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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왕국 웨식스 왕조 제6대 국왕
순교왕 에드워드 Edward the Marty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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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bgcolor=#cf091f><colcolor=black> 왕호 |
에드워드 (Edwar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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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962년 | |||
잉글랜드 왕국 | ||||
사망 | 978년 3월 18일 (향년 16세) | |||
잉글랜드 왕국 도싯 | ||||
재위기간 | 잉글랜드의 왕 | |||
975년 7월 8일 ~ 978년 3월 18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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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f091f><colcolor=#fff> 이름 | 고대 영어 | Ēadƿēard se Martyr (순교왕 에아드웨아르드) | |
영어 | Edward the Martyr (순교왕 에드워드) | |||
라틴어 | Eduardus Martyr (순교왕 에두아르두스) | |||
별칭 | 순교왕 에드워드 | |||
아버지 | 에드거 1세 | |||
어머니 | 애셀플레드 | |||
종교 | 기독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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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왕국 웨식스 왕조의 제6대 국왕이다.2. 상세
그가 왕위에 오르는데도 난관이 있었다. 에드워드의 아버지인 에드거 1세 왕이 죽었을 때, 왕위 계승에 대한 다툼이 있었다. 에드워드가 비록 맏아들이었으나 평소 아버지가 그를 후계자로 인정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정통성에 의문이 생긴 것이다. 일부 귀족들은 그의 이복동생인 애설레드 2세를 후계자로 밀었다. 게다가 당시의 세 번째 아내이자 정실부인이었던 앨프스리스가 애설레드 2세의 친모였고, 그녀는 당연히 애설레드 2세를 왕으로 밀었다. 하여간 에드워드는 대주교들 및 그들의 추종자들의 힘을 빌어 975년,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이때 그의 나이 약 12세.권력 기반이 약했고, 게다가 나이까지 어렸던 에드워드는 제대로 통치를 할 수 없었다. 그의 편에 섰던 귀족들은 선왕인 에드거 1세가 베네딕토회에 하사했던 토지도 도로 빼앗는 등, 왕의 이름을 빌어 권력을 휘둘렀다.
결국 978년 3월 18일, 계모 앨프스리스를 방문하던 중 암살되었다. 향년 15세 혹은 16세로, 재위기간이 3년이 채 되지 않은 불행한 왕이었다. 그의 암살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이복동생 애설레드 2세가 암살에 관여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의 일생을 다룬 《성인전》에서는 그의 계모이자 애설레드 2세의 어머니인 대비 앨프스리스에게 희생당한 것으로 그려진다.
그의 시신은 매장된 이후 재매장되었는데, 재매장을 위해 시신을 파냈을 때 시신이 썩지 않고 있었던 기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의 재매장은 대중의 큰 관심 속에 이루어졌으며, 성인으로 공경받게 되었다. 현재도 동방정교회, 가톨릭, 성공회에서 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