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치 입문 전
1964년 6월 28일,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태어났다. 이후 충주고등학교(39회)[1],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1.1. 학생운동의 리더
1987년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서 대통령 선거 직선제 쟁취를 위한 학생운동을 이끌었다. 그리고 민주정의당 대표 노태우의 6.29 선언이 발표된 이후, 각 대학 총학생회장들을 중심으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약칭 전대협, NL(정파))를 결성하여 1987년 8월 19일 충남대학교에서 출범식을 거행했다.전대협 의장으로서의 임기를 마친 후 전대협동우회 회장을 맡았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전민련 전국연합 등에서 9년 동안 재야 활동을 했다.
2. 정계 입문
전국연합 조직국장으로 있다가,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전국연합이 국민승리21에 참여하면서 국민승리21 조직부국장을 맡았다.[2]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젊은 피 수혈론'에 따라 우상호, 임종석, 오영식 등과 함께 새천년민주당에 영입됐다.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구로구 갑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김기배 후보에게 1,800여표 차로 석패했다.
이후 2004년 제17대( 서울특별시 구로구 갑. 열린우리당- 대통합민주신당- 민주당), 2012년 제19대(서울특별시 구로구 갑. 민주통합당- 민주당- 새정치민주연합)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지냈다. 학생 운동권의 리더 격인 인물이었기 때문에 여러 논쟁에서 본의든 아니든 휘말린 적이 많았다.
2013년 4월,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박미숙 기자가 "486들이 바로 그 진보적 가치를 고집한 것 때문에 민주당이 과거의 운동권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말을 듣는 것 아닌가?"라고 묻자, "그럼 민주당이 보수당이 되라는 말인가? 이념 없는 정치는 거짓 말이다. 정당이 무슨 엔터테인먼트 회사인가? 민주당은 수권 가능한 대안 정당으로 진보의 가치를 계속 추구해야 한다. 정치에서 중간층을 목적으로 하는 건 없다.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버리나? 예를 들어 비정규직을 줄이자는 것과 늘리자는 것의 중간층은 도대체 뭔가?"라고 답하였다.[3] 이에 대해 박미숙 기자가 "운동권 시절의 가치를 이제는 시대 변화에 맞게 좀 바꾸라는 것이 국민의 요구다"라고 하자, "내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버릴 수 없다. 그걸 버리면 정치를 왜 하나? 나보고 이라크 파병을, 한미FTA를 찬성하라는 건가? 내 생각의 변화가 있다면 옛날에는 각목 들고 바꾸려 했던 것을 지금은 표로 바꾸려 하는 것 정도다. 지난 총선과 대선의 실패는 지휘부의 리더십 책임이지 진보의 가치를 고집해서 생긴 일이 아니라고 본다"고 답하였다. 이로 인해 안티들에겐 '화석화된 진보'라느니 '민중에게 권력을 주긴커녕 고립을 안겨주는 원리주의자'라느니 하는 비난을 당하기도 했다.[4]
2015년 2월 전당대회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기도 하였다. 결과는 3위로 낙선했다.
2015년 7월에는 새정치민주연합 내에서 청년세대 정치인인 이동학과 공개논쟁을 벌였다. 이동학 혁신위원이 공개 편지를 통해 "선배님들을 응원할 든든한 후배 그룹 하나 키워내지 못했다", "시대는 빠르게 변해왔고, 또 변해 가는데, 우리 사회의 새로운 어젠다나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지금의 계파 전쟁이라고 하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 낸 것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고 이인영을 비판하면서, 이인영에게 내년 4월 총선에서 '약세 지역'으로 뛰어들어가야 한다고 주문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이인영은 자신이 지역구를 바꾼다고 혁신 문제는 해결되지 않으며, 오히려 혁신위원회가 정리해고,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3권의 위기를 외면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응수하였다.
20대 총선을 앞두고는 본인의 고향인 충주시에 출마할 뻔 했지만 다행히 무산되었고, 2016년 4월 13일 치러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단수 공천을 받으면서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구로 갑에 그대로 출마하게 되었다. 그리고 최종 득표율 52.02%인 1위로 서울 구로 갑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어엿한 3선 중진으로 올라섰다.
2.1.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2019년 4월 21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심했다( #). 민평련과 86그룹의 지지를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5월 8일에 열린 원내대표 선거에서 김태년- 노웅래-이인영 3파전으로 치른 끝에[5] 원내대표로 당선되었다. 1차 투표에서 이인영 54표, 노웅래 34표, 김태년 37표로[6] 과반을 얻지 못해 김태년과 함께 결선 투표를 치렀고, 결선 투표 결과 74표를 획득하여 48표 획득에 그친 김태년을 누르고 홍영표의 뒤를 잇는 원내대표로 최종 당선되었다.5월 12일, 원내부대표 인선까지 완료하면서 원내대표단 인선을 완료, 본격적인 원내대표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6월 24일, 원내대표단 간 협상 끝에 나경원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오신환 전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와 함께 국회 정상화 합의를 이루며 6월 임시 국회를 열기로 했지만 자유한국당이 의총에서 원내대표의 합의안을 부결시켜버리며 국회 정상화에 반대하자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와 입을 맞춰 자유한국당의 이런 행동에 대한 강력한 유감을 표명하였다.
7월 3일,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 도입, 일하는 국회를 위한 국회의원 무노동 무임금 법안 발의 등을 골자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진행했다. 이 와중 야당에게 2019년도 추가경정예산 처리 협조 등을 요청했지만, 중간에 "저와 민주당은 솔직히 한국당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하지만, 그 주장을 앞세우지 않겠다" 등 자유한국당의 원외투쟁으로 인한 장기간의 국회 공전을 비판했다. 이로 인해 연설 도중 한국당 의원들의 야유를 받았다. #
2019년 7월 23~24일 방한한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이인영 원내대표와는 면담 일정을 잡지 않은 반면, 나경원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는 24일 오전 8시에 면담을 가졌다.[7] 이인영 전 원내대표는 볼턴 보좌관을 만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한편 나경원 전 원내대표는 "안보와 관련된 한국당의 입장을 (볼턴 보좌관에게)충분히 전달했다"며 "중국과 러시아의 카디즈(KADIZ) 영공을 침범한 엄중한 안보 현실에 있어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자평했다. #
조국 전 법무부장관 후보자 및 그 가족들에 대해 계속 제기되는 각종 의혹과 논란들에 대해 가짜 뉴스라며 조 전 장관을 옹호했지만 알다시피 진영 논란이 첨예했던 상황인지라 안티들에겐 비판도 제법 받았다.
12월 10일, 원내대표 간 예산안 및 민생법안 처리 협의가 실패하자 망설이지 않고 자유한국당과 변화와 혁신을 제외한 여야 정당간 '4+1' 협의체[8]를 가동해 2020년도 예산안을 2019년 정기국회 마지막 날 원안에 가깝게 통과시키는 데 성공했다. # 이어 바로 임시회를 열고 15일, 소위 '패스트트랙' 법안이라 불리는 검찰개혁 및 선거법 개혁안을 입법할 예정이기 때문에 이인영 원내대표 임기에서 가장 중요한 시점이 찾아왔다는 평이 많다.
석패율제와 연동형 캡[9]을 둘러싸고 민주당과 나머지 4당의 의견이 갈리면서 연내 처리가 무산되는 게 아닌가란 우려를 샀지만 '비례한국당' 우려[10] 등 비판 여론을 의식한 4당의 양보로 결국 12월 23일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검찰개혁법이 최종 타결되면서 같은 날 오후 3시 본회의에 상정할 예정이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이 이 법안에 대한 무제한 토론을 신청하면서 25일 이후로 의결이 연기된 상태다.
임시국회 회기를 짧게 쪼개는 방식으로 자유한국당의 의사진행 방해에 대항해 27일 공직선거법 개정안, 30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을 4+1 협의체를 통해 모두 통과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어 1월에는 정세균 전 국무총리 후보 임명 동의안과 검경 수사권 조정안 등 잔여 검찰 개혁법, 그리고 발의 1년 3개월만에 유치원 3법까지 5당 협의체의 힘으로 모두 가결시켰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검경 수사권 조정안 등 문재인 정부의 주요 공약이었던 검찰개혁과 관련된 법안들이 정부 출범 2년 반만에 입법에 성공하면서 문재인 대통령 및 민주당 지지층을 중심으로 이인영 전 원내대표에 대한 평가가 이 시기를 기점으로 많이 상승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2020년 1월 28일, 이인영 전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다. 중국은 오랜 세월을 함께 돕고 살아가야 할 친구’라며 "이런 상황일수록 한중 양국 국민의 혐오를 부추기는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 지금 어려움에 빠진 중국 국민에게 따뜻하게 손을 내밀어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라며 범정부적이고 초당적인 협력을 촉구하는 발언을 했다. # #2 이 발언에 대해 네티즌들은 북한의 중국인 입국 차단 등을 거론하며 적절하지 못한 발언이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2020년 5월 7일 임기를 마치고 당 원내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다. 2020년 8월 예정인 전당대회의 당 대표의 여부에 대해선 나가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
2.2. 21대 총선 출마
21대 총선에서는 당에서 서울 구로 갑 단수공천을 받고 후보로 등록하면서 4선에 도전했고, 미래통합당 김재식 후보를 꺾고 53.92% 득표율로 무난히 4선에 성공했다.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를 선택한 김연철 전 장관에 뒤를 이어 통일부 장관으로 거론되고 있으며, 청와대에서는 이미 검증에 착수했다고 한다. #
2.3. 제41대 통일부장관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학자 출신 김연철 통일부장관이 사퇴한 이후, 임종석, 우상호 등과 함께 문재인 정부의 차기 통일부장관으로 검토되었다. #2020년 7월 3일, 예상대로 김연철 전 장관의 후임으로 통일부장관에 내정되었다. #[11]
7월 8일, 인사청문요청안이 국회에 접수되었다. 이 후보자의 재산은 10억 758만원이며, 후보자 본인과 아들 모두 수형과 척추관절병 등의 사유로 병역 면제를 받았다. # 청문요청안을 바탕으로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여야 합의로 7월 23일 이인영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
인사청문회 당일, 청문위원이었던 통합당 태영호 의원이 자신과 이인영 후보의 삶의 궤적을 비교하며 자신은 주체사상파에서 전향했는데 후보는 어떠시냐고 묻자 질문의 의도를 잘 모르겠다며, 과거나 지금이나 자기는 주사파였던 적이 없는데 웬 뜬금없는 전향 얘기를 하느냐며 상당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여당 의원들의 질타를 받은 태영호 의원은 오후 질의에서 "국어 사전에도 있는 전향이란 단어가 이런 파급력을 가져올 줄 몰랐다"며 그럼 어느 수준에서 검증을 해야 되냐고 질문했고, 이에 이인영 후보는 사상검증은 얼마든지 하셔도 좋으나 전향이란 말은 한국 사회 맥락상 낙인 효과와도 관련이 있는 단어라 좀 더 신중히 표현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넘어갔다.
이어 이인영 후보는 자신의 사상에 대해 "과거 젊은 시절엔 자주적인 나라를 갈망해 한미간 불평등 관계 등에 불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지금 자신이 봐도 꽤나 급진적인 생각을 한게 맞고 그걸 반미자주노선이라고 상대측에서 공격해도 용인하겠으나, 그게 북한을 추종하는 주사파였단 소릴 하는 것은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자신의 삶 자체를 부정하는 굉장히 모욕적인 언사라며, 그것조차도 자신이 정치인이 되면서 현실 감각을 익힌 후인 지금에 와선 굳건한 한미동맹은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필요하며 자신도 지지한다는 식의 입장 변화가 있어왔다고 답변했다.
7월 24일, 원래 오전에 청문보고서 채택을 위해 외통위 전체 회의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이 청문보고서 채택에 반대해 오후로 미루어졌다. 결국 오후에는 외통위에서 이미 과반 이상을 점유한 여당 더불어민주당이 단독으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했다. 27일, 문재인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임명을 재가했다. #
7월 27일, 첫 출근 중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대담한 변화를 만들어 내고 전략적 행동을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별도의 취임식 없이 바로 업무를 시작한다고 한다.
8월 6일 제316차 남북교류협력추진위원회에서 유엔 산하 기구인 세계식량계획(WFP)의 '북한 영유아·여성 지원사업'에 1,00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 이 안건은 앞서 김연철 장관이 재직 중 추진하고 있었으나 6월 4일 북한의 김여정이 대북전단을 구실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폐쇄, 남북군사합의 파기 등을 거론하며 발표한 이른바 '막말 담화'로 인해 보류되었던 것을 재의결한 것이다. #1 #2 다만 북한이 대화의 창을 닫고 있어 실현 여부는 불투명하다.
본인이 추진했던 북한과의 물물교환 사업이 대북제재에 걸려 차질이 생겼다. 남한의 설탕과 북한의 술을 교환하려고 했지만, 국정원에서 북측 기업인 개성고려인삼무역회사가 제재 대상 기업이라고 밝히면서 통일부는 관련 계획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통일부가 대북제재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성급하게 사업을 추진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북한의 3개 업체중 하나인 개성고려인삼무역회사가 유엔 제재대상기업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며 (이기업은 베트남에서 국제 전시회에 참가하였고 그때도 유엔제재대상이라는 이야기가 나옴) 작은 교역은 국내의 남북경총통일농사협동조합이 2020년 6월부터 통일부에 북측의 3자계약서를 가지고 왔지만 1년 2개월이 지난 지금도 승인이나 불승인이 아닌 보류상태로 있는 사안이다.
# #
9월 16일에는 취임 이후 처음으로 판문점을 방문하였다.
9월 21일에는 안드레이 쿨릭 주한 러시아대사를 만나서 남북러사업에 대해서 논의하였다. 이로서 4강 외교의 대사들은 모두 만나서 남북관계에 대해서 설명하였다.
2021년 4월에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책 구상과 현 정세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대북 지원을 추진하는 이유[12],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한 입장, '맹미우중'이라는 미국이나 중국과의 관계 설정, 젊은 세대에 통일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등의 순차적 통일 추진 방식 등을 밝혔다. # 이 인터뷰 이후에도 이런 입장 하에서 정책을 추진하는 모습을 보였다.
2021년 7월에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작은 정부론을 주장하며 여성가족부와 함께 통일부의 폐지를 들고 나오며 이준석과 설전을 벌였다. 근데 오히려 이준석 대표의 발언을 같은 정당 내 권영세, 윤희숙, 조해진 그리고 김재원 의원이 나서서 비판하면서 통일부 폐지론은 수면 속으로 가라앉게 되었다.
2021년 10월 3일, 독일을 방문하여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과 면담을 가졌다. 참고로 독일은 2009년 이후로 독일의 국경절인 통일의 날에 한국 통일부 장관을 항상 초대해오고 있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공직사퇴시한인 2022년 3월 3일까지 장관직을 사퇴하지 않아 출마는 자동으로 무산되었다.[13]
이후 2022년 5월 9일, 문재인 전 대통령이 사표를 수리하면서 통일부장관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2.4.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문 정부에서 공직을 맡은 이력 때문에 보통 친문으로 분류되어 험지 차출설[14]등이 제기되기도 하였지만 2024년 3월 1일 22대 총선에서도 구로구 갑에 공천됨으로서 민주당 정치인 역사상 최초로 서울 동일 지역구에 7회 연속 공천되었다.[15]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선 구로구 갑이 보수세가 강해져 정치신인을 투입하기도 어려운 상황도 반영됐다. 20대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윤석열 후보를 0.04%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이겼고, 8대 지선에선 5%이상 차이로 완패했다.그리고 영입인재 출신 국민의힘 후보으로 출마한 YTN 호준석 전 앵커와의 맞대결에서 넉넉한 차이로 승리하며 무난하게 5선에 성공했다.
[1]
허강수 육군 중장(
제7기동군단장)과 고교 동기다.
[2]
#
[3]
다만 정작 이인영은 운동권에선 상당히 보수적인 인물이라고 평가받기도 한 사람이다.
[4]
하지만
월간중앙도 보수 성향에 가까운 월간지임을 감안할 때 "진보적 가치를 고집하면 안 된다"는 명제를 갖고 이루어진 질문이 어떤 성격을 갖는지도 생각해볼 문제다.
[5]
#
[6]
무효 1표.
[7]
심지어 볼턴은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과
강경화 전
외교부장관,
정경두 전
국방부장관보다도 나경원 전 원내대표를 먼저 만났다. 정부 외교·안보라인의 고위 인사들을 만나기 전에 야당 원내대표를 먼저 접촉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
[8]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
대안신당
[9]
비례대표 의석 중 절반 가량에만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적용하고 나머지 절반엔 기존 방식의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적용하는 방식이다.
[10]
연동형 비례대표제 및 석패율제 도입이 거론되자 자유한국당 측에서 선거용 비례정당을 따로 만들겠다고 엄포를 놓자 이에 대한 비판과 함께 국민들의 우려가 커졌다.
#
[11]
국회법에 따라
국무총리 포함
국무위원은 국회의원 직과 겸직이 가능하다. 그러나 아무래도 장관에 임명되면 국회의원직에 비교적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다. 사실 국회의원이 국무위원을 겸직하는 행정의 형태는 의원내각제적 요소를 가진 한국 국회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12]
북한 정부는 인도적 지원을 비본질적 문제라며 거부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13]
설사 장관직을 사퇴하고 나갔더라도,
정부를 마무리하는 시기에 행정업무를
다음 정부에 인수인계해야 하는 장관의 책무를 무책임하게 내던졌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서울 지역은
윤석열을 더 많이 뽑아준 것으로 나왔고, 무엇보다도 본선에 올라올 게 유력한
상대 후보는 헌정 사상 첫 4선 서울시장을 노릴 정도로 서울에서 지지가 절대적이다.
[14]
특히 일부 당원들에게는
충주시로 내려보내라는 말도 있었으나 이인영은 충주로 가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 것으로 보인다.
[15]
보수정당 소속으로는 15~21대 총선
서대문구 갑에 7회 연속 출마하여 2승 5패를 기록한
이성헌이 있다. 이성헌과 이인영이 함께 당선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이성헌이 16, 18대, 이인영이 17, 19, 20, 21대 총선에서 당선되면서 이 둘의 당락이 매번 엇갈렸는데, 모두 수도권에서 보수정당이 이겼을때(16, 18)와 민주당계가 이겼을때(17, 19~)에 맞춰서 승리했다. 이후 이성헌이 2022년
8회 지선에서
서대문구청장에 당선되어 22대 총선에는 출마할 수 없게 되었다. 수도권 전체로 범위를 넓히면 경기도
구리시에 16~22대 총선에서 7회 연속 공천된
윤호중이 있는데, 이 사람은 통산 5선 모두 이인영과 동반 당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