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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1 01:01:10

부찰 랑화

여의전 황실 여성 등장인물
{{{#!folding [ 펼치기ㆍ접기 ] 황후(皇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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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 엽혁나랍 의환 진비 부찰씨 예비 박이제길특 액음주 용비 한향견 돈비 왕부지
빈(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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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8223d><colcolor=#ffffff> 후궁여의전의 등장인물
부찰 랑화
파일:langhua.jpg
이름 부찰[1] 랑화[2][3] (富察 琅嬅)
배우 동결
민족 만주족 양황기
파벌 랑화파
거주지 장춘궁[4]
가족관계 남편 건륭제, 부찰 이영보[5]
아들 2황자 영련, 7황자 영종
딸 1황녀[6], 3황녀 고륜화경공주 경슬
<rowcolor=#FFFFFF> 품계 왕부 황궁
적복진
황후

1. 개요2. 작중 행적
2.1. 여의 vs 랑화
3. 원작에서4. 실제 역사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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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드라마 옹정황제의 여인 여의전의 등장인물.

소설 《후궁여의전》의 등장인물 부찰 랑화와 실존 인물 효현순황후 부찰씨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이다.

2. 작중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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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력의 어머니로 랑화의 시어머니인 희귀비 뉴호록씨가 랑화의 친정 부찰 가문의 권세는 자신의 뉴호록씨도 넘어서지 못한다고 할 정도로[7] 내명부에서 비벼볼 사람이 없는 명문가 출신으로 나온다.

이런 배경 덕에 홍력의 적복진을 고르는 수녀선발 때 가장 유력한 적복진 후보로 나오지만, 청앵에게 적복진 자리를 뺏기고 자신은 측복진이 될 뻔하나 옹정제가 무산시키면서 적복진이 된다.[8] 그러나 청앵을 적복진으로 염두에 두었던 홍력은 랑화와 첫날밤을 치르지 않고 다음날 시집 온 청앵과 초야를 보냈다. 이로 인해 자존심이 구겨졌지만, 적복진으로서 참고 인내한다. 한편 청앵과 희월이 각기 측복진과 격격으로 입부하자 난임을 유도하는 영릉향 팔찌를 선물하였다. 적자 영련과 적녀 경슬을 낳았지만, 원작의 홍력이 정궁의 체면과 조정에서의 권력 관계를 중시하여 랑화를 총애한 데 비해 총애를 덜 받는다. 태후와 황제 사이에 끼어 고생하는 것은 덤.

여의가 대황자 영황을 양육하게 되자 총애와 장자를 업고 황후의 자리를 노릴까 전전긍긍했고, 여의가 냉궁에 간 후에도 홍력의 마음에 자리하자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고 지전[9]을 전달하는 등 시시때때로 여의를 견제했다. 여의가 냉궁에서 복귀하고 함께 악행을 저지른 혜귀비 고희월이 냉대받다가 죽은 후 처지가 난감해진다. 팔찌의 진상을 알게 된 희월이 죽기 전 홍력에게 랑화의 악행을 고했기 때문이다.[10]그러나 홍력은 랑화에게 실망하고 그녀를 의심하면서도 일단은 적자녀를 낳아준 황후를 감쌌다. 이후 홍력이 아플 때 그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하였으며, 그 덕에 늦은 나이에 회임하여 영종을 낳았다. 초파일에 태어난 적자라 황궁의 모든 사람들이 영종의 탄생을 기뻐한다. 하지만 백예희가 자신의 사산이 황후의 탓이라는 옥연의 농간에 넘어가 영종에게 천연두를 전염시키면서 크게 상심하였다. 홍력은 전염병에 걸린 영종을 힐방전에 격리해 치료받게 하는데, 랑화는 아직 젖먹이에 불과한 영종의 격리를 말리다 결국 힐방전 앞에서 아들의 쾌유만을 기다린다. 그러나 기다린 보람도 없이 영종은 죽고, 상심하여 병에 걸린 몸으로 동순을 따라나섰다. 그나마 기력을 차린 것은 여의가 황후 대행으로 동순에 참여할까 조바심이 났기 때문이었다.[11] 순행에서 벽하원군에게 제사를 지내고 건강이 회복되는 듯 했지만, 유일한 자식 경슬마저 먼 곳으로 시집을 가게 되면서 병세가 악화된다. 결국 밤 산책 중 후궁들의 험담을 듣고 충격에 빠져 물에 빠진 뒤 병세가 심해져 죽었다.

죽기 전 홍력과의 마지막 대화에서 자신의 심경을 고백하고,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일에 대해선 억울함을 표한다. 그러나 홍력은 랑화의 말을 믿어주지 않고 그동안 자신도 랑화가 저지른 악행을 모두 알고 있었지만 황실의 체면 때문에 묵인하고 있었다고 일갈한다. 마지막까지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홍력에게 절망하지만 이와중에도 어떻게든 여의를 견제하기 위해, 자신의 사후에 뒤를 이을 계후로 순귀비를 천거하지만 홍력은 그런 랑화의 시도마저 비웃는다. 결국 완전히 상심하여 홍력에게 “당신은 똑똑하지만 냉정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줍니다. 계후가 누가 되던 지금의 신첩보다 더 좋은 결말을 맺지는 못할 것입니다.”라며 저승에서 꼭 지켜볼거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랑화의 말대로 여의의 최후는 랑화보다 훨씬 비참했다. 여의 역시 랑화처럼 자식들을 줄줄이 잃었고, 홍력과 불화했으며, 심지어는 랑화 사후 랑화에 대한 감정이 애틋하게 돌변한 홍력의 묵인 하에 황후로서의 업적을 랑화와 비교당했다. 친정의 권세와 화경공주의 존재 덕에 황후로서 존중받다가 후한 장례 속에 떠난 랑화와 달리, 여의는 결국 연완의 모함과 홍력의 학대에 시달리다가 유폐당한다. 나중에서야 억울함을 풀기는 하지만 여의의 병세는 이미 깊어진 상태였고, 죽은 후에도 황후가 아닌 황귀비의 예로 장례를 치렀다. 랑화의 저주라면 저주일 유언이 실현된 셈이다. 그러나 여의의 최후가 랑화보다 낫다는 의견도 있다. 여의는 미련을 두지 않은 채로 편하게 세상을 떠났지만, 랑화는 홍력의 의심을 풀지 못한 상태에서 여의가 차기 황후가 될 것을 걱정하며 떠났다. 또 랑화는 적자를 모두 잃고 가문의 영광에 집착했지만, 여의는 영기를 잃지 않았으며 편하게 생을 마감했다.[12] 드라마를 기준으로 보면 더욱 더 부각되는데 랑화가 홍력을 부르며 절규하면서 떠난 것과 다르게 여의는 고요하게 앉아서 생을 마감했다. 사후 처리 역시 랑화의 대우가 융숭하긴 하였으나, 여의가 지위나 예식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크게 중요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후 홍력은 랑화의 말을 믿어주지 못한 미안함, 강직한 여의에 비해 자신을 거스르는 법이 없던 랑화에 대한 그리움으로 인해 그녀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렀다. 랑화의 장례에서 옥연과 해란의 농간으로 눈물을 보이지 않은 대황자 영황과 삼황자 영장은 홍력에게 뺨을 맞고 계승권을 박탈당했다.

이후 김옥연 에피소드에서 옥연 소생의 어린 4황자를 예뻐해 장춘궁으로 자주 데려갔다고 언급된다. 랑화의 남동생 부찰 부항 역시 “효현황후께서 4황자를 예뻐하셨다.”라고 말한다. 이를 이용해 옥연은 영성을 랑화의 양자로 입적시키고 더 나아가 황태자로까지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여기에 떡밥이 있었다. 한미한 가문 출신인 소록균의 아들은 그토록 견제했으면서, 북국의 지원을 받는 옥연의 아들은 견제하지 않았다? 이미 랑화의 머리에는 공녀 출신인 김옥연의 아들들이 잘나봤자 차기 황제는 될 수 없을 것이란 걸 알고 있었고, 옥연 역시 랑화 앞에서 철저하게 스스로를 낮추며 그녀를 황후로서 모셨으니 그냥저냥 서자로 이뻐해준 것 뿐이었다.[13]

랑화 사후 그녀의 원한은 랑화의 적녀이자 자식들 중 유일하게 성인까지 자라 혼인한 고륜화경공주 경슬이 풀어준다. 과이심부에 시집 갔던 경슬이 황궁으로 돌아와 여의를 증오하는 위연완과 합심해 여의를 향한 복수를 시작한 것이다. 경슬은 자신의 어머니가 미워하던 여의를 본래부터 좋아하지 않았다. 급기야 여의가 황제와 태후를 움직여 자신을 멀리 있는 과이심부로 시집보내자 영련과 영종이 죽고 하나 남은 경슬마저 곁을 떠나는 바람에, 가뜩이나 아팠던 랑화가 상심하여 병이 깊어져 사망했다고 생각해 더욱 앙심을 품은 상태였다.

회궁 이후 경슬은 유일한 적녀라는 신분, 외가 부찰씨와 시가 과이심부의 권세를 배경으로 궁중 암투에서 암약한다. 위연완을 밀어주고 랑화에 대한 건륭의 그리움을 자극하는 등, 여의의 입지를 좁히기 위한 경슬의 행보는 대개 성공적이었다. 건륭 또한 유일한 적녀이자 금지옥엽으로 기른 딸을 믿고 아낀 듯하다. 황실의 여러 문제나 자신의 고충을 황후나 후궁이 아닌 딸과 상의하는 모습이 여러 번 나온다. 여의의 몰락 후에도 경슬의 활약은 계속 된다. 위연완은 자신의 친아들 영염에게 부황보다 생모를 우선시하라고 타이르다가 경슬의 사람에게 이를 들키고, 경슬이 건륭에게 이 사실을 고하면서 위연완은 슬하의 아이들을 후궁과 태비에게 빼앗겼다. 여의를 몰락시키기 위해 위연완을 밀어주었지만 출신과 성정이 천한 그녀가 황후가 되는 것은 적출 태생의 공주였던 경슬도 싫었던 모양. 다만 경슬이 여의를 마냥 증오하기만한 것도 아니었다. 막상 여의가 홍력과의 갈등 끝에 머리카락을 자르고 익곤궁에 연금되면서 거의 폐후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자 어머니 랑화의 복수를 했다고 통쾌해할만도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위연완의 행패로 내명부의 분란이 갈수록 커지는 것에 불안감을 느꼈는지 부황과의 갈등으로 고통받는 여의를 안쓰럽게 여기기까지 한다. 게다가 상재들이 황귀비가 된 연완에게 아첨을 떨러 온 것을 궁 밖에서 보면서, 저리 체면을 지킬 줄 모르는 것을 황귀비에 앉히면 안 됐다며 여의보다 연완을 더 혐오한다.

이러한 결말을 종합해볼 때 랑화의 삶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비록 극중에서는 살아서는 사랑받지 못했지만, 친정의 권세와 적자녀를 가진 황후로서 나름 존중받았고, 죽어서는 홍력의 그리움과 후한 대우 속에서 추모받았으며, 딸 경슬의 활약으로 연적이었던 여의도 몰락시켰다.[14]

그러나 여의는 모든 미련을 버리고 자유로이 떠났으며 그녀의 심복들은 마지막까지 충정을 다했다. 여의의 자식인 영기는 남은 모든 후궁들과 태후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겠지만 랑화의 유일한 자식인 경슬은 부마에게도 총애를 얻지못하며 의지할 서모도 남아있지 않다.[15]

여의가 사랑과 이상에만 집착해 후궁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다면, 랑화는 적당한 계락으로 내명부를 다스렸다는 점에서 황후에 더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랑화가 살아있었다면 위연완이 날뛰지도 못했을 것이다.[16][17] 전작 후궁견환전에서 태후 오아씨가 여의의 고모 오라나랍 의수를 옹정제의 황후로 천거하면서, 적녀인 오라나랍 유칙은 내명부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는데 여의가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2.1. 여의 vs 랑화

여의와 랑화의 파벌을 비교해보자면 랑화의 파벌이던 고희월, 색탁륜 아약, 김옥연[18], 여의의 파벌이던 가리엽특 해란, 소록균, 진완인, 파림 미약, 한향견, 각빈은 비슷하면서도 차이점이 있다.

여의의 파벌은 초창기에는 랑화의 파벌과 비교했을 때 보잘것 없었다. 암투에 뛰어들 생각은 전혀 못했으며 랑화의 계략에 당하기만 하고 후에 해란의 각성으로 인해, 랑화의 장남 영련을 사지로 인도하지만 몽골 비빈들이 오기 전에는 이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여의의 진실을 밝히는 것 뿐이었다. 그러나 여의의 파벌은 끈끈한 믿음과 유대로 이루어졌고 서로 갈등했을지언정 배신만큼은 하지 않았지만, 랑화는 자신의 이익에 따라 아무렇지 않게 수하들을 장기말로 이용했고 자신도 바로 그 후궁들의 배신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19] 반면에 여의의 파벌은 마지막까지 그녀를 외면하지 않고, 진실을 밝혀 여의의 억울함을 풀고 위연완을 골로 보낸다.

방식도 다른데 랑화파는 보통 흉계를 꾸미고 그것을 여의나 해란에게 뒤집어 씌우는 방식이지만, 여의파는 상대에게 소중한 것을 하나씩 잃게 만들어 정신적으로 고문하다시피 하며 문자 그대로 피말려 죽인다. 해란부터가 경고의 의미로 랑화의 장남인 영련의 죽음에 일조하면서 그녀를 절망케 했고 랑화의 차남 영종 역시 처리하려고 했으며, 록균과 여의도 합심해서 랑화의 하나 남은 딸 경슬을 몽골로 시집보내버리면서 가뜩이나 아들들의 연이은 죽음으로 상심한 랑화의 상태를 악화시킨다. 원작에서는 여의가 죽고 위연완이 황귀비가 되었을 때도 용비 한향견, 유비 가리엽특 해란, 영비 파림 미약이 합심하여, 내명부의 법칙은 쌈싸먹는 수준으로 위연완을 무시하고 하대하며 자식들을 연달아 모두 잃게 하면서 죽느니만 못한 상태로 만들어 버린다.

또한 위연완의 어머니인 위부인이 궁에 들어왔을 때도 소록균과 미약이 위부인을 황제 앞에 무릎 꿇게 한 뒤 “니가 아니면 니 아들이 저주했겠지? 일단 고문하고 보자”라는 식으로 달달 볶은 뒤 죽여버린다.[20]

3. 원작에서

옹정제의 측근이었던 장정옥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자금성에서 숭경황태후 뉴호록씨 다음으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여인이다. 겉으로는 현숙하고, 자애로운 현모양처처럼 보이지만 이 모든 것은 페이크이며 실상은 전작의 오라나랍 의수처럼 모든 사건의 배후이며 황제의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얀데레(...)이다. 비록 겉과 속이 다른 면과 욕심이 지나치게 많고 황제에게 존중을 받는 점에서는 의수와 똑같지만, 생존한 자식이 하나도 없는 의수와는 달리 랑화는 자식을 아들 하나와 딸 둘씩이나 낳았고, 작중시점에서는 요절한 1황녀를 제외하면 2황자 영련과 3황녀 화경공주 모두 생존한 상태이다.[21]

그녀의 얀데레 행각은 의수보다 더 심각하면 심각했지 덜하지 않는데, 우선 남편인 홍력에게서 받은 팔찌 중 한 쌍 속에 여자를 불임으로 만드는 향을 넣어서 자신의 자리에 가장 위협적인 위치에 있는 여의와 희월에게 나눠주며 난임을 시키는 만행을 저질렀고,[22][23] 이후 매귀인의 기형아 출산에도 크게 일조하였고, 이귀인의 유산에 가장 큰 배후이나 여의의 심복인 아약을 매수하여 모든 누명을 다 여의에게 뒤집어씌운다.

그렇게 여의를 냉궁으로 쫓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안심이 안됐는지 거듭 여의의 목숨을 위협한다. 이미 그녀는 전작의 의수 못지 않게 악행의 씨앗이 실로 거대한데 이미 잠저 시절엔 1황자 영황의 생모인 철민황귀비 부찰 제영을 독살했다. 이건 무슨 의미냐 하면 부찰 제영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철민황귀비는 랑화와 같은 부찰 가문 출신으로, 랑화는 단지 자기보다 먼저 아들을 낳아 입지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같은 가문의 친족까지 아무렇지 않게 죽였다는 얘기다. 하지만 같은 부찰씨라도 소속 팔기가 다르므로 가까운 일족은 아니긴 하다.[24]

랑화는 의수와는 비교도 못할 정도로 좋은 처지에서 만족할 줄 모르고 탐욕을 부리다가 자멸하는 케이스다. 우선 서출 콤플렉스도 없는데다 적복진으로 입궁했고, 황제로부터 총애도 받는 상황이었으며 감히 자신의 황후 자리를 위협할 인물이 있는 입장도 아니라[25] 그냥 사고만 치지 않으면 무난하게 황후 자리를 유지하면서 자연스럽게 모후황태후가 되는 데도 불구하고 확고한 황후 자리의 유지와 자기 소생의 아들인 영련의 차기황제 자리 확보도 목적이었기 때문에 기꺼이 손을 더럽히면서 스스로 파멸을 자초하기 시작한다. 더 웃긴 것은 뭐냐면 정작 남편은 서출 콤플렉스가 있었던 탓에 차기 황제는 무조건 적자로 내세우려고 했다.

즉, 랑화는 그냥 가만히 앉아있기만 해도 자기 아들 영련이 즉위하는 것을[26] 볼 수 있었는데 화를 자초한 셈.

이 때문에 아가소를 설치하면서 남자 황손들을 돌봐주는 황실 기관을 설립하여 친모들에게서 강제로 아들들을 빼앗아 아가소에서 양육하게끔 하였고, 여의가 기르고 있는 1황자 영황은 제대로 된 양육을 받지 못하게 하였고, 순빈이 기르고 있는 3황자 영장은 지나치게 오냐오냐 키우게 해서 발육을 더디게 하였다.

그러면서 자기가 직접 낳은 자식인 영련에게는 지나친 학구열을 불어넣어서 치맛바람을 일으키다가 결국 영련의 건강을 악화시키고, 여기에 황후에게 원한을 품은 여의와 록균, 해란의 복수까지 더해져서 영련은 8살의 나이로 요절하게 된다.

여의에게 복수하려 하나 태후의 견제 때문에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 복수라곤 회임한 가리엽특 해란의 유산방지약에 손을 써 해란의 외모를 손상시킨 것이 사실상 전부고[27] 수하인 고희월은 홍력의 냉대를 받고 자신은 이미 나이가 있어 회임을 하기 힘들어 궁지에 몰렸다.

3권 초반부의 소심과 김옥연의 대화에서 모든 사건의 배후는 부찰 랑화가 아니었음이 밝혀졌다. 한마디로 페이크 최종보스.

원래부터 몸이 약한 편인데다[28][29] 친아들 2황자 영련을 잃은 후 건강이 더 안 좋아졌다.

그러나 홍력이 적자를 원하는 것을 알기에 나이가 들었음에도 억지로 회임하여 유산방지약을 먹고 쑥을 태워가며 7황자 영종을 낳았다. 그러나 영종은 유모에게 전염된 천연두로 태어난지 얼마 안돼 죽어버리고 만다. 더 이상 아이도 가질 수 없는 상태에서 마지막 희망인 영종마저 잃고 급격히 쇠약해져 삼십대임에도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렸다.[30] 고륜화경공주를 제외하고 자식들은 모두 단명했고 생존한 고륜화경공주도 유숙장공주 대신 몽고에 화친으로 떠날 상황. 랑화는 자신의 죄 때문에 자식들이 이렇게 되어버렸는가 한탄한다.

건강회복을 위한 지방순행에서 병이 완화되고 있었으나 밤에 시녀들과 떨어져 혼자 산책하던 중 예희, 록균, 해란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고 충격에 빠져 건강을 크게 상한다. 후궁들의 이야기인즉 순귀비 소록균이 '아들이 또 죽고 아픈 와중에 딸까지 멀리 시집간 황후가 불쌍하다'고 하자 매빈 백예희가 "자기가 지은 죗값을 자식들이 받았으니 인과응보지."라고 이야기한 것이었는데, 인과응보라는 이야기가 마음에 맺혔는지 충격에 빠져 헤매던 중 물에 빠졌다. 운철이 구해주었으나 결국 후유증과 자식을 연달아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해 3권에서 병사하였다.

죽기 전 홍력에게 자신의 진심을 모두 고백했다. "당신은 오랫동안 내 이름을 불러준 적이 없다.[31] 당신과 나는 가까운 듯하면서 멀었고 당신에겐 수많은 여인들이 있어 나는 당신을 붙잡지 못해 불안했다"고.

홍력이 제영은 어쩌다가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인지 묻자 랑화는 "제영이 장자를 낳았기 때문에 내가 질투하여 죽였다는 소문이 돌고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난 절대 아니다. 내가 평생 부찰씨의 백년 영광을 위해 살았는데 같은 부찰씨를 왜 죽이겠느냐"고 답했다. 또한 "자식을 위해 영황과 영장을 해치긴 했지만 죽이려고 한 적은 없었고 권세가 있는 고희월과 가문이 좋은 여의를 해친 건 맞지만 이빈과 매빈은 신분이 미천하여 황자를 낳아도 적자에게 위협이 되지 않으므로 해치지 않았고 그건 아마도 여의가 저지른 짓일 것이며 고씨가 자신에게 여의가 냉궁에서 영련을 저주한다고 고해 울분이 쌓였긴 했지만 방화와 독살하려 한 건 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랑화가 누가 자신을 해치려하냐고 묻자 홍력은 당신을 망친 건 당신 자신이라고 말한다.[32] 차갑게 돌아선 홍력은 예전을 추억하며 랑화가 부찰씨의 백년 영광과 남편을 따르고 자식을 기르고 현량한 아내가 되길 원한다고 말했으나 그녀는 자식들을 모두 잃었다. 곧 그녀가 죽자 홍력은 그녀와 그녀의 자식들을 생각하며 슬퍼하였다.

랑화가 죽은 후 시녀 소심은 기둥에 머리를 박아 죽었고 연심[33]은 홍력에게 주인이 저지르지 않은 부분에 대해 무고를 주장했다.

소심과 옥연의 대화, 고희월이 실토한 랑화의 악행은 왕흠에게 련심을 바친 것, 고희월과 여의에게 내린 팔찌에 사향을 집어넣은 것이다. 랑화의 말과 교차검증해보면 화비 의수처럼 심각한 얀데레는 아닌 듯.[34][35]

4. 실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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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여담



[1] 여의처럼 만군기 명문귀족 가문 출신의 여인. 전작에 등장하는 부찰 의흔과 같은 성씨다. 다만 부찰 귀인은 정백기, 효현순황후는 양황기로 둘의 가문이 다르다. 드라마에서도 양황기라고 나온다. [2] 선경의 기서를 모은 곳(낭환부지), 여자 중의 광채(琅嬛福地, 女中光華)라는 뜻이라고 한다. [3] 남편인 홍력은 '랑'이라는 애칭으로 부르고 드라마에서는 그냥 '랑화'라고 부르는다 [4] 장춘궁은 전작의 제비의 처소였다. [5] 1화에서 수녀들을 소개할 때 언급. 전작인 견환전에서는 영보라고 언급된다. [6] 여의전 시작 시점에서는 요절했다. [7] 다만 실제로는 희귀비의 모티브인 효성헌황후의 가문인 알필륭계 뉴호록씨는 청대 제일의 명문가다. 다만 효성헌황후의 집안은 방계이고 부친의 관직이나 재력이 좋지는 못했다. 반면 랑화의 모티브인 효현순황후는 실제 역사에서 만주팔대성씨에 들어가는 부찰가의 여식으로 수녀선발에서 단번에 건륭제의 적복진으로 뽑힐 정도로 청대에서 손꼽히는 명문가 출신이었다. 심지어 랑화의 어머니는 친왕의 적녀로 청나라 황실의 방계 출신인 애신각라씨였다. [8] 수정판에선 희귀비와 손을 잡은 부찰 가문이 희귀비와 홍력의 적인 3황자 홍시 경인궁 황후를 몰락시켰다. 그래서 부찰 가의 여식인 랑화가 다음 황제로 확정된 홍력의 수녀선발에 나온 것이다. [9] 궁에서 망자를 그리며 지전을 태우는 것은 중죄이므로, 여의로 하여금 죄를 짓게 유도하려고 했다. [10] 그러나 여기에 오류가 있는 것이 팔찌는 여의와 희월이 결혼식을 치르던 날에 바로 랑화가 준 것이다. 옥연의 설득으로 줬다지만 그 당시에 옥연은 왕부에 들어와있지 않았다. [11] 소련과의 대화를 보면 가문의 명예를 위하는 마음도 있었던 것같다. [12] 심지어 영기를 돌봐 줄 태후나 해란, 향견, 미약, 완인 등 든든한 후궁들이 많이 남아있다. [13] 실제로도 건륭제는 공녀의 소생이라는 이유로 김옥연의 아들들은 처음부터 황태자 후보에서 배제했다. 적어도 이 부분에서만큼은 랑화도 단번에 건륭제의 뜻을 꿰뚫어본 셈. [14] 다만 여의는 랑화에게 잘못한 점이 없다. 적처의 자리를 넘보지도 않았고 영릉향 팔찌로 자신의 불임을 유발하고, 아약을 매수해 냉궁으로 보낸 것이 랑화였음을 알기 전까지 딱히 적대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랑화의 악행을 모두 알게 된 이후로 의도적으로 랑화를 도발하거나, 마지막 남은 자식인 경슬을 멀리있는 과이심부로 시집보내는 데 일조하면서 랑화에게 복수한다. [15] 황후는 모든 황자녀의 적모이며 후궁들은 자기 소생 이외의 모든 황자녀들의 서모이다. 경슬도 파림 미약을 영어머니, 영마마라 부른다. [16] 애초에 미천한 출신으로 제대로 된 뒷배도 없는 위연완이 최고명문가 출신인 랑화에게 덤빌 깜냥도 못 되었고 랑화의 성격 상 위연완이 날뛰기 전에 먼저 손을 썼을 것이다. [17] 애초에 랑화파가 굳건했다면 위연완은 랑화한테 가기도 전에 고희월이나 김옥연한테 컷 당한다. [18] 항목을 들어가면 알겠지만 여의전 1부에서 일어난 대부분의 사건의 진짜 흑막이었으나 대외적으로는 랑화파였다. [19] 고희월이 홍력에게 진실을 말해 랑화가 황후로서 그의 신뢰를 잃어버리게 만든 것, 김옥연이 백예희를 부추겨 랑화의 차남 영종을 천연두에 감염시켜 죽게한 것 등. [20] 자신의 주인이 누명을 벗고 풀려나자 엽심은 아이를 낳고 있는 연완의 처소에 달려가 “영비 마마! 위부인이 사사됐습니다!”라고 소리를 지르고 다닌다. [21] 특히 황후로써 후계자가 될 수 있는 아들을 이미 하나 낳았다는 건 굉장한 이점. [22] 다만 원작에서는 “본궁은 아이를 못낳게만 했을 뿐인데 어찌 혜귀비의 몸이 저렇게 망가지는 것이지?”라며 갈수록 몸이 병들어가는 희월을 살짝 걱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23] 황후 다음의 지위인 귀비가 알아서 자신을 철저히 낮추고 아랫 후궁들을 엄격히 누르고 있으니 랑화 입장에선 자애로운 황후마마로 남을 수 있기에 더없이 좋다. [24] 극단적으로 말해서 둘은 그냥 성씨가 같다는 점만 제외하면 거의 남남인 수준이다. 혹여 희소 성씨라면 모를가, 부찰씨처럼 큰 성씨라면 널려있는 게 부찰씨이니 딱히 의미있는 유대감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지 않았으면 전작에서 부찰 의흔과 원수를 진 견환이 같은 부찰씨인 랑화를 며느리로 들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25] 굳이 있다면 여의가 있긴 하지만. [26] 다만 건륭제가 오래 살았기에 보장 할 수는 없다. 화경공주의 경우 동복형제들과는 달리 장수하여 62세까지 살았으나 부황인 건륭제보다는 일찍 죽었다. [27] 사실 김옥연의 짓이다. [28] 1권 1장의 첫 등장이 무려 시아버지 옹정제의 장례에서 곡을 하다가 실신한 것이다. 홍력에 의하면 영련과 화경공주를 낳은 이후로 몸이 약했다고 한다. [29] 그럴만도 한게 작중에서 친딸 1황녀는 효현순황후가 영련을 가졌을 때 요절한데다가 고륜화경공주 경슬은 친아들 2황자 영련이 돌이 되기도 전에 태어났다. 가뜩이나 선천적으로 몸이 약한데 임신과 출산을 계속 반복하니 탈이 안 날수가 없었던 것. [30] 이 와중에도 홍력의 유일한 아내에 집착한다. [31] 홍력은 마지막까지 랑화라고 불러주지 않는다. 랑화가 죽은 후에야 랑이라고 부른다. [32] 랑화가 저지른 악행들을 이미 알고 있었으나 황실의 체면을 위해 까발리지 않았다고 직접적으로 얘기한다. [33] 소설에서는 무려 친정시녀라고 한다 [34] 랑화는 화비 의수처럼 황제의 총애를 자신이 독차지하기 위해 암투를 벌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들이 안정적으로 차기황제가 될 수 있게 하기 위함에 더 가깝다. 그래서 후궁들이 딸을 낳으면 안심하고 김옥연, 이빈, 매빈처럼 출신이 한미하거나 공녀 출신이 아들을 가지면 별로 견제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자신에게 상대가 안될 것이 뻔하기 때문. [35] 그러나 소록균은 견제하였다. 만주족으로 대기되어 소씨에서 소가씨가 될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하고, 록균의 먼 친척이 이랍리씨인 것을 보아 소씨가 만주족들과도 혼맥을 이은 집안이라는 것을 눈치챈듯. 예희나 기운은 기녀, 시첩 출신이기에 같은 한족이어도 록균과 차이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