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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0 22:18:37

F-94 스타파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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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미국 국기.svg 미국의 제트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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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ckheed F-94 Starfire[1]

1. 개요2. 역사
2.1. 제트 야간 전투기에 관한 소요 제기2.2. 핵심장비였던 레이더2.3. 6.25 전쟁에서 첫 데뷔2.4. 실전에서의 F-942.5. 2선기로 물러나다
3. 파생형4. 매체에서

1. 개요

미국 제트전투기.

Lockheed F-94 Starfire
제원
F-94C
분류 : 단발복좌 터보제트 전투기
승무원: 2명
전장: 13.56 m (44 ft 6 in)
주익폭: 11.38m (37 ft 4 in)
전고: 4.55 m (14 ft 11 in)
주익면적: 21.628 m² (232.8 ft²)
자체중량: 5,764 kg (12,708 lb)
임무중량: 8,301 kg (18,300 lb)
최대이륙중량: 10,970 kg (24,184 lb)
엔진: 1 × 플랫 & 휘트니 J48-P-5/-5A/-7A 터보제트 엔진
최대속도: 1030 km/h,마하 0.841
상승률: 40 m/s

무장
기수 주변에 6발씩 4묶음으로 총 24발이 장착된 6.99cm (2.75 in) 날개접이식 항공기용 로켓 (FFAR)
[2]

2. 역사

2.1. 제트 야간 전투기에 관한 소요 제기

제2차 세계 대전을 통해 항공기 레이더를 탑재한 "야간전투기(Nightfighter)"라는 새로운 카테고리의 전술기가 실용화되기에 이르렀다. 전쟁이 끝나고 제트기 시대가 열리며 곧 냉전에 돌입하자 신형 전투기 개발 경쟁은 야간전투기의 제트화도 함께 재촉하게 된다. 레시프로 엔진을 갖춘 야간전투기 P-61 F-82가 곧바로 구식으로 내몰렸고, 소련 1949년에 핵 실험을 성공시키며 B-29를 복제한 전략폭격기 투폴레프 Tu-4를 실전 배치하기 시작한 시점에서, 미 본토에 대하여 소련 공군의 핵 공격 위협이 표면화되자 이를 요격하는데 필수적인 야간(All Weather : 전천후) 제트전투기의 개발은 미 공군에게 매우 중요한 프로젝트로 떠오르게 된다. (사실 F-94가 개발되던 같은 시기에 XF-87도 같이 개발되었지만 성능 미달로 미 공으로부터 채택되지 못했다.)
복잡하고 다루기 쉽지 않은 레이더를 탑재하기 때문에 이 새로운 기체의 운용에는 조종사와 레이더 조작수라는 2명이 승무원이 필요해 복좌기가 바람직했으며, 1948년 3월부터는 실용화된지 얼마 안된 제트 훈련기 록히드 TP-80C(T-33)를 베이스로 개조한 야간전투기 개발이 시작되었다. 개조를 마친 시제기는 1949년 4월 16일, 첫 비행에 성공했다. 프로토타입의 명칭은 원래 ETF-80C였으나, 개발사인 록히드는 YF-94라는 분류기호로 임시 발주를 받고 1949년 11월에 공군과 생산 계약을 맺었다.

2.2. 핵심장비였던 레이더

F-94는 전천후 전투기였던 관계로 첨단 에비오닉스가 그 핵심이었는데, 당시로서는 고출력 레이더인 휴즈(Hughes Aircraft Company) 사제 AN/APG-33와 E-1 화기 관제장치가 중심이 되어 항공기에는 처음으로 탑재된 스페리(Sperri) A-1C 컴퓨터 건사이트, 지상기지와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 받는 데이터 링크 같은 신개념의 새로운 장비가 추가되었다. F-94 초기형의 주무장은 기존의 전투기들과 같은 50구경 기관총이었으나, 곧 요격 상대가 폭격기로 제한된 C형부터는 명중률과 탄도가 다소 떨어지더라도 단번에 격추 가능한 무유도 공대공 로켓을 선택했다. 큼지막한 레이더 안테나가 필요했던 탓에 에어 인테이크를 동체 옆으로 옮겨 기수를 비우고 그곳에 안테나 컴포넌트를 수납시켰는데, 이것은 지금에 와서는 당연한 형태로 여겨지지만 그 무렵 제트 전투기로서는 독특한 기체 프로파일이었다. 날개는 기본 소체가 된 T-33과 마찬가지로 저익 배치된 테이퍼형 직선 날개였다.

C형은 아예 기총을 장착하지 않고 기수에 24발 장전된 2.75인치 마이티 마우스 공대공 로켓(2.75in. Mk.4 Mighty Mouse FFAR)이 주무장이며, 후기형에 와서는 양날개 중간에 각각 12발이 장전된 로켓탄 포드 1기씩이 추가되었다. 게다가 이 전투기는 미 공군이 제식으로 삼은 기종 중에서 처음으로 애프터버너가 부착된 프랫 & 휘트니 J48 터보제트 엔진을 선택했기에 연료 소비율이 아주 높아 익단에 고정식으로 붙여둔 연료탱크의 용량을 680리터들이로 교체시켜 더욱 늘여놓았다.

2.3. 6.25 전쟁에서 첫 데뷔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태평양 방면의 방위를 책임지고 있던 극동 공군(Far East Air Force : FEAF)의 방공 사령부(ADC)는 서울과 수도권 지역의 영공을 방어하기 위해 F-94B로 3개 비행중대를 편성해 한국에 제319 전투요격 비행중대(319th Fighter-Interceptor Squadron)를 배치했다. 당시 최첨단 전투기로 알려진 F-94는 개전때만 하더라도 굳이 투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으나, 소련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북한군의 전력이 그들이 알고 있던 것과는 판이하게 달라 대처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뒤늦게 내려진 결정이었다. 이는 당시 최신예 전투기인 F-86을 서전에 파견하지 않았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미 초강대국 미국이 주먹을 한번 쳐들면 꼬리를 말고 물러날 것으로 여겼던 경찰 행동으로는 공산주의자들의 침공을 막을 수 없게 된 것을 의미했다.

F-94B의 첫 번째 전개는 존슨 공군기지에 주둔중이던 제339 전천후 전투 비행중대가 출발하여 1951년 3월에 일본에 선편으로 도착했다. 한편, 일리노이주 차누트 공군기지에서는 새로운 제트 요격기로 갈아타게 될 F-82G 트윈 머스탱 조종사들을 위한 전환 교육을 제공하기 위하여 이동 훈련부대가 함께 파견되었다. 우리나라의 K-13 수원 공군기지에 급히 지어진 퀀세트 막사에 여장을 푼 조종사와 레이더 조작수들이 훈련을 받고 있는 동안, 5월부터 일본의 이다즈케(板付) 기지에 대기하고 있던 제68 전천후 전투 비행중대도 F-82에서 F-94B로 사용 기종을 교체하며 서울의 방공 임무에 대비했다. 7월에는 오키나와 나하(那覇) 기지의 제4 전천후 전투 비행중대도 F-94A를 수령받기 시작했다. 이 부대들에 대한 훈련은 초여름부터 8월까지 계속되었고, 제1공군 제5공군에서 개최된 F-94 운용 준비 시험은 339th FAWS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 실전을 방불케하는 테스트와 평가에서는 요격기 뿐만 아니라 지상 관제센터의 레이더 운용 능력도 함께 강평받았고 "전투 사용가능" 판정을 받을 수 있었다.

1951년 12월 초순이 되자, 서울 부근에 공산주의자들의 MiG-15 전투기의 등장을 알리는 알람이 FEAF 본부에 올렸다. 그 무렵 서울의 밤하늘을 지키도록 배치된 유일한 야간 요격 부대는 미 해병대 소속의 함상전투기 그루먼 F7F 타이거캣 약간과 6대의 F-82가 전부였다. FEAF는 F-82를 보완하기 위해 수원으로 제68 전천후 전투 비행중대 소속 F-94B 2대를 먼저 급파시켰다. 1개 편조로 구성된 F-94가 남한의 서해 방면에서 야간 차단 임무를 수행할 동안 타이거캣과 트윈 머스탱들은 북한의 폭격 목표에 대한 무장 정찰 및 전천후 임무를 계속했다. 단, F-94에 설치된 수많은 전자장비와 레이더, 그리고 후연기가 부착된 제트 엔진은 1급 기밀에 해당했기 때문에 미군은 만일 이 전천후 요격기가 사고나 전투 도중 추락할 경우를 대비하여 추락 장소에 게릴라나 스파이를 비롯한 공산주의자들이 접근을 허용하지 않도록 예하 부대는 물론 한국군과 경찰에까지 협조를 구해야만 했고, 임무 비행은 철저히 UN군 점령지로 제한시켰다.

1952년 1월에서, ADC는 워싱턴주 라슨 기지에 주둔중이던 제1공군 예하 제25 항공사단에 소속된 제319 전투요격 비행중대를 이동시켜 일본의 이다즈케 기지로 전진 배치하고, 제68 전천후 전투 비행중대는 잠시 철수하도록 명령했다. 분리된 전대는 사할린 섬을 비롯한 블라디보스토크 방면에서 이따금 발진하여 일본의 혼슈 홋카이도 인근의 방공식별구역을 넘나들던 소련 정찰기들에 대한 대공 방어 임무를 위해 미자와(三澤) 기지로 파견되었다. 제68 스쿼드론은 수원에서 두 달 동안 58회의 요격 임무 출격을 했다. 그들이 서해의 미확인 식별기들을 추격하는 야간 차단 임무를 수행하면서 첫 번째 F-94의 손실이 1952년 2월에 발생했다. 손실의 원인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마침 부근을 비행하던 B-26 조종사가 연평도와 북한의 도시 해주시 사이 밤 하늘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공중 폭발의 섬광을 목격한 사실이 보고되었다. 사색이 된 미 공군은 거의 3개월 동안 행방이 묘연한 추락기의 잔해와 승무원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광범위한 수색 작전을 펼쳤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미 공군은 마침내 서해 상공에서 추락한 항공기가 바다에 빠지면서 잔해가 뻘 밑에 잠겨 찾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군은 적어도 소련의 손아귀에 첨단 장비의 기밀이 쥐어지진 않았다는 확신이 들고서야 수색을 중단했다.

수원에 파견된 제319 전투요격 비행중대는 1952년 3월에 B-29 수퍼 포트리스의 폭격 항정 앞을 미리 앞질러 진출해 상공을 청소하는 전투 공중 초계(Combat Air Patrols : CAP)를 첫 임무로 할당받고 작전에 나섰다. 그동안 제68스쿼드론은 후방인 일본에서 안심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지만, 모든 승무원은 1시간안에 출격이 가능한 거리에서만 지내도록 허가받았다. 그 해 6월에 F-94는 적 전투기와 처음으로 조우했는데, 그 임무를 수행했던 요격기 승무원은 공산주의자들이 레이더 경보 장치를 테스트한 것으로 판단하고 또 그렇게 보고서에 자신들의 의견을 첨부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적기에게 발사 준비를 위해 레이더로 조준하자 미그기가 갑자기 회피 기동을 시작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사실, 그것은 레이더와 육안의 대결이었지만 당시의 최첨단 기술을 구사해 만들어낸 장비라 하더라도 단발기에 탑재될 정도로 작은 소형 레이더는 사람의 눈보다 믿을 것이 못된다는 하나의 반증에 불과했다.

다른 요격 임무에서 미그기와 조우한 F-94는 최초의 제트 vs. 제트 야간 격추를 포함하여 몇 대의 전과를 거두었다. 이것은 미 공군 최초의 제트전투기에 의한 야간 격추였는데, 1952년 11월 2일에 해병대 VMF(N)-513 "나이트메어" 소속의 윌리엄 스트래튼 소령과 한스 호글린드 상사 승무원조가 먼저 평양 상공에서 F3D-2 스카이나이트 함상 전천후 전투기로 MiG-15의 야간 격추에 성공해 선수를 빼앗겼다.

F-94는 한국 전쟁에 참전하는 동안 모두 6대가 손실되었다고 한다. 미군의 전투보고서에 의하면 그중 한대만 적기의 요격에 의한 것이며 2대는 비행중 추락, 3대는 지상에서의 사고를 포함한 것이다. 마지막 한대의 F-94는 1953년 5월 3일, 야간에 저공으로 침투하는 것으로 악명높아 "불침번 찰리"라고 불리던 북한 공군의 Po-2 복엽기를 요격하기 위해 180 km/h까지 속도를 낮춰 쫓다가 실속에 빠져 지면에 충돌한 것이다.

2.4. 실전에서의 F-94

F-94B가 거둔 첫번째 격추는 매우 모호한 것이었다. 1951년 5월 24일에 일본 도쿄 부근의 타치가와(立川) 비행장에서 C-119 수송기 한대(C-124라는 설도 있다)가 3명의 승무원과 2명의 미군을 태우고 이륙했다. 수송기의 기장은 이륙한 직후 중대한 기술적인 고장을 발견하고 복행을 결심했는데, 착륙장치가 한쪽만 펼쳐져 착륙이 여의치 않았다. 한동안 기체와 이리저리 씨름하다가 동체 착륙조차 어렵다고 판단한 기장은 모든 승무원과 승객들에게 탈출을 지시하고 자신도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렸다. 조종사가 없는 큼지막한 수송기는 이제 그 자체로 일본의 어디로 떨어질지 알 수 없는 폭탄이 된 셈이었고, 관제탑은 즉시 출격 대기중이던 F-94B 2기를 스크램블 발진시켜 통제할 수 없는 수송기를 요격하라고 요청했다. 이 가엾은 C-119이 마침내 해안을 넘어 육지 상공에 접어들자, F-94B 조종사들은 가까운 야산에 충돌할 것을 기대하면서 2시간이 넘게 조종사가 없는 수송기를 추적했다. 그런데 한쪽만 펼쳐진 랜딩기어 때문인지 수송기는 완만하게 선회하며 다시 바다쪽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마침내 F-94B에 격추 명령이 떨어졌다. 2기의 전투기가 번갈아가며 수차례의 사격을 가하자 C-119은 불이 붙은 채로 바다에 추락했다. 이 얄궂은 아군기 격추가 F-94의 첫 전과인 셈이었다.

그 후 같은 해에, 제68전투요격 비행중대의 F-94A는 잠시 한국에 배치되었다. 그러나 A형은 자신의 소중한 레이더가 적의 손에 들어갈 수 있음을 우려한 공군 사령부에 의해 어떤 상황에서라도 북한 상공으로 비행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적기를 조우할 일이 없었다. 제319전투요격 비행중대는 사용 기종을 F-94B로 전환한 다음 곧바로 수원에 배치되었지만 여전히 적의 영토를 통과하는 임무는 금지 상태였다. 유지 보수에 엄청나게 손이 가는 문제에도 불구하고 휴즈 본사에서 한국으로 파견된 엔지니어들은 F-94의 레이더와 FCS에 대단한 지원과 노력을 기울여 결국 성공적인 가동률을 이끌어냈다.

서해 초도(椒島)에 설치된 제606 관제소의 노고 또한 야간 전투기 부대와 떼어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였다. 원래 이 작은 섬은 행정구역상 북한의 남포시 항구인 초도리를 이루고 있는 북한 영토였다. 1945년 광복 당시에는 황해도 송화군(松禾郡) 풍해면(豊海面)에 속해 있는 소사리(蘇沙里: 섬 동쪽)와 이현리(泥峴里: 섬 서쪽)로 엄연한 북한 땅이었는데, 1951년 5월 7일에 우리 해병대의 독립 41중대가 이 섬과 석도(席島)에 기습 상륙해 점령한 이후 즉시 레이더 기지와 항공 관제소가 전진 배치되었다. 해병대의 이 공로로 인해 UN군은 북한 영토 깊숙히 수백 km 바깥을 내다볼 수 있는 기막힌 망루를 손에 넣은 셈이었다. 섬의 지형이 험준하고 좁아 비행장을 건설하는 것은 무리였지만, 미군은 이곳에 헬리콥터 비행정 부대를 파견하여 북한 상공에서 전투를 치르고 돌아오는 UN군기들 중 피해를 입거나 추락한 기체에서 탈출한 승무원들을 구조하는 탐색/구난 기지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수행했다.

이 기지는 1953년 7월 27일에 한국전의 정전 협정이 발효되면서 철수할 때까지 미 공군과 해군, 해병대 및 모든 UN군 소속 항공기들에세 서쪽 국경의 항적 정보를 제공하고 공중전을 통제하는 관제소와 수십명의 조종사들을 구출하는 구조본부로써 지대한 공을 세웠다. 당연히 북한군에게는 눈엣가시와도 같은 존재였기에 낮에는 Tu-2나 Il-10에 의한 공습이 시도되었고, 밤에는 Po-2로 소리없이 날아와 폭탄을 떨구고 도주하곤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전투에서 F-94의 사용에 대한 제한은 1953년 초엽에나 해제되었고, 오랫동안 칼을 갈고 있던 제319전투요격 비행중대원들은 금세 상대를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1월 30일 F-94B "51-5449"에 탑승한 벤자민 피디언 대위와 리온 중위는 남한 상공으로 침입하다가 발각되어 아군에 의해 요격을 받고 있는 라보츠킨 La-9 전투기를 발견하고 함께 요격에 나섰다. 이 미확인기는 우군의 교신에 응답하지 않고 계속 남으로 비행하고 있었다. 레이더 조작수 리온 중위는 남포항 부근 초도 상공에서 레이더 컨택을 보고했고, 벤자민 대위가 그의 유도에 따라 접근하자 갑자기 코앞에 적기가 나타났다. 피디언 대위는 느린 속도로 날고 있는 레시프로기를 추월하지 않기 위해 급히 에어브레이크를 펼치는 동시에 전탄 사격을 가했다. 이 사격은 육안이 아닌 레이더에 의지한 것이었으나 신형 AN/APG-40 레이더는 기총의 타격점을 아주 정확하게 표시해줄 수 있었고, 4정의 M2 브라우닝 중기관총이 토하는 탄막 세례를 받은 La-9은 조종사가 탈출할 틈도 없이 그대로 폭발하며 잔해는 바다에 추락했다. 의심할 나위 없는 격추로, F-94가 적기를 상대로 거둔 첫 공식 전과였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한국에 배치된 F-94들은 3기의 확인 격추를 달성했다. 1953년 5월 10일에 존 필립스 대위와 빌리 애토 중위는 서해 초도에 설치된 제606관제소의 통제를 받으며 미그 협곡을 향해 3만 피트에서 4만 피트 고도로 완만하게 상승중이었다. 후방석에 앉아 먹물처럼 검게 펼쳐진 무월광 상태의 밤 하늘을 둘러보며 사방을 경계하던 애토 중위는 문득 3천 피트 밑에서 희미하게 번뜩이는 제트엔진의 배기 불꽃을 육안으로 목격했고, 필립스 대위에게 주의를 환기하며 레이더를 수동 모드로 바꿔 목표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곧 에토 중위는 2천 피트 아래에서 비행 중인 목표를 발견했으나 전자장비로 기종까지 식별할 수는 없었다. JOC에 부근을 비행하는 우군기가 있느냐고 묻자,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고, 곧바로 사격 허가를 얻어낸 이들은 불꽃을 토해내는 테일 파이프를 기준점으로 삼고 강하를 개시했다. 하지만 첫번째 일격을 맞고도 용케 격추를 면한 MiG-15는 갑자기 급격히 좌선회하며 회피 기동을 펼쳤다.

순식간에 레이더 스코프에서 목표를 놓친 이들은 지상관제소의 도움을 받아 다시 목표의 후미에 붙을 수 있었다. 조종사 필립스 대위는 만에 하나라도 레이더가 표적을 놓치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나이트 비젼의 스위치를 켰다. 아무것도 보이지는 않았으나, 불시에 조종간을 꺾어가며 지그재그로 날며 후방을 살피는 MiG-15 조종사는 신참이 아니었음에 분명했다. 밤 하늘의 끈질긴 숨바꼭질은 사냥감과 사냥꾼이 만주 상공에 접근할 때까지 이어졌지만, 마침내 필립스 대위가 재차 방아쇠를 당겼고 발사된 총탄은 MiG-15를 그대로 공중에서 찢어버렸다. 이것은 미 공군의 제트전투기가 야간에 같은 제트전투기를 상대로 거둔 첫 승리였다.

F-94의 마지막 전과는 휴전이 얼마 남지 않은 1953년 6월 7일 22시 45분에 제319 전투요격 비행중대의 지휘관 로버트 V. 맥헤일 소령과 새뮤얼 호스터 대위가 압록강 상공에서 MiG-15를 격추한 것이었다. 하지만 맥헤일 소령과 호스터 대위는 이 전투에서 지나치게 급선회하며 무리하게 적기를 쫓다가 자신들의 F-94 "51-5503"이 실속에 빠지는 것을 피할 수 없어 추락하고 말아 이 격추에 관한 주장은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2.5. 2선기로 물러나다

1953년 7월 27일에 한반도에서 총성이 멎었지만, F-94들은 한동안 일본과 한국에 대한 방공 임무 비행을 계속했다. 1954년부터 더 우수한 비행 성능에 진보된 레이더를 장비한 전천후 전투기 F-86D 세이버독이 운용을 개시하자 점차 대체되기 시작했고, 1954년 말까지 극동 방면에 전개했던 모든 F-94는 주방위 공군 임무를 위해 미 본토로 다시 옮겨졌다. 일선 부대에서 1959년까지 사용된 F-94의 남은 기체는 전부 주방위 공군에 돌려져 한동안 더 사용되었고 일부는 훈련기나 표적기로 활용되기도 했다.

3. 파생형

파일:external/www.aerofiles.com/lock-yf94d.jpg
실험기로 끝난 F-94D. 기존 시리즈와 달리 앞부분이 길게 늘어났다.

4. 매체에서

4.1. 월드 오브 워플레인

9티어 다목적 전투기로 등장한다. 다만, 여기서는 실험기인 F-94D로 등장하는데, 최종무장으로 F-104에 장착하기 위해 테스트했던 M61 발칸을 장착한다.

4.2. 도미네이션즈

원자력 시대의 두 번째 전투기인 타격 전투기로 등장한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전투기(도미네이션즈)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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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1] 좌측 하단은 F-94B-1, 나머지는 F-94C다. [2] 출처 Jet fighters Inside Out; Jim Winche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