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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틀란트
▲ 유틀란트 반도 서해안의 전형적인 히스가 자라는 풍경
1. 개요
북유럽에 위치한 반도. 유틀란트 반도는 독일어이므로 반도의 대부분을 차지한 덴마크어 명칭인 윌란 반도라고 쓰기도 한다.[1][2]남쪽의 약 3분의 1은 독일, 북쪽의 3분의 2는 덴마크가 차지하고 있다.[3] 최대 도시는 오르후스. 다만 남쪽 경계가 애매해 영문 위키백과에서는 함부르크를 유틀란트 반도의 최대 도시로 본다 #.
반도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아랫부분에 킬 운하가 유틀란트를 가로지르고 있기 때문에 좁은 수로이긴 하지만 어쨌든 유럽 대륙과 육지로 붙은 부분 없이 전부 물에 둘러싸여 있다. 유틀란트 섬이라고 잘보면 볼 수는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유틀란트 반도이다. 김포, 펠로폰네소스 반도 등과 비슷한 예로 섬이지만 섬으로 안본다.
이위틀란트라는 지명은 과거에 이곳에 살았던 게르만족의 일파인 주트족(영어: Jutes)에서 따왔다. 주트족이 앵글로색슨족과 함께 브리튼 섬으로 이주한 이후 윌란 반도에는 노르드인인 데인족이 이주하여 현재 덴마크에 이른다.
2. 녹화사업
대한민국의 중장년층 이상 세대들에게 엔리코 달가스와 토마스 그룬트비 목사의 황무지 개간 일화로도 잘 알려진 곳이다. 유틀란트 반도 서부는 모래가 많아 농사짓기 좋지 않은 황무지였고, 이 때문에 이 당시의 덴마크는 식량생산을 슐레스비히홀슈타인에 의존하는 비중이 컸는데 덴마크가 프로이센 왕국- 오스트리아 제국과의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에서 져서 곡창 지대인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을 빼앗기자, 이 두사람은 피폐해진 조국을 발전시키고자 황무지 개간 운동을 벌였다.정작 덴마크 내에서는 그룬트비만 유명하고, 달가스는 아예 모른다고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4]
오히려 본국 덴마크보다 한국과 일본에서 더 유명해졌다고 볼 수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우치무라 칸조[5]의 영향이 컸다. 우치무라는 1911년 '덴마크 이야기'(デンマルク国の話)란 강연에서 처음으로 위 일화를 언급했으며 이것이 글로 펴내졌는데, 이후 잊혀졌다가 태평양 전쟁 패전 이후 재발견되어 일본도 이런 식으로 재건할 수 있다는 메시지로 이용되었다.
한국에서는 류달영 박사(1911~2004)가 1951년에 쓴 '새 역사를 위하여'란 수필집을 통해 처음 소개되었다.
류달영은 일제강점기 시대부터 농촌운동을 해온 사람으로 심훈의 상록수에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인물인데, 마침 우치무라의 글을 본 후 한국 전쟁 이후 황폐한 한국 농촌을 재건하자는 의미로 이들을 소개했다.[6]
한편 새마을운동 계획자로 알려진 류태영 박사는 이 이야기를 읽고 진짜로 덴마크 유학을 가기도 했다. 그리고 귀국 후 1970년대와 1990년대에 20년이나 걸치는 새마을운동을 벌인다.
3. 유틀란트 해전
자세한 내용은 유틀란트 해전 문서 참고하십시오.
[1]
발음이
한글로 표기할 수 없는 발음인지라 표기가 다른데 [jy\]로 ㅣ에서 단모음 ㅟ로 이어지는 발음이다. 굳이 표기하자면
ㆌ로 표기될 발음.
[2]
독일어로 Jütland는 유틀란트가 아니라, 위틀란트라고 읽는다
[3]
이 3분의 2가 덴마크의 본토가 되는 곳인데,
코펜하겐은 이곳이 아니라 그 옆에 있는
셸란 섬에 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독일이 5분의 2, 덴마크가 5분의 3 정도였으나,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해 덴마크에게 반환되었다.
[4]
정확히 말하면 달가스 본인보다는, 그가 황무지 개간을 위해 설립한 히스 협회(hedeselskabet)가 더 유명하다.
[5]
일본인 목사(1861-1930).
[6]
이 분은 그 유명한
함석헌과
일제강점기에 성서조선 사건으로 서대문형무소에서 함께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