.
[12]
죠지 타카노의 동생. 별명은 '들개(野良犬)'.
[13]
특히 후치는 1989년 10월 20일 조 말렌코에게 승리하고
세계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벨트를 차지한 이후 14회 방어에 성공하며 1993년 5월까지 1309일, 즉 3년 반에 가까운 시간을 챔피언으로 지냈으며, 이후 1995년 9월까지 또 2년 반을 후치 마사노부와 댄 크로팻이 나눠 먹었다.
[14]
은퇴 발표 5일 뒤 제자인 잭 세이버 주니어는 g1우승 소감으로 그의 은퇴를 이야기하며 샤라웃을 해줬다.
[15]
실제 키는 전성기에도 175cm 정도였지만 당시 전일본 입문 기준이 180cm이었기 때문에 180cm 이하로 표기하지 않았다가 중론이지만, 나이 등으로 인해 더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16]
일본의 저렴한 양식 프랜차이즈. 각종 파스타와 피자 등을 저렴한 값에 맛볼 수 있다.
[★]
밑줄이 승리자. 다자간 매치의 경우 이름 옆 (O)가 핀폴자, (X)가 피핀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