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이 문서는 '곽후' 라는 인명, 직명에 대한 설명을 하는 문서.2. 한국의 인물 곽후
한국인 가운데 '곽후'라는 이름 또는 호칭이 있는 역사적 인물.- 조선시대 인물
인물 | 신원 | 생애 |
곽후(郭侯, 안의현감 곽준) [1] |
본명:
곽준(郭遵). 생몰: 1551~1597년. 호는 존재(存齋). 자는 양정(養靜). 현풍(玄風) 곽씨. 조선시대 의병장, 안음현감(安陰縣監). |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싸운 인물.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장 김면(金沔)의 휘하에 들어갔으며, 영남과 호남 일대의 일본군을 상대로 큰 승리를 거뒀다. 1594년에 안음현(안의현)의 현감으로 임관하여 지역 방어와 주민 구제에 힘을 쏟았다. 1597년,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황석산성 전투에 참전.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아들 곽이상(郭履常), 곽이후(郭履厚), 함양군수 조종도(趙宗道)와 남아서 끝까지 싸우다가 함께 전사하였다. 곽준의 공로가 인정되어 병조참의에 추증되었으며,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많은 주민들이 해마다 황암사, 예원서원, 안의현 등에서 제사를 지냈다. 이 제사는 수백년간 계속 이어졌으며, 사료에는 곽준을 '곽후' 라고 적고 존경을 표시했다. [1] 시호는 충렬(忠烈). |
곽후(郭垕) |
생몰 미상. 경상도 유학(幼學). [3] |
신임사화에 연루된
소론세력을 처벌하도록 상소를 올린 인물. 1725년 유학 이도장(李道章), 1726년 유학 이수(李洙)가 주도하여 대궐 앞에서 장기간 상소할 때 계속 동참했다. [4] 이어서 송시열(宋時烈)과 송준길(宋浚吉)의 문묘 배향을 요구하는 상소에도 동참했고, 10년 뒤 다시 이 문제로 상소를 올릴 때도 명단에 포함돼있다. 다른 직함 없이 '유학'으로 표시된 걸로 미루어 관직에 오르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
3. 곽후(霍侯) : 고대 중국에 있었던 직책
중국 서주(西周)시대의 제후국 이었던 곽(霍)의 통치자를 뜻하는 말. 즉 '곽후'는 곽 나라의 제후를 뜻하는 말이다.BC 1046년, '곽숙 처(霍叔 處)'를 시작으로 그 후손들이 '곽후'를 위임했으며, BC 661년 진(晉)나라에 의하여 멸망하면서 끝을 맺었다.
- 역대 곽후(霍侯)
인물 | 신원 | 생애 |
곽숙(霍叔) |
중국
주(周)나라 초기의 인물. 본명은 처(處). 생몰년 미상. 주 나라(서주)를 세운 문왕(文王)의 여덟 째 아들로써, 왕족의 성씨를 따서 '희처(姬處)' 라고도 부른다. |
BC 1046년,
상(商)나라와의 전쟁에서 주 나라가 승리하자, 둘째 형
무왕(武王)에 의해 귀속 지역을 감시[5]하는 역할로써,
은허(殷墟)의 북쪽
곽(霍)을 통치하는 제후에 봉해졌다. BC 1043년, '무왕'이 사망하자, 삼감(三監)의 난이 발생. 반란은 3년 만에 진압 되었으나[6], 곽숙 역시 삼감의 한 사람으로써 반란에 공모한 죄로 관직에서 파면되고 서인(평민)으로 강등되었다. 3년뒤 다시 복권되어 '곽후'로 봉해졌다. |
4. 곽후 : 곽씨 성을 가진 중국의 황후
역대 중국 왕조에서 곽씨 성을 가진 황후 및 비(妃)는 매우 많으나, 이들 중 사료에 '곽후' 라고 명시된 적이 있는 인물.- 황후 곽씨 일람
인물 | 신원 | 생애 |
곽후(霍后, 전한) |
이름:
곽 성군(霍 成君)[7] 생몰: ?~BC 54년. 중국 한(漢)나라 선제 유순의 폐후. |
전한시대 최고 권력가였던 대장군
곽광의 막내 딸이다. BC 71년, '선제'의 조강지처 황후 허평군이 죽은 뒤 황후에 올랐다. 그러나 '허황후'가 곽광의 일족에 의해 독살된 사실이 밝혀지고, 태자였던 원제의 독살 미수 사건까지 발생하자, BC 66년 마침내 곽후는 폐위되었으며 그 집안도 멸족된다. |
곽후(郭后, 후한) |
패태후(沛太后).[8] 본명: 성통(聖通) 생몰: 6~52년. 중국 후한(後漢) 광무제의 황후. |
후한시대 막강한 부를 지닌 명문가에서 태어나, 26년 광무제의 황후가 되었다. 그러나 광무제가 자신보다 본처 음려화를 더 총애하는 것을 질투하다가, 서기 41년 폐위되었다. 자식으로는 동해왕 유강, 패왕 유보, 제남왕 유강, 부릉왕 유연, 중산왕 유언이 있다. 큰 아들 '유강'은 태자 지위를 포기하고 '동해'의 왕이 되었으며, 그녀는 둘째 아들 '유보'를 따라 '패'의 태후가 되었다. |
곽후(郭后, 위나라) |
곽 여왕(郭 女王) [9] 생몰: 184~235년. 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황후. |
남군 태수
곽영(郭永)의 둘째 딸이며, 위나라(조위) 황제
조비의 둘째 부인. 조조의 며느리며, 조예의 계모다.[10] 222년 황후에 책봉되었으며, 226년 황태후가 되었다. 235년 죽었는데, 사서에 따라 급사했다는 내용과 조예에게 죽임 당했다는 내용으로 나뉜다. 다만 조예의 친모 '황후 견씨'의 죽음에 곽태후가 개입된 것을 조예가 알고 실의에 빠졌으며, 죽은 곽태후의 시신과 장례식에 똑같이 복수를 해줬다는 기록은 일치한다. |
곽후(郭后, 송나라) |
곽 황후(郭 皇后) [11] 생몰: 1012~1035년. 중국 송(宋)나라 인종의 폐후. |
1024년,
유 태후(劉 太后)의 총애를 받아
'인종'의 황후가 되었다. 그러나 인종은 후궁들을 더 총애하며 황후에게 소흘했고, 이로 인해서 곽 황후와 후궁들의 다툼과 견제가 심했다.[12] 1033년, 유태후가 사망하자 '곽황후'는 지지기반을 잃고 무시 당하게 됐으며, 후궁 상(尙)미인과 다투던 중 인종을 때리는 큰 실수를 범한다. [13] 결국 1034년 곽황후가 폐위 되고, '정비(淨妃)'로 격하, '청오(淸悟)'라는 이름을 받은 채 유폐된다. 얼마 뒤 그녀는 병을 앓다가 요절했는데, 뒤늦게 인종이 후회하며 황후로 추봉했다. |
5. 곽후(郭詡) : 명나라 시대의 화가
곽후(1456-1532년). 자는 인홍(仁弘). 호는 청광도인(清狂道人). 중국 명(明)나라의 화가.중국 강서성 출신으로, 주로 산수화와 인물화를 그린 화가다.
양명학을 창시한 왕수인과도 절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6. 가상 인물 곽후
온라인 게임 천하제일상 거상에 등장하는 중국의 장수.
[1]
'곽후'는 곽준을 전관으로써 높여 부른 별칭이다.
고려시대 '봉작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1]
[3]
'유학' 신분인 것과 경상도에서 왔고, 여러 번 상소자 명단에 들어간 게 확인된 전부.
[4]
상소의 내용은 '신임사화의 주모자는 영의정
조태구(趙泰耉)와 우의정
유봉휘(柳鳳輝)이며, 앞서 처형된
김일경(金一鏡)은 측근에 불과하니, 모두 처벌해 달라'는 것. 이외에도 전국적으로
노론의 상소가 이어졌고, 결국 신임사화에 연루된 대다수가 처벌되었다. 여기서 '곽후'라는 인물이 이 상소에 동참했던 수많은 사람 중에 한 명임을 알 수 있지만 구체적인 활동이 더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5]
3형제를 감시관으로 임명했다고 해서 '삼감(三監)'으로 불린다. 관숙(管叔), 채숙(蔡叔), 그리고 곽숙이다.
[6]
주모자들을 잡아서 처형하기 까지의 기간이 3년이고, 완전히 난을 평정한것은 BC 1038년의 일이다.
[7]
사료에는 주로 '곽황후', '성군', '곽광의 딸' 정도로 표기되며, '곽후'로 표기된 경우도 있다.
[8]
'패태후'가 많이 쓰인다. 사료에는 주로 머물렀던 봉국의 지명을 따서 '중산태후', '패태후'로 되어 있지만, 종종 그녀의 성을 따서 '곽후'로 쓰인 경우도 있다.
[9]
사료에는 '귀빈'또는 '곽후', '곽태후' 등으로 쓰인 경우가 많으나, 그녀의 며느리인
명원황후(明元皇后)와 구분하여 '곽여왕'으로 칭하는 경우도 많다. 여왕은 직책이 아닌 곽후의 자(字).
[10]
생전에 곽태후와 조예의 사이는 비교적 원만했으나, 말년에 조예의 친모가 죽게 된 원흉이 곽태후였음이 밝혀졌다. 이후 곽태후의 죽음에 관한 내용은 사료마다 다르지만 조예와의 관계가 급격히 나빠진 것은 분명하다.
[11]
사료에는 주로 '곽황후'로 표기됐으나 간혹 '곽후'로 쓰인 경우도 있다.
[12]
애초에 인종은 곽황후가 아닌, 외모가 출중한 장(張)미인을 총애했으나, '유태후'가 반강제로 황후를 정해서 곽황후를 맞이한 것이었다. 하지만 인종은 여전히 장씨를 총애했고, 장씨가 죽은 이후로도 곽황후에게는 애정을 주지 않았다.
[13]
이 사건은 곽황후 폐위에 결정적인 방아쇠가 됐다. 곽황후를 옹호하는 세력의 만류에도 인종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으며, 아울러 곽황후를 반대하던 세력은 황후가 후사를 낳지 못함을 약점으로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