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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모사본( 지도 확대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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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 또는 역대제왕혼일강리도(歷代帝王混一疆理圖), 줄여서 강리도(疆理圖)는 태종 2년(1402년) 조선에서 제작되어 몇 가지의 판본이 존재하는 세계지도로, 가로 164cm, 세로 148cm의 대형 지도이다.2. 특징과 가치
이 지도는 태종 대 조선의 건국을 자축하며 그 역사적인 가치를 만방에 알리고자 하는 포부를 갖고 십수년 동안 국가사업으로 제작된 지도이다. 이 때문에 서울이 한성으로 표시되지 않고 조선으로 표시되어있으며 조선이 실제 크기보다 매우 크게 그려지고 있다.또한 일본이 시계 방향으로 90도 돌아가 있지만 모양은 정확하며 일본에서 직접 지도를 구해와서 첨가해 넣은 것이라고 한다. 그 외에 특이할만한 점은 지중해와 흑해에 바다색이 칠해져있지 않아 이베리아 반도와 이탈리아 반도를 찾기가 조금 어려우며, 지중해, 아랍과 북아프리카의 지도까지는 매우 기술이 상세한 데에 반해 서유럽 쪽은 서유럽이라는 게 있었다 정도로 간략화 되어있다. 이는 이 지도가 제작될 당시 참고한 데이터베이스가 몽골 제국과 아랍의 것을 토대로 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있다. 그러므로 이 지도의 왜곡된 축척은 당시 지도가 제작된 의미를 상기해 보면 "얼마나 역사 속에 이름을 남겼는가"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여말선초 최고의 학자 중 하나라 칭송받던 권근이 발문을 썼으며 내용은 대충 아래와 같다.
천하는 지극히 넓다. 가까이는 중국에서 멀리는 사해까지 몇 천, 몇 만 리나 되는지 알 수 없다. 이를 줄여서 폭 몇 자의 지도로 만들자면 그게 상세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지도로 만들면 모두 어설플 수 밖에 없다. 다만 오문(吳門) 이택민[1]의 《성교광피도》(聲敎廣被圖)는 매우 상세하고, 역대 제왕의 연혁은 천태승(天台僧) 청준(淸濬)의 《혼일강리도》에 실려 있다.[2] 건문(建文) 4년(1402년) 여름에 좌정승 상락(上洛) 김사형과 우정승 단양 이무가 틈틈이 짬을 내어 이 지도를 참조하여 연구하고, 검상 이회에게 명하여 자세히 교정하도록 하여 한 장의 지도를 만들게 하였다. 베이징 동쪽을 비롯한 당시 고려의 강역[3]은 이택민의 지도에도 많이 생략되어 있다. 지금 특별히 우리 나라의 지도를 증광하고 일본을 첨부해 새로운 지도를 만들었다. 정연하고 보기에도 좋아 집을 나가지 않아도 천하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지도를 보고 지역의 멀고 가까움을 아는 것은 다스림에도 하나의 보탬이 되는 법. 두 공(公)께서 이 지도를 존중하는 까닭은 그 규모와 국량이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권근)는 재주 없는 몸으로 참찬을 맡아 두 공의 뒤를 따랐는데, 이 지도의 완성을 기쁘게 바라보게 되니 몹시 다행스럽다. 내가 평소에 방책을 강구해보고자 했는데 뜻을 맛보게 되었고, 또한 이제부터는 집에 누워서 편하게 세상을 볼 수 있으니 뜻을 이루게 됨을 기뻐한다. 따라서 이 지도의 밑에 써서 말한다. 시년(是年) 가을 8월에 양촌 권근이 기록하노라.
또한 강리도에 들어간 지도기술은 당대 동서양 과학의 집대성 그 자체였다. 강리도는 이미 지구가 구체라는 것을 알고 제작된 것이다. #
현존하는 동아시아의 세계지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4] 다만 논란의 여지는 있다. 중국에서는 2006년 이후 <대명혼일도(大明混一圖)>에 등장하는 광원현(廣元縣)과 용주(龍州) 등의 지명이 1389~1391년 쓰였다는 점에서 그 무렵에 작성된 최고(最古)의 지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후대에 단순히 모사하면서 변화된 지명을 고치지 않고 지도에 그려넣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1389년 이후에 작성되었다는 것 이외에는 확정하여 볼 수 없으며 지도에 1457년 축성된 에도 성이 등장하거나 일본에 대한 묘사가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보다는 16~17세기의 지도와 유사하다는 점 등 각종의 문제가 있어 한국 측에서는 비판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5] 그렇지만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또한 고려나 조선에서 직접 탐사를 해서 작성한 것이 아니라 이슬람 세계와 접촉한 원나라 때 이후 넓어진 중국의 지리 관념을 수입해 만든 물건임은 분명하므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이전에 현재 남아 있는 <대명혼일도>의 원본 지도가 중국에 있었을(혹은 발견되지 않은 채 있을) 가능성은 충분하고 한국에서도 그 점은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위에서 언급한 문제는 어디까지나 '현재 남아 있는 유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 무엇이냐'의 문제이다.
3. 내용
중국과 서역의 지형을 나타낸 부분은 이택민의 성교광피도(聲敎廣被圖), 혼일강리도(混一疆理圖), 대명혼일도 등 중국에서 제작되었던 지도의 것을 그대로 따왔다. 조선의 경우 각 군현에 자신의 지역들을 조사하고 올리도록 명령하여 만든 군현지도를, 일본 열도의 경우 일본에 사신을 보내 받아온 일본의 지형도를 편집하여 만들었다. 조선 - 명나라 건국 초기인 15세기에 만든 지도이나 표시된 세부 지명들을 보아 고려 - 원나라 시대인 14세기의 지리적 정보 위주로 제작됐다.아라비아 반도, 아프리카 대륙은 조선보다도 작게 그려져 있으며 일본의 위치는 90도의 시계방향이 꺾여진 채로 남쪽에 위치해 있다. 강리도는 어디까지나 조선이 중심이 된 지도이기 때문에 그동안 한국 역사에서 잘 모르거나 알려지지 않았거나 조선에게 문물을 전해주지 않은 나라에 대해서는 묘사가 적거나, 작게 축소되어 있다. 강리도를 자세히 보면, 역사적으로 큰 족적을 남긴 곳이라면 빨간 점으로 표시되어 있다.
조선 중심으로 바다에서 보면 멀리서 보는 육지가 찌그러져 보이는 것처럼 인도의 위치가 다소 왼쪽으로 틀어져 있기 때문에 인도가 안그려져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많으나, 중국과 인도의 국경인 히말라야 산맥 쪽을 보면 사람이 하나도 안 사는 것처럼 도시 이름 하나 없이 텅 비어진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것으로 중국과 인도를 구분해서 보면 된다.
강리도는 당대의 세계지도로서는 상당히 진보된 것이다. 당대의 세계지도는 유럽에서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동쪽을 위로 그렸으며, 대부분의 이슬람 지도는 메카를 중심으로 아프리카를 북쪽으로 그릴 정도로 방위의 개념이 없었다. 알 이드리시의 지도도 그런 지도 중의 하나이다. 그러한 이유로 미국과 유럽의 학자들은 강리도를 높게 평가하기도 한다. 강리도보다 훨씬 후에 만들어진 유럽, 중동, 인도, 중국지도 조차도 강리도만큼의 지구 강역 넓이와 정확도, 상세함을 갖고 있지 못했다.
서역 부분의 경우 조선 건국 얼마 전까지 유라시아 동서를 지배하며 연결했던 몽골 제국, 즉 원나라에서 받아들인 지도를 이용했다. 이 지리 정보는 아랍에서 받아온 것이므로 당시 유럽과 아랍의 지리적 인식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특히 유럽의 지명은 아랍어 명칭이 쓰였다. # 그리고 주로 아랍과 유럽은 1300년대의 지명이라고 한다. # 유럽은 지중해 부분이 물로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6] 튀르키예, 그리스,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티그리스 강 근처의 바그다드 #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나일강, 예루살렘 등등을 한자어 지명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말라카 해협에 대한 묘사도 있다. 심지어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 산도 등장하며, 고화질 버전으로 확대하면 아프리카에서 묘사된 거대 호수[7] 아래에 서쪽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오렌지 강이 나온다. 오렌지 강을 정확하게 묘사한 현존 최초의 지도라고 한다. 남아공 국회에서 이 지도를 복사해 전시한 적이 있다. #
이 지도는 당시 조선의 대외 인식, 1400년대 초에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까지 표현한 지도를 만들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강리도는 아프리카 남단의 망망대해까지 표현되어있으며, 강줄기와 산은 물론 1300년대에 이미 파괴되었던 파로스 등대의 위치나 유럽의 오래된 고성 등을 전부 표기해놓았다. 고대 그리스 이래 바다를 항해하는 사람들은 땅(지구)이 둥글다는 사실을 널리 알고 있으며, 신라와 고려의 무역상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게다가 신라는 나침반을 자체적으로 발명할 정도로 천문과 지리에 능했던 국가였다. 강리도의 방위가 다른 문명권의 세계지도와 달리 정확하게 동서남북에 기준해 제작된 이유는 이미 나침반을 통해 정확한 방위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강리도는 대서양, 인도양, 태평양이 그려진 최초의 지도이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모르면 강리도처럼 왜곡해서 그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메카토르 도법으로 그리면 인도는 정확히 중국 밑에 있어야 하며 왜곡되어 작게 표현된다. 그러나 한반도를 지구의 중심에 놓고 하늘에서 지구를 보면 인도는 중국의 남서쪽으로 붙어있는 모양이 된다. 아프리카의 모양도 마찬가지다.
당시는 대항해시대 이전의 시대이기에 구대륙의 인류는 신대륙의 존재를 몰랐다. 그래서 이 지도는 유럽과 아프리카는 있을지언정 신대륙이 없다. 한 마디로 진짜 오래된 지도란 뜻. 한국보다 서구권에서 이 지도에 주목하는 이유가 이것으로, 당시 지도 중에서는 가까운 서구권, 이슬람권보다도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프리카 부분이 주목받는데, 서구 지도에서 15세기 중엽이 넘어가야 수정되는 아프리카 대륙의 남쪽 끝이 동쪽을 향한다는 오류를 범하지 않고 남쪽을 향한다고 정확히 나타내는 등 당시의 지도들 중에선 꽤나 정확한 것을 볼 수 있다. # 스와힐리 해안에서 무역을 하던 페르시아인이나 아랍인이 모잠비크를 넘어 내륙 지방을 탐사한 정보가 반영된 후 이슬람측 원 사료 출처가 유실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2016년 KBS 다큐멘터리 "문명의 기억-지도"에 따르면 일본 류코쿠 대학에서 10년 동안 이 지도에 대해 연구 중으로 역사, 공학, 지리학 등 다수의 전문가들이 모여 X선과 적외선 분석 장치 등을 통해 지도의 염료 복원에 매달린 결과 과거 2,000 곳에서 3,000 곳 정도로 판독했던 지명 수에서 현재는 5,000여 곳의 지명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중국 지역의 복원을 통해 지도에 쓰인 지명들이 지도 제작으로부터 80여년 전인 1320년 무렵임을 밝혀냈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아프리카 부분에서 알렉산드리아 항구가 있고 알렉산드리아의 등대가 그림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나일강의 근원을 아랍어로 '자바랄 까마르' 즉, 달의 산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이 기록의 근원은 고대 그리스의 프톨레마이오스 세계지도를 비롯한 지리학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결국 혼일강리역대국도의 한반도를 제외한 나머지 세계 부분은 멀리는 고대 그리스의 지리학을 계승한 아랍인들이 인도양 바다를 자유롭게 오가면서 얻은 지리정보가 아직 명나라가 해금정책을 펼치기 전인 원나라를 통해 중국에 전해졌고, 이것이 다시 고려 말에 전래된 정보를 기반으로 조선 초에 제작되었을 걸로 추측된다.
4. 소장
태종 때 만들어진 원본은 소실되었고, 일본 교토의 류코쿠대학과 나가사키현 시마바라시의 혼코지(本光寺)에 세조 때 만들어진 필사본이 보관되어 있는데 이 필사본은 임진왜란 또는 일제강점기에 건너간 것으로 보이며 류코쿠 대학에 보관되어 있는 필사본은 임진왜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가 지도를 약탈하여 자신의 개인 사찰인 구마모토의 혼묘지(本妙寺)에 보관하던 것을 대학에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현존하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태종 대에 처음 만들어진 것을 세조 때 모사한 것이다. 이는 지도에 등장하는 한반도의 지명에 세종 이후 개척된 4군 6진이 기록되어 있고, 특히 세조 1년(1455년) 이후의 지명인 고무창(古茂昌), 고여연(古閭延), 고우예(古虞芮), 자성(慈城)이 표기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위의 지명들이 사용되던 1455년(세조 1년) ~ 1459년(세조 5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태종 대의 원본 지도에 그 동안 변화된 몇몇 지형 정보들을 추가하여 세조 때 필사본을 추가로 제작하였는데 세월이 지나 원본은 소실되고 모사본만 살아남은 것이다.
한편 규슈 혼코지 소장본은 류코쿠 소장본과 다소 차이가 있는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일본의 지리 정보에 대한 변화이다. 류코쿠본의 경우 일본이 조선의 정남쪽에 가로로 길게 뻗쳐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으나, 혼코지본은 조선의 동남쪽에 서남~동북쪽으로 대각선으로 뻗쳐 있는 실제의 지형과 좀 더 유사한 지도이다. 이것은 지도가 일본에 수입된 이후 자국의 지리 정보를 첨부하여 지도를 교정한 것이다. 위가 류코쿠대학본, 아래가 혼코지본.
5. 여담
-
언차티드 시리즈 마지막 작품인 언차티드 4의 마지막 장에서 주인공 네이선 드레이크의 별채에 이 지도가 등장한다. 혼코지본을 가져온 것으로, 일본에서 한 번 더 수정이 들어갔기 때문에 일본 열도의 위치가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 그려진 위치보다 더 동쪽으로 옮겨져있고 일본 열도의 실제 형태와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 천하도와 함께 한국지리ㆍ한국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진다.
- 영어 위키백과에서는 줄임말인 강리도(Gangnido)라고 되어 있으며,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 대한 설명이 매우 풍부하다. 외국에서 상당히 인지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1]
원나라 때 문신
[2]
강리도는 이 두 지도를 참고하여 만들어 진 것으로 발문에 적혀있으며, 두 지도 다 현존하지 않는다. 게다가 강리도를 제작하기 무려 100여년 전의 지도이다. 명나라가 제작했다는 대명혼일도가 강리도보다 20년 앞서 제작했다면 그것을 조선이 몰랐을 리가 없고, 더 최신기술이 들어간 지도를 레퍼런스 삼지 않았다는 점이 이상하다.다만 지도는 전근대에는 국가기밀이어서 국외반출이 통제되었음으로 오래된 지도는 입수 가능해도 최신 지도를 입수하는 것은 힘들었기때문에 대명혼일도를 참조하지 못한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3]
원문에서는 요수와 본국으로 표현함. 현대인이 알아보기 쉽도록 수정.
[4]
동아시아가 아니라 중동 등을 포함한 동양의 경우 이슬람권의 세계지도는
알 이드리시의
세계지도 등, 더 오래된 11세기 세계지도도 남아있다. 여기서
신라는
섬나라로 표현되었다.
[5]
논문과
기사 참조.
[6]
지중해 해안선을 나름대로 그렸는데 육지 색으로 잘못 채색했을 뿐이라는 설도 있다. 채색만 좀 바꿔서 보면
이베리아 반도,
이탈리아 반도,
발칸반도,
아나톨리아 반도 및
흑해 등의 윤곽선을 어렴풋이 찾아볼 수 있다.
[7]
빅토리아 호로 생각하기 쉬운데 아닐 가능성이 크다. 빅토리아 호의 존재가 서역에 알려진 건 1858년 영국의 탐험가 존 해닝 스피크(John Hanning Speek)가 발견한 이후이기 때문. 탐사되지 않은 중앙아프리카 지역을 검게 칠한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