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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02-11 17:40:44

김낙현(1902)

파일:김낙현3.jpg
<colbgcolor=#0047a0> 출생 1902년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 얀치헤 끄라브 마을
사망 몰년 미상
사망지 미상
상훈 건국포장
1. 개요2. 생애3. 기타

1. 개요

한국의 항일운동가. 소련의 군인. 2009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김낙현은 1902년생이며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 안치헤 끄라브 마을 출신이다. 그는 1906년 아무르 강변의 니꼴라예프스끄로 이주하여 소학교를 졸업하였다. 1913년부터 부모를 도와 어장에서 노동자로 일했으며, 1917년 3월 통 제조공장 노동조합 집행부로 선출되었다.

1918년 가을 러시아 연해주 니콜라예프스크에서 박병길이 조직한 조선청년동맹(朝鮮靑年同盟)에 가담하여 <앞으로>를 발간해 항일의식을 고취시켰고, 1919년 유조심의 빨치산 부대에 참가했다. 1920년 빨치산연합부대에 참여하여 니항 전투에서 트랴피친 부대에 속해 일본군을 격퇴했다.

이후 트랴피친이 니콜라옙스크 사건을 단행해 일본 군인과 포로, 민간 일본인들을 모조리 학살하자 트랴피친의 처형을 둘러싸고 갈등이 벌어졌는데, 김낙현은 박 바실리와 함께 처형에 찬성하는 입장에 섰다. 니항 부대가 자유시로 옮겨간 후부터 김낙현은 자유대대에서 활동했다. 1921년에는 고려혁명군(高麗革命軍)에 합류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1922년 1년간 지휘관 과정을 수료하고 적군 제5군 소속 장교가 되었다. 10월 블라지보스또끄 해방전투에 참여했다. 1924년~28년에 레닌그라드 국제사관학교 조선인부대에서 교관으로 일하였다. 1928년 모스끄바 프룬제육군에 입학하여 1932년 졸업하였으며, 블라고베셴스끄 주둔 소련군 사단참모장 등을 역임했다.

1930년대 중엽 소련공산당 숙청 당시 체포 수감되었다가 1940년 석방 및 복권되었다. 이후 카자흐스탄 알마티시에서 말년을 보냈으나 정확한 사망 연도는 확인되지 않는다.

3. 기타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김낙현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