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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저우 FC

광저우 헝다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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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시즌 참가 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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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e0019><colcolor=#fec600> 광저우 FC
Guangzhou FC
정식 명칭 广州足球俱乐部
별칭 화남 호랑이 (华南虎)
창단 1954년 6월 1일 ([age(1954-06-01)]주년)
구단 형태 기업구단
소속 리그 중국 갑급 리그
연고지 광둥성 광저우
홈구장 변천 웨슈산 스타디움(18,000석) - (1994~2010, 2023)
톈허 스타디움(60,000석) - (2011~2021)
화두 스타디움(13.394석) - (2022, 2024~)
모기업 헝다그룹: 60%
알리바바 그룹: 40%
구단주 쉬 지야인 (许家印)[1]
단장 리유 졘 (刘倩)
감독 살바도르 수에이 산체스
주장 공석
라이벌 광저우 시티, 베이징 궈안, 상하이 하이강
역대 한국인 선수 조원희 (2011~2012)
김영권 (2012~2018)
김형일 (2017)
박지수 (2019~2022)
공식 웹사이트 파일:광저우 FC 엠블럼.svg 파일:시나 웨이보 아이콘.svg
우승 기록
중국 슈퍼 리그 (1부)
(8회)[2]
2011, 2012, 2013, 2014, 2015, 2016, 2017, 2019
중국 갑급 리그 (2부)
(5회)
1956, 1958, 1981, 2007, 2010
중국 FA컵
(2회)
2012, 2016
중국 슈퍼컵
(4회)
2012, 2016, 2017, 2018
AFC 챔피언스 리그
파일:ACL 트로피.svg 파일:ACL 트로피.svg
(2회)
2013, 2015

헝다그룹 산하 스포츠단
광저우 FC
(축구)
광둥 에버그란데
(배구)


1. 개요2. 역사
2.1. 초창기2.2. 갑A리그 시절2.3. 암흑기2.4. 헝다그룹 인수 - 왕조2.5. 외국인 선수 귀화의 선봉장2.6. 신구장 건설 프로젝트2.7. 헝다그룹 파산으로 인한 몰락과 2차 암흑기 도래
3. AFC 챔피언스 리그4. 선수
4.1. 명단4.2. 유명 선수
5. 라이벌6.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파일:external/theworldgame.sbs.com.au/20151122001201684764-original.jpg
2015년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당시[3]

중국 갑급 리그에 소속된 클럽. 중화인민공화국 광둥성 광저우시를 연고로 하는 축구 클럽이다.

2010년, 중국 최대의 부동산 재벌인 헝다그룹이 인수한 후 황사 머니의 선봉장[4]으로 중국 국내외의 우수한 선수들을 대거 영업하여 중국 최고의 축구 클럽이자, 아시아의 신흥 강호[5]로 떠오른 축구 클럽이다. 2011년 이후 중국 슈퍼리그 8회 우승, AFC 챔피언스 리그 2회 우승을 차지하였다. 최근 모기업이 파산 절차에 들어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그로 인해 구단의 앞날이 심히 불투명해진 상태다. 그 여파로 외국인 선수들이 모두 떠난 2022 시즌에는 리그에서 단 3승밖에 거두지 못하는 초라한 성적으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게 되었다.

2. 역사

광저우 FC의 전신은 1954년 6월에 창단된 중국 최초의 프로 축구팀인 중난체육원 경기지도과 축구팀(中南体院竞技指导科足球队)의 백팀(白队), 약칭 중난바이두이(中南白队) 축구단이다.

1993년 1월에 타이양선 그룹이 팀을 인수하면서 팀 이름을 '광저우 타이양선(广州太阳神)'으로 변경했고, 2006년에 광저우 이야오 그룹이 팀의 스폰서를 맡으면서 팀 이름도 '광저우 이야오(广州医药)'로 변경되었다. 2008년 광저우 이야오는 중국 슈퍼 리그로 승격했으며 2009년에 슈퍼리그 9위를 차지했지만, 승부조작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2010년 2월 23일에 청두 셰페이롄과 함께 갑급 리그(2부 리그)로 강등되고 만다.

2010년 3월 1일에 헝다그룹이 팀의 스폰서를 맡으면서 팀 이름을 '광저우 헝다(广州恒大)'로 변경했다. 헝다그룹은 2010년 3월 25일에 바로 전 시즌 구단 수뇌부와의 불화[6] 베이징 궈안에서 경질당한 대한민국의 이장수 감독을 영입, 2010년 10월 30일에 갑급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다. 이로써 광저우 헝다는 다시 슈퍼 리그로 승격되었다.

이후 구단 명칭을 중국 내에선 '광저우 헝다'로 유지하고, 영어명을 '광저우 에버그란데'로 변경했다.

2014년 12월 26일, 알리바바 그룹이 구단 지분 50%를 인수하여 구단 명칭을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로 변경했다.

2021년, 구단 명칭이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에서 '광저우 FC'로 변경되었다. 기업명을 구단명에 넣지 못하게 한 새로운 규정 때문이다.

2.1. 초창기

1954년 6월 창단되었다. 이때 중국은 막 전국리그가 출범했고, 광저우는 여기 참가하게 되었다.

1955년 리그에 참가해 8위를 기록했지만 강등당하고 1956년 2부리그에서 1위를 기록했지만 승격이 좌절되었다. 1957년 8위를 기록했고 1958년 2부리그 우승을 거두며 승격했다. 하지만 1960년 2년만에 열린 리그에서 17위로 겨우겨우 강등을 면했고 1961년 9위를 기록했으나 1962년 18위로 다시 곤두박질 치기 시작한다. 1963년 20등 꼴지를 기록하면서 다시 2부리그로 강등당했고 1964년 7위, 1965년 6위로 시즌을 마쳤다. 이후 문화대혁명이 터지게 되고 홍위병에 의해 선수, 코치, 감독이 자본주의, 반동분자로 몰리면서 팀이 풍비박산 나게 된다.

문화대혁명은 끝났지만 후유증이 너무 컸고 1974년 리그도 참가 못하고 한동안 헤메다가 1980년 겨우 겨우 3부리그로 복귀 하게된다. 1980년 3부리그 준우승을 차지해 2부리그로 승격되었으며 1981년 2부리그 우승을 차지해 20년만에 1부 리그 복귀를 하게 된다. 그러나 1982년 15위를 기록해 강등을 당했고 1983년 2부리그 준우승을 차지했으나 승격하지 못해서 1년더 2부리그에 머물러야 했고 1984년 9위를 기록했으나 어찌어찌 1부리그로 승격되었다. 1985~1988년 4년 연속 7위를 기록하면서 힘겨운 강등 싸움을 하다가 1989년 8위 꼴찌로 강등을 당하게 된다. 1990년 2부리그에서 준우승을 해 다시 1부리그로 복귀해 1991년 4위를 기록하고 1992년 팀창단 처음으로 1부리그 준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1993년 다시 8위로 곤두박질을 치게 된다.

2.2. 갑A리그 시절

갑 A리그 첫시즌에 참가해 1994년 2번째 준우승을 차지하며 기분좋게 출발했으나 1995년 5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1996년 7위 1997년 8위를 기록하면서 순위가 DTD를 찍게 되더니 1998년 14위로 다시 강등당하게 된다.

2.3. 암흑기

1999년 2부리그에서도 8위, 2000년 10위를 기록하면서 하위권을 맴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1년 4위를 기록했으나 승격되지 못하고 2002년 11위로 다시 추락하게 된다. 2003년 3위를 기록하면서 승격을 노렸으나 승격이 안됐다.

2004년 슈퍼리그가 출범되었으나 광저우 입장에서 보면 강건너 불구경 이야기였고 2부리그에서 힘든 싸움을 하고 있었다. 2004년, 2005년 2부리그 연속 4위를 기록했고 2006년 3위를 기록했으나 승격되지 못했고 2007년 2부리그 우승을 하면서 9년동안 기나긴 2부리그 늪에서 빠져나와 1부리그에 합류할 수 있게 되었다.

2008년 1부리그에 합류해 7위라는 나쁘지 않는 성적을 기록했고 2009년 9위로 성적을 마감했으나 승부조작을 한게 들통나 7위 청두 셰페이롄과 함께 나란히 2부리그로 다시 강등당했다.

2.4. 헝다그룹 인수 - 왕조

파일:광저우 헝다 타오바오 엠블럼.svg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2010~2020) 시절 엠블럼
그러나 2010년 헝다그룹에게 인수되어 오늘날 "광저우 헝다"로 바뀌게 되고 베이징 궈안에서 잘린 이장수 감독을 광저우 사령탑에 선임하는 걸 시작해서 팀전력에 엄청난 투자를 하게 된다. 이러한 투자를 바탕으로 2010년 2부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1부리그로 승격되었다.

2011년 4라운드까지는 조금 주춤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4라운드 이후 1위에 정착하게 되고 10라운드부터 연승가도를 달리게 되고 이후 2위 베이징 궈안과 승점15점 차이를 보이면서 리그 5경기를 남겨두고 우승을 차지하는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광저우 FC/연도별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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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슈퍼리그 최대의 먹튀 잭슨 마르티네스 라리가에서 빼오는 것을 끝으로 황사머니를 시전하는 것을 자제하고 있다. 2018년 연초 겨울 이적시장에서도 유럽리그에서 특급선수[7]를 빼올 것으로 보도가 났지만 다 낭설 혹은 성사되지 않았다. 중국에서는 이에 대해 여러가지 설이 도는데, 자세한 이유는 김영권 문서 참조. 구단 관계자가 2020년부터는 순수한 국내선수들만으로 운영할 것을 계획중이라고 언플하고 있다. 사실 압도적이었던 구단 페이롤도 2016년부터는 상하이 상강이나 톈진 취안젠, 허베이 화샤에 밀리고 있으며, 확실히 지출을 자제하고 있다. 과연 돈으로 쌓은 막강전력인데, 돈이 없어지면 성적을 유지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결국 2018년 전반기말에 리그 5위까지 전락했고, 돈을 안 쓰면 성적이 안 나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재확인했다. 화들짝 놀라서 후반기에 파울리뉴를 다시 사오고, 탈리스카를 데려와서 선두경쟁에 나섰지만, 상하이 상강에게 우승을 내줘서 리그 7연패를 저지당하고 말았다. 여기서 교훈을 얻어서인지 2019년 겨울 이적시장에서는 돈을 아끼지 않고 영입하려 하고 있다.

[clearfix]

2.5. 외국인 선수 귀화의 선봉장

2016년부터 "2020년을 시작으로 순수 국내선수만으로 팀을 꾸리겠다"는 언플을 했지만, 외인이 없으면 팀전력이 구멍나는 중국 클럽을 아는 축구팬들은 "과연 그렇게 될까" 혹은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했는데, 이 팀은 기상천외한 방법을 쓰기 시작했다.

즉, 자국에서 오래 뛰어 검증된 외국인 선수나 혹은 중국인 부모를 가진 해외 선수를 귀화시키는 방법을 쓰기 시작했다. 엘케손은 2019년 이미 귀화하여 팀에 합류했고 굴라트도 마찬가지 절차를 밟았다. 귀화가 아직 덜 끝난 외국인 선수들은 일단 영입해 절차가 마무리 될 때까지 타팀에 임대보내는 방법을 썼다. 엘케손 굴라트는 주전급은 아니었지만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선발된 적이 있을 만큼 실력파.[8]

광저우의 귀화 및 귀화 진행선수는 다음과 같다. 그러나 재정난으로 인하여 귀화 선수들마저도 떠나게 되었다.

2.6. 신구장 건설 프로젝트

파일:phpThumb_generated_thumbnail.png
파일:헝다 구장 내부.jpg
헝다 신구장 최초 디자인
홈구장인 톈허 스타디움은 종합운동장으로 건설되어 축구전용구장보다 관람에 불리하기도 하고 수용인원도 5만8천 정도라서, 헝다그룹은 2020년 4월부터 2년에 걸쳐 2조 800억 원을 들여 앞으로 구단의 홈구장이 될 세계 최대 규모의 축구전용구장을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디자인의 모티브는 연꽃이며, 수용인원은 무려 10만 명. 다만 촌스럽다는 반응으로 디자인이 수정되었다.
파일:광저우 구장 2.jpg
디자인 수정 후(모티브는 동일하게 연꽃)

그러나, 2021년 8월 26일 2021년 헝다그룹 파산 위기 헝다그룹은 위기를 맞이했고, 결국 건설중인 구장과 주변 아파트를 공기업 광저우도시건설그룹에 양도했다. 광저우 헝다의 파산위기로 인하여 신구장으로 이전은 불투명하게 되었고 2024 시즌부터 화두 경기장로 이전하였다.

2.7. 헝다그룹 파산으로 인한 몰락과 2차 암흑기 도래

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헝다그룹
, 2021년 헝다그룹 파산 위기
,
,
,
,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부동산 수요가 급감한 가운데, 시진핑 정부가 2021년 공동부유론를 내걸고 거대 부동산 기업의 대출을 규제하면서, 부동산으로 돈을 벌던 헝다그룹에 위기가 찾아왔다. # 이미 2021년 9월 신용등급이 두 단계나 하강되어 그룹 파산의 위험이 찾아왔다. 이에 따라 축구단에도 위기가 닥칠 것이라 예상했고, 이로 인해 고액 연봉자인 탈리스카 파울리뉴를 방출했다. 파비오 칸나바로 감독과도 결별했다.

공교롭게도 광저우의 양대 모기업(헝다(에버그란데)와 타오바오(알리바바))은 시진핑 정부가 공동부유론을 내걸고 집중 단속하고 있는 부동산 그룹과 IT그룹의 대표 그룹이며, 아마도 정치적 고려만 없다면 중국에서는 2020년 우승 후 해체 선언을 한 장쑤 쑤닝의 뒤를 이어 해체될 수도 있다는 설이 지속적으로 돌고 있다.

2021년 9월 15일에는 헝다그룹이 351조 원이나 되는 부채를 이기지 못하고 채무불이행을 선언할 가능성까지 떠올랐다. 블룸버그의 보도에 따르면 만기 이자 상환도 불가능한 상황이란다. 결국 광저우 FC의 앞날은 더욱 불확실해졌다. #

이런 가운데 9월 22일, 중국의 언론인 '축구보'는 "CFA(중국축구협회)와 리그 관계자들은 이미 헝다그룹의 파산에 대한 여파를 알고 있다"라면서 "12월 슈퍼리그가 재개해도 광저우가 뛰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어서 이 매체는 "그들은 CFA에 그간 낸 기여금을 돌려받기를 요청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

헝다그룹의 파산은 2021년 10월 이후 기정사실화되었다. 다만 헝다가 350조에 이르는 빚도 갚지 못한 채 한 번에 파산해버린다면 그 충격이 엄청날 것이기에 중국 정부는 헝다가 자산부터 순차적으로 매각하면서 갚을 수 있는 빚은 최대한 갚도록 한 후 최종 파산하도록 유도했다. 10월 이후 만기가 도래하는 빚을 그때그때 갚았고, 두달 여가 지난 12월 더 이상 빚을 갚을 여력이 없어 파산을 눈에 앞둔 상황이었다. 광저우 FC는 해당 시즌 내내 선수들에게 임금을 체불했고, 12월 아이커썬 등 귀화 외국인 선수들 여러명도 다 본국으로 귀향했다.

여담으로, 광저우 FC는 지금까지 8번 챔피언을 먹었는데, 같은 횟수의 우승을 차지한 다롄 스더가 팀을 해체한 적이 있다.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8은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다.

부도 위기로 인하여 해체설도 지속적으로 나돌기도 했으나, 자산을 매각중인 헝다그룹에서는 축구단도 매물로 내놓았다. 구단 지분은 알리바바 그룹이 40% 정도, 헝다그룹이 50%, 나머지를 소액주주들이 가지고 있는데, 알리바바는 나머지 지분의 인수와 축구단 운영을 거절했고, 유력한 인수 후보는 2006년 10월부터 2009년까지 광저우 헝다의 전신 광저우 바이윈산을 운영했다가 헝다그룹에게 매각했던 광저우 제약그룹이라고 전해졌다. 이로써 간신히 해체는 면했다.

결국 2022년 2월 16일, 아이커썬, 가오라터, 알랑 카르발류 등 핵심 자원이었던 귀화선수 5명을 방출했다. 이로써 2022 시즌은 귀화 선수를 포함한 외국인 선수가 단 한 명도 없게 되었다. 구단의 사정상 추가 영입 없이 오로지 자국인 선수들만으로 시즌을 진행할 가능성이 높았는데, 귀화 용병들이 핵심이었던 팀 특성상 말 그대로 차포를 떼고 장기를 두게 된 격이라 더는 예전만큼의 위상과 실력을 보여주기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막대한 자금력으로 두 차례나 아시아 챔피언에 올랐던 옛날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권불십년이 따로 없다. 그리고 2022년 2월 25일, 재정난이 심각해지면서 구단의 레전드 선수이자 총감독이었던 정즈와의 계약도 해지하였다.

이런 여파로 중국 슈퍼리그 2라운드에서 승격팀 우한 싼전에게 0-6으로 참패했다. 리그 2연패와 같이 강등 걱정이 나올 판국이었다.

시즌 1골이나 가능할지 모를 정도로 심하게 망했다. 하지만 리그 5라운드에서 허베이 FC를 1:0로 격파하며 5경기 만에 리그 첫승을 기록했다.

2022년 12월 22일 기준 15위 광저우 시티(17점/다득점우위) - 16위 광저우 FC(17점) - 17위 우한 창장(16점) 순으로 15위까지 살아남는 강등권 3파전이 벌어지고 있다. 각 팀은 남은 경기가 3경기씩이며, 1~14위 팀은 잔류를, 18위 팀인 허베이 FC는 강등을 확정지은 상황이다.

2022년 12월 23일 32라운드에서 베이징 궈안에게 1:3으로 패배하였다. 그와 동시에 허베이 FC를 4:1로 이긴 광저우 시티에 승점 3점 차이로 뒤지며 다음 33라운드에서 광저우 패배 or 광저우 시티 승리 or 광저우 무승부와 동시에 광저우 시티 무승부시 마지막 34라운드의 결과에 관계없이 강등이 확정되는 경우의 수에 직면하게 되었다.[9]

2022년 12월 27일 33라운드에서 창춘 야타이에게 1:4으로 패배하였다. 그와 동시에 선전 FC를 3:0으로 이긴 15위 광저우 시티와 승점 차이가 6점으로 벌어지면서 결국 강등이 확정되었다.

아시아를 두 번씩이나 제패했던 광저우 FC의 강등 확정 소식이 전해지자 축빠들의 분위기는 충격적었다. 물론 헝다그룹의 파산 위기와 자국 축구의 계속되는 추락으로 인해 돈줄도 다 말라버려서 핵심 자원이었던 귀화 선수들을 모두 방출했으니 이미 예견된 결과기는 했다만...

2023 시즌은 13년 만에 다시 갑급 리그에서 치르게 되었는데, 시작부터 영 출발이 나쁘다. 7경기를 치른 결과 2무 5패로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어느새 강등권까지 미끄러져 있다. 만약에 갑급 리그에서도 강등당하면 을급 리그로 추락하는데, 을급 리그는 3부 리그로, 중국 슈퍼 리그와 아챔을 석권한 챔피언 광저우 FC로써는 엄청난 치욕이라고 볼 수 있다. 프리미어 리그로 치면 포츠머스 FC인 셈. 그러다 드디어 9경기 째에서 첫 승을 거두었으나, 그래봤자 14위로 여전히 위치는 하위권. 최종적으로는 12위로 일단은 강등을 면했다.

다만 2024 시즌엔 29라운드 기준 승격권과 승점 2점차 3위를 마크하고 있어 잘만 하면 승격도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리그 최종전에서 난징 시티와 맞붙어서 이기고 2위인 다롄 잉보 상하이 자딩 후이룽한테 비기거나 패하면 슈퍼리그에 승격할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난징 시티를 상대로 선제골을 넣고도 역전패하면서 슈퍼리그 승격은 무산되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설혹 승리했더라도 어차피 다롄 잉보가 승리했기 때문에 승격 무산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 와중에 2024년 12월 17일, 구단이 또다시 해체 일보 직전이라는 보도가 올라왔다. 기사.

3. AFC 챔피언스 리그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광저우 FC/AFC 챔피언스 리그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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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선수

4.1. 명단

광저우 FC 2023 시즌 선수명단
<rowcolor=#000000> 등번호 국적 포지션 한글 성명 로마자 성명 간체자 성명 생년월일 신체조건 비고
1 파일:중국 국기.svg GK 류스보 Liu Shibo 刘世博 1997.05.20 190cm
3 파일:중국 국기.svg DF 메이팡 Mei Fang 梅方 1989.11.14 187cm
6 파일:중국 국기.svg DF 랴오리성 Liao Lisheng 廖力生 1993.04.29 180cm
12 파일:중국 국기.svg MF 쉬신 Xu Xin 徐新 1994.04.19 179cm
13 파일:중국 국기.svg GK 류웨이궈 Liu Weiguo 刘伟国 1992.05.03 195cm
14 파일:중국 국기.svg MF 탄카이위안 Tan Kaiyuan 谭凯元 2001.08.19 185cm
15 파일:중국 국기.svg MF 옌딩하오 Yan Dinghao 严鼎皓 1998.04.6 180cm
17 파일:중국 국기.svg FW 양리위 Yang Liyu 杨立瑜 1997.02.13 181cm
19 파일:중국 국기.svg FW 페르난지뉴[e] Fernandinho 费南多 1993.03.16 174cm 귀화
21 파일:중국 국기.svg DF 가오준이 / 고준익[f][3] Gao Zhunyi 高准翼 1995.08.21 186cm
22 파일:중국 국기.svg FW 파르만잔 쿰[g] Parmanjan Kyum 帕尔曼江 2001.02.01 172cm
24 파일:중국 국기.svg DF 왕스룽 Wang Shilong 王世龙 2001.03.07 177cm
25 파일:중국 국기.svg DF 덩한원 Deng Hanwen 邓涵文 1995.01.08 178cm
32 파일:중국 국기.svg GK 류뎬쭤 Liu Dianzuo 刘殿座 1990.06.26 190cm
33 파일:중국 국기.svg MF 중이하오 Zhong Yihao 钟义浩 1996.03.23 178cm
35 파일:중국 국기.svg DF 리쉐펑 Li Xuepeng 李学鹏 1988.09.18 185cm
36 파일:중국 국기.svg MF 허차오 He Chao 何超 1995.04.19 178cm
37 파일:중국 국기.svg FW 뤄궈푸[h] Luo Guofu 洛国富 1988.06.19 176cm 귀화
38 파일:중국 국기.svg DF 류이밍 Liu Yiming 刘奕鸣 1995.02.28 190cm
44 파일:중국 국기.svg GK 장젠즈 Zhang Jianzhi 张健智 2000.01.18 196cm
60 파일:중국 국기.svg FW 부그라한 스칸다르[i] Bughrahan Skandar 布格拉汗 2000.08.11 178cm
모기업: 헝다그룹(쉬자인)/ 알리바바 그룹( 마윈) / 감독: 살바도르 수에이 산체스 / 홈 구장: 톈허 스타디움 출처

[e] 원명 페르난두 엔리케(Fernando Henrique), 원 브라질 국적 [f] 조선족 [3] 고명익의 친형 [g] 위구르족 [h] 원명 알로이시오 도스 산토스(Aloísio dos Santos), 원 브라질 국적 [i] 위구르족

4.2. 유명 선수

5. 라이벌

6. 둘러보기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width=320><tablebordercolor=#28024F><tablebgcolor=#28024F> 파일:AFC 챔피언스 리그 엘리트 심볼.svg AFC 챔피언스 리그 엘리트
역대 우승 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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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우승 구단 최초 우승 최근 우승 우승 횟수
1 파일:하포엘 텔아비브 FC 로고.svg <colbgcolor=#28024F> 하포엘 텔아비브 FC 1967
1회
2 파일:마카비 텔아비브 FC 로고.svg 마카비 텔아비브 FC 1969 1971
2회
3 파일:에스테그랄 테헤란 FC 로고.svg 에스테그랄 테헤란 FC 1970 1990-91
2회
4 파일:부산 아이파크 로고.svg 부산 아이파크 1985-86
1회
5 파일: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지바 로고.svg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지바 1986
1회
6 파일:도쿄 베르디 로고.svg 도쿄 베르디 1987
1회
7 파일:알 사드 SC 로고.svg 알 사드 SC 1988-89 2011
2회
8 파일:랴오닝 훙윈 로고.svg 랴오닝 훙윈 1989-90
1회
9 파일:알 힐랄 SFC 엠블럼.svg 알 힐랄 SFC 1991 2021
4회
10 파일:PAS Tehran FC Emblem.png 파스 테헤란 FC 1992-93
1회
11 파일:태국 농민은행FC.png 태국 농민은행 FC 1993-94 1994-95
2회
12 파일:성남 FC 엠블럼.svg 성남 FC 1995 2011
2회
13 파일:포항 스틸러스 로고.svg 포항 스틸러스 1996-97 2009
3회
14 파일:주빌로 이와타 로고.svg 주빌로 이와타 1998-99
1회
15 파일:수원 삼성 블루윙즈 로고.svg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0-01 2001-02
2회
16 파일:알 아인 로고.svg 알 아인 FC 2002-03 2023-24
2회
17 파일:알 이티하드 FC 엠블럼.svg 알 이티하드 FC 2004 2005
2회
18 파일:전북 현대 모터스 엠블럼.svg 전북 현대 모터스 2006 2016
2회
19 파일: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로고.svg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2007 2022
3회
20 파일:감바 오사카 로고.svg 감바 오사카 2008
1회
21 파일:울산 HD FC 엠블럼.svg 울산 HD FC 2012 2020
2회
22 파일:광저우 FC 엠블럼.svg 광저우 FC 2013 2015
2회
23 파일: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 엠블럼.svg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 FC 2014
1회
24 파일:가시마 앤틀러스 로고.svg 가시마 앤틀러스 2018
1회
← 아시안 컵위너스컵 우승 구단
아시안 슈퍼컵 우승 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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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헝다그룹 회장. [2] 다롄 스더와 슈퍼리그 역대 우승 횟수 공동 1위 [3] 28번 선수는 당시 광저우에서 뛰었던 김영권. [4] 사실 유럽의 특급 선수들을 데려오기 시작한 중국 1호 구단은 광저우가 아니라 상하이 선화이다. 2012년 첼시 FC에서 아넬카 드록바를 데려오면서 시전. 하지만 이 둘은 그다지 슈퍼 리그에 족적을 남기지 못했고, 상하이 선화도 성적이 그닥이었다. 하지만 광저우 헝다는 먼저 내국인 선수들부터 국대급으로 꾸린 다음 유럽으로 갈 만한 그릇이 되는 특급 남미 선수들(무리키, 다리오 콘카, 굴라트, 알란 카르발류 등)을 하이재킹하는 방법으로 가성비의 진용을 꾸려 강팀을 만들었다. 이에 반해 상하이 선화는 아무런 검증도 하나 없이 그저 유럽에서 직접 덜컥 데려오는 전략이나 쓰다가 테베스 같은 희대의 먹튀 선수를 낳기도 했다. 물론 광저우도 유럽파인 호비뉴 잭슨 마르티네스와 같은 먹튀를 당하기는 한 것은 도찐개찐이지만, 성적을 보면 상하이 선화보다는 훨씬 돈을 효율적으로 썼다. 하지만 중국에서도 돈지랄한다는 비판이 일자 2016년 이후부터는 "순수 국내파 선수만으로 꾸리겠다"는 언플을 하면서 지갑을 닫으며 황사 머니 구단 이미지를 벗어나려고 했다. 이렇게 하다가 2018년 하반기, 성적이 5위까지 급락하자 결국 방침을 바꿔 파울리뉴 탈리스카를 데려오면서 다시 돈을 있는대로 팡팡 써대기 시작했다. [5] K리그의 명문 클럽들이나 알 이티하드에 이은 아사아의 신흥 강호로 떠올랐다. [6] 수뇌부가 불화를 일으켰다. [7] 심지어는 레알 마드리드 가레스 베일 카림 벤제마까지 영입대상에 올랐다. [8] 다만 경기에 한번도 나오지 않았기에 중국 국대로 귀화해 나올 수 있었다. 사실 꼭 A매치 경력이 없어야 가능한 건 아니다. 로만 노이슈데터의 경우 독일국적으로 A매치를 뛰고, 러시아로 귀화한 적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들이 중국 국대로 나온다면 전력이 향상될 수밖에 없다. [9] 중국 슈퍼 리그는 마지막 라운드가 끝난 후 승점 동률인 팀들끼리는 상대전적 순으로 순위를 다시 결정하여 그 결과대로 최종 순위를 확정하게 된다. 따라서 광저우 FC는 광저우 시티에 상대전적에서 1무 1패로 뒤지므로 승점 동률 시 무조건 광저우 FC가 순위가 밀려서 꼼짝없이 강등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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