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 | |||
출생 | 미상 | ||
사망 | 1443년 이후 (향년 ?세) | ||
재위기간 | 왈라키아 보이보드 | ||
1442년 6월 ~ 1443년 3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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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부모 |
아버지:
단 2세 어머니: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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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 바사라브 4세 | ||
가문 | 다니슈티 가문 | ||
종교 | 기독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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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왈라키아 공국 제14대 보이보드.2. 생애
왈라키아 공국 제9대 보이보드 단 2세의 아들이다. 형제로 블라디슬라프 2세, 단 3세[1], 바사라브 3세가 있었다. 1431년 6월 아버지 단 2세가 오스만 제국군에 맞서 싸우다 전사한 뒤 헝가리 왕국에 망명했다. 1442년 6월 트란실바니아 총독 후녀디 야노시가 오스만 제국군을 물리친 뒤, 바사라브 2세를 왈라키아의 보이보드로 앉히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다. 당시 왈라키아 보이보드 블라드 2세는 오스만 특사로부터 에디르네로 가서 무라트 2세에게 경의를 표하라는 지시를 받고, 장남 미르체아 2세를 왈라키아 통치자로 세운 뒤 공물을 가지고 에디르네로 갔다. 그러나 그곳에서 무라트 2세의 명령으로 체포된 뒤 반역죄로 기소되어 감옥에 갇혔다.후녀디 야노시는 이때를 틈타 왈라키아로 진군했고, 미르체아 2세는 후녀디 야노시에게 대적하지 못하고 산악지대로 피신한 뒤 오스만 술탄국에 구원을 요청했다. 그 후 블라드 2세는 어린 아들 블라드 3세, 라두 3세가 인질로 넘겨지고, 매년 공물을 바치고, 매년 왈라키아의 소년들을 보내 오스만 군대에서 복무하도록 훈련하는 조건을 수락한 뒤에야 겨우 풀려났다. 1443년 3월, 블라드 2세는 오스만 제국군의 지원을 토대로 왈라키아 보이보드로 복위했다. 바사라브 2세는 그를 피해 달아났으나,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아들 바사라브 4세는 1477년 11월 ~ 1481년 9월, 1481년 11월 ~ 1482년 3월에 왈라키아 보이보드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