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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2 20:29:50

수잔 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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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우주 비행사가 되기 전까지3. 우주 비행사로서4. 기타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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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셰퍼드의 미국 최초 탄도 우주비행 50주년 기념식에서의 사진. 이런 머리는 우주에서는 적당히 묶고 지냈다. 안 묶으면 안그래도 뽀글거리던게 완전 폭탄머리 형상이 되어 관리에 애로사항이 꽃핀다.

Susan Jane Helms 미합중국 공군의 전직 군인이자 전직 NASA 우주 비행사이다. 역대 미군의 여성 장성 중 대중에게 각인된 스타성으로 따지면 손꼽히는 인물.

2. 우주 비행사가 되기 전까지

1958년 2월 26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에서 태어나[1] 1980년 미국공군사관학교를 졸업[2]하고 소위로 임관하였다. 공군의 로망인 조종 특기를 받지는 못하고 F-16 F-15 무기 시스템 담당 엔지니어로 커리어를 시작하였지만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공사 항공공학 조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이후 테스트 파일럿 훈련을 수료하고 항공기 탑승 엔지니어로서 캐나다군과의 교환 프로그램으로 F/A-18의 캐나다 버전인 CF-18을 섭렵했다.

3. 우주 비행사로서

캐나다에서 복무하던 중 우주 비행사 프로그램에 지원하여 합격하고 미션 스페셜리스트로서 1990년 NASA 우주인단 13기를 수료했다. 1993년 1월 우주왕복선 엔데버의 STS-54 미션에서 미국 최초로 우주 비행을 한 현역 여군이 되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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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월 발사된 STS-54 엔데버 미션의 승무원 사진. 좌측부터 마리오 런코, 존 캐스퍼(사령관), 도널드 맥모나글(조종사), 헴스, 그레고리 하보우. 통신위성 TDRS-F의 궤도 전개 임무를 수행한 미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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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6월 발사된 STS-64 디스커버리 미션의 승무원 사진. 앞줄은 블레인 해먼드(조종사), 리처드 리처즈(사령관), 헴스. 뒷줄은 마크 리, 제리 리넨저, 칼 메이드. 리와 메이드는 EVA를 했는데, 이게 그냥 EVA가 아니고 1984년 STS-51-A 이래 10년만의 MMU 착용 무선 EVA였다. 문제는 이게 하도 비싸고 가성비 조루인데다 위험성도 높아서 아쉽게도 마지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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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6월 발사된 STS-78 컬럼비아 미션의 승무원 사진. 앞줄은 톰 헨드릭스(사령관)와 케빈 크리글(조종사), 장-자크 파비에[4], 리처드 라이너헌[5], 헴스, 찰스 브래디[6], 밥 터스크[7] 이 미션은 우주의학, 생리학 미션이었고, 이 때의 연구들은 훗날 ISS 엑스퍼디션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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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5월 발사된 STS-101 아틀란티스 미션의 승무원 사진. 앞줄은 스콧 호로위츠(조종사)와 제임스 홀즐(사령관), 뒷줄은 메리 엘렌 웨버, 제프리 윌리엄스, 유리 우사초프[8] 제임스 보스, 헴스. ISS 건설 미션이자, 우주왕복선이 처음으로 글래스콕핏을 달고 뛰었던 미션이다.


미션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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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STS-102가 이런 기괴한 포트레이트를 갖게 되었냐면, 이 때의 디스커버리는 우주비행사 택시 비슷한 개념이어서다. 헴스의 마지막 비행인 Expedition 2(STS-102 디스커버리로 출발, STS-105 디스커버리로 귀환)는 ISS의 두번째 장기 거주 프로그램이었다. STS-102 디스커버리는 STS-101에서 함께했던 우사초프, 보스, 헴스를 ISS에 내려주고 용무를 본 뒤 엑스퍼디션 1 팀의 윌리엄 맥마이클 셰퍼드, 세르게이 크리칼료프, 유리 기젠코를 데리고 돌아왔다. 그럼 1팀이 타고 왔던 소유즈는 ISS에 그냥 그대로 도킹된 채 비상탈출 구명정이 되었다. 이 때 박아놓은 그 소유즈를 십수년씩 주구장창 쓴다는 건 절대 아니고, 소유즈로 ISS에 왔다가 단기 체류만 하고 가는 사람들이 자기가 타고 온 소유즈 대신 예전에 주차해놓은 소유즈로 바꿔타고 집에 가는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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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의 둘은 NASA 우주비행사 제임스 보스, 러시아 연방우주청 출신으로 NASA에서 함께 활동한 유리 우사초프.[9] 헴스는 STS-102 미션에서 보스와 함께 진행한 STS-102 첫번째 EVA를 한번에 8시간 56분 동안 이어나가며 역대 단일 EVA 최장시간 기록[10]을 작성했는데 아직까지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이후 ISS Expedition 프로그램 최초로 여성으로서 장기체류 일정을 수행하였다. 이 기간에 우주 관광객 데니스 티토가 ISS를 방문하기도 했다. 엑스퍼디션 2는 2001년 3월 10일부터 8월 20일까지 163일간의 ISS 체류를 끝으로 STS-105 디스커버리에 탑승하여 지구로 돌아왔고, 헴스는 통산 210일 23시간 6분의 체류기록을 끝으로 NASA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STS-51-L로 손실된 챌린저를 제외한 모든 셔틀에 탑승하는 기록을 남겼다.[11]

이후 헴스는 미국공군우주사령부로 전속되었다가 2003년 STS-107 컬럼비아 참사 이후 비행 재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2006년에는 여성 우주비행사로는 최초[12]로 준장에 오름과 동시에 전략미사일/로켓/우주군 부대인 우주사령부의 제14공군 예하 제45우주비행단[13]장에 올랐다. 2009년 소장으로 진급했고, 2011년에는 우주 비행사 출신으로서 역대 4번째로 중장에 진급[14]하여 제14공군 사령관에 올랐다. 본업인 군보다는 우주비행사 활동이 더 많다는 약점이 있긴 했지만, 우주비행사로서 온갖 엘리트 코스를 밟아서 우주개발의 역사에 이름을 남겼고 대중적인 이미지도 말 그대로 스타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헴스를 슬금슬금 대장 보직인 우주사령관 자리에도 오를 수 있다고 봤고, 2013년 중반에 버락 후세인 오바마 대통령이 헴스를 우주사령부 부사령관으로 내정하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는가 했다.

하지만 14공군 사령관 시절 반덴버그 공군기지에서 일어난 성폭력 스캔들의 처리에 있어 가해자로 지목되었지만 함께 있었던 인물들의 증언이 군 검찰 측과 엇갈리는등 석연찮은 점이 있었던 에레라 대위를 감옥에 보내는 대신 직권으로 징계를 때려서 불명예 제대 조치로 마무리한 점이 민주당 소속 미주리주 연방상원의원 클레어 맥카스킬에게 지적받으며 이미지를 심하게 구겼다. 헴스 측에서는 사건에 대해 검찰의 수사결과를 보면서 '합리적인 의심'을 지우지 못하여 자체 징계로 사안을 종료했다고 해명했지만 법무장교도 아닌 사람이 그런 사안에 대한 적절한 개입을 할줄 알기나 하냐는 지적에 적절히 해명하지 못하면서, 무엇보다 여자란 사람이 성폭행범을 옹호하냐는 비난이 빗발쳤다.

여론의 등쌀로 오바마 대통령은 결국 지명을 철회했고, 헴스는 새 보직을 받지 못하며 2014년 1월을 끝으로 퇴역했다. 그런 헴스에게 비난 일색까지는 아니어도 동정론은 소수에 불과했고, 결국 한 번의 실수로 그동안의 성취를 모두 망치는 사례가 되었다. 함께 일하면서 자신과 자리를 맞바꿀 예정이었던 존 하이튼 장군이 2014년 7월부로 그대로 우주사령관에 올랐다. 심지어 존 하이튼 장군은 우주사령관을 거쳐 전략사령관, 합참차장까지 올랐다.


2011년 5월 7일 캐롤 밥코(Karol "Bo" Bobko)와 함께 미국 우주비행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밥코는 1959년 미국공군사관학교 1기 졸업자로 STS-6, STS-51-D, STS-51-J에 참여했던 MOL 출신 우주비행사로, 미 공사의 첫 남녀 졸업기수 출신 우주비행사가 함께 헌액되는 기록을 남겼다. 밥코와 헴스의 헌액식에 참석한 명예의 전당 우주비행사들은 머큐리 계획의 멤버이자 최초의 Astronaut 겸 Aquatnaut인 스콧 카펜터[15], 아폴로 12호의 사령선 조종사였던 딕 고든, 아폴로 7호의 달 착륙선 조종사로 활동한 뒤 Skylab 개발에 크게 공헌했던 월트 커닝햄, 아폴로 13호의 달 착륙선 조종사이자 셔틀 시험기 엔터프라이즈의 ALT[16] 사령관이었던 프레드 헤이즈, 아폴로 14호의 달 착륙선 조종사인 에드 미첼, 아폴로 15호의 사령선 조종사 알 워든, 아폴로 16호의 달 착륙선 조종사였던 찰스 듀크, Skylab 3호 미션 승무원과 STS-3 사령관으로 활약했던 잭 라우즈마, Skylab 3호와 STS-9에서 활약했던 오웬 개리엇[17], STS-1의 조종사였던 로버트 크리펀, 디스커버리의 첫 미션인 STS-41-D 사령관이었던 헨리 하츠필드[18], 셔틀 최초의 EVA를 수행했던 STS-5의 미션 스페셜리스트 조 앨런, STS-7의 파일럿이자 STS-51-A, 그리고 챌린저 참사 이후의 첫 미션인 STS-26의 사령관이었던 프레더릭 호크, 허블 우주 망원경 전개 미션인 STS-31의 사령관이었던 로렌 슈라이버, 허블의 1차 서비스 미션 STS-61의 EVA를 수행하며 당시 기준 단일 EVA 최장시간 기록[19]을 세웠던 제프 호프먼, 허블 전개 미션의 조종사였던 NASA 국장 찰스 볼든, STS-88 사령관으로 ISS에 진입한 최초의 우주비행사[20] 로버트 카바나.[21]

4. 기타


우주비행사 시절 휴스턴의 우주비행사 로큰롤 밴드 Max Q에서 리드보컬 겸 키보디스트로 활동한 바 있다. 강제로 기타리스트로 끌려들어갔던 케빈 패트릭 칠튼의 공연 영상이나 음원은 남아있지 않은데 헴스의 공연은 음원이 남아있다. 실력이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익힌지라 Max Q를 이끌 정도였다. [22]
[1] 자라기는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자랐다. 아버지 팻 헴스는 공군 중령까지 지냈다. 딸부잣집이라 여동생이 셋이나 있다. [2] 미 공군 최초의 여성 대장인 재닛 울펜바거와 동기이다. 또한 헴스는 역대 공군사관학교 출신 우주비행사 중 유일한 여성이다. [3] 이전까지 선발된 미국 여군은 캐스린 설리번 딱 한명으로, 그나마도 현역 군인이 아니라 해군 예비군에만 적을 둔 해양과학자였다. [4] 프랑스 우주국( Centre national d'études spatiales, CNES) 출신 우주비행사, ISS 연구에 유럽 대표로 참여했던 페이로드 스페셜리스트로, 귀환 도중 공중분해되는 비극으로 끝난 STS-107 미션에서 백업 멤버로 예정되어 있었다. [5] 수의사 출신. [6] 의사. 해군 항공군의관과 우주비행사로 활동하면서 류머티스성 관절염을 얻어서 거동마저 불편해지며 고통받다가 2006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주비행사들의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멘탈붕괴를 막아야 하는 NASA 정신과 의료진이 리사 노왁과 함께 두고두고 안타깝게 여기는 인물이다. [7] 캐나다 출신 우주비행사. 이후 ISS 엑스퍼디션 20, 21에서 활동한다. [8] 러시아 우주비행사로, 미르 엑스퍼디션 경력의 베테랑이다. [9] 과거 미르 EO-21 미션에서 미르 유일의 미국인 여성 우주비행사 섀넌 루시드와 함께 지낸 적이 있다. [10] 최다 횟수와 누적 최장시간 기록은 16회 82시간 22분의 아나톨리 솔로뵤프가 갖고 있다. 이 기록은 2013년작 영화 그래비티에서도 코왈스키의 불만으로 언급된다. [11] 챌린저까지 포함한 5개 궤도선을 모두 탑승했던 사람은 스토리 머즈그레이브 뿐이다. 이 쪽도 NASA 역대 우주비행사 중 최다인 7개의 학위를 따는등 굉장한 업적을 남긴 능력자. [12] 남녀 비율을 논하기 이전에 NASA 우주비행사 출신 장성은 역대 총 스무 명도 안된다. [13] 45th Space Wing [14] 이전의 인물들은 토머스 스태퍼드 공군중장, 리처드 트룰리 해군중장, 케빈 패트릭 칠튼 공군대장(!)이다. 이들은 그냥 우주 비행사 A, B도 아니고 제미니 계획, 공군 우주정거장 계획, 아폴로 계획 아폴로-소유즈 테스트 프로젝트, Skylab, 우주왕복선 개발, 미르-우주왕복선 도킹, ISS 개발, 최장시간 EVA 등등 우주 도전의 역사에서 기여한 바가 매우 큰 인물들이다. 헴스를 포함해 이들은 모두 케네디 우주센터의 우주비행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15] 2013년 10월 작고. [16] Approach and Landing Test. 대형 수송기의 등짝에서 자유 활강을 시작하여 안전하게 활주로에 착륙하는 임무. [17] 리처드 개리엇의 아버지 맞다. [18] 2014년 7월 17일 작고. [19] 1차 EVA가 7시간 54분을 기록했다. [20] 정확히는 단독은 아니고, 세르게이 크리칼료프와 함께 문을 열고 자르야 모듈에 동시에 진입했다. 어지간해서는 누가 일찍 들어갔다는 그런 거 없이 양국이 함께 대업을 이뤄냈다 정도로 소개된다. [21] 現 케네디 우주센터장을 맡고 있다. [22] 앞서서 이야기하는 우주비행사는 크리스 해드필드로, 캐나다인 우주비행사로서 최초로 EVA를 수행하고 캐나다인 최초로 ISS 사령관이 되었다. 이 당시 헴스와 함께 활동했던 베이시스트였고, ISS에서도 데이빗 보위의 " Space Oddity"를 연주하여 화제를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