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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01 05:13:52

제갈량(파티피플 공명)


<colbgcolor=lightcyan,#000><colcolor=#000,#DDD> 제갈량 공명
諸葛亮孔明 | Zhuge Liang Kong Ming
파일:parip_komei.png
나이 54세 이상[1]
소속 촉한 → BB Lounge
성우 스와베 준이치 (코믹스 PV)
오키아유 료타로 (TVA)
배우 무카이 오사무
1. 개요2. 작중 행적
2.1. 공명이 사용한 계책
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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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파티피플 공명 - 제갈량 공명 소개.jpg
"성은 제갈이요, 이름은 량. 자(字)는 공명이라 하오."

파티피플 공명의 주역. 중국 삼국시대에서 활약한 제갈량 본인이다. 작중에서는 대개 인 공명으로 불린다.

과거에 병사했다가 현대 일본에 환생한 상태로 1,800년 전 인물이기에 어느 정도의 문화적 한계를 보여주긴 하지만, 워낙 천재적인 두뇌와 눈썰미를 가졌기 때문인지 현대 문물 및 지식에 대한 이해가 굉장히 빠른 사기적은 면모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몇 시간 만져본 것 만으로 사용법을 수준급으로 익히고[2][3] 심지어 현대 클럽 음악에 대한 이론을 빠삭하게 읊을 수 있는 수준이 되었으며[4][5], 그 뛰어난 언변과 통찰력으로 적이던 아군이던 순식간에 포섭한다. 또한 몸은 젊지만 실제 경험은 한 생을 마무리했던 사람이어서인지, 기껏해야 20대에 불과한 본작의 엔터테이너들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인생 경험이 풍부해 대화하는 상대에게 이론적인 것이 아닌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실된 조언까지 해준다.[6] 본 작에 나오는 인물들이 처음에는 공명을 이상한 사람 취급하다가 곧 껌뻑 넘어가게 되는 이유가 다 이 때문.

덕분에 시부야에선 떠오르는 인기인이 되어 어지간한 클러버 및 업계 관계자들과 인맥을 형성하고, 처음엔 중국 옷을 입은 수상한 자 취급하던 경찰들에게까지 신뢰를 얻는 경지에 이르렀다.

2. 작중 행적

실제 역사대로 오장원 전투 중 병사했으며, 죽기 전에 다음 생에는 전쟁이 없는 곳에서 태어나기를 바랐더니 현대 일본에 청년 시절의 모습으로 전생했다. 눈을 떠보니 시부야에서 할로윈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 한가운데 떨어졌고, 난생 처음 보는 모습에 자신이 죽어 지옥에 왔다고 착각하게 된다. 이후 지나가던 클러버들의 눈에 띄어 이런저런 지옥의 형벌을 당하다가[7] 무대에서 자신의 심금을 울리는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소녀 츠키미 에이코를 만나게 된다. 이후 술에 취해 길바닥에서 자고있던 걸 에이코가 집으로 데려와 구사일생하게 되고,[8][9] 그녀가 보여준 위키백과를 통해 자신이 지옥이 아닌 약 1,800년 뒤 일본에서 환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위키백과에 약술된 고대 삼국시대의 전쟁사를 보며 그 때의 전쟁들을 추억하나, 그토록 목숨 바쳐 전쟁해서 일구어낸 촉한은 끝내 멸망하고 사마씨 천하를 거머쥐었지만, 얼마 안 가 중원이 다시 사마씨들에 의해 불타오르고, 난세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것[10][11][12][13]과 그로부터 엄청난 시간(1800년)이 흐른 뒤라 아는 얼굴도 이제는 없다는 사실에 슬퍼하는데 에이코가 기분 전환을 위해 불러준 노래에 다시금 감동을 받는다. 이후 에이코의 소개로 BB Lounge에 바텐더로 취직해[14] 군자금을 모으는 한편[15], 클럽에서 에이코의 노래를 다시 한번 들으면서 감탄하게 된다. 그렇게 첫 일이 끝나고 에이코가 노래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더불어 계속되는 실패에 가수의 꿈을 접으려 하자 격려하는 한편, 에이코의 노래를 3번 들었으니 그에 대한 보답을 하는 것이 합당하다며 그녀를 새로운 주군으로 모셔 가수로서 성공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선언한다.

이후로는 현대의 문물을 빠르게 흡수함과 동시에 그녀의 전담 프로듀서가 되어 삼국시대 전쟁에서 이용했던 계책을 이용해 에이코의 공연을 성공시키는 대활약을 한다. 다만 대부분의 계책은 실제 그가 살았던 삼국시대의 계책이 아닌 코바야시 오너를 통해 들은 삼국지연의에서 등장한 계책이다. 대표적인 예시가 팔진도인데 팔진도 일화를 들은 공명은 그건 그리 전해지고 있었냐며 비록 과장은 되었지만 사람의 마음과 환경을 적절히 이용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며 자신이 사용한 팔진도가 연의의 팔진도와 다름을 드러냈다.

조조의 형주 공격 전날 밤, 병사들이 주연을 열고 초대했을 때 공무가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한 적이 있었는데 다음날 이들이 전부 목숨을 잃자 그것이 이별을 고하는 주연이었음을 알게 된다.[16] 이때 주연에 참여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어 페스나 라이브에 참여할 때는 진심으로 즐기고 있다. 이와 더불어 전쟁으로 인해서 뜻을 다 펼치지 못하고 억울하게 죽은 이들을 너무 봐왔다 보니 "솔직한 감상은 살아있을 때 말해야 한다."라고 생각해서 에이코의 노래를 칭송하기 시작하면 브레이크가 없어서 매번 에이코가 얼굴을 붉히며 막느라 고생한다.

2.1. 공명이 사용한 계책

기다려, 당황하지 마라! 이건 공명의 함정이다!

3. 기타

결과적으로 그의 판단으로 인해 많은 피가 흘렀기에 독선이라며 단호하게 비판하며 그저 결과에 대한 책임만 단호하게 물었던 것으로 보인다. 말 그대로 여전히 제자로서 아끼는 마음은 있지만, 같은 책략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마음도 큰 듯. 극초반에 한 "솔직한 감상은 살아있을 때 해야 하는 것"이라는 대사는 결국 이해하지 못했었던 마속과의 관계에서 우러나온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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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년 시절의 모습으로 환생했음을 고려하면 신체적 나이는 훨씬 젊은 축에 속할 가능성이 높다. [2] 목우유마 설계가 증명하듯 공명은 당시 기준으로 공학에 대한 상당한 조예가 있었는데, 이게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3] 코바야시 사장으로 도움으로 개인 스마트폰도 마련했는데, 아이폰 12 블랙 색상으로 보인다. [4] 현대 음악을 익히며 영어도 접했는지 현대인인 코바야시보다도 더 영어를 잘 이해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원래 공명은 입촉과 남만평정전에서 볼 수 있듯 현지에 대한 조사와 문물습득에 매우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다. 당시 지금도 그렇지만, 각 지역마다 방언이 더욱 심했을 고대 중국을 생각하면 외교관으로도 활동하기도 했던 공명이 언어능력이 매우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공성계 고사가 증명하듯 공명은 당대에 손꼽히는 거문고 연주자이기도 했다. [5] 다만 공명이 당시 중국의 지방 방언이나 이민족이 쓰는 별개의 언어로 복잡한 교섭을 했을 가능성은 낮다. 당시 중국 각지의 유력자들은 토착 세력이 아니라 중앙에서 받은 관직을 명분으로 지방에 거점을 만든 호족들이라, 지배층간에는 서로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 현대 매체에서는 흔히 헐벗고 깃털 장식한 모습으로 인식되는 맹획도 실제로는 공명과 똑같은 한족이다. [6] 기본적으로 공명 스스로도 난세에 종지부를 찍고 평화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이상향을 위해 한 평생을 살았던 인물이기 때문에, 가수로서 꿈을 가지고 성공하고자 하는 에이코를 비롯한 21세기 젊은이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에이코가 연습할 때마다 유비와의 맹세를 떠오르는 것도 이 때문. [7] 실제론 공명의 착각. 클러버들이 즐겁게 놀자며 데킬라로 병나발을 불게 만들었는데 독한 술은 처음 먹어 봤는지 (제갈량이 살아있던 200년대의 술은 도수가 매우 낮았다. 장비가 술을 한 말씩 먹는게 가능했던 이유.) 목구멍을 불타게 만드는거라 여겼고, 클럽에서 울리는 EDM은 고막을 손상시키고 뼛속까지 올리게 만드는 형벌이라 여겼다. [8] 이 과정에서 온갖 현대문물을 보고 신기해 한다. 그때마다 에이코의 태클이 들어오는 건 덤. [9] 참고로 에이코의 집에 있는 거울을 보고 환술로 착각했는데, 유리 거울은 12세기에 처음으로 발명되었다. 공명이 살던 3세기 즈음에 쓰인 거울은 금속제로 유리 거울보단 반사율이 좋지 않았으니 작가가 나름대로 고증을 반영한 셈. [10] 실제로 이후의 역사에서 중국은 밖으로는 오랑캐의 침공, 안으로는 군벌들의 대두로 혼란스런 시대가 반복되었으며 간혹 통일 왕조들이 이들을 평정하고 평화의 시대를 이룩하긴 했으나 대부분 200년을 넘기지 못하고 왕조 말기에 일어난 폭정와 이를 참지 못한 농민들의 반란으로 전부 박살나버렸다. 간혹 삼국지를 주제로 한 콘텐츠가 엔딩을 낼 때 모든 게 다 부질없었다는 식으로 표현되는 게 바로 이런 후대의 역사 때문이다. 한국의 후삼국시대를 소재로 한 콘텐츠와 일본의 전국시대를 소재로 한 콘텐츠가 엔딩을 낼 때 전쟁이 없어진 평화로운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11] 이 사실을 안 직후 에이코의 노래를 듣고 "전쟁이 없는 세계를 만들자"던 유비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던 것을 봐서는 결국 자신들이 그토록 노력하였음에도 난세를 끝내지 못한 안타까움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2] 촉한이 망했단 것에 "역시 그렇게 됐습니까"란 식의 반응이나 마속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인재 육성의 문제를 거론했었던 것을 봐서는 자신처럼 기둥이 되던 이들이 생을 마감한 뒤에도 촉한이 계속 유지되기는 힘들 거라고는 예상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3] 단 실제 촉한은 삼국 중에서 안정성이 그나마 가장 나았고 마지막까지 일발역전의 기회도 생각보다 꽤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촉한멸망전 강유 항목을 참고할 것. [14] 애니에선 이력서를 들고 왔는데, 이때 주소가 자신을 모시는 사당인 중국 무후사 주소(成都武侯祠 四川省成都市武侯区武侯祠大街231号 附2号)다. [15] 에이코에게 몇 번 설명만 들었는데, 각종 칵테일을 순식간에 조주하면서 돈 계산까지 완벽하게 해낸다. 본인이 말하길 (생전인 삼국시대 때) 차를 끓이던 것에 비하면 쉽다고. 실제 중국 다도는 절차는 일본에 비해 별로 복잡하지 않지만 찻잎의 종류에 따라 우리는 시간과 따르는 높이 등이 전부 제각각이다. [16] 공명에게 주연에 참석하길 요청했던 부관으로 보이는 인물 또한 백성들이 피난하는 시간 벌기를 위해 전투에 참여했다가 전사하며, 공명은 그와 병사들을 떠올리며 "자신은 왜 그때 술잔을 나누지 못했었냐"며 괴로워한다. [17] 나가려고 해도 플로어를 한 바퀴 빙 돌다 화장실로 항하게 된다. 본인들도 신기해하는 반응은 덤. [18] 실제로 백화점에서는 비슷한 마케팅 방식을 활용한다. [19] 실제로도 팔진도는 연의에 기록된 것마냥 한 번 들어오면 못 빠져나오는 마법같은 전술이 아닌, 딱 저정도로 순간적으로 헷갈리게 만들 요소를 배치한 진이다. 그리고 방어 위주로 자유자재로 공방 전환이 가능한 변화무쌍하여 적군에게 혼란을 주는 전술이란 가설이 대세다. [20] 에이코를 상대로 공연에 힘을 뺀 것, RYO가 목에 부담을 우려해 히트곡인 MID DAY를 부르지 않는 것 모두 공명의 예측이 적중했다. [21] 에이코에게 천운이 따라준다며 계책을 따로 쓸 필요가 없었다는 언급으로 보아, 공명은 스테이지 배정 역시 따로 계책을 준비해 둔 것으로 보인다. [22] 보컬인 RYO가 공명의 계략에 대해 비겁하다며 항의하자 공명은 자신들은 당황해서 그럴 여유도 없었다며 굉장히 뻔뻔한 웃음을 지으며 시치미를 뗀다. 이때의 모습은 그야말로 후대 창작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얄미운 책사 공명' 그 자체의 모습. JET JACKET의 맴버 역시 대놓고 "나 이 자식 싫어!"라고 학을 땐다. 물론 그 뒤 탕약과 능수능란한 언변으로 구워삶아서 해어질 때는 "저 사람 완전 좋아"로 바뀐다(...) [23] 이들과 헤어진 후 공명은 코바야시 사장에게 지금이 평화로운 시대여서 다행이라고 말하는데, 시대가 시대라면 3명의 목을 베어 무대 위에 늘어놓을 뻔했다는 살벌한 발언을 한다... [24] 적병을 나 자신에게 이르게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려면 이익의 미끼로 유인하라. [25] 물론 보컬을 듣고 AZALEA가 아니란걸 눈치챈 이들도 있으나 어디까지나 AZALEA의 찐팬한정이었고 대부분은 상금 100만엔을 따기위해 온 이들이었기에 알아채지 못했다. [26] 애초에 순수한 AZALEA 팬들만 있었다면 먹히지 않았겠지만, 카라사와의 100만에 혹해서 온 이들이 대부분이여서 먹혔다. [27] 이미 공명은 겁판이 해외 재방영으로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는 정보를 사전에 접수했기에 가능했다. [28] 사실 정확히 말하면 원래는 사마의의 아들인 사마사 맡고 있었으나 7편 발매 후 기존 사마의 성우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인해 7엠파부터 맡은 것. [29] 단, 당시에는 마속 이외에 대안이 없었다. 조운 등지와 함께 기곡에서 당시 조위의 총사령관인 조진을 유인하고 있으므로 제외, 위연 오의는 각각 상규와 농서에서 버티고 있는 곽회 서막을 축출하면서 동시에 관서 전역을 평정해야 하므로 만약 둘 중 하나를 가정에 배치하면 마속은 훨씬 더 어려운 임무를 첫 출전에서 맡아야 한다. 이 때문에 제갈량은 마속을 가정에 파견하면서 교범을 일일이 일러주고 왕평을 비롯한 네임드 부장 넷까지 보좌하게 했지만 끝내 말 안 듣고 등산한 건 전적으로 마속의 책임이 맞다. [30] 작중에선 코바야시 사장과의 직원 면접과 KABE 타이진과의 랩배틀. [31] 장안으로의 직공을 노리고 있었던 것 같다고 대답했는데 실제로 마속의 포진은 한 방에 장합을 잡아버리고 그대로 전선을 끝내버리겠다는 의도에 가깝다. 문제는 장합이 니가와를 받아주지 않고 물길만 끊으면서 말려죽인 결과 참패했다는 거. [32] 실제로 제갈량은 사마휘 휘하 시절에도 그 서서조차 훈고학적으로 공부할 때 나홀로 거시적, 실사구시적으로 공부했다. 게다가 스스로를 관중과 악의에 비유자뻑까지 했으니 정상은 아니라는 소리를 들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33] 애초에 실존인물 제갈량은 후한말~삼국시대라는 난세 속에서 유비하고 16년을 함께하며 객장 신세였던 유비를 어엿한 군웅으로 성장하는데 도움을 주었고 유비 사후로도 11년동안 촉나라를 캐리한 인물이다. 정말 실제인물 제갈량이 단지 현대에 강림한 것 뿐인 그로서는 상대가 뭔 책략을 걸어와도 우스운게 당연하고 시대가 시대인 만큼 과격성도 나름 이해가 되며 난세인 만큼 당연히 제 몸 하나 지킬 만큼의 무력은 있을 것이다. (장판파 때 없었다는 건 연의의 설정이고 정사에서는 그 지옥도를 제 발로 살아나왔다. 물론 장비나 조운처럼 대놓고 전투를 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정말로 그의 입장에서 현대인은 여러면에서 자기보다 한 수 아래라 여겨질만 하다. 그나마 현대인이 앞설만한건 기술력과 현재의 분위기인데 1800년의 시간차가 무색하게 너무 빨리 사용법을 습득하고 또 적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