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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7 14:38:34

다니엘 스터리지

다니엘 스터리지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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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의 前 축구 선수
파일:article-0-19850CBD00000578-663_634x435_remastered.jpg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이름 다니엘 스터리지
Daniel Sturridge
본명 대니얼 안드레 스터리지[1]
Daniel Andre Sturridge
출생 1989년 9월 1일 ([age(1989-09-01)]세)
잉글랜드 웨스트 미들랜즈 버밍엄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
[[잉글랜드|]][[틀:국기|]][[틀:국기|]])[2]
신체 180cm[3] / 체중 74kg
직업 축구 선수 ( 스트라이커 / 은퇴)
주발 왼발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선수 캐드버리 애슬레틱 (1996 / 유스)
아스톤 빌라 FC (1996~2000 / 유스)
코번트리 시티 FC (2000~2003 / 유스)
맨체스터 시티 FC (2003~2008 / 유스)
맨체스터 시티 FC (2008~2009)
첼시 FC (2009~2013)
볼턴 원더러스 FC (2011 / 임대)
리버풀 FC (2013~2019)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2018 / 임대)
트라브존스포르 (2019~2020)
퍼스 글로리 FC (2021~2022)
국가대표 26경기 8골 ( 잉글랜드 / 2011~2017)
SNS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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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기록
5.1. 대회 기록5.2. 개인 수상
6. 여담
6.1. 신체 프로필 오류

[clearfix]

1. 개요

잉글랜드의 前 축구 선수. 현역 시절 포지션은 스트라이커. 국내 팬들에겐 특유의 댄스 세리머니로 잘 알려져 있다. 한때 최고의 재능을 가졌던 삼사자 군단의 공격수로 평가받았으나 지속된 부상으로 망가진 선수이다.

2. 클럽 경력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다니엘 스터리지/클럽 경력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 국가대표 경력

파일:thumb_22236_default_news_size_5.jpg

2011년 11월, 스웨덴전에서 교체 선수로 잉글랜드 성인 대표로 데뷔하였다.

2012 런던 올림픽 축구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팀 GB[4]라는 이름의 영국 단일 팀으로 출전했다. 스터리지는 본선 조별리그 3차전에서 결승골을 성공시키며 팀의 조 1위를 확정짓는 공을 세웠다.

그러나 카디프에서 맞붙은 대한민국과의 8강전에서 승부차기 5번 키커로 나섰을 때, 이 날 경기 중 정성룡의 부상으로 교체 출전한 백업 골키퍼 이범영에게 막히며 고마 워요 스터리지 대한민국 올림픽 4강 진출의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특히 차기 직전에 주춤거린 점이나 공을 찬 방향 등이 10년 전 월드컵 때의 대한민국 4강 진출의 영웅과 워낙 비슷했던지라, 호아킨과 비교되고 있기도 하다.[5] 그리고 공교롭게도 본인의 차징으로 정성룡 골키퍼가 다쳐서 이범영이 교체로 나온 건데, 그 이범영에게 막혔으니...[6]

다만 패배 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던 호아킨과 달리, 스터리지는 위로해 주러 온 코치와 대니 로즈의 손을 뿌리치며 짜증내는 모습이 나온 바람에 멘탈이 영 아니라며 까는 의견도 많았다.그리고 그 장면은 호아킨 때처럼 앞으로 방송에서 뱅크샷으로 계속 우려먹힐 듯. 여담으로 영국 단일 팀 감독을 맡았던 스튜어트 피어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때 서독과 맞붙었던 4강전 승부차기 때 실축한 적이 있으며, 스터리지 때문에 또 다시 승부차기의 악몽에 울어야 했다.

2013년 3월 22일 산마리노와의 브라질 월드컵 유럽 예선에서 A팀 데뷔 골을 넣었다.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잉글랜드 국가대표로 출전하였다. 마나우스에서 열린 조별리그 첫번째 경기였던 6월 14일(현지시각) 이탈리아전에서 웨인 루니의 크로스를 쇄도하며 차넣어 월드컵 데뷔골을 기록, 예의 로봇 춤을 선보였다. 그러나 잉글랜드는 마리오 발로텔리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며 이탈리아에 1-2로 패했다.

UEFA 유로 2016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예비 명단에 포함되었는데, 소속팀에 있을 땐 클롭의 케어로 부상이 없었지만 로이 호지슨한테 가자 귀신같이 부상당했다(...). 종아리 부상으로 인해 대회 출전이 불투명해보였지만 일주일 치의 아주 경미한 부상이었고 결국 유로 2016 최종 명단에 참여했다. 다만 시즌 내내 부상을 달고 살아서 기본 재능이 뛰어나더라도 주전으로 나서기는 어려워 보인다. 당장 득점왕인 케인과 그에 버금가는 바디도 있기 때문. 케인이 거의 확실한 주전이고 바디가 그 다음, 스터리지는 거의 3옵션 공격수인데 래시포드라는 걸출한 유망주가 있다보니 경우에따라서는 래시포드보다도 출전을 못할 수 있다.

UEFA 유로 2016 조별리그 1차전에서 잉글랜드는 러시아와의 경기에서 뒷심부족으로 통한의 1-1 무승부를 허용하며 승점 1점에 만족해야만했고 스터리지는 그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그리고 2차전 웨일즈와의 경기에서는 웨일즈의 수비축구에 말리다가 가레스 베일에게 전반전 프리킥 선제골을 허용하며 끌려갔고, 스터리지는 후반전이 시작할때 전반에 부진했던 라힘 스털링과 교체되어 그라운드를 밟게 되었다. 같이 교체투입된 제이미 바디의 동점골을 크로스로 도와 1-1이 된 가운데, 후반 추가시간 페널티 박스 안에 웨일스 수비들이 모두 몰려 있던 혼전 상황에서 본인의 장기인 반박자 빠른 슈팅을 극장 결승골로 성공시키며 팀에게 귀중한 승점 3점을 안겼다. 사실상 스터리지의 투입으로 경기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3차전인 슬로바키아 전과 16강 아이슬란드 전에서는 선발로 나섰음에도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하고 소득없이 마무리짓고 말았다. 윙어 위치에서 뛰어야 했던것도 한몫하긴 하나 스터리지 본인의 폼도 썩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이후 소속팀에서의 잦은 부상과 폼 저하, 그 이후로는 노쇠화로 인해 자연스레 국가대표에서 멀어졌다.

후에 현역 은퇴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국가대표도 은퇴하게 되었다.

4. 플레이 스타일

빠른 발과 우수한 발재간을 갖췄으며 강력한 슈팅력도 갖추고 있다. 한때 윙어로 뛰었을 만큼 볼을 간수하고 전진시키는데 재능이 있다. EPL의 수준급 수비수들을 상대로 기본적인 방향 드리블과 개인기만으로 제쳐버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발재간이 좋기 때문에 박스에서 접거나 턴하는 동작도 간결하며, 오프더볼도 우수한 편. 왼발 슛에 관한 재능은 현지 패널들도 인정할 정도로 대단한 슈팅력을 갖고 있다. 박스 근처에서 중거리 슛이 일품인데 유효 슛이 될 비율이 매우 높은 편이다. 페널티 박스 바깥에서 왼발로 감아 차는 슈팅도 곧잘 때리며, 페널티 박스 내에서의 골 결정력은 EPL 최상위권 수준. 또한 발목 힘이 강해 별 도움닫기 없이 차도 위협적인 슛이 날아가고, 칩 슛이나 발리 슛 등 슈팅 스킬도 다양해 키퍼들이 매우 싫어하는 공격수이다. 여기에 리듬감이 예사롭지 않아서 그런지 키퍼의 예측을 벗어나는 슈팅 타이밍이 매우 변칙적이면서도 정교하다.

첼시 시절에 단점으로 곧잘 지적되는 것은 탐욕이었다. 패스를 해야 할 상황에서도 슛이나 무리한 드리블을 시도하면서 패스 버튼이 안 달려 있는 것 같다는 말도 곧잘 들었지만 리버풀 이적 후엔 이러한 모습이 없어졌고 연계 플레이에서도 상당히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었다.[7] 또 하나, 그리고 여전히 지적되는 것은 제공권. 공중볼에 매우 약한데, 2013-14 시즌 리그에서 공중볼 상황에서 19.5%라는 말도 안 되게 저조한 경합률을 기록했다.[8] 기본적으로 몸싸움 자체를 꺼리는 선수인 듯하다. 경기를 보다 보면 스터리지가 거구의 센터백들과의 몸싸움을 거북해한다는 느낌을 곧잘 받을 수 있다.[9]

마지막은 당연히 부상 경력. 커리어 하이를 찍은 2013-14 시즌에도 38개의 리그 경기 중 26번의 선발 출장밖에 기록하지 못했고 2014-15 시즌에는 고작 3경기 뛴 뒤에 장기 부상을 끊어버렸으며, 이후에도 내내 부상에 시달리며 추락하게 되었다. 스터리지 본인은 인터뷰를 통해 "잦은 부상은 아마 근육에 대한 유전적 요인이 주 원인일 듯 싶다. 선수 생활을 했던 두 삼촌들도 마찬가지였고, 아버지 역시 삼촌들과 같은 병으로 고생했다. 근육 부상에서 선천적으로 취약한 상태"라고 밝혔다.

안드레 빌라스보아스 감독은 그를 포르투 감독 시절 지도하던 헐크를 연상시킨다면서 매우 빠른 속도와 테크닉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측면에 기용했으나, 정작 자신은 측면에 배치되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리버풀 이적 이후 그는 자기 자신을 유벤투스에서는 측면에 기용되었으나 아스날에서 중앙 공격수로 배치되며 전설이 된 티에리 앙리에 비유하기도. 실제로 리버풀에서 중앙 공격수로 기용된 뒤 2013-14 시즌 리그 2위의 득점 스탯을 찍기도 했고.

공격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가 높은 선수이다. 측면, 2선, 최전방을 오가는 활동 반경을 가져가면서 팀의 페너트레이션에 깊게 관여할 수 있다. 브렌던 로저스 감독은 깊숙이 내려와서 공을 받아주다 측면으로 이동하며 공격을 전개하고, 수아레스나 스털링 등 공격 파트너가 뽑아주는 파이널 패스를 결정 짓는 그의 능력을 칭찬하면서 그를 전통적 스트라이커인 9번과 공격형 미드필더인 10번의 경계에 있는 '9.5번'으로 묘사했다. 지속적인 부상으로 인해 폭발력이 줄어든 후에는 무리하지 않고 포처의 역할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렇게 계속된 부상으로 결국 최고 무기였던 주력과 결정력이 예전에 비해 현저히 낮아졌다. 옛날엔 거의 놓치지 않던 결정적인 찬스들을 날려버리는 장면이 빈번하게 보이며 스피드도 정말 예전 그 선수가 맞나 싶을 정도다. 워낙 공격 진영에서 보여주는 축구 센스가 탁월한 편이고 오프더볼이 많이 발전하였으며 심지어 오른발도 망설임없이 쓰는 편으로[10] 한동안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나름 어느 정도 커버치기도 했으나 계속된 부상에 시달리며 끝내 커리어에 제동이 걸려버렸다.[11]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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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신체 프로필 오류

다니엘 스터릿지의 키는 무려 188cm로 알려져 있지만은 실제로는 180cm을 웃도는 키다. 이건 맨시티 유망주 시절부터 계속 이어져 온 오류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팀을 옮기면서도 프로필 키가 수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오류덕에 축구게임 피파에서 키 180초반대의 유연성과 스피드를 갖춤과 동시에 키 180후반대의 제공권과 피지컬을 갖추며 상당한 이득을 봤었지만 피파14에서야 키가 183으로 수정됐다. 하지만 이득만 봤던건 아니고 피해자이기도 했는데, 피파 시리즈 첫 등장인 피파07과 다음 시리즈 피파08 까지는 165로 나왔었다.[13] 첫 등장 당시 스터리지의 나이가 17세라서 2년 사이에 성장한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순 있겠지만 스터리지는 이미 170대 중반을 넘어간 키였다.

피파 온라인3에서도 초기에는 188cm으로 적용되었다가 이후 수정된 키가 반영되며 180초반으로 변경되었고 피파온라인 4에서도 수정된 키로 적용됐었으나.. 7월 25일 패치에서 일부 선수들의 신체조건, 주발이 수정될때 뜬금없이 키가 188로 변경되었다. 그런데 모든시즌이 변경된것도 아니고 몇몇 시즌들만 188로 변경된지라 nhd와 tb시즌은 키가 그대로 180cm인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다.

스터리지와는 정반대의 케이스로는 로빈 반 페르시가 있다. 반 페르시는 189cm의 키인데 커리어 초창기 183cm가 그대로 이어져 선수생활 은퇴 이후까지도 여전히 수정되지 않았다.


[1] 발음 기호에 따르면 대니얼 '앤드리' 스터리지(/ˈdænjəl ˈændrɪ ˈstʌrɪdʒ/)가 맞는 표기법이긴 하나, 선수 본인이 직접 자신의 미들네임을 '안드레'라고 말한 영상(2분 50초경부터)이 있으므로 여기에선 '안드레'라고 표기한다. [2] ethnicelebs.com 흑백혼혈은 아니며 부모가 모두 흑인이다. [3] CelebHeights.com 후술하겠지만 공식 프로필 188cm는 잘못된 정보이다. [4] 이 대회에서 홈 팀 영국 단일 팀이라는 명목 아래 출전했지만, 정작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축구협회가 선수 차출을 거부해 잉글랜드 웨일스 선수들로만 구성되었다. 사실상 반쪽 단일 팀. [5] 다만 호아킨은 그날 승부차기를 제외한 경기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며 한국의 수비를 농락했지만 스터리지는 해당 경기내내 삽질했다. 슈팅을 해도 영점 조정이 안되어서 공이 많이 떴다. [6] 이 때는 국제대회에서 경기에 1분이라도 출전해야 병역혜택이 주어졌다. [7] 첼시 시절의 탐욕은 주전이 아니었던 상황에서 스스로를 어필하려는 과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게 팬들의 평가이다. [8] 키가 비슷한 181cm의 수아레스도 2013-14 시즌에 30.3%의 공중볼 경합률을 기록했다. [9] 뛰어난 재능과는 달리 신체적으로는 특출나게 강하다는 평가를 받던 선수도 아니었고(물론 약하다는 건 아니다.), 몸싸움을 싫어하는 스타일일 수도 있다.(크리스티아누 호날두도 건장한 체격과 파워와는 달리 몸싸움 자체는 싫어했다.) 무엇보다 부상이 잦았던 본인의 이력때문에 몸싸움을 가급적 피하고자 했을 수 도 있다. [10] 오른발잡이 선수들에 비해서 왼발잡이 선수들은 대체로 약발을 그닥 못 쓰는 편이다. 특히나 스터리지 본인도 젊은 시절 오른발로 슈팅해야 할 때 굳이 왼발을 쓰는 약점이 있었지만, 훈련을 열심히 한 덕인지 이제는 오른발로 슛도 패스도 곧잘 하는 편. [11] 스터리지는 영국내에서 꽤 주목받던 유망주였다. 1군에 올라온 뒤로도 주목에 걸맞은 활약을 보여주었고, 커리어 하이는 PL 탑클래스라고 할만 했다. 다만 계속되는 부상으로 인해 많은 경기를 결장한데다가 기량저하까지 찾아왔으니 그를 유망주 시절부터 알던 팬들 입장에선 참으로 안타까울 노릇이다. 만약 부상이 아니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유명해지고 훨씬 더 많은 기록을 세웠을 것이다. [12] 스터리지에게 춤이란? [13] 당연하지만 당시엔 인지도가 적어서 업데이트가 안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