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박석민의 여담 항목을 서술한 문서.2. 별명
몸개그 등 확실한 캐릭터 요소 덕분에 별명이 굉장히 많다.-
박속닌: 2005년 코나미컵에서 이름자인 석민을 속닌이라고 듣고[1] 자신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홈런왕 박속닌입니다'라고 올려놓은 것이 시초. 재일동포
고지행이 박석민을 이렇게 불렀으며, 이후 본인도 자주 사용했다.
허구연에게서 나온 건 아니지만 허구연도 비스무라한 발음으로 부르긴 한다.
- 브콜돼: 가장 유명한 별명 중 하나. 2008 시즌 중 난데없이 파마머리를 하고 등장했는데, # 머리 밴드 위로 뭉툭하게 솟아오른 파마머리를 보고 마치 브로콜리와 비슷하게 보인다고 해서 그의 토실한 몸매와 함께 브로콜리 + 돼지 = 브콜돼로 불렸다.[2] 이후 다른 별명들의 베이스가 된다.
브콜돼 | 허콜돼 |
힙콜돼 | 버클돼 |
- 볼매: 2008년 10월 한 기사에서 처음 언급된 이후 팬들에게도 널리 불리게 된 별명. 브콜돼 관련 기사가 뜨면서 박석민이 기자들에게 이왕이면 '볼수록 매력'을 줄여서 '볼매'라는 별명을 밀어달라고 요청했는데, 이에 대해 한대화 당시 삼성 수석코치는 '정신병자'라고 하면서 혀를 끌끌 찼고, 수많은 야빠들은 볼수록 매를 번다며 볼매도 나름의 별명으로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본인은 이 별명을 제일 좋아한다.
- 꼬부기: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자 샴페인을 입에 머금고 감독 류중일에게 쏘면서 붙여진 별명. # 이후에도 여러번 쐈다. #
- 퇘지: 2009년 삼성 외국인투수 루넬비스 에르난데스가 중식에 돼지고기 요리가 나온 걸 보더니 "어, 퇘지다! 맛있다"라고 하더니, 5m쯤 떨어져있는 박석민을 가리키며 "퇘!지!"라고 놀렸다는 썰이 기사로 전해지며 생성된 별명. NC 이적 이후에는 NC 다이노스 팬들이 가장 자주 부르는 별명이기도 하다.[6] 경기에서 눈이 썩는 플레이를 보여주거나 허구헌날 부상으로 이탈할 때면 퇘지+ 먹튀라며 먹퇘로 부르고 있다. 2020년 10월에는 온라인 커뮤니티 상에서 테스형 밈이 유행하자 퇘스형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
- 퇘가놈, 박그분: 직전 시즌 삼성의 주장이었는데도 팀을 버리고 떠났다는 이유로 삼성 팬들에게 붙여진 별명. 박석민이 당연히 남을 것이라고 생각한 팬들이 많았으나 FA로 이적하자 바로 금지어로 등극했으며 박석민 팬은 퇘리타로 격하되었다. 하지만 온라인 상의 반응과 예측이 무색하게 첫 대구 원정에서는 삼성 팬들이 기립박수로 반겼다.[7][8] 꽤나 오랜 시간 이후 당시 삼성 스포츠단의 지원금이 정유라 지원으로 인한 지원금 축소 의혹으로 계약금 차이가 너무 컸다는 것과 친정 팀에 대한 애정을 종종 드러내는 것으로 인해 재평가되고 있다. 혹자는 괜히 오버해서 안먹어도 될 욕을 먹었다고도 하는 편.
- 즙전드, 즙가놈: 2015 골든글러브 시상식 때 나오지도 않는 눈물을 억지로 쥐어 짰다고 하여 붙여진 별명. 영상
- 이외에도 2013년부터 류현진이 뛰는 팀인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주전 3루수이자 류현진의 절친 후안 유리베의 이름을 따서 자신을 박리베로 불러달라고 본인이 말하기도 했다.
3. 야구 관련
- 원래 장갑을 끼고 타격하였으나 어느날 장갑을 끼지 않고 맨손으로 공을 치는 즉시 각성하여 이후 계속 맨손 타법을 고집하였다. 그 탓에 손에 부상이 와서 이리저리 방법을 강구하다 결국 맨손 타법을 버리고 장갑을 다시 장착하였다. 그러나 얇은 수술용 장갑을 써보거나 장갑의 손가락 부분을 자르는 등, 배트와 살이 맞닿는 부분을 최대화시켜뒀다.
- 박한이처럼 타격 준비 자세가 있다. 타석에 들어서면 먼저 배트를 2번 휭휭 돌린 뒤 배트를 뒤로 돌리고 한 번 돌리고 배트를 흔든다. 또 타석에서 헛스윙을 할 경우 그대로 한 바퀴 돌아버리는 동작이 유명한데, 팬들은 통칭 트리플 악셀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것은 후술할 부상 때문에 팔로스윙후 배트를 잡기가 힘들어서 대신 몸을 같이 돌려 버리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9]
- 풀스윙을 할 때 배트를 놓쳐 배트가 날아가버리는 경우가 잦다. 카메라맨 쪽으로 날아간 적도 있고 상대 투수 쪽으로 날아간 적도 있다. 자칫하면 큰 부상을 입을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을 연출한다. 이런 위험한 장면이 나올 때마다 상대팀 팬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인다. 팀킬도 한다. 2011년 6월 21일 경기에서 오넬리의 투구에 삼진당하면서 놓친 배트가 오넬리에게 날아가는 바람에 오넬리는 당황, 박석민은 헉, 신경현은 알밤+예끼를 시전하는 장면이 잡혔다. 다행히 배트가 오넬리 정면으로 날아가지는 않았지만 매우 위험했던 상황. 영상[10] 다행히 빗나갔기에 '역시 브콜돼' 소리를 듣는데 그쳤다. 하지만 이러한 일은 박석민이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고, 왼쪽 중지 부상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2010 시즌부터 수비할 때 중지에 테이핑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타격할 때 중지와 약지를 테이프로 감아 하나로 묶어 타석에 들어선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타격할 때 순간적으로 왼손에 힘이 빠지면서 배트를 놓치는 것. 중지를 총 두 번 수술해야 한다는데 2010 시즌 끝나고 한 번 했었고 2011 시즌이 끝나고 두번째 수술을 했다. 그 결과 100% 정상은 아니지만 상당히 호전되었다. 2013 시즌까지도 휴식일을 잡아서 일본에 주사를 맞으러 갔다.
- 자칭 야구 천재. 6살 때부터 동네 야구부 형들에게 야구를 배웠으며 자신은 '야구를 시작하기 전부터 야구를 잘했다'고 한다. 이 말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양준혁 앞에서 하고 있으니 역시 허콜돼. 하지만 천재인 것은 사실인 듯. 이범호와는 대구고등학교 야구부 선후배인데 대구고 감독이 이범호가 노력형이라면 박석민은 천재형이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11] 2009년에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 방송된 45년간 야구를 본 할아버지에게 PD가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때 맹활약하던 이범호 고교시절 이야기를 부탁했는데 이 할아버지께서 이범호도 잘 했지만 질문과 상관없는 박석민은 진짜 천재라고 수 차례 말했을 정도. 덕분에 허세에 관련된 이야기도 많은데 고졸 신인이던 2004년에 1군 무대에 올라가자마자 김응용 감독에게 코치도 거치지 않고 오재영에게 강하다면서 내보내달라고 졸라서 펜스 직격 2루타를 꽂은 적이 있다. 그리고 덕아웃에 들어오자마자 잠실구장을 욕하면서 넘어갔어야 선발고정이라면서 김응용 감독이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는 전설이 있다. # 결국 김응용 감독이 사장으로 영전하면서 군제대 직후 주전자리에서 어마무시한 푸쉬를 받았다.[12]
- 한대화 전 한화 감독의 손을 잡고 난 날 경기에서는 맹타를 휘두르는 징크스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한대화 감독은 박석민만 보면 도망가기 바빴는데, 뛰는 한대화 위에 박석민이 있다고, 어느 날은 박석민이 안보여서 안심하고 대구구장 원정 감독실로 쓰는 임원회의실에 들어갔더니 거기서 박석민이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박석민은 얼른 한대화 감독의 손을 잡고 도망갔고, 그 날도 대박을 터뜨렸다. 이 때가 2012년 6월 13일. 이 날 박석민은 1회 좌전안타와 2번의 사구를 기록, 4타수에서 3번 출루했다. 이 징크스 일화가 실린 기사가 난 6월 14일에도 손을 잡는데 성공했는지 그날은 4타수 4안타 2홈런 4타점을 기록했다.
- 고교 때부터 등번호 18번에 상당한 애착을 갖고 있다. 2010년에 18번을 달려고 했으나 군대에 입대 예정이었던 정홍준이 안 가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그러다가 2010 시즌 후 정홍준이 방출되면서 18번을 달게 되었다. NC로 이적 후 기존에 18번을 달던 신인투수 배재환에게 동의를 구한 후 18번을 계속 달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 본인의 차에 18번을 단 피규어가 다수 자리잡고 있고, 핸드폰 번호도 0018, 집도 18층에 살고 있다. 2017 시즌 시작과 동시에 1년밖에 타지 않은 차를 바꾸면서 차량 번호도 18이 3번이나 들어가는 번호를 타고 있다.
- 최정에 못지 않게 몸에 맞는 공이 많은 타자이다. 주전으로 도약하기 시작한 2008년부터 5년 연속 두 자리수 몸에 맞는 공을 꾸준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2012년에는 마침내 최정을 넘어 몸에 맞는공 27개를 기록하며 신흥 사구왕에 등극했다.[13] 그렇기에 사구왕 최정에 이어 통산 사구 2위이며, 결국 2020시즌에 아시아 프로야구 역사상 두번째 200사구[14]를 달성했으며, 최정에 이어 아시아 프로야구 역사상 2번째로 800볼넷 미만 1000사구를 달성했다.
- 몸에 맞는 공 때문에 특이한 일화도 있는데 이하는 위키백과 박석민 항목의 내용 일부 #
그는
몸에 맞는 볼과 관련한 해프닝 직후
홈런을 친 일이 두 번이나 있다. 2009년 6월 24일
대구
한화 이글스전 8회말 공격 때 한화
브래드 토마스가 던진 볼이 박석민의 오른쪽 발 쪽으로 날아왔다. 박석민은 그 순간 볼이 자신의 발등에 맞았다면서 1루에 출루했다. 그러나 실제 볼은 박석민에게 맞지 않았다. 실제 볼은 포수 옆 그라운드를 맞고 포수
신경현의 목 부분으로 튀었다. 이에
한화 이글스 코칭 스태프가 심판에게 항의를 하였고 결국 볼 카운트에 볼 하나가 늘어난 것으로 정정했다. 다시 타석으로 돌아온 박석민은 토마스의 볼을 타격하여 중견수 쪽 담장을 넘어가는 1점 홈런을 기록했다. 2번째 일화는 2009년 8월 16일
대구
KIA 타이거즈전 8회말 공격 때의 일이다.
KIA 타이거즈 투수
곽정철이 박석민의 몸 쪽으로 볼을 던졌는데, 이 볼이 박석민의 팔꿈치 쪽으로 날아왔다. 박석민은 역시 볼이 자신의 팔꿈치 보호대 부분에 맞았다고 심판에게 이야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실제로 이 볼은 팔꿈치에 맞지 않고 포수 뒤로 빠져 나갔다. 다시 타석으로 돌아온 박석민은 곽정철의 볼을 통타, 왼쪽 담장을 넘어가는 1점 홈런을 기록했다. 이 일화는 2009년 12월 25일
MBC SPORTS+가 방송한 《프로 야구 결산 특집 - 야구는 야구다》의 코미디 에피소드 부분에서 〈소탐대득 - 작은 것(몸에 맞는 볼)을 탐하다가 큰 것(홈런)을 얻게 됨〉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기도 했다.
출처: 위키백과 박석민 항목
출처: 위키백과 박석민 항목
- 홈런 친 줄 알고 폼 잡다가 펜스를 직격하는 안타가 되자 똥줄나게 뛴 적이 있다. 그 덕에 1루타가 기록되었고 경기가 끝난 후 구단 자체 벌금을 냈다고 한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 이 때는 아직 1루까지 전력으로 달리던 양준혁이 현역으로 뛰고 있던 2010년이었으니 특히 더 안 좋게 보였을 것이다. 이 설레발 계보는 2012년에는 나지완이, 2013년에는 전준우가, 2019년에는 구자욱이 잇고 있다.
- 가끔 글러브에 공이 낄 때가 있다. 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때 수비시 투수용 글러브를 끼고 경기에 나섰다. 투수용 글러브와 내야수용 글러브의 크기 차이를 생각하면 참 희한한 일. 2015년 현재 웹이 막힌 큰사이즈의 내야수 글러브를 사용중이다.[15]
- 포스트시즌에 약한 모습을 보인다. 2012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 2점 홈런, 2013년 한국시리즈 7차전에 6:2로 도망가는 쐐기 적시타를 제외하고는 별 활약이 없었다. 2014년 한국시리즈, 2015년 한국시리즈에서도 타율은 1할대 극초반에 머물렀다. 이러한 점은 팀이 바뀌어도 그대로였고, 2016년 플레이오프에서 2개의 홈런을 때려내긴 했지만[16], KS에서는 13타수 무안타를 기록하며 완전히 말아먹었다.[17]
- 2017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평가전에서 오랜만에[18] 1루수를 보기도 했다. 처음엔 당황해서 덕아웃에 다시 물어보는 표정이 압권인데,[19] 이날 결승타를 때려내며 상대팀인 쿠바 감독이 인상적인 선수로 박석민을 꼽기도 했다. #
- 전성기 시절에는 양준혁, 김동주, 김태균, 최형우만이 가지고 있는 통산 타출장 3-4-5를 노렸던 타자로, 2019 시즌까지를 기준으로 출루율과 장타율은 각각 .403과 .501을 기록하며 이를 넘어서고 있지만 타율이 .289이라 조금 부족한 상태다. 특히 NC 이적 이후 타율이 급감하면서 점점 가시권에서 멀어지고 있다.[20]
- 유리몸 기질이 있다. 이것 역시 삼성이 박석민 잔류를 망설인 이유로, 한 시즌에 1~2번은 꼭 부상으로 퓨처스로 내려가는 것이 연례 행사처럼 되어버린다. 2017년과 2018년은 부진과 부상으로 아예 수비를 제대로 뛰지 못했다. 사실 삼성에서도 언제나 잔부상을 달고 뛰었다. 그런 부상들을 어찌저찌 참고 뛰는 선수.
4. 기상천외한 행동과 몸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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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성 많은 김태균, 최고 개그맨 박석민
피겨 하듯 '빙그르르' 베이스 위 '눕방'…'뜻밖의 몸개그' 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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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율 살아나니 '몸개그'도 폭발!…박석민의 화려한 부활[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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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 시절부터 팬들 사이에서 브로콜리 헤어스타일, 적절한 허세, 제 몸을 가누지 못하는 다양한 몸개그 등 확연한 캐릭터성으로 인해 채태인과 함께 자타공인 KBO 최고의 개그맨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특히 나바로와의 듀오 케미가 좋았다.
5. 선행 및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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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사랑의 골든글러브 수상 기념 영상 |
- 2016년 12월 가정형편이 어려운 야구 후배들을 위해 2억여원을 기부했다. #
- 2017년 7월에는 ' 양산 아파트 밧줄 절단 살인 사건'으로 40대 가장을 잃은 유가족에 1억원을 기부하고 NC 홈경기에 초청해 아픔을 위로했다. 이는 박석민이 고인에게 3살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5명의 자식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가족을 위한 도움의 손길에 동참하고 싶다며 엔씨소프트문화재단에 기부금을 보내 이뤄졌는데, 박석민은 유가족을 창원 마산야구장으로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의 사인이 들어간 야구공과 유니폼 등을 선물했다. NC 박석민, ‘양산 밧줄 추락사’ 유가족에 1억원 기부
- 2018년 1월 NC 다이노스 연고 고교인 마산 용마고, 김해고, 양산 물금고 야구부에 1억원 상당의 용품을 지원했다. 박석민은 "NC 선수로 뛰는 만큼 구단 연고 지역에서 열심히 운동하는 후배 선수들을 지원하고 싶었다"면서 "이번 기회를 시작으로 연고 지역의 후배 야구선수들이 훌륭한 사람, 프로야구 선수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주겠다"고 밝혔다. 이번 기부는 박석민이 직접 학교에 연락을 통해 용품을 전달하며 이뤄졌다. NC 박석민, 지역 연고 학교에 1억원 상당 야구용품 기부
- 2019년 1월 이승엽야구장학재단에 유소년 야구발전기금과 불우 환아 수술비 지원을 위해 5천만원을 쾌척했다. 이외에도 박석민은 이승엽 이사장, 구자욱과 함께 '청나래'라는 봉사 모임을 통해 대구지역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등 사회공헌활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박석민, 이승엽 야구재단에 5천만원 기부
- 2019년 1월 NC문화재단과 함께 연고지역 8개 중학교 야구부[24]에 1억원 상당의 야구 용품을 기부했다. NC 박석민, 지역 8개 중학교 야구부에 1억원 상당 기부
- 2019년 2월 라오스 야구대표팀에 2500만 원 상당의 야구용품을 전달했다. 이만수 전 감독은 라오스 야구협회 부회장을, 박석민의 고교 은사인 권영진 감독은 라오스 대표팀 감독을 각각 맡고 있기 때문. 박석민, 이번엔 라오스 야구대표팀에 2500만원 용품 지원
- 2019년 4월 강원도 산불 피해 복구에 1억원을 기부했다. NC 박석민, 강원도 산불 피해 복구에 1억 '쾌척'
- 2019년 12월 구단이 플레이어데이 자선 경매 수익금을 12월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달하자 본인의 플레이어데이에 기록한 모금액(231만원)만큼 추가로 기부하기도 했다. NC, 플레이어데이 자선 경매 수익금 지역사회에 기부
- 2020년 1월 구단 연고 지역 초등학교 야구부 5팀에 총 6천만원 상당의 야구용품을 기부했다. NC 박석민, 초등학교 야구부에 6천만원 상당 야구용품 기부
- 2020년 3월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돕기 위해 대구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 열매)에 3천만원을 기부했다. NC 박석민, 코로나19 성금 3000만원 기부
6. 말말말
삼성에 있을 때도 우승을 많이 해봤지만 우승은 아무리 많이 해도 좋다. 우승은 지나고 나면 정말 하늘이 정해주는 것 같다. 올해는 우승 냄새가 조금 난다. 그렇지만 야구는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팀이 1등이니까 긴장을 늦추면 안된다.
2020년 10월 7일 결승홈런을 터뜨린 후 가진 인터뷰에서.[25]
‘결승 홈런’ 박석민 “올해는 우승의 냄새가 조금 난다” [고척 톡톡]
2020년 10월 7일 결승홈런을 터뜨린 후 가진 인터뷰에서.[25]
‘결승 홈런’ 박석민 “올해는 우승의 냄새가 조금 난다” [고척 톡톡]
7. 그 외
2019년 박석민 플레이어데이 영상 |
- 아들 사랑이 꽤나 지극한 편으로 삼성 시절에는 홈런을 치면 주는 블레오 인형 대신 손목보호대를 던졌다. 인형이 아니라 더 비싼 손목보호대를 던지는 이유는 아들 준현이가 인형을 더 좋아해서 집에 갖다주려고 그랬다고 한다. # 홈경기 때는 샤워도 안 하고 바로 집에 가서 아들과 같이 목욕한다고 하는데, 아들이 실제로 대구 홈경기 때 박석민의 손을 잡고 대구구장에 왔을 당시 유니폼에 적힌 등번호는 박석민의 18번이었고 이름에는 '박석민 Jr.'라고 적혀 있었다.
- NC 이적 이후에도 인형을 던지지 않는 세리머니는 계속되었는데, 홈런을 친 후 팔목에 찬 아대를 팬들에게 꼭 선물했다.
- 현역 시절 내내 시합 전에 싸인 요청을 하면 본인 루틴 문제 때문인지 잘 해주지 않았다. 창원 NC 파크가 개장한 이래로는 엔팍투어를 통해 홈팀 라커룸 견학을 보러오는 팬들이 전부 볼 수 있도록 본인 자리 위에 자필로 "시합 전 싸인 안합니다. 경기 종료 후 받으러 오세요. 진짜 안합니다 -박석민-" 이라고 써 붙여놓아서 팬들에게 웃음을 줬다. 그래도 거절할 때 친절하게 팬들에게 미안하다고, 퇴근길에 꼭 해주겠다고 말했다. 정말로 퇴근길엔 대체로 잘 해주는 편이었다. # 2019년 들어서는 연쇄싸인마 소리를 들을 정도로 예전보다 서비스가 좋아졌다는 후기들이 많아졌다. # # #
- 천재교육에서 나온 고등학교 체육 교과서의 귀퉁이에 박석민의 사진이 수록됐다. 야구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는 부분인데 오른손에 착용한 노란색 보호대 2개는 누가 봐도 박석민의 것이다.
- 강민호와 어린 시절부터 절친이라 삼성에 있을 때 자신이 삼성 감독이 되면 강민호를 수석 코치, 김상수를 주루 코치로 두겠다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강민호가 삼성으로 이적했을 땐 정작 본인이 나가고 없게 되었다. 2024년, 삼성과의 경기에서 열린 은퇴식에서 강민호가 박석민에게 삼성 모자를 씌워주었다.[27]
-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창원지역 성화봉송 주자로 나섰다. #
- 먹성이 좋다고 한다. 한 팬의 증언에 따르면 중국집에서 짜장면이랑 짬뽕을 곱빼기로 시켜서 다 먹었다고 한다. #
[1]
그렇게 불렀단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렇게 들었다.
[2]
이 당시 개그맨
박영재가 SBS
웃찾사의
서울나들이란 인기 코너에 나오고 있었는데 같이 꽁트를 하는 개그맨
이동엽이 항상 박영재를 "브로콜리 돼지"라고 놀려먹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박영재도 당시 파마머리였다.
[3]
지역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어린시절 의사, 변호사를 꿈꿨다고 말한 방송내용이 캡쳐본으로 돌면서 생성되었다. 야구를 안 했으면 의사나 변호사가 되었을 거라고.
[4]
아래 셀카 참조.
[5]
2008 시즌 루틴을 하던 중 허리띠가 튕겨서 풀리는 상황이 벌어지며 파생된 별명.
[6]
주로 퇘지 보다는 퇘 한글자로 줄여 부른다.
[7]
이는 기존의 프랜차이즈 스타에 대한 환대로 과거 온라인에서 이완용규라고 불리던
이용규도 현장의 팬들에겐 환대를 받았다. 물론 여전히 일부 삼성 팬들의 온라인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8]
박석민이 이 경기에서 솔로홈런을 쳤을 때도 삼성 팬들은 홈런을 맞았음에도 기분 좋게 일어나 박수갈채를 보냈다.
[9]
NC 박석민 ‘돌아야 사는 사나이’
[10]
그리고 다음날
차우찬에게 똑같은 상황이 발생했다. 고의는 아니고 다행히 배트는 빗나갔지만.
[11]
4년 선후배라 같은 팀에서 뛴 적은 없다.
[12]
농담이거나 진짜반 소설반 이야기겠으나, 진짜라 해도 김응용은 성질폭발하던 리즈시절조차도 원래 잘하는 선수는 건드리지 않는 스타일이었고, 의욕적인 신인은 좋아했기 때문에 패지는 않았을 것이다. 투수왕
선동열이 시합 전날 다른 종목 선수들과 술퍼먹고 나서 낮에 야구장 나와서 술냄새를 풍겼는데도 김응용이 안 건드렸던 건 유명한 일화다. 그때 당시는 반대로 김응용이 선동열 눈치를 봤다. 연투로 혹사시킨 게 아니라 그만큼 선동열의 위치가 독보적이었던 것이다. 당장 등판일지 보면 선동열은 당대 에이스들에 비해 훨씬 관리받은 선수였다. 야구계에서 유명하던 김응용 스타일은 '잘하는 애는 못할 때까지 자율훈련 야구, 못하는 애는 2군'
[13]
사구의 신이라는 최정도 27사구 시즌은 없다.
[14]
아시아 프로야구 선수로는 세번째이다. 두번째가 미국과 일본에서도 활동하여 통산 사구로 200을 넘긴
이대호이기 때문. 최정-이대호-박석민 순.
[15]
사실 막힌 웹은 무조건 투수용이라는건 우리나라 사회인야구에 주로 있는 편견이고 일본의 경우는 내야수들도 막힌 웹의 글러브를 많이 사용한다.은퇴한 양키스의 유격수 데릭 지터또한 커리어 내내 소위 바둑판웹이라고 불리는 디자인의 글러브를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16]
9타수 2안타 2홈런
[17]
물론 이 해는 NC 타선 전체가 4경기 동안 고작 2점만 뽑는 역대 한국시리즈 최악의 공격력을 보여줘 박석민 혼자 말아먹었다고 보긴 어렵다.
[18]
박석민은 주로 2010년 같은 3루수였던
조동찬의 활약과 1루수
채태인의 기복으로 인하여 1루 수비를 꽤 자주 보았으나, 삼성 시절 2014 시즌 5경기에 교체출장 이후 꽤 오랜 기간 1루 경험이 없는 상태였다. NC 이적 이후에는 3루수로만 나서고 있다.
[19]
영상의 1:22:20경에 나온다.
[20]
참고로
이대호도 박석민과 비슷한 3-4-5 성적에 근접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박석민과는 달리 타율과 장타율은 되는데 통산출루율이 3할 9푼대에 머무르고 있다.
[21]
2019년 5월 20일 뉴스.
[22]
주요 장면 영상에서 헬멧 뒤통수의 번호가
이지영의 등번호로 확인.
[23]
애초에 FA 이적 조건에 어려운 환경의 어린이를 돕기 위해 8억원(매년 2억원)을 기부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고, 그 약속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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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신월중, 마산동중, 마산중, 합천야로중, 김해내동중, 양산원동중, 거제외포중, 울산제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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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의 통합 우승 후 박석민은 눈물을 쏟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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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고,
대구고,
상원고도 아니고 아버지가 뛰는 지역 학교인
마산고나
용마고도 아닌 연고가 없는 충청남도의 북일고로 진학하는 것에 대해 의외라는 반응이 많다. 일설로는 북일고 선수단이 대구로 전지훈련을 와 경상중과 연습경기를 치렀고, 북일고 감독인
이상군의 눈에 띄어 스카웃 제의를 받아 북일고로 진학했다고 한다. 그러나 중3 유망주가 타 지역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박준현의 북일고 선배인 김인태는 박준현과 같은 대구 출신임에도 북일고를 택했으며
롯데 자이언츠의
김진욱도 수원북중 졸업 후
유신고 대신
강릉고로 진학했다. 김인태와 김진욱은 중학교 졸업 직전 천안북중과 춘천중으로 전학하여 졸업장을 받았는데 같은 도내 중학교를 졸업해야 고등학교를 진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북일고의 경우는 전국구로 신입생을 모집하기 때문에, 굳이 충청남도의 중학교로 전학을 가 졸업하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1차 지명 폐지 때문에 북일고를 택했다는 설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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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구자욱은 박석민에게 꽃다발을 주기 전 절을 했다. 삼성에 있을 때 선배로서 먹을 것도 사주고 많이 챙겨줬다는 후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