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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57년 | ||
충청남도 서산시 | |||
복무 | 대한민국 육군 | ||
1980년 ~ 2018년 | |||
재임기간 | 제41대 제1야전군사령관 | ||
2017년 8월 10일 ~ 2018년 12월 31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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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6633><colcolor=#fff> 배우자 | 황금례 | |
자녀 | 슬하 1남 1녀 | ||
학력 | 서산고등학교 (졸업) | ||
임관 | 육군3사관학교 (17기) | ||
최종 계급 | 대장 (대한민국 육군) | ||
주요 보직 |
제3야전군사령부 부사령관 제6군단장 육군본부 감찰실장 제37보병사단장 육군3사관학교 생도대장 제5군단 참모장 제17보병사단 102보병연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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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대한민국 육군의 군인. 최종 계급 대장, 최종 보직은 제1야전군사령관이다.2. 상세
1957년 충남 서산시에서 태어났다. 서산고등학교를 거쳐 1980년 육군3사관학교 17기[1]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중장 2014년 10월 진급
- 대장 2017년 08월 진급
2017년 8월 10일, 육군 제1야전군사령관 이·취임식 [3] |
2016년 10월 제6군단장 이임 후 받은 보직이 한직인 제3야전군 부사령관이었던지라 대장으로의 진급은 힘들어 보였으나 이듬해 5월 정권교체와 송영무 대한민국 국방부장관 취임, 결정적으로 박찬주 제2작전사령관의 갑질 사건으로 인하여 대장 진급 가능성이 점쳐지더니 마침내 2017년 8월 인사에서 대장으로 진급하여 제1야전군사령관에 보임되었다. 이는 3사 출신으로는 역대 두 번째로 제1야전군사령관에 취임한 것인데, 3사 출신으로 첫 제1야전군사령관을 역임한 주인공은 박성규 대장(3사 10기)이다.
보통 야전군사령관급 인사에서 육사 출신이 2명 보임되면, 비육사 출신이 제2작전사령관으로 보임되는 경우가 다수였는데, 이번 인사는 이례적으로 비육사 출신이 제1야전군과 제2작전사령관을 맡게 되었다. 이 점에서 육사 출신의 과도한 독점 구도를 타파하겠다는 국방개혁 의지가 반영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9년 1월 1일부로 육군의 단일 야전군 사령부인 지상작전사령부가 창설되면서 전날인 2018년 12월 31일 제1야전군사령부 해체식이 거행되었고, 박종진 사령관도 이날을 끝으로 군 생활을 마쳤다. 이로써 그는 '1군 사령부의 마지막 사령관'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관련기사
2021년 9월 10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인 경기도지사 이재명의 열린캠프에 합류하였다. # 열린캠프 스마트강군위원회 소속으로 위원회에는 박종진, 김운용, 황인권(이상 대장)[4], 최현국, 모종화, 고현수, 정항래, 김성일(이상 중장) 등 장성급 인사들이 대거 들어왔다. 국방부 기획조정실장을 역임한 김정섭, 여석주 전 국방부 정책실장 등 국방부에 몸담은 사람들도 참여하고 있다.
3. 여담
- 3사 생도대장 시절, 생도들의 자율성을 강조하며 연등 가능시간을 늘리고 체력단련도 강제가 아닌 자율적으로 실시하는 등의 개혁을 진행하였다. 당시 3사 생도는 전임 생도대장인 원홍규 준장의 관리아래 하루에 10km (아침2km 오후 체력단련 4km 금요일 주간 구보 4.6.8.10km 토요일 산악구보 완전군장 4.6.8.10km)가량을 구보하는 등 체력이 대단히 강조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또한 원홍규 준장은 매번 외박 이후에도 구보실시, 생일을 맞은 생도를 축하해주기 위한 자리에서 벌어진 가혹행위에 대해 가차없이 퇴교를 때리는 등 3사관학교 생도들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었다. 이런 때에 박종진 장군은 3사 생도들에게 "단순히 체력이 강한 장교가 될 것이 아니라 스마트한 장교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자율적 학습 및 체력단련 방침을 채택했던 것. 당시 생도들도 박종진 장군의 이러한 방침을 크게 환영하는 입장이었는데, 박종진 장군이 생도대장에 취임한 지 채 1년도 안 돼 소장으로 진급하고 사단장으로 영전하게 되면서, 생도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는 방침도 축소되었다. 때문에 생도들은 박종진 장군의 진급을 축하하면서도, 한편으론 많이 아쉬워했다고 한다.
-
사단장 시절에는 3km 구보를 12분 30초에 주파했는데, 이 기록은 만 25세 미만 현역 장병의 특급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덕분에(?) 전속부관들이 체력단련 시간이면 사단장과 같이 구보하느라 고생이 많았다고 한다.(3야전군 부사령관 시절에도 3km 구보를 12분 30초 이내로 주파하였음.)
휘하 병사들도 이분 하나 때문에 체력단련만큼은 빡세게 했을 듯다만 사단 역사관과 장병복지회관을 개보수하는 과정에서 타일 벽지 하나 고르는 것까지 체크하는 등 매사에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육본 감찰실장으로 부임 후, 보직의 특성상 적을 많이 만들어야하기에 진급과는 거리가 있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3사관학교 출신에서 원홍규, 서정열 장군도 이 보직을 역임 후 더 이상 진급하지 못했다. [5]그런데 2014년 군 내부에서 28사단 의무병 살인사건, 22사단 임병장 총기난사등 엄청난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이때 사건의 진상을 소상히 밝히는 등 조치를 잘 한 것으로 인정을 받았기에 중장 진급을 하고 6군단장에 보직되었다.
- 사령관 시절 17년도 중순~말부터 군내 차량사고가 지속 발생하였는데, 평상시 차량관리와 차량 이동전 검차, 운행책임자(선탑자) 및 운전병의 임무를 더더욱 강조하기 시작했다. 일례로 차량 '안전벨트'를 '생명벨트'라는 용어로 바꾸어 사용하도록 지시하고, 군용차/개인차(간부 사제차) 상관없이 모두 생명벨트를 철저히 매고 부대 위병소 출입마다 초병들이 검사하도록 시스템화 하였다. 이때 선탑자(운행책임자)는 오른손에 흰색장갑을 끼도록하고, 창문에 명패를 붙이도록 했다. 군용차량끼리 마주하면 선탑자는 경례할것이고, 흰색장갑에 의해 손이 잘 보일(...)테니 결례를 방지함과 동시에 운행간 딴짓을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또한 명패를 붙임으로서 더더욱 책임감을 가지자는 취지였다. 당시에 차량사고가 나면 선탑자는 뭐했냐, 전방주시했냐 등등으로 갈갈이를 할때였고(지금도 마찬가지), 이를 교육해도 시정이 안되니 위와 같은 조치를 한것이다. 다만 지작사가 창설되면서 생명벨트 용어 사용 빼고는 모두 없어졌다.
-
2018년 9월 11일,
노컷뉴스는 국방부 장관으로 영전한 정경두 합참의장을 대신해 합참의장으로 내정된 김용우 육군참모총장의 후임으로 발탁되었다고 기정사실화하여 단독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합참의장에
박한기 대장이 내정되면서 오보로 밝혀졌다. 국방부 관계자에 따르면, 김용우 육군참모총장은 직을 유지하여 인사 폭을 줄인다고.
- 김승겸 前 합참의장이 본인의 직속부하였는데 6군단장, 1군사령관시절 김승겸의 28사단장, 3군단장 취임식을 주관하였다.
- 제6군단이 2022년 11월 30일 부로 해체되면서 6군단장 출신으로서는 마지막 대장 진급자가 되었다.
4. 관련 문서
[1]
1980년에 임관했으므로 임관 연도로만 따지면
육사 36기,
학군사관 18기와 동기가 되지만, 이 당시 3사는 소위 임관 후 학사 학위를 위한 위탁교육을 받았으므로 임관 2년 후배인 육사 38기, 학군 20기와 진급 동기가 되었다.
[2]
문재인 정부의 첫 고위 군인사에서 대장으로 진급하여
제1야전군사령관으로 취임했다. 자신보다 3년 임관이 늦은
김용우 대장(육사 39기, 1983년 임관)을 상관인
육군참모총장으로 모셔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3]
왼쪽의 부대기를 전달하는 인물은
장준규 당시 육군참모총장이고 가운데 있는 대장은 이임 사령관인
김영식 대장이며, 장준규 前 육참종장이 김영식 대장의 전임이었다. 그리고 장준규 前 육참총장과 박종진 대장은 서산 해미중학교 22회 동기이며, 임관연도도 같다. 게다가 장준규 전 총장의 이전 보직은 1군 사령관이었으니 임석상관, 이임지휘관, 취임지휘관 신분으로 39, 40, 41대 1군 사령관이 한 자리에 모인 셈이다.
[4]
세 명은
열린캠프 스마트강군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위촉되었다.
[5]
다만 원홍규 소장은 항목에서 볼 수 있듯이 그 간의 업보가 상당한 수준이었고 병장의 트위터 소원수리에 힘입어
김관진 국방부 장관에게까지 문제점이 제기된 수준이었다. 서정열 소장은 진급 운이 없었다고 봐야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