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2 23: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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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의
슈츠슈타펠
소령.
2. 초기 행적
노이뮌스터에서 하사관이던 부친아래 태어난 하겐은 고교졸업 후 킬에서 견습직원으로 일하다가
1933년
11월에 친위대에 입대했다.
1934년
5월에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의 추천으로 SD본부로 이동해
프란츠 직스의 아래에서 유대인 처리와 신문의 편집을 담당했다. 하겐은 유대인 문제처리의 조직화, 합리화, 중앙집권화를 꾀하여
아돌프 아이히만을
빈으로 급파해 유대인 외국본부를 설치하기도 했다. 하겐은 나치스의 유대인 정책 책임자 중 한 명으로
1937년에는 아이히만과 함께 유대인을
팔레스타인으로 추방하는 것을 상정하여 현지를 시찰하려 했지만
영국에 의해 입국이 거부당하기도 했다.
1940년에
프랑스의 보르도에서 친위대 사령관이 되었다가
1942년에
파리로 이동하여 고급경찰지도자였던
카를 오베르크의 부관을 역임한 그는
프랑스의
유대인을 수용소로 이송하는데도 관여했다.
1944년
9월엔
유고슬라비아에서
아인자츠그루펜 부대의 지휘를 맡기도 했다.
4. 전후 행적
독일의 패전 후인
1955년에 유대인 수송에 관련한 범죄로
프랑스 법정에 기소된 하겐은 종신 강제노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가석방 후
서독으로 되돌아온 하겐은 평온하게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1979년에
쾰른 지방재판소에서
전범으로 기소당하여 재판결과
1980년
2월에 12년의
금고형에 처해졌다가 석방된 후 루덴에서
1999년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