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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12:57

김용옥/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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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학자로서
2.1. 학문 성과 부족2.2. 헌법 부정 논란2.3. 폴 포트 옹호2.4. 줄어든 영어 실력
3. 국가관/대외관
3.1. 역사왜곡3.2. 국수주의3.3. 북한 찬양, 민정계 정권 비판의 이중잣대3.4. 반미 사상과 모순되는 본인과 자녀들의 선택적 친미 행보3.5. 극렬한 친중 행보
4. 매너 결여
4.1. 6월 항쟁에 불참 및 몰염치한 행동4.2. 집회 중 무단 난입
5. 인품
5.1. 독선5.2. 오만함5.3. 곡학아세
6. 기타7. 사회 인사들과 언론들의 비판

1. 개요

김용옥의 비판을 정리한 문서.

2. 학자로서

2.1. 학문 성과 부족

철학자로서 학문적인 토대를 놓을 만한 논문이나 서적이 전무하다. 대중서적에 자신의 기철학에 관한 아이디어를 논설한 것이 전부라고 할 수 있다. TV에 많이 출연하고 베스트셀러도 내서 일반인에게 유명한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막상 그의 학문적 업적이 무엇인지를 논하면 애매해진다.

또한 김용옥의 철학을 진지하게 연구하는 논문이 실질적으로 전무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물론 해외에서도 일본어로 번역된 책이 딱 한 권 있을 뿐이다. 인지도 또한 매우 낮은 편.

대중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당시 일시적인 유행에 불과했을 뿐이고 또한 철학의 내용보다는 그의 독특한 강의나 말투 등 부수적인 것이 유행의 정체라는 평. [1]

2.2. 헌법 부정 논란

'민심은 곧 천심이요 헌법보다 우선한다'는 반헌법적인 발언을 한 바가 있는데 김용옥의 말 대로라면 일본 제국의 침략이나 홀로코스트도 (일본과 독일 민심이었으니) 천심이므로 옳다는 소리다. 김용옥이 얼마나 법치를 우습게 보고 대중추구적인 인물인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언동 중 하나.
즉, 김용옥이란 인물은 법치주의가 왜 존재하는지 이해를 못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며, 때문에 "서양에서 과학 민주주의 자본주의만 배우고, 독재 제국주의는 배우지 말자"라는 유치하고도 한심한 소리가 입에서 나오는 것이다. 서구 사회 발전과정에 생겨난 상호연동된 부산물들을 '이건 먹고 저건 버리자'식의 부페식 마인드로 접근하는 유치한 발상은 둘째치고, 전체주의를 억제하는 것이 법치주의라는 중고등 과정 수준의 기초적인 개념조차 70세가 넘은 나이임에도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

공화국(republic)이란 제도에 의한 통치를 뜻한다. 민중이 통치자가 아니란 것. 한국에서는 독재에 반대되는 개념인 열린 사회(open society)가 민중들이 우루루 몰려다니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민정서법으로 곡해되곤 하지만, 본디 개념은 1인 독재가 아닌 법에 따른 지배가 이뤄지며, 정부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는 사회를 뜻한다. 그냥 '민심이 천심'이면 군중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저 여자는 마녀다!"라고 선동하여 단체로 때려죽인 마녀사냥도 정당하고 옳은 행위가 된다.

대한민국에는 유난히 민주화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 중에는 김용옥처럼 '반민주'적인 중국과 북한에 우호적이고 민주주의 종주국인 서구에 비판적인 ' 민족주의자'들이 많다. 이들은 입만 열면 민주주의를 외치지만, 성향상 이들이 민주주의에 대해 심도있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한국에서는 떼법이 가장 상위법이라는 우스개가 있는데 민주주의는 법을 만들거나 개정할 때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것이지, 국민들이 법 위에 설 수 있는 체제가 아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마음에 안들면 그냥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며 민심을 외치는데, 이 민심엔 몇가지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다.

우선 민심은 소수 여론주도층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간과했다는 문제점이 있다. 괜히 언론권력이란 말이 나오겠는가.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깨시민들이 많아진 현대사회에서도 언론의 미묘한 논조의 차이만으로 여론이 요동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단적으로 2008년 대한민국 전역을 뒤흔들었던 광우병 선동[2]당시 나섰던 한 학자의 블로그는 온통 반미적 성향의 글로 가득차 있었다. 즉, 민심은 소수 권력자들에 의해 조작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에 언급한 나치독일 역시 희대의 선동가 괴벨스의 선동에 넘어간 것이며, 이슬람권 국가들의 신앙심도 지도층이 정한 이념에서 비롯된 것이며ㅡ 조선인들이 유교문화에 푹 빠졌던 것도 당시 권력잡은 지배층이 성리학을 채택한 사대부들이 민중에게 보급하면서 널리퍼졌던 것이고, 일본에서 메이지 유신을 통해 민초들이 깨어났던 것도 지배층이 개혁의 길을 택했기 때문인데, 예나 지금이나 민심은 지배층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한국은 공식적으로는 사형을 폐지하지는 않았지만, 마지막으로 사형을 집행한 지가 20년이 훌쩍 넘어서 외국에서는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한다. 당시 바로 사형 폐지시키면 욕 먹을까봐 그냥 집행을 정지시켜버린 것인데, 정부의 정책 자체가 항상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민심이 헌법이면 사형도 부활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도 강력범죄 기사에 보면 사형하라는 댓글로 도배가 될 정도로 사형을 원하는 민심이 적지 않다. 살인마도 인권이 있으므로 사형은 안된다는 댓글은 비공감 폭탄을 맞으며 십중팔구 '너네 가족이 당했어도' 운운하는 댓글이 달릴 정도다. 당시엔 더욱 사형 존치 의견이 높았을 것이다. 또한 근대 초기 마녀사냥은 물론, 현대에도 채선당 임산부 사건, 국물녀 사건, 240번 버스 사건 등 선동에 쉽사리 휩쓸려 마녀사냥 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이런 것을 통제하기 위해 헌법을 포함한 법이 존재하는 것이다.

실제로 평화헌법 없는 일본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헌법 개정 절차는 굉장히 까다로운데, 여러 복잡한 심의 절차를 거친 뒤 의회에서 압도적인 표결을 얻어야 하고, 마지막 안전장치로 국민투표까지 마련돼있다. 처음부터 국민투표로 결정하는게 아니고, 의회가 우선권이란걸 명심하자. 마지막에 국민투표를 하는 이유는 국회의원들도 사람인 이상 단체로 미쳐서 작당할 수가 있으니, 그것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최후 안전장치로서의 의미일 뿐이다. 그냥 민심이 천심이고 헌법보다 우선이라면 모든 사건을 여론조사나 다수결 인민재판으로 결정하지, 뭐하러 법정이 존재하나?

그러나 헌법보다 민심 운운하는 발언은 정말 진지한 발언이라기보다는, 대중들에 대한 인기로 먹고 사는 도올 특성상 대중들이 듣기 좋은 감언이설에 불과할 수도 있다. 물론 민심이 들고 일어나 국회를 거쳐 헌법이 개정되는 경우도 얼마든지 가능하나 너무 이상한 내용이면 국회차원에서 커트될 수도 있기에 민심이 무조건적으로 우선하는 것은 아니다. 개헌절차도 법률학자들의 타당한 검토와 감수를 거쳐 새로운 개헌안을 내놓는 거지, 그냥 원하는 내용을 마구 집어넣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정치인들에게 법 뒤에 숨지말고 민심의 눈치부터 살피라는 경고를 하는 것은 좋으나, 굳이 헌법보다 민심이 우선이라는 발언까지 해가면서 헌법을 폄하하고 민중을 선동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것은 비판의 소지가 있다.

물론 법과 헌법이 단순히 충동적 민중을 통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가 원활히 유지될 수 있도록 질서와 통제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에 그런 목적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래서 시위자체를 금지하는 국가들도 존재하며[3], 민주국가에서는 시위를 허용하긴 하지만 엄연히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 존재하여 이를 위반하면 처벌한다. 특히 시위대는 평화시위를 잘하다가도 군중심리로 인해 순식간에 폭력시위로 변해버리는 사례가 왕왕 있기에 시위장소에는 대개 경찰들이 쫙 깔려 통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헌법이 전 국민의 동의를 요하는 유일한 법이라고 하는데, 애당초 법이 다수의 민중들에게 일일이 동의를 받고 만들어진 경우는 많지 않다. 국민의 동의를 거쳤다면 '더욱 가치와 권위가 있는' 법이라고 볼 수는 있으나, 그렇지 않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도 아니다. 한국에서 사형제를 대놓고 폐지하진 못하고 오랜 기간 집행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사형폐지국'이 된 것도 국민의 반발을 의식해서 그런 면이 있었는데 당당하게 국민의 동의를 거쳐 폐지한게 아니라고 해서 정당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중국의 헌법도 2018년 개헌을 봐도 알 수 있듯 국민투표를 거치지도 않고 자기들 멋대로 개헌해버렸다. 그렇다고 중국 헌법이 가치가 없느냐 하면 그건 아니지 않은가? 더군다나 다른 사람도 아닌 민심은 천심이라고 부르짖은 김용옥이 차이나는 도올에서 지도자 맘대로 헌법까지 바꿀 수 있는 중국의 정치체제를 추켜세웠다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는 비판의 소지가 있다.

헌법을 개정하려면 국민투표를 하는 이유는 국민의 동의를 요하는 중요한 사안이라는 관점도 맞으나, 그만큼 헌법을 함부로 손대지 못하게 해놓은 안전장치임은 부정할 수 없다. 당장 김용옥이 찬양한 중국의 정치체제에서는 2018년 개헌을 통해 지도자의 연임제한을 맘대로 폐지해버렸다. 물론 전인대 대표단의 투표는 있었지만 찬성률이 100%에 육박하며 사실상 자기 똘마니들 데려다놓고 하는 요식행위이기 때문에 별 의미는 없으며 그게 13억 중국인들의 민심이라고 볼 수는 없다. 사실 헌법에 지도자 연임제한을 넣은 것은 독재자의 탄생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인데, 이걸 중국처럼 지도자가 자기 맘대로 폐지해버리는 사태를 막기 위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개헌시 국민투표를 하도록 못박아서 강제해놓은 것이므로 중국꼴 나는걸 막기위한 안전장치라고 해석하는 것도 틀렸다고 볼 수는 없다. 그간 김용옥은 투표가 없는 일당독재의 위험성을 너무 나이브하게 여기며 간과했었기에 2018년 중국의 개헌에 데꿀멍하게 되었는데, 서로 견제하는 다당제의 비효율성도 틀린 지적은 아니지만 일당독재의 위험성보단 훨씬 낫다.

민심이 곧 천심이라는 말은 일시적으로 선동된 민심이라도 따라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반론이 있으나, 시위대란 다 자신이 정의라고 판단했기에 거리로 나선 것이다.

2.3. 폴 포트 옹호

그의 저서 <앙코르와트 월남가다>를 읽어보면 캄보디아를 파괴한 인류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이자 학살자였던 폴 포트를 옹호하는 듯한 서술이 다수 등장한다. 게다가 킬링필드에 관해서도 기본적으로 음모론적 입장에서 접근하고 있다.

위의 저서에서 도올은 킬링필드를 폭격을 가한 미국의 잘못이지 폴 포트의 잘못이 아니며, 당시 캄보디아의 죽음은 학살이라기보다 '자연주의'와 '반문명주의'를 단기간에 실천하려다가 일어난 기아와 질병이 원인이고, 따라서 잘못에 관한 책임 소재 역시 폴 포트 정권이 아닌 미국으로 귀결된다는 논리를 펼친다.[4] 그러나 킬링필드로 지칭되는 폴 포트가 이끈 크메르 루주의 집단 학살은 아주 자세한 증언과 증거들이 남아있고 이 중에는 크메르 루주 본인들이 남긴 기록도 있다. 미국의 폭격으로 인한 사망자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모든 추산 통계를 봐도 크메르 루주의 학살에 비하면 적은 숫자였다는 게 명확하다. 물론 그렇다고 미국의 책임이 더 가벼워지는 건 아니지만 폴 포트의 악행 자체를 부인할 수 있는 정도는 결코 아니다. 더군다나 폴 포트는 게릴라로 전락한 말년에는 오히려 미국의 지원을 받는 위치였다.

또한 폴 포트가 어려서는 스님을 했고 선각자로서 프랑스 유학을 했으며, 귀국 이후에는 훌륭한 교육자였다고 역설한다. 게다가 그를 만난 모든 사람이 폴 포트가 매우 소박하고 인자하며 평온한 사람이라 증언했음을 덧붙인다.[5] 결과적으로 도올은 폴 포트가 인류사에서 유례를 보기 힘든 자연주의의 실천을 원했던[6] 매우 순결한 비전을 지닌 인물이라 정의한다. 그렇기 때문에 폴 포트가 생각했던 국가의 비전은 새로운 인간사회 논리가 개발될 수도 있었던 실험으로 봐야 한다는 게 도올의 결론이다. 하지만 그 실험이 자기 기준대로 자본주의적인 교육을 배제시키고 사상교육으로 세뇌된 아이를 소년병으로 쓰거나 학교를 고문실로 개조해버리는 공포정치였고 영유아를 가리지 않고 학살한 사람의 숫자는 최소로 쳐도 170만 명에 달하는데 상상을 초월하는데 그건 중요하지 않은 듯.

가령 캄보디아의 주변국가들의 공산주의 지도자인 베트남 호찌민 라오스 수파누봉 같은 경우 각각 집권 이후에 독재 정치를 펼치고, 살아생전에 크고 작은 잘못이 있긴 있었어도[7] 프랑스의 식민통치에 맞서 식민지 독립운동을 펼치는 등 공과가 분명히 존재하고, 이러한 점 때문에 베트남과 라오스에서는 국부로 존경받고 있지만, 정작 폴 포트는 캄보디아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하고, 정권 장악 이후에 저지른 최악의 대량학살 만행 때문에 모국인 캄보디아에서도 '자국민들을 죽이고 나라를 퇴보시킨 역적 인간쓰레기'라는 악평을 받고 있고[8] 그의 무덤은 캄보디아인들에게 침, 오줌 세례를 받고 있는 신세다. 즉, 김용옥 본인을 학계에서는 까마득한 소수파로 만드는 발언이다. 게다가 폴 포트는 1979년 베트남을 선제공격하는 어리석은 짓을 해 베트남군과 친베트남 반군 세력들의 반격을 받아 정권을 잃고 다시금 게릴라 생활을 시작한 이후에는 같은 크메르 루주의 부하들한테까지도 개밥의 도토리 취급을 받은 인물이다.

더구나 폴 포트는 당대의 공산권 국가들[9]은 물론이고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의 만행들을 서구권이 과장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조차 두둔은 커녕 오히려 비판만 할 정도이며, 오히려 오늘날 국내외 막론하고 공산주의자들은 마오쩌둥과 김씨 3대는 찬양할지언정 폴 포트는 옹호하기는 커녕 사실은 반공주의자라고 주장하거나 미국을 비판하는 이유 중 하나로 '크메르 루주를 지원해줬다'는 것을 꼽을 정도로 폴 포트가 자기들 진영에 속했던 자란 것을 부인하고 있다. 폴 포트가 1998년 체포를 앞두고 진영 내에서 사망하자 그의 동료들은 "폴 포트는 소의 배설물만도 못하다, 적어도 소의 배설물은 거름으로는 쓸 수 있으니."라는 말을 남기며 그의 시체를 폐타이어, 쓰레기와 함께 소각시켜 버렸다. 같은 진영을 넘어 자기 부하들한테까지 쓰레기 취급을 받고 간 인물에게 저런 식으로 고평가를 할 이유가 무엇일지 의문이다.

2.4. 줄어든 영어 실력

일단 김용옥은 하버드에서 논문을 써 박사학위를 획득한 사람이다. 김용옥의 집이 워낙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이 시기에 한국에 봉사활동하러 온 미국 대학생이 김용옥의 집에 머물렀는데, 이때 원어민과 몇 년을 함께 살면서 자주 영어로 대화한 적이 있다고 한다. 원어민강사와 회화공부만 한 셈. 앞서 언급했듯이 영어공부 자체는 그전부터 토플 1등이었다. 미국유학 때는 일기도 영어로 쓸 정도로 모든 책을 영어로 쓸 생각을 한 적도 있었으나, 하버드 박사 학위 취득 후 '이제는 한국으로 유학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영어로 글을 써봐야 영어에 보탬되는 일이므로 철저하게 한국어로만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는 것.

김용옥은 스스로 "한국에서 나만큼 영어를 잘하는 사람도 몇 없는 것 같다.", "내가 한국에서 영어를 가장 잘 한다." 하는 말을 했는데 농담삼아 하는 자랑을 넘어서 사뭇 진지하게도 보였다. #김용옥이 이렇게 말하는 근거는 '의사소통을 가장 잘 한다.'는 말이 아니라 '외국어에 담겨 있는 문화 전반을 이해하는가, 외국인이 전혀 이질감 없이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글을 쓸 수 있나'에 중점을 둔다고 한다.

그러나, 김용옥이 영어로 대화하는 게 보고 싶다면 이 동영상을 보라. #. 한마디 한마디 말을 겨우겨우, 굉장히 힘들게 발언하고 있는데, 느리고 더듬거리는 데다가 그마저도 주의 깊게 듣다 보면 "bureaucrats wants very fast agreements", "in the North Korea", "how do you think about this?" 등 문법적 오류가 상당한 빈도로 등장하고, entering을 entry로, pursue를 pursume 혹은 persume이라는 존재조차 하지 않는 단어로 발음하기도 한다.

70대 근처 연령의 노인 기준으로는 상당한 영어실력이라 평가할 수 있으나, 도올 자신이 가지던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대중을 향해 치던 큰소리에 비해 확실히 초라한 영어 실력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찾아보면 비슷한 연령에서 저 실력 이상의 인물이 왜 없겠는가? 당연한 말이지만 요즘은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조차도 저 정도보다는 훨씬 유창하고 유연한 영어 실력을 지닌 사람이 많다. 빈약한 표현력과 함께 기본적인 지시성을 만족시키기 위한 고난이도의 어휘구사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쉬운 어휘만 쓰는 것이 무조건적인 미덕만은 아니다.

한편, 너무 지나치게 영어를 말하지 않아서 말하기 감이 떨어져서 그런지 말하는 중간 중간에 실수하는 원인이 한국어를 가장 잘하겠다고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인 듯하다. 대신 원서 책들은 많이 읽는 듯하며, 봉은사 강연에서는 하루에 영어 원서 10권을 독파할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영어 작문을 잘하는 거라고 하였으며, 이대 강연에서 미국의 최고 문장가의 실력을 따라 잡기에는 부족하다고 발언한 적도 있다. 덧붙여 순천 여고 강연에서 한 발언으로 미루어볼 때 그가 영어를 잘한다고 했던 건 강연 등 학술적인 영역에서 무리없는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의미였던 듯하며, 일상 회화는 결코 유창하지 못하다고 본인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김용옥은 학문적 영어 글쓰기 실력은 분명히 상당한 수준에 오른 사람이다. 김용옥의 영어 실력이 '나쁘다' 라고 하면 이는 언어도단이다. 박사학위 논문을 영어로 쓰는 것은 고도의 영어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며, 단순히 영어지식 뿐 아니라 어휘력과 학문적 소양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외국인으로서 영어를 외국어로 배운 사람이니만큼 영어가 모국어 중 하나인 이중언어 구사자나, 어릴때부터 영어를 배워온 젊은 영어 실력자들 수준의 유창함은 없는데, 사실 영어 독해와 글쓰기에 능해도 의외로 생활 영어가 그 수준이 안 되는 사람은 꽤 있다.(반대로 원어민 중에 교육 수준이 높지 않은 경우 반대로 말하기 듣기엔 유창하지만 문해력이 떨어지고 글 쓰는 수준이 형편없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실질적 문맹'이라고 불리는 부류.)

게다가 박사 졸업논문 쯤 되면 원어민 석사 이상 학위 소지한 교열 전문가에게 프루프리딩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평생 따라다닐 박사논문인데, 심지어 본인이 잘 배운 원어민이라 해도 문법/철자를 완벽하게 구사한다는 보장도 없고, 또 많게는 100페이지가 넘는 박사논문에서 타인은 쉽게 찾아내지만 본인은 미처 실수로 놓치고 보지 못한 오류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하물며 비원어민이 박사학위논문 프루프리딩 한 번 안 받는 것은 굉장한 도박 혹은 오만이라고 볼 수 있을 수준. 뒤집어 말하자면 하버드 박사학위 논문을 영어로 쓰고 통과했다고 그의 영어가 모든 면에서 '완벽'하진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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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국가관/대외관

3.1. 역사왜곡

김용옥(도올. 사진) 교수가 “6.25를 남침이라 불러선 안된다”고 강연하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공개됐다. 여기서 그는 6.25에 대해 “서울까지 단숨에 내려온 부대는 인민군이 아니라 중국내전에서 갈고 닦은 조선의용군 10만명”이라며 “남침이지만 남침이라 표현할 수 없다. 남침을 유도한 남한사회의 구조가 있다”는 남침유도설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최고 원흉은 일본, 다음은 미국놈”이라며 “한국전쟁은 남침, 북침이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 역사와 미국 제국주의 역사가 조선에서 만든 악랄한 죄악”이라고 했다. 결국 ‘ 남침유도설’을 역설한 것. 마치 6.25 전쟁이 한반도에서 ‘제국주의’를 몰아내기 위해 일으킨 ‘의로운’ 전쟁이라는 식이다.[10]

문제의 영상은 김 교수의 주MBC 광주에서 열린 강연영상으로, 이달 초 ‘국민의 명령’ 홈페이지 게시판 등에 게재됐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서프라이즈 등 여러 인터넷공간을 통해, 이른바 좌파성향 네티즌들로부터 주목받아 온 것으로 보인다.

한국학계에서는 이미 박명림교수의 연구로 남침설이 정설로 합의되고 북침설/남침유도설은 완전 사장되었다. 미국 문서가 공개되면서 추측성 주장이 사라졌으며, 이제는 1990년대 소련붕괴로 직접 전달받은 기밀과 공개된 기밀문서 #로 더 자세한 의도를 알수있기 때문.

6.25의 전쟁 범죄도 자신의 입맛대로 왜곡하고 이승만에 대한 비판도 실제역사와 다른 부분이 많다.

여담으로 중국이 아직까지 전쟁 기밀 문서를 자세하게 공개하진 않았지만, 김용옥은 중국몽을 하는게 아이러니.

3.2. 국수주의

이 항목의 서술된 내용 전반에 그대로 드러나지만, 외국 유학파 지식인이면서도 한민족 우월주의, 국수주의가 매우 강한 편이다.

강연 한 시간 하면 '민족' 타령에 '우리 민족' 소리를 수십 번씩 한다. 김용옥 "고구려처럼, 한국도 미국에 배짱 튕겨야". 그러나 정작 중국에 대해서는 "고구려처럼, 한국도 중국에 배짱 튕겨야"같은 소리를 단한번도 한적이 없다.

' 고구려 사람들은 자기가 사는 곳이 우주의 주축이라 생각했고, 중국이란 곳을 변방으로 생각했다.', '당시 중원에서 명멸한 수많은 국가들의 평균 수명이 30년밖에 안 되지만, 고구려는 자그만치 700년을 유지했다.', '오늘날 ' 싸이' 같은 친구가 글로벌하게 놀고, 한국 기업들이 세계적인 제품을 만드는 능력이 있기에 대한민국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나라', '여태까지 열강에 주체적인 발언을 한 적이 있느냐, 열강의 말을 고분고분 듣기만 하면서 살아온 게 아니냐.' 등 어떤 강연에서나 주체적 역사관, 민족주의를 매우 강조하고, 민족주의가 자기 사상과 의식에 깊게 자리잡았음을 자랑스럽게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념으로서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은 그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질 요소가 널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동양 전통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우월주의 때문에 사상적으로 친중국 성향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확고한 민족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역사 해석도 당연히 극도로 민족주의적이며, 고대사에서는 고구려의 자국 중심 천하관을 찬양하고 계승하자는 모습을 보인다. 사실 고구려는 독자적 천하관을 가지는 등 자주적인 모습이 있긴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조공으로 대표되는 중화 중심의 천하 질서를 인정하는 나라였으며 조선의 자발적, 내생적 근대화가 가능했다고 보는 자본주의 맹아론은 논란이 있다.

민족주의는 강하게 뭉치고 단결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기에 약육강식 시절의 2차대전 시절에는 생존을 위해 적합했을지 모르나, 세계화 시대에는 적합하지 않다. 왜냐하면 강하게 단결시킨다는 것은 타민족에 대한 배타성과 차별 정서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국뽕에 심취한 사람들은 짱깨, 쪽바리, 코쟁이, 깜둥이 등 타민족 비하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당장 민족주의 끝판왕 북한도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을 혈통분명의 원숭이(...)라고 비하하여 논란이 된 적이 있다. 2차대전 시절의 독일과 일본, 그리고 현 시대의 북한이 바로 민족주의에 매몰되면 나타나는 현상이다. 타민족을 배척하기에 세계화 시대에는 민폐가 될 수 있다. 한국인이 해외에 간다면, 개인주의 성향인 외국인들과는 성격만 맞다면 금방 친해지기가 쉬우나, 백인우월주의자같은 민족주의자들 만나면 친해지기도 어렵고 오히려 동양인이라고 차별당해 싸움이 날 수도 있다. 입장바꿔 백인판 김용옥은 불편할 것이다.

애초 민족주의의 한계는 철저히 정치적 프로파간다라는 점이다. 2차대전 독일과 일본도 민족주의를 국민들에게 세뇌시켜 아주 잘 이용해먹었고 북한도 그렇다. 조선은 신분제 사회였기에 양반 노비를 사람취급도 하지 않았었고, '우린 한민족'개념은 아이러니하게도 일제때 정치적 목적으로 태동했다.(...)[11] 비단, 한국 뿐만 아니라 당시 공산주의 혁명가들은 흔히 민족주의를 강조하면서, 러시아·중국·베트남·쿠바 및 기타 피식민 국가의 시민들에게 민족주의적 항거를 통해 제국주의의 멍에를 벗어던질 수 있다고 강조했었다. 당시 시민이 제국주의로 동화되어 흡수되면 제국주의 힘이 커지니까 분열시켜놓으려 했던 것이다. 원래 공산주의는 민족주의와는 거리가 먼 이념인데, 공산혁명가들이 민족주의에 심취했던 것은 그런 정치적 배경이 존재했다.

그리고 지금도 북한은 인민들이 민족의식에서 탈피하여 개인주의 의식이 싹트면 김정은 정권이 위험해지기 때문에, 철저히 정치적 목적으로 민족주의를 세뇌시켜 쇄국정책을 정당화하며 인민들이 자유를 얻는 것을 막고 있다. 북한의 인민들이 민족주의에서 해방되면 인민들의 인권과 자유는 좋아지나, 단지 김정은 정권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에 찍어누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미군정이 한반도 독립시킨 후 어리둥절한 조선인들에게 직접 민족주의를 주입하기도 했고, 당시 한반도의 지도자들 역시 정치적 목적으로 민족주의를 주입했는데, 당시엔 어느정도 긍정적인 역할을 하긴 했었다. 일단 독립 초기엔 강하게 단결하여 뭉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21세기 세계화 시대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애초 과거 한반도에도 다양한 국가가 있었고, 사례를 살펴보면 침략당해 필사적으로 저항해 싸우다 함락되자 자결하기도 했었다. 어쨌거나 가장 강한 국가가 다 먹어서 한반도 통일하고 오랜 시간 지나다보니 뒤섞여서 그냥 하나처럼 보이는 것이지, 무슨 태초부터 한민족이 존재한 것이 아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일본도 한반도를 먹은 후 '내선일체사상'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조선과 일본은 한몸이라는 것인데, 결국 이 역시 정치적 목적이다. 예를 들어 한반도가 일본으로부터 독립되지 못한 채 기나긴 세월이 흘러 다 뒤섞였다면 그땐 한반도에서 '우린 야마토민족!'이라고 할텐데, 과거 한반도의 소국 중 함락당해 자결한 사람이 김용옥을 보면 비슷한 심정을 느낄 것이다.

지금 충남 공주시민이 '백제 독립'을 외치면 이상한 취급 받겠지만, 엄연히 백제부흥운동을 펼치던 사람들이 존재했다. 그때 그들에게 '우린 한민족'이라는 김용옥의 말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고, 일본의 내선일체사상과 같은 취급을 받을 것이다.

3.3. 북한 찬양, 민정계 정권 비판의 이중잣대

그는 우월한 한민족의 이상적인 국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은 미 제국주의로 인해 망가진 폐허이며, 고결한 조국의 반쪽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환상적 이상향이며 조국의 순결, 미래이자 꿈이라고 말했다.

김정일에 대해서는 '대단한 사상가', '판단력이 있는 분'이라 말하며 격찬했고, 김정은에 대해서는 '가정교육을 잘 받았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일으킨 김일성에 대해서 그는 이승만과 함께 비판하지만, 그러면서도 김일성을 항일 투사이며 침착하고 식견 있는 사람이라는 등의 찬양을 한다.

반면 대한민국의 민정당계 정권에 대해서는 쓰레기, 폐기물 등의 원색적인 표현을 서슴치 않고 비판했다.

이러한 그의 잣대는 매우 이중적인데, 이승만에 대해서는 극렬히 비난하지만, 6.25을 일으킨 김일성은 과오는 있지만 이승만보다 훨씬 나은 사람인양 추켜세운다. 전범의 멍에에서 자유로운 김정일과 김정은은 위대한 사상가이며, 훌륭한 가정교육을 받은 사람이라고 추켜세운다.

대한민국 역대 정권에 관해서도 민정당계 정권에 대해서는 맹목적인 비난을, 민주당계 정권에 대해서는 다소 아쉬운 점이 있지만 민정당계 정권과는 비교할 수 없는 뛰어난 정권이라는 예찬을 마지 않는다.

3.4. 반미 사상과 모순되는 본인과 자녀들의 선택적 친미 행보

김용옥은 여러 차례 극단적인 반미 성향을 드러낸 바 있다. 미국은 제국주의의 앞잡이이며, 대한민국을 제국주의의 폐허로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반면 북한, 중국 등 공산주의 국가들에게 대해서는 맹목적인 찬양으로 일관하고 있다. 일례로 김용옥은 김일성 부자를 찬미하기 위한 아리랑(매스게임)에 대해 인간이 하는 쇼로서는 최상의 쇼라고 극찬하며 여기에 이념적 훈수를 달지 말아야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주민은 아리랑을 보면서 우리는 굶어죽어도 도덕적으로 명예롭게 살자, 잘 사는 게 뭐가 중요하냐고 느낀다고. 또한 ' 김정일은 대단한 사상가'라고 찬양한 반면, 2019년 KBS 방송에 나와 이승만을 미국의 '괴뢰'라고 지칭하며 '국립묘지에서 파내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김용옥 본인은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학계에서 비판을 받아 곤경에 처할 때마다 갑자기 미국이나 일본으로 출국하는 것을 반복했다. 그는 필요에 따라 자신의 PR하기 위해 미국을 선택적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1998년에는 대학문을 정립하겠다며 하버드 의대 연구교수로 초빙되어 4년간 유학을 간다고 언론에 떠벌리며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실제로 뉴잉글랜드 복잡계연구소에서 근무하다가 소리소문없이 조용히 귀국한 바 있다.

김용옥의 자녀들은 모두 미국에서 학업을 마쳤다는 점도 비판의 여지가 크다. 단순히 장성한 딸이 미국에서 활동하는 것뿐이라면 성인이 된 이후의 행보이니 김용옥에게 비판을 비껴갈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을 지 모르지만, 해당 인물은 미국에서 출생했고 미국의 사립 고등학교를 거쳐서 대학까지 미국에서 나온 것이다. 고등학교까지 미국에서, 그것도 비싼 사립 고등학교(프랩 스쿨)를 나온 것에 부모의 결정이 들어가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결론적으로 극단적인 반미 민족주의자 성향의 김용옥은 자기 딸을 미국에서 행위예술가로 키워냈다. '남의 딸'이 북한 정권의 노예가 돼 가혹하게 학대당해 영혼없는 꼭두각시처럼 공연한 것을 극찬하며 잘사는게 뭐가 중요하냐고 일갈한 김용옥이지만, '내 딸'은 자유로운 미국에 보내 자유롭게 스스로의 의지대로 행위예술을 하며 '풍족하게 잘사는 것'을 지원해주고 있는 것이다. 김미루가 미국에서 하는 누드 행위예술을 북한에서 했다면 반동이라며 고사포에 맞아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수도 있다.(...) 그것은 김용옥 본인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이사들이나 조국 전 법무부장관처럼 남의 자녀에게는 피리를 불며 데모판으로 인도하지만, 정작 자신의 자녀는 남의 자녀들이 데모질할 시간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공부를 시켜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유명인사들이 적지 않다. 그렇게 발생한 자녀들 간의 실력 차이는 '부의 대물림'으로 이어지고 격차사회는 더욱 공고해진다. 김용옥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의 강연을 듣고 청년들은 자신의 자가발전을 위한 소중한 시간을 덜어내며 반미시위에 참가했으나, 정작 김용옥의 자녀는 '남의 자녀'들과는 달리 특별하게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물론, 내 자식을 특별하게 키우고 싶어하는 것은 결코 잘못이 아니다. 그것은 부모로서의 본능이다. 그러나 김용옥은 사회 지도층의 '특권'을 비판하고 미국을 비판하고 다니는 학자임에도 불구하고 똑같이 자녀를 미국으로 보냈으니, 본인의 주장이 쓰레기통에 쳐박히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순리이다.

여담이지만 '김용옥 패러독스'는 북한에서도 관찰된다. 공산주의 실현을 위해 사용해야 할 권력을 오롯이 '내 아들'에게만 쏟아부어 최고존엄을 만든 사람이 바로 북한의 절대권력 김일성인 것이다. 결국 부모의 원초적 욕구라는 것이 존재하는 이상, 평등은 이뤄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김일성과 김용옥이 잘 보여주고 있다. 평생 본인이 떠벌렸던 말과는 반대되는 주장의 예시로서 역사에 박제당하는 비참한 처지 역시 김용옥이 스스로 감내해야 할 부분이다.

3.5. 극렬한 친중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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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가 되어서 급격하게 친중으로 기울었다. 원래는 이렇지 않았다. 그는 미국-일본-대만 유학파이기 때문에, 스승이나 지인들이 많이 남아있는 동안은 미-일-대만에 등을 돌리고 중국을 편들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이 70대가 되자 거칠 것 없이 중국을 편드는 발언을 하여 일반인들도 눈치를 챌 정도가 되었다. 이게 중국 철학자(왕부지) 전공자의 필연적 귀결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는 애매하지만, 그가 복잡한 현실 정치 사안에까지 중국편을 들고, 특히 지도자인 시진핑을 노골적으로 찬양하는 발언을 하는 것에는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2014년에 연변대학 객좌교수로 초빙되어 중국대학에 몸담으면서 더욱 친중성향을 갖게 된다.

김용옥의 중국관을 정리하면, 그는 우선 중국의 부상과 패권주의를 역사의 필연이자 기정사실로 인정한다. 그러면서 19세기 영국과 20세기 미국이 보여준 약탈적 헤게모니보다 더 훌륭한, 동양철학에 기반한 헤게모니를 21세기 중국이 펼쳐서 세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길 바라며 그 사상적, 도덕적 진로를 우리나라가 선구적으로 인도해야 한다는 소중화적 발상을 덧붙이고 있다. 그러면서 민심과 유리되어 정파 싸움만 일삼는 다당제보다, (민심을 잘 수렴한다는 전제 하에) 일당제가 오히려 민주적이면서 효율성도 갖출 수 있다고 말한다. 이론적으로야 그럴듯하지만 중국 공산당의 실상이 어떠한지, 중국 패권주의의 현실이 어떠한지에 대해서는 고찰과 비판이 보이지 않는다. 특히 시진핑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의 비판도 하지 않는데, 이 정도면 단순 친중의 정도를 넘어 중빠 수준에 도달했다고 봐야 한다. 자신만의 학문적 이상을 중국이라는 대국에 무작정 투영하고 도취해 있는 것이다.

물론 일인독재보다는 일당독재가 낫긴 하지만, 그 안에서의 당파의 견제가 있다 할지라도 '공산당원들끼리의 싸움'이란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마치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친문/ 반문이 존재하고 자유한국당 내에서도 친박/ 비박이 존재하긴 하지만, 미세한 차이일 뿐이지 정책의 큰 틀은 변하지 않는 것과 같다. 오히려 민주주의의 부작용이 당파싸움에서 승리하려면 국민들의 표를 얻어야 하기에 지나치게 민심을 사로잡으려 포퓰리즘을 남발한다는 것이란 점에서, 민심과 유리되어 당파싸움만 일삼는 것은 중국이다. 그나마 투표라도 있으니까 정치인들이 국민들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인데, 냉정히 말해서 투표권도 없는 민초들에게 권력자들이 관심 가져야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공산당 내부에서 파벌이 갈라져 서로 견제가 되는 것은 북한같은 일인독재에 비하면 그나마 낫긴 하지만, 반대로 공산당 파벌 간에 서로 싸워봐야 누가 이겨도 공산주의자이니 커다란 개혁이나 변화가 있을 수 없다. 민주국가에서는 다양한 정당이 존재하여 정권 교체가 일어나면 국가에 변혁이 일어나는 것과 대조된다. 민주국가에서 한 정당 안의 당대표 선거가 벌어지나 어차피 정당의 기본 가치는 공유하기에 누가 당대표가 된다한들 큰 의미가 없는데, 중국 정치인들의 싸움은 그냥 공산당원간의 파벌싸움에 불과하다. 조선도 어차피 사대부간의 싸움이었으니 조선시대의 당파싸움은 일당내의 파벌싸움 수준이었므로 중국에 비교되는게 맞다.

반면, 민주국가에서 다양한 가치를 내세운 정당들이 서로 국민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경쟁'을 벌이는 건 당파싸움이 아닌, 마치 대기업에서 서로 좋은 기술과 제품을 만들어 대중들의 선택을 받기위해 경쟁을 하는 것처럼 대중들의 이익에 기여할 수 있다. 기술이든 제도든 경쟁을 통해 발전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김용옥은 '민심은 천심'을 목놓아 외칠 정도로 국민의 여론으로 운영되는 민주국가를 추켜세우는 사람인데, 뜬금없이 다당제보다는 일당독재가 나을 수 있다고 하니 정말 심오하게 민주주의 제도에 대해 알고는 하는 소리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중국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였던 201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인권운동가 류샤오보, 중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그가 수감 중이던 2017년 세상을 떠났을 때 전 세계에서 추모 물결이 일었지만, 정작 도올 김용옥은 침묵했다.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에서 유난히 난세의 격문처럼 민주화를 부르짖는 모습과 대조된다. 오히려 차이나는 도올을 진행할 정도로 중국통이라 중국의 실상을 잘 알고 있을 그가 중국 공산당 정권을 쉴드치는 모습을 보여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중국이야말로 민주화 운동이 절실한 곳이기 때문이다. 정작 한국에서 민주화 운동이 절실했던 6월 항쟁 때는 침묵을 지켰던 흑역사가 있는데, 혹시 나중에 중국이 민주화되면 그제서야 중국에 가서 난세의 격문처럼 "중국 인민들이여, 거리로 뛰쳐나와 독재자와 맞서 싸우라!" 하며 뒷북칠지도 모를 일이다.

심지어 시진핑의 장기 독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시진핑은 셀프 승인으로 장기 통치를 시작했다. 이쯤 되면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고 밖엔 못하는 상황이다. 그러다가, 2018년 5월 4일이 되어서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시진핑이 진짜로 개헌할 줄 몰랐다. 난 똥이 됐다."라고 자신의 오판을 인정했다. 그리고 이제 중국의 세계패권국으로써 도덕성은 시진핑의 독재선언으로 박살났다라고 자아비판급 혹평을 내렸다. 견제와 균형이 없는 일당제가 얼마간은 효율적으로 굴러갔을지 몰라도, 상식을 갖춘 일반인이라면 누구나 예견할 수 있는 독재와 전체주의라는 필연적 결과를 예견하지 못하고 뒤통수를 맞았다는 식으로 말한다는 것은 학자로서의 소양이 부족하거나 시야에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었음을 드러낼 뿐이다. 그나마 과오를 인정하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나 달리 말하면 도저히 쉴드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의 개헌은 찬성률 99.8%로 통과됐는데, 투표인단 2,964명 중 반대는 단 2표였다. 일부에선 2표를 용기있다고 추켜세우나 그냥 100%가 나오면 민망하니까 짜고친 거라는 추측이 우세하다.[12] 애당초 전인대 대표단 표결 절차는 '자동거수기', '고무도장'으로 불릴 정도로 부결된 적이 없는 요식행위에 가깝다. 게다가 상식적인 일반 개헌도 아니고 독재자의 전횡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지도자의 연임제한을 무려 13억 인구 중에서 찬성률 100%에 육박하게 통과되고 누구 하나 입도 뻥긋 못하고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이 실지로는 북한과 별로 다를 바 없는 후진적 정치체제임을 보여줬다.

위에서도 지적했듯 어려운 예측도 아니었고 그냥 뉴스 좀 보는 정도의 소양만 갖추어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근데 그걸 다른 사람도 아닌 틈만 나면 자신을 천재라고 자부하며 중국에 정통한 학자로서 차이나는 도올이란 방송까지하던 자가 진짜로 개헌한 줄 몰랐다고 실토한 것은 그동안 그의 중국강의 내용 전체에 회의를 품을 수 있게 해준다. 방송에서 자신있게 일당제가 민주적일수도 있다고 중국을 추켜세웠는데, 현실은 무려 13억 인구의 국가가 독재자를 막는 안전장치인 연임제한을 100%에 육박하는 찬성률로 단숨에 개헌할 수 있는 비민주적인 나라임이 입증되었다. 대체 그동안 김용옥이 중국으로부터 뭘 배우고 공부한건지 의심이 들 수 있는 대목.

민심과 유리되어 정파싸움만 일삼는 다당제보단, 민심을 잘 수렴한 일당제가 더 민주적이고 효율적일 수 있다? 야당의 눈치를 봐야하고 투표로 인해 민심을 얻어야하는 시스템 하에서도 민심과 유리될 수 있는 걸 보면서도 그런 안전장치조차 전혀 없는 중국이 민심을 잘 수렴할 것이란 전제부터가 틀렸기에 예측도 틀렸다. 아무리 견제세력과 투표라는 안전장치를 촘촘히 설계해놨어도 고인물은 썩는다는 명언처럼 집권당은 서서히 부패해가기 마련인지라 미국을 포함한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가 지도자의 임기제한을 헌법에 강제로 못박아놓은 것이다.

물론 일당제의 장점은 효율성이라서 훌륭한 지도자가 나온다면 빠르게 경제성장과 기반을 다져가는게 장점이긴 하나, 지금 이 순간도 그 유능하다는 엘리트 관료집단이 특유의 폐쇄성과 경직성, 안일함으로 우리에게 매일같이 세금도둑이라 까이고 있는 마당에 그런 강건성세의 지속가능성을 순진하게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런 관료제와 엘리트주의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궁극적으로 민주주의를 채택하게 된 것이며, 한국도 그 과정을 밟았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일인독재 북한이 80년대 이후 처절히 몰락하는 걸 눈으로 보고 있기에 한국인들은 중고딩만 되도 이런 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자칭 천재라는 김용옥이 일당제에 이토록 무비판적이었다는 사실은 그가 해온 주장들이 면밀한 사회과학적 분석이라기보다는, '공자의 나라 중국은 다를지도 모른다.'는 식의, 중국철학 전공자로서의 '믿음'과 '희망사항'을 얘기한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추측하게 한다. 이렇게 현실을 모른 채 단편적인 관념과 이론에 기대어 주장하는 행태를 일컬어 흔히들 백면서생, 또는 탁상공론이라고 부른다.

물론 90년 전 쯤 전간기 시절이라면 다당제의 단점인 정파싸움을 보고 혹시 일당제라면 싸움 없이 효율적으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순진무구한 상상을 해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칭 천재라는 학자가 일당제에 환상을 가지고 방송에서 설파하고 다녔었다는 대목은 쉴드쳐줄 수 있는 여지가 없다. 원래 나라 망치겠다고 작정한 정치세력은 없으므로 다 의도는 좋았다지만 그렇다고 결과도 좋다는 보장은 없으며, 무식한 자가 신념을 가지면 무서워진다는 명언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당시 국민당 정부는 비록 부패하긴 했으나 그래도 어설프게나마 민주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었기에 투표권과 인권, 자유가 그럭저럭 보장되었으며 적어도 이후의 인민공화국 체제보다는 훨씬 나았다. 대만으로 이사간 지금은 말할 것도 없고 대만은 한국, 일본과 함께 아시아에서 발전한 민주주의를 갖춘 국가가 되었다. 즉, 당시 정부가 문제라면 무조건 뒤엎을 게 아니라 단점을 고쳐나갔어야 했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은 당시 부패한 국민정부가 민중을 억압한다면서 이름도 거창하게 인민해방군이라고 짓고 민중해방투쟁을 외쳤는데, 그 후 70년이 지난 지금엔, 그 인민해방군이 국가주석의 연임제한 폐지 개헌을 환영했다.

그렇게 2018년, 찬성률이 거의 100%로 연임제한 폐지 개헌이 통과되고 누구 하나 입도 뻥긋 못하는 대참사에 이르렀다. 인민해방군은 총칼로 천안문 학살을 일으켰고 현재까지도 인민들을 탄압하는 실정이다. 무산인민대중을 해방시킨다던 공산당과, 국가가 아닌 인민을 대변하는 정당의 군대라는 뜻으로 이름붙여진 인민해방군의 오늘날 모습은 올바른 듯 보이는 명분과 이념도 그 결과를 보증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한국인들에게 반면교사로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에 그것도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 살면서 이렇게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체제를 찬양하고 돌아다니는 친중학자들이 존재하고 있는 불편한 진실이다.

축약하자면 김용옥이 찬양한 중국은 현실에 존재하는 진짜 중국이 아니라, 현실의 중국과 관련된 정보들 중 자신의 입맛에 맞는 부분적인 조각들과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향을 짜집기해서 만든, 실제 중국을 모티브로 한 자신의 마음속의 가상의 중국을 만들어 그것이 현실의 중국의 모습이라고 인지부조화를 일으키며 찬양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냥 본인만 망상을 꿈꾸면 모를까,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설파를 하고 다녔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인 것.

4. 매너 결여

4.1. 6월 항쟁에 불참 및 몰염치한 행동

나이가 들면서 점점 대중을 선동하는 언동을 서슴치 않고 있다. 원래 그는 자극적인 수사법을 애용하며 그것이 또 대중에게 어필하는 면도 있었지만, 그것이 이제 도를 넘어서 지나치게 과격해졌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가 정작 1987년 6월 항쟁 때는 아무런 글도 쓰지 않고 침묵을 지켰으며, 고려대의 동료 교수들이 시국선언을 할 때도 그는 끝내 참여를 거부했다.

이로 인해 맹비난을 받고 결국 고려대 교수직을 그만두었다. 40대 젊은 시절에 틀린 선택을 한 것이라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을 텐데, 본인이 이 문제는 별로 돌아보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그런데 그렇게 교수직을 걷어차고 나왔으면서도 복직하려고 발버둥을 쳤다.

4.2. 집회 중 무단 난입

2016년 11월 12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원인이 되어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대규모 촛불집회에 예정에도 없이 연단에 난입하여 마이크를 뺏다시피 하였고, 원고까지 들고와서 수분여에 걸친 장광연설을 하였다. 당시 사회자가 제지하려고 한 것이 무례했다는 일부 팬들의 비난도 있으나, 예정에 없던 순서에 갑자기 무대에 난입해서 행사 공식 스케줄까지 망쳐가며 자기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다한것은 김용옥이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다. 게다가 그 내용이 대한민국 시국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그나마 이해해줄수 있었으나 그가 말한 내용은 대부분 중국에 대한것과 중국과 한국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로서 집회성격과 무관했다. 즉, 개인 주장을 퍼뜨리기 위해 집회를 이용한 꼴이 되었다.

근데 이러한 해프닝은 20년 이상 전부터 계속 있어 딱히 새롭지도 않은 일이었다. 고대 시절엔 화장실 못 가게 문 막고 몇 시간이고 계속 장광설을 늘어놓았던 적도 있다.

5. 인품

5.1. 독선

위의 여러 가지 일화들을 보면 알겠지만, 대단히 자기중심적으로 자신만의 잣대로 타인을 사정없이 공격하면서 정작 자신에 대한 비판은 참지 못하는 독선적인 면모를 자주 보여왔다.

그의 주장들 중에는 억지주장도 존재한다. 특히 역사학 분야나 중국 관련 분야는 학부생 수준의 지식으로도 충분히 반박이 가능하다.

5.2. 오만함

2017년 출간한 <도올의 로마서강해>에서도 김용옥의 자부심 내지는 안하무인이 드러나는데, 이를테면 독일 성서신학자 불트만의 서적들을 섭렵한 사람은 자신과 허혁 교수[13] 정도일 것이라는 말을 했다(208쪽). 아직도 도마복음, 불교=예수 가르침 운운하는 70년대 신학 주장하는 양반이니 이런 시대착오적인 소리 할만 하다 그런데 루돌프 불트만은 신학계에서는 20세기 초반에 큰 파장을 일으킨 한 계파의 창시자이자 시대의 거장이라 신학생이라면 모를 리가 없고, 그 방면(성서 비평학)으로는 연구한 사람이 부지기수이다. 까놓고 말해서, 우리나라의 한 화학 교수가 발간한 서적에서 푸앵카레 위상수학, 또는 맥스웰 전자기학을 국내에서 섭렵한 사람이 자신과 동료 아무개 교수뿐이라고 적었다면 수학계나 물리학계에서 어떤 반응을 할까? 보수적 교단이나 신학자들이 루돌프 불트만의 주장에 학을 떼긴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까고 반박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불트만의 책을 부여잡았다.

이런 글은 종종 그의 다른 책에도 나온다. 밑도 끝도 없는 이런 발언이 몇십 년 전에는 먹혀 들어서 천재라는 평을 얻었지만, 지금은 한국 사회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정작 그 천재적인 두뇌로 한국사회나 학문의 발전에 어떤 족적을 남겼는지가 명확하지 않다. 물론 자신의 명성이나 부를 쌓는 데는 도움이 됐겠으나, 한국 역사에서 김용옥을 지운다 한들 한국 사회나 학문이 크게 후퇴할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가 자랑스럽게 주창하는 기철학이 없어진다 한들 학계에 영향을 미칠 게 있을 리가 없다.

학문적 평가는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 것이지 동시대 학자나 일반인이 함부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으나, 그렇다고 동시대 학자나 일반인의 판단은 무조건 틀렸다거나 가치가 없다고 볼 수도 없다. 아인슈타인이나 소크라테스가 당대에 무시당했나? 미술작품의 경우 후대에 재평가되는 경우도 있으나 이건 미적 주관적 가치판단의 영역이지 학문의 영역이 아니다.

학문은 사실과 논리에 기반했을 경우에야 가치가 있다. 지동설의 경우 이론이 주장하는 바가 실제 관측 결과와 정확히 맞아떨어졌기에(예: 연주시차) 훗날 인정받게 된 것이다. 만약 단순히 천동설에 대한 반발심으로 지동설이 맞다고 주장했거나, 그냥 근거없는 예측을 했다면 설사 훗날 맞는다고 밝혀져도 별다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을 것이다. 애당초 김용옥이 주창한 기철학은 형이상학적이기 때문에 실증적인 근거로 논한 이론 자체가 아니므로 팩트로 시비를 논박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며, 현대의 철학자들이 감히 범접못할 고도의 철학이론도 아니다. 오히려 김용옥은 그런 복잡한 철학은 문명의 악세사리라고 까고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현대의 철학자들이 이해를 하지 못해서 외면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달라이 라마를 만나러 인도에 갔을 때의 일화를 달라이 라마의 한 측근이 책에 써 남겼는데, 수많은 카메라맨들을 거느리고 나타나 시종일관 오만한 태도로 달라이 라마를 대했으며 약속시각도 지키지 않았다고 한다.

5.3. 곡학아세

"나는 나의 아내를 사랑한다. 그런데 나는 이 순간 노태우를 더 사랑한다. 그래서 나는 편지를 쓴다. 왜냐? 노태우는 이미 개인이 아니다. 그는 개인은 개인이로되 보편세계사적 개인이다. 철학자인 나는 그 노태우라는 개인의 보편성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때로는 나의 아내보다도 더...아내가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당신은 일천구백삼십이년 십이월 사일에 태어나셨다" "그때 누군지 모르지만 이 우주의 기를 갓 쐰 당신에게 태우라는 매우 좋은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제가 동양철학을 전공하는 관계로 작명도 많이 하고 성명철학에는 또 일가견이 있기 때문에 규탐하는 말이오나 태우라는 이름은 썩 좋은 이름이며 미래에 대해 형안이 있는 자의 작명이 옳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연주를 바라보는 살리에르 처럼 저는 위대한 당신을 바라보았다"
1990년 신동아 1월호 김용옥 기고문 "노태우대통령께 아뢰옵니다"에서 발췌

권위 있는 사람한테 인정받으려고 안달난 모습을 자주 보인다. 원래 잘 나가는 사람들 주위에는 언제나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으려는 자들로 득실거리며, 잘 나가다 추락한 사람들에게는 선을 그으며 냉정하게 돌아서는게 인간의 본능이라지만(어려울 때 돕는 친구가 진짜 친구란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그 중 김용옥은 유난히도 눈에 띈다.(...) 물론 봉사활동을 취미로 어려운 사람들과 어울리며 돕는 사람들을 겸손한 사람들이라고 하는게 아니라 '용의 꼬리보다 뱀의 머리라도 되고 싶어한다'며 특별한 대우 받고 싶어서 그런다고 폄하하며, 잘난 사람 곁에서 아부떨고 비위맞추며 딸랑이짓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잘난 사람의 좋은 점을 배우려는 겸손한 사람들이라는 황당한 실드도 있다.[14] 하지만 김용옥은 특별히 뭔가를 진지하게 배우고 성찰하려는 목적보다는 그냥 '나 이런 사람하고 어울린다'라는 것을 과시하려는 교만함처럼 보이는게 문제다.

2007년 문국현이 대선후보로 나서자 그의 자서전격 저서에 찬양하는 헌정사를 써서 바쳤다. # 안철수가 차기 대선주자로 한창 주가를 올릴 무렵에는 그를 찬양하는 논조로 글을 내더니 자기 사인이 담긴 저서를 안철수에게 보냈는데, 그게 무시당하자 혹독한 비판을 했다. # 또한 고려대 철학과 제자였던 충남지사 안희정이 당내 유망 대선주자로 떠오르자 중앙일보의 주선으로 대담을 하면서 온갖 미사여구로 장식된 글을 헌정한 바 있다. # 또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어 문재인 정부에서 적폐청산을 위한 개혁을 시작하니 이를 적극 지지하는 논설을 썼다. 하지만 결국 문재인이 개혁 과제를 완수하지 못하고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고 나서는 여전히 문재인을 성역화하는 문빠들까지 사자후를 토해가며 맹렬하게 비판했다.

다른 언플성 책으로는 대우측에서 김용옥한테 모든 경비를 제공하여 김우중의 출장에 동행하고 난 후 쓴 기행문인 "대화"가 있다. 이 저서에서 김용옥은 상당히 김우중을 미화했는데, 당시 김우중은 다른 재벌 회장에 비하면 매우 이미지가 좋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지만.. 어쨌든 IMF 이후에 밝혀진 김우중의 비리를 보면 이 책은 김용옥의 흑역사가 되었다. 그러나 그룹 이미지 개선을 위한 것으로 보기에는 이 책은 거짓투성이였다. 이 책에서는 자신이 소명의식으로 기업을 하며 대우는 비생산적인 서비스업은 절대로 손 안대고, 자기는 자녀들에게 절대로 재산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식으로 이야기 했다. 실제 김우중은 자신을 전문 경영인이라고 자처하고, 대우 사태 직후에도 2~3년 안에 자식들에게 물려주기 없이 물러날 것을 채권단에 약속했다. 그리고 이 말은 다른 의미로 사실이 되었다(...).
인터뷰나 TV강연 등을 통해서 각종 인물, 단체등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평가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가 가지고 있는 기준은 단 한 가지, 자신과의 친소(親疎)이다. 정치인과 같이 영향력 있는 높은 사람이 자신을 우대하고 만나주면 용비어천가 써주고, 자신을 무시하고 안 만나주면 막말로 비난한다. 예를 들어 이명박이 시장 시절에 만나주니 칭찬하다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안 만나주니 역적 취급을 했다. 안철수는 한번 운을 띄워봤는데 그로부터 무시당하니 곧바로 비난한다. 그의 인생에 있어서 이 기준은 굉장히 일관성이 있기 때문에, 정리해 보면 좀 재미있다. 실제로 중국의 연변대학 등에서 강의를 마치고[15] 돌아오더니 중국을 찬양했다. 말을 약간 바꾸자면 중국 측에서 그를 잘 이용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중국을 비판하기도 했으나, 친중 정책의 비호 아래에선 중국을 찬양했다. 이후 중국이 다시 셀프개헌으로 일당독재를 시작하니 멋쩍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재미있기도. 아주 오래전부터 중국을 잘 안다고 자화자찬을 늘어놓았던 본인이 누구나가 알고 있는 중국의 사회, 정치제도의 병폐를 간파하지 않으려 들고 찬양하다 뒤늦게 후회하는 모습은 그가 시대를 보는 혜안이 있다기보다 그저 대세에 빌붙어 자신의 위치를 수정하기 바쁜 인물임을 보여준다.

사실, 이는 또한 역설적이게도 김용옥이 학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간접적으로 드러내주는 사례라 볼 수 있다. 과거 황우석 박사가 잘 나갈 때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이 서로 잘 보이려 달려들던 구차한 모습을 기억하는가? 원래 자신의 지위가 열등할 때 돋보이는 방법 중에 하나가 바로 지위가 높은 사람들에게 딱 달라붙어 후광효과를 누리는 것이다. 한마디로 호랑이의 위세를 빌린 여우를 생각하면 되겠다. 만약 김용옥이 자체적으로 학계의 유명한 석학이라면 구차한 모습을 보일 필요없이 정재계의 유명인사들이 김용옥에게 앞다퉈 만나달라고 했을 것인데, 안타깝게도 김용옥은 정반대로 본인이 유명 정치인에게 붙거나 심지어 나꼼수에 출연하며 나꼼수의 유명세를 등에 업고 인지도를 높였다.

김용옥이 학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한다면, 현재 김용옥의 과분한 인지도의 배경에는 이런 노력들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원래 능력이 안되는 자가 출세했다면 그것은 으레 연줄을 잘 타서 올라오기 마련이다. 김용옥의 다양한 변신이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는데, 그건 달리 말하면 그만큼 대세에 편승할 줄 안다는 의미다. 확실히 자기 말대로 머리가 굉장히 좋은 사람이긴 하다과거 '결정이 어려울 땐 1등이 정답'이란 광고문구가 있었는데, 대세에 착 달라붙어 가면 안정적이긴 하다. 그러다보니 김용옥이 6월 민주항쟁 때는 침묵하고 민주주의가 대세가 됐을 때는 민주화 투사가 되고, 정작 중국에 가서는 시진핑을 추켜세우는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행보의 일면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 만약 중국에서 대놓고 시진핑을 비판했다간 중국 입국금지가 될 수 있으니 중국과 연고가 있는 입장에서 비판하기도 쉽지 않을 테니까. 단, 시진핑이 독재와 개인 우상화에 나선 2018년 시점에는 시진핑 비판으로 돌아서긴 했으나 신뢰성이 의심된다.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서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김정은의 스위스 유학 시절 일화를 전하면서 가정교육을 잘 받았다고 했다. # 참고로, 김정은은 도올이 이 말을 하기 5년 전에 자기 고모부를 끔살했다.

20대 대선을 앞두고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이재명과 대담하면서 이재명을 "하늘이 내린 사람", "선각자"라고 평했다. #
이를 두고 유튜버 캡틴 대통령, 국회의원, 손대는 사람마다 망한다는 도올의 법칙을 아시나요?라고 비웃었는데, 실제로 그 말대로 되었다.

6. 기타

7. 사회 인사들과 언론들의 비판


[1] 개그프로에서 패러디 캐릭터도 있었을 정도니 [2] 이는 2008년 촛불집회 당시 도가 지나친 과잉진압과 인권침해를 일삼았던 공권력의 태도 문제와는 무관하다. 시위대 측과 공권력 측, 모두에 각각 잘못이 있었다는 것. [3] 정당한 시위까지 탄압하는 갓은 국민의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이기에 민주국가 중에는 시위를 심각하게 탄압하는 국가는 몇 없다. [4] 즉, 폴 포트가 모든 책임의 원흉인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미국의 프로파간다일 뿐이라는 견해 [5] 아돌프 히틀러, 이디 아민, 김정일 같은 폴 포트에 준하는 수준의 악질 독재자들도 사적으로는 친절하고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다. [6] 단지 그 실천방안이 좀 과격했을 뿐이라고 보고 있다. [7] 호찌민은 베트남이 프랑스의 식민지배에서 독립 후 토지개혁 등 사회주의 체제 정비 작업을 시행하던 과정에서 토지개혁에 반대하던 농민들의 시위를 유혈 진압했고, 수파누봉 전 라오스 주석도 집권기 동안 많은 우파 인사과 자본가들을 사형시키거나 투옥하는 등 대대적인 숙청 작업을 펼쳤다. [8] 심지어 폴포트가 자행한 킬링필드 때문에 캄보디아에서는 크메르 루주 집권 이전인 1970년 론놀의 군부 쿠데타로 쫓겨났던 노로돔 시아누크 전 국왕을 다시 불러와 왕정복고를 했을 정도였다. [9] 심지어 북한조차 킬링필드의 실상을 알고는 크메르 루주에 대한 지원을 끊었다고 한다. [10] 출처: #1, archive [11] 사실 이 말은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이보다 700여년 전인 여몽전쟁 시기에 나왔다는 견해도 있고 좀 다른 견해긴 하지만 임진왜란 시기에 민족 담론이 형성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 이것을 한민족 개념으로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임진왜란 시기에 조선인과 조선인이 아닌 사람 구분이 존재했던 것 같다. 일단 단일민족국가 문서에서는 고려시대 쯔음에 고려인이라는 동족 의식이 생겼다고 서술되어 있다.실록 등지에서도 우리 족류가 아니라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에도 우리 족류와 우리 족류가 아닌 것 정도의 구분은 있었던 것 같다.또한 일단 민족이란 용어 자체도 일제강점기 이전인 1900년대에 쓰인 바 있다. [12] 하다못해, 만장일치를 막기 위해 의무 반대자가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판이었다. 다만 실제 출처가 없어서 사실 확인은 불가능하다. [13]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성서신학 교수. 1997년에 작고했다. [14] 애초 이런 이분법은 모순이 있다. 예를 들어 자기보다 잘난 사람과 어울리는 사람은 훌륭하고, 못난 사람과 어울리는 사람은 어리석다??? 다들 자기보다 잘난 사람과 어울리려 하면 잘난 사람과 어울리는게 불가능해진다.(...) 내가 지금 나보다 잘난 사람과 어울리고 있다면, 상대방은 자기보다 못난 사람과 어울리는 어리석은 사람 아닌가? 하지만 보통 그런 경우엔 상대를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 자기보다 못난 사람에게도 인간 대접해주는 착하고 겸손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게 일반적이다. 애초 사람의 지위여하를 막론하고, 타산지석이라고 배울 점이 있으면 어울릴 수도 있고, 아무리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도 싸가지가 없고 배울 점이 없다면 안어울릴 수도 있는 것이지, 나보다 잘난사람, 못난사람 구별하여 계산적으로 접근하는 사람이야말로 피해야할 부류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는 안하무인으로 사람취급도 안하고 겸상조차 꺼리며 철저히 무시하고 능멸하지만, 자기보다 잘난 사람에게는 온갖 아양을 떨며 간, 쓸개를 다 줄 듯이 접근하는데, 사람들을 상대할때 마음으로 접근하지 않고 철저하게 머릿 속의 계산기를 두들겨서 자신의 이권을 위해 접근하므로 이권에 도움이 안되거나 방해가 될 것 같으면 바로 태세전환하여 선을 긋는다. [15] 자신의 강의를 학점인정이 되도록 처리하라고 떼를 썼다. [16] 원래 한국에서는 민족주의 사상이 좌익정치와 연관이 있으니 그만의 독특한 성향은 절대 아니다. 민족주의는 과거 제국주의 국가나 선진국에서는 우파 사상, 구 식민지 국가에서는 좌파 사상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17] 절대 역사학계에서 대중화의 노력이 없었다는 말이 아니며 이를 공공연히 주장하고 다니는 것 또한 2차적인 왜곡이다. 이기백이 한국사 대중화라는 명제를 내걸고 < 한국사 시민강좌> 등을 출간한 것도 1980년대의 일이다. [18] 말로는 성평등이나 성소수자를 옹호하고, 인종 차별을 비판하지만 행간을 조금만 파고 들면 몸에 밴 그런 면면에 대한 혐오를 떨쳐내지 못했다. 심지어 유교적 엘리티즘에 근거한 자기중심적 사고방식마저 공공연히 드러내는 편. [19] 단 저자 김상태는 서울대 수학과를 졸업한 인물로 인문학 혹은 사회과학 전공자는 아니다. 대학 졸업 이후의 별다른 경력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김용옥 이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을 공격하는 책을 출판해왔다. 처음 등장한 1990년대에는 프리섹스주의자를 비난했으며, 한동안 활동이 없다가 난데없이 2007년에 <도올 김용옥 비판>을 출판했다. 2010년대 이후로는 강단사학, 재야사학 모두가 중국 동북공정의 부역자라는 참신한(?) 주장을 했다. [20] 미디어와 전문가의 공생, 지금 괜찮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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