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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이창훈 |
출생 | 1984년 11월 4일 ([age(1984-11-04)]세) |
서울특별시 | |
신체 | 187cm, 76kg, B형 |
가족 | 무녀독남( 외동아들) |
소속 | SouL → SKT T1 → 삼성전자 칸 |
종족 | 저그 |
ID | sigamari, Zerglee |
별명 | 팀플마스터, 쩌그리, 성시경저그, 아드레날린 저그, 넥서스 브레이커 |
팬카페 | 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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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상 경력
- 2001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16강
- 펩시 트위스트배 KPGA 투어 3차 리그 Xtra Match 8강 풀리그
- KTF EVER Cup 온게임넷 프로리그 우승(결승전 MVP)
- LG IBM MBC GAME 팀리그 우승
- SKY 프로리그 2004 1Round 준우승
- Tucson MBC GAME 팀리그 우승
- SKY 프로리그 2005 전기리그 팀플전 다승왕
- SKY 프로리그 2005 후기리그 준우승
- SKY 프로리그 2006 전기리그 팀플전 다승왕
-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 우승
-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통합 챔피언전 준우승
- 제1회 대한민국 e스포츠대상 최우수 팀플레이상(이창훈, 박성훈)
- 제2회 대한민국 e스포츠대상 최우수 팀플레이상(이창훈, 박성훈)
2. 전적
이창훈의 스타1 양대 개인리그 A매치 통산 전적 | |||
방송사 | 온게임넷 A매치 총 전적 | MBC게임 A매치 총 전적 | 양대 개인리그 합산 전적 |
vs 테란 | 4전 1승 3패 (25.0%) | 6전 1승 5패 (16.7%) | 10전 2승 8패 (20.0%) |
vs 저그 | 2전 0승 2패 (0.0%) | 3전 2승 1패 (66.7%) | 5전 2승 3패 (40.0%) |
vs 프로토스 | 6전 1승 5패 (16.7%) | 1전 1승 0패 (100.0%) | 7전 2승 5패 (28.6%) |
총 전적 | 12전 2승 10패 (16.7%) | 10전 4승 6패 (40.0%) | 22전 6승 16패 (27.3%) |
3. 소개
대한민국의 前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2001년부터 활동했던 올드 게이머였다. 처음에는 SouL(現 STX SouL)에 입단해 프로게이머 생활을 시작했지만, 입단 1년 만인 2002년, 팀을 나온 후 한동안 무소속으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1년 뒤인 2003년, 동양 오리온(現 SKT T1)의 창단과 함께 입단했다.
데뷔 초반 팀 단위 대회가 출범하기 전에는 양대 리그 본선에 각각 한 차례씩 출전해본 경험이 있다.
그러다가 2003년 프로리그[1]가 본격적으로 출범한 이후로 무적에 가까운 팀플레이 실력을 보여주었다. 넓은 시야와 함께 누구와 팀을 맺어도 최고의 호흡을 보여주었고, 간혹 다른 종족으로 플레이해도 지지 않았다. 타 팀 입장에선 팀플 1승을 거저 가져가는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그래서 '팀플마스터'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특히나 SKY 프로리그 2004 1Round에서 김성제와 맞춘 팀플레이 호흡은 어마무시 그 자체였다.[2]
하지만 원래 팀플이라는 게 선수의 명예를 올릴 수 있는 개인리그나 개인전에서는 활약할 수 없는 것이다 보니 개인리그와 개인전에 갈증을 느꼈고[3], 2005년 SKT T1에서 삼성전자 칸으로 이적했다.[4]
그런데 삼성전자 칸에서는 오히려 이창훈을 잘 구슬려서 좋은 대우와 함께 가히 팀플 감독급의 권한을 부여해서 팀플 본좌로 거듭나기에 이르며 2005년부터 이 이전까지는 노답이었던 삼성전자 칸의 팀플레이의 핵심 선수로 거듭났으며, 박성훈, 임채성과 같이 오히려 SKT T1 때보다 더욱 더 큰 임팩트를 보여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창훈이 오기 전까지 삼성전자 칸의 팀플레이는 고정 선수가 없이 중구난방이여서 팀플레이만 나왔다 하면 패배를 적립하기 일쑤였다. 다만 SKT T1도 할 말은 있는 것이, 2005년 시즌을 기점으로 윤종민이 팀플레이의 핵심 선수로 대폭발을 하면서 이창훈을 완벽하게 대체한 것은 물론 팀플레이 연승 기록까지 경신을 해 버렸을 정도로 팀플레이에서만큼은 확실하게 검증된 선수를 새로 찾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이창훈을 미련없이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선수들이 모두 개인전을 선호해서 타 팀이 팀플레이 집중 자원을 수급하기 쉽지 않았던 상황임을 고려할 필요도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SKY 프로리그 2006 후기리그부터 타 구단들도 팀플레이 전담 자원을 육성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특정 팀플레이 전담 조합을 만들어내며 호성적들을 낸 경우가 많아진 데다가 이와는 반대로 신인 선수들을 팀플레이를 통해 길을 열어주기 위해 도입한 T1의 팀플레이 분담제가 역으로 신인 선수들이 개인 기량을 쌓지 못하는 독으로 돌아오면서 윤종민을 대체할 신진 팀플레이 자원 육성 작전에 실패했고, 이 때문에 T1은 SKY 프로리그 2006 전기리그까지는 그럴대로 잘 돌아갔던 팀플레이가 후기리그를 기점으로 팀플레이가 흔들리기 시작하며 결국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에서는 윤종민까지 부진의 늪에 빠지면서 팀플레이는 물론 팀 자체도 완전히 죽을 쑤게 된다. 2006 후기리그와 2007 전기리그는 팀플레이 분담제를 끝까지 고집했던 구단의 처사 때문에 팀플레이가 체계적으로 돌아가지 못한 상태로 여러 선수 돌려막기화가 되면서 성적이 매우 좋지 않았으며, 결국 T1은 후기리그 팀플레이에서 이 분담제를 포기하고 권오혁/ 이건준과 오충훈/손승재 고정 조합을 쓰기에 이르게 되었지만, 이조차도 성과는 그닥이었다. 물론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리그는 에이스 결정전에서 단 1승밖에 하지 못했을 정도로 개인전이 더 개노답이 된 것이 문제가 되었는데, 이 시기가 T1의 암흑기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윤종민은 2007년 당시에 개인전으로 전향을 하고 싶어하면서 구단과 트러블이 많이 났었을 정도로 팀플레이를 그만 하고 싶다고 고집을 부렸다가 전기리그에 부진했던 것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결국 이건준은 이 시기에 팀플레이에서 지나치게 마구잡이로 돌려막기를 당한 결과 개인전 기량마저 다 잃어버려 팀플레이 폐지 후에는 아예 출전을 못하다가 은퇴를 했고, 손승재도 팀플레이 폐지 후 출전이 전혀 없다가 은퇴, 오충훈도 2008 시즌에는 출전이 없다가 당 시즌을 끝으로 사실상 은퇴. 권오혁은 팀플레이 폐지 후 딱 1경기에만 출전하였으나 이마저도 패했으며[5], 이후 은퇴하고 코치로 전향했다. 그나마 최후의 팀플레이 시즌이었던 2008년에는 윤종민이 완벽하게 부활에 성공하면서 권오혁/윤종민 조합이 준수하게 유종의 미를 거둔 거이 다행이었을 정도. 다만 이창훈을 내보낸 이후에 SKT T1이 2005년 프로리그 트리플 크라운에 2006년 전기리그 우승까지 달성을 했을 정도로 역대급 커리어 하이를 찍었던 터라 이것을 SKT T1 구단의 실책이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는 편이다.[6]
참고로 은퇴 시기 즈음인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리그에서 성적이 몹시 저조했고, 또 당시에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가 팀플레이를 폐지한다고 하여서 이 때문에 은퇴한 거라는 오해가 많은 편인데, 이창훈의 은퇴일은 프로리그 팀플 폐지보다 한 시즌 앞이자 최후의 팀플레이 포함 시즌이던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이 개막하기 3주 전인 2008년 3월 25일[7]이었다.[8] 즉, 팀플 폐지가 은퇴 사유는 아니었으며, 진짜로 은퇴한 이유는 당시 후술된 이유와 함께 삼성전자 칸 이외의 다른 팀에서는 뛰지 않겠다고 하면서 그대로 은퇴를 선언했던 것이다. 아무래도 확실히 팀플만 전담하다 보니 개인리그와 개인전은 도통 하지 못했던 것과 더불어서 팀에 가져다 준 무수한 승리에 비해 보상도 그다지 없었는 것 등 그 초월적인 실력이 이래저래 아쉬운 선수.[9] 게다가 삼성전자 칸은 이창훈의 은퇴 후에도 김가을이 키워낸 또다른 팀플 전담 선수들인 이재황 - 박성훈(혹은 임채성 및 유준희) 팀플 콤비가 활약하면서 2008 전기리그에서 2시즌만에 우승하면서 이창훈의 공백이 그리 아쉽지 않게 되었다.[10]
팀플 스타일은 전통적인 저그 오더, 즉 커맨더 스타일. 기동성 좋은 저글링과 시야 넓은 오버로드를 통해 전장을 관찰하고 적절한 오더를 내리는 타입이다. 박성훈과 호흡을 맞춘 훈훈조합이 있었으며, 그가 따로 키워낸 이재황, 임채성 등도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
이후 oGs 소속으로 스타크래프트 2를 잠시 했었던 듯 하다.
2013년 이후로는 임요환과 함께 미투온 소속으로 프로 포커 선수로 활동 중이다.
4. 그 외
박정석과의 악연이 있다. 2003 프로리그 결승전에서 한빛 스타즈와 동양 오리온이 맞붙었었는데, 오리온은 전격적으로 이창훈을 3세트 기요틴에 출전시켰다. 한빛측의 선수는 박정석. 이창훈은 더블 레어 전략으로 빠른 오버로드 업그레이드를 통한 드랍을 노렸다. 박정석이 정찰을 위해 질럿을 상대방의 본진으로 보냈을 때, 하필 중립동물에 막혀서 질럿이 들어가지 못하는 바람에 더블 레어를 확인하지 못했고 결국 드랍에 휘말려 패배했고, 이 경기는 스캔티드의 저주로 남았다.[11] 그 후로 박정석은 중립동물이 보이면 족족 죽인다고...스카이 프로리그 2005 팀전에서는 한글로 '지지'를 치려다가 '자지'라고 쓰는 실수를 한 적이 있었다.[12]
주훈 감독이 아듀 MBC 게임에 나와서 말하기를 동양 오리온 시절에 차가 프라이드 한 대 밖에 없었는데, 그마저도 퍼졌다고... 그 이유 중 하나로 최연성, 이창훈 같이 덩치 큰 애들을 데리고 다니느라 차가 버티지 못했다고 농담조로 말했다. 프로필을 봐서도 알 수 있듯이, 실제로도 보통 단신 선수들이 많은 다른 저그 선수들[13]과는 다르게 키가 매우 큰 편이다.
병역에 관련해서는 강직성척추염으로 보충역 판정을 받았으며, 정황상 은퇴 후에 사회복무요원으로 병역의 의무를 마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타팀(SKT T1)에서 이적했음에도 불구하고 프랜차이즈 취급을 받았다. 이유는 불명.
[1]
출범 당시에는
온게임넷 단독 주관. 양 방송사에서 중계하게 된 것은 2005년부터이며, 통합 이전
MBC GAME
팀리그는 팀플레이가 없었으므로 논외.
[2]
당시 전적 6승 1패.
[3]
이 시절 개인리그는 하부리그에서만 가끔씩 나왔고, 팀 단위 대회도 양 방송사 모두 개인전 출전 기회를 많이 가지지 못하고 어쩌다 간간히 출전했을 정도였다.
[4]
이 이적에 대해서는 다른 이야기도 있는데,
최연성과 사이가 안 좋아서 티원을 떠났다는 썰이 있다.
#,
# 그 당시 e스포츠 팬들에게는 꽤나 유명한 이야기였다. 당시 최연성의 이중계약 파동과 맞물려서 서로 싫어서 타 팀으로 도망치려 했다는 설이 공공연히 나돌았지만, 최연성은 이 사건에 대해 누군지는 못 밝힌다고 선을 그었다.
[5]
그 와중에 개인리그에도 두 번(둘 다
MSL)이나 연속으로 진출하였지만, 결과는 두 번 다
광탈.
[6]
T1이 이 정책을 쓴 것도 타 구단이 팀플레이 전담 조합을 꾸리기에 애를 먹었던 것도 팀플레이를 개인전 기량이 떨어지기 쉽다는 이유로 기피하는 선수가 많았기 때문인데, 실제로도 타 구단조차 팀플레이 전담 선수는 아직 검증이 덜 된 신인이거나 데뷔한지 몇년이 지나고도 개인전 기량이 팀 내부에서 함량 미달이라고 판단되었거나 슬럼프에 빠진 노장 선수를 팀플레이 전담으로 돌리는 방식으로 전담제를 써먹었고, 이후 이 팀플레이 전담으로만 구르던 선수들의 경우
김윤환과
신노열,
신대근,
김경모,
김태훈,
정영철 등 몇몇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팀플레이 폐지 이후에는 은퇴나 방출, 웨이버 공시, 임의탈퇴, 군입대 등으로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거나 설사 로스터에는 들되 경기에는 출전을 못 한 선수들이 많을 정도. 참고로
철구 또한 선수 시절 2007년 후기리그에
STX SouL의 팀플레이 전담 멤버로 활약한 적이 있으며, 이 팀플레이 전담 선수 출신 중 최고 아웃풋이라고 할 수 있는 선수가 바로 철구와 같은 팀 소속이자
MSL 우승을 거둔
암센세와
스타크래프트 2 전향 이후에 제대로 꽂을 피웠으며 당시 KTF 매직엔스(後
kt 롤스터)에서 팀플레이 전담 멤버로 뛴
임재덕이다. 정확히는 은퇴 이후에 한 번
코치 생활을 했다가 이후에 은퇴를 번복하고 전향한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와는 반대로
최가람처럼 은퇴 이후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흑역사가 된 경우도 있다.
[7]
정식 은퇴 공시일은 시즌 중이던
2008년
6월 16일. 이 날 같은 팀의
변은종,
박성준도 덤으로 은퇴가 공시되었다.
[8]
2008년 시즌은 전후기제가 아닌 단축시즌 형태의 단일리그로 치러졌고, 팀플레이 폐지와 함께 이후 프로리그는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라는 추춘제 리그로 변경되었다. 이렇게 프로리그를 개편한 가장 큰 이유는 단일리그 체제로 개편하려는 협회의 의지도 있었지만, 프로리그 결승전을 여름철 성수기에
부산광역시의
광안리해수욕장에서 고정적으로 치르기 위해 일부러 추춘제 리그로 맞췄던 것.
[9]
하지만 개인전 실적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다. 후술되어 있는 중립동물이 길을 막는 바람에 박정석의 정찰이 꼬여버렸던 그 경기. 사실상 이 경기와 4세트 팀플레이에서 당시 팀 내에서 독보적인 에이스였던
박정석이 연달아 패하면서 한빛 스타즈가 준비해 온 경기 플랜이 완전히 꼬여버렸고, 그 결과 5세트에서는
나도현이
박용욱을 넘지 못하고 동양 오리온에게 우승을 내주고 만다.
[10]
그러나 이들도 여느 팀플레이 전담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팀플레이가 영구히 폐지된 다음 시즌 이후로는 활약상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고, 결국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유준희를 제외하고 다 은퇴했다. 이재황은 딱 한 경기만 치렀으나 그마저도 패했으며, 임채성은 아예 출전을 못했다. 그나마 박성훈은 주장을 맡아 2승 2패를 기록했다. 또한 유일하게 남은 유준희는 2013년까지 가장 오래 버텼지만, 정작 그 유준희도 그렇게 잘 한 선수는 아니었다.
[11]
해당 경기에서 박정석의 질럿의 정찰을 방해했던 중립동물의 이름이 스캔티드라서 그렇다.
[12]
아무래도 한글로 칠 때 ㅏ와 ㅣ가 가까워서 이런 실수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13]
팀 내에 있던 주요 저그들인
차명환,
유준희,
변은종은 각각 173, 170, 172로 모두 하나같이 작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