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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명인 '아수르'가 수도였던 국가에 대한 내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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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
1985년 하트라 الحضر |
2003년 아수르(칼라트 샤르카트) آشور (قلعة الشرقاط) |
2007년 사마라 고고 유적 도시 مدينة سامراء الأثرية |
2014년 에르빌 성 قلعة أربيل |
2019년 바빌론 باب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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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유산 |
2016년 이라크 남부의 아흐와르 : 생물다양성 보호지역과 메소포타미아 도시 유적 경관 الأهوار جنوب العراق: تعد هذه المسطحات المائية مثالاً على التنوّع البيولوجي والمناظر الخلّابة لمدن بلاد الرافدي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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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colbgcolor=#FFF,#1F2023> 우루크 시대 · 젬데트 나스르 시대 · 초기 왕조 시대 · 아카드 · 구티 왕조 · 우르 제3왕조 · 이신-라르사 시대 · 고바빌로니아 · 카시트 왕조 · 미탄니 · 아시리아 · 신바빌로니아 |
민족 | 수메르인 · 아카드인 · 아시리아인 · 아모리인 · 카시트인 · 칼데아인 | |
지리 | 메소포타미아 · 비옥한 초승달 · 티그리스강 · 유프라테스강 · 자그로스 산맥 | |
도시 | 니네베 · 니푸르 · 님루드 · 라가시 · 라르사 · 마리 · 바빌론 · 아수르 · 우루크 · 우르 · 움마 · 이신 · 키쉬 | |
종교 | 메소포타미아 신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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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 수메르어 · 아카드어 · 아람어 | |
문자 | 쐐기 문자 · 아람 문자 | |
건축 | 지구라트 · 우르의 지구라트 · 에테멘앙키 · 바빌론의 공중정원 · 이슈타르의 문 · 행진의 거리 · 라마수 | |
인물 | 길가메시 · 사르곤 · 나람신 · 우르남무 · 슐기 · 함무라비 · 티글라트-필레세르 3세 · 아슈르바니팔 · 네부카드네자르 2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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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 |||
이름 | 한국어 | 아수르(칼라트 샤르카트)†[1] | |
영어 | Ashur(Qal'at Sherqat) | ||
아랍어 | (آشور (قلعة الشرقاط | ||
프랑스어 | Assour(Qal'at Cherqat) | ||
국가·위치 | 이라크 살라딘 주 | ||
등재유형 | 문화유산 | ||
등재연도 | 2003년 | ||
등재기준 | (iii)[2], (iv)[3] | ||
지정번호 | 1130 |
아카드어: Aš-šur[4]
수메르어: 𒀭𒊹𒆠
영어: Assur, Ashur
아랍어: آشور
히브리어: אַשּׁוּ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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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시리아의 첫번째 수도이자 가장 오랫동안 아시리아의 수도였던 도시이다. 수도였던 기간을 총합하면 1500년이 넘는다. 아시리아라는 이름도 아수르의 땅이란 의미이다. 티그리스강의 서쪽에 위치하며 아시리아의 수도였던 또 다른 도시인 님루드와는 65km, 니네베와는 100km 떨어져 있다.아수르, 아슈르, 앗슈르, 앗수르 등 표기가 다양한데 표기가 일관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은 편인 메소포타미아권의 지명 중에서도 유독 일관적이지가 않은 편이다.
2. 역사
아수르는 기원전 2500년경에 형성된 오래된 도시이며 기원전 24세기 아카드 시대에도 이미 도시국가라고 할 수준의 규모를 갖추고 있었지만 초창기의 정치, 사회, 역사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기원전 2000년 이전에는 아카드 제국, 우르 제3왕조의 속국이었던 것으로 보인다.아수르는 티그리스강을 건너는 요지에 위치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교역으로 번성할 수 있었다. 특히나 메소포타미아 북부는 남부만큼 비옥하지도 않고 비도 잘 내리지 않는지라, 아수르인들은 일찌감치 국제무역에 눈을 떴다. 그들은 '카룸'이라는 상업구역을 외국에 여러 곳 설치해 부를 축적했으며, 관세, 채무, 결제, 중계, 위탁, 대부 등 상업과 관련된 용어와 관행도 발달했고 교역을 지키기 위한 정치적 협상의 중요성도 깨달았다.
아수르는 중계무역의 중심지로서 멀리 동쪽의 엘람 등에서 주석을 들여오고, 남쪽 바빌론에서는 직물을 수입해 아나톨리아 반도에 수출했다. 이들은 아나톨리아의 카네쉬에도 카룸을 설치해, 그곳에서 주석과 직물을 은과 금으로 바꾸어 돌아왔다. 이러한 무역은 상당히 위험했지만, 막대한 수익을 남길 수 있었기에 활발하게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렇게 아수르 상인들은 아나톨리아에 상업식민지를 운영했고, 이를 통해 아나톨리아 반도에 문자 시대가 시작되었다.
고아시리아 시대에도 아수르는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은 거의 없는 도시였으나 상업이 발달하여 자그로스 산맥부터 아나톨리아 중부 지역까지 이어지는 대규모 무역로의 중심지 역할을 하며 경제적으로는 중요한 위상을 지녔다.
기원전 18세기~기원전 13세기 동안은 몇 번 수도를 옮겼다가 다시 아수르로 환도했는데 기원전 879년 신아시리아 시기 아슈르나시르팔 2세가 수도를 아수르에서 칼후로 완전히 옮기면서 수도의 지위는 잃었지만 아수르는 여전히 제국의 종교 중심지로 남아 있었고 아시리아의 주신 아슈르의 사원으로 인해 계속 번영했다.
그러나 기원전 614년 메디아와의 전투에서 함락되면서 몰락했다. 함락되면서 아수르는 약탈당하고 파괴되었다. 몇년 뒤 당시 수도였던 니네베마저 신바빌로니아, 메디아 등의 연합군에 의해 함락되면서 아시리아는 멸망했다.
이후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때 도시가 재건되어 회복되면서 계속 존속하고 있었고 파르티아 제국 시대에는 아시리스탄 지역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14세기 티무르에 의해 주민들이 학살되면서 완전히 멸망하게 되었다.
아수르 유적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 되어있으며, 당시 고대 고고학 유적지를 물에 잠기게 할 대규모 댐 건설 계획으로 인해 유적이 위협을 받았다. 댐 건설 계획은 2003년 이라크 전쟁 직후 보류되어 거의 취소에 가까운 상태지만 현재는 ISIL의 활동으로 위협을 받고 있다. 2017년 이후에는 IS의 쇠퇴로 위험이 그나마 줄어 장소를 특별히 통제하지는 않지만 아직 충분히 안전하지는 않다고 평가받는다.
3. 발굴
아수르는 1898년에 독일의 고고학자들에 의해 탐사되었다가 발굴은 1900년 프리드리히 델리츠시에 의해 시작되어 1903~1913년까지 계속되었다. 16,000개 이상의 쐐기 문자 점토판이 발견되었고 그중의 다수가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에 옮겨져 전시되어 있다.[5]4. 여담
아수르는 아시리아 주신의 이름이기도 하다. 아슈르(신) 문서 참조.아시리아의 발상지인 만큼 현대 아시리아인들에게 중요한 곳으로 여겨지며 아시리아 관련 행사를 이곳에서 개최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