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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6-22 16:04:45

박의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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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상
박의춘
朴義春 | Pak Ui Chun
파일:박의춘.jpg
<colbgcolor=#d6b534><colcolor=#FFF> 출생 1935년 8월 15일
함경남도
학력 평양국제관계대학 (학사)
소속 정당


1. 개요2. 생애3. 경력4.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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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의 전 외무상. 김정일 시대의 두번째 외무상이며 강석주 제1부상을 중심으로 하던 김정일 시대 외교의 특징상 무색무취한 얼굴마담으로 별다른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다가 은퇴했다.

2. 생애

1935년 8월 15일 함경남도에서 출생했다. 평양국제관계대학을 졸업한 후 1973년 카메룬 주재 임시대리대사, 1978년 모리타니 대사, 1980년 알제리 대사를 거쳐 1987년 10월 정무원 외교부 부부장에 임명되었다. 1992년부터 1996년까지 시리아 대사를 지냈으며 중간에 레바논 대사를 겸임했으나 1996년 경질된 후 귀국하여 1996년 12월 다시 외교부 부부장에 임명되었다. 이렇듯 전문적인 외교관의 길을 걸은 인물로 역대 외무상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개인사가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1998년 3월 카자흐스탄 대사 겸 몰도바 대사에 임명되었으며 4월, 손성필의 뒤를 이어 러시아 대사 겸 우크라이나 대사에 임명되어 처음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북한의 주요 외교국인 러시아 대사에 임명되면서 1998년 7월, 최고인민회의 10기 대의원에 선출되었으며 이후 8년 4개월 간 러시아 대사를 역임하며 2차례의 북러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등 북러 외교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1998년 10월 벨라루스 대사, 1999년 1월 아르메니아 대사, 2000년 6월 조지아 대사 등을 겸임하게 되었고 2003년 최고인민회의 11기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2002년 10월, 강석주가 방북한 미국 국무부 대표단 켈리에게 핵개발을 시인하고 더 위험한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실토하여 2차 북핵위기가 발생하자 기자회견을 열어 그러한 권리가 있음을 밝힌 것 뿐이라고 유연한 대응을 하여 2차 핵위기의 격화를 막는데 공을 세웠다. 하지만 2003년 "북한에 대한 어떤 제재도 전쟁 선포로 간주한다."고 성명하는 등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도 맡았다.

2006년 9월, 러시아 대사에서 해임되어 김영재에게 자리를 물려준 후 귀국하여 한동안 두문불출하다가 2007년 5월 18일, 사망한 전임 외무상 백남순의 뒤를 이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외무상에 임명되었다. 당시 신임 외무상으론 실세 외교관 강석주가 유력하게 점쳐지던 상황이었으나 무색무취한 전문 외교관 박의춘이 임명된 것에 대해서 새로운 얼굴 마담이 임명된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고 실제로 대단한 활동 없이 외무상 임기를 수행했다.

2008년 10월 박성철 전 부주석이 사망하자 장의위원에 초빙되었으며 2009년 3월 최고인민회의 12기 대의원에 재선, 외무상에 유임되었다. 2010년 9월 제3차 당대표자회가 열리자 당 중앙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다. 하지만 2014년 3월, 13기 최고인민회의에서 대의원엔 선출되었으나 4월 9일에 열린 최고인민회의 13기 1차 회의에서 외무상 직위는 리수용에게 물려주고 은퇴하였다. 13기 대의원 자리를 수행한 것을 마지막으로 2016년에 열린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에서 중앙위원에 재선되지 못했으며 2019년 3월의 14기 대의원 선거에도 재선되지 못함으로 모든 공직에서 물러났다.

한동안 조용히 지내다가 허담의 생애를 기리는 선전물이 제작될 때 허담의 김씨 부자에 대한 충성쑈 일화를 증언하면서 등장했다.

3. 경력

임기시작 임기종료 비고
내각 외무상
2007년 5월 18일 2014년 4월 9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으로 임명
최고인민회의 12기 1차 회의에서 재선
최고인민회의 13기 1차 회의에서 임기 만료

4.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