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서가 있는 경우만 기재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의 상급대장, 대장, 중장, 소장은 각각 미군의 대장, 중장, 소장, 준장에 상응. ※ 윗 첨자 † : 전사 ※ 윗 첨자 ok : 총사령관(Oberkommandierender) ※ 윗 첨자 s : 총사령관 대리(Stellvertreter) ※ 윗 첨자 c : 참모총장(Chef des Generalstabes) ※ 윗 첨자 m : 전쟁성 장관(Kriegsminister)
오스트리아 제국군
중장 프란츠 안톤 마렌치(Franz Anton Marenzi)의 넷째 아들로
라이바흐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15세기부터
밀라노 공국에서 백작 작위를 가진 이탈리아계 귀족 출신이었다.
비너노이슈타트의
테레지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1879년 제15후사르연대
소위로 임관했다. 1886년 제2후사르연대로 전속되었고, 1890년 빌헬름 라이너(Wilhelm Rainer) 대위와
크론슈타트에서 권총 결투를 벌여 부상을 입어 잠시 군을 떠났다가 1891년 기병대위로 복귀하여 황제향위군 제5울란연대 슈토커라우(Stockerau) 연대로 전속되었다. 1898년 기념메달을 수여받았다.
1900년대 초반 제1향위군 울란연대에서
소령으로 복무했으며, 1908년에는 군사기념십자장을 받았다. 1893년 프루크(Prugg) 성에서 하라흐가 백작 얀 네포무크 하라흐(Johann Nepomuk Franz von Harrach)와 마리아 마르케타 폰 로브코비츠(Maria Markéta von Lobkowitz) 사이의 딸 가브리엘라 테레지아(Gabriele Theresia Caroline Maria Evarista, 1859-1942)와 결혼했으나 자녀는 없었다.
마렌치는 전쟁 발발 시
소령으로 벨스(Wels)의 향위군 기병여단장이었다. 1914년 9월 3일
소장으로 진급하여 제21기병여단을 지휘해 홈(Chełm)과
렘베르크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워 레오폴트 훈장 기사십자와 철관 훈장 3등급을 받았다. 1915년에는
부다페스트 군관구사령관직에 1년 동안 역임하였다. 1916년에는
아우구스트 폰 마켄젠 휘하에서 제21기병사단장으로
부쿠레슈티 입성에 참여해 군공로십자장 2등급과 독일의 철십자 2등급을 수여받았고, 곧바로 제7기병사단장으로 임명되었다. 1917년 8월 28일
중장으로 진급했으며 군공로메달 동장을 받았다. 전쟁 말기까지 루마니아 전선에서 활약했다. 1919년 1월 1일부로 예편한 뒤 벨스에서 은거 생활을 했다. 1934년 11월 28일 벨스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