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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당/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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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신 역사2. 2017년
2.1. 창당 전2.2. 상반기2.3. 하반기
3. 2018년4. 2019년5. 2020년6. 2021년7. 2022년8. 2023년
8.1. 4기 당원총투표
9. 20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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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신 역사

시작은 청년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성공한 청년의 롤모델로 떠오르며 서울시장 선거와 대통령 선거 등을 저울질하던 안철수를 지지하던 청년들이 만들었던 정당이 바로 청년당인데, 당시엔 안철수의 성향도 진보 내지 리버럴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1]

2012년 4월 11일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결국 후보를 내는데 0.3%라는 저조한 투표율을 남기고 정당이 해산된다. 다만 청년당 해산 이후에도 창당을 다시 할 것을 공언하였고 청년당 당원들은 계속해서 커넥팅을 해왔었는데 국민의당의 등장으로 강연재를 비롯한 친안철수계는 국민의당으로 이동하고[2] 안철수에 실망하여 돌아선 이들이나 기존부터 진보성을 더 띠었던 이들만 남는다. 세월호 참사, 2015년 대한민국 메르스 유행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 역사 교과서 국정화 사태가 지난 박근혜 집권 중기. 정치의 대한 관심이 대선 이후로 다시 천정부지로 높아지고 흙수저, 헬조선, 노오력 등 사회 혐오 담화의 등장하며 진보 세력이 힘을 얻은 상황이 된다. 거기에 트랜스젠더, 기혼여성 등을 혐오하고 우파 성향이 강해진 TERF 트위터 등에서 강성히 대두되며 진보주의자들이 일부 지지층을 잃고 3세대 페미니스트들이 갈 곳을 잃으며 본격적으로 재창당 논의가 불거진다.

이성윤, 임한결, 김소희 등 청년 정치인들이 등장하며 청년 세력은 힘을 얻는데 이후 우인철, 오태양 등 기성 청년당 인사들과 힘을 합치며 정신적 후계인 우리의 미래를 출범한다. 앞서 말했다시피 5년의 세월 사이 안철수가 우클릭을 하며 안철수 지지 성향은 완전히 사라졌으며 이후 기성 청년 정치 세력에 청년 운동에서 활동하던 활동가 일부가 결집하여 모인다.

2. 2017년

2.1. 창당 전

2.2. 상반기

2.3. 하반기

3. 2018년

4. 2019년

5. 2020년

5.1. 그린뉴딜 포럼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그린뉴딜 포럼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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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녹색당과 공동캠페인을 벌였다. 이 행사에서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정의당은 교섭단체로, 녹색당과 미래당은 3%를 넘겨달라"고 호소했다.

6. 2021년

7. 2022년

8. 2023년

8.1. 4기 당원총투표

현재 당 대표의 임기는 2년이고 1회 중임이 가능함에 따라 무조건 새 인물이 나와야 하는 상황이다. 위와 관련한 상황으로 뒤숭숭한 건 사실이다. 부산시당 대표인 손상우 후보가 단독 입후보를 하였다.

3월 1일부터 21일까지 선거기간이 이어지고 3월 22일부터 27일까지 투표가 진행되며 3월 29일에 선거 결과가 공고되면 4월 2일에 있을 전국활동가대회 겸 4기 출범식부터 2년 임기를 시작한다.

이후 3월 29일, 권리당원 중 53.5%가 투표를 마치고, 찬성 98.7%, 반대 1.3%로 손상우 후보가 당대표에 당선되었다.

9. 2024년



[1] 실제로 밝혀진 안철수의 성향은 극중주의 성향이었으며 새정치민주연합 ~ 국민의당에서 보여준 그의 성향은 진보보단 보수에 가깝다. [2] 이후에 안철수에 반대하여 다시 자유한국당으로 이동한다. [후에] 이 이틀간의 상황을 당명항쟁이라고 칭하고 있다 [4] 목요반은 출마학교와 겹쳐 운영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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