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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4 04:14:44

김옥연

여의전 황실 여성 등장인물
{{{#!folding [ 펼치기ㆍ접기 ] 황후(皇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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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8223d><colcolor=#ffffff> 후궁여의전의 등장인물
김옥연
숙가황귀비
파일:yuyan.jpg
이름 김옥연 (金玉妍)
배우 신지뢰
파벌 (대외적)랑화파[1]
거주지 계상궁 태극전
품계 격격→ 가(嘉)귀인 → 가빈 → 가비 → 가귀비 → 가빈 → 가귀인→ 가빈 → 가귀비 → 김답응 → 가귀비 → 서인 → 숙가황귀비(淑嘉皇貴妃)
가족 남편 건륭제 애신각라 홍력, 자녀 4황자 영성, 8황자 영선, 9황자 영유[2], 11황자 영성

1. 개요2. 작중행적3. 조선 출신?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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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김옥연.gif
드라마 여의전의 등장인물

2. 작중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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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극 후 홍력의 총애를 받으며 4황자 영성을 낳게 되면서 가빈으로 승격된다. 항상 시비를 걸고 상당히 교만하여 다른 후궁들은 시선에서 아웃시키지만 황후 부찰 랑화에게만큼은 항상 깍듯이 대한다. 전작의 하상재 기귀인과 별 다를 바 없는 캐릭터로 보였다. 그러나 2권까지의 행보를 잘 살펴보면 랑화의 음모에 직접적으로 가담하지 않으며 실질적으론 중립이고 남들 다 암투에 피해를 받을 때 여전히 총애를 받고 황자를 무사히 낳아 지위가 상승하는 등, 상당히 노련한 모습을 보이며 오히려 전작 조귀인의 상위호환으로 평가받는다.[3]

같은 황후파인 고희월과는 겉으론 친한 듯하지만 사실은 사이가 안 좋다. 희월이 아약의 귀신을 봤다며 정줄을 놓자, 자기보다 두계급이나 높은 희월에게 싸대기를 날려 진정시키는 패기를 보여준다. 후궁들 중에는 그나마 소록균과 친하게 지낸 적이 있다.

그러나 사실은 매우 치밀하고 냉정한 성격의 소유자로, 자신의 아들을 황위에 올리기 위해 온갖 암투를 벌인다. 랑화를 부추겨 영릉향을 넣은 옥팔찌를 여의와 희월에게 하사하게 했고, 이빈 황기운의 유산과 매빈 백예희의 출산 또한 옥연의 짓이다. 이 일들을 여의가 저지른 것처럼 보이게 하였고, 황후 랑화에게 충성하는 척하며 그녀 소생의 7황자 영종을 죽게 만들었다. 또한 랑화의 시녀 소심을 매수하여 황기운과 백예희의 일을 조작했고 랑화가 죽은 후엔 소심에게 소록균의 주화를 손에 쥐고 자살하게 하여, 홍력이 록균을 의심하게 만들었고 영황에게 적복진이 음식에 독을 넣어 제영을 죽였다고 말했다.

랑화의 사후 황귀비가 되어 차기 황후 후보로 꼽히게 된 여의를 안길파상 대사와 사통을 했다고 모함했으나, 해란의 계책과 릉운철로 인해 역관광당하여 계상궁에 연금당하고 황자들의 양육권을 뺏기고 귀비에서 빈으로 강등당했다. 그래도 정신을 못차려 궁 밖으로 나와, 양심전 앞에 꿇어앉아 통곡하자 빡친 홍력이 귀인으로 강등시켰다.[4][5] 록균이 9황자 영유에게 보낸 병에 쥐가 들어있어 영유가 놀라 요절하면서 그녀를 증오하게 되고, 홍력이 위로 차원에서 빈으로 승격시켜준 후 11황자 영성을 낳고 총애를 회복해 다시 귀비로 승격되었다.

철민황귀비(독살)[6], 효현황후(물에 빠지게 함), 매빈과 이빈(유산)[7], 유비(난산)를 해한 진범이다.

13살 때 만난 조선의 세자[8]를 그리워하고 있다. 둘은 서로 좋아했고 세자는 이미 세자빈이 있었지만 자신은 좋은 가문 출신이기에 그의 후궁이 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러나 세자가 그녀를 공녀로 보낸다. 세자는 조선의 힘이 약하니 어쩔 수 없다고 말했고 옥연은 나라의 안전을 위해 악행을 행하게 된다.[9]

영성이 총애를 잃은 후 상심에 빠져 개를 길렀는데 영선이 낙마하여 돌보지 못한던 중, 개가 광견병에 걸려 여의 소생의 5황녀 경시를 죽게 했고 홍력의 분노를 정면으로 맞게 된다. 홍력이 영성은 절대 황제가 될 수 없고 너는 공물일 뿐이라고 하자 멘붕하여 병에 걸렸다. 여의가 그녀를 찾아와 냉궁에서 음식에 약을 써 본인을 류머티즘에 걸리게 한 일, 부찰 제영의 독살, 이빈과 매빈의 사건, 영황과 영장이 총애를 잃은 사건, 소심과 아약을 매수한 범인인지 묻자 자신의 아들이 등극 후 첫 황자가 되어 주목을 끌고 황제가 되어 조선을 도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했다며 인정했다.[10][11] 이에 여의가 조선의 세자가 새 공녀를 바쳤고 너는 조선인인지도 알 수 없는 사생아임을 밝혔다고 하자 정신붕괴를 일으킨다.

결국 평생을 다바쳐 사랑했던 조선의 세자에게 이용당했다는 사실에 절망하며 비참하게 병사한다.[12] 죽기 직전에 “허무하다. 끝이 이럴 줄 알았더라면 후궁의 여인들과도 다투지 않았겠지. 만약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다음 생이 있다면... 이런 삶을 살지 않겠지. 명심해! 이런 삶은 다시는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을"이라는 한서린 유언을 남긴다. 마지막 유언을 보면 자신의 악행에 희생된 후궁들과 아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죄책감은 있었던 모양. 설령 후회하거나 뉘우치지 않았다고 해도 저지른 짓의 경중이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걸 체감해서 한 말일지도.

홍력은 숙가황귀비로 추존하였고[13] 얼마 전에 죽은 관여자를 그녀의 무덤에 대신 집어넣었고 그녀의 시신은 행방을 알 수 없다.

옥연의 악행은 황실의 체면 때문에 홍력이 묻어두었고, 조선에선 홍력의 눈치를 봐 옥연의 가족들을 유배보내고 새 공녀를 바쳤다.

드라마에서는 후술되다시피 조선이 아닌 북국 출신의 공녀로 변경되었으며, 사랑했다던 조선의 세자 역시 옥씨라는 가상의 왕조로 바뀌었다. 통칭 옥씨 왕야라고 부르며 작중 내내 그에게 선물받은 염주를 소중하게 간직하며 애지중지한다. 초반에는 황후, 고희월 등을 충동질하여 장기말로 써먹고 자신은 배후에 안전하게 숨어 공작을 꾸미면서 거의 최종보스급 포스를 보여줬으나, 여의와 대사가 사통했다고 모함하는 데 실패하면서부터 무력하게 당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기르던 개가 여의와 홍력의 딸 경시에게 달려들어 심장병을 앓던 경시가 그 충격으로 사망하는 사태가 터지면서[14] 홍력의 분노를 직격타로 맞아 완전히 몰락하고, 이후 병에 걸려 자신의 처소인 계상궁에서 하루하루 죽을 날만 기다리던 중[15] 여의가 찾아와 그동안의 진상을 물어보자 자신을 비웃으러 왔냐며 절대 말해주지 않을 거라고 버틴다. 하지만 여의가 옥씨 왕야는 널 버렸다며 그가 홍력에게 보낸 '김옥연은 옥씨 소생이 아니다'라는 밀서를 건네주자, 이를 보고 처음엔 부인하지만 결국 옥씨 왕야가 선물한 염주마저 내던지며 그의 미소를 위해 평생을 바쳤는데 그 모든 게 헛수고였다고 절망한다.

여의가 경시의 죽음이 네 짓이냐고 묻자 지금까지 개가 왜 갑자기 경시에게 달려들었는지 자신도 도무지 모르겠고, 파림 미약의 유산도 자신이 한 짓이 아니라고 부인하지만 완전히 자포자기해서 무슨 질문이든 다 대답해줄테니 전부 다 물어보라고 한다. 이내 여의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부찰 랑화 백예희의 손을 빌려 죽였고, 황기운 백예희의 아이도 그들의 회임이 눈에 거슬린 자신이 고희월을 이용해 죽였다고 고백한다. 또한 색탁륜 아약이 여의를 배신하고 랑화를 따르게 만든 것도, 가리엽특 해란의 난산도, 황장자 영황에게 친모 철민황귀비가 랑화 때문에 죽였다고 알려 홍력에게 밉보이게 만든 것도 전부 자신이 한 짓이라고 실토한다.

이어서 황후를 쳐내야 후궁들에게도 기회가 생기니 다들 못할 짓이 없었을 거라며, 황궁 안에서 남을 이용하지 않으면 자신이 먼저 이용당하니 그들이 자기 대신 죽은 거라고 웃는다. 이때 모습은 정말이지 실성한 듯 보인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엽혁나랍 의환과 그녀 소생인 10황자의 죽음만큼은 자신이 한 짓이 아니라며, 의환이 회임했을 때 이미 자신의 지위가 안정적이였는데 그녀와 10황자가 무슨 위협이 돼서 해치겠냐고 항변한다. 이렇게 여의에게 그동안 자신이 한 모든 짓을 실토한 후 마지막 희망으로, 옥씨 왕야의 밀서가 거짓이라고 말해달라며 애원하지만 여의는 그대로 계상궁을 나가버린다.

이후 처소에서 혼자 머리를 빗고 화장을 하면서 '일생동안 다른 후궁들과 심계를 다툰 건 모두 헛된 것이었다. 기억해라. 내세가 있다면 다시는 이런 삶을 살지마.'라고 원작의 유언과 비슷한 대사를 남긴 뒤 청나라 후궁으로서가 아닌 고국의 옷을 입은 채 조용히 사망한다.

여의의 사통 모함에 실패하고 여의가 황후가 된 후에는 딱히 반격도 제대로 못 하고 족족 당하기만 해서 캐붕이라는 의견이 있다.[16] 이 때문에 극의 재미가 떨어졌다는 지적도 있는 편.

3. 조선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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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에서는 명확하게 조선 출신 공녀라고 나온다. 모티브를 따온 실존 인물 숙가황귀비 긴기야씨의 조상이 조선인인 건 사실이지만, 이미 선조 대에 청나라로 귀화한 가문 출신이여서 숙가황귀비 본인이 직접적으로 조선과 연관은 없었다. 그러나 드라마에서는 '북국' 출신의 옥씨 왕야가 바친 공녀로 변경되었다. 바뀐 설정에 대해서 여러 이유가 추측되고 있는데 조선은 명나라에 공녀를 바쳤어도 청나라에 공녀를 바친 적 없다는 역사적 사실과 한국을 배려해서 가상의 나라로 바꿨다[17], 사드배치로 인한 한한령으로 한국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소수민족 문제 때문일 수 있다[18] 등, 여러가지로 추측되고 있다. 하지만 사드 분쟁 이전의 드라마인 설인귀전기에서도 고구려/연개소문을 발요/철세문이라는 가상 국가 및 인물로 바꿔버린 사례가 있고 옥연이 자신의 처소[19]에서 하는 고국의 복장을 보면 조선의 한복과 쪽머리를 모티브로 한 것이 티가 나기 때문에[20] 2번째 이유는 성립되기 어렵고, 극 중에서 중국의 소수민족인 만주족 캐릭터 상당수가 악역으로 나오기 때문에 소수민족 감정설도 설득력을 잃는다. 다음은 원작에서 조선과 관련된 설정들.

원작에서 조선 출신으로 설정하는 바람에 다음과 같은 오류들이 발생했다.

물론 조선에서 중국으로 양반가 출신의 공녀를 보낸 일이 실재하기는 한다. 조선 전기 권씨, 한씨, 황씨 등의 인물들이 명나라에 바칠 공녀로 차출되어 보내진 기록이 남아있는데 저 가운데 황씨와 한씨는 확실하게 양반이다. 특히 청주 한씨 가문은 자매를 각각 영락제 선덕제의 후궁으로 보냈는데[22], 이들의 오라비인 한확은 명 황실과 연이어 사돈을 맺은 관계로 출세가도를 달렸다. 덧붙이면 이 양반이 바로 성종의 어머니 인수대비의 아버지(즉, 성종의 외조부)다. 조선 후기에는 종실 출신으로 아이신기오로 도르곤과 혼인한 의순공주도 있긴 하다. 이쪽은 공녀는 아니고 도르곤이 조선의 공주 혹은 종실녀와 혼인하고 싶다고 구혼하면서 대복진으로 데려간 것이다.

4. 기타


[1] 겉으로는 랑화를 따르지만 뒤에서 교묘히 자신에게 유리하게끔 조종하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랑화의 죽음에 일조한다. [2] 드라마에서는 사산됨 [3] 조귀인은 지략이 뛰어났지만 출신이 나쁘다는 한계 때문에 화비의 하수인이 노릇이나 하다가 화비의 과도한 구박 때문에 참지 못하고 통수를 쳤지만 김옥연은 출신도 좋은데다 처음부터 부찰 랑화나 고희월 같은 상급자들을 장기말로 써먹었다. [4] 드라마에서는 이때 옥씨 왕야가 자신의 왕비를 자살하게 만든 일로 꾸지람을 들으러 홍력에게 불려오자, 어떻게든 그를 살리기 위해 양심전 앞에 꿇어앉아 머리까지 찧어가며 애원하다가 9황자 영유가 사산된다. [5] 다만 조선과의 관계를 생각해 아주 내치지는 못한다. [6] 랑화에게 뒤집어 씌움. [7] 여의에게 뒤집어 씌움. [8] 실제 역사의 숙가황귀비 긴기야씨는 건륭제와 동갑인 1711년생으로, 13살인 1723년은 경종 재위기로 자식이 없어 동생인 영조가 세제로 있었다. 굳이 붙이자면 영조를 모티브로 했다고 하겠지만 딱 들어맞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숙가황귀비의 가문인 긴기야씨는 이미 오래 전부터 만주에 터를 잡은 가문이라 조선에 가본 적도 없었다. [9] 조선의 지원 역시 적극적으로 받았다. [10] 실제 역사에서 한반도 출신으로 중국 원나라의 황후가 된 기황후와 오버랩된다. 물론 황후와 일개 후궁이라는 포지션 차이는 있지만. 적어도 기황후가 조국에게 저지른 패악질에 비하면, 옥연은 조국을 위해 살았으니 그보다는 개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11] 그러나 건륭은 처음부터 공녀인 김옥연의 아들들에게 황위를 물려줄 생각이 없었다. [12] 사실 스스로도 자신이 공물일 뿐이고 세자가 자신을 이용한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13] 전혀 어울리지 않는 숙(淑)자를 시호에 추가해 비꼬는 것이다. [14] 그 이전에 누군가가 침투한다는 망상과 불안에 사로잡히면서 개들을 길렀는데 개 짖는 소리에 경시가 놀랐던 일이 있다. 이 일로 기르던 개들 대부분을 버렸지만 한 마리를 남겼고, 위연완의 계략으로 경시에게 달려들게 된다. [15] 여의가 왔는데도 침상에 누워있는 채로 골골거리며 평생을 옥씨를 위해 싸워왔는데, 아들들이 고개도 들지 못하게 만들었으니 살아서 뭐하겠냐고 한탄한다. 이때도 옥씨 왕야가 준 염주를 손에 쥐고 있었다. [16] 전반부를 이끌어간 부찰 랑화, 고희월은 나름대로 적절한 흐름으로 최후를 맞았는데 김옥연은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고 죽는다. 그것도 부찰 랑화나 고희월처럼 본인의 업보 때문에 몰락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위연완에게 당하고 건륭제에게 당하는 데 원망은 여의에게만 한다. [17] 실제로 조선이 청나라에 공녀를 보내긴 했었다. 청나라 초기 홍타이지가 황제이던 시절에. 그러나 이는 의순공주의 일로 일단락 된 것이기에 그 뒤로 조선이 청나라에 공녀를 바친 일은 없었다. [18]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연희공략에서 용비 화탁씨가 악역으로 나와 뉴호록 씨로 바뀐 적이 있다. 중국은 소수민족의 독립 문제에 민감하고 분열을 경계하기 때문에 드라마에서 위구르 출신 여인을 나쁘게 묘사했다가 검열당했다. [19] 파일:DAD14D18-C34C-4A16-A4C0-CC3D5DD0DB89.jpg 극 중 묘사된 처소 내부를 보면 기존의 중국식 입식이 아닌 조선 혹은 일본풍에 가까운 좌식에 가깝다. [20] 심지어 처소에서 종종 가야금처럼 보이는 악기를 연주하는데, 문제는 극 중에서 이 악기를 북금(北琴)이라고 칭한다(…). [21] 시기상 명성왕후일 가능성이 높다. [22] 영락제의 후궁 강혜장숙여비(康惠莊淑麗妃) 한씨, 선덕제의 후궁 공신태비(恭愼太妃) 한씨. [23] 록균이 향견을 보고 “숙가황귀비가 다행히 일찍가서 망정이지 저 여자를 봤다간 분개해서 일어날지도 모르겠군요!”라고 소리쳤다. 향견은 위구르인이었고 심지어 정인이 있었기에 후궁들이 난색을 표하며 반대했던 것이다. [24] 측근 시녀이자 같은 고향 출신인 정숙이 “마마는 정말 황상의 마음을 잘 얻어내세요. 다른 후궁들은 그러질 못하죠.”라 말하자 “겉치레일 뿐이야. 난 홍력의 마음에는 관심없어. 오직 왕야뿐이다.”라고 말한다. [25] 랑화는 임종 직전 홍력에게 이제까지 저지른 악행은 모두 인정하면서도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일에 대해서만큼은 정말 억울하다고 항변했지만, 홍력은 그동안 랑화의 악행을 다 알고 있었지만 황실의 체면을 위해 모른 척했다고 일갈하며 애원하는 랑화를 떠나버리고 임종조차 지켜주지 않는다. 옥연 역시 여의의 딸 경시의 죽음으로 홍력의 분노를 사 완전히 몰락해 자기 처소에 유폐되어 죽을 날만 기다리면서도 옥씨 왕야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못했지만, 정작 그 옥씨 왕야는 바로 홍력에게 "옥연은 옥씨 소생이 아니다"라는 밀서를 보내며 그녀를 매몰차게 버렸고 이 사실을 안 옥연도 삶의 의지를 잃고 얼마 못가 숨을 거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