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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7 11:03:43

이시와타리 다이스케

파일:2OROzlW.jpg
게임 디자이너는 애니메이션, 인류학, 건축학, 브레인스토밍, 비즈니스, 영화학, 커뮤니케이션, 작문, 경제학, 공학, 역사학, 경영, 수학, 음악, 심리학, 대중 연설, 음향 디자인, 테크니컬 라이팅, 시각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 Jesse Schell, The Art of Game Design, 게임 기획자 항목 참조.

1. 개요2. 활동3. 특징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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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시와타리 다이스케 (石渡 太輔、いしわたり だいすけ)

1973년 8월 15일생의 게임 제작자 일러스트레이터 겸 게임 음악가. 길티기어 시리즈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사람이자 블레이블루 시리즈의 배경음악을 담당하고 있다. 좋아하는 밴드는 , 건즈 앤 로지스, 아이언 메이든, 헬로윈 그리고 그외에 여러밴드들을 섭렵할 정도로 락과 헤비메탈이란 장르에 대단히 조예가 깊다. 취미는 기타, 한국에선 이시와타리 대장님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고 있으며 외국에서도 Lord Ishiwatari라고 부른다.

2. 활동

어린 시절에 아버지의 회사의 사정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이민생활을 하다가 중학교를 다니던 도중 본국으로 귀국했다. 1992년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도 안가고 2년동안 백수로 놀다가 '프로작가나 해볼까'라는 마음에 1994년 봄 게임전문학교에 입학, 그 해 가을에 스트리트 파이터 2에 이어서 킹 오브 파이터즈가 유행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시와타리는 게임을 제작하기로 마음을 먹고 게임 전문학교 '어뮤즈먼트미디어 종합학원'의 게임 크리에이터 학과에 들어가게 된다. 거기서 길티기어의 초안이 되는 설정들을 짜고 난 후 1995년 여름 2학년을 다니던 도중 휴학하고 아크 시스템 웍스에 인턴으로 들어간다.[1]

아크 시스템 웍스는 88년부터 이런저런 외주제작을 해오던 게임 제작 회사였으나 자체 IP는 물론이고 커다란 히트작 또한 없었으며 외주제작도 끊기면서 회사는 도산 직전이었다. 실제로 1995년부터 길티기어가 발매된 1998년 사이 아무런 발매작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이 때 신입으로 들어간 이시와타리는 사장에게 스트리트 파이터 2 같은 게임을 만들다고 싶다 요청했고 사장은 '언젠가 만들든가?' 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후 십수명의 스태프들로 구성된 TEAM NEO BLOOD가 설립, 이시와타리는 혼자서 기획, 게임디자인, 세계관 설정, 그래픽 작성, 홍보용 일러스트, 작곡, 주인공 성우까지 맡아가며 초대 길티기어를 만들었다. 이 팀 자체가 대부분 신입인데다가 상업게임을 개발한 경험도 전무하였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게임이 용케 발매되었다는게 놀라울 정도. 개발비가 부족했기 때문에 이시와타리를 비롯한 스태프들이 성우도 담당했다고 한다[2][3].

초대 길티 기어 제작시에는 음악적 지식이 부족하여 제작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4] 결국 부족했던 음악도 지금에 와서는 이시와타리의 명의로 된 명곡들이 수 없이 많으며, 블레이 블루 시리즈의 사운드 디렉터를 담당했던 것을 보면 될놈될인듯.

그리하여 발매된 초대 길티기어는 밸런스도 엉망이고 버그도 많았으나 살계 등의 독특한 시스템과 메탈풍의 BGM, 매력적인 캐릭터 등의 요소로 '재미있는 쿠소게' 정도로 평가되며 주목받게 된다. 아틀러스의 퍼블리싱으로 해외에도 팔리게 되고, 무엇보다 당시 존재감이 없었던 사미의 지원을 받아 후속작을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이 컸다.

그리고 길티기어 X의 제작 및 발매로 정신없는 러시가 계속되는 치열하면서도 초대작에 비해 상당히 다듬어진 게임성과 20년 정도가 지난 지금 봐도 굉장한 퀄리티의 도트 그래픽[5], 그리고 8-bit 풍을 배제한 현대적인 사운드로 업그레이드한 헤비 메탈과 록 장르 사운드로 2D 격투게임계에 엄청난 충격을 주며 매니악하긴 하지만 격겜 좀 즐겨봤다 하는 사람은 이름 한번은 들어봤을 정도로 메이저한 위치로 급부상했다. 어느 정도냐면 당시 한국에 발매했을 때 KOF나 스트리트 파이터, 철권 등 내로라하는 메이저급 오락실 격투 게임들이 즐비하던 2000년대 초에서도 이 게임을 해보거나 해본 적은 없어도 이 게임의 특징인 헤비 메탈 록의 bgm을 떠올릴 정도의 파격적인 요소를 보여주었다. 게다가 이때의 길티기어를 계기로 종종 고퀄리티의 명곡이 나오긴 했어도 다른 격겜들이 길티기어의 bgm에 자극을 받아 점차 게임 내의 캐릭터 테마곡 및 bgm의 퀄리티를 신경쓰기 시작하게 된다.

이처럼 길티기어 시리즈와 아크 시스템 웍스를 이끌다시피 한 사람이지만 본인은 정작 길티기어의 최고 전성기라고 볼수 있는 XX#R 이후 길티기어 시리즈에서 손을 떼고, 이스카라는 흑역사가 터진 뒤 판권 문제로 시리즈에 관여하지 못하다가 오랜 기간 후에 RTS 장르의 길티기어 2 - 오버츄어를 내놓았고, 게임 자체의 평가는 괜찮은 편이나 기존과는 너무나도 생소한 장르였던 데다 2 제작 당시는 판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대부분의 기존 캐릭터들이 잘려나가는 등의 문제로 상업적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이후 길티기어 2의 작업을 마치고 새롭게 개발 중이던 대전 격투 게임인 블레이블루 시리즈의 음악담당이 되었다. 블레이블루 CS 콘솔판의 콘도 카나코가 부른 추가곡 'Pandora tears'와 이마이 아사미가 부른 CS2의 오프닝곡 '심창(深蒼)'도 이 분이 작곡하였고, 그러다 2011년 1월에 개최되는 길티기어X블레이블루 MUSIC LIVE 2011을 앞두고 진행된 패미통 인터뷰에서 속편을 계속해서 제작하고 싶다고 했고, 이후 길티기어 Xrd로 다시 한번 그 당시 카툰 렌더링의 정점을 보여주는 뛰어난 그래픽과 항상 길티기어의 발목을 잡아왔던 높은 진입장벽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여 굉장한 호평을 받았다. 본디 샤프 리로드의 작업이 끝나고 길티기어 2를 작업하는 사이 모리 토시미치가 버전 업을 담당하였으나, 길티기어 2의 상업적 실패로 인해 격투게임을 만들 의욕도 없었던 때 블레이블루의 성공으로 인해 생각을 고쳤다고 한다.

3. 특징

우선 이시와타리 다이스케하면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게임 음악의 이야기를 하자면, 중학생 시절부터 덕후라서 길티기어의 주인공인 솔 배드가이는 Queen의 앨범곡명과 프레디 머큐리의 이름들을 따왔고, 심지어는 본인의 취미까지 반영되어있다. 또한 모든 음악은 캐릭터를 먼저 만들고 그에 맞춰서 작곡을 하지만 밀리아 레이지의 테마곡인 Writhe in Pain[6]은 유일하게 과거 작곡해놓았던 곡으로 캐릭터가 만들기 전에 테마곡으로 선정된 곡이었다고. 여담으로 초대 길티기어 시절부터 지금까지 작곡한 음악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은 자토 밀리아의 대전 테마곡인 Still in the Dark. 이후 자토가 스토리상 죽어버렸기 때문에 사용할수 없게 되어서 매우 아쉬웠다고 한다. Xrd부턴 캐릭터들의 테마곡들이 갈아치워져서, 스토리상 자토 ONE은 부활했지만 그 곡을 사용하진 않았다. 엄청난 락과 메탈덕후로 캐릭터의 이름과 기술명에 유명 메탈밴드들의 곡이나 멤버 이름의 오마주가 항상 들어간다. 신작 스트라이브의 층 이름은 아예 헤비메탈 싱글곡 컴필레이션이나 마찬가지.

CG작업은 아크 시스템 웍스 소속 그래픽 담당도 어느 정도 맡고있지만 길티기어 Xrd내 스탠딩 일러스트와 길티기어 XX 액센트 코어 내 스탠딩 일러스트까지 적어도 스케치는 이시와타리가 그렸다. 그리고 직접 그린 그림들의 경우 시리즈가 가면서 계속해서 스타일이 바뀌고 있다. 크게 구분짓자면 초대/X때와 AC시절 스탠딩 일러스트를 제외한 XX때, 길티기어 2때, 그리고 Xrd 때로 나뉜다. 길티기어 이스카 제작 당시 그동안 시도해보지 않았던 CG를 시도했었으나 자기한테 맞지 않아 아날로그식 아트로 회귀했다고 한다.[7] 그러다가 Xrd REV2 발매 무렵을 기준으로 자의든 타의든 아날로그 작업 방식을 어느 정도 내려놓은 듯하며, 이후의 신규 일러스트들은 CG로 작업하고 있다.

게임 철학의 경우, 기본적으로 스피디하게 몰아치는 러시 위주의 게임성을 바탕으로 로망 캔슬로 대표되는 높은 콤보 자유도를 기본으로 하는 격투 게임을 표방한다. 그러나 그러한 성향은 필연적으로 초보와 고수의 간격을 극단적으로 만든다는 점이 있고, 실제로도 아크 시스템 웍스의 대전 격투 게임들은 길티기어 시리즈의 영향을 받았는지라 고인물 장르로 불리는 대전 격투 게임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고인물판으로 인식이 박혀있다.

그러다가 회사의 새로운 대표작으로 발돋움했지만 여러 한계를 보인 블레이블루 시리즈 이후[8]부터 회사의 이미지를 환기시키고 유저풀을 늘려야 한다는 인식이 생겼는지, 게임의 근간인 공격적인 경향은 유지한 채 조작이나 시스템을 단순화하여 진입 장벽을 낮추는 노력을 하고 있다. 블레이블루 시리즈에서 도입된 원버튼 콤보 시스템을 시작으로, 최근 참여한 길티기어 STRIVE에서는 파격적일 정도로 시스템의 간편화 및 단일화를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매니아층이 어느 정도 존재하는 일본 본토에서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오지만, 해외에서는 이러한 행보에 긍정적인 편이고 아크 시스템 웍스가 바라던 대로 유저층의 확대에 신경쓴다는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걸 떠나서 적어도 이 사람의 본업 격인 게임을 총괄하는 프로듀서를 맡은 게임 중에서 게임성으로 혹평을 받은 사례가 거의 없다는 것이 대단하다. 그나마 평가가 가장 안좋은 축에 속하는 게 음악 빼고 흑역사로 낙인찍힌 길티기어 이스카 정도. 물론 그 이스카 때문에 길티기어 시리즈가 하향세를 타기 시작했었지만, Xrd에서부턴 시리즈가 다시 반등한걸 봐선 대단하긴 하다.

이처럼 다재다능한 사람이지만 정작 본인은 상당히 겸손한 편으로 솔의 목소리를 녹음할 당시 너무 부끄러워서 술을 마시고 녹음했다는 에피소드는 AX2009의 길티기어 & 블레이블루 간담회 이래로 유명해진 이야기로, 블루라지에 게스트로 참여했을 때도 당시의 이야기를 하면 부끄럽다며 전력으로 회피하는 모습을 보인다. 예전부터 스토리 모드 등에는 전문 연기자를 채용하는 모습을 보아선 프로 연기자가 아닌 자신이 성우들 곁에서 연기를 한다는 건 실례라고 여기는 모양이다. 다만 전문적인 연기 경험이 없는 사람치곤 그래도 꽤 괜찮게 연기했는지라, 팬들도 애정섞인 놀림 정도를 빼면 전혀 흑역사 취급하지 않고 엄연히 구작 시절 솔 담당 성우로 인정하고 있는 편.덕분에 인터뷰를 할 때마다 솔 목소리를 들려달라는 요청이 한 번씩은 꼭 나온다

4. 여담

BL쪽에도 거부감이 없는건지 니트로플러스 키랄의 2010 캘린더 12월 담당 일러스트를 그린적이 있었다. 당시 그린 것은 Lamento -BEYOND THE VOID-의 슈이와 리크스. 사실 길티기어 시리즈 솔 배드가이 카이 키스크는 과장 좀 보태서 BL계에 한 획을 그은 커플링이기도 하기 때문에 팬들의 애정이라고 받아들인 것 같다.

'프로젝트를 새로 시작할 때 까지 머리를 자르지 않는다'라는 독특한 신념을 가지고 있어서 인터뷰에서나 프로필사진에선 항상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는 모습을 보이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위 사진의 2011년까지 사진은 1998년과 차이가 전혀 없었다. 그러다가 2014년 길티기어 Xrd로 인해 머리를 많이 잘랐다. 2021년 현재는 길티기어 STRIVE의 발매로 인해 2014년보다도 머리를 약간 더 짧게 자른 상태. 다만 그와는 별개로 이 사람,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외모가 정말 변하질 않는데다가 상당한 미남이다. 얼굴에 생긴 잔주름 정도를 빼면 옛날 얼굴에서 크게 변한 게 없을 정도.

2018년 4월 아크시스템 아시아 지부에서 NDC참여 관련 트윗을 올렸는데, 이 트윗에서의 사진에서도 2014년의 사진과 동일한 머리다. https://twitter.com/ASW_ASIA/status/986442925121855488

2019년 10월 24일 가동되는 CHUNITHM 시리즈 신 버전 CHUNITHM CRYSTAL에 Surrogate Life라는 곡을 제공하여 리듬게임에도 모습을 드러내었다. 캐릭터인 '패트리엇' 또한 본인이 디자인하였다.


[1] 인턴 이력사항에 'SNK의 '월화의 검사'에서 그래픽을 담당하고 있는 것을 계기로 게임을 만들고 싶다'라는 루머가 있는데, 길티기어 제작 도중에 월화의 검사 제작에 외주로 참여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확실하지 않으며 앞뒤도 맞지 않는다. 월화의 검사는 1995년 말이 아닌 1997년 말에 발매한 게임이기 때문. 만일 월화의 검사 발매가 2년 미뤄졌다면 가능성은 있을지도 모르지만. [2] 길티기어2 오버츄어에서는 이즈나의 서번트역도 맡았다. [3] 길티기어 이스카의 보스 레오팔돈의 테마곡인 Kill DOG as the sacrifice to DOG에서 개(?)처럼 샤우팅하는 목소리 담당. [4] 초대 길티기어 시절에는 음악적인 지식이 별로 없어서 음악담당 스태프들에게 '좀 더 짜릿한 음악을 만들 수는 없을까요'라고 100만번 이상은 말했다고 한다. 게다가 코드의 존재조차 모른채 음악을 만들었다! 어쨌든 그가 구상한 음악의 의미는 어느정도 통한 것 같다. 결론적으로 미디 스타일의 원곡을 스즈키 타카오(鈴木 高雄)에게 건내주면 그걸 편곡하는 스타일로 음악이 완성되었다. [5]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격투게임으로 스트리트 파이터 3 서드 스트라이크를 뽑은 것을 보면 이러한 고해상도 그래픽은 스트리트 파이터 3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했을 가능성이 높다. [6] XX시절 당시 카이의 테마 Holy Orders, 디지의 테마 Awe of she, 그리고 브리짓의 테마 A Simple life 등과 더불어 최고의 인기곡이었다. [7] 과거 일러스트 작업 방식은 러프 및 선화는 샤프심, 채색은 코픽마커로 채색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복사용지에 러프드로잉 후, 라이트박스로 트레이싱하여 선화를 그린 뒤 복사기를 돌려 그 선화종이 위에 마커와 색연필로 채색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물리적인 형태로 갖고 있으면 애착이 생긴다는 이유로 이러한 방식을 고집했다고 한다. [8] 블레이블루는 확실히 아크 시스템 웍스를 한 숨 돌리게 해준 작품이고 서브컬처계에서 인지도가 나름 있는 프랜차이즈가 된 것은 사실이나, 알고보면 게임성 자체는 어찌보면 길티기어의 방향성을 더더욱 진화시킨, 말하자면 태생부터 매니아층을 타겟으로 한 게임이다. 그나마 크로노판타즈마 초기~중기때까지는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CPEX이후부터 삐걱대더니 센트럴픽션에선 강캐와 약캐의 차이가 너무 심해지면서 시리즈가 하향세를 겪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센트럴픽션이 메인 시리즈의 사실상 완결로 팬들에게 받아들여진 마당에 아예 흑역사로 낙인찍힌 애니판에다 캐릭 절반을 DLC로 내놓겠다는 발표와 발매 초기 컨텐츠 부족으로 나락으로 가던 평판을 사후지원으로 겨우겨우 붙들고 있는 외전작 블레이블루 크로스 태그 배틀, 그리고 정식 후속작이라고 내놓은 다크워도 유저 수 1만명을 사수하지도 못하는 등 시리즈의 외연 확장도 사실상 실패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외연확장에서 그나마 건진 거라면 블루라지 정도지만 이마저도 시리즈의 흐름을 따라가는지 19년도 이후로는 다크 워 특집방송을 21년 한 번 한게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