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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26 19:10:34

일본 무도관

<colcolor=#C79B5A> 일본 무도관
日本武道館 | Nippon Budōkan
파일:일본 무도관 로고.svg
<colbgcolor=#202141> 국가
[[일본|]][[틀:국기|]][[틀:국기|]]
개관 1964년 10월 3일
수용 인원 14,471명
연면적 21,133.3m²
규모 아레나
운영 공익 재단법인
위치
도쿄도 치요다구 키타노마루코엔 2-3
(東京都千代田区北の丸公園2-3)
객석
<colbgcolor=#202141><colcolor=#C79B5A>
고정석
11,045석
입석
480석
아레나
2,946석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1. 개요2. 구조3. 공연장으로서의 무도관4. 프로레슬링 경기장으로서의 무도관5. 대중매체에서의 등장6. 여담

[clearfix]

1. 개요

일본무도관(日本武道館)은 도쿄도 치요다구 키타노마루 공원에 있는 최대 수용수 14,501명의 대형 경기장이다. 본래는 1964 도쿄 올림픽의 유도 경기장으로 건설되었으나 1965년부터 클래식 콘서트를 시작으로 66년부터는 비틀즈, 레드 제플린, 딥 퍼플, 에릭 클랩튼, 등 유명 아티스트들이 내일 공연을 여는 공연장으로서 더 유명하다. 음악 이외에도 프로레슬링이나 프로 복싱 등 각종 격투기 흥행이 열리기도 한다.

당연히 본 목적인 유도 검도 등의 각종 무도 대회도 상시 개최되며 도쿄에 위치한 각종 대학들의 입학/졸업식이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2. 구조

파일:일본 무도관 외관.jpg

외부
파일:일본 무도관 내관.jpg

내부


2020년 도쿄올림픽을 대비하여 시설을 증축 개수했다. 조명을 모두 LED로 바꿨으며, 휠체어가 들어설 자리도 마련하였으며, 여자 화장실도 늘렸고, 2020 도쿄 올림픽 유도 가라테 경기에 참전하는 선수들이 대기할 장소인 중도장(中道場)이라는 이름의 별관도 신축했다. 스탠드 남쪽 에리어에는 휠체어가 들어설 공간이 생겨났다 #

파일:일본무도관.jpg
천장 중앙에 항상 커다란 일장기가 걸려있다.

3. 공연장으로서의 무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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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규모 분류 공연장
스타디움
(30,000명~72,000명)
닛산 스타디움 | 도쿄 국립경기장 | 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 | 니가타 스타디움 | 시즈오카 스타디움 에코파 | 나가이 육상경기장 | 에디온 스타디움 히로시마 | 아지노모토 스타디움 | 미야기 스타디움 | 한신 고시엔 구장 | 도요타 스타디움 | 메이지진구 야구장 | 홋토못토 필드 고베 | 히로시마 시민구장 | 요코하마 스타디움 | ZOZO 마린 스타디움

(30,000명~50,000명)
도쿄 돔 | 삿포로 돔 | 교세라 돔 오사카 | 후쿠오카 PayPay 돔 | 반테린 돔 나고야 | 오이타 스포츠공원 종합경기장 | 베루나 돔
아레나
(6,000명~30,000명)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 | 나고야시 종합체육관 | 요코하마 아레나 | 오키나와 아레나 | 아리아케 아레나 | 마쿠하리 멧세 | 일본 무도관 | 국립 요요기 경기장 | 마린 멧세 후쿠오카 | 그린 돔 마에바시 | 미에 현영 선 아레나 | 마코마나이 세키스이 하임 아이스 아레나 | 도쿄 체육관 | K-아레나 요코하마 | 피아 아레나 MM

(1,500명~10,000명)
코라쿠엔 홀 | 오사카 성 홀 | 시부야 공회당 | 퍼시피코 요코하마 국립대홀| 후쿠오카 선팰리스홀
라이브 하우스
(1,000명~3,000명)
Zepp | STUDIO COAST | BLITZ
야외 스테이지
(20,000명~200,000명)
후지큐 하이랜드 }}}}}}}}}


파일:external/www.jdc-dance.org/budoukan.jpg
파일:external/pds.exblog.jp/a0076107_2343109.jpg
사진의 주인공들은 Aqua Timez.

무도관은 단지 무도경기장 뿐만 아닌 일본의 대표적인 공연장으로도 쓰이며 "라이브 하우스 무도관에 어서 오세요!"(ライブハウス武道館へようこそ)라는 말로도 유명한데, BOØWY 히무로 쿄스케 공연 중 애드리브로 꺼낸 멘트가 유명해져서 무도관에 서는 아티스트라면 한 번 쯤은 말하게 되는 MC이다.

일본의 쇼와 시대의 전설적인 가수인 야마구치 모모에가 이곳에서 은퇴 콘서트를 가졌다. 당시 콘서트의 막을 내릴 때 하얀 드레스를 입은 채 마이크를 내려놓고 떠나는 모습은 아직까지 회자되는 명장면이다.[1]

80년대의 전설적인 싱어송라이터 오자키 유타카는 이미 도쿄 돔에서도 공연한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공연하는것이 꿈이었을 정도로[2] 고교 야구 선수들에게 고시엔이 꿈의 구장이라면 일본의 뮤지션들에게는 현실적으로 이룰 수 있는 꿈의 공연장이 무도관이다.

무도관에서 공연한다는 것은 '이제부터 우리도 메이저 가수'임을 선언하는 상징적 행위이다. 일본인 외국인 할 것 없이 'LIVE AT BUDOKAN'의 이름을 한 라이브 비디오가 많다는 것은 일본 대중음악계에서 상징적인 위상을 보여주는 것을 상징한다.

이처럼 무도관이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공연장이 된 이유 중 하나만 꼽으라면 바로 전설의 그룹 비틀즈가 1966년에 방일 공연을 했던 장소이기 때문이다.[3] 당시 귀축영미가 일본의 자존심을 짓밟으려 한다는 음모론에 낚인 군국주의자들의 반발과 협박이 이어졌지만 비틀즈 이후 레드 제플린, 딥 퍼플, 에릭 클랩튼, , 오지 오스본, 프랭크 시나트라 등 수많은 이들이 무도관을 거치면서 공연장의 상징적인 위상은 더욱 올라갔다.

근래 들어서는 대중적 인지도가 떨어지는 매니악한 분야의 가수나 밴드들도 무도관에 서기 때문에 그 위엄이 예전만 하지는 못하다. 자본만으로 대중적인 인지도가 전혀 없는 무명 아이돌이나 가수가 느닷없이 무도관 공연을 하는 경우도 많다. 보통 이런 경우 티켓 떨이판매나 티켓에 이벤트[4]를 집어넣는 경우가 대다수고, 좌석 일부에 암막을 쳐서 가리는 경우도 왕왕 있다. 때문에 보통 '무도관 콘서트를 성공시켰다'는 기준은 8천 석 이상[5] 매진일 경우이다.

한류 가수들도 언플용으로 무도관 공연을 남발하는데, 일본의 한류 팬들은 소위 '잡팬' 성향이 강해서 한국 가수라면 특별히 팬이 아니라도 공연도 보러 가고 CD도 사기 때문에, 무도관 공연을 했다고 해서 일본에서 그 정도의 인기를 누린다고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겨울연가로 대표되는 한류현상 이전에 이곳에서 공연했던 한국인 가수는 조용필 이박사뿐이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무명 밴드에서 출발해서 무도관까지 가기란 거의 꿈에 가까운 일이다. 그래서 인디에서 메이저로 넘어가는 관문이 일본 무도관이라는건 변함 없다. 무도관 공연은 자신들의 이름이 높아졌다는 사실의 방증이며, 반대로 말하면 매니악한 분야만으로도 1만 이상 관객을 동원할 수 있다는 일본 대중음악계의 넓은 시장성을 보여주는 일면이기도 하다.

무도관에 입성했다면 그 다음 건축물로는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 그 위로 도쿄돔을 위시로한 돔 구장, 그 위에 축구 스타디움들과 끝판왕 닛산 스타디움 정도가 있다. 여기까지 가는 아티스트는 톱 아티스트들 중에서도 극히 드문 편으로 보통은 국민적인 지지를 받는 관록 있는 대가수나 신드롬을 불러 일으킨 스타 정도는 되어야 한다.

무도관의 객석 규모는 엔드 스테이지시 7천~8천 석, 센터 스테이지(360도 개방 시) 1만여 석의 아레나급 공연장이다. 이 규모는 라이브 하우스나 홀은 말 할 필요도 없고 어지간한 아레나급 공연장보다도 훨씬 큰 규모이다.

공연장으로서의 기능은 딱히 좋지는 않다. 아레나가 푹 꺼진 상태이기 때문에 2층 스탠드로 올라가게 된다면 밴드의 정수리만 구경하게 되며 의도한 무대와 조명 연출도 제대로 보기 어렵다. 그리고 소리도 기대하기 어려운 것도 마찬가지인데. 세계 정상급의 사운드 엔지니어들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이지만, 음향 관련으로 여러 번 뜯어 고쳤어도 소리가 지금도 전문적인 라이브홀에 비해서 한참 쳐진다. 애초에 공연장의 용도로 지은게 아니니 음향을 기대하긴 어렵다.

8천 석에 맥스로 1만 석 규모 가까이 되지만 화장실이 남녀 합쳐서 겨우 6개밖에 없었으나 2020년 리모델링 후 추가되었다. 구식 공연장이라서 관객석에서 이동의 불편함도 상당하다.

4. 프로레슬링 경기장으로서의 무도관

일본무도관에서 최초로 열린 프로레슬링 흥행은 1966년에 일본 프로레슬링[6]이 가졌으며 당시의 메인이벤트는 자이언트 바바 vs. 프리츠 본 에릭의 인터네셔널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이었다. 이후 역도산 추모 대회라든가 안토니오 이노키부터 무하마드 알리에 이르기까지 내로라하는 프로레슬링 내외부 인사들까지 일본무도관 등을 두루 거쳤고, 이후에는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중후반으로 넘어가면서 신일본 프로레슬링 전일본 프로레슬링 등이 무도관에서의 흥행을 거듭하여 성공시키며, 일본 프로레슬링의 황금기를 함께 거쳐간다.

이후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부터는 프로레슬링 NOAH가 주도적으로 이 곳에서 정기적으로 대회를 열었으나 이후 프로레슬링 NOAH는 미사와 미츠하루의 사망 이후 몰락을 거듭함과 더불어 일본 프로레슬링 시장 전체에 침체기와 암흑기가 찾아오며 몇 년에 한 번씩 아주 특별한 이벤트[7]를 제외하고는 대회가 거의 열리지 못했으며 대신 일본 프로레슬링계는 료고쿠 국기관 등으로 장소를 옮겨 대회를 열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이런 현상에는 무도관의 비싼 대관료가 이유로 꼽히기도 하는데 경기장 규모 자체는 신일본 프로레슬링 등이 나서서 대회를 열기에 무난할 정도이기는 하지만 일본 프로레슬링 시장은 침체기를 거듭하며 쇠락기를 거쳐 이제 점차 회복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 자칫 이 곳에서 비싼 대관료를 주고 대회를 열었다가 흥행에서 실패라도 한다면 그것은 곧 단체의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러저러한 이유로 대회가 열리지 못하다가 신일본 프로레슬링 2018년 G1 클라이맥스 28 최종 3연전을 일본무도관에서 개최하기로 전격 발표하며 모처럼 일본무도관에서 일본 프로레슬링 단체의 주요 흥행이 열리게 되었다. 참고로 G1 클라이맥스 대회가 일본무도관에서 열리는 것은 G1 클라이맥스 대회가 개최된 이래 최초이며, 신일본 프로레슬링이 무도관에서 대회를 가지는 것 자체가 지난 2003년 6월 이후 15년 만에 있는 일이라고 한다. 신일본 측에서도 신경을 많이 써서 A조 최종전은 오카다 카즈치카 vs 타나하시 히로시를, B조 최종전은 케니 오메가 vs 이부시 코타[8]를 메인 이벤트로 선정하며 매치 배치에 공을 들였다. 이런 영향에서인지 8월 11일 B블록 최종전과, 8월 12일 결승전의 예매표가 개최를 며칠 앞두고 전석이 매진되어 추가 티켓을 판매하는 결정을 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호조로 2019년에 열리는 G1 클라이맥스 29의 최종 3연전도, 그리고 2020년에는 월드 태그 리그 2020 & 베스트 오브 더 슈퍼 주니어 27의 더블 결승전이 무도관에서 치러진다.

2021년에는 프로레슬링 NOAH가 2월 21일 대회를 무도관에서 열기로 결정지으며 약 11년 만에 무도관으로 돌아오게 되었으며, 여자 프로레슬링 단체인 스타덤 프로레슬링도 단체 10주년 기념 흥행을 창단 이래 최초로 무도관에서 2021년 3월 3일에 개최한다. 신일본은 2020년 코로나의 영향으로 열지 못한 창단기념일 흥행을 3월 4일에 무도관에서 열기로 결정했다. 또한 G1 클라이맥스 31의 결승전도 무도관에서 치러진다.

2022년에는 신일본의 체급별 싱글 리그전인 베스트 오브 더 슈퍼 주니어 G1 클라이맥스가 모두 무도관에서 결승전을 치르게된다.

프로레슬링의 황금기가 지나고 나서는 도쿄 돔과 함께 일반적인 규모의 프로레슬링 단체가 쉽게 갈 수 없는 성역이란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성장한 신일본 프로레슬링이 위와 같은 여러번의 무도관 대회를 치르면서 신일본 한정으로 그런 이미지가 약해진 편. 하지만 프로레슬링 NOAH가 1년에 2회 무도관 개최를 시도한다던가, 전일본 프로레슬링이 50주년 기념으로 오랜만에 무도관 대회 개최하는 것이 화제가 되는 만큼. 프로레슬링의 성지 중 하나로 취급받고 있다.

5.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6. 여담


[1] 야마구치 모모에의 팬이였던 장국영 역시 이 장면을 자신의 마지막 콘서트에서 오마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공연을 하지 못한 이유는 마약 전과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공연이 잡혔지만 공연 2개월전 안타깝게도 의문사 했다. [3] 무도관 최초의 공연은 1965년 7월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방일한 지휘자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일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두 차례의 공연 중 13일 공연을 여기서 개최해 최초 공연을 기록했다. [4] 추첨을 통해 대기실에서 멤버들을 만날 수 있다거나.. [5] 즉, 기본 좌석을 모두 개방해서. [6] 일본 프로레슬링계를 통틀어서 일컫는 말이 아니라 당시 이 단체의 단체명이 일본 프로레슬링(Japan Pro Wrestling Alliance; JWA)이었다. 창립자는 일본 프로레슬링의 태산북두인 역도산. 다만 이 시점에서는 역도산은 1963년에 이미 사망하였고 단체의 헤게모니는 역도산의 제자였던 자이언트 바바와 안토니오 이노키가 갈라먹고 있었다. [7]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자선 대회, 2013년 코바시 켄타의 은퇴 흥행 등. [8] 두 선수가 DDT 프로레슬링 소속이던 시절에 무도관에서 경기를 가진 적이 있는데, 이때 2층 문설트 같은 미친 짓을 저지르면서 DDT는 무도관 영구 임대금지라는 엄청난 처벌을 받은 과거가 있다. 이부시 코타 문서 참조. [9] 적어도 일본에서 밴드를 결성한 경우 고교야구에서 코시엔 진출을 외치듯이 누구나 하는 말이라 애니에서 인용한 걸로 추정된다. 후술할 BanG Dream!의 경우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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