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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1 05:52:08

GIGN

<colcolor=#fff><colbgcolor=#000> 국가헌병대개입단
Groupe d'Intervention de la Gendarmerie Nationale
National Gendarmerie Intervention Group
파일:GIGN 엠블럼.svg
창설일 1974년 3월 1일
소속 프랑스 헌병대
규모 1천명(중앙 GIGN 400명, AGIGN 600명)
모토 S'engager Pour La Vie
생명을 위한 헌신
위치 프랑스 베르사유 사토리
링크 파일:GIGN 엠블럼.svg

1. 개요2. 역사3. 임무 및 특징
3.1. 주요임무
4. 편제
4.1. 개입부대(FI)4.2. 수색관측부대(FOR)4.3. 경호보안부대(FSP)4.4. 안테나부대(Force Antennes)4.5. GSPR 헌병파견대(le détachement GSPR)4.6. 작전지원부대(FAO)4.7. 훈련부대(FF)
5. 장비
5.1. 방탄 방어구5.2. 화기
5.2.1. 권총5.2.2. 자동소총
5.3. 작전차량
5.3.1. SWATEC차량5.3.2. Sherpa차량5.3.3. 방탄개입차량
6. 선발 및 훈련7. 주요 작전
7.1. 로야다 인질사태(1976)7.2. 우베아 동굴 인질사태(1988, 빅토르 작전)7.3. 에어 프랑스 8969편 납치 사건(1994)7.4. 진달래 작전(1995)7.5. 쿠아치 형제 사살(2015)
8. 기타9. 대중매체
9.1. 게임9.2. 영화
10.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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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GIGN 인터뷰 영상
프랑스 헌병대 소속 대테러부대이다. GIGN은 헌병 산하 특수부대로서 테러, 인질극, 요인경호 등 주요 임무에 개입하며, 국내 작전뿐만 아니라 해외 아프리카 식민지에서의 작전도 수행한다. 같은 헌병대 소속 자매 부대로 AGIGN이 있었다가 2021년에 통합되었다.

직역하면 '국가 헌병대 개입단'이다. 프랑스어로는 줴이줴엔, 영어로는 그냥 써있는대로 지아이지엔이라고 부른다.[1]

헌병대의 GIGN에 대응되는 기관은 프랑스 경찰 RAID, GIPN[2], BRI이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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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3월 1일, 최초 창설 당시의 GIGN1 대원들의 모습 2018년 3월 1일, 창설 44주년을 기념해 에어 프랑스 A380 여객기를 배경으로 촬영된 현대의 GIGN대원들의 모습
1972년 서독에서 발생한 뮌헨 올림픽 참사 팔레스타인 테러조직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단을 납치, 살해한 사건으로 프랑스에게도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이 사건에 앞서 프랑스에서도 2건의 인질사태가 발생했다. 1969년에 발생한 세스타 인질극에서는 정신착란증세를 보인 아버지가 헌병들이 집안으로 진입하는 순간에 자신의 2명의 아이를 살해하고 본인도 자살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1971년에 발생한 뷔페 본탄 사건에서도 헌병대는 국립경찰소속의 기동대 CRS와 공동으로 인질구출작전을 벌였지만 역시 인질살해를 막지는 못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의 교훈을 바탕으로 1971년 무렵부터 헌병대은 대테러작전 및 인질구출작전을 전문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부대의 편성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1973년 11월 3일 메종 알 포르에서 지역권특수개입팀(ECRI, Équipe Commando Régionale d'Intervention)이 창설되어서 실험적인 운용에 들어갔다. 그리고 다음해인 1974년 3월 1일 ECRI를 강화개편하여 부대명이 GIGN1이 되었으며, 같은 해 프랑스 남부 몽드마르상에서 헌병기동대 공수중대를 기반으로 GIGN4가 창설되었다. 1976년에는 비용과 효율성을 위해 2개의 GIGN팀이 통합되었으며 1982년에는 현 주둔지인 베르사유 사토리에 주둔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1980년대에는 헌병대 내에서 GIGN를 모델로 하는 여러 부대가 창설되었는데 1982년에는 대통령을 경호하기 위한 GSPR파견대(le détachement GSPR)가 창설되었고, 1984년에는 GIGN의 작전을 지원하는 임무와 장거리 정찰 및 요인경호작전을 위한 부대인 EPIGN(Escadron Parachutiste d'Intervention de la Gendarmerie Nationale, 헌병대 공수개입중대)이 사토리에서 창설되었으며 1986년에는 GIGN과 EPIGN을 통합지휘하는 헌병대 개입보안단(GSIGN, Groupement de sécurité et d'intervention de la Gendarmerie nationale)이 창설되었다. 이후 2007년 GSPR과 EPIGN이 GIGN산하로 통합되면서 부대규모가 2배 가까이 커져 400명의 인원을 보유하게 되었으며 GSIGN는 해체되어 GIGN은 헌병총국의 직접 지휘 아래 활동하게 되었다.

2021년에 AGIGN과의 통합을 거치게 되어 인원이 대폭 증강되었으며, 현재는 1천명의 GIGN 대원들이 작전 중이다. 물론 중앙 GIGN의 인원은 400명 가량.

3. 임무 및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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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파리법원에서 호송임무를 수행중인 GIGN 대원들의 모습 정찰훈련을 수행중인 GIGN소속 수색관측부대(FOR)대원들의 모습

헌병에 소속된 GIGN은 민간의 무장강도나 인질극이 벌어졌을 때도 개입한다. 물론 프랑스 경찰도 미국의 SWAT에 해당하는 팀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RAID, GIPN, BRI이라고 한다.

참고로 프랑스군 특수작전사령부 소속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SWAT에 더 가까운 부대이나, 군 헌병대 소속이고, 아프리카의 프랑스 식민지에서 작전을 한다는 특이점이 있다. 군 특수부대와 경찰 특수부대의 중간에 있는 특이한 느낌으로 보면 된다. 때문에 그 중간 영역에 잘 걸쳐있어서 과거부터 국내외 가리지 않고 많은 실전경험을 할 수가 있었다.

GIGN은 기본적으로 인질구출작전과 대테러임무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부대이며 프랑스 영토에서 경찰이 관할하는 도시지역 이외의 헌병대의 관할지역 내에서 발생한 사건들중 지역헌병대와 지역 대테러부대 AGIGN이 자체적으로 대응하기 힘든 사건에 개입하게 된다. 하지만 대테러임무 이외에도 정보수집을 위한 정찰작전과 요인경호작전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이다. 도시외각지역에 위치하는 주요 공항과 원자력 시설의 보호와 경비도 헌병대 관할에 있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중대사건이 발생할 경우, GIGN이 출동하게 된다. 또한 프랑스 해외영토의 전반적인 치안은 경찰이 아닌 헌병대가 맡고 있는 까닭에 해외영토에서의 임무도 자주 수행하는 편이다. 또한 GIGN이 수행하는 작전은 대부분 프랑스 영토 내에서 이루어지지만 프랑스군에 소속된 헌병대의 부대로서 전 세계 어디든지 전개되어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이들의 활동무대는 프랑스 국내와 과거 식민지를 보유했던 아프리카지역으로 프랑스가 뒷마당으로 여기고 있던 아프리카의 옛 식민지에서 벌어진 테러 사건을 여러 차례 해결하였다. 2000년대 이후로는 굉장히 조용하지만, 이렇게 찬란한 과거의 영광을 토대로 세계 최고의 대테러부대 중 하나라고 불리고 있으며, 이쪽 최고봉인 영미권 5개의 눈 소속 특수부대나 현재 러우전을 치르고 있는 러시아 스페츠나츠 우크라이나 특수작전군 정도를 제외하면 애시당초 프랑스 특수부대 자체가 세계 어떤 부대의 추종도 불허할 정도로 실전경험이 많으며, 어마어마하게 선진화/고도화 되어있다.

이렇게 실전 경험이 많은 이유는 세계 각지에서 프랑스에 망명온 자들을 노리는 암살범들이 많고 바스크 코르시카는 분리주의자들이 득실거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국가들이 지금도 프랑스와 정치,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그 나라의 특정 정치세력의 테러가 프랑스 영토나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 입장에서 보자면 테러 위험국인 몇몇 중동국가나 코소보 지역같은 분쟁지대의 문제를 본인의 국가까지 끌여들여 해결하는 셈이지만 망명자들의 입국을 허용해도 테러에는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으로 알려지고 있다.

3.1. 주요임무

4. 편제


2014년 GIGN 창설 40주년 행사에서의 개입부대(FI)와 경호보안부대(FSP)의 훈련영상.

참모부는 2개의 부서로 편성되어 있으며, 두 부서를 중심으로 다양한 작전부서가 편제되어 있다.

4.1. 개입부대(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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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입부대(FI, la Force Intervention)는 기존의 GIGN인원으로 구성된 부대로 주요 대테러작전을 담당하는 핵심부대이다. 작전인원은 최초 창설시에는 15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총 110명에 4개의 소대로 나누어져 있다. 2개 소대는 고고도낙하침투에 특화되어있으며, 나머지 2개 소대는 주로 해군의 코만도 위베르로부터 수중훈련을 받으며 수중전투에 특화되어 있다. 이중 1개의 소대는 24시간 항시 출동대기태세를 갖추고 있으며 30분이내에 출동할 수 있다. 대테러임무를 수행하는 주력부대인 만큼 해외파견의 빈도는 적은 편으로 보이지만 2016년 부르키나파소에서 벌어진 인질극 사건 이후 현지에 치안 강화를 위해 1개 소대가 부르키나파소 수도 와가두구에 임시로 배치된 사례가 있다.

4.2. 수색관측부대(FOR)

수색관측부대(FOR, la Force Observation Recherche)는 2007년 GIGN과 통합되어 해체된 EPIGN출신 인원으로 구성된 부대로 국내조직범죄, 대테러임무와 관련된 정찰작전을 전문으로 수행하는 부대이다. 국내치안을 담당하는 헌병대 수사부서와 활발하게 교류하며 해외작전시 주로 장거리 정찰임무를 수행한다. 2개 소대 40명의 인원으로 구성된다.

4.3. 경호보안부대(F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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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호보안부대(FSP, la Force Sécurité Protection)는 기존 EPIGN출신 인원으로 구성된 부대로 요인경호 및 시설보호임무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부대이다. 각종 훈련 및 작전영상에서 임무수행시 중무장한 사복차림으로 작전하는 경우가 많으며 해외에 위치하는 프랑스 외교공관 및 외교관을 포함해 해당국에 체류중인 프랑스인들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고 있기 때문에 해외파견이 잦은 부대이다. 총 인원은 60명이다.

4.4. 안테나부대(Force Antennes)

AGIGN(Antenne du GIGN)은 과거에는 헌병기동대(Gendarmerie mobile)의 지휘를 받았으나 2021년 통합이후 GIGN 직속지휘를 받는 부대가 되었다. 약 600명의 대원이 소속되어 있으며 프랑스 본토의 지방도시와 해외영토지역에서 대테러임무를 담당한다.
자세한 내용은 AGIGN 참조.

4.5. GSPR 헌병파견대(le détachement GS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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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PR(공화국대통령 보안그룹, Groupe de sécurité de la présidence de la République)은 프랑스 대통령이 거주하는 엘리제궁에 근접경호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파견되어 있는 소규모 분견대이다. 1982년 처음 창설되어 GIGN과 동일하게 GSIGN소속이었다가 2007년 GSIGN이 해체되면서 GIGN에 통합되었으며 미국의 시크릿 서비스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프랑스 국가경찰소속의 대통령 및 정부요인을 경호하기 위한 경호기관 SDLP(경호 서비스, Service de la protection)에 배속되어 최근거리에서 대통령을 경호하는 임무[3]를 수행한다. 대통령이 항공기를 이용해 이동할 경우 프랑스 항공우주군소속 특공대와 함께 경호를 수행한다. 총 30명의 대원으로 구성된다.

4.6. 작전지원부대(F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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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지원부대(FAO, la Force Appui Opérationnel)는 특수작전을 지원하는 부서로 장거리저격, 통로개척, 작전수립, 특수장비운영을 전담하는 부대이다.

헬리콥터 지원이 필요하면 헌병대 항공대에서 지원받는다. 대규모 작전 인원을 수송할 중형헬기가 필요하면 프랑스 특수작전사령부 예하의 제4특수전헬리콥터연대의 합동헬리콥터그룹(GIH)의 SA330 퓨마헬기를 지원받는다.

4.7. 훈련부대(FF)

훈련부대(FF, la Force Formation)는 GIGN 대원을 훈련시키는 부대로 GIGN 인원 뿐만이 아니라 선발된 프랑스 헌병 소속의 장병 및 외국 군경인력의 훈련 및 재교육을 시행하는 부대이다.

5. 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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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GN은 헌병대의 최정예 대테러부대로서 풍부한 예산지원을 받고 있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표준장비에 이외에 다양한 장비를 도입하여 실험하는 부대로 유명하다. 복장이나 무기선택에 있어서 상당히 개성이 뚜렷한 부대이다. 작전시 착용하는 각종 장비 및 복장과 무기옵션만 봐도 GIGN 부대라는 인식이 어느정도 가능할 정도이다. 대표적인 예가 현재는 대테러부대의 대세가 되었지만 헬멧에 장착하는 방탄 바이저가 있다. 방탄 바이저는 GIGN이 최초로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에어 프랑스 8969편 납치 사건의 사례처럼 대원들의 안전에 큰 기여를 했다. 또 다른 사례는 리볼버를 사용한 저격술이 있다. 이는 각 대원의 사격술에 상당한 투자를 하는 GIGN의 사상에 따른 것으로 저격소총의 위력이 과잉이 되는 지근거리에서의 정밀사격을 위해 마뉘랭 MR 73 리볼버의 총신을 연장하고 양각대와 스코프를 장착하여 정밀사격이 가능하게 한 것이다. 장비나 무기는 대체적으로 서방제 무기를 주로 이용하나 BREN2 도입 사례와 같이 비교적 과감한 도입 사례들도 존재한다.

5.1. 방탄 방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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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에 노출된 모습을 보면, 이들은 무거운 방탄 방패와 두꺼운 바이저를 선호한다. 방탄방패는 소총탄까지 막아내며 상당히 무겁다. 2015년 파리 테러에서 콘서트장에 진입한 BRI 대원이 당시 휴대한 방탄방패로 테러범의 27발 이상의 AK-47 소총 집중사격을 막아내고 진압에 성공하기도 하였다. 또한 GIGN이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안면방탄 헬멧은 NIJ 3-A등급의 방탄성능을 가지고 있으며 폭탄에 의한 파편과 최대 44구경 총탄을 수 발 수준에서 방호가 가능하다.

일부 사람들이 외모를 중시하는 프랑스인이 사용하는 장비라며 비아냥에 가까운 농담을 하기도 하나 해당장비는 신체의 주요 급소 중 하나인 안면을 방호해주기 때문에[4] 작전에 대한 자신감과 임무 성공률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1994년 에어 프랑스 8969편 납치 사건 때 여객기에 진입한 GIGN 대원이 진압작전중에 안면에 수발의 사격을 받았으나 안면유리가 총탄을 방호해 목숨을 건진 사례가 있다. 이와 같은 활약으로 GIGN을 선두로 최근 해외의 많은 대테러부대 또한 안면방탄유리를 채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5.2. 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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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파리 몽파르나스역에서 실시된 대테러합동훈련에서 훈련 중인 GIGN대원들.

GIGN은 각 대원의 사격실력을 매우 중요시해 사격술을 향상 시키는 훈련에 집중하며 이를 위해서 하루에 300발이상을 사격하는 사격훈련으로 뛰어난 기량을 유지하고 있다. 매년 10만명의 프랑스 정규군이 소모할 훈련 탄약수량의 약 60%를 GIGN 한 부대에서 소모하고 있다. 또한 대원 전원이 저격술 훈련을 이수하여 정밀한 사격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 중 전담 저격수가 별도로 저격 임무를 담당한다.

5.2.1. 권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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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은 현재, 우측은 과거 사진이다.
GIGN의 상징과도 같은 방탄헬멧[6] 마뉘랭 MR 73 리볼버, 어깨 패치가 특징.

GIGN은 부무장인 권총을 2정 들고 다니며 자주 사용한다. 협소한 건물내부, 열차, 항공기 내부에서 작전을 수행하는데 길고 무거운 소총보다 가벼운 권총이 유용하기 때문이다. GIGN을 비롯한 프랑스의 대테러부대들이 대체로 이러한 경향을 보인다.

이들을 대표하는 무기가 바로 마뉘랭 MR 73 리볼버이다. 가장 성공적인 작전 중 하나였던 에어 프랑스 8969편 납치 사건에서도 최소한 3명의 테러리스트들이 MR 73로 사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는 이탈리아 베레타에서 생산한다. 현재 대다수 부대원들은 글록, SIG 등 자동권총을 사용하지만, 여전히 리볼버를 사용하는 대원도 있다고 한다. 2015년에 촬영된 프랑스의 과학교육 TV 프로그램에 등장한 대원은 여전히 리볼버를 차고 있다.

5.2.2. 자동소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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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을 전후로 테러리스트들의 방탄복에 대응하기 위해 세계 각국 특수부대들은 돌격소총을 기관단총 대신 채택하였다. GIGN 역시 독일제 H&K HK416 H&K G36, 스위스제 SG551, 미국제 조준경과 표적지시기 등 첨단 장비를 사용하고 있다. 소수이지만 프랑스산 FAMAS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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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새 주무장으로 체코제 브렌 2 카빈 7.62×39mm AK탄 사용 버전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기존에 사용하던 H&K HK416 H&K G36의 대인저지력이 부족하여 내린 결정이라고 한다. 2017년 초도계약수량은 60정의 브렌 2소총과 각종 유지부품, 관리도구, 악세사리(사진의 대원은 ACOG+RMR, MAWL-DA 레이저 표적지시기, B&T Rotex V 소음기 등을 부착했다.) 등이다. 하지만 H&K HK416 H&K G36이 완전히 퇴출된 건 아니며 세 화기는 일선에서 병행해서 함께 사용될 예정이다.

5.3. 작전차량

5.3.1. SWATEC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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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GN은 에어 프랑스 8969편 납치 사건을 겪은 후 항공기나 높은 건물로 대원들을 빠르게 진입시킬 수 있는 적절한 진입장비 없이는 향후 제대로된 작전이 어려워 질 것임을 깨닫게 된다. 당시 미국 연방수사국은 차량에 유압시스템을 설치해 개입시스템을 제작가능한지 미국회사인 SWATEC에 문의했으며 이 주문으로 탄생한게 HARAS이다. HARAS는 건물이나 버스,비행기등의 차량에 빠른병력진입을 위해 만들어졌으며 SWATEC에 의해 쉐보레 서버번을 개조해 탑재되었으며 3층건물까지 작전병력의 진입이 가능하다. GIGN은 1999년부터 운용했으며 최소 4대의 차량을 보유하고 있다.

5.3.2. Sherpa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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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장갑차량에 HARAS를 장착한 작전차량이다. SWATEC과 마찬가지로 유압붐을 이용하여 3층 높이까지 병력진입이 가능하며 경장갑차량을 베이스로 사용한 덕분에 민수용차량을 사용한 SWATEC보다 더욱 튼튼하며 뛰어난 방탄성능으로 작전중 차량내부의 대원들을 효과적으로 보호가능하다.

5.3.3. 방탄개입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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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igon사에서 토요타 랜드 크루저 200 모델을 기반으로 개조한 방탄차량으로 레벨2의 방탄성능을 지니며 펑크 난 상태에서도 신속한 주행이 가능한 차량이다. 차량 상단에 해치가 설치되어 인원이 출입할 수 있으며 요인경호임무에 사용되며, GIGN과 각 지방의 AGIGN 모두 보유중인 차량이다.

6. 선발 및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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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 선발에서는 헌병대에서 최소 5년 이상을 근무하고 우수한 근무실적을 가진 34세 미만의 대원만이 지원자격을 가진다. 대원선발과정은 매우 엄격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시험에 합격한 선발인원들은 3개월간의 사전훈련기간을 가지며 해당 조건을 통과하여 선발된 인원중에서 평균 7%정도만이 최종합격할 정도로 난이도가 높다. 이러한 선발과정을 통과한 대원들은 10개월의 기본훈련과정을 거쳐 부대에 배속되며 배속되는 부서에 따라 다른 특기에 관해 다시 수개월간 교육을 받게 된다. 한 부서에 배속되면 최소 2-3년이 복무해야 GIGN 내 다른 부서로 이동이 가능하다.

훈련과정 중에는 그 유명한 방탄복을 입고 자신들의 제식 화기인 MR 73로 가슴에 .357 매그넘 실탄 맞기[7], 센강을 지나는 유람선 밑으로 수영하기, 실제 프로 권투선수와 3라운드 스파링 등이 포함된다.

7. 주요 작전

GIGN은 창설 이후 꾸준히 실전경험을 쌓으며 기량을 유지하고 있으며 1974년부터 2014년까지 1600회 이상의 작전을 수행하여 625명이상의 인질을 구출했고 저항하는 260명의 용의자를 무력으로 제압했으며, 1500명이상의 범죄자와 테러리스트를 체포하는 전과를 기록했다. 이 기간동안 7명의 GIGN대원이 훈련중 사망했으며 작전을 수행하던 도중에 2명이 실종되고 2명이 전투중 전사하기도 했다.

프랑스 영토에서 도시지역만을 관할하는 경찰과 다르게 헌병대는 도시 교외지역을 포함한 프랑스 국토의 대부분을 관할구역으로 두고있기 때문에 경찰에 비해 관할구역이 매우 넒으며 출동횟수가 훨씬 잦은 편이었다. 이렇게 GIGN의 관할구역이 지나치게 넓었고 지방에서 사건이 발생하면 파리근교의 사토리주둔지에서 출발해서 장시간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지방의 대테러상황에 빠르게 대응하기 어렵다는 문제점이 지적되었고 이는 헌병대의 지역간 대테러부대인 AGIGN이 탄생하는 계기가 된다. 또한 국내치안만 전담하는 경찰이 아닌 엄연한 군 특수부대이기 때문에 분쟁지역으로의 파견이나 해외공관보호임무 등 해외파견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편이다.

임무 수행 도중 발생한 민간인 사망자가 한 명도 없기로도 유명하다. 1994년 에어프랑스 여객기 진압작전에서는 부상자가 9명이 발생했지만 모든 대원들과 인질들이 전원 생존했다. 1974년부터 지금까지 임무를 수행해왔는데 민간인 사망자가 한 명도 안 나왔다는 것은 얼마나 GIGN이 수준 높은 특수부대인지 알려주는 사례다. 2018년 3월 23일 이슬람 국가의 인질극 테러에서 잡혀 있는 인질 대신에 스스로 볼모를 자청했다가 영웅적으로 순직한 아르노 벨트람 중령은 GIGN이 아닌 EPIGN[8]에서 과거에 근무했으나, 순직 당시에는 사건이 발생한 오드 (Aude) 헌병대 부지휘관이었다. 이 사건의 진압은 GIGN의 훈련을 받고 프랑스 지역권을 담당하는 부대인 AGIGN이 했다. 파리 근교에 주둔하는 GIGN 본대는 사건 발생 직후 출동하였으나 사건이 빠르게 끝나는 바람에 현장에 도착하지 못했다.[9]

7.1. 로야다 인질사태(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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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se d'otages de Loyada

GIGN 창설초기의 작전으로 1976년 2월 3일, 아프리카 지부티에서 프랑스군인의 자녀들이 탄 스쿨버스가 지부티에서 활동하는 친소말리아 과격파 테러범 7명에 의해 납치되었다. 테러범들은 소말리아를 불과 10m 앞둔 국경지대 검문소에 버스를 세우고 농성에 들어간다. 버스내부에는 33명의 인질과 7명의 테러범이 뒤섞여있었다.

지부티 현지에 주둔한 제2외인공수연대를 주력으로 한 프랑스 외인부대가 버스에서 300m 거리에서 병력과 장갑차로 포위했다. 그러나 테러범을 지지하는 무장한 소말리아군도 국경 너머에 배치되어 외인부대와 대립하며 테러 진압에 있어 최악의 조건이 형성되었다. 지부티 현지의 저격지원을 위해 프랑스본토의 GIGN 대원 9명이 항공기로 사건현장으로 급파된다. 부대의 구성은 6명의 저격수, 1명의 저격 그룹 리더, 통신병 1명, 지휘관 1명, 총 9명이었다.

이 파견은 GIGN 창설 후 최초의 해외파견이었기 때문에 외인부대 쪽에서는 못미더워 하는 경향이 강했다. GIGN 대원들은 2월 4일 아침에 도착하여 5명의 저격수와 1명의 저격 그룹 리더는 버스에서 200m 떨어진 지점까지 몰래 접근해 저격작전을 준비한다.

오후 2시, 인질범들은 인질이 된 아이들을 위한 식사를 요구하였고 GIGN은 음식에 가벼운 수면제를 섞어 전달했다. 음식을 먹은 인질들을 수면에 취하도록 만들어 버스 안의 인질범과 인질들을 구분하여 저격수들의 조준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저격수들이 인질범들에게 사격을 가하면 외인부대가 장갑차의 지원을 받으며 버스에 돌입해 인질들을 구출하는 계획이 수립되어 있었다.

오후 3시 45분, 5명의 GIGN 저격수는 FR-F1 저격 소총의 일제사격으로 4명의 인질범들을 사살한다. 거의 1초 안에 일제히 사격이 이루어졌을 정도의 완벽한 타이밍이었으나, 10시간 넘게 땡볕에서 매복하고 저격을 기다리고 있었던 피로 탓인지 저격수 한 명은 실수로 버스 앞에 있던 인질범의 다리를 맞췄다. 다행히도 이 인질범은 두 명이 동시 사격했기 때문에 마찬가지 무력화되었다.

여기까지는 잘 진행되었으나 인질범들은 저격수들이 보지 못한 2명이 더 있었다. 개중 한 명은 버스 안에 누워 있던 바람에 저격수들이 보지 못했으나 총성에 놀라 일어나자 저격수들이 바로 사살한다. 그러나 StG44로 무장한 마지막 인질범은 인질들에게 사격하여 여자아이 1명을 죽이고 여러 명을 부상 입힌다. 동시에 국경 너머의 소말리아군도 MG42 기관총 여러 정으로 프랑스군에게 사격을 시작했는데, 하필 무더위 속에서 계속 대기하던 장갑차는 엔진과열로 고장나서 이들을 엄호해줄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이에 GIGN 저격수들은 저격총을 버리고 마뉘랭 리볼버를 뽑아들고 버스까지 200미터를 달려갔으며 외인부대원 몇 명도 기관총 사격을 뚫고 버스로 달렸다. 외인부대원이 아이를 인질로 잡은 마지막 인질범과 대치하는 사이 GIGN은 근거리 리볼버 사격으로 인질범을 사살한다. 이외에도 GIGN 저격수들은 소말리아군에 대응사격을 가해 추가로 10명을 사살하였다. 프랑스군의 대응사격으로 국경 너머의 소말리아군도 최대 20명이 사망한 걸로 추정된다.

사건이 종료된지 얼마후 중상을 입어 프랑스로 후송되었던 1명의 여자아이가 추가로 사망한다. 해당 작전은 전체적으로 외인부대가 주도하고, 소수의 GIGN이 저격 지원을 하는 형태로 이루어졌으며 완전하게 성공한 작전은 아니었지만 1976년 당시 갓 창설된 GIGN의 우수함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일제저격 전술을 정립시켰다는 의의가 있는 작전이다.

영화 퍼펙트 타겟이 이를 다루고 있다. 다만 그리 정확하지는 않다.

7.2. 우베아 동굴 인질사태(1988, 빅토르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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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prise d'otages d'Ouvéa (L'opération Victor)

1988년 4월 누벨칼레도니 우베아 섬의 헌병대 치안서가 누벨칼레도니의 독립을 주장하는 현지 원주민 카낙의 무장세력인 FLNKS(Le Front de libération nationale kanak et socialiste)의 습격을 받아 4명의 헌병대원이 사망하고 군인과 판사를 포함해 27명이 인질로 잡혀가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치안서에 있던 중기관총을 포함한 다수의 무기가 FLNKS에게 탈취당했으며 이에 프랑스 정부는 비상 사태를 선포하고 헌병대 소속의 GIGN를 주력으로, EPIGN, 해군 소속 코만도 위베르, DGSE 세르비스 악시옹 소속 부대인 제11충격낙하산연대[10] 등 프랑스군의 정예특수부대 대원 74명을 현지로 급파한다.

인질구출팀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었다.
당시 인질구출팀의 GIGN 지휘관이었던 필립 레고르쥐 헌병 대위(Phiippe Legorjus)[11]는 협상가로서 동굴로 들어가 FLNKS의 지도자와 협상을 진행하였으며, FLNKS와의 첫 접촉과정에서 필립 레고르쥐 대위와 5명의 GIGN대원이 포로가 되었다. FLNKS에게 풀려난 이후 무전상으로 협상하는 과정에서 습격사건이 단순히 우발적으로 벌어진 사건임을 알게되어 상부에 협상으로 사건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을 건의했지만 당시의 누벨칼레도니의 독립 여론과 대통령 선거 기간이 맞물려 프랑스 중앙정부는 사건에 대한 강경대응을 주문했고 최종적으로 무력진압이 단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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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베아 인질사태를 다룬 2011년작 프랑스 영화 리벨리온(L'Ordre et la Morale). GIGN 필립 레고르쥐 대위의 시점으로 1차 진압작전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진압작전은 GIGN, EPIGN, 코만도 위베르가 주력부대로 동굴을 향해 정면으로 공격해 들어가고 측면을 가장 많은 병력을 가진 제11충격낙하산연대가 전담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1차 진압작전은 5월 15일 새벽 6시에 시작되었으며 태평양 전쟁에서나 볼 수 있었던 대테러작전사에서 흔치않은 치열한 정글전투가 펼쳐졌으며 양측 모두 자동화기, 산탄총, 기관총으로 중무장한 상태에서 총알을 주고받는 난전이 펼쳐졌다. FLNKS은 헌병대에서 탈취한 파마스 소총, 산탄총을 가지고 동굴 외부에 방어선을 구축한 상태였으며 FR-F1 저격총과 AA-52 기관총을 이용해 기관총진지까지 구축해 두었기 때문에 진압작전 과정에서 코만도 위베르가 화염방사기로 기관총진지를 제압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진압부대는 1차 공격으로 동굴 앞 진지를 제압했으며 남은 FLNKS을 동굴로 내부로 몰아넣었다. 복잡한 정글지형 때문에 예상보다 점령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으며 정면 공격부대와 측면으로 공격해 들어간 제11충격낙하산연대가 난전속에서 통신이 엇갈려 서로 오사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1차 진압작전을 통해 동굴주변에 FLNKS이 구축해놓았던 방어선과 진지를 모두 제압하고 동굴입구 앞에 도달했으며 이 과정에서 12명의 FLNKS이 사망하고 2명의 11충격낙하산연대 대원이 사망했다.

2차 진압작전은 5월 15일 오전 12시에 시작되었으며 동굴입구에서 2명의 인질을 인간방패 삼아 농성하던 FLNKS 2명을 코만도 위베르소속 저격수 2명이 동시저격으로 사살하면서 시작되었으며 GIGN이 동굴 내부로 가스탄을 투척하면서 자동화기를 동굴입구에 놓고 권총만으로 돌입했다.

동굴가장 밑바닥에 억류되어있던 인질무리는 인질극이 진행되는 기간동안에 동굴과 부대를 오가며 전령역할을 하던 장 비앙코니 치안판사[12]가 진압작전이 실행되기 전날에 GIGN의 요청으로 자신의 사타구니 부위에 몰래 숨겨온[13] 6연발 리볼버 권총 2정을 동굴에 억류돼있던 GIGN 소속 인질 2명에게 몰래 전달한 상태였으며, 2차 진압작전이 시작되자 2명의 GIGN 대원이 리볼버를 사용해 FLNKS에게 위협사격을 가해 FLNKS와 인질무리를 동굴내부에서 분리시키는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인질무리는 동굴 밖으로 이어지는 또다른 작은 입구을 발견해 GIGN이 그곳으로 모든 인질들을 인솔해서 동굴밖으로 빠져나왔다. 이후 동굴에서 저항하던 나머지 FLNKS이 항복하면서 인질극은 종료되었다.

인질구출부대는 최종적으로 FLNKS이 은신하고 있는 정글 속 동굴을 포위하고 치열한 교전 끝에 진압하는데 성공했다. 작전결과, 27명의 인질들은 모두 무사히 구출되었고 FLNKS조직원 19명이 태스크포스와의 전투중에 사살되고 14명이 체포되었다. 그리고 태스크포스 소속의 제11충격낙하산연대 대원 2명이 진압작전과정에서 전사했다.[14]

당시 프랑스 중앙정부도 FLNKS의 격렬한 저항을 예상해 진압작전으로 최소 20명 이상의 진압 부대 대원 사망 + 수 십 명의 인질이 사망하는 결과를 각오하고 무력진압을 최종승인했다. 하지만 작전 결과, 억류되었던 인질 전원 무사, 진압대원 2명 사망, 인질범들은 전원 사살 및 체포되어 경미한 피해로 작전이 종료되어 상당히 놀랐다고 한다.

GIGN을 포함해 진압부대는 어려운 작전조건(정글속 중무장한 다수의 인질범+동굴에 억류된 다수의 인질)에서 최소한의 피해(인질피해 0명, 진압부대 2명 사망)로 작전을 성공시켜 작전성과만으로는 6년뒤에 발생한 1994년 에어 프랑스 8969편 사건에 비견될만큼 성공적인 대테러작전이지만, 정치적으론 대실패한 작전으로 여겨지고 있다. 당시 누벨칼레도니는 경제적 문제만 해결된다면 프랑스와의 독립을 금방이라도 행할 극단적인 반프랑스 여론이 지배하고 있었으며, 인종차별에서 시작한 다툼과 그로 인한 사건을 프랑스 정부에서는 독립 시도로 오인하였고, 국내 여론을 의식하여 말로도 해결할 수 있던 사건[15]을 무력으로 해결했다는 당시 프랑스정부는 국제사회의 싸늘한 시선의 여론을 맞이해야했다. GIGN은 어려운 환경과 조건에서 인질구출작전을 최소한의 피해로 성공적으로 수행하였으며, 1994년 하이재킹 사건의 완벽한 해결 이전에 GIGN이라는 부대가 세계에 인지도가 알려진 계기가 되었다.

7.3. 에어 프랑스 8969편 납치 사건(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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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 프랑스 8969편 납치 사건은 GIGN이 맡았던 작전 중 가장 유명한 작전으로 알제리 이슬람 과격분자들이 프랑스가 알제리 정부를 원조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벌인 것으로 승객 216명과 승무원 12명이 테러범 4명에게 인질로 사로잡혀 있었다. 테러범들은 알제리에서 이미 승객 세 명을 살해했고, 파리로 가길 원했다.

기장의 설득으로 급유를 위해서 마르세유에 착륙했지만 사건 후 밝혀진 테러범들의 목적은 승객과 함께 파리 상공에서 자폭하는 것이었다. 사건이 발생한지 3일만인 12월 26일 마르세이유 공항에서 여객기가 이륙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GIGN대원[16] 30명과 EPIGN 대원[17] 15명이 진압작전을 실행하였다. 20 여 분 간의 작전에서 1500발 이상의 실탄이 발사되었으며 테러범 전원을 사살하고 인질들을 사망자 없이 구출하였으며 작전과정에서 16명의 승객과 GIGN대원 9명이 부상당했다.

특히 선발대로 가장 먼저 기내에 진입한 티에리 프륀뇨(Thierry Prungnaud) 준위는 조종석에서 테러범 2명을 사살했지만 무려 8발의 총탄을 맞고 중상을 입어 전투중 동료대원에 의해 후송되기도 했다. 저격수도 빛을 발했는데 시야가 제한되는 상황에서 조종석안에 인질 2명이 있었음에도 테러범 두목을 정확히 저격하여 사살하는데 성공했다. 사망자는 없었지만 좁은 기내에서 자동화기와 폭탄이 사용된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졌기 때문에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특히 엄폐했지만 테러범이 난사한 총탄이 기내벽을 관통하여[18] 부상을 입은 대원들도 있었다. 이 작전을 교훈으로 GIGN은 무장과 방호장비에 더욱 많은 투자를 하게 된다.

이때 그 유명한 GIGN의 트레이드 마크인 안면 방탄 바이져가 진가를 발휘했다. 방탄 바이져가 처음 도입되었을때 조준을 방해하고, 무겁고, 불편하다고 해서 많은 대원들이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8969편 납치사건때 테러범 제압하기위해 진입하는 과정에서 테러범이 총을 격발했고 이때 대원중 한명의 안면부에 적중하였으나 방탄바이져가 방어하는데 성공했고, 이로 인해 차질없이 내부 진입과 제압에 성공한 것. 비행기의 통로가 매우 비좁아 각종 무장을 잔뜩해서 부피가 커진 아군 대원이 쓰러진다면 진입과 제압에 차질이 빚어질텐데, 그러지 않았기에 매우 다행스러웠던 것. 이사건으로 이 전면 방탄바이져는 그 효용성을 인정받아 세계 각국에 채용되었는데 GIGN 요원을 넘어서 독일의 GSG-9 등 다른 나라들에서도 채용하게 되었다. 위의 오른쪽 사진에 금간 저 바이져가 바로 해당 사건에서 총탄을 방어한 그 바이져 되시겠다.

GIGN 입장에서도 이 사건은 영원히 후대에 광고하는 최고의 성공작전이 되었다.

7.4. 진달래 작전(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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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pération Azalée

용병 보브 드나르(Bob Denard)[19]가 코모로군내의 추종세력, 용병들과 일으킨 쿠데타로 전복된 동아프리카의 섬나라 코모로를 해방시키기 위해 프랑스군이 실시한 특수작전인 진달래 작전에서 동원된 제1해병공수연대, 제13용기병공수연대, 해군 코만도[20] 등 200명의 프랑스 특수작전사령부(COS) 예하 특수부대들과 함께 크게 활약했다. GIGN은 1995년 10월 3일 야간에 코모로에 선발대로 공중으로 침투해 주요시설과 코모로 모로나이의 프랑스대사관을 탈환하는데 성공했으며 다수의 보브 드나르 지지자들을 작전 중에 생포하여 작전성공에 크게 기여하였다. 작전의 마지막 단계에선 10월 5일 쿠데타군과 함께 항복한 보브 드나르를 코모로 국방부에서 체포하여 세르비스 악시옹 요원들에게 인계하였다. 세르비스 악시옹에게 인계된 보브 드나르는 수송기편으로 파리로 압송되었다. 드나르는 10달 수감생활을 하고 또 코모로로 가서 여전히 쿠데타를 기획하려 들었지만, 그를 예의주시하던 코모로 정부나 프랑스 정부는 감시를 통해 이걸 사전에 알아차렸고 2001년에 그는 또 잡혔다. 그렇게 코모로 법정에서 재판을 받으며 복역하다가 알츠하이머 증세에 시달려 이젠 자신이 누군지도 기억이 희미해졌기에 드나르 본인도 수십여년 총을 쥐고 살던 나도 세월과 질병, 치매 앞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포기했다고 한다. 2007년 징역 4년형이 판결되었지만 이제는 말기 치매로 기억도 없는 몸이라 복역하지 않고 프랑스로 돌아와 몇달만에 죽었다.

7.5. 쿠아치 형제 사살(2015)

L'assaut de Dammartin-en-Goële (Traque des frères Saïd et Chérif Kouachi)

샤를리 엡도 총격 테러 사건에 참여했던 테러범들의 일부였던 사이드 • 쉐리프 쿠아치 형제는 범행 후 프랑스 수사 당국의 추적을 피해 도주하고 있었다. 두 명의 용의자가 1월 8일 오전에 파리 북동쪽 다마르탱엔고앨에서 발견되었다. 이들은 민간인에게서 차량을 강탈하여 도주하는 과정에서 경찰의 추적을 받게 되었고 이에 GIGN이 수색과 검거를 위해 해당지역으로 출동하게 된다. 1월 9일 오전 9시 30분경 도주하던 2명의 테러범은 간판 제작 회사 건물로 피신했는데 당시 건물에는 2명의 민간인이 있었다. 1명은 탈출에 성공하지만 나머지 남성 디자이너 1명은 탈출하지 못하고 그대로 건물 안에 숨어있게 된다.

현장을 포위한 GIGN이 쿠아치 형제에게 8시간 동안 협상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거부했고 오후 4시 30분경에는 쿠아치 형제가 점거한 건물 근처에서 3차례의 큰 폭발음이 들렸으며 오후 5시에는 GIGN이 헬리콥터에서 옥상으로 투입되어 진입을 준비했다. 잠시 후 2명의 테러범이 간판 제작 회사 건물을 뛰어 나와서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고 현장에 투입된 GIGN이 치열한 총격전 끝에 2명을 사살하였다. 테러범을 피해 인쇄소 건물에 숨어있던 민간인 1명도 GIGN에 구출되었다. 불과 수분 간격으로 다른 지역에서 인질극을 벌이며 경찰과 대치 중이던 테러범 1명도 RAID BRI-BAC부대에 진압 작전 과정에서 사살되었다.
파일:15658020813_bdb1a9e565_b.jpg 파일:Attentat-Charlie-Hebdo-Paris-Match-publie-des-photos-des-cadavres-des-freres-Kouachi_width1024.jpg

8. 기타

2016년 6월 7일에는 프랑스 동부의 한 맥도날드에 산탄총을 든 2인조 무장강도가 나타나 직원들에게 금고에 있는 돈을 요구했는데 마침 그 맥도날드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GIGN 대원 11명에게 제압당한 사건이 있었다. #

9. 대중매체

냉전기부터 철저히 훈련받아오며 명성 높은 전설적인 프랑스의 대테러부대라는 명성이 자자한지라 주인공이나 악역의 위엄을 보여주기 위해서 모조리 몰살당하는 경우가 많다. 상징적인 방탄 헬멧은 GIGN의 필수요소 중 하나이다.

9.1. 게임

9.2.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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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관련 문서



[1] 한국군 특수부대의 특수전 교육단에서는 지젠느라고 부르지만, 사실 이는 잘못 알려진 발음이다. [2] 현재는 GIPN이 RAID로 통합되었다. [3] SDLP은 1200명의 인원으로 프랑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고위관리를 경호하는 대규모 조직이지만 GSPR은 오직 대통령만 중점적으로 경호한다. [4] 전투 중 안면에 총탄이 명중할 경우 최소 중상이며 높은 확률로 사망한다. [5] 베레타 M92F의 프랑스 라이센스 생산형. [6] 과거에는 헬멧의 방탄유리막(바이저)이 노란색이었지만 현재는 투명하다. [7] 지급받은 방탄복에 대한 신뢰감과 배짱을 키워주고 자신의 가슴에 대고 총을 쏘는 동료에 대한 신뢰를 확인한다는 의미의 훈련인데 GIGN 내부에서는 무슨 의식처럼 인식된다. 그리고 훈련기간 중 딱 1번만 한다. [8] EPIGN이 2007년 GIGN 산하로 통합되었기 때문에 아르노 벨트람 중령이 GIGN출신이라고 해도 크게 무리는 없다. [9] 2019년 5월, 부르키나파소에서 한국인을 포함한 인질 4명을 구출하고 순직한 프랑스군 특수부대원들은 해군특전단 (la suite la spécialité de fusilier marin)이라는 미합중국 해군 네이비씰과 유사한 해군 특수부대 소속이며, GIGN소속이 아니다. [10] 11e régiment parachutiste de choc. 프랑스 해외정보부에 편재된 육군 공수부대로 현 DGSE의 전신인 SDECE 시절부터 세르비스 악시옹 소속 무장부대로서 특수작전을 수행했으며 이후 조직개편으로 인해 1993년 해산되었다. [11] 과거 세 곳의 특수부대에서 복무한 전적이 있는 베테랑 군인으로 해군 특수부대인 해군 코만도 소속 부대인 '드 팡펭탕요'에서 복무했으며 1977년에 해군에서 퇴역한 후, 1978년 프랑스 헌병대에 지원해 EPIGN에서 복무했으며, 1982년에는 헌병대 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장교신분으로 GIGN에 배치되었다. [12] 누메아지역의 지역명예판사로 평소에 우베아 섬 주민에게 어느정도 친분이 있어 경계심이 덜했으며 진압부대에 많은 정보를 전달해서 작전에 성공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 [13] 파일:Loelm-MR73-4.jpg 카낙족들과 평소에 어느정도 친분이 있었던 장 비앙코니 치안판사 또한 동굴에 들릴때마다 수시로 몸수색을 당한걸 생각하면 실로 대담하고 용기있는 행동을 한것이며 당시 작전당사자들은 그를 작전성공의 1등 공신으로 평가한다. 다행히 작전전날 방문에서는 FLNKS가 몸수색을 하지 않았다. 그는 다음날 작전이 개시되면 인질들에게 채워진 수갑을 풀게 하기 위해 자기 입속 껌속에 수갑열쇠도 숨겨서 전달했으나 열쇠가 맞지 않았다. 하지만 수갑을 찬 상태에서도 권총은 충분히 사용할 수 있었다. [14] 안타깝게도 2명의 대원 모두 안면부에 총상을 입어 사망하였다. [15] 프랑스정부의 진압작전결심도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는데, 인질들을 억류한 FLNKS이 군대와의 협상과정에서 프랑스측이 절대로 양보할수 없던 안건인 누벨칼레도니 무조건 즉시독립을 주장을 고수하였기 때문에 장시간동안의 협상이 전혀 진전이 되지않은 불가능한 협상이었다는 점과 그들이 사전에 4명의 프랑스인 헌병을 사살한 사실도 프랑스측의 무력진압 결심에 한 몫했다. FLNKS측은 치안서 습격과 인원사살은 우발적인 사건이었다고 주장했지만 근거는 없었으며 그들의 범행을 변호하기위한 입장일뿐이었다. [16] 작전의 주역인 기내 돌입조 역할을 수행했다. [17] 해당 작전에서 GIGN을 지원하는 역할을 했으며 사건영상에서 여객기 아래에서 승객들을 열심히 대피시키는 군인들이 바로 EPIGN이다. [18] 흔히 말하는 월샷(Wall Shot). 비행기 기내의 벽을 만져보면 알겠지만, 대부분 플라스틱과 합성섬유로 되어 있어 총알정도는 가볍게 뚫을 수 있다. [19] 1929~2007, 게임 재기드 얼라이언스의 용병을 현실로 옮겨 놓은 듯한 풍운아. 인생의 절반 이상을 용병으로써 살았던 인물로 로디지아에서도 활약했다. 여러 국적을 가졌으며 종교도 가톨릭-유태교-이슬람-가톨릭 순서로 여럿 개종하였고 아내만 해도 세계 각지에 7명이나 되었다. 이 사건은 밥 디나드의 용병인생 황혼기에 벌어진 사건. [20] 해군 코만도(Commandos Marine) 소속 코만도 자베르(Commando Jaubert) 특공대. [21] 다만 라이온은 트위치같은 미들아머 캐릭터이다. [22] 라이온은 이후 핀카의 추천으로 CBRN에 들어가게 된다. [23] 카스2 부터는 애초에 기본 세력은 SAS로 고정이고, 캐릭터 스킨으로써 타 캐릭터를 쓸 수 있지만 GIGN를 대신하여 상위 기관인 프랑스 헌병대 자체가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