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임한 직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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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상
리수용 李洙墉 | Ri Su Y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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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6b534><colcolor=#FFF> 출생 | 1935년 4월 13일 ([age(1935-04-13)]세) |
함경남도 | |
학력 |
김일성종합대학 (학사) 국제관계대학 (프랑스어문학 / 학사) |
수훈 | 김정일훈장 (2012) |
소속 정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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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구 | 평양시 서성구역 서성선거구 (제2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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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의 외교관, 정치인. 스위스 대사를 역임하면서 김정철, 김정은 형제의 후견인으로 활동했으며 김정은 집권 후 외무상, 당 국제 부위원장, 국제부장 등의 요직을 역임했다.2. 생애
2.1. 초기 이력
1935년 4월 13일, 함경남도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져 있다. 남산고중, 김일성종합대학을 거쳐 국제관계대학 불어과를 졸업했다고 한다. 이때 동창이 김용순이었다. 그리고 김일성대학 어문학부 노어학과 교수 송희연의 증언에 따르면, 남산고중 시절에는 김정일의 동창으로, 김정일과 어려서부터 자주 놀았다고 한다.외교부장 허담 밑에서 1973년, 외교부 의례국장 및 국제기구 국장을 지냈다. 이 시기 김정일의 측근이 되었으며 조직지도부 당생활지도과장 장성택과도 친분을 쌓았다. 1980년 6월, 조직지도부 서기실 책임비서, 서기실 부부장을 겸하여 리철이란 가명과 1등 서기관 신분으로 스위스 제네바 대표부 공사로 부임, 김정일의 해외 비자금을 관리하였으며 1987년 9월, 스위스 제네바 대표부 대사로 승진하였다. 1988년 1월, 최진수의 뒤를 이어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에 따라 리철의 이름으로 스위스 대사에 임명되었다. 1991년 10월, 제네바 유엔사무국 대표부 상임대표가 되었으며, 2001년 8월 리히텐슈타인 대사, 2001년 12월, 네덜란드 대사를 겸하였다.
2.2. 스위스 시절
스위스 근무 시절, 스위스로 유학한 김정남, 김정철, 김정은을 돌봐준 것도 잘 알려져 있다. 맨 처음 김정남의 유학을 준비 할때 김정일이 국제부 부부장 최준덕에게 동유럽 국가 학교들을, 리수용에게 자본주의 국가 학교들을 알아보게 했고 리수용은 스위스, 오스트리아, 스웨덴, 노르웨이의 학교를 죄다 수소문해서 제네바 국제학교가 가장 좋겠다는 보고를 올렸다고 한다. 이에 김정일은 김정남을 스위스로 유학보내면서 리수용도 서기실 부부장 겸 스위스 공사로 같이 내보냈고, 김정일 집무실 근처의 측근 전용 아파트를 하사했다. 리수용이 김정남 유학 절차를 다 해주었고, 거처도 마련했으며 이후 김정남의 통역 및 안내원을 담당했으나 1년 후에 김정남의 프랑스어가 꽤 유창해져서 이후론 김정남이 알아서 다녔다고 한다.이후 김정철과 김정은 형제를 돌봐주었으며, 외교관들에게 생맥주도 사주고 용돈도 주는 등 매우 세심하게 외교관들을 챙겨주었고, 몇시간 씩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도 조금도 졸지 않고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그리고 수시로 김정일을 만나 지시를 받았는데 90년대 초반부터 김정일의 외무성 교시는 거의 다 리수용을 거쳐 내려갔고, 리수용 본인도 김정일을 대처하는 능력이 아주 뛰어나서 김일성 뱃지를 외교관과 그 가족은 떼도 된다는 허락을 받아내기도 했다. 그 이유가 자본주의 국가에서 낡은 옷에 수령님 초상휘장을 모시기 너무 송구스러우며, 남조선 괴뢰들이 뱃지를 보고 북한인임을 파악하니까 안보상 불리하다는 것이었다. 태영호는 리수용이 감히 그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자기 자신이 김정철, 김정은을 돌보고 있는데 김일성 뱃지를 달고 다니면 너무 눈에 띠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리고 서유럽 물가를 고려하여 외교관 월급 조정도 성사해냈다.
이 시기 리수용에 대해서 대한민국 주 유엔대표부 수석대사를 지낸 박수길 씨의 회고록에도 묘사된다. 다른 북한 외교관들은 욕설질에 주먹다짐도 불사하는 불량배 수준의 인간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스위스 대사 시절에 만난 리수용은 다른 북한 외교관들과 달리 매우 점잖아서 인상이 깊었다고 한다. 이에 박수길 대사가 리수용에게 같은 민족끼리 얘기나 하면서 지내자고 제안하자, 리수용도 선선히 응하면서 자기도 그 정도 힘은 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박수길 대사의 관저 초대까지 받아들였는데, 만남이 이뤄지기 직전에 박수길 대사가 김일성이 6.25를 일으켰다고 비판하자 리수용이 안색이 달라져서 초대 승낙을 번복했다고 한다.
2004년 4월, 룡천역 폭발사고 이후 휴대폰 사용이 금지된 이후에 제네바 국제전기통신연맹 사무총장으로부터 이동통신망을 잘만 활용하면 오히려 테러를 방지하고 사회통제에 도움이 된다는 조언을 받은 리수용은 이를 김정일에게 보고했고, 김정은을 이집트 오라스콤과의 합작으로 고려링크를 창설, 다시 북한에서 휴대폰 사용을 재개시키는데 성공하였다. 2009년 3월, 리철의 이름으로 12기 대의원에 선출되었으며 이후 2010년 4월, 서세평에게 스위스 대사 자리를 물려주고 귀국했다.
2.3. 김정은 외교의 대표
귀국 직후 2010년 9월, 3차 당대표자회에서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선출되었으며 2011년 1월, 합영투자위원장에 임명되었다. 2011년 12월, 김정일 장의위원을 지냈으며 2012년 2월, 김정일훈장의 1차 수훈자로 선정되었다. 다만 합영투자위원장은 무역상 리광근에게 넘겨주었다. 장성택과의 긴밀한 관계 때문에 숙청되느니 어쩌니 하는 말이 많았지만 2013년 12월, 장성택을 숙청한 정치국 확대회의에도 참가했으며 행정부 부부장 중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살아남아서 그뒤로 건재함을 과시했다.2014년 4월, 최고인민회의 13기 1차 회의에서 박의춘의 뒤를 이어 새 외무상에 임명되었고, 2016년 5월, 7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위원, 국제부장, 국제담당 부위원장에 선출되었고 외무상 자리는 외무성 부상 리용호에게 물려주었다. 2016년 5월, 강석주 장의위원을 지냈으며, 2016년 6월 29일, 최고인민회의 13기 4차 회의에서 설치된 국무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다. 2017년 4월 11일, 최고인민회의 13기 5차 회의에서 20년만에 외교위원회가 부활하자 외교위원장에 임명되었다. 2018년 8월, 김영춘 장의위원, 2018년 12월, 김철만 장의위원을 지냈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 때 북한측 대표단으로 참석하였으며, 문재인 대통령과 악수를 하였다. 그리고 북미정상회담을 위해 북한 대표단으로 선정되어 김정은과 함께 싱가포르로 출국한 것이 확인되었다. 2018년 7월에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가 쿠바를 3일부터 9일까지 방문하였다. 그곳에서 리수용이 라울 카스트로에게 김정은의 구두 친서를 전달하며 북한과 쿠바의 외교관계의 돈독함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실제로 쿠바는 북한의 몇 안되는 우방 국가이고, 오랫동안 우호 관계에 있었다. 동시에 쿠바가 대한민국과 아직까지 외교 관계를 수립하지 않은 점은 그들의 관계가 아직까지는 친근하다는 점을 부각한다.
2019년 3월, 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으며 최고인민회의 14기 1차 회의에서 국무위원 및 외교위원장에 유임되었으며 2019년 6월 2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 추대 3주년 중앙보고대회에 참가했다.
2.4. 해임
하지만 하노이 회담의 실패, 남북관계의 경색 이후 쓸모가 없어졌거나 문책을 당했는지 2019년 12월 조선로동당 7기 5중전회에서 이루어진 대대적인 개각 와중에 김형준 전 주러시아 북한대사에게 조선로동당 국제부장 자리를 넘겨주고 정치국 위원과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직에서 소환되었다. 이로서 리수용- 리용호로 이루어졌던 북한 외교 투톱이 변경되었다.2020년 4월에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14기 3차 회의에서 리용호와 함께 국무위원회 위원과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에서 쫓겨났다. 미국 스팀슨센터 연구원 마이클 매든은 리수용이 은퇴한 것으로 추정했다. 여든의 나이니까 다른 나라라면 은퇴해도 크게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 사실이고, 북한이 2019년을 기해 김영남, 양형섭, 최태복 등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원로들을 대거 은퇴시켰다는 점에서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리용호가 같이 외교 실무진에서 축출당한 점에서 성과 문제 내지 김정은의 외교 전략 변경을 큰 요인으로 봐야할 것이다.
이후 공개석상에서 등장은 거의 없었으나 2020년 10월, 조선로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 김영남, 양형섭, 최태복, 최영림, 김기남, 김경옥, 김정각, 박재경, 안정수 등 노인네들과 함께 초대를 받은 것을 봐서 은퇴한 것으로 보인다. 2021년 7월에 제작된 <영생하는 삶의 품> 31편에서 그의 모습이 실렸으며, 2022년, 김정은 집권 10주년 기념 화보집에서도 리수용의 사진이 여럿 수록되었다. 2023년 7월 27일, 노간부 자격으로 조국해방전쟁승리 70돐경축 대공연 및 기념보고회에 참석했다.
2024년 9월 8일, 정권수립 기념 행사들에 참석했다.
3. 경력
임기시작 | 임기종료 | 비고 |
주 스위스 연방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특명전권대사 | ||
1988년 1월 20일 | 2010년 3월 |
최진수의 후임으로 임명 서세평에게 이임 |
내각 외무상 | ||
2014년 4월 9일 | 2016년 5월 9일 |
최고인민회의 13기 1차 회의에서 임명 7차 당대회에서 조동 |
조선로동당 7기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 | ||
2016년 5월 9일 | 2019년 12월 31일 |
7차 당대회에서 선출 7기 5중전회에서 소환 |
조선로동당 7기 중앙위원회 국제 부위원장 | ||
2016년 5월 9일 | 2019년 12월 31일 |
7차 당대회에서 선출 7기 5중전회에서 소환 |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국제부장 | ||
2016년 5월 9일 | 2019년 12월 31일 |
7차 당대회에서 임명 7기 5중전회에서 해임 |
13, 14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 | ||
2016년 6월 29일 | 2020년 4월 12일 |
최고인민회의 13기 4차 회의에서 선출 최고인민회의 14기 1차 회의에서 재선 최고인민회의 14기 3차 회의에서 소환 |
13, 14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 | ||
2017년 4월 11일 | 2020년 4월 12일 |
최고인민회의 13기 5차 회의에서 선출 최고인민회의 14기 1차 회의에서 재선 최고인민회의 14기 3차 회의에서 소환 |
4. 여담
- 20세기에 태어난 북한 사람 치고는 기골이 장대한 편이다. 선배 외교관인 김영남도 장신이지만 그 못지 않게 키가 크다. 다만 장대한 체구에 비해서 목소리는 꽤 얇은 편이다.
- 2015년 3월 4일 스위스 제네바 유럽 유엔본부에서 열리고 있는 UN 인권이사회와 군축회의 현장에서 유엔의 북한 인권조사보고서와 인권결의안은 무효에 탈북자는 '인간쓰레기'라고 우긴 것을 넘어, 인권 탄압에 대한 북한 지도부의 책임과 처벌 & 지도부 교체 가능성을 언급한 부분에 대해서 대놓고 '정신착란적 행위'라고 막말을 퍼부었다. #
5. 참고문헌
- 이한영, 대동강 로열패밀리 서울잠행 14년(서울: 동아일보사, 1996).
- 태영호, 3층 서기실의 암호(서울: 기파랑, 2018).
- 현성일, 북한의 국가전략과 파워엘리트: 간부정책을 중심으로(서울: 선인, 2007).
- 통일부 정세분석국 정치군사분석과, 『2021 북한 주요인사 인물정보』(서울: 통일부,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