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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30 19:21:09

와츠키 노부히로

와츠키 노부히로
和月伸宏 | Watsuki Nobuhi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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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본명 와츠키 노부히로
([ruby(和, ruby=わ)][ruby(月, ruby=つき)] [ruby(伸宏, ruby=のぶひろ)], Watsuki Nobuhiro)
출생 1970년 5월 26일 ([age(1970-05-26)]세)
도쿄도 니가타현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신체 171cm
가족 부인 쿠로사키 카오루[1]
자녀
직업 만화가
활동 1994년 ~ 현재
데뷔 1994년 바람의 검심 -메이지 검객 낭만기-

1. 개요2. 경력
2.1. 인맥2.2. 취미
3. 논란
3.1. 아동포르노 소지 혐의로 기소
4. 작화5. 특징6. 기타
6.1. 점프 작가 사진 종료 루머
7. 작품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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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和月伸宏

1970년 5월 26일생. 도쿄도에서 태어나, 니가타현에서 자랐다. 참고로 와츠키 노부히로는 필명이며 본명은 니시와키 노부히로다. 부인은 소설가 쿠로사키 카오루.[2]

주로 소년점프에 연재를 했다. 《 무장연금》 때부터 사용하고 있는 오너캐 돼지.

2. 경력

오바타 타케시 문하생 출신. 17세에 단편 '티쳐 폰'으로 데즈카상 가작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이후 오바타 타케시, 타카하시 요이치[3], 우메자와 하루토 등 여러 작가의 문하를 거쳤으며 7년간의 문하 생활 후 24세에 첫 연재작이자 대표작인 바람의 검심 -메이지 검객 낭만기-을 내놓았고, 소위 점프 암흑기를 지탱하는 작가가 되었다.[4]

《바람의 검심》연재 종료 이후, 《 건 블레이즈 웨스트》를 발표했지만 부진 끝에 6개월 만에 연재 종료를 맞고, 무장연금도 조기 종료를 당하여 조기 종료를 맞으며 커리어에 타격을 입었으나 다행히 《엠바밍》 이후로는 그럭저럭 안정세에 접어들었었다.

잠시, 공백기를 거치고 내놓은 무장연금》으로 인해 변태 각성하고 말았다. 《무장연금》은 비록 여러가지 상황상 장기연재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그럭저럭 소소한 인기를 얻었던 작품으로 연재 종료 후 애니메이션화가 되거나 게임화가 되는 등 중간 정도의 성공은 거두었다.

한때, 점프계열월간잡지 점프스퀘어에서 《 엠바밍 -THE ANOTHER TALE OF FRANKENSTEIN-》을 그리고 있다. 창간호의 표지를 장식하는 등 SQ의 기대작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또한 2012년에는 《엠바밍》을 잠시 휴재하고, 바람의 검심 실사영화 개봉을 기념한 단기집중 연재로 바람의 검심 키네마 편을 발표. 2013년에는 《엠바밍》의 연재 재개에 들어가기도 했었다.

2.1. 인맥

과거 와츠키 노부히로 밑에서 어시스턴트를 거쳐간 후배 만화가들 중 인기 작가가 여럿 배출된 것으로 유명하다.

원피스》의 오다 에이이치로, 《 샤먼킹》의 타케이 히로유키, 《 미스터 풀스윙》의 스즈키 신야 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일명 와츠키 라인으로 불리며 소년 점프 연재 뒤의 작가 후기에서 서로 대화를 하기도 한다.

다만 본인은 흔히 말하는 '스승'과 '제자'라는 형식 대신, 단순히 스타트하는 시점이 달랐을 뿐 모두 다 같은 업계의 '동료'라는 마인드를 갖고 이들을 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본인의 어시스턴트 출신인 타케이 히로유키에게 타케이 선생이라고 지칭하기도 했다.[5] 물론 오바타 타케시 등 자신이 신세를 진 선배들에 대해서는 깍듯이 '스승'으로 받들고 있다.

여러 작가의 문하를 두루 거쳤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오바타에 대한 존경이 각별하여 자신에게 영향을 준 작품에는 항상 "오바타 타케시 스승님의 작품 전부"라고 꼽을 정도. 고등학교 시절 구입한 점프에서 오바타가 신인상을 수상한 것을 보고 "정말 잘 그린다, 꼭 저 사람 밑에서 만화를 배우고 싶다"고 여긴 것이 인연의 시작으로, 편집자와의 미팅에서 오바타의 어시스턴트를 강력히 희망했다고. 참고로 1969년생인 오바타와 겨우 1살 차이이며, 데뷔는 2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더군다나 히트작은 와츠키가 훨씬 먼저 내놓았다. 오바타가 1998년작 《 히카루의 바둑》으로 첫 히트작을 내놓은 데 비해 와츠키는 첫 데뷔작이자 메가히트작인 《 바람의 검심 -메이지 검객 낭만기-》이 1994년. 이쯤 되면 동시대 작가이자 형동생 하는 동기에 가깝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오바타를 깍듯이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고 한다.

2.2. 취미

SNK 격투게임의 팬. 특히 사무라이 스피리츠 시리즈의 팬이며, 사무라이 스피리츠 제로에서 신 캐릭터들의 디자인을 맡기도 했으며 《바람의 검심》에서도 작중에 사무라이 스피리츠 시리즈의 오마주가 간간이 등장한다(예: 시시오 마코토의 홍련완[6]). 그래서 SNK에서도 굉장히 찬사해서 십본도를 모티브로 해서 NESTS를 만들었고 월화의 검사 시리즈는 역으로 바람의 검심의 오마주성이 여기저기에서 보이는 편. 또한 자타가 인정하는 미국 만화 덕후로 마블 코믹스 작품들을 좋아해서 그쪽 캐릭터들과 비슷한 캐릭터들이 많다. 이때가 아메리칸 코믹스의 정식 출간은 커녕 정보도 구하기 힘들었던 1990년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쪽의 선구자 격. 다만 레퍼런스 참고가 지나쳐서 북두의 권이 모방한 매드맥스마냥 몇몇 캐릭터는 마블에서 고소를 해야 될 수준의 캐릭터도 있었다.

본인이 좋아하는 작품으로는 이시카와 켄의 《 겟타로보》 등을 꼽고 있다. 피규어 수집 또한 취미로 장식장이 어마어마하다고.

애향심이 강한지 《바람의 검심》 등장인물 중 몇몇의 이름은 니가타현에 있는 도시들 이름에서 따왔다(ex. 묘진 야히코, 산죠 츠바메 등).

3. 논란

3.1. 아동포르노 소지 혐의로 기소

2017년 11월 21일, 대량의 아동 포르노 DVD를 소지한 것이 발각되어 단순 소지 혐의로 서류송치되었다.

다른 아동 포르노 사건을 수색하던 중, 우연히 와츠키의 아동 포르노 DVD 구입 흔적을 발견해 경찰이 수색한 결과, 100장 이상의 10대 초반 소녀의 DVD를 발견해 입건되었다. 결국 본인이 혐의를 인정했고, "초등학생에서 중2 정도까지의 여자아이를 좋아했다."고 진술하였다고 한다.

이 사건의 여파로 바람의 검심 실사영화 4편의 제작은 요원해졌으며, 2017년 10월부터 연재를 시작한 바람의 검심 홋카이도편도 3화만에 휴재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사태가 심각하긴 한데 슈에이샤가 연중 말고는 별다른 조치를 공언하지 않고 있어서[7] 사태의 추이에 따라서는 생각 외로 빨리 복귀할 수도 있다고 한다. 기사에도 나와 있듯이 슈에이샤는 사고를 친 작가나 편집자에 대해서 타사보다 많이 관용적이라고 한다. 그리고 사실 관용적이지 않더라도 누계부수 7천만 부가 넘고 자사 역대 10위권 안에 드는 아직도 수익이 어지간한 현역 작품 이상으로 나오는 초메가히트작을 포기하기엔 현실적으로 힘들기도 하고. 결론은 단순 소지만 했을 뿐이지 성범죄를 저지른 건 아니라서 이렇게 끝났다고 한다.

2018년 2월 28일 도쿄간이재판소는 와츠키에게 벌금 20만 엔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이후 별탈없이 2018년 4월부터, 몇 달 동안의 자숙 이후에 바로 연재를 재개한 데다 처벌도 벌금형에 그쳤다. 초범인 점을 어느 정도는 감안해야 겠지만, 100장이라는 상당한 분량이었기에 한국이나 서양이었다면 충분히 징역형까지도 나올 수 있었다.

사건 이후로 바람의 검심 캐릭터 상품이나 게임 등은 예정 그대로 전부 발매되었고 연재도 재개되었으며 심지어 실사 영화판도 인벌편, 추억편 베이스로 2021년 4월, 6월 개봉 하였다. 이런 일이 있었나 급으로 아무 일도 없었단 듯이 작품 전개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선 "저런 작가가 왜 사회에서 퇴출 안 되고 아직까지 일하고 있느냐"며 반발하는 경우도 있다.[8]

이후 신문에 해당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의 직업을 정리[9]한 기사가 신문에 났는데, 그냥 만화가라고만 적어도 모두가 알아봤을 것을 구체적으로 인기 만화 「바람의 검심」 작가라고 만화 제목까지 구체적으로 적어서 확인사살을 해버렸다. # 그런데 혼자서만 특정되어 버렸다 보니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이목의 집중을 돌리려 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알음알음 퍼졌다.

4. 작화

처음에는 작화가 특출나게 뛰어난 작가가 아니었지만, 《바람의 검심》 교토편 즈음에는 경력이 쌓였는지 상당히 준수한 수준에 올랐다. 그러나 인벌편 때의 작화는 일부 팬들에게 교토편 때만 못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 이는 작가가 단행본의 FREE TALK에서도 언급했듯이 계속해서 작화를 바꾸어나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후반부로 들어가면서 선도 적게 쓰이고, 중반보다 훨씬 둥글둥글한 느낌을 주는데 이게 작품의 성격과 미스매치되는 면이 있어서... 교토편의 날카로운 작화를 선호하는 일부 팬들에게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 오히려 미형 캐릭터의 표현은 초기로 갈수록 더욱 정교한 편이다.[10]

《엠바밍》 연재 때는 그럭저럭 준수하고 매력적인 작화를 선보였다. 다만 색칠 방식은 많이 바뀌었다. 《엠바밍》에서 언급된 바를 따르면 미국 만화적인 채색을 연구해서 실행했다고 한다.

그 외에 스크린톤을 많이 안쓰는 편이었던 작가이기도 했다.이 성향은 건 블레이즈 웨스트에서 극단적으로 두드러져서 거의 이와하라 유지 수준으로[11] 스크린톤을 쓰지 않다가 무장연금을 거쳐 엠바밍에 와서는 그 시절에 비하면 사용빈도가 대폭 늘어난 편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예전에 비해서 많이 늘었다 수준이지 여전히 펜선이 메인이고 톤은 보조라는 느낌이 강한 방식의 스크린톤 사용법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작화는 바람의 검심 연재 때와 엄청난 갭을 보여주는데 어찌보면 지금 현재가 본인의 개성을 잘 살렸다고 볼 수 있지만 너무나도 날카로운 펜 라인과 액션씬 작화들은 대부분 진공효과 표시를 과도하게 쓰기 때문에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편이다. 객관적으로 준수한 편이긴 하지만 시대에 흐름에 맞게 세련된 작화라고 보기는 어렵고 본인의 개성이 많이 담긴 그림체라고 할 수 있다.

5. 특징

대표작인 바람의 검심 교토편에서 일본이 폭주한다고 말하며 약육강식의 세계를 부정하는 등, 좌익성향을 갖고 있는 것이 드러난다. 비단 와츠키 본인 뿐만 아니라 샤먼킹 타케이 히로유키도 작중에서[12] 2차대전기에 죽은 소녀 지박령의 입을 통해 생각없이 유행을 따라가다 전쟁을 일으켰다 말하고, 원피스 작가 오다 에이치로도 그렇고 와츠키 사단 전반이 종종 논란이 되는 일본 크리에이터들의 역사 인식 관련으론 확실히 반성적이고 자국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는 편이다.

작품(특히 캐릭터) 구상 단계에서 훌륭하다 못해 좀 지나쳐보일 정도로 정치적 올바름, 특히 소년만화가 독자인 소년들에게 끼칠 영향에 대해 고민하는 면모가 있다. 바람의 검심에서는 악역 캐릭터에게 '기형의 외모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차별과 박해를 받아왔기 때문에 비뚤어졌다'는 설정을 붙이면서 '악역에게 이런 설정을 붙였다가 소년들에게 외모 등의 이유로 편견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갖게 하지 않을지 걱정했다'고 하거나, 무장연금에서 선조의 잘못으로 유배간 일족의 이야기를 하면서 '소년들에게 연좌제가 옳다는 잘못된 인식을 주지 않을까 걱정했다'라는 식이다.애들을 좋아하긴 했나보다 여러 의미로

6. 기타

6.1. 점프 작가 사진 종료 루머

1980~1990년대 소년 점프에선 매년 신년호마다 연재 작가들의 사진을 모아서 표지를 장식하는 전통이 있었는데, 이것이 점프 암흑기를 기점으로 갑자기 사라진 이유가 와츠키 때문이라는 루머가 있다. 왜냐하면 너무 못생겨서 독자들의 환상을 깨기 때문에(…). 실제로 그렇게까지 못생기진 않았지만, 연재하는 작품에 비해서 어울리지 않는 외모인 것은 사실. 그러나 한때 작가의 자기 비하 드립이 좀 강했던 것과 부합되어서 곧이곧대로 믿은 당시의 청소년들에게 나름대로 신빙성 있게 퍼지기도 했다.

제멋대로 카이조》나 은혼(애니메이션) 126화 등에서 이 루머가 개그로 언급되기도 한다.

어쨌든 젊을 때는 외모에 콤플렉스가 있을 정도로 못 생긴 얼굴이었으나 이후 살이 빠지고 본인의 꾸준한 관리를 통해 어지간한 중년 연예인 뺨치는 미중년이 되었다. 아내가 평소에 우리 남편이 너무 잘생겼다고 자랑 트윗을 올릴 정도.

7. 작품 목록



[1] 소설가 [2] 직업 특성상 남편 작품의 시나리오에도 협력을 하고 있으며 《 건 블레이즈 웨스트》 이후부터는 단행본에 '스토리 협력' 명목으로 이름이 실리기 시작했다. 또한 쿠로사키 카오루 본인 명의로 《무장연금》의 소설판을 집필하기도 했다. 여담으로 무장연금 라디오에서 진행한 코너에서 유즈키 료카에게 "무장연금 1화 방영 당시 원작자인 와츠키 씨와 쿠로사키 씨는 무엇을 하며 애니메이션을 시청하고 있었을까요?"라는 퀴즈에 아이 만들기! 드립을 당한 적이 있다(...). [3] 캡틴 츠바사의 작가이다. [4] 다만, 《바람의 검심》은 후반부인 인벌편 에피소드 때 작화와 스토리 면에서 일부 팬들에게 비판을 받기도 했다. 교토편에서 절정에 달했던 와츠키 특유의 날카로운 그림체 오다 에이이치로풍의 동글동글한 그림체로 바뀌었고 교토편 때의 시시오 마코토, 세타 소지로 같은 매력적인 적 캐릭터들이 사라지고 이누이 반진, 오토와 효코 같은 3류 악당들이 등장하면서 스토리의 질이 급격히 떨어졌다는 이유에서였다. 실제로 바람의 검심 캐릭터 인기 투표에서 랭크된 인벌편 캐릭터는 인벌편의 최종 보스 유키시로 에니시(13위) 한 명 뿐이다. # 다만 그렇다고 해서 인벌편이 일본 현지에서 인기가 없었던 건 절대 아니며, 인기 하락 때문에 바람의 검심 연재가 종료된 것도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인벌편 참고. [5] 무장연금 9권 후기에서. [6] 해당 캐릭터 문서에서도 언급되지만 카자마 카즈키를 오마주한 필살기이다. [7] 사건 전에 발주가 들어가서 어쩔 수가 없었겠지만 타사의 소셜 게임에 콜라보 이벤트로 나오는 바람의 검심 캐릭터들이 사건이 터진 뒤에도 그대로 나왔고 점프 행사에서도 일러스트에 켄신이 꼬박꼬박 들어가고 있다. 또한 단행본 판매 중단, 회수 같은 조치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8] 실사판에서 시노모리 아오시 역인 이세야 유스케는 대마초 소지 혐의로 영구제명되었기 때문에 영화 트레일러에도 못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경우는 방송미디어라서 그렇다. 일본의 경우 매체영향이 큰 방송미디어가 더 엄격하게 관리된다. 예를 들면 야쿠자 돈을 받아 야쿠자 만화를 만드는 만화 작가들은 아무렇지 않게 활동하지만, 방송 관계자는 야쿠자랑 술자리하다 걸린 것만으로도 유명 연예인이 모든 방송에서 하차하고 이후 스케줄이 다 끊길 정도로 온도차이가 크다. 한국에선 정반대로 TV 연예인이나 영화 배우가 마약이나 음주운전 등 사고를 쳐도 퇴출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웹툰 작가 쪽에선 사고를 쳐서 퇴출된 사람이 종종 있다. [9] 이 사람들의 직업이 무려 도쿄지검 공안검사, 황궁경찰, 경찰, 대기업 사원, 지방의원, 의사, 자위관 등이다.... [10] 초반의 타카니 메구미나 시노모리 아오시를 인벌 편과 비교해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11] 과장이 아닌게 심심하면 아예 스크린톤을 안쓴 페이지가 나왔고 쓴 페이지가 나와봐야 한두곳 정도에만, 그것도 뭐 긁어내거나 겹쳐쓰는 식의 톤 사용 테크닉을 보여준게 아니라 명암용으로 한장 떡 붙인 정도 수준이였다. [12] 프리퀄인 샤먼킹 제로 1화 [13] 예를 들면 '이완보 3호의 디자인은 헐크의 영향을 받았다'라는 언급. 당시 이에 대해 '이게 무슨 헐크냐 에바 양산형인 거 다 아는데 살살 거짓말이나 하고'...라는 식의 비난 여론이 형성된 적이 있었는데, 실은 헐크의 배리에이션 중 하나인 '헐크 2099'였던 것. 그냥 애초에 아무 말도 안 했으면 안 먹어도 되었을 욕까지 먹었으니... 그저 애도를 표할 따름. [14] 미국 만화 슈퍼히어로물에서 이런 식의 '설명', '해설'이 달린 경우가 꽤 많은데, 여기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기도 하다. [15] 초반에는 11살 차이로 보였지만 켄신의 과거가 밝혀짐에 따라 켄신의 28세라는 나이가 생일이 안 지난 만 나이고 카오루를 비롯한 대부분의 등장인물은 동아시아식 나이로 계산되었다는 게 드러나면서 13세 차이가 되었다. 그나마 카오루는 켄신과 신장 및 외관상 나이가 비슷해서 장신인 아오시와 단신에 중학생 나이인 미사오보다 덜 어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