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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8-20 12:59:00

헤르베르트 하겐

파일:헤르베르트 하겐.png
이름 Herbert Hagen
헤르베르트 하겐
출생 1913년 9월 20일, 독일 제국 노이뮌스터
사망 1999년 8월 7일, 독일 루덴
복무 슈츠슈타펠 (1933년 ~ 1945년)
최종계급 슈츠슈타펠 아인자츠그루펜 소령
주요 참전 제2차 세계 대전

1. 개요2. 초기 행적3. 제2차 세계 대전4. 전후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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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오베르크2.jpg
왼쪽은 피에르 라발 비시 프랑스 총리이고 가운데가 SS 지도자 카를 오베르크, 오른쪽이 헤르베르트 하겐이다.
나치 독일 슈츠슈타펠 소령.

2. 초기 행적

노이뮌스터에서 하사관이던 부친아래 태어난 하겐은 고교졸업 후 킬에서 견습직원으로 일하다가 1933년 11월에 친위대에 입대했다. 1934년 5월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의 추천으로 SD본부로 이동해 프란츠 직스의 아래에서 유대인 처리와 신문의 편집을 담당했다. 하겐은 유대인 문제처리의 조직화, 합리화, 중앙집권화를 꾀하여 아돌프 아이히만으로 급파해 유대인 외국본부를 설치하기도 했다. 하겐은 나치스의 유대인 정책 책임자 중 한 명으로 1937년에는 아이히만과 함께 유대인을 팔레스타인으로 추방하는 것을 상정하여 현지를 시찰하려 했지만 영국에 의해 입국이 거부당하기도 했다.

3. 제2차 세계 대전

1940년 프랑스의 보르도에서 친위대 사령관이 되었다가 1942년 파리로 이동하여 고급경찰지도자였던 카를 오베르크의 부관을 역임한 그는 프랑스 유대인을 수용소로 이송하는데도 관여했다. 1944년 9월 유고슬라비아에서 아인자츠그루펜 부대의 지휘를 맡기도 했다.

4. 전후 행적

독일의 패전 후인 1955년에 유대인 수송에 관련한 범죄로 프랑스 법정에 기소된 하겐은 종신 강제노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가석방 후 서독으로 되돌아온 하겐은 평온하게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1979년 쾰른 지방재판소에서 전범으로 기소당하여 재판결과 1980년 2월에 12년의 금고형에 처해졌다가 석방된 후 루덴에서 1999년에 사망했다.