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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31 15:32:00

라디슬라오 마수르키에비치

라디슬라오 마수르키에비츠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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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과이의 前 축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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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라디슬라오 마수르키에비치
Ladislao Mazurkiewicz
본명 라디슬라오 마수르키에비치 이글레시아스[1]
Ladislao Mazurkiewicz Iglesias
출생 1945년 2월 14일
우루과이 피리아폴리스
사망 2013년 1월 2일(향년 67세)
국적 우루과이 파일:우루과이 국기.svg
신체 179cm
직업 축구선수 ( 골키퍼 / 은퇴)
축구감독 (은퇴)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RC 몬테비데오 (1963~1964)
CA 페냐롤 (1964~1971)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1971~1974)
그라나다 CF (1974~1975)
C.D 코브렐로아 (1976~1978)
아메리카 데 칼리 (1979~1980)
CA 페냐롤 (1980~1981)
감독 CA 페냐롤 (1988~1989)
국가대표 36경기( 우루과이 / 1965~1974)

1. 개요2. 어린 시절3. 선수 경력
3.1. 클럽 경력3.2. 국가대표 경력
4. 플레이 스타일5. 이후의 삶6. 우승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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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펠레가 그걸 넣지 못했다는게 중요하지."
1970 FIFA 월드컵 멕시코 4강 전 펠레의 '노 터치 트릭'에 대해 말하면서

우루과이의 前 축구선수로 포지션은 골키퍼.

2. 어린 시절

라디슬라오 마수르키에비치는 폴란드인 아버지와 스페인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그래서 이름이 남미식이 아니라 동유럽식인 것이다. 하지만 폴란드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마수르키에비치는 폴란드어를 할 줄 몰랐고, 폴란드에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고 한다.

3. 선수 경력

3.1. 클럽 경력

마수르키에비츠는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의 RC 몬테비데오에서 데뷔한 후 우루과이 최고의 명문팀인 CA 페냐롤로 이적하여 1966년부터 주전골키퍼로 출전하였고, CA 리버 플레이트를 꺾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차지한다. 이어서 인터컨티넨탈컵에서 레알 마드리드 CF를 상대로 2경기를 연속으로 클린시트로 막아내어 우승을 경험했고 1971년까지 CA 페냐롤의 주전 골키퍼로 맹활약하며 3차례의 리그 우승과 1차례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인터컨티넨탈컵 우승을 차지한다. 이후 브라질 세리에 A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에서 맹활약, 브라질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하기도 하였다. 이후 1974년에 그라나다 CF에서 1년을 뛰었고, C.D 코브렐로아와 아메리카 데 칼리에서 뛰다가 1980년에 친정팀인 CA 페냐롤에 복귀하여 1년을 뛰다가 1981년에 은퇴했다.

3.2. 국가대표 경력

마수르키에비츠는 1965년에 국가대표에 데뷔하여 1967년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하여 우승을 차지하였다.[2]

이후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 참가하는데 이 대회는 축구황제 펠레가 이끄는 브라질 산드로 마촐라, 잔니 리베라, 자친토 파케티가 버티는 이탈리아가 있었다. 거기에 우루과이까지 줄리메 컵의 영구 소장을 위해 FIFA 월드컵 3회 우승에 도전하는 상황이었고 디펜딩 챔피언인 잉글랜드 바비 찰튼, 바비 무어, 고든 뱅크스가 건재했고, 우베 젤러, 프란츠 베켄바워, 게르트 뮐러, 제프 마이어가 버티는 서독은 지난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준우승국이었다.

우루과이는 조별리그 첫 경기인 이스라엘과의 경기에서 에이스 페드로 로차가 부상으로 낙마하는 최악의 상황에 빠지고 비록 승리를 거두기는 했으나 이후 이탈리아와 비기고 스웨덴에게 패하며 1승 1무 1패로 조 2위로 간신히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8강에서는 소련을 만났는데 마수르키에비치의 훌륭한 선방끝에 연장전 승부 끝에 1:0으로 승리하였다.
펠레에게 '노 터치 트릭'을 당하는 마수르키에비치
그리고 4강은 펠레- 토스탕- 자이르지뉴- 호베르투 히벨리누- 제르송이 버티는 브라질이었다. 브라질은 20년 전 자신들의 홈에서 열렸던 월드컵에서 마라카낭의 비극을 안겨준 우루과이에게 복수를 하기위해 작정을 했고, 마수르키에비치는 3골을 허용하며 결국 3:1로 패배, 결승 진출이 좌절된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 마수르키에비치는 펠레에게 '노 터치 트릭'을 당하며 농락당했으나 펠레가 어이없는 실수를 하며 실점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이후 서독과의 3·4위전에서 전반 26분에 볼프강 오베라트에게 결승골을 내주며 1:0으로 패배, 4위에 그치고만다. 하지만 마수르키에비치는 에이스 페드로 로차의 부재 속에 무시무시한 선방 실력을 보여준 활약 덕분에 1970 FIFA 월드컵 멕시코 베스트 일레븐에 뽑혔다.

이후 1974년 서독 월드컵에도 참가했으나 네덜란드 스웨덴에게 패하며 1차 조별리그 탈락이란 굴욕을 겪었다. 이후 1974년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

4. 플레이 스타일

라디슬라오 마수르키에비치는 골키퍼치고 작은 키였으나 재빠른 몸놀림과, 안정적인 캐칭으로 이를 극복해냈는데, 레프 야신이 마수르키에비치의 선방실력을 칭찬하기도 했다.

5. 이후의 삶

1981년 은퇴 이후 잠시 CA 페냐롤의 감독을 맡았다.

2012년 12월 원인불명의 병으로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2013년 1월 2일 향년 6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6. 우승 기록



[1] laðizˈlao masuɾˈkjeβitʃ [2] 이때 동료인 페드로 로차의 활약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