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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22 07:08:38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준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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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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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이전 지역 예선[1] · 참가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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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대회는 첫 대회 홍보차원으로 지역 예선 없이 모든 팀을 초청해서 진행했다.


1. 개요2. 1경기 아르헨티나 6 vs 1 미국3. 2경기 유고슬라비아 1 vs 6 우루과이4. 3·4위전에 대한 논란5. 결승 진출팀

[clearfix]

1. 개요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준결승전에 진출한 팀은 개최국 우루과이, 라이벌 아르헨티나, 유럽의 유일한 생존팀 유고슬라비아, 그리고 복병 또는 도깨비팀이라 칭할 수 있는 미국이었다.

2. 1경기 아르헨티나 6 vs 1 미국

파일:1930 FIFA World Cup Uruguay Poster.png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 준결승전 제1경기
1930년 7월 26일 14:45 (UTC -3)
에스타디오 센테나리오 (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주심: 장 랑제뉘 (벨기에)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6 : 1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20′ 루이스 몬티
56′ 알레한드로 스코펠리
69′, 87′ 기예르모 스타빌레
80′, 85′ 카를로스 페우셀레
파일:득점 아이콘.svg 89′ 짐 브라운 스코펠리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아르헨티나 선발 명단 2-3-5
감독: [[프란시스코 올라사르|{{{#666666 프란시스코 올라사르}}}]], 후안 트라무톨라
GK
후안 보타소
FB
호세 델라토레
FB
페르난도 파테르노스테르
HB
후안 에바리스토
HB
루이스 몬티 파일:득점 아이콘.svg 20'
HB
로돌포 오를란디니
FW
카를로스 페우셀레 파일:득점 아이콘.svg 80', 85'
FW
알레한드로 스코펠리 파일:득점 아이콘.svg 56'
FW
기예르모 스타빌레 파일:득점 아이콘.svg 69', 87'
FW
마누엘 페레이라 파일:주장 아이콘.svg
FW
마리오 에바리스토
FW
바트 맥기
FW
톰 플로리 파일:주장 아이콘.svg
FW
버트 파테노드
FW
빌리 곤살베스
FW
짐 브라운 파일:득점 아이콘.svg 89'
HB
앤드류 올드
HB
랄프 트레이시 19'
HB
지미 갤러거
FB
조지 무어하우스
FB
우드
GK
지미 더글러스 [1]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미국 선발 명단 2-3-5
감독: [[로버트 밀라|{{{#c35168 로버트 밀라}}}]]

겨울비[2]가 내려 질척해진 센테나리오 경기장에서 열린 이 경기의 처음 양상은 비등하게 돌아갔다. 하지만 전반 19분, 미국의 센터 하프였던 랄프 트레이시가 다리 부상으로 인해 피치 밖으로 나간 사이 루이스 몬티가 선제골을 집어넣어 버렸다. 트레이시는 다리 골절로 인해 시합을 더 이상 뛸 수 없었고, 여러 악재가 겹쳤지만 미국은 전반전을 잘 마쳤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악몽의 시작이었다. 스코펠리에게 후반 11분에 골을 허용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미국의 골키퍼 지미 더글러스마저 무릎에 부상을 입었다.[3] 그 이외에도 미국의 주포 버트 파테노드마저 배에 부상을 입었고 이런 식의 부상이 계속되다보니 미국은 아르헨티나에게 이후 4골을 허용하며 급격히 망가지기 시작했다. 짐 브라운이 1골을 보태 영패를 면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

여담으로 미국 하프백 앤드류 올드가 후반 24분께 부상을 당했다.[4] 그런데 올드를 치료하러 갔던 팀 닥터(또는 코치)가 실수로 피치에 클로로포름을 떨어뜨렸다가 그 증기를 자기가 흡입하는(...) 바람에 치료는커녕 오히려 팀 닥터가 기절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올드는 치료받지 못하고 잠시 머무르다가 알아서 다시 경기를 뛰었다. 또 다른 설로는 트레이너의 손에 묻은 클로로포름이 올드의 눈에 조금 튀는 바람에 치료는커녕 잠시 눈 한 쪽이 안 보이는 채로 뛰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3. 2경기 유고슬라비아 1 vs 6 우루과이

파일:1930 FIFA World Cup Uruguay Poster.png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 준결승전 제2경기
1930년 7월 27일 14:45 (UTC -3)
에스타디오 센테나리오 (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주심: 지우베르투 헤구 (브라질)
파일:유고슬라비아 왕국 국기.svg
1 : 6
파일:우루과이 국기.svg
4′ 조르제 부야디노비치 파일:득점 아이콘.svg 18′, 67′, 72′ 페드로 세아
20′, 31′ 후안 안셀모
61′ 빅토리아노 이리아르테
파일:유고슬라비아 왕국 국기.svg 유고슬라비아 선발 명단 2-3-5
감독: 보슈코 시모노비치
GK
밀로반 약시치
FB
밀루틴 이브코비치 파일:주장 아이콘.svg
FB
드라고슬라프 미하일로비치
HB
밀로라드 아르세니예비치
HB
류비사 스테파노비치
HB
몸실로 조키치
FW
알렉산다르 티르나니치
FW
블라고예 마르야노비치
FW
이반 베크
FW
조르제 부야디노비치 파일:득점 아이콘.svg 4'
FW
브라니슬라프 세쿨리치
FW
빅토리아노 이리아르테 파일:득점 아이콘.svg 61'
FW
페드로 세아 파일:득점 아이콘.svg 18', 67', 72'
FW
후안 안셀모 파일:득점 아이콘.svg 20', 31'
FW
엑토르 스카로네
FW
파블로 도라도
HB
알바로 헤스티도
HB
로렌소 페르난데스
HB
호세 안드라데
FB
에르네스토 마스체로니
FB
호세 나사치 파일:주장 아이콘.svg
GK
엔리케 바예스테로스
파일:우루과이 국기.svg 우루과이 선발 명단 2-3-5
감독: 알베르토 수피시

경기의 처음 분위기는 유고슬라비아가 가져갔다. 4분 만에 부야디노비치 티르나니치의 크로스를 받아 선제골을 넣은 것이다. 여기까지는 분위기가 좋았는데 9분에 부야디노비치가 다시 한 골을 넣었지만 브라질 출신의 주심 아우메이다[5]가 골로 인정하지 않았다. 취소 사유는 오프사이드. 유고슬라비아는 이기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진이 빠지기 시작했다. 어? 뭐야! 아~ 씨X 거의 다 들어간 건데 미치겠다!! 게다가 우루과이에서 안셀모와 이리아르테가 기록한 3번째, 4번째 골마저 (유고슬라비아 입장에서는) 억울하게 골이 들어가자 경기를 치를 의욕이 사라지고 말았다. 결국 우루과이는 유고슬라비아를 6대 1로 처참하게 뭉개버렸고 결승에서 아르헨티나와 부딪히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우루과의 인사이드-레프트 페드로 세아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이렇게 4강전 경기는 종료되었고, 아무리 초대 월드컵이라지만 국가대항전에서는 어지간해서 나오기 힘든 6대1이라는 스코어가 4강전에서 나란히 나오는 진풍경이 벌어졌다.[6] 사실 이 대회 당시에 타 대륙에서 온 팀은 비행기가 아닌 배를 이용해서 남미에 도착했다. 배 안에 있는 시간이 보름이 넘어 장난이 아닌 멀미에 시달린 데다가, 그에 따른 체력 안배 및 시차 적응이 상대적으로 어려웠다. 그 상태에서 조별 리그를 간신히 통과한 팀이 미국과 유고슬라비아이고, 이들은 각각 사실상 홈그라운드인 아르헨티나와 개최국인 우루과이를 상대해야 했다. 전력의 차이도 있었으니 완전히 각개격파되는 것이 그렇게까지 이상한 일은 아니었던 셈이다. 특히 미국의 경우, 요상하게 부상이 많아지면서 선수들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이 컸다.

4. 3·4위전에 대한 논란

초대 월드컵에서는 3위 결정전이 없었다.[7] 그래서 3, 4위에 대한 논란이 생기지 않을 것도 같은데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1930년 월드컵의 3위는 미국이라 인정한다. 이는 피파 기술 위원회에서 1986년 월드컵까지의 성적을 종합해 놓은 자료에서도 미국 3위, 유고슬라비아를 4위로 기록했었고, 현재 사용하는 방식에서도 미국이 유고슬라비아를 근소하게 앞서기 때문이다.[8]

불확실한 출처이기는 하지만 1984년의 FIFA 게시판에는 비공식적으로 3, 4위전을 치렀고 유고슬라비아가 3대1로 이겼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날짜가 맞지 않아 신빙성이 떨어진다. 그 외에도 하이데르 자와드(Hyder Jawad)라는 사람이 2009년에 쓴 책에 따르면 유고슬라비아 측에서 우루과이와의 경기에 불만을 품고 예정되어 있던 3, 4위전을 걷어차버렸다는 설도 제기되었다.

세르비아 내부에서는 다음과 같은 주장도 나온다. 미국과 유고슬라비아 모두 각각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에게 나란히 6대 1이란 스코어로 완패하기는 했지만 결론적으로 우루과이가 우승했으므로 우승팀에게 패배한 유고슬라비아를 3위로 인정하는게 맞다는 것. 그래서 세르비아 당국에서는 이 주장을 뒷받침하게 위해 뒤늦게나마 2010년에 자체적으로 동메달을 만들어서 당시 뛰었던 선수단에게 헌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주장 역시 세르비아에서만 나온 거라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고 있다. 또한 우승팀에게 졌다고 무조건 3위인 것도 어불성설인 게, 2014년 월드컵에서는 브라질이 그 월드컵 우승국 독일에게 졌지만 3, 4위 결정전에서도 네덜란드한테 또 져서 4위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안 붙어 보면 모르는 것이다.

5. 결승 진출팀


이후 정보는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결승에서 기재.


[1] 후반에 부상으로 빠졌다. [2] 남반구 북반구와 계절이 반대다. 7월이면 우리는 여름이지만 브라질, 호주,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남반구의 나라들은 겨울이다. 이전 본선경기에서 아르헨티나 프랑스의 경기에는 눈까지 왔다. [3] 전에는 어깨로 서술이 되어 있었지만 가디언지과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트 등에서 무릎 부상으로 서술하여 수정하였다. [4] 기록에 의하면 올드는 이 부상으로 치아 4개를 잃었다고 한다. [5] 혹시 기억하는가? 아르헨티나 프랑스의 경기에서 경기를 7분 일찍 끝냈던 그 심판이다 [6] 그나마 차이점이라고 해봐야 미국은 여섯 골을 먹고 나중에 한 골을 만회한 반면, 유고슬라비아는 먼저 한 골을 넣고 그 뒤에 여섯 골을 먹었다는 정도이다. [7] 3, 4위전이 처음 생긴 대회는 다음 대회인 1934 이탈리아 월드컵이다. [8] 골득실을 비교해보면 미국은 본선 1라운드 13개국 조별리그에서 6득점에 무실점으로 +6, 유고슬라비아는 6득점에 1실점으로 +5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