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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G 랜더스 역대 시즌 (SK 와이번스 시절 포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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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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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2000 시즌 시즌별 경기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10월 |
2000년도 SK 와이번스 홈경기 누적 관중 수 (최종)[A] | ||||
구장 | 경기 수 | 전체 관중 수 | 평균 관중 수 | 총 관중 순위 |
숭의야구장 / 2000년 | 66 | 84,563 | 1,281 | 7위 |
SK 와이번스 2000 시즌 | ||||
최종 순위 (2000년 10월 13일 확정) | ||||
4위[3] | ||||
승 | 무 | 패 | 승차 | 승률 |
44 | 3 | 86 | 23.0 | 0.338 |
[clearfix]
1. 개요
SK 와이번스의 2000 시즌을 정리한 문서.2. 4월
자세한 내용은 SK 와이번스/2000년/4월 문서 참고하십시오.3. 5월
자세한 내용은 SK 와이번스/2000년/5월 문서 참고하십시오.4. 6월
자세한 내용은 SK 와이번스/2000년/6월 문서 참고하십시오.5. 7월
자세한 내용은 SK 와이번스/2000년/7월 문서 참고하십시오.6. 8월
자세한 내용은 SK 와이번스/2000년/8월 문서 참고하십시오.7. 9~10월
자세한 내용은 SK 와이번스/2000년/9~10월 문서 참고하십시오.8. 총평
그야말로 혹독한 창단 원년 시즌을 보냈다.롯데 자이언츠에서 두 차례 우승을 맛봤던 베테랑 지도자 강병철 감독의 지도 아래 새롭게 창단된 팀이었지만 창단 첫 해 SK에 대한 전망은 매우 비관적이었다. 개별 계약 과정으로 선수단을 재편했지만 누더기처럼 헐거워진[4] 옛 쌍방울 선수단 대부분을 그대로 흡수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1년 전 시즌 97패를 찍었던 옛 쌍방울의 전력과 큰 차이가 없었다. 더구나 신생팀 전력 지원의 일환으로 각 구단이 보낸 선수들도 전력 증강에는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창단 후 첫 경기인 2000년 4월 5일 대구 삼성전에서는 예상과 다르게 삼성을 3:2로 꺾고 창단 첫 승을 거뒀지만, 결국 시즌 초반부터 연패를 거듭하면서 독보적이고 압도적인 꼴찌를 달려야 했다. 쌍방울과 계약했던 외국인 선수들도[5] 기량을 보고 영입했다기 보다는 그저 싼 값에 데려온 선수의 경향이 강했던 만큼 전반기 도중 외국인 선수 전원을 교체했고[6] 인천 연고팀으로서의 이미지 정착을 위해 자타공인 인천야구의 슈퍼스타로 불리던 김경기를 현대 유니콘스에서 트레이드로 데려오고 미완의 대기였던 이호준을 해태 타이거즈에서 트레이드로 영입해 타선 보강을 시도하는 등 각고의 노력도 했다. 그래도 창단 첫 해 꼴찌의 수모는 벗어나지 못했다. 2000년에 세운 시즌 44승과 0.338의 시즌 승률은 2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는 최악의 시즌 기록이다.[7]
처참했던 팀 성적만큼이나 고역스러웠던 것은 지역민들의 철저한 무관심과 냉대였다. 프로 원년인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 시절부터 인천 연고팀으로서 자리를 굳건히 했던 현대 유니콘스의 연고지 이전은 인천지역 야구팬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1군 엔트리는 물론 코칭스태프까지 인천고, 동산고, 제물포고 등 인천지역 학교 출신 인사가 즐비했던 팀은 한순간에 사라져버리고 직전 해까지 회색 유니폼을 입고 인천에 원정을 왔던 전북 출신의 옛 쌍방울 선수들을 홈팀으로 맞이하자니 팬들 입장에서는 멘탈 붕괴가 아닐 수 없었다. 결국 이 당시 인천의 야구팬들은 낯익은 선수단을 따라 현대를 응원하는 팬, 낯설지만 그래도 인천의 새 식구가 된 SK를 응원하는 팬, 그리고 아예 야구에 대한 관심을 끊어버린 팬으로 나뉘었다. 그 결과 창단 첫 해였던 2000년 한 해 동안 숭의야구장을 찾은 총 관중 수는 고작 8만4563명에 불과했다. 이는 경기당 평균 1281명으로 숭의야구장 좌석 점유율이 10% 남짓에 불과한 것이었다. 괜히 인천 팬들이 현대에서 잉여자원으로 전락한 왕년의 4번 타자 김경기라도 받아오라고 구단에게 요구한 것이 아니다. 시즌 종료 후 쌍방울 흔적 지우기의 일환으로 쌍방울의 마지막 감독이던 김준환 수석코치를 비롯해 이건열, 박철우, 함학수 등 쌍방울 출신 코칭스태프 대다수를 정리했고, 선수단 역시 쌍방울에서 넘어온 기량미달 선수들을 대부분 방출해버리는 등 대대적인 팀 개편이 있었다.
9. 둘러보기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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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로야구 구단별 2000 시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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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전 선수단의 역사는
쌍방울 레이더스/1999년 문서를 참고.
[A]
관중수 확인하는 곳:
https://www.koreabaseball.com/History/Crowd/GraphTeam.aspx
[3]
매직리그는 4위 전체로 따지면 최종 순위는 8위.
[4]
해체 당시 쌍방울 선수단은 정상적인 1군 선수단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처참했다. 구단 운영난의 여파로
김기태,
조규제,
박경완,
김현욱 등 주축 선수들이 거액의 현금을 받는 조건으로 부자 구단에 팔려나갔고 주전 선수들의 잇단 이탈에 기존 선수들도 크게 동요했다. 여기에 팀의 젊은 주포였던
심성보는 이 무렵부터 지병인
당뇨병의 여파로 기량 쇠퇴의 비운을 맞게 된다.
[5]
SK 최초의 외국인 선수 중 한 명이 훗날
네덜란드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되는
헨슬리 뮬렌이다.
[6]
이 당시 데려온 선수 중 한 명이 삼성의
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 주역 중 한 명인
틸슨 브리또였다.
[7]
창단 이후 최악의 시즌으로 전락한 2020년에 하마터면 이 기록을 깰 뻔했다. 시즌 최소승 기록과 최저승률 기록은 남아 있지만 최다패 기록(86패→92패)은 2020년에 경신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