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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9 10:32:07

쓰구코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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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구코 여왕
承子女王
파일:쓰구코 여왕.jpg
<colbgcolor=#bd0029><colcolor=#dca600> 출생 1986년 3월 8일 ([age(1986-03-08)]세)
도쿄도 미나토구
아버지 노리히토 친왕
어머니 히사코 비
형제 여동생 센게 노리코, 모리야 아야코
학력 가쿠슈인 초등과 (졸업)
가쿠슈인 여자중등과 졸업 (졸업)
가쿠슈인 여자고등과 졸업 (졸업)
가쿠슈인여자대학 (국제문화교류학 / 중퇴)
에든버러 대학교 (범죄심리학·사회학 / 중퇴)
와세다대학 ( 국제교양학부 / 학사)
오시루시
(お印)
[1]
싸리나무

1. 개요2. 아버지 노리히토 친왕3. 출생
3.1. 황실 가계도
4. 성장5. 방탕한 사생활과 유학 중단6. 첫 탈(脫) 가쿠슈인7. 대학 졸업8. 여동생들의 결혼9. 결혼 논의10. 기타

[clearfix]

1. 개요

나루히토 재종제. 아키히토 상황의 사촌 남동생인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 친왕의 3녀 중 첫째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다이쇼 덴노, 할아버지는 다이쇼 덴노의 4남이자 쇼와 덴노의 막내동생인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이다. 1947년 새로 개정된 황실전범에 의하면 천황의 손녀까지는 내친왕(內親王), 증손녀부터는 여왕(女王)이라 부른다.[2] 따라서 다카히토 친왕의 손녀들인 아키코, 요코, 쓰구코, 노리코, 아야코는 여왕이 되었다.

2. 아버지 노리히토 친왕

노리히토 친왕은 생전에 큰아버지 쇼와 덴노의 장손이자 사촌형 아키히토 상황의 장남인 나루히토 덴노와 친하게 지냈다. 노리히토 친왕은 나루히토 덴노의 5촌 당숙이지만 나이 차이가 5~6년밖에 나지 않아, 형과 동생 같은 사이였다. 나루히토 덴노가 황태자 시절 오와다 마사코와 결혼하고 싶어 애쓸 때도, 나루히토 황태자와 마사코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자리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반면 나루히토 황태자의 남동생인 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 친왕과는 덜 친했는데, 노리히토 친왕의 아내 히사코 비는 1994년에 후미히토 친왕의 아내 키코 비가 차녀 카코 공주를 임신했을 때 “형님( 마사코 황태자비)이 아직 아이를 낳지 않았는데, 황실의 서열을 생각하라”고 한소리 하기도 했다.

3. 출생

노리히토 친왕은 1살 연상인 톳토리 히사코와 1984년 결혼했고, 큰아버지 쇼와 덴노로부터 '다카마도노미야'라는 미야고(궁호)를 받았다. 이로서 다카마도노미야 미야케(황실 방계 가문)가 창설되었다.

2년 후인 1986년, 도쿄 아이쿠(愛育) 병원에서 첫째 쓰구코 공주가 탄생했다. 아이쿠 병원은 쓰구코 공주의 할머니 미카사노미야 유리코 비가 총재를 맡고 있던 사회복지법인 소속의 산부인과 소아과 전문 병원으로, 쓰구코 공주의 두 여동생 노리코 공주 아야코 공주 및 ‘41년 만의 왕자’로 화제를 모은 히사히토 친왕 또한 이 병원에서 태어났다.[3]

파일:attachment/쓰구코 공주/takamado1.jpg

갓 태어난 쓰구코 공주. 아버지 노리히토 친왕, 어머니 히사코 비와 함께.

파일:external/blog-imgs-71.fc2.com/20141003-OYTSI50021-L.jpg

파일:external/blog-imgs-71.fc2.com/img_0_20150419155421fdf.jpg

두 여동생 노리코 공주, 아야코 공주와 함께.

3.1. 황실 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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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쓰카사 도시미치
         
이케다 다카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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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즈 히사나가
구로다 요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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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노에 다다테루
 ╟─
센 소시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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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게 구니마로
모리야 케이



4. 성장

다카마도노미야 일가의 3자매는 가쿠슈인 유치원이 아닌 쇼토(松濤) 유치원에 다녔다. 이 유치원은 큰어머니 노부코 비가 결혼 전 영어교사로 근무했던 곳이고, 노부코 비의 두 딸 아키코 공주 요코 공주도 쇼토유치원에 다니다가 가쿠슈인 유치원으로 옮겼다. 도쿄도 시부야구의 고급 주택가인 쇼토에 있었던 쇼토유치원은 ‘ 일본 3대 명문 유치원’ 중 하나로 꼽혔으며, 원비가 비싸기로 순위를 다투는 유치원이었다. 정재계 및 부유층 자녀들이 많이 다녔으며, 명문 사립초등학교에 원생들을 많이 진학시키기로도 유명했다. 쇼토유치원은 2010년 폐원되었다.

하지만 초등학교부터는 여느 일본 황족들과 마찬가지로 가쿠슈인에 다녔다. 가쿠슈인 초등과와 가쿠슈인 여자중등과를 거쳐 가쿠슈인 여자고등과로 진학했는데, 고등학생이던 2002년에는 아버지 노리히토 친왕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겪었다. 당시 미성년자였던 다카마도노미야 일가의 공주들은 교복을 입고 장례식에 참석했는데, 이때 쓰구코 공주는 염색한 머리를 하고서 아버지의 장례식에 나타나 물의를 빚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는 “평소 모습 그대로 아버지를 보내드리게 하고 싶다”는 어머니 히사코 비의 의견이었다고 한다.

파일:attachment/쓰구코 공주/takamado2.jpg
2002년, 아버지 노리히토 친왕의 장례식에서. 어머니 히사코 비와 당시 고등학생이던 쓰구코 공주, 중학생이던 노리코 공주, 초등학생이던 아야코 공주.
2004년 4월 가쿠슈인여자대학 국제문화교류학부에 입학했다. 하지만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 에든버러 대학교[4] 유학을 떠났고, 이듬해인 2005년 3월 가쿠슈인여대를 자퇴하고 에든버러 대학교에 입학했다.

만 20세 생일인 2006년 3월 8일부터 성년이 되어, 성년 황족으로서 각종 행사, 공무, 황실 제사에 참가하게 되었다.

5. 방탕한 사생활과 유학 중단

파일:attachment/쓰구코 공주/takamado7.jpg
유학을 중단하고 일본으로 귀국하는 쓰구코 공주.
2008년 7월 1일, 쓰구코 공주는 에든버러 대학교를 중퇴하고 일본으로 귀국하였다. 그녀의 유학 중단 이유에 대하여 궁내청에서는 “아버지 노리히토 친왕이 사망한 후 다카마도노미야 일가에 주어지는 금액이 줄어들어, 해외유학 비용을 감당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경제적인 문제를 이유로 들었다. #

그런데 쓰구코 공주의 유학 중단에 대해서는 다른 이유도 거론되었는데, 그녀의 품행 문제였다. 영국 유학 당시 쓰구코 공주는 자신의 미니홈피를 통해 자유분방하고 문란한 사생활 및 이성관계를 거침없이 노출했고, 이 사실이 한 잡지의 폭로로 드러나면서 일본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많은 비판을 받았다. #[5]

이로 인해 쓰구코 공주는 일본 황실의 이단아로 주목을 받았으며, 미국 경제잡지 < 포브스>에 의해 세계의 말썽꾼 젊은 왕족 중의 하나로 꼽히기까지 했다.

한편 쓰구코 공주의 작은 고모 센 마사코도 젊은 시절 비슷한 일화가 있다. 마사코 공주는 가쿠슈인대학 법학과 재학 중에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그런데 마사코 공주의 방탕한 생활상이 일본에까지 들려오는 바람에, 어머니 유리코 비가 크게 걱정하여 직접 프랑스까지 쫓아가서 꾸짖고 일본으로 도로 데려오려고도 했다는 것이다.

귀국 후 마사코 공주는 유학 시절 배운 외국어를 활용하여 황족으로서의 공무를 하다가, 1983년 다도로 유명한 센 가문[6]의 종손이자 5살 연하남인 센 소시쓰(千宗室)와 결혼, 황적을 이탈하여 평민이 되었다. 마사코는 소시쓰와의 사이에서 2남 1녀[7]를 낳았고, 결혼 후로 무난하게 살아가고 있다.

6. 첫 탈(脫) 가쿠슈인

파일:attachment/쓰구코 공주/takamado8.jpg
와세다대학 국제교양학부 입학식 때의 모습. 일본에서는 대학 입학식 때 검은 정장을 입는다고.
2008년 9월 21일, 와세다대학 국제교양학부에 입학하였다.[8]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 황족이 가쿠슈인 이외의 학교로 진학한 첫 사례였다.[9] 이후 일본 황족들의 ‘탈(脫) 가쿠슈인’ 사례가 줄을 이었다. 쓰구코 공주가 문을 연 셈이었다.

다카마도노미야 일가의 막내 아야코 공주는 조사이(城西) 국제대학 복지종합학부,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의 장녀 마코 공주 국제기독교대학 교양학부 예술과학과, 장남 히사히토 친왕은 국립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속유치원ㆍ부속초등학교ㆍ부속중학교를 졸업하고 츠쿠바대학 부속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의 차녀 카코 공주 가쿠슈인대학 문학부 교육학과[10]에 입학했으나, 이듬해에 중퇴하고 다시 대학입시를 치러 2015년 4월 국제기독교대학 교양학부 예술과학과에 입학, 언니와 같은 대학 같은 학과를 졸업했다.

쓰구코 공주는 와세다대학에서 학업을 지속하는 한편 가족들과 함께 황족으로서의 공무도 하였는데, 2011년 도호쿠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는 어머니 히사코 비와 함께 재해지역을 방문하고 위문활동 등을 하기도 했다.

7. 대학 졸업

2013년 3월, 와세다대학 국제교양학부를 졸업했다. 본래 국제교양학부는 졸업하려면 1년의 해외유학이 필수인데, 쓰구코 공주는 대학 측에서 특별히 봐주어, 해외유학을 하지 않고서도 졸업했다. 와세다대학 입학 전 영국 에든버러 대학교에 유학하다 온 경험도 있고, 황족이라서 특별대우도 받았을 것이다.

대학 졸업 직후인 2013년 4월부터 쓰구코 공주는 일본 유니세프협회 상근촉탁직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근무하는 틈틈히 황족으로서의 공무도 하고 있다.

8. 여동생들의 결혼

2014년에는 바로 아래 여동생인 노리코 공주가 센게 구니마로(千家國麿)와, 2018년에는 막내 여동생인 아야코 공주가 모리야 케이(守谷慧)와 결혼하여 황적을 이탈, 평민 센게 노리코 모리야 아야코가 되었다. 이로서 다카마도노미야 가문에는 어머니 히사코 비와 장녀 쓰구코 공주만이 남게 되었다. 아야코는 결혼 1년 만인 2019년에 장남 모리야 죠(守谷穣)를 낳았고, 쓰구코 공주는 이모가 되었다.

한편 2017년에는 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 친왕의 장녀 마코 공주 국제기독교대학 캠퍼스 커플로 만난 남자친구 코무로 케이와의 약혼을 발표했고 이듬해(2018년)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코무로 케이와 그의 집안에 대한 갖가지 좋지 않은 사실들이 밝혀져 반대 여론이 들끓었고, 결혼식은 치러지지 못하고 기약없이 미루어졌다. 그러나 마코 공주는 끝까지 고집을 부렸고, 결국 2021년 10월에 결혼식도 지참금[11]도 없이 혼인신고만으로 코무로 케이와 부부가 되었다. 평민이 된 코무로 마코는 남편과 함께 미국 뉴욕으로 이주하여 살고 있다.

9. 결혼 논의

두 여동생은 할머니 유리코 비와 어머니 히사코 비로부터 인정받은 신랑감과 순조롭게 결혼하여 평민이 되었지만, 정작 맏언니인 쓰구코 공주의 결혼은 제일 늦어지고 있다. 쓰구코 공주는 두 사촌언니 아키코 공주([age(1981-12-20)]세), 요코 공주([age(1983-10-25)]세)와 함께 아직 미혼으로 황실에 남아 있다. 아키코 공주에게는 한때 남자친구가 있었지만 결혼까지 이어지지는 못했고, 이후 아키코 공주는 “시집가지 않고 평생 독신으로 황실에 남아서 미카사노미야 가문을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요코 공주는 언니처럼 독신 선언을 하지는 않았지만, 결혼하지 않고 있다.

쓰구코 공주에게는 2016년 무렵부터 사귀던 남성(이하 A)이 있었다. A는 메가뱅크[12] 가운데 한 곳에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쓰구코 공주는 A와 결혼하고 싶어서, 그를 궁저로 데리고 와서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정식으로 소개한 적도 있다. 어른들의 눈에는 A가 별로 성에 차지 않은 모양인지 곧바로 결혼하지는 못했지만, 쓰구코 공주는 여전히 A와 결혼하기를 원해서, 한때는 “2018년 내에 결혼하려고 계획하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하지만 그 계획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앞으로 쓰구코 공주가 결혼하게 될지는 아직 불명이나, 만일 황실전범이 바뀌지 않아 공주 미야케 창설이 허용되지 않은 상태에서 쓰구코 공주가 결혼할 경우, 다카마도노미야 가문은 사실상 히사코 비가 사망하면 절문된다.

2020년 2월 5일, 문예춘추에 “쓰구코 공주와 A가 밤에 데이트를 했다”는 기사가 떴다. 쓰구코 공주와 A를 몰래 따라가서 도촬하고, 두 사람이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나누는 사적인 대화를 엿듣고[13], 길에서 다짜고짜 인터뷰를 시도하여 기사를 쓴 것에 대해, 일본인들의 반응은 좋지 않다.

10. 기타

2019년 12월, 도쿄 모처에서 일본과 헝가리의 수교 15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가 열렸다. 쓰구코 공주는 전시회에 참석하여 당시 방일해있던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와 인사 및 대화를 나누었지만, 언론에 크게 보도되지는 않았다.

2021년 11월 말, 일본 주간지에서는 쓰구코 공주에 대해 ‘ 코로나19 시국에 새벽까지 롯폰기에서 을 마셨다’며 부정적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당시 도쿄도에서는 확진자 수가 저조하다는 이유로 코로나19 방역을 최소화하고 있었기에, 쓰구코 공주가 퇴근 후에 지인들과 술자리를 함께한 것은 문제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이는 일본 전체가 반대한 코무로 케이와의 결혼을 끝까지 밀어붙인 코무로 마코[14]와 그녀의 친정 아키시노노미야 가문에 대한 반발을 의식, 비난의 화살을 아키시노노미야 일족에서 쓰구코 공주에게로 돌리려는 의도로 보여, 일본 여론의 반응은 좋지 않다.

[1] 일본 황족에게 주어지는 개인 표식. 주로 식물이며, 사용하는 물건 등에 붙는다. [2] 남자의 경우 친왕(親王)/왕(王). 1947년 이전에는 현손(4대손)까지를 친왕/내친왕, 5대손부터를 왕/여왕이라 했다. [3] 히사히토 친왕이 태어난 후로, 아이쿠 병원에서 출산하려는 부모들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4] 마코 공주도 이 대학에 유학한 바 있다. [5] 쓰구코 공주와는 반대로, 사촌언니 아키코 공주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일본의 여성 황족으로서는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6] 센 가문이 왜 다도로 유명한가 하면, 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에게 다도를 가르쳐준 스승이자 일본 다도의 기초를 만드는 등의 공헌이 커 지금도 다도의 원조라 불리는 센노 리큐의 집안이기 때문이다. 정작 센노 리큐는 히데요시에게 밉보여 자결하고 말았으나, 후손들은 별 제약없이 계속 다도를 수련해 이러한 다도를 일본 전역으로 퍼트리게 된다. [7] 1984년생([age(1984-01-01)]세) 장남 아키부미(明史), 1987년생([age(1987-01-01)]세) 장녀 마키코(万紀子), 1990년생([age(1990-01-01)]세) 차남 다카부미(敬史) [8] 이 입학에 대해서는 특혜를 받은 것이라는 의혹도 있다. 아키히토 덴노의 손녀들인 마코 공주 카코 공주의 대학 입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9] 해외 유학 제외. [10] 카코 공주가 입학하던 2013년에 신설된 학과로, 초등학교 교사를 양성하는 학과다. [11] 일본 황실에서, 시집가서 평민이 되는 공주에게 지급하는 돈. [12] 일본의 3대 은행 미즈호은행, 미쓰비시UFJ은행,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13] 기사에서는 “가게 종업원이 들은 것”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일하느라 바쁠 종업원이 들은 이야기라고 보기에는 너무 내용이 상세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기자들이 쓰구코 공주와 A의 가까이에 몰래 앉아 엿들어서 기사를 쓰고는 거짓말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14] 궁내청 외무성에 의해,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코무로 케이 코무로 마코 부부에 대한 보도가 제한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