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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4 14:44:17

설거지론/비판 및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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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용어 퐁퐁단(퐁퐁남 · 퐁퐁이형 · 퐁퐁녀) · 퐁퐁시티

1. 개요2. 비판
2.1. 여성혐오 성차별 정당화2.2. 정의와 기준이 불분명한 어설픈 이론2.3. 편견에 기반한 검증론의 한계2.4. 공포 마케팅2.5. 흉자 담론과의 접점2.6. 논리적 오류 - 그릇된 권리에 호소하기2.7. 설거지론의 혐오 프레이밍화2.8. 혐오 표현으로 사용되는 것에 대한 비판2.9. 처녀성 여부로 시작된 태생적 한계2.10. 소결
3. 비판에 대한 반박
3.1. 설거지론은 정의와 기준이 불분명한 뇌피셜이다?3.2. 검증론과 관련 없는 주제이며, 결혼에 대한 자기주도적인 가치관의 부재이다.3.3. 논리적 오류: 허수아비 공격
3.3.1.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에 대한 반박
3.4. 공포 마케팅은 확산에 영향을 미쳤을 뿐이다3.5. 혐오 프레이밍과 일반화는 설거지론 자체에 있지 않다.3.6. 설거지론과 페미니즘의 다른 점3.7. 설거지론 비판에 대한 기초적 한계3.8. 소결

1. 개요

설거지론에 대한 비판과 그 반박을 다룬다. 설거지론의 명제가 완벽하게 굳어진 것이 아니고, 시간이 흐르며 양측의 내용과 결론이 좀 더 자신들의 논리에 유리하게 수정되는 사례도 많기에, 수정 버전에 따라 양측의 서술이 약간씩 어긋날 수 있다.

다중관점이 허용되는 문서이므로 양측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며 서술해야 한다.

2. 비판

이 곳에서는 설거지론과 그 옹호론에 대한 비판과 반론에 대한 재반박을 다룬다.

2.1. 여성혐오 성차별 정당화

설거지론을 옹호하는 자들은 연애, 성경험이 많은 여성을 많은 남성들이 사용한 짜장면 그릇에 비유하며, 반대로 성경험이 많은 남성은 지뢰 설치반이라고 하지 물건에 빗대어 '더럽다'는 식으로 비유하지 않는다. 이는 여자가 성생활을 즐기면 걸레지만 남자가 그러면 능력자라는 성차별 여성혐오를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처녀성이 쟁점이 아니라는 관점도 있으나 설거지라는 단어 자체가 더러워진 그릇을 씻는 것이기에, 성경험으로 여자만 더러워진다는 관념이 배제되어 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리고 주식갤러리는 여자는 남자의 동정성을 별로 중요시하지 않지만, 남자는 여자의 처녀성을 중요시하므로 여자가 성관계를 더욱 많이 한 것을 욕하는 사회 현상은 이중성이 아니라고 주장하는데, 이 논리대로라면 남자보다 여자가 이성의 경제력을 더 중요시하니 결혼할 때 남자의 경제력이 더 중요시되고 집을 해 오길 바라는 것도 이중성도 아니고 문제삼지 말아야 하는가? 사람에 따라 가치관이 다르나 현대사회에서는 결혼 시 집값도 반반, 맞벌이가 대중화되고 동질혼이 당연시되는 분위기에서 자신들(남성들)이 불리한 것은 역차별이라 주장하고 여성들에게 불리한 것은 성별에 따른 선호 차이일 뿐이라는 이중적인 작태이다.

게다가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혼전순결을 하나의 기호일 뿐이라고 하는 것 역시 사회, 문화적 배경을 전부 무시한 억지 주장일 뿐이다. 가령 남아선호사상이 심각한 사회에서 아들을 선호하는 것이 단순히 기호의 문제인가? 똑같이 즐겨도 남자는 능력자, 여자는 걸레라는 프레임 아래 여성만 손가락질받고 미혼 여성들은 산부인과에 가는 것조차 억압받던 심각한 부작용과 악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배우자를 ATM으로 취급하는 것은 잘못이나 이 점을 지적할 것이라면 그 부분만 언급하며 비판하면 된다. 하지만 설거지론은 배우자를 만나기 이전의 여성의 문란한 성생활을 하나의 중요한 요소로 내세우고 있기에 이러한 문제점이 있는 것이다. '처녀도 아니고 이 남자 저 남자와 관계한 주제에 남편의 등골을 빼먹는다'는 남초의 논리를 반대로 생각하면 '처녀라면 남편을 ATM 취급해도 되는 것이냐'는 의문이 생긴다.

2.2. 정의와 기준이 불분명한 어설픈 이론

설거지론의 본질은 고릿적부터 나오던 남편이 가정을 가지면서 아내와 충돌하면서 생기는 문제를 모태솔로 설거지라는 자극적인 단어로 설명한 것뿐이다. 설거지론이 무엇을 주장하는지에 대한 나름의 정의는 애정없는 결혼이지만, 누군가가 전문적인 연구 결과를 낸 것도 아니고, 그저 인터넷에 떠도는 카더라 썰 등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보니 설거지론이라는 같은 용어를 쓰면서도 받아들이는 내용은 천차만별인 상황이다.

설거지론은 여기에 남초 커뮤니티의 대표적인 공감요소인 모태솔로 수저 계급론을 접목한 것인데, 더 깊게 들어가자면 결혼에 필수적인 두 요소인 애정이라는 수치화하기 힘든 요소와 경제력이라는 수치화하기 쉬운 요소로 양분할 때 여성이 애정이라는 수치를 속일 수 있다는 것이고, 요약하자면 경제력이 없는 여성이 애정 없는 결혼을 함으로써 가정의 문제가 유발되는 내용이다.

그러나 애정 없음을 어떻게 판가름할지는 지나치게 자의적인 기준에 의존하는 데다가[1], 어떤 상황이 설거지인가에 대한 기준도 사람에 따라 확장되거나 축소되어서 비판이나 반박이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로 보이기 십상이다. 당장 밑의 반박에서 제시하는 표는, 사랑 없는 결혼에 따른 문제에 대한 설거지론이 명백한 근거를 찾기 어렵다는 비판에 남성이 결혼 시에 지는 부담이 크다는 통계를 가져와서 반박을 하고 있다. 단순히 사랑 없는 결혼의 문제에서 더 나아가 결혼 시에 가해지는 남성의 경제적 부담에 대한 비판 및 여성과 남성의 불균형한 결혼 시장 등을 비판하는 것까지 나아간 것이다.

이처럼 명확하고 체계적인 연구가 아닌 인터넷에서 이런저런 썰들을 조합하고 그 상황을 설거지론으로 뭉뚱그려 설명하는 과정을 통해 탄생한 이론이기에, 설거지론이란 단어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같은 느낌으로 쓰이고 있으며, 그에 따라 사람마다 인식하는 설거지론이 달라서 제대로 된 논의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

반론은 설거지론의 기준이 확실하다고 주장하며, 남성이 경제적 책임을 지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경제적인 측면만 고려했을 때, 남성이 경제적 책임을 지느냐의 유무는 통계로 제시할 수는 있다.[통계예시] 그러나 경제적 측면에서도 수많은 기준이 존재한다. 이는 그나마 정량화할 수 있는 경제적 측면마저도 '설거지 당함'의 기준을 잡기가 복잡하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설거지론에 따르면 과거 남성이 경제적 책임을 지는 대신 여성의 정절을 획득했지만 전자는 관습으로 남은 대신 후자만 없어졌다는 식으로 얘기하는데, 남성의 바깥일(경제적 책임)에 대응하는 건 여성의 집안일(가사, 육아 등등)이다. 경제적 책임의 대가가 정절이라면 혼전순결만으로 여성은 남성의 경제적 책임에 대한 대가를 다치른 것이니, 집안일 같은 건 할 필요가 없고 그냥 가사도우미 고용해서 놀고 먹어도 된다. 가정부의 임금 문제는 경제적 책임이니까. 남성에 대한 악습만 남고 여성에 대한 악습은 사라졌다고 주장하려면 현재 집안일은 남녀가 거의 동등하게 하는데 바깥일은 남자가 거의 다 하는 상황이어야 한다. 그러나 통계청의 가사 노동 시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전히 맞벌이 가구, 남성 외벌이 가구, 심지어 여성 외벌이 가구에서도 모두 남성 대비 여성의 가사 노동시간이 압도적으로 더 길다. 통계자료

경제적인 측면은 그렇다 치더라도 설거지론의 또 다른 핵심인 '사랑을 받느냐'의 유무는 어떻게 정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서 반론은 기준을 제시해주고 있지 못한다. 일부가 기혼자 전체를 싸잡아 조롱하는 악용 사례가 나오는 것은 결국 이론 자체의 부실함 때문이다. 이론 자체가 기준이 매우 모호하기 때문에 커뮤에서 글을 쓴 사람의 증언에만 의지해 설거지 유무를 판별하게 되고, 악의적으로 오용하는 사람이 있어도 막지 못한다.

2.3. 편견에 기반한 검증론의 한계

또한 설거지론의 맹점은 유튜브나 인터넷 커뮤니티에 돌아다니는 무수한 편견과 자의에서 비롯된 검증론의 한계를 전혀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반론에서는 다음과 같은 반론을 제시한다.
"다수의 문제나 범죄적인 문제가 아니므로 검증론이라고 할 수 없다."
검증이라는 것은 다수나 범죄 문제에만 국한되는 개념이 아니다.
"남성에게 강요되는 가치관을 주입받은 개인이 결혼 생활에 회의감을 가지는 것일 뿐이다."
반론은 지금 '회의적인 결혼생활'만 말하고 있다. 당연히 '비참한 결혼생활' 자체는 검증이 아니다. 그러나, 알다시피 설거지론에서는 결혼 생활 자체만 말하지 않는다. 불만족스러운 결혼 생활의 원인을 배우자에게 두고, 배우자의 과거 행실과 현재 남편에 대한 감정이 어땠는지 어떠한지 왈가왈부하는 것이 설거지론이었다. 반론은 비참한 결혼생활만 따로 가져올 것이 아니라 배우자의 과거와 마음가짐을 확인하려고 하는 것도 서술하고 이것이 왜 검증이 아닌지 설명해야 할 것이다.

특히나 이런 형태의 감정과 인간성에 대한 검증론은 항상 우리가 눈으로 확인해도 제대로 알 수 없는 상대방의 사고방식과 내적 성향을 검증을 통해 알 수 있다는 내용을 가지고 있고, 결론적으로 상대방이 잘못된 생각을 일부라도 가지고만 있어도 바로 걸러야 한다는 결론으로 직행한다. 즉 상대방이 사악한 괴물이고, 나에게 피해를 주는 존재이기에 걸러야 하고, 모든 문제의 원인은 상대방에게 있으니 이 사람만 걸러내고 괜찮은 사람을 찾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논리를 말한다. 이에는 여러 한계가 있는데, 일단 검증을 하는 주체인 본인이 얼마나 객관적이고, 현명한가에 대한 고찰이 없이 내가 내세우는 기준이 다른 사람에게 맞은 적이 있으니까, 이대로 내가 검증해도 맞을 것이라는 무지와 편견이 일차적으로 걸린다.[3]

그리고 검증을 하려다보면 당연히 디테일하고 많은 가정과 기준이 제멋대로 증식하기 마련인데, 이 검증이라는 행위 자체가 상대방에 대한 나의 심리적인 불안과 공포에서 출발하고 있다보니 그 기준이 매우 까다롭고, 검증을 얼마나 해야만 상대를 신뢰할 수 있는가? 과연 이 검증 행위가 얼마나 정확한가?에 대한 고민이 결여되어 있고, 실질적으로 기준조차 없다보니 당연히 이렇게 거르고 거르는 과정을 지나다보면 처음에는 작은 신뢰를 통해 믿음을 회복하려고 했던 내 욕구가 어느샌가 비대해져, 사실상 현실에 불가능하거나, 타협이나 이해가 불가능한 완벽한 인간상을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기 쉽다는 점이다. 거기에 결론적으로 검증을 실행하는 대상과의 관계가 검증론에서는 철저히 일방적으로 설정되어 있다. 즉 처음부터 검증을 하는 나는 선하고 문제없는 피해자이니 뭔 잣대를 들이대도 올바르며, 나의 '어떤 욕망'도 합리화된다라는 논리가 숨겨져 있는 것도 문제.[4] 애초에 이렇게 "내가 피해자니깐 나는 뭐든지 해도 된다"는 발상으로 지금 한국 젠더 싸움판을 이리 키운 사람들이 누구였는데 그 래디컬 페미에 반대한다는 사람들이 결국 다시 자기정당화적 피해자 마인드의 안락함을 다시 찾고 있다. 남혐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가장 확실한 목소리는 피해자는 동정과 연민을 받을 순 있어도 무조건적인 긍정을 받을 순 없다고 딱 선을 긋는 건데, 피해자의 감정팔이는 그리 싫다는 사람들이 오히려 본인들이 피해자 마인드의 유혹에 넘어가는 셈이다.

또한 이런 퐁퐁단의 썰들은 대부분 남편 측의 인터넷에 올라온 한쪽의 주장이 대부분이다. 양비론까지 가지 않더라도 상식적인 선에서 봐도 한쪽이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을 숨기고 공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익명성이 보장된 공간에서 한쪽이 말하는 것만 듣고 모든 것을 판단하는 건 상당히 위험한 일이고, 대부분의 설거지론 사례들처럼 당사자가 공인이 아닌 일반인이면 왜곡돼서 퍼지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더 높기에 반박이 올라올 가능성이 더더욱 줄어든다. 부부 사이 감정적인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대개 한 쪽의 일방적인 책임인 경우보다는 서로에게 원인이 있는 경우가 흔한데도 설거지론에서는 부부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기 위한 노력에 대한 남편의 책임은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상대방의 탓만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검증이라는 행위 자체가 상대방에게 과연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지에 대한 고려도 전무하다. 이런 검증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항상 같다. 네가 지은 죄가 없으면 걸릴 것도 없고, 네가 부족한 게 없으면 손쉽게 검증을 통과할 것이라는 논리인데[5] 대부분의 사람들은 흑색도 백색도 아닌 회색이고, 이런 종류의 검증론을 들이대다보면 이 그물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특히나 결혼처럼 공적/사적 관계가 고루 얽혀진 복합적인 인간관계일수록 무수히 많은 내적 갈등과 감정의 소용돌이가 뒤엉켜 있기 쉽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설령 지은 죄가 없다고 해서 이런 종류의 검증이 불쾌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대방에 대해서 신뢰와 사랑이 있었는데 상대방의 오인에 의해서 이런 검증이 들어온다면, 과연 "아 상대방이 불안해서 그러니 안심시켜줘야겠구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까? 아니면 "와. 지금까지 나를 이딴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라고 분노하는 사람이 많을까? 즉 상대방이 불안하니 검증하겠다는 태도 자체가 그 검증을 당하는 입장에서 당연히 스트레스일 것이고, 그 반응이 부정적인 것은 상대방이 "들켰구나! 찔린다!"라는 게 아니라 "너 진짜 이러기야?"라는 반응일 가능성도 높은데, 검증론은 이런 두 분류의 사람을 걸러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도돌이표처럼 자꾸 무한 검증으로 넘어가기 쉬운 것이다.[6][7] 그 과정에서 검증 대상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습한 지하실의 곰팡이마냥 무한 증식하게 된다. 설거지론이 아무리 현실에서 출반한 내용이라고 해도 조심해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결국 이를 적용하는 과정을 거치다보면 자연스럽게 혐오로 흘러가기 쉽기 때문이다.

반박 문단엔 '검증론 운운 할 게 아니라, 그냥 결혼 이전에 검증 자체가 없었다'라고 주장하는데,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검증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그게 검증론이 아니고 무엇인가? 검증론이 아니라고 주장하려면 그 검증이라는 게 남이 아닌 자신을 향하고 있을 때나 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설거지'라는 말 자체가 자신이 아닌 상대방을 주체로 하고 있다. 상대방을 검증하려 들면서 '이것은 검증이 아니라 나 스스로에 대한 고찰이다'라고 하는 것은 상대방을 자신의 소유물 정도로 생각할 때나 할 수 있는 발상이다.

2.4. 공포 마케팅

한녀들은 남성을 애정의 대상이 아닌 돈을 뜯어먹기 위한 숙주로만 여긴다.
=한남들은 여성을 애정의 대상이 아닌 성희롱과 가스라이팅의 대상으로만 여긴다.
설거지론은 일부의 문제가 아닌 한국 여성 대다수의 특징이다.
= 성희롱과 여성혐오는 일부의 문제가 아닌 한국 남성 대다수의 특징이다.
설거지론을 그저 일부의 문제로만 치부하기에는 퐁퐁남들의 피해 사례가 여기저기서 너무 많이 올라오지 않는가?
= 여성혐오를 그저 일부의 문제로만 치부하기에는 성범죄 피해 여성들의 사례가 여기저기서 너무 많이 올라오지 않는가?
자기 아내는 정상적이라고 주장하는 유부남들은 전부 한녀에게 세뇌당한 퐁퐁남들이다.
= 자기 남편은 정상적이라고 주장하는 유부녀들은 전부 한남에게 가스라이팅당한 흉자들이다.
여초에서 설거지론에 발작하는 반응이야말로 설거지론이 한녀들의 추악한 본성을 까발렸다는 증거이다.
= 남초에서 페미니즘에 발작하는 반응이야말로 페미니즘이 한남들의 추악한 본성을 까발렸다는 증거이다.
설거지론이 한녀 대다수의 문제가 아니라면, 왜 맘카페나 여시같은 여초 커뮤들에는 "아니야 난 우리 남편을 정말로 사랑해"라는 식의 간단한 반박이 하나도 올라오지 않는가?
= 여성차별이 한남 대다수의 문제가 아니라면, 왜 디시나 펨코같은 남초 커뮤들에는 "아니야 난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인격체라고 생각해"라는 식의 간단한 반박이 하나도 올라오지 않는가?
설거지론을 비판하는 남성들은 전부 퐁퐁단과 남페미들이다.
=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여성들은 전부 흉자들과 업소녀들이다.
애초에 여초 한녀들은 왜 설거지론이 과장된 이론이라며 거품을 무는가? 오히려 지들이 퐁퐁남들을 호구잡고 있는 걸 자랑스러워하는 게 정상적인 반응 아닌가?
= 애초에 남초 한남들은 왜 "직장인 남성들의 평균연봉이 직장인 여성보다 높다"라는 통계가 왜곡자료라며 거품을 무는가? 오히려 지들이 갓치들보다 돈 많이 버는 걸 자랑스러워하는 게 정상적인 반응 아닌가?
설거지론은 여성혐오가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한녀들에게 돈만 뜯기는 퐁퐁남들을 구출하기 위한 운동이다.
= 페미니즘은 남성혐오가 아니라 한남들이 저지른 성범죄와 성착취의 피해여성들을 구원하기 위한 운동이다.
명문대와 고위계층의 석학들 중에도 설거지론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다.
= 명문대와 고위계층의 석학들 중에도 페미니즘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다.[8]
(실제로 만나보진 않았지만) 스시녀들은 한녀 따위와는 근본부터 다를 거라고 믿는다.
= (실제로 만나보진 않았지만) 갓양남들은 한남 따위와는 근본부터 다를 거라고 믿는다.
여성의 권익을 수호한다고 주장하지만 트페미 딸을 둔 어머니의 속이 타들어가는 건 모른다.
=남성의 권익을 수호한다고 주장하지만 야갤러 아들을 둔 아버지의 속이 타들어가는 건 모른다.
설거지론과 페미니즘 비교
또한 경계해야 할 것은, 설거지론이 여초 커뮤니티를 점령한 페미니즘식 선동과 유사한 모습으로 퍼지고 있다는 점이다.[9]

한국 남자는 모두 성매수자이며 잠재적 성병 전염인자', '한국 남자는 모두 잠재적 가해자'같은 자극적인 워딩이 어떻게 여초 커뮤니티를 점령했는지를 상기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모든 결혼이 남성에게 끝없는 가학을 가하는 지옥행도 아니고, 모든 인간/사회 관계가 그렇듯이 좋은 점과 나쁜 점이 혼재된 복잡 미묘한 관계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설거지론은 그중에서도 비교적 당할 가능성도 높고, 현실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우울한 결혼, 그것도 극단적인 최악의 사례와 흔히 겪을 수 있는 경험을 교묘하게 결합시켜 부각시키는 한편, 동시에 여기에 그럴듯한 설명까지 가져다 붙인다. 그럼으로서, '은연중에 너도 당할 수 있고, 이미 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라는 공포와 상대방 이성에 대한 의심과 혐오, 불편함을 조장한다. 이것은 지금까지 여초 사이트에서 극소수에 불과한 극단적인 성범죄 사례와 흔히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경험을 교묘히 결합시켜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이다'라는 프레임을 급속도로 전파시켜 여초 전체를 선동시킨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이런 공포 담론이 그렇듯이, 과연 현실 상황에서 이게 얼마나 흔한 일인지, 나랑 관계는 있는 것인지, 이 이론이 과연 얼마나 현실과 접합하고 있는지, 이런 사례가 발생한다면 과연 사회/개인으로서 여기에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이 가장 옳은지를 이성적으로 따지기 전에, 누군가는 겪고 있는 일이잖아!라는 생각이 일차적으로 감정을 뒤흔들고, 일어날지도 모르고 겪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불안에서 비롯되는 상상이 이성을 마비시키고 분노, 혐오, 두려움 등의 감정을 강렬하게 자극한다. 당연히 처음에 들어오는 내용 자체가 감정을 강하게 자극하는 내용이다 보니, 아무리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분석하려고 해봐도 미묘하게 뒤틀리거나 감정적인 내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애초에 조너선 하이트 같은 연구자들이 지적하듯이, 인간이라는 종 자체가 먼저 감정으로서 선택하고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이성을 발휘하는 종족이다. 특히 정치/사회/인간 관계에 대한 분석들은 더더욱 개인적이기 쉬운 부분이기도 하고.[10] 더군다나 낮은 기혼율과 높은 미혼율, 연애경험의 불균형이 심각한 현대 사회의 구조적 측면, 그리고 아무래도 루저 감성을 가지거나 개인적인 관계에서 좌절감이나 불안감을 경험한 사람들이 주류가 되는 인터넷 커뮤니티라는 환경이 여기에 결합되다보니 그 파급력이 상상을 초월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 커뮤니티의 특성상 이런 자극적인 담론을 부풀리거나, 자극하려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고, 그 전파 속도 또한 빠르기 때문에 내가 직접 겪고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결혼이 그런 것이 아님에도, 마치 모든 기혼/예비 기혼 남성들이 이러한 위협에 둘러쌓여있는 듯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거기에 남성으로서 가지고 있는 동질감이나 본능, 경험 등이 이러한 소위 퐁퐁남들에 대한 경멸과 동시에 공감의식을 불러일으키며 내가 결혼을 한 것도 아니고, 혹은 파트너가 없다 할지라도 마치 내가 이러한 일을 감각하는 것과 같은 상상과 감정을 엄청나게 자극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포조장 담론이 지난 시절부터 바로 지금 이 순간까지도 페미니스트들이 일반인 여성들을 자기네 패거리로 설득하기 위해 써먹는 흔한 레퍼토리임과 동시에, 트페미 메갈들이 여초 커뮤니티를 점령하기 위해 썼던 방식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언급되는 사례들은 대부분 ①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커뮤니티 글, ②판례 혹은 부부 간 갈등을 담은 언론 기사, ③유튜브 혹은 방송 예능의 사례 정도에 해당한다. 여기서 ①은 사실 검증이 불가능하고 지어낸 사례가 워낙 많으니 그렇다 쳐도 ②와 ③ 역시 화젯거리가 되기 때문에 하나의 사례화 되었다는 점을 잊어선 곤란하다. 이러한 사례는 절대 일반적이지 않으며, 이를 자신에게도 일어날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공포 마케팅' 유형에 정확히 해당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재미가 없기' 때문에 사례화가 되지 않는다.

사실 이러한 공포 마케팅이 먹히는 것에는 결혼은 다른 성질의 것들과 달리 이제는 '경험해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 다시 말해 미혼율이 올랐기 때문에 기혼자가 되지는 않는 사람이 꽤 된다는 점이 크다. 예를 들어, '근로자' 역시 과로사로 인한 직장인 자살 사건이 빈번히 발생하고 중처법 위반 논의가 오갈 정도로 직장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는 뉴스가 매일 쏟아지지만, 직장 다니는게 무서워 관두려는 사람은 없다. 차량 역시 한문철TV를 비롯한 블랙박스 사고 사례가 매일 수십, 수백개 쏟아져도 죽는게 무서워서 차를 안타고 다니는 사람은 없다. 일이나 운전은 많은 성인들이 경험해보고 비록 위험 요소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것이 일부 사례임을 충분히 인지하기 때문이다. 허나 결혼은 실제 접해보기 쉽지 않기 때문에, 건너듣는 사례로만 재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사례화'된 몇몇 케이스로 결혼생활을 재단하는 것은, 한문철TV를 보면서 도로교통을 재단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과장된 착오다.

2.5. 흉자 담론과의 접점

래디컬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기혼 여성 흉자로 취급하는 시각이 암암리에 존재한다.[11] 즉 결혼 및 육아와 관련하여 불평등하게 가중되는 가사노동의 당사자는 페미니스트라면 당연히 보호해야 할 대상인 여성임을 잘 알면서도, 가사노동의 고단함을 토로하는 여성에 대해 '처음부터 비혼할 것이지 애초에 남자를 믿고 결혼한 게 멍청한 짓'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설거지론 역시 주로 설거지 결혼의 피해자가 되는 성별인 남성들에게 대한 조소가 담겨 있다. 설거지 결혼을 당한다면 '쾌락 없는 책임'을 짊어지게 된다는 현실을 내심 잘 알면서도 결혼했다며, 어리석다고 여기고 그들을 퐁퐁남이라 부르며 조롱한다는 점에서 흉자 담론과 서로 공통점이 있다. 현 '설거지 결혼'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고, 모든 결혼이 장점만 있을 수는 없는 데다가 애초에 설거지라는 단어 뜻도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모든 기혼 남성을 비난하는 데 쓰일 때가 많아지고 있다. 아내랑 사는 게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에게까지 설거지당했지만 깨닫지 못하고 세뇌당했다고 하는 글들이 보인다. 이때 현재 퐁퐁남이라고 조롱당하는 30~40대 남성들이 결혼할 당시에는 아내의 과거 편력을 몰랐거나 또는 결혼 생활이 생각만큼 좋지 않음을 깨닫기 어려운 점은 간과되는 경우가 많다.

2.6. 논리적 오류 - 그릇된 권리에 호소하기

설거지론 관련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게 블라인드 의사 등 고소득 직종의 글이나 에타 수도권 대학 계정의 글인데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겠지만 창조설에 뜬금없는 물리학자나 천문학자가 지지를 표명하는 것을 근거로 삼는 것과 같이 관련없는 타 학계 권위자를 내세우는 그릇된 권리에 호소하기에 부합한다. 게다가 이런 계정들은 사고 파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알려진 이후론 이렁 커뮤니티의 신뢰성 자체가 크게 흔들이고 있다.

2.7. 설거지론의 혐오 프레이밍화

설거지론에 대해서 비판적인 사람들이 우려한 대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설거지론을 무기로 무차별적으로 남녀를 후드려패면서 혐오와 갈등을 조장하는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 당장 설거지론이 막 불거지던 10월 24일 즈음과 당장 10월 25일 이후의 주갤 념글들만 확인해보아도 이는 명확하다. 처음에는 찐사랑 인증글 같은 내용이 올라오면 설거지가 아니라며 격려와 축복을 해주던 분위기는 어느샌가 슬금슬금 일소되고, 그 뒤를 메우고 있는 내용들은 무차별적인 혐오글이 다수이다. 저격 대상도 경제력과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했는데도 대우받지 못하던 남성들과 그런 남성들을 ATM기로 이용하는 이기적인 여성들에서, 어느 순간부터 그 범위가 순식간에 확장되어 이제는 저격이 아니라 무차별 폭격이라고 해도 무방할 지경이다.

이는 설거지론의 설득력이 검증 자체가 어려운 상대방의 애정에 대한 불안심리나 공포감에서 초래되고 증폭되는 데다가, 성적으로 매력적인 남성에 당연히 여성이 더 매달린다는 일반적인 상식이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좀 더 파고들어 심리학, 사회학 등을 동원하고, 개개인의 성향 차이나 개별 사례 등으로 파고들어가면 여러 가지 반례나 다양한 케이스를 목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억하자. 설거지론은 명성 높고 뛰어난 연구자가 오랜 시간 공들여서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이 아니다. 지금 설거지론 항목의 의미제한을 두고 갑론을박이 난무하고, 온갖 사이트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장삼이사들이 피와 살을 덧붙이고 있는 카더라나 썰을 유포하고 있는 인터넷 떡밥이라는 것이 설거지론의 실체인 것이다. 몇 번을 강조해도 모자라겠지만, 설거지론이라는 것은 냉정하게 말하자면 옛날 동네 형님들이 결혼하지 말라며 내미는 안 좋은 결혼담을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말로 풀어쓴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내용 자체가 워낙 자극적이고 다시 말하지만 불안감이나 공포를 심하게 자극하는 내용이 되다보니, 어지간히 똑똑한 사람들이라고 쳐도 이에 굴하기 쉽다. 거기에 설거지론이 다루는 내용들이 이 사이트, 저 사이트 돌면서 제멋대로 부풀고 변형되는 상황에 원체 이게 이론이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모호한 내용 + 극단적인 실제 사례와 이런 사례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을 지적하기만 하면 되는 물건이라 설거지론을 활용하는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온갖 레퍼토리를 짜서 불특정 대상을 공격하기 쉽게 되어 있다. 설거지론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섣불리 뉴턴 역학 어쩌구 하는 섣부른 소리를 하는 하는 경우도 있는데, 어느 정도는 인터넷 밈이나 농담으로서의 측면도 있겠지만, 설거지론이라는 것이 워낙 여기저기 끼워맞추기 쉽기 때문에 상황과 현실을 설명하는 만능키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도 잊으면 곤란하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처녀/비처녀 논란이 불거진 것처럼, 설거지 결혼을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반농담 진담으로 처녀와 결혼하는 것이 답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니콜라스 볼핑거 교수의 연구도 이때 인용되었지만, 사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알파메일에 성적으로 굴복하는 것이 여성의 본성이라는 설거지론의 논리를 적절히 비틀어서 활용하면 처녀 또한 결코 안전의 대상이 아니다. 실제로 흔하지 않더라도 처녀, 혹은 성경험이 부족한 상태로 결혼했다가, 성적으로 자유로운 또래 친구들을 대한 열등감 + 알파메일에 대한 동경과 유혹으로 인해 정숙한 부인이 바람을 피웠더라는 사례 또한 발생 가능성 여부를 떠나서 실례를 찾으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성적 매력이 부족한 여성 + 부족한 남성의 결혼 또한 공격하려면 얼마든지 공격할 수 있다. 실제로 성적 매력이 부족한 여성 또한 결국 알파메일에게 몸을 던져서라도 사랑을 얻어내려 하는 것이 본성이라는 논제를 들이밀면서 제시하는 것이, 그런 여자도 사실 과거전력을 뒤져보면 그런 매력적인 남성에게 마치 히토미에서나 등장할 법한 조교를 옛날옛적에 당한 설거지거리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을 조교해준 주인님을 그리워하고 있을 거라며 기혼남을 자극하는 내용들이 댓글이나 개념글로 돌아다니고 있다.

거기에 더해서 이제는 설거지론인지 긴가민가한 내용들이 설거지론이라는 이름으로 돌아다니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남성들의 열등감을 자극하는 ~알파메일들과 여성들의 일상~ 같은 내용의 글들이 설거지론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는 경우다. 원론적으로 따지자면 처음 등장한 설거지론에서는 '과거가 중요한 게 아니라 현재 남성에 대한 애정'이 화두였는데, 여성을 공격하고, 남성들을 자극하려다보니 각론으로 다뤄졌던 알파메일과 여성들과의 관계를 노골적으로 부각하는 것이다. 이를 테면 "알파메일들이 시선만 주면 여성들은 자지러지며 몸은 물론이고 돈이든 뭐든 죄다 가져다 바치고..."하는 식의 내용인데, 사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매력적인 이성에 이끌리는 것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에게도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런 매력적인 이성을 남성이 어떻게 대하는 가는 개개인의 성향, 상황, 환경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어떤 사람들은 노골적인 추파를, 어떤 사람들은 체념을, 어떤 사람들은 덤덤하게 대하기도 할 것이고, 여성 또한 마찬가지다.

이를 요약하자면 자극적인 용어와 사례로 연애 경험이 적은 남성들이 성급한 결혼을 하는 것을 설거지에 비유한 설거지론은 결혼 행태나 사회 현상을 온전히 설명하는 수단이 아니기에 여기서 얻을 교훈은 비혼주의나 이성 혐오가 아니라 이런 부정적인 결혼 사례를 주의하고 여기서 말하는 퐁퐁단[12] 어떻게 사회적으로 건강한 결혼을 할 수 있게 바꿀 수 있겠는가에 관한 고찰이겠으나 인터넷 커뮤니티의 댓글들은 정반대로 비혼이나 자국 이성 혐오로 공감하고 일부 게시글들이 이를 부추기면서 크게 논란이 일어난 것이다.

이미 2020년대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성향이 극한까지 치달아 어디서든 혐오 표현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며, 설거지론이 각종 커뮤니티 사이에서 화제의 대두에 오르게 된 것 또한 설거지론을 퍼트린 커뮤니티의 자극적인 표현으로 인해 성별 갈등 프레임으로 쉽게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때문에 에브리타임 등 특정 성별에 국한되지 않는 커뮤니티에서는 또 성별 갈등 싸움이냐며 설거지론의 내용과 무관하게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결국 설거지론은 특정 성별 위주의 커뮤니티들이 서로를 물고 뜯기 위해 만들어낸 일종의 프레임으로서 활용될 뿐이며, 이들은 혐오의 대상을 만들기 위해 설거지론을 수단으로써 사용한다는 비판이다. 이러한 비판 의견에 대해 설거지론을 주장하는 이들이 래디컬 페미니스트 루리웹, 클리앙이라며 프레임을 씌우는 경우도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어, 아에 설거지론 자체를 또 다른 성별갈등 혐오 표현 중 하나라고 여기는 시각도 존재한다.

설거지론의 유행을 노리고 나온듯한 한 유튜버 애니메이션에서도 코미디를 즐기는 사람은 거의 없고 그저 결혼 자체를 비하하고 비꼬기 위해 설거지론과 퐁퐁이란 단어를 도배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설거지론의 원래 정의가 어떠하든 그것을 적재적소에 맞춰 현상을 설명할 때 쓰이지 않고 해당되지 않는 사람을 포함한 불특정한 다수를 혐오하고 사회불안감을 조성하는 곳에 쓰이기만 하는 것이 현 상황이다. 그저 결혼 자체를 멍청하게 비추는 듯한 분위기가 확산되고 미래의 결혼이 불합리한 것처럼 다른 이들에게 잘못된 이미지를 전파한다. 즉 설거지론은 연애나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을 경각시키는 데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이 다수라는[13] 방패를 이용해 대중 속에 혐오를 뿌리고 즐기는 용도로 사용된다. 해당 영상은 지금까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던 남편이 공처가인 경우를 모티브 삼은 애니메이션이다. 하지만 상황에도 맞지않는 설거지론을 들이밀며 부부를 동시에 욕하고 결혼을 비하하는 분위기만 확산시킨다. 아내의 과거나 남편이 결혼한 배경은 일절 나오지 않았고 그저 남편이 공처가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 말곤 다른 정보가 없다. 부부 사이에 자산이나 지출 여부, 여분의 돈을 공유하는 것은 공처가가 아니더라도 극히 평범한 현상이고, 설거지론의 도배를 보고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한 채 가상의 애니메이션을 통한 과장이 아닌 결혼생활은 스스로 재산을 뺏기는 행위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증가한다. 공처가뿐 아니라 아내의 말을 우선시해서 듣는 가정은 데릴사위, 기둥서방을 제외하고서라도 가장중심이었던 가족 분위기에서 아내의 지위를 높여주는 사회적 변화 속에 탄생한 극히 평범한 경우이며 코미디에서 자극적으로 사용할 뿐 남편이 아내의 입장을 고려해 한발 물러나주는 경우가 많다. 아내가 가정을 돌보는 데 힘쓴 지분이 클수록, 아내의 기가 셀수록 아내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당연하며 남편의 능력, 여자의 과거 어느 것도 무관하여 설거지론과 관계가 없다. 하지만 현재 남편이 조금만 약하게 보여도 설거지론으로 프레임을 씌워 남편과 아내, 결혼 그 자체를 비난하는 데만 쓰이고 있고 이를 구별하는 사람이 현재 몇이나 있는가?

설거지론이 사회경각심을 가지게 해주는 용도로 사용되기는커녕 불분명한 혐오를 뿌리는 데 사용되는 것은 분명하며, 설거지론에 해당하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공공연한 자리에서 불안감을 조성하고 불특정 다수를 향한 혐오적인 발언을 할 수 있는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설거지론을 이용해 누군가에게 경각심을 주거나 깨달음을 주겠다고 자격에 맞지도 않는 망발을 한 뒤 정작 대상이 틀리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이킨 책임은 일절 지지않는다. 설거지론을 대두해 공공연히 사람을 욕하고 아님 말고식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은 어디를 봐도 사회에 대한 경각심을 주기 위해 사용되지 않는다. 아무 곳에서나 정제되지 않은 설거지론을 전파하고 불확실한 정보로 남을 설거지라 추측하는 행위를 제재했을 때 해당되는 사람만 걸러들으면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설거지론의 배경이 실제 있을 수 있는 현상이란 점, 이러한 행위를 즐기는 자가 다수 있다는 점을 방패삼아 불특정 비난과 모욕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일 뿐이다. 설거지론이 실제 일어나는 이상하지 않은 현상이라 다수의 남편이 재산과 자존감을 박탈당한 채 불쌍하게 살고, 결혼만 하면 모두가 겪을 일인 것처럼 떠들어대는 것은 페미니스트가 어머니들이 가정 내에서 홀대당한 역사가 실제로 있었다는 점을 이용해 사회의 모든 여성이 결혼하면 억압받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라 주장하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결국 반론에서 '설거지론의 본질은 그게 아니다', '그런 오남용의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이건 담론을 행하는 사람들이 주의하면 되고 원론적으론 유익한 이론이다'하는 소위 '순수한 설거지론'의 존재를 설정하고 이걸 중심으로 옹호한다는 것 자체가 마치 설거지론이 무슨 원래는 성사회학자의 진중한 연구방법론을 따라 나온 무슨 엄밀성 있는 이론을 일부 사람들이 잘못 오용하는 존재하지 않는 환상의 세계에서만 가능한 소리다. 사람들이 바보도 아니고, 애초에 스스로 모든 도덕적 가치를 부정(한다고 주장하는)하고 일시적인 쾌락만 추구한다고 스스로 인정하고 다니는 막장 커뮤니티들 중심으로 쏟아져서 결국 누구든지 예측가능했던 방향으로 사용되고 있는 유행어를 두고, 무슨 소련 망한 지 30년째 '진짜 사회주의'가 아니었다는 공산주의자들마냥 원래 의미는 그렇지 않다니 한다는 게 도대체 누굴 설득하려는 소리일까.[14]

같은 논리로 자칭 설거지 “론”이 펼쳐지고 있는 공간을 보면 십중팔구 커뮤니티 사이트, 그중에서도 우파 성향을 띤 남초 커뮤니티 사이트 등인데, 이런 닫힌 사회와 인터넷이라는 공간 특성상 여기에서 나오는 의견은 매우 편협적이고 극단화된 사례가 많다. 최근 젠더갈등의 진원지가 남초, 여초 커뮤니티인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이런 커뮤니티에서 대한민국의 유부남에게 께우침을 주겠다고 설거지론이라는 “설”을 만들어 인터넷에서 혐오로 발전하고, 거기에다가 몇몇 주창자들은 혐오는 자기네들의 본래 의도가 아니고, “착한 설거지론”은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도 굉장히 큰 의문이다.

결혼정보업체 노블마리아주 대표 박정원은 본인의 유튜브 채널에서 남초 커뮤니티에서 나도는 설거지론이나 퐁퐁남이라는 용어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온라인을 통해 확산된 어처구니없는 사연은 아주 소수의 이야기다. (퐁퐁남으로 지목된 남성들이) 대부분 하소연할 곳이 없어 온라인에 모이게 되는 것이고, 이 때문에 인터넷만 켜보면 마치 남성 대부분이 퐁퐁남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인터넷 커뮤니티의 문제점을 지적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퐁퐁남도 아무나 되는 거 아니다. 그런 거 걱정하기 전에 최소 월에 실수령액으로 천에서 2천은 벌 능력이나 갖춰라. 애초에 일반적인 남성들은 설거지녀 레이더에도 못 들어간다"고 해당 단어를 비웃었다. # #

2.8. 혐오 표현으로 사용되는 것에 대한 비판

커뮤니티 상에서 유부남 전체, 특정 세대 전체, 특정 커뮤 니티 전체, 정치성향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는 글들이 '설거지론'이라는 포장지만 두르고서 보이는데 아직 설거지론이라는 게 명확히 정해진 이론이 아니고, '설거지론의 당사자'인 퐁퐁단과 함께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기 위해 마구 남용되기 때문에 생긴 문제점이다.

즉 나무위키에서 정의하고 있는 '설거지론'의 범위를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설거지론'이랍시고 그런 세대나 유부남 전체를 퐁퐁단, ^네다퐁^ 등의 단어로 싸잡아 조롱하거나 비처녀 논란을 핵심으로 하는 글들에 반박을 다루고 있다.

설거지론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유부남 여성을 공격하려는 또다른 혐오 표현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 이들은 설거지론을 설파하는 이들이 설거지론을 단순히 기혼자를 공격하기 위한 용도로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 이러한 반박에 “ 호구잡힌 유부남이 아닌 이상 반박이 의미없다”는 명목으로 입막음하거나 퐁퐁단으로 몰아가기만 할 뿐 제대로 재반박을 하지 않았다. # 실제로 위의 퐁퐁 드립과 아래 MLB파크의 반응을 봐도 설거지론을 비판하는 건 다 퐁퐁남이라는 투의 글이 있고, 퐁퐁 드립도 그냥 유부남에게 조롱하고 어그로를 끌기 위해 나온 것이 그 기원이며 사실상 현재도 그런 용도로 쓰이고 있다. 특히 이들이 역대급 명문이라며 자화자찬하는 문장도 결국 기혼자들의 배우자에 대한 비하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반론에서 "혐오 프레이밍과 일반화가 설거지론 자체에 있지 않다", "설거지론은, 그 자체에 일반화의 논리가 없다. '이런 부부도 있다.'라는 주장이 이렇게까지 확산이 되었을 뿐이지", 이런 말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듯한 상당히 유치할 뿐만 아니라 무책임한 발언이다. 애초에 이게 무슨 격조 있는 학술 대화에서 전문가들이 철저한 정의를 내리며 엄격히 사용하는 개념도 아니고, 결국 디시, 엠팍, 펨코 따위 인터넷 커뮤에서 소모되는 소리인데 애초에 그리 이성적이고 학술적인 차원에서 설거지론을 설파하며 이걸로 뭘 하자는 단체, 개인이 누가 있는가?

결국 인터넷 쓰레기 '담론'들이 늘 그래왔고 그랬듯이 결론은 단군 이래 물질적으론 이만큼 풍요로운 적이 없었던 한국 사회를 지금처럼 병들게 한 각종 ~충 중에 기혼충 하나가 추가되었을 뿐이다. 이런 식으로 따지자면, "사회다윈주의도 원래는 그냥 진화론을 인간 사회에 접목시키려던 시도였을 뿐이다, 우생학이 사회다윈주의 자체의 본질은 아니다" 같이 얼마든지 꼬리자르기가 가능하다. 그리고 실제로 남초 커뮤니티들은 자기들끼리 모이고, 보통 자기들끼리만 모인다는 걸 아는 커뮤니티에선 거리낌 없이 처녀성에 대한 집착을 강하게 긍정하면서도 외부에서 이를 지적하면 무슨 극히 소수의 비정상자만 처녀성에 집착한 거니, 대부분 사람들은 처녀성이 아니라 애정문제를 본질로 보고 아주 고오급 담론을 나누고 있었는데 트페미들이 아전인수로 해석한 거니 하는 이중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설거지론은 사회의 양상을 설명하고 있지만 개개인의 행동에 달려 있을 뿐이지, 사회 구조상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 이 발언 자체가 설거지론이 개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반영하고 있다는 설거지론 옹호자들의 전제 논리와 맞지 않다. 설거지론이 '개개인의 행동에 달린 문제'일 뿐이면 그 나쁜 사람들을 욕할 것이지, 왜 소모적이고 부적절하기 짝이 없는 온라인 젠더 갈등의 혐오적 일반화의 도구로 등판했을까?

"이러한 공포 마케팅의 양상은 경계할 필요가 있지만 개념 자체가 이미 존재했었으니 부정 자체를 하기 어렵고 이렇게까지 확산될 수 있었던 사회적 배경을 돌아보는 동시에 사실을 최대한 직시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직은 다행히, 이런 사실을 직시하는 행동을 부정하거나 방해하는 요소가 설거지론 자체에는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에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 개념 자체가 이미 존재한 적 없다. 꽃뱀같은 단어가 굳이 따지면 비슷하다는거지 꽃뱀=설거지론이 아니라는 말. 설거지론과 같은 말이 있으면 그 말을 그대로 쓰지 설거지론이라는 말이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장 꽃뱀이란 단어에 처녀성은 아무 상관없지만, 설거지론에 '설거지'란 단어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처녀성과 연결고리를 끊을 수 없다.

설거지론은 말이 설거지'론'이지 이론적 설계는커녕 단어적 정의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인터넷 특정 커뮤니티에서 특정한 종류의 집단 감정에 호응하며 퍼진 유행어인데 도대체 그 누가 '설거지론'을 그리 사회를 관찰하는 데 유익할 만큼 개념적 정밀함, 치밀함을 가지고 쓰려고 할까? 설거지론 따위의 인터넷 헛소리를 이리저리 '발전'시킨다고 노력하는 것보다 차라리 씻고 운동하고 사회성을 길러 밖에 나가 실제 연애를 하면서 설거지론 소리 자체가 와닿지 않을 이성적인 매력을 갖추는 게 훨씬 더 말이 되고 유익하다. 당장 설거지론 항목의 혼전순결과의 관련성 부분을 보자. 혼전순결은 상관없다는 내용부터 혼전순결이 전부라고 하는 중구난방스러운 내용까지 있는데, 이 정도면 같은 주제를 (설거지론) 가지고 얘기한다고 보기도 힘들다. 그냥 자신만의 독자연구스러운 설거지론이 있다고 해도 무방할 수준이다.

설거지론은 표면상으로는 특정 형태의 가정만을 지적할 뿐, 행복하고 이상적인 가정에 대해서는 일절 건드리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커뮤니티를 조금만 찾아봐도 모든 유부남, 모든 30대를 비난하거나 반박하면 무조건 퐁퐁단 프레임을 씌우는 사례도 수두룩하게 보이기 때문에, 반박을 못 한다 및 호구당한 유부남 빼고는 모두 설거지론에 다 동조한다라고 생각하는 오류에 빠지기 쉽다. 물론 잘못된 논리를 지적하는 것은 꼭 당사자일 필요는 없다. 또한 설거지론의 근거로 든 예시들 중 몇몇 사례들은 사진을 짜깁기해 조작되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1 #2

반론 측에서 '사랑받기를 원하면 스스로를 가꾸라는 식의 비난은 결국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결혼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라는 주장을 하는데, '연애 때는 살뜰이 챙겨주더니 결혼하면 다 잡은 고기 취급한다.'라고 주장하는 여성들이 많다. 이것대충 다 잡은 고기론이라 치자도 설거지론과 마찬가지로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니 그대로 받아들일 순 없지만, 결혼하고 나서도 연애 때만큼 잘 챙겨주는 사람은 남녀 모두 포함해서 드물 것이다. 연인시절처럼 상대를 잘 챙겨주지도, 상대에게 멋져보이기 위해 열심히 꾸미지도 않는데 변함없이 사랑한다는게 더 이상한 일이다. 이런 말은 자신은 연인 시절과 바뀐게 하나도 없는데, 상대방만 바뀌었을 때나 성립하는 말이며 이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설령 자신이 최대한 바뀌지 않으려 노력해도 연애→결혼으로 바뀌면서 필수적으로 바뀌는 부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2.8.1.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

X(설거지론) → Y(설거지론을 왜곡 및 선동하는 사례 언급) → Y(왜곡)가 틀렸다 → 그러므로 X(설거지론)를 비판한다.
라는 논리로 반박축에서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로 간단하게 논파되었다며 반박하고 있지만 첫줄부터 읽었다면 알겠지만 오용및 왜곡 사례에 대한 비판은 설거지론 자체가 아닌 설거지론 지지자들의 횡포에 대한 비판이다. 또한
X(설거지론 지지자의 오용 및 왜곡사례에 대한 비판)→ Y(설거지론을 왜곡 및 선동하는 사례를 언급하며 설거지론을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며 왜곡) → Y(왜곡)이 틀렸다 → 그러므로 X(오용 및 왜곡사례에 대한 비판)을 비판한다.
같은 논리로 오히려 허수라비 공격의 오류라며 반박하는 쪽이야말로 왜곡 및 선동하는 사례를 언급하며 설거지론을 비판하는 사람이란 허수아비를 공격하는 오류를 보이고 있다고 볼 수 있게 되어 "간단하게 논파"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설거지론의 태생상 명확한 정의와 기준이 없어 인터넷에서 자기 마음대로 써도 문제될 게 없으며, 그로부터 비롯되는 비판점들이 이하에 서술되어 있다. 설거지론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이러한 비판들이 설거지론을 오남용하는 일부 사례에 대한 비판이라서 설거지론 자체에 대한 비판이 아니기에 허수아비 때리기라고 반박하지만, 애초에 그들이 주장하는 '순수한 설거지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한 상태에서, 학회나 저서에서 '설거지론은 앞으로 이런 의미로 사용된다' 라고 정의를 내린 것도, 인터넷 상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이 단어는 앞으로 이런 의미로 사용하는 걸로 합시다'라고 전체적인 합의를 본 것도 아닌데, 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순수한 설거지론'을 정의내릴 것이며 또 무엇을 기준으로 '오남용 사례'를 판가름할 것인가?[15]

그러므로 이하의 비판에 대해 허수아비 때리기라고 하려면, 설거지의 명확한 기준[16]을 세우고, 앞으로 그렇게 쓰기로 했다는 확실한 무언가를 제시했을 때 오남용 사례가 무엇인지도 지적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기 이전에 설거지론이 일으키는 문제점들에 대한 비판이 오남용에 대한 비판일 뿐이라고 주장해도 그 또한 옹호하는 측의 자의적인 판단일 수밖에 없다.

2.9. 처녀성 여부로 시작된 태생적 한계

설거지론도 분명 관련 논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과연 정치권까지 미칠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설거지론의 태동에는 처녀성을 부각시켰기에[17] 유부남들은 혼전연애가 많아진 한국에서 이 논의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능력으로 가정을 꾸렸는데, 이를 하지도 못한 이들이 자신을 비하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아 초기 설거지론은 유부남들에게 지지를 얻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또한 여초 커뮤니티에게 처녀성 논쟁이라는 꼬투리를 남겨, 여성혐오적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애초에 하필이면 굳이 '설거지'란 단어를 쓰며 이걸 "음식은 남이 먹고 자신은 그저 다 먹고 더러워진 그릇을 설거지만 한다는 것에 비유한 담론"이라 비유한 것일까? 설거지론이 진짜 진지하게 현대 기혼 남성의 피해 의식을 공론화하고, 부각시키려는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시도였다면 결코 이리 노골적이고 자극적인 표현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의식적이던 무의식이던 결국 여자를 제멋대로 '사먹는 존재'로 의식하고, 애정의 유무는 부차적이고 아내의 성적 과거사 그 자체에 더 집중, 아님 최소한 동등한 비중으로 집중하고 있다는 점을 피할 수 없다. 결국, 설거지론을 맹목적으로 찬양하는 어떤 남자가 여러 명의 여자와 연애를 하면 높은 확률로 "남자가 능력있으면 필연적으로 많은 여자가 꼬이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 같은 소리를 할 것이다. 결국, 이런 식의 주장은 설거지론을 긍정하던 사람들도 "저게 무슨 모순적인 논리냐?"라면서 공감하지 못하고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설거지론 담론의 옹호자들은 벌써부터 자정작용이 있다니, 신중론을 펼치고 있다니 하며 페미니즘과의 비교를 자꾸 거부하고 있으나 이런식으로 따지면 사실 페미니즘도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현대 사회의 센세이셔널리즘한 특성 때문에 가장 자극적이고 옹호자들의 감정적 배설과, 반대자들의 일방적 적대도 이루어지기 쉬운 래디컬 페미니즘이 가장 부각받아서 그렇지, 자유주의 페미니즘 계열에서나 사회주의 페미니즘 계열에서 남혐중심적 페미니즘에 대한 반대는 계속 있어왔다.

그러나 작금 설거지론에 환장하며 너무도 익숙한 젠더 분쟁의 새로운 도구로 부각시키는 사람들은 이런 세부적이고 학술적인 반박을 받으면 그냥 꼬리자르기니, 일부드립이니 해당 주장의 화자에게 일방적인 명료하고도 도덕적으로 공감 가능한 메세지를 낼 걸 강요하면서 막상 자신들 또한 이런 본질적인 처녀성에 대한 집착 같은 부분은 도저히 옹호할 수 없었는지 교묘하게 꼬리자르거나, 본질이 아니라니 일축하면서 골대 옮기기를 하고 있다. 실제로 이 문서의 반박 문단에 처녀성 언급을 옹호하는 내용은 단 하나도 없는 것이 문제다. 정면으로 반박할 수가 없는 아킬레스건이기 때문에 아예 언급을 하지 않거나 논점이 아니라며 회피하는 것인데 현실부정이나 다를 바 없다.

그리고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차원에서 성병, 숨겨진 혼외자식 같은 문제를 고려하면 어느 정도는 배우자의 과거에 관심이 있으며, 거기에 따른 독점욕 또한 생기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근본적으로 해당 문제를 다루는 데 '설거지' 운운하며 작금의 담론같이 '옛날에 인싸가 자기 마누라 따먹던 시절'에 집중하는 건 그냥 바로 그 페미니스트들이 지적하는 퇴폐적 이중성이 맞다.

상술한 성병, 혼외 자식 유무같은 중대한 현실적인 문제야 당연히 별개로 고려해야 되지만, 이런 특별한 사례가 아닌 경우 기본적으로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선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남녀 불문하고 사회적인 뒷감당만 할 수 있으면 혼전에 얼마나 성적으로 자유분방했는지는 전적으로 개개인의 사생활이며 멋대로 남들이 간섭할 수 없는 문제다. 심지어 부모님마저 간섭할 수 없는 것이 개개인의 사생활 문제이며, 쌩판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아무나 붙잡고 싸잡아서 "너는 과거에 성적으로 문란했던 새끼잖아?"라고 불특정 다수를 욕하거나 무슨 판사마냥 개개인의 과거와 사생활을 심판질 할 수가 없는 문제라는 것이다. 이게 다른 게 아니라 그렇게 설거지론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멸시하던 페미나치들의 행태와 판박이다. 결국 간단히 말하자면, "너 새끼가 뭔데 감히 나의 (또는 내 여자친구) 사생활에 참견이냐?"라고 반박을 할 수 있다.

당연히 왕년에 엄청 놀아났던 걸 결혼 시엔 정숙한 여인, 절도 있는 남성으로 속이면 이건 설거지론 나발이고가 아니라 기본적인 구라치는 사기의 문제지만, 이런 경우도 아니고 배우자가 결혼 이전 연애, 성적 경험이 있다는 걸 서로 아는 상황에서 편의상 '애정 중심 설거지론'을 주장하는 사람들 처럼 애정의 부재에 집중하는 건 당위성 있는 문제제기라 할 수 있지만 다른 남자가 자기 여자 따먹던 시절에 집중하는 건 그냥 바로 여성의 몸을 남성의 소유물로 여기는 생각의 발로가 아니라고 보기 힘들다. 그리고, 설거지론을 긍정하는 사람들도 이런 부분은 공개적으로 대놓고 남들에게 거론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설거지론 운운하는 사람들의 의도가 너무나 뻔히 보이는 그대로 늘 그렇듯이 특정 인터넷 공간 순회돌며 결국 집단 혐오 문화나 키우는 감정 배설용이 아니라 정말로 현대 한국 사회에서 부부간 불화 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이면 어느 문제든지 그렇듯이, 설령 아무리 도덕적으론 본인들이 피해자같은 위치라 하더라도 어쨋든 상대방의 이미 흘러간 과거사에 집중하는 건 전형적인 문제를 해결하자는 게 아니라 그냥 소모적인 감정싸움이나 하자는 소리이다. 특히 그것도 지금 해당 담론의 상황처럼 이런 주장을 하는 화자 주체가 평상시에는 즐겁게 야짤이나 돌리다가도 페미니즘, 젠더 분쟁 관련 주제만 뜨면 난데없이 마치 엄근진하는 중장년층마냥 '순결', '정절' 이란 가치를 재발견하곤 하는 특정 쾌락주의적 남초 커뮤니티 중심일 경우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이런 모순점을 지닌 문제는 어디가서 설거지론을 당당하게 주장하지 못하는 근거가 된다.

이러한 처녀성 논쟁은 아직도 설거지론에서 떨어지지 못하고 처녀성 화폐론, 가산점론으로 붙어있는 상황이다. 서구권의  인셀과 마찬가지로 여자를 얻지 못한 남자들의 열등감 표출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다.[18] 실제로 설거지론은 인셀들의 사고방식과 비슷한 점이 많은데, 지나치게 여성의 처녀성에만 집착하고 페미니즘에 매우 적대적이며 (엄밀히 말하자면, 대안 우파도 아니라 인간 차별론자겠지만) 대안 우파 성향을 띤다는 점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2.10. 소결

설거지론이란 기본적으로 확고한 뼈대 없이 세워진 논리이기에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범주와 기준이 달라 제대로 논의하기 어려우며, 그에 따라 극단주의적 방향으로 흘러가기 쉬워, 사태 해결보다는 서로를 비방하는 데 중점적으로 쓰이는 논리라는 것을 비판한다.

페미니즘과는 다르게 설거지론이 원하는 것은 '화목한 가정'이라고 해도, 극단주의가 생기지 않을 근거가 되지 못한다. 페미니즘 또한 원하는 것으로 내세우는 것이 '여성혐오의 철폐'였으며 그에 대해 부정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극단주의자들이 많이 양성되고 있다. 근본 문제에 대한 해결이 아닌 피해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조롱[19]하고 사람들 간의 불화를 일으키기 쉽게 구조되었다는 점을 비판하는 것이다.

설거지론은 여성을 '다른 사람이 먹고 남긴 것=설거지'에 비유하는 것이고, 여성을 먹는 것으로 하찮게 여긴다는 것은 설거지론에 '설거지'가 빠지지 않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에 나쁜 아내라는 의미는 하나도 없다. 그리고, '설거지'라는 표현이 없어도 얼마든지 나쁜 아내를 표현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인간관계를 자원을 두고 싸우는 게임으로만 취급하면서, 인간관계에 존재하는 우연, 취향에 의한 요소들을 무시하게 된다는 점, 설거지론으로 인해 패배주의와 상호 불신을 유발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3. 비판에 대한 반박

이 곳에서는 설거지론과 그 옹호론에 대한 비판에 대한 반박과 추가된 비판 의견에 대한 반박을 다룬다.

3.1. 설거지론은 정의와 기준이 불분명한 뇌피셜이다?

설거지론의 핵심은 남성들이 결혼, 가정에 대해 지니는 책임감/부담에 비해 리턴(보상)이 너무 적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 핵심 중 하나인 남자들이 결혼에 대해 가지는 불합리할 정도로 막중한 책임감은 뇌피셜이 아니라 사실이다. 애초에 설거지론이 퍼지기 전부터 내무부장관, 늬들은 결혼하지마라 같은 드립들이 돌아다닌 데서 알 수 있듯이 설거지론에서 지적하는 문제점들은 많은 남자들이 공감하고 있었고, 그것이 설거지론이라는 형태로 새롭게 나타났을 뿐이다. 심지어 이건 경제력이 기준이기 때문에 정량적으로 평가가 가능하다.

2021년 10월 기준, 서울의 평균 아파트값이 12억, 경기권이 6억, 매매가 아닌 전세를 봐도 수도권 전세 평균이 4억 5천이다. 관련 기사 서울에 있는 대기업을 다니는[20] 소득 순위 상위권에 있는, 소위 벤츠라 불리는 남자들마저도 여가 생활을 최소로 하고 숨만 쉬듯이 사는 수도승 생활을 10~20년 해야 모이는 게 현재 서울의 아파트값으로, 이보다 못버는 사람은 아파트를 사기 위해서 얼마나 스펙을 쌓아야 하는지, 얼마나 절제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지 가늠조차 하기 힘들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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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보니 2016년 기준으로 미혼 남녀가 결혼을 못하는 이유를 조사해보면 남자는 1위가 "결혼할 경제력이 안 됨"이 나오는 것이다. 여성 또한 1위가 "상대 남성의 조건"이고 그 조건 중 가장 큰 게 경제력이므로, 남녀 모두 결혼 비용의 부담을 남자가 대부분 지는 걸 전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2022년 조사에서는 '적당한 상대가 없어서'라고 답한 경우가 여성이 남성보다 10%p 더 낮게 나왔으나, 여전히 여성 기준으로 상대 남성의 조건이 결혼을 못하는 주요 이유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이 정도로 경제적으로 막중한 부담을 지는 남자는 결혼을 하면 가장의 권위, 배우자의 정절 및 헌신, 재산 분배 등에 있어 남자의 우위를 인정하는 가부장적인 보상을 받았던 건데, 최근 들어서는 보상은 악습이라는 이름하에 없어졌고, 책임감은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살아 남았다.

이런 상황을 결혼을 앞둔 미혼 남성들이 " 공정하지 않다"라고 느낀 것이고, 이 기울어진 결혼 시장을 바로잡기 위해 보상을 부활하든지 (대표적인 예시가 처녀성 담론을 포함한 초창기의 설거지론이다.) 아니면 금전적 부담을 여성이 함께 지든지 둘 중 하나는 해야 한다는 의견을 모아 설거지론으로 표출한 것이다.

따라서 설거지론을 뇌피셜이라고 하려면 결혼 관계, 가정에 대한 남자의 책임감과 부담이 시간에 따라 유의미하게 감소했음을 입증해서 설거지론의 기본 전제인 '책임과 보상 간의 불균형'을 무너트려야 한다. 그 핵심을 건드리지 못하고 애먼 것을 공격해봤자 설거지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다는 얘기다.

3.2. 검증론과 관련 없는 주제이며, 결혼에 대한 자기주도적인 가치관의 부재이다.

배우자가 자신에게 맞는 배우자인지, 자신이 이미 했거나 또는 앞으로 할 결혼이 좋은 결혼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고, 이는 배우자와 조율할 문제이다. 만약 사람 여럿이 나서거나 정부가 나서서 색출해야 하는 범죄의 문제였다면 이런 검증론이 문제가 되겠지만, 엄연히 설거지론에서의 결혼은 개인의 문제에 국한한다. 남이 나서서 '그건 설거지다, 아니다'라고 대신 판단해 줄 수도 없으며, 그걸 판단하려 든다면 오지랖이고, 설령 객관적으로 설거지라 하더라도 정작 본인이 불만 없고 좋다면 사실 아무 상관도 없는 문제인 것이다.

설거지론은 의부증, 의처증을 부추기는 개념이 아니다. '나한테 잘 해주는 아내가 사실은 뒤에서 바람피우고 있는 게 아닐까?' 같은 의심이 아니라, '지금 이런 행동들이 과연 사랑이 있다면 할 수 있는 행동인가? 이게 제대로 된 결혼이 맞기는 한가?'라는 의문을 야기시키는 행태들에 대한 고민이기 때문이다. 머릿속이 아닌 행동을 보고 들어 생기는 1차적 감정에 대체 검증론이 어디에 낄 수 있는가.

설거지론이 이렇게까지 커진 이유는 검증 불가능한 애정의 문제가 아니라, 능력만 되면 애정을 얻을 수 있다는 잘못된 가치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채 결혼한 사람들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일부 여성들이 한 남자에 대한 진심이 담긴 애정이 아니라 오로지 그 남자의 능력같은 경제적인 조건만을 바라보고 결혼을 하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상대의 애정이 있을 것이라고 자기 나름대로 판단하고 결혼한 것이 아니라, 그런 판단 기준조차 부재했던 것이다. 검증론 운운할 게 아니라, 그냥 결혼 이전에 검증 자체가 없었다고 봐야 한다. 이런 결혼인 줄 알고 결혼을 했는가, 모르고 했는가에 대해서 냉정하게 자기 고찰이 필요한 것이다.

차라리 돈으로 여자를 사는 배금주의를 정말로 받아들인 사람이라면, 설거지론이 충격으로 다가오는 게 아니라 "너무나 당연한 얘기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라는 식의 반응을 보일 것이다. 사회적으로 강요된 가치관을 마치 나 자신의 주체적인 올바른 판단이었던 것인 양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던 사람들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설거지론의 비판론 중 결혼은 들러붙는 당사자와 결혼할지 말지 본인들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핵심은, 만일 처음부터 그 따위로 결혼생활을 할 요량이었다면, 성심을 다해 결혼생활을 할 것이 아니었다면, 애먼 남자 인생에 피해나 끼치지 말고 애초에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점이다.

3.3. 논리적 오류: 허수아비 공격

설거지론 비판론의 주된 논거 중 하나인 오용 및 왜곡 사례에 대한 비판은 간단하게 논파 가능하다. 관련 내용 대부분은 허수아비 공격에 해당하는 논리로, 설거지론이 비판받아야 할 하등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

이들의 논리적 오류를 정리하면 이렇다.
X(설거지론) → Y(설거지론을 왜곡 및 선동하는 사례 언급) → Y(왜곡)가 틀렸다 → 그러므로 X(설거지론)를 비판한다.
오용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 또한 비판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설거지론에 편승하여 일부 왜곡된 사견들을 설거지론으로 받아들이면서 공격하는 자체부터가 오류가 있는 주장이다. 그러므로 오용사례로 분리하여 비판하는 게 아니라 설거지론 자체를 공격하는 것은 근시안적인 비판일 뿐이다.

3.3.1.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에 대한 반박

착각하기 쉬운 점인데, 애정이라는 기준점이 불분명한 것과 기준점을 명시하지 않은 것은 다르다. 법률에서 선의, 악의의 기준점은 불분명하지만, 기준점은 명시한 뒤 그에 따라 재판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설거지론은 기준점이 있다.

게다가 커뮤니티 상에서 유부남 전체, 특정 세대 전체, 특정 커뮤니티 전체, 정치성향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는 글들이 '설거지론'이라는 포장지만 두르고서 보인다는 주장과 달리 이미 상당히 정돈된 담론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예시로 블라인드나 디시인사이드 반응 등에서는, 설거지론에 부합하는 이야기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비판 측의 주장인 기혼자 공격하기 위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없다. 때때로 과장되게 여성을 공격하는 측면에서는 맞는 말이나, 비판측에서 '기혼자도 공격한다'라는 프레임을 씌우려고 한다는 것은, '논제와 관계없는 평범한 기혼자'들까지 끌어들여서 자신들의 주장을 강화하려는 선동이다.

설거지론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유부남과 여성을 공격하려는 또다른 혐오 표현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설거지론을 설파하는 이들이 설거지론을 단순히 기혼자를 공격하기 위한 용도로 쓰고 있다고 지적하지만, 나무위키에 서술 등재될만한 근거규정에 따른 글은 없다. 실제로 '모든 기혼자들이 퐁퐁남이고 우리들은 설거지론을 지지한다'라는 커뮤니티 인기글은 없다.

이는 이러한 오류를 담고 있다.
갑: "설거지론은 모든 기혼자들을 비난(A)하므로 설거지론은 틀렸어(B)"
을: "설거지론이 모든 기혼자를 비난(A)한다는 말은 잘못되었고, 알게모르게 부당한 대접을 받는 남편들을 말해"
갑: "너 부모님에게 그런 말 할 수 있어? 내말이 틀렸다는 거니?"

3.4. 공포 마케팅은 확산에 영향을 미쳤을 뿐이다

이미 최소 10년 정도 존재했고 외국에서도 회자되었던 개념이지만 갑자기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것에 공포 마케팅이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렇기에 왜 이제 와서 여기에 불이 붙었는가에 대해 생각할 필요는 있다.

공포 마케팅의 대표적인 예시 중의 하나가 바로 매카시즘이다. 매카시즘은 공포 마케팅 중에서도 너무 많은 사회 문제를 야기한 아주 잘못된 예시 중의 하나다. 하지만 이 매카시즘이 뜨게 된 이유는 냉전 시대와 미국 내 사회주의의 확산, 실제로 존재하기는 하는 공산주의자 간첩과 그에 대한 반공정서 때문이다. 그 배경이 된 사회상 자체는 사실이었으나 이것이 과장되고 더 나아가 그 과장된 사실과 허위가 섞여 사회적인 열풍으로 정치적 활동, 행정적인 조치로까지 번졌기 때문에 부작용이 너무 컸으며, 해결하고자 했던 공산주의자 스파이 색출에도 실패했다.

그리고, 이렇게 공포 마케팅으로 확산된 문제 해결의 부작용을 심화시키는 것이 개인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움직이는 사회와 이 사회를 움직이는 군중 심리인데, 매카시즘은 결국 간첩 잡기였으므로 반드시 공권력과 정치권이 움직여야만 했고 이런 거대한 권력이 집행되면 부작용이 커지게 되었다. 페미니즘 또한, 공포 마케팅에 관련된 것들은 범죄와 관련된 경우가 많으므로 부작용이 크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하지만 설거지론은 사회의 양상을 설명하고 있지만 개개인의 행동에 달려 있을 뿐이지, 사회 구조상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개개인의 행동의 자유에 방점을 두고 있으므로 부작용이 상대적으로 적어지게 된다.

이러한 공포 마케팅의 양상은 경계할 필요가 있지만 개념 자체가 이미 존재했었으니 부정 자체를 하기 어렵고 이렇게까지 확산될 수 있었던 사회적 배경을 돌아보는 동시에 사실을 최대한 직시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직 이런 사실을 직시하는 행동을 부정하거나 방해하는 요소가 설거지론 자체에는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에[22] 공포 마케팅의 양상을 피하면서도 사실 자체를 직시하면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3.5. 혐오 프레이밍과 일반화는 설거지론 자체에 있지 않다.

페미니즘에서 말하는 결혼을 한 번 보자. 이 때 결혼에서 발생하는 여자의 문제인 '여자의 사회적 지위의 단절'이나 '남자의 지배, 구속당하는 환경'과 같은 것들은 어떤 남자를 만나든, 남자가 무엇을 하든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페미니스트에게 공감을 많이 받았던 82년생 김지영에서도 남편 정대현은 대중들이 흔히 생각하는 아내를 못살게 구는 남편[23]과 많이 동떨어져 있다. 정작 정대현이 김지영을 괴롭게 하는 것들은 친정가기, 자식 낳기, 애보기 등 일반적으로 결혼을 하면 하는 행동들이나 결혼을 하는 이유 그 자체다. 즉, 아무리 좋은 개인을 고른다 하더라도 반드시 발생하는 문제이며, 이것을 '남성 위주의 사회가 문제다'로 한데 뭉뚱그려버린다. 개인의 문제로는 벗어날 수 없으니 남성, 여성으로 개개인을 프레이밍해야 하고 최대한 사회적 행동을 촉구하는 것이며, 이게 잘못 확장되면 위의 매카시즘처럼 이 행동에 부합하지 않는 사실들을 일부러 쳐내야 유지되는 것이다.

하지만 설거지론은 그 자체에 일반화의 논리가 없다. '이런 부부도 있다'라는 주장이 널리 확산이 되었을 뿐이지, 어떤 배우자를 만나도 반드시 맞닥뜨리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차피 한국 여자는 다 그렇고, 결혼한 남자는 다 퐁퐁단'이라는 말은 인터넷 댓글에나 보이는 드립이지, 범사회적으로 인정될 만한 말도 아니고 하물며 그 인터넷 사이트조차 여러 곳에서 불탈 이유가 저런 성급한 일반화에 있지 않다. 내가 좋은 배우자를 만나서 행복하게 살거나, 그런 좋은 배우자를 만나지 못하면 아예 결혼을 안 하면 해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미 결혼을 했든, 또 앞으로 하든 안 하든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충분히 갈 수 있는 논제이고, '결혼을 했다면 남자와 남성 위주의 사회에 굴복한 흉자'같은 몰이가 나오기 어려운 이유다.

박정원이 "퐁퐁남도 아무나 되는 거 아니다. 그런 거 걱정하기 전에 최소 월에 실수령액으로 천에서 2천은 벌 능력이나 갖춰라. 애초에 일반적인 남성들은 설거지녀 레이더에도 못 들어간다"고 해당 단어를 비웃은 것도 # # 역설적으로 결혼이니 연애니 하는 문제로 골치 아픈 것도 결국 돈 좀 있고 능력이 되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특권 같은 것이고, 돈 없고 능력 없는 사람은 연애나 결혼 관련해서 '사랑'에 속아 사기 피해를 당하는 것마저 쉽지 않다라는 불편한 현실을 드러낸 발언이다. 퐁퐁남이니 설거지론이니 하는 용어가 명백히 남녀차별이고 여성혐오적이며 사람들 앞에서 사용하면 딱 "나 사회성 모자란 인간임"이라고 시인하는 문제적 표현임이 틀림없음에도 # # # # # "사랑이라는 감정만으로 모든 논리적 판단도 뒷전으로 밀려나야만 하느냐(혹은 그렇게 하는 것이 맞느냐)"는 물음은 쉽게 답을 내리기 어렵다.

3.6. 설거지론과 페미니즘의 다른 점

설거지론에서 처녀성이 아닌 금전적인 부분은 이미 해외에서 논쟁의 대상이 된 지 오래인 사회 현상이다. 그리고 그 설거지론이 나름 일리가 있다고 느끼는 남자들이 많아지고 이들이 결혼에 대해 신중론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면서 동거, 사실혼, 미혼 출산이 증가하였다.

설거지론은, 이 문서에서조차, 설거지론이 막 태동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설거지론이 옳고 틀린지에 대한 엄청난 검증을 거치려고 노력한다. 또한 나온지 며칠 되지도 않았기에 오남용 사례또한 초창기인데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오남용에 대한 큰 관심과 우려를 표하고 있다.

페미니즘이 퍼지게 된 가장 큰 이유중에 두가지를 짚으면, 첫째로 기본 페미니즘은 남녀 모든 사람들이 공감했던 여성 인권문제로 시작되었다. 둘째로 현 레디컬 페미니즘은 여성 집단 이기주의로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래서 관련 학회나 논문, TV, 강연등의 대중매체까지 여러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에 반해 설거지론은 설거지란 단어를 다른 단어로 대체하지 않는 한 처녀성 요소를 자를 수 없기 때문에 널리 공감을 살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그래서 오남용이라고 해봐야 인터넷 게시글 정도지, 페미니즘처럼 국가단위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힘이 없다.

3.7. 설거지론 비판에 대한 기초적 한계

비판측에서는 이론적인 확실한 기준점을 두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관련 내용이 사랑(정량적 사고로 접근할 수 없는 요소)과 돈을 주제로 삼기에, 과학적, 통계적으로 확실한 기준점은 특이점이 지나지 않는 이상 완벽하게 만드는 게 불가능하다.

3.8. 소결

설거지론이란 받아들이는 범주와 기준이 달라 제대로 논의하기 어렵다고 해도 왜곡된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의 매체만을 집중해, 그것이 전부의 생각인 것처럼 설거지론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히 옳지 못하다. 그리고, 남들이 신는 신발을 신어보는 것처럼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비판 문단처럼 결혼 이후 여러 이유로 서로간에 애정이 식는 상황 등을 말하는 게 아니다. 애정도 없고 가정에 대한 책임을 다 하지도 않으면서 배우자가 벌어오는 것을 무절제하게 낭비하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 설거지론이다.


[1] '네가 더 잘 알지 않느냐?' '딱 보면 느끼지 않느냐?'라는 식으로 자의적일 수밖에 없는 판단을 필요로 한다. [통계예시] '신혼 집 마련'의 경우 부부가 반반이 20.5%, 여자가 더 많은 4:6이 11.5%로 (2019년) 결혼하는 남자의 최소 32.6%는 설거지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 전체 결혼 비용을 기준으로 했을 때(2020년)는 남성의 반반 결혼이 21.6%니 최대(여성이 더 많이 분담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78.4%의 결혼 남성이 잠재적인 설거지 후보다. # 소득을 기준으로 삼았을 때, 일단 맞벌이 유무로 기준을 삼았을 때 약 39.7%의 신혼 남성이 외벌이로 가정의 경제를 짊어지므로 # 대략 40%의 신혼 남성은 잠재적인 설거지 후보라고 볼 수 있다. [3] 제아무리 잘나고 똑똑한 사람이 스스로 인증한 검증론이라도 신중하게 생각하고 걸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누구나 오판을 하기 마련이고, 누구나 편견과 몰이해를 그리고 불안과 공포를 가지고 있다. 즉 애초부터 이런 검증이 맞는지 안 맞는지부터가 고민이고, 그걸 실행하는 내가 과연 그런 검증을 할 만큼 인간관계와 인간에 대한 특출난 판단력을 지닌 객관적 존재인지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다. [4] 여초 사이트에서 이런 공포 담론을 선동하는 사람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남들 눈에 훤히 보이는 이중잣대가 검증을 하는 주체라는 사실에 몰입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전혀 보이질 않는 것이다. [5] 대표적으로는 설거지론을 반박하려면 '본인이 행복한 것', '상대방이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면 된다는 논리가 있다. # [6] 참고로 이처럼 실제 사례에 기반한 공포를 들고와서 상대방에 대한 검증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대표적인 사람들이 남초 사이트에서 그토록 혐오하는 트페미들이고, 트페미들은 그럴싸한 현실 사례에서 느낀 공포에서 출발해서 페미 논리에 중독된다. [7] 일례로 한국에선 3일에 한 명씩 가정폭력으로 여성이 죽는다는 자료를 가져와 한국의 가정폭력이 심하다는 식으로 얘기를 하는데, 한국 여성은 대충 2500만명이다. 이중 백몇십 명에게 일어난 일은 분명 비극이지만 통계적인 의미는 지니지 못한다. 이것 외에도 몇몇 뉴스에 나올 법한 사건들을 끌어와 한국의 여성인권이 심각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다. [8] 단, 여성학과 젠더학은 제외. [9] 실제로 펨코에서도 관리자가 설거지론 관련 글만을 작성하려고 사이트를 가입하거나, 그간 사이트에 아무런 활동이 없다가 갑자기 활동을 시작하여 일부로 설거지론 글을 달리며 싸움을 붙이는 계정들이 있다고 했다. # [10] 페미니즘 논자들이 주로 써먹는 맨스플레인, 백래쉬, 여성혐오 같은 개념들이 비판받는 부분이 설거지론의 한계에 대한 비판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즉 이미 감정으로서 답정너식 결론을 내려놓고 거기에 설명을 가져다 붙여본들, 그게 합리적인 분석이나 연구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 [11] 실제로 여성시대에서 다음 카페 익명게시판 개편 사건 당시 몇몇 유저들이 익명으로 기혼 여성 내지는 아들을 둔 엄마들을 가장하여 게시글 및 댓글 조작으로 이들이 한심한 사람들처럼 보이게 여론조작을 한 것이 드러난 적이 있다. [12] 일반적으로 여기서 말하는 설거지 모델 상으로는 아내에 해당하는 말이지만 일부 여성의 경제적 능력에 의존하는 반대의 경우도 있으며 역으로 돈과 사회적 직위가 있으면 자동으로 애정이 따라온다고 생각하고 결혼하는 경우도 무시하기는 어렵다. [13] 물론 여기서 다수는 인터넷 커뮤니티 또는 유튜브에서의 다수이다. 이들이 현실세계에서는 어떤 취급을 받는지는 과거 일베가 득세했을 때의 시례를 봐도 일 수 있다. 현실 언론, 전사회적/전국민적 여론, 정부 기관이 일베에 공감하고 동조하는 것을 본 적 있는가? 최근 정치사회권 여론이 인터넷에 관심을 쏟고 있다 해도, 아직 커뮤니티, 유튜브 댓글은 불건전한 것으로 사회에 취급된다. [14] 참고로 공산주의 이론은 그 거두 3명만 해도 '인류 역사' 레벨에서 논의 가능한 수준의 사상가인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이다. 그런 사람들이 손보고 집대성한 이론도 기본적으로 오류와 현실 접목의 문제로 점철되어 있고, 누군가가 왜곡하려거나 변용하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건데 인터넷 떡밥에 그런 문제가 없고 있어도 그 문제가 작다? 마르크스가 무덤에서 발작을 일으킬 소리다. [15] 당장 인터넷에서 '처녀와 결혼하지 않으면 무조건 설거지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나, '결혼한 놈들은 전부 퐁퐁단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때, 무엇을 근거로 그들에게 '저건 설거지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만일 '저들에겐 사랑이 있으니까 설거지가 아니다'라고 한들, '사랑이고 자시고 아내한테 져주는 것들이 어떻게 설거지가 아니냐?'라고 한다면 그것은 또 어떻게 반박할 것인가? [16] 사랑 없이 결혼한 것과 경제적 부담을 더 많이 지고 결혼한 것 중 어느 쪽이 설거지인가? 혹은 둘 다이거나 둘 다 아닌가? 아니면 두 가지 경우에 모두 속해야지만 설거지인가? 사랑으로 결혼했지만 결혼생활에서 사랑이 식어버린 경우는 설거지인가? 결혼 이전의 성생활은 설거지와 관련성이 어느 정도로 있는가? 등의 기준점을 잡을 질문들에 대한 답을 낼 수 있어야 한다. [17] 이는 초창기 설거지론이 야갤에서 혼전성교에 따른 이혼률 연구 결과를 가져오는 것 등으로 알 수 있다. 정작 남초 커뮤에서 여친이 혼전순결주의라는 글이 올라오면 그 여성을 비난하는 댓글이 수도 없이 많다. #1 #2 #3 [18] 남초 커뮤니티에서조차도 이런 점이 여러번 지적되기도 했다. # [19] 퐁퐁단, 똥탄 등 조롱을 담은 단어들을 만들고 있다. [20] 서울에 있는 대기업 초봉이 4000~6000 사이다. [21] 물론, 빌라 등 아파트보다 못한 주거형태로 가든지, 수도권을 포기하게 되면 금액이 내려가긴 한다. 하지만 이것도 두 가지 중대한 문제가 있다. 하나는 지방은 현장직을 제외한 일자리가 매우 부족한 상황이며, 두 번째로 결혼 당사자인 여성들은 대체로 수도권 또는 대도시를 선호한다는 사실이다. 외교관들의 냉탕/온탕 논란, 교사들의 지방 근무 기피 등 뇌피셜이 아니라 실제로 여자들이 지방을 기피하고 있는 게 하나하나 쌓여 사회 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다. [22] 매카시즘은 그 자체에 원천봉쇄의 오류가 자리잡고 있다. [23] 경제력이 부족하다거나, 바람을 핀다거나, 아내를 때린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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