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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1 01:28:05

삼칠이(유튜버)

1. 개요2. 상세3. 인물4. 비판5. 기타

1. 개요

해당 유튜브 사이트
삼국지 랭킹전

삼국지 관련 주제를 정해 인물 순위를 매기거나, 삼국지 사건이나 인물을 다루는 역사 리뷰 유튜버. 이름의 유래는 '삼국지 랭킹전' 에서 첫글자 '삼'을 3으로, 마지막 글자 '전' 에서 'ㅓ'를 7로 바꿔서 '37' 이다.

2. 상세

본문을 시작하기에 앞서, 제 채널의 영상은 오로지 사서의 기록을 바탕으로 한다는 걸 알려드립니다. 이건 제가 뽐내고 뭐고 하는 게 아닌 것이, 전 항상 팩트를 전달해야 한다는 중압감을 느끼고 여러분들께 혹시나 잘못된 지식을 알려드리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있어요. #

정사를 위주로 삼국지에 관해 설명하는 컨텐츠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1] 영상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직접 그리는데, 삼국전투기마냥 컨셉을 정해 놓고 캐릭터 디자인을 정했는지 캐주얼하고 코믹하다. 몇몇 캐릭터는 특정 작품의 유명 캐릭터를 패러디하기도 했는데 짱구는 못말려의 철수와 짱구를 패러디한 헌제 유장이나, 날아라 슈퍼보드의 저팔계, 사오정을 패러디한 이각과 곽사, 원피스의 보아 핸콕을 패러디한 하태후, 건담을 패러디한 공손찬등이 있고, 만화 캐릭터 이외에 유명인 패러디도 있는데 대표적인 캐릭터가 문재인으로 패러디된 노식, 황선홍으로 패러디된 황보숭, 최순실로 패러디된 황호, 을용타를 패러디한 나헌등이 있다.

캐릭터 디자인처럼 컨텐츠 진행도 진지하게 설명하는 것보다는 이미지를 이용해 개그와 적당히 저울질을 한다. 연의만 알고 있거나 정사를 다 파악하지 못한 삼덕들을 고려한 듯. 그래서 삼국지에 대해 어느 정도 기본적인 것만 알고 있으면 이해하기 쉽다.

3. 인물

3.1. 조비

삼칠이의 밥줄 조비는 조조의 3남[2]으로 조조를 이어 후계자가 되었다. 나무위키 문서를 봐도 알겠지만 성격적으로는 찌질하고 졸렬한 소인배지만 능력에 대해서 만큼은 다소 의견이 갈린다. 아버지만은 못하지만 나름 잘한 것도 있다는 의견도 좀 있는 것. 그래서 나아가 '조조의 후계자 몫은 충분히 했다'라고 평하는 사람도 있다. 다만 삼칠이의 경우에는 절대로 칭찬 한 번 하지 않고 심심하면 디스한다. 물론 역사왜곡까지 해가며 어거지로 까는 건 아니고, 모 영상에서 '조비 능력 칭찬할거면 맘대로 칭찬하세요'라고 말한 적도 있는 등 조비에 대해 자신과 반대되는 의견을 쌩무시하진 않는다. 어디까지나 매우 싫어하는 걸 거리낌없이 드러낼 뿐이다.

오죽하면 삼국지 랭킹전 #77 '오지게 오래 산 오나라 인물 TOP 5" 이나 삼국지 랭킹전 #73 '사탄도 울고 갈 최악의 악녀'등 조비와는 전혀 상관 없는 주제의 영상에서도 돌려까기를 시전한다. 사이코 미친 놈이라고 디자인부터 조커 복장을 입혀놨으며, 조커 댄스 역시 조조 사망 후 신명나게 즐기는 모습으로 패러디했다. 이것 또한 조비가 아버지의 상중에 잔치를 열고 실컷 놀았다는 기록을 근거로 한다.

예컨대 삼국지 랭킹전 #4 '미래를 예측한 삼국지의 현인들 TOP 10'에서는 "조비는 스스로 자신의 군사적 재능을 꽤나 높이 평가했던 것 같습니다."를 시작으로, 조비의 말대로 유비가 육손에게 패하자 놀랍지 않냐면서 '조비는 이후 대국 위황제의 이름으로 국력을 총동원하고 오나라로 매번 친정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어요.', '조조의 장남이라 후계자가 되어놓고, 자기는 아비 발끝에도 못미치는데 아비를 이긴 적도 있는 유비를 평가하냐'고 팩폭을 때렸으며 조비가 태자로 책봉받고 신나서 신비를 껴안고 날뛰자 신헌영이 그의 경박한 행동을 비판했다는 일화는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신헌영은 얼탱이가 나가, "태자라는 중한 자리에 올랐으면 근심걱정과 함께 국가를 두려워해야 할 것이지, 오히려 기뻐하다뇨. 위나라가 오래가긴 틀렸습니다!" -

'삼국지 랭킹전 #5 삼국지 최고의 스나이퍼. 명사수 TOP 10'에서는 5위에 랭킹된 조진이 조비와 친했다는 얘기를 하다가 그거 아시나요? 조비는 사냥에 거의 미친 인간이어서 아비의 상중에도 사냥을 나갈 정도였어요. 하며 조비의 패륜행각을 까고, 마지막에는 조진을 평하며 조비의 친구지만 굉장한 명사수라 하여 역시 친구는 잘 사귀어야 한다는 교훈을 남긴다.

'삼국지 랭킹전 #7 삼국지에서 가장 어이없는 최후 TOP 10' 영상에선 10위에 양준을 랭크했는데, 양준은 조조 앞에서 조식을 칭찬했다가 조비에게 밉보인 인물이다. 후일 조비는 제위에 오르고 행차를 나갔다가 '저잣거리의 열기가 가득하지 않다'는 이유로 해당 지역의 태수였던 양준을 잡아들여, 주위의 만류도 씹고 자결을 명했다. 이 일을 소개하면서 삼칠이가 평하길, 인성종결자 조비가 오늘도 한 건 했습니다.

'삼국지 랭킹전 #13 망한 자식 농사 TOP 10' 에서는, 조위가 조조부터 쳐도 겨우 6대만에 망한[3] 이유를 두고 "스타트를 잘못 끊었어요!" 하고 성토했다. 한때 조비가 조조의 재능을 다 물려받아 전성기를 이끈 성군으로 평가된 적도 있었다는 얘기를 비판적으로 소개하면서 개뿔 나라가 46년밖에 못갔는데 무슨 전성기 라며 반박한다. 그리고 정사 삼국지의 저자 진수가 조비를 극찬한 평을 소개하고 그 진의를 해석했는데, 진수의 평은 다음과 같다.
문제(조비)는 천부적인 문학적 소질과 넓은 지식을 갖추고 있었고 기억력이 탁월해 다방면으로 재능을 갖추었다. 만일 여기에 도량이 약간만 더 크고 공평한 마음 씀씀이에 힘쓰며 도의의 존립에 노력을 기울이고 마음에 덕망이 가득했다면 그 옛날 명군이 그리 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삼칠이가 꿰뚫어본 진수의 평가의 진의는 아래와 같다.
조비는 도량도 작고 치졸하고 도리도 모르고 덕망도 요만큼도 없어 명군이라 불리기 멀었다.

아예 조비의 인성질을 주제로도 랭킹전을 하나 기획했으니 '삼국지 랭킹전 #37 조비 인성질의 최대 피해자 TOP 10'. 여기에는 조비의 아버지인 조조도 랭크됐는데, 조비 말고 다른 아들들은 멀쩡했는데[4] 조비는 황제치곤 너무 수준미달이었다며, 그런 조비를 적자로 낳아놓은 조조도 순위에 이름을 올리기 충분하다고 평한다.

'삼국지 랭킹전 #64 삼국지 최악의 소인배(찌질이)들 TOP 5'에서는 여포, 양의와 같은 쟁쟁한 경쟁자들을 전부 쳐바르고 모두가 예상한 대로 조비를 1위에 올렸다. 영상 말미에 드디어 조비를 1등으로 올렸다고 좋아했는데, 구독자들 사이에서는 조비를 1등에 올리려고 영상을 만들었다는 소리까지 나왔을 정도다.

삼칠이의 계속되는 조비를 까는 행적에 구독자들은 "삼칠이가 영상을 제작하는 과정 : 1.정사에서 조비를 깔만한 내용을 찾는다 2.그거랑 연관되는 랭킹주제를 정한다 3. 조비를깐다" 라고 할 정도로 수시로 조비를 까고 있다.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삼칠이가 실제로는 조비를 좋아하는거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이 채널의 떡상을 이끈 요소로 엘프화된 유비와 함께 이 조비가 이 채널의 성장에 큰 기여를 한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3.1.1. 기록

삼국지 최악의 찌질이 1위
삼국지 복수의 화신 3위
삼국지 최악의 황제 5위
미래를 예측한 삼국지 현인 5위
자신을 주제로한 조비 인성질 최대 피해자 TOP1010명이나 되네 아차상도 이나 있다이라는 랭킹전 제작됨

3.2. 유비

삼칠이 유튜브에서 '촉'을 상징하는 인물. 엘프 귀를 달고 있는데 남성임에도 외모가 뛰어나서 팬도 나름 있다.[5] 순진하고 바보같은 이미지지만 이릉대전부턴 진지하게 묘사된다. 피눈물을 흘리기도.

3.2.1. 기록

미래를 예측한 삼국지 현인 4위
한을 위해 불태운 충신 1위
망한 자식농사 1위
가장 쿨한 유언 1위
삼국지 최고의 덕장 2위
삼국지 연의 최대 피해자 4위
정사와 연의가 아예 다른 인물 5위
유비군 세력 1위
조조를 이긴 사람들 5위
삼국지 최악의 배신자 6위
자신을 주제로 한 유비를 좋아한 다른 세력 사람들 TOP 5, 유비를 싫어한 유비의 사람들 TOP 5라는 랭킹전 제작됨

3.3. 조조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답게 다양한 랭킹에 이름을 올렸다. 섬칠이 유튜브에서 '위'를 상징하는 인물. 은근 허당끼가 있다.

3.3.1. 기록

정사 기준 최고의 지휘관 1위
망한 자식농사 5위
섬국지 최고의 잔머리 1위
삼국지 최고의 덕장 3위
복수의 화신 1위
조비 인성질 최대 피해자 1위
위기에 강한 상남자 1위
조조군 서열 번외
유비를 좋아한 다른 세력 사람들 1위
자신을 주제로 한 랭킹전:조조가 억울하게 죽인 사람들 TOP 5, 조조를 이긴 사람들 TOP 10, 조조가 사랑한 유부녀 TOP 5

3.4. 제갈각

삼칠이가 인정하는 재능으로 따지자며 삼국지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인물. 얘기거리가 많다고 한다. 그를 주제로 한 랭킹전을 만들고 있다고.

3.4.1. 기록

인성때문에 망한 능력자 1위
삼국지 최고의 아가리 파이터 1위
위트가 넘쳤던 인물 5위
제갈량, 사마의 이후 최고의 재능 4위

3.5. 나관중

제가 만약 편집장이었다면 나관중한테 원고를 집어던지며 다시 써오라고 했을 걸요.
- 연의에서 서황이 맹달에게 죽는다는 전개에 관해 남긴 평.

기본적으로 정사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삼국지연의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을 나타낸다. 애시당초 연의는 소설이니만큼 원래 역사와 다른 점이 있고, 나관중 본인이 열렬한 촉빠심을 전혀 숨기지 않고 오히려 자랑하듯이 썼기 때문에 위/오빠 입장에선 뒷목 땡기는 내용이 많다.[6][7]

물론 삼칠이가 나관중을 나쁜 놈이라고 비난하거나 씹으면서 저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나관중이 연의집필을 위해 많은 조사를 했고 소설가로서의 역량도 탑티어급이라는 것은 인정한다.[8] 다만, 실제로는 능력자였던 우수한 인물들이 촉한 인물들을 띄워주기 위한 용도로 소비/너프된 것을 아쉽게 여기며, 연의는 재미있는 소설이지 정사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입장. 영상에서 삼국지연의/피해자들을 논할 때 나관중의 뻥카를 웃음버튼이나 개그 소재로 삼는 정도다. 연의의 뻥카 그 자체보다는 그런 개뻥을 그럴싸하게 풀어낸 나관중의 필력에 헛웃음 섞인 감탄을 보내는 정도. 따라서 삼칠이의 나관중에 대한 평은 이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이자, 희대의 주작러다.

예를 들어 #48 연의의 최대 무리수에서 주유를 '제갈량에게 열등감을 품은 적이 없고 연의에서만큼 관심을 두지도 않았으며, 천하이분지계를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었지만 젊은 나이에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안타까운 능력자'라 평가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의에서는 제갈량에 대한 열등감에 빠진 찌질한 놈으로 만들어서 주유라는 인물의 가치를 퇴색시켰다며 그 점을 비판했다. 다만 주유에 대해서 오히려 연의의 저평가때문에 너무 고평가 받고 있다는 반론도 있는 만큼, 개인의 판단이 많이 가미된 점을 걸러 들을 필요는 있다. 삼칠이 본인은 확실히 주유를 고평가하고 있다.

조조에 대해서도 최근 벌어지고 있는 조조의 신격화된 재해석들(창천항로, 진삼국무쌍등)을 인간미가 없는 재해석이라 평가하면서, 오히려 나관중이 만들어 낸 호탕하면서 유비와는 다른 매력을 지닌 간웅으로서의 이미지를 훨씬 높이 평가하기도 한다.

3.6. 역사관

서주 대학살, 적벽대전, 한중 쟁탈전을 매우 중요하게 평한다.

서주 대학살은 조조의 부친 조숭이 서주 땅에서 도겸의 부하 장개에게 살해당하자, 조조가 부친의 원수를 갚겠답시고 서주의 민간인들을 학살한 사건이다. 현대인의 시각에는 말할 것도 없고 당대 사람들조차 경악했던 천인공노할 악행이었으며, 이로 인해 서주가 두고두고 반(反)조조의 기반이 되는 등 나비효과가 발생했는데, 삼칠이는 그 나비효과의 중심으로 제갈량 노숙을 꼽는다. 두 사람 모두 서주 출신이고, 서주 대학살 이후 고향을 떠나 남방으로 내려갔다.

그는 적벽대전과 한중 쟁탈전 또한 서주 대학살의 나비효과로 발생한 사건이라 말하며, 적벽대전은 천하삼분지계의 기반을 만들었고 한중쟁탈전은 조조의 은퇴식이었다고 평한다.

나비효과를 떠나서 서주 대학살에 대한 옹호 의견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한다. 서주 대학살은 2세기 중국인들의 눈에도 천인공노할 악행이었고, 사람과 가축의 시체로 강이 메워졌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매우 끔찍한 사건이었다. 조조의 패전 기록을 은근슬쩍 윤색하는 등 편향적인 시각이 있는 진수의 정사 삼국지조차, 서주 대학살에 대해서는 살육이라는 단어로 직필하고 있다. 일부 사람들이 서주 대학살을 전략적 묘책이었다느니 하는 말로 옹호하려 하지만, 삼칠이는 이에 대해 '도겸과 유비를 몰아내지 못하고 애꿎은 백성들만 죽여놓고 무슨 전략이냐? 결과적으로 서주를 먹기라도 했냐?[9]' 하고 반론했다.
끔찍한 잔혹행위이자, 분노조절장애가 일으킨 실패한 복수극, 그것이 서주 대학살의 본질인 것입니다.

그래서 해당 영상에서 보듯 서주 대학살을 전략적 선택이라고 한 적이 있는 임용한을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모습을 보이고[10][11] 유선을 현군이라는 촉빠들이 들으면 이를 갈면서 뭔 개소리인가 싶은[12] 내용을 서술하고 천하삼분지계를 만들어낸 적벽대전의 의미를 퇴색시킨 삼국지 해제를 매우 싫어한다.[13]

4. 비판

촉빠 성향이 극단적이리만큼 상당히 강하며 랭킹을 매길때 좋은 내용은 항상 유비와 그 휘하 장수들이 거의 늘 1,2위를 차지해먹고 촉 소속의 인물이 터럭만큼이나마 조금이라도 잘한게 있으면 천하의 기재나 명장 취급이며, 심지어는 촉에 망명해 생활했다는 이유만으로 장수조차도 아닌 하후씨 왕원희급의 재녀라 칭송하는 등 보는 사람이 부끄럽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촉에 대해 필요 이상의 띄워주기 및 올려치기를 하고[14], 나쁜 내용의 랭킹을 선정할땐 위, 오 인물들을 항상 상위에 올려놓으며 직간접적으로 내려치며, 특히 그 양국의 인물들보다도 더욱 싫어하는게 유비, 제갈량에 불편한 이유로 맞선 자들은 아무리 유능한 자라 하더라도 외모나 행적으로나 고의적으로 추하게 묘사할 뿐더러(ex. 유파) 촉을 배신하거나 멸망으로 이끄는데에 일조한 인물들은 거의 이완용급으로 매도하며, 군사 및 정치적 실책 등으로 직간접적인 위해를 가한 촉 인물들도 거의 반쯤 역적이나 간신, 쓰레기 등으로 묘사하는 것에 가깝게 까내리는 경향이 심하다는 비판이 있다.[15]

유독 조비가 정말 어마어마하게 비난을 당하긴 하지만 어느 정도는 장난스러운 분위기에, 대부분 인격에 대한 비난이었기 때문에 반발이 있어도 크지는 않았다.[16] 삼칠이가 비판을 받는 가장 큰 원인은 따로 있는데, 바로 원소와 손권에 대한 심각한 내려치기이다.

우선 현대 한국 삼국지 팬덤에서의 재평가와 달리 원소를 거의 억까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삼국지 최악의 책사 편에서는 아예 원소를 조조의 경험치 셔틀 이상의 존재라고 딱히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하거나, 책사일 때나 군주일 때나 똥멍청이라고 표현하였으며, 더군다나 연의 피해자를 소개하는 영상에서도 일반적으로 피해자로 꼽히는 원소를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 랭킹이란 것 자체가 주관적이니 여기에 원소가 들어갔니마니로 옳고 그름을 따질순 없지만, 원소에 대해 매우 박한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은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다.

즉, 삼칠이가 평하는 원소는 정사 위서 원소전 표현대로 전풍과 저수등, 충신들의 조언 씹고 곽도 말만 들어서 망한 멍청이다. 관도대전 영상도 1, 2부로 나누어 제작했는데 1부 막바지에 원소의 자책골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고 디스한 것을 시작으로 2부에서는 전투보다는 원소와 조조의 클래스 차이에 초점을 두며 조조를 띄우고 원소를 격하시켰다.[17] 앞서 말한 최악의 책사 편에서는 원소가 오소 전투에서 패한 장합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정사 어디에도 없는 말을 했으며, 관도대전 2부에서는 오소 전투의 패배를 장합의 책임으로 돌린 것을 진범 곽도가 아닌 원소로 바꾸어버렸다.[18] 영상 막바지 결과에서는 관도대전의 패배로 원소가 사망했고 원소는 패망의 길로 굴러들어갔다고 소개하였는데, 실제로 원소 세력은 관도대전 이후로도 건재했다.[19]

그리고 이로 인해 생기는 나비효과가 바로 조조에 대한 간접적 내려치기다. 조조는 당대 최강의 군벌이자 인생의 가장 거대한 벽이었던 원소를 무너뜨리고 북중국을 통일했기에 매우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인데, 이런 조조의 가장 강대한 적이었던 원소를 평가절하하니 덩달아서 조조의 업적에도 흠이 가는 것이다.

또한 손권에 대한 내려치기도 심각한 편인데, 아예 손권의 뻘짓만 모아서 까는 영상을 따로 제작했고, 삼국지 최악의 황제 편에서는 아예 손권을 조예, 사마염 등과 세트로 묶어서 암군이라고까지 표현하는 무리수를 두었다. 특히 관우의 죽음에 대한 책임 논란 편과 손권의 뻘짓 편이 가관이었는데, 관우 뒷치기와 형주 강탈을 촉오의 공멸을 불러온 희대의 악수이자 이궁의 변 다음가는 손권 역대 최악의 실책이라고 표현하며 아예 대놓고 자신이 촉빠임을 만천하에 공개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형주 공방전에 관해서 소름돋게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고 자찬한 점이 화룡점정이었으며, 아니나 다를까 이때를 기점으로 삼칠이에 대한 비판이 급격히 늘어났다.

사실 삼칠이가 혹평하는 원소와 손권의 단점들의 일부는 분명 기존의 사학자들이나 팬덤에게도 통용되는 합리적인 비판이다. 정사를 중심으로 소개한다고 했듯이 정사에서 원소가 매우 비판을 받는 것 그 자체를 소개했다고 하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 말이 많이 나오는 이유는 둘의 장점은 거의 전부 스킵하면서 단점만 집요하게 부각시켜 위의 표현대로 똥멍청이암군 같은 지나치게 비하적인 인식을 만들어낸다는 부분이다.

당장 원소는 인재들의 조언을 씹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헌책들만 골라서 기용하는 독선적인 군주였던 것은 사실이다. 이는 원소의 확실한 단점이다. 하지만 원소는 이런 독선적인 면만으로 정의할 수 없는 인물이며 이 부분만 가지고 원소를 저렇게까지 격하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원소는 신기에 가까운 쇼맨쉽과 선동술로 말미암은 탁월한 정치적 센스와 정략적인 능력, 그리고 당대에서도 상위권으로 쳐줄 수 있는 군재를 한 몸에 갖춘 영걸로서 당대 최강의 군벌인 공손찬을 무너뜨리고 하북을 평정한 인물이다. 만약 원소에 대한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했다면 원소의 강점은 확실하게 호평하고, 독재자였다는 결점은 비판하는 것이 맞다.[20][21]

그리고 손권은 조조와 유비의 라이벌리가 너무 돋보여서 상대적으로 부각이 되지 않을 뿐, 기량과 업적만 놓고 보면 조조와 유비에게 딱히 꿇릴 게 없는 영걸 중의 영걸이었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손권은 초반에 광탈한 군벌들과 달리 끝까지 살아남아 일국을 건설한 뛰어난 군주였으며 위촉의 전쟁에 최대한 관여하지 않으며 삼국 중 가장 안정적인 사회를 유지한 명군이었다. 손권이 손책에게 세력을 물려받았을 때가 고작 19살이며 그 세력은 미처 다져지지 못한 호족 연합체였기 때문에 확실한 구심점이 없으면 그대로 와해될 수 있는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손권은 정말로 이 세력을 안정시키고 끝내는 황제국으로까지 독립시키는 데에 성공했으니 괜히 조조, 유비와 함께 3인 세트로 묶이는 것이 아니다. 당장 대륙의 패자로 군림하던 조조와 최후의 한나라라는 강대한 정통성을 견지하던 유비 사이에서 3번째로 황제국 건설에 성공한 군벌이 손권 말고 한 사람이라도 더 있었는가? 그것도 11살 때 아버지 손견이 사망한 것을 시작으로 젊은 나이에 의지할 수 있는 주변 사람들이 모조리 죽어가는 비참한 가족사를 겪고도 끝내 멘탈을 부여잡고 일국을 건설한 손권의 역량을 다시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22][23]

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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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의와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는 연의 내용을 풀기도 하나, 대부분의 영상이 정사를 중심으로 설명한다. [2] 이복형이 둘 있었으니 조앙 조삭인데, 둘 다 일찍 죽어서 조비가 사실상 장남이 됐다. [3] 그나마 4대 조방 이후로는 사마씨에게 실권을 죄다 뺏기고 헌제보다 비참한 꼴이 났다. [4] 아버지가 투항한 적장의 숙모를 데려다 능욕하는 정신나간 짓거리로 화를 자초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은 조앙이라든지.... [5] 그가 만든 삼국지 최고의 미녀 편엔 여기선 유비가 가장 예쁘다는 글도 있다하태후를 이긴 위엄 [6] 대표적인 예로 나관중 초판본 때의 관우가 오나라와의 형주 공방전에서 사로잡히기 전에 하늘에서 옥황상제가 나타나 빛이 펼쳐지고 관우가 승천했다는 이야기와 이릉대전에서 유비가 대패한후 병사했다는 소식을 손부인이 접하고 나서 서방님을 외치며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했다는 이야기(...) [7] 다만 나관중이 개인적으로 촉빠인가 아닌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고, 현대에 들어서는 당대 수많은 야사와 자료를 섭렵한 나관중이 전체적인 분위기에 따라서 작성했을뿐 특정 세력에 대해 치우쳤다는 평가는 틀렸다는 쪽으로 종결되고 있다. 오의 기록이 상당히 부족한것은 여전히 얘깃거리이지만 특별히 그 자신이 촉에 치우쳤다기보단 당대의 전체적인 심리가 촉을 더 호의적으로 봤다는 것에서 감안해야할 것이다. 나관중은 역사를 정리하기 위한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삼국지연의를 쓴 것이 아니라, 소설로서 삼국지연의를 정리한 것이기에 당연히 시대상이 강하게 반영될 수 밖에 없다. 소설가가 노잼 비인기 캐릭한테 비중 주면 욕 먹는 건 현대에도 마찬가지다. [8] 특히 조조가 정사에선 동탁이 싫어서 벼슬을 때려치우고 고향으로 내려갔다는 구절을, 왕윤에게서 칠성도를 빌려 동탁을 암살하려다 실패후 도주하면서 진궁을 만나고, 도중에 여백사 일가를 몰살시킨 조조에게 실망한 진궁이 조조를 떠난다는 내용으로 재해석해 그려낸 장면은 거장의 솜씨라고 극찬했다. [9] 도겸은 끝까지 서주자사 자리를 지키다가 유비에게 양도했고, 유비는 서주를 다스리다 여포의 통수로 강탈당했으며, 조조가 서주를 얻은 건 여포에게 쫓겨난 유비와 손을 잡은 뒤였다. 즉 대학살을 일으키면서 서주를 먹기라도 했으면 과정에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을지언정 서주를 먹기 위한 전략이라고 포장할수는 있어도 결과적으로 사람만 죽이고 서주를 먹지도 못했으니 전략이라고 말할 여지가 전혀 없다는 것. [10] 임용한은 서주 대학살을 분명히 도덕적으로 절대 옹호할 수 없지만 조조가 전략적으로 판단해서 행한, 충분히 일어날 법한 전술 중 하나로 평가했다. 이러한 평가나 연구 자체는 실제로 있는 의견이다. 또 유비는 가난하지 않았다는 임용한 박사의 주장에도 비판적이다. [11] 다만 유비가 가난했다는 내용은 11세기 북송에서 집필된 자치통감에서 기록된 내용으로, 정사 삼국지에 포함되는 선주전에선 가난했다는 묘사는 없고 신발을 팔고 돗자리를 엮는것을 생업으로 삼았으며 개와 말, 옷을 좋아했다고 나와있다. 임용한 박사는 삼국지를 다룰때 배송지 주석, 자치통감등을 뺀 정사 삼국지 위주로 이야기한다는것을 감안하면 유비가 가난했다는 묘사가 없다는 것이 틀린말은 아니다. 하지만 삼칠이는 소위 정사 삼국지라고 말하는 진수의 삼국지 하나만 보기에는 진수의 삼국지는 공정성 비판을 받고 있다는 점을 들어서 배송지와 자치통감등을 배제하는 것을 매우 위험한 사관이라고 말하며 비판하고 있다. [12] 아무리 잘 쳐줘도 '옆에 제갈량, 장완, 비의, 동윤, 극정 등 인재코인을 타면 떡상하고, 황호, 진지같은 병신라인 옆에 있으면 떡락하는 백지같은 인물', '아무것도 안 하고 중간만 가는 법에 통달한 인물' 정도의 평가를 받는게 유선이다. [13] 실제로 삼국지 해체의 저자인 김윤회, 장정일, 서동훈은 각각 경제학자, 소설가, 영상 광고 기획과 교수로 역사랑은 전혀 관련이 없는 직업의 인물들이다. [14] 다만 삼칠이가 알고 한 것인지는 불명이나 하후씨가 장비의 불 같은 성질을 고쳐주기 위해 바늘구멍에 실을 넣는 섬세한 작업을 반복적으로 시켜서 줄이려 했다는 일화가 있긴 하다. [15] 특히 유선은 암군을 넘어 무능한 존재로 비하한다. [16] 다만 아무리 조비라도 최소한 군주로서 업적이라 부를만한 부분도 분명 있었는데, 그마저도 돌려까기용으로 언급하거나 잘한 부분은 전부 아예 덮어버리기까지 하다시피 하며 필요 이상으로 꺼린다. [17] 심지어 2부 설명란에 관도대전에서 나타난 조조와 원소의 현격한 클래스 차이. 하북의 패자 원소가 알고보니 암군..?이라고 적어두었다. [18] 정사에서는 곽도가 장합을 참소하자 장합이 두려워해 조조에게 귀부했다고 적혀있다. 더 자세히 보면 장합이 순우경을 구출해야하는 것을 주장함과 동시에 곽도의 의견인 조조 본영을 치는것을 만류하다가 결국 오소가 떨어지자 모함을 받고 조조에게 귀부한다. 원소가 곽도를 받아들이고 장합을 거부한 뒤 벌어진 일련의 사태라 현대 해석에서는 원소가 자신의 실수를 덮기 위해 장합을 몰아붙이는 곽도를 다시 믿었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이긴 한다. 하지만 해석은 그렇지만 어찌되었든 정사에서 이에 관해 원소가 명확히 얘기한 부분은 없다. 오히려 삼칠이 본인이 얘기하는 사서의 기록만 따지자면 이 대상은 곽도에게 가는게 맞다. [19] 현격한 클래스 차이에서 조조는 실수를 재빠르게 만회하는 반면 원소는 실수를 더욱 부풀려 실수를 종양으로 부풀리는 재주가 돋보였다고 언급하였는데 조조의 경우 완성 전투의 결과가 어떠했던가? 장수 전위, 장남 조앙, 조카 조안민까지 잃었다. 반면 원소는 관도대전 이전까지 이렇다할 패배는 없었다. [20] 비슷하게 실제로 또 다른 역사 유튜버 히스토리 라이브러리는 원소 인물열전에서 썸네일에 원소를 조조의 진짜 라이벌이라고 박아두었으며, 소개에 정치력 만렙, 조조보다 더 간웅 같은 삼국지 인물이라고 해두어 그의 정략을 비롯한 능력은 인정한다. 저수의 인물열전에서도 원소가 전풍과 저수의 의견을 듣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기주 호족에 가까운 저수, 전풍의 발언권(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자신의 측근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라는 의견이 있다며 현대식 해석을 제시했다. 다만 결과적으로 측근들의 의견이 패망하는 길이었다는 것이 원소에겐 불행한 일이었다고 언급해 전풍과 저수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 원소의 실책임을 분명히 언급했다. [21] 청화수 또한 원소를 조조 일생 일대 가장 거대한 라이벌, 역시 조조의 라이벌은 원소가 1등이라고 표현해 조조의 진짜 라이벌이 원소임을 내세우며 고평가했다. 물론 앞전에 원소가 전풍과 저수의 말을 듣지 않은 것에 비판하기는 하였으며, 영상을 마무리하며 원소가 전풍, 저수의 말을 듣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이것은 기본적으로 원소가 노비의 아들이기 때문으로, 근원적으로 신분적 열등감을 가진 사람들이 좀 아부에 약하다며 원소를 옹호하는 한편 신분적 열등감으로부터 자신을 극복하는 것도 필요했던 것이라며 그를 객관적으로 평가하였다. [22] 당장 조조와 유비는 각각 아버지의 죽음과 관우의 죽음으로 멘탈이 나가서 서주 대학살과 이릉대전을 일으켰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손권의 강인한 정신력은 오히려 조조나 유비보다도 높이 평가받을만한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그야 원인이 너무 명확했던 서주나 이릉과 달리 다들 수명 문제로 죽어나가서 탓할 사람이 없었던 거겠지.. 손권도 알콜 중독, 요동 꼬라박, 대만 꼬라박, 합비 꼬라박, 이궁의 변 같은 병크가 수두룩한데 [23] 물론 조비의 경우와 달리 드물지만 무조건 까는 건 아닌데, 원소는 예법에 밝았으며 원술보다는 나았고 처세에 능한 엄친아였다고 평하며 손권은 젊었을 때는 패기를 보여줬고 2세대 군주 중에선 그나마 낫다고 평한다. [24] 예를 들어 연의의 가공인물들을 소개하는 #16, 일기토 승리 횟수를 기준으로 순위를 매긴 #12. 실제로 일기토 자체가 현실에선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소설적 재미를 위해 창작된 장면이 많으니, 일기토를 다루고 싶으면 연의를 논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