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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4 18:39:07

박석민/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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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별명3. 야구 관련4. 기상천외한 행동과 몸개그5. 선행 및 기부6. 말말말7. 그 외

1. 개요

박석민의 여담 항목을 서술한 문서.

2. 별명

몸개그 등 확실한 캐릭터 요소 덕분에 별명이 굉장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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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콜돼 허콜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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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콜돼 버클돼

3. 야구 관련

그는 몸에 맞는 볼과 관련한 해프닝 직후 홈런을 친 일이 두 번이나 있다. 2009년 6월 24일 대구 한화 이글스전 8회말 공격 때 한화 브래드 토마스가 던진 볼이 박석민의 오른쪽 발 쪽으로 날아왔다. 박석민은 그 순간 볼이 자신의 발등에 맞았다면서 1루에 출루했다. 그러나 실제 볼은 박석민에게 맞지 않았다. 실제 볼은 포수 옆 그라운드를 맞고 포수 신경현의 목 부분으로 튀었다. 이에 한화 이글스 코칭 스태프가 심판에게 항의를 하였고 결국 볼 카운트에 볼 하나가 늘어난 것으로 정정했다. 다시 타석으로 돌아온 박석민은 토마스의 볼을 타격하여 중견수 쪽 담장을 넘어가는 1점 홈런을 기록했다. 2번째 일화는 2009년 8월 16일 대구 KIA 타이거즈전 8회말 공격 때의 일이다. KIA 타이거즈 투수 곽정철이 박석민의 몸 쪽으로 볼을 던졌는데, 이 볼이 박석민의 팔꿈치 쪽으로 날아왔다. 박석민은 역시 볼이 자신의 팔꿈치 보호대 부분에 맞았다고 심판에게 이야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실제로 이 볼은 팔꿈치에 맞지 않고 포수 뒤로 빠져 나갔다. 다시 타석으로 돌아온 박석민은 곽정철의 볼을 통타, 왼쪽 담장을 넘어가는 1점 홈런을 기록했다. 이 일화는 2009년 12월 25일 MBC SPORTS+가 방송한 《프로 야구 결산 특집 - 야구는 야구다》의 코미디 에피소드 부분에서 〈소탐대득 - 작은 것(몸에 맞는 볼)을 탐하다가 큰 것(홈런)을 얻게 됨〉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기도 했다.
출처: 위키백과 박석민 항목
파일:attachment/박석민/ef.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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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기상천외한 행동과 몸개그

박석민 "경기중 개그는 절대 아닙니다"
참을성 많은 김태균, 최고 개그맨 박석민
피겨 하듯 '빙그르르' 베이스 위 '눕방'…'뜻밖의 몸개그' 뒤엔
타율 살아나니 '몸개그'도 폭발!…박석민의 화려한 부활[21]
김기태 전 KIA 감독, 투수계의 개그 캐릭터 유희관과 함께 야구계의 개그 캐릭터로 손꼽힌다. 정작 본인은 "개그한다는 이미지가 조금 부담스럽다. 경기 중에 일부러 개그하는 선수가 어디 있겠는가"라고 말하며 지나치게 웃긴 이미지로 굳어지는 걸 경계하고는 있지만 타석에서 몸을 비틀다 벨트가 풀어지거나, 파울플라이 타구를 잡을 때 코믹한 동작이 나오거나 하는 것이 잦다. 경기 중 최선을 다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만의 '허슬'이 등장하고 그게 또 다시 야구 팬들의 웃음보를 터뜨리는 장면이 많은데, 확실한 것은 박석민은 개그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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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선행 및 기부

2020 사랑의 골든글러브 수상 기념 영상
2015년 NC 다이노스와 FA 계약을 맺을 당시 NC문화재단과 손을 잡고 매년 2억원씩 총 8억원을 기부하기로 약속했으며, 매년 꾸준히 선행을 이어나가고 있다.[23] 이러한 박석민의 기부는 프로야구 선수로서 지역 야구 발전에 보탬이 되기 위한 박석민의 자발적 의사로 이루어지고 있다.

6. 말말말

(동료들에게) 이기려고 하지 말고 즐기자고 했습니다.
2016년 KBO 플레이오프 2차전 MVP 인터뷰에서.
'박석민 결승포' NC, 첫 한국시리즈까지 '-1'
삼성에 있을 때도 우승을 많이 해봤지만 우승은 아무리 많이 해도 좋다. 우승은 지나고 나면 정말 하늘이 정해주는 것 같다. 올해는 우승 냄새가 조금 난다. 그렇지만 야구는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팀이 1등이니까 긴장을 늦추면 안된다.
2020년 10월 7일 결승홈런을 터뜨린 후 가진 인터뷰에서.[25]
‘결승 홈런’ 박석민 “올해는 우승의 냄새가 조금 난다” [고척 톡톡]
묻지 않아 답하지 않았다
코로나 방역 위반 범죄 사실을 은폐하려
“묻지 않아 답하지 않았다” 사실상 허위진술 인정한 NC 사고뭉치들

7. 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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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박석민 플레이어데이 영상
* 2009년 12월 13일 2살 연상의 여성과 결혼식을 올렸는데, 사실 결혼 전에 이미 동거를 하고 있었고 아들도 결혼 전에 낳았다. 아들의 이름은 박준현 군(2007년생)이며 둘째 아들은 박서준. 장남 박준현 군은 현재 야구를 하고 있으며 2023년 북일고등학교에 진학했다.[26]


[1] 그렇게 불렀단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렇게 들었다. [2] 이 당시 개그맨 박영재가 SBS 웃찾사 서울나들이란 인기 코너에 나오고 있었는데 같이 꽁트를 하는 개그맨 이동엽이 항상 박영재를 "브로콜리 돼지"라고 놀려먹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박영재도 당시 파마머리였다. [3] 지역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어린시절 의사, 변호사를 꿈꿨다고 말한 방송내용이 캡쳐본으로 돌면서 생성되었다. 야구를 안 했으면 의사나 변호사가 되었을 거라고. [4] 아래 셀카 참조. [5] 2008 시즌 루틴을 하던 중 허리띠가 튕겨서 풀리는 상황이 벌어지며 파생된 별명. [6] 주로 퇘지 보다는 한글자로 줄여 부른다. [7] 이는 기존의 프랜차이즈 스타에 대한 환대로 과거 온라인에서 이완용규라고 불리던 이용규도 현장의 팬들에겐 환대를 받았다. 물론 여전히 일부 삼성 팬들의 온라인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8] 박석민이 이 경기에서 솔로홈런을 쳤을 때도 삼성 팬들은 홈런을 맞았음에도 기분 좋게 일어나 박수갈채를 보냈다. [9] NC 박석민 ‘돌아야 사는 사나이’ [10] 그리고 다음날 차우찬에게 똑같은 상황이 발생했다. 고의는 아니고 다행히 배트는 빗나갔지만. [11] 4년 선후배라 같은 팀에서 뛴 적은 없다. [12] 농담이거나 진짜반 소설반 이야기겠으나, 진짜라 해도 김응용은 성질폭발하던 리즈시절조차도 원래 잘하는 선수는 건드리지 않는 스타일이었고, 의욕적인 신인은 좋아했기 때문에 패지는 않았을 것이다. 투수왕 선동열이 시합 전날 다른 종목 선수들과 술퍼먹고 나서 낮에 야구장 나와서 술냄새를 풍겼는데도 김응용이 안 건드렸던 건 유명한 일화다. 그때 당시는 반대로 김응용이 선동열 눈치를 봤다. 연투로 혹사시킨 게 아니라 그만큼 선동열의 위치가 독보적이었던 것이다. 당장 등판일지 보면 선동열은 당대 에이스들에 비해 훨씬 관리받은 선수였다. 야구계에서 유명하던 김응용 스타일은 '잘하는 애는 못할 때까지 자율훈련 야구, 못하는 애는 2군' [13] 사구의 신이라는 최정도 27사구 시즌은 없다. [14] 아시아 프로야구 선수로는 세번째이다. 두번째가 미국과 일본에서도 활동하여 통산 사구로 200을 넘긴 이대호이기 때문. 최정-이대호-박석민 순. [15] 사실 막힌 웹은 무조건 투수용이라는건 우리나라 사회인야구에 주로 있는 편견이고 일본의 경우는 내야수들도 막힌 웹의 글러브를 많이 사용한다.은퇴한 양키스의 유격수 데릭 지터또한 커리어 내내 소위 바둑판웹이라고 불리는 디자인의 글러브를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16] 9타수 2안타 2홈런 [17] 물론 이 해는 NC 타선 전체가 4경기 동안 고작 2점만 뽑는 역대 한국시리즈 최악의 공격력을 보여줘 박석민 혼자 말아먹었다고 보긴 어렵다. [18] 박석민은 주로 2010년 같은 3루수였던 조동찬의 활약과 1루수 채태인의 기복으로 인하여 1루 수비를 꽤 자주 보았으나, 삼성 시절 2014 시즌 5경기에 교체출장 이후 꽤 오랜 기간 1루 경험이 없는 상태였다. NC 이적 이후에는 3루수로만 나서고 있다. [19] 영상의 1:22:20경에 나온다. [20] 참고로 이대호도 박석민과 비슷한 3-4-5 성적에 근접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박석민과는 달리 타율과 장타율은 되는데 통산출루율이 3할 9푼대에 머무르고 있다. [21] 2019년 5월 20일 뉴스. [22] 주요 장면 영상에서 헬멧 뒤통수의 번호가 이지영의 등번호로 확인. [23] 애초에 FA 이적 조건에 어려운 환경의 어린이를 돕기 위해 8억원(매년 2억원)을 기부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고, 그 약속을 지켰다. # # [24] 창원신월중, 마산동중, 마산중, 합천야로중, 김해내동중, 양산원동중, 거제외포중, 울산제일중 [25] NC의 통합 우승 후 박석민은 눈물을 쏟기도 했다. # [26] 경북고, 대구고, 상원고도 아니고 아버지가 뛰는 지역 학교인 마산고 용마고도 아닌 연고가 없는 충청남도의 북일고로 진학하는 것에 대해 의외라는 반응이 많다. 일설로는 북일고 선수단이 대구로 전지훈련을 와 경상중과 연습경기를 치렀고, 북일고 감독인 이상군의 눈에 띄어 스카웃 제의를 받아 북일고로 진학했다고 한다. 그러나 중3 유망주가 타 지역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박준현의 북일고 선배인 김인태는 박준현과 같은 대구 출신임에도 북일고를 택했으며 롯데 자이언츠 김진욱도 수원북중 졸업 후 유신고 대신 강릉고로 진학했다. 김인태와 김진욱은 중학교 졸업 직전 천안북중과 춘천중으로 전학하여 졸업장을 받았는데 같은 도내 중학교를 졸업해야 고등학교를 진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북일고의 경우는 전국구로 신입생을 모집하기 때문에, 굳이 충청남도의 중학교로 전학을 가 졸업하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1차 지명 폐지 때문에 북일고를 택했다는 설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설일 뿐이다. [27] 후배 구자욱은 박석민에게 꽃다발을 주기 전 절을 했다. 삼성에 있을 때 선배로서 먹을 것도 사주고 많이 챙겨줬다는 후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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