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오훙보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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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축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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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가오훙보 高洪波 | Gāo Hóngb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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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6년 1월 25일 ([age(1966-01-25)]세) | |
베이징시 | ||
국적 |
[[중국|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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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 후이족 | |
직업 |
축구 선수 (
공격수 / 은퇴) 축구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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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175cm | |
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
베이징 궈안 (1985~1993) 티옹 바후루 CSC (1994) 베이징 궈안 (1995~1996) 광저우 마쓰니치 (1997~1998) |
코치 |
광저우 마쓰니치 (1997~1999) 상하이 중위안 (2001) 중국 대표팀 (2002~2004) ADO 덴하흐 (2015~2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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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광저우 마쓰니치 (1999) 중국 U-17 대표팀 (2000) 샤먼 훙스 (2004~2006) 창춘 야타이 (2007~2008) 중국 대표팀 (2009~2011) 구이저우 런허 (2011~2012) 상하이 상강 (2013) 장쑤 쑤닝 (2013~2015) 중국 대표팀 (2016) 베이징 베이쿵 (2017~2019) 중국 대표팀 (2024~ / 테크니컬 디렉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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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 19경기 7골 ( 중국 / 1992~19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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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의 축구 선수 출신 감독.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두 차례 맡은 적이 있다. 국내에는 당시 공한증을 딛고 대한민국 대표팀에 치욕을 안긴 걸로 잘 알려져 있다.
2. 축구인 경력
베이징 출신의 후이족이다. 어릴 때부터 축구선수로 두각을 나타냈고, 1985에는 AFC U-19대회에서 최우수선수상을 받기도 했다. 베이징 궈안의 전신이 되는 팀에서 1985년부터 1993년까지 선수생활을 했으며, 싱가포르에서 잠시 활약하다가 다시 중국의 친정팀에 돌아와 뛰다가 1998년 선수에서는 은퇴했다. 이 기간 동안 중국 국대로도 활약했다.1997년부터 선수 겸 감독으로 현재는 없어진 광저우 마쓰니치(广州松日, 또는 광저우 쑹르) 팀에서 활약했다. 이후 중국 U-17팀 감독을 맡다가 2002-2004년에는 중국 성인팀 코치를 맡았다. 이후에도 여러 중국 슈퍼 리그 팀을 맡았는데,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2009-2011년 중국 국대를 맡아서 허정무호에 3:0으로 이겼다. 그 유명한 2010년 중국 쇼크.
이어 구이저우 런허(현재 베이징 런허)와 상하이 상강 (2013), 장쑤 쑤닝 (2013-15)를 맡았다. 이어 네덜란드 2부리그인 ADO 덴하흐 코치를 2년간 맡기도 했다.
공한증을 깨트린 감독으로 지목되어 2016년초 다시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으나 같은 해 가을 성적 부진(2무 3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공교롭게도 이후 부임한 마르첼로 리피 감독은 3승 1무 1패를 기록하여 월드클래스 감독과 중국 국내 감독의 수준차이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여타 중국 축구팬들과는 달리 매우 겸손하고 현실을 냉철하게 판단하기로 유명하며 그에 걸맞게 과거 대표팀 1기 시절의 성적도 꽤 괜찮은 편이라고 하지만, 사실 한국을 이겨 공한증을 떨쳤다는 거 빼곤 그가 이끌던 2009~2011년 중국 국대팀 실력은 아주 잘했다고 보기 어렵다. 중국 쇼크 때문에 한국에서는 충격을 줬던 감독으로 자주 언급하지만 다른 경기들은 그다지 잘하지 못했다. 또한 비록 2010 남아공 월드컵 예선에서 탈락했어도 프랑스를 1:0으로 이긴 적이 있었다.[1] 특히 2011 아시안컵에서 카타르에게 0-2로 패하며 조별리그에서 탈락할 당시 중국 여론에게 비난을 받고 감독에서 경질 되었을 정도다. 이후 창춘 야타이를 비롯한 중국 리그 팀 감독을 역임했지만 그 어떤 우승컵도 거두지 못하고 1~2시즌만에 저니맨처럼 돌아다니던 신세였다. 무엇보다 가오훙보도 국대팀 감독 시절 중동 원정은 이겨본 적이 없었다. 그나마 이란 원정 친선경기에서 0-1로 졌다고 선전했다는 게 호평이었다.
공한증을 떨쳤다고 하여 5년만에 다시 중국 국대팀 감독이 되었다. 일단 5년전 아시안컵에서 패배를 안겨준 카타르를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에서 이겨 아슬아슬하게 최종예선에 진출은 했지만 이건 홈경기 승리였고, 이마저도 필리핀이 북한을 3-2로 이겨준 덕분이었다. 결국 가오훙보에게 있어서는 이번 최종예선이 차후 그의 축구 인생을 결정할 고비가 될 듯 하다.
결국 1차전에서 한국에 2-3으로 깨지며 어려운 출발을 했다. 그나마도 0-3으로 터지고 있다가 한국이 실수하는 틈을 타 2골 넣어 따라잡으려다 진 것이다. 전체적인 경기 내용은 별로였다. 한국은 겨우 3일 동안 손발을 맞춘 반면 중국은 24일이나 합숙하며 조직력을 다졌기 때문에 중국이 더 투자를 많이 했는데도 결국 졌다. 하지만 불과 얼마 지나지 않은 동아시안컵에서 중국 최정예가 K리거 신예들 위주로 나온 대한민국에게 0-2 스코어상 완패 내용상으로도 패배를 당한 것치고는 이번엔 그보다는 나아졌다는 평가는 듣고 있다. 더군다나 한국 원정을 와서 패배 한 점차 패배니까.
가오훙보 본인과 중국 선수들은 0-3에서 2-3이라 나쁘지 않은 패배였다며 위안삼고 있다. 여기에 중국의 언론들도 원정이고 예전 쪽도 못쓰고 완패한 것에 비해선 그럭저럭 선전했다는 평가를 했다. 그러나 2차전 이란 홈경기는 무재배로 비겼다. 그래도 이란도 만만치 않다고 했지만 결국 3차전 시리아에게 홈경기는 0-1로 패배하여 초반부터 무승 속에 하위권으로 처지며 비난받고 있다. 결국 4차전 우즈벡 원정도 패하며 중국의 월드컵 진출은 어려워진 상황이다. 결국 기자회견을 통해 사임을 발표했다. 이 후 가오훙보의 후임으로 마르첼로 리피가 선임되었다.
현재는 중국 갑급 리그의 팀 중 하나인 베이징 쿵구 감독을 맡고 있는 중. 아마도 감독으로 보여준 업적이 그다지 탁월하지 않아서, 돈지랄로 유럽- 남미의 명장을 긁어모으고 있는 중국 슈퍼 리그 감독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평이 많다.
2018년 거스 히딩크가 중국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중국축구협회 부회장으로 부임, U-22 팀의 혁신을 주도하면서 히딩크 감독과 함께 선수 선발 과정 등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히딩크가 경질된 이후에는 중국축구협회 부회장도 겸함과 동시에 사실상 감독 역할도 수행했다. 그러나 중국이 결국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하며 일선에서 물러났다.
2024년부터 선임된 브란코 이반코비치 중국 대표팀 감독을 보좌하는 테크니컬 디렉터 역할을 맡고 있다.
3. 둘러보기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 참가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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