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샤 드라쿨리치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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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 1999 |
사샤 드라쿨리치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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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의 前 축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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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사샤 드라쿨리치 Saša Drakuli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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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등록명 | 샤샤 | |
출생 | 1972년 11월 5일 ([age(1972-11-05)]세) | |
유고슬라비아SFR 크로아티아SR 빈코브치 | ||
국적 |
[[세르비아|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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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190cm | |
포지션 | 중앙 공격수 | |
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
FK 바치카 BP (1990~1993)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1993~1994) 부산 대우 로얄즈 (1995~1998) 수원 삼성 블루윙즈 (1998~1999) 가시와 레이솔 (2000)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0) 성남 일화 천마 (2001~2003) AEK 라르나카 FC (2004~2005) FK 보이보디나 (2005) → FK ČSK 피바라 (2006 / 임대) FK 믈라도스트 아파틴 (2006~2007) FK 보이보디나 (2007~2008) FK 프롤레테르 노비사드 (2008~2010) FK 믈라도스트 아파틴 (2010) FK 세멘트 베오친 (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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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세르비아(구 유고슬라비아 SFR)의 전 축구선수. 2010년에 FK 세멘트 베오친에서 뛰었다.본명은 사샤 드라쿨리치(Saša Drakulić)인데, 한국에서는 샤샤라는 등록명으로 뛰었다.
K리그의 전설적인 외국인 공격수. 부산 대우, 수원 삼성, 성남 일화 세 클럽의 황금기를 이끈 레전드. K리그 역사상 최고의 팀을 꼽을때 늘 거론되는 1997년 부산, 1998~99년 수원, 2001~03년 성남 3팀의 주전 스트라이커로 활약했다. K리그에서 그가 뛴 클럽은 모두 우승하여 우승 청부사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다.
2.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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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대우 로얄즈 시절 |
1993년 고국 클럽인 FK 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 프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1995년에 부산 대우 로얄즈로 이적하여 K리그에 입성했는데, 이 때 정재권, 김주성, 마니치, 우성용[1]등과 함께 로얄즈 왕조를 이끌었고 1997년 K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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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 |
1998년에 신흥 강호팀이던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했는데, 이적 첫 시즌에 8골을 넣으며 팀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고, 두번째 시즌인 1999년에는 18골로 K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그리고 그 해 부산과의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 연장 골든골을 기록하며 팀의 K리그 2연패를 이끌었다. 하지만 이 결승골이 손에 맞고 들어간 골이라 크게 논란이 되었다. 영상[2] 이른바 한국판 신의 손 사건. 이로 인해 당시 MVP 수상이 유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격을 사실상 박탈당해 k리그 역사상 최초로 준우승을 차지한 부산의 안정환이 MVP를 수상했다. [3]
어쨌든 이 때의 활약으로 2000년 초 J리그 가시와 레이솔로 이적하게 되지만 모친상이 겹치는 등 2경기 출장에 그쳤고, 결국 2000년 5월 9일 황선홍과의 사실상 맞트레이드를 통해 반년만에 다시 수원 삼성으로 복귀하지만 별 활약은 하지 못하고 다시 방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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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일화 천마 시절 |
2001년 1월 성남 일화 천마와 3년 계약을 맺은 뒤 이적하여 성남의 3연패에 큰 공을 세우고 2003년 말 계약기간이 종료된 후 K리그를 떠났다.
3. 은퇴 이후
은퇴 후 한국을 방문해 인터뷰하는 모습. 전성기 시절에 비하면 완전 미중년이 되었다..
은퇴 후 1년간 고향 지역의 팀 FK 보이보디나의 구단주를 맡기도 했었다. 2015년 9월경 한국을 방한하여 스포츠서울과 인터뷰를 가졌다. 샤샤 인터뷰 1편 샤샤 인터뷰 2편
2018년 2월에는 전지훈련 겸 평가전 일정으로 튀르키예 안탈리아를 찾은 대표팀과 마주치기도.
4. 플레이 스타일
190cm에 이르는 큰 키로 헤딩력이 매우 우수했으며 피지컬이 좋아서 몸싸움에 능한 타겟형 스타일의 공격수였다. 평소에는 골대 앞에서 어슬렁 어슬렁거리는 듯 했으나 한 방이 위력적이라서 수비수들에게 매우 피곤한 스타일의 공격수. 허나 확실히 스피드는 없다시피 했다. 2002 한일 월드컵 준비 기간 중 한창 귀화설이 나돌때 공항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과 마주쳤는데 히딩크 감독은 샤샤에게 "내가 너보다는 빨리 뛸 수 있다."고 말했다. 참고로 이 때 히딩크는 다리가 불편해서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고 있었다. 즉, 귀화해도 샤샤를 기용할 일은 없을 것이라는 말과, 보완해야 할 약점을 동시에 일러준 것.5. 여담
- 수원에서 뛰던 시절 자신의 모국 유고슬라비아에서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샤샤의 고향이 폭격을 당한 적이 있었다. 그 때문에 샤샤는 가족들을 몹시 걱정했었고, 경기 중에 골을 넣고 " 나토는 당장 폭격을 중단하라"는 티셔츠 세레머니를 한 적이 있다.[4] 다행히 삼성그룹에서 샤샤 가족들의 안부를 알아봐주고 한국으로 대피까지 시켜줬다고 한다. 그래서 샤샤는 이를 몹시 고마워 했다고 한다.
- 자기 최고의 커리어를 쌓게 만든 K리그에 대한 애정이 매우 커서 동유럽으로 돌아간 후에도 K리그 몇몇 구단에 동유럽 선수들을 추천해주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선수가 K리그 최고의 공격수로 자리잡은 데얀 다먀노비치.[5]
- 다만 다소 거만한 성격이고 자신이 팀의 중심이 되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는 이야기가 들리는 편이다. 그러다가 신태용에게 뺨을 얻어 맞은 이야기도 유명하다.
[1]
로얄즈 시절의 우성용은 득점력이 그렇게 좋은 공격수는 아니었다. 나이를 먹고 나서 전체적인 기량이 만개한 케이스.
[2]
당시 경기를 진행했던 주심은 중국인인 순바우지에였는데, 이는 연맹 측에서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 공정한 경기진행을 유도하고자 한국인 주심이 아닌 제3국의 주심을 기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도와는 달리 챔피언결정전은 희대의 오심과 함께 마무리되었고, 이후 K리그에서 중국인 주심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3]
신의손 사건만 없었더라면 수원이 준우승을 차지하더라도 샤샤의 mvp는 유력했다.
[4]
이 당시는 전세계의 축구판에서 유고슬라비아 출신 선수들이 골을 넣으면 전부 다 하는 세레머니였다.
[5]
K리그 역사상 외국인 선수 최다 출전 1위, 외국인 선수 최다 득점 1위, 역대 득점 2위에 랭크된 명실상부 K리그의 레전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